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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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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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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의 눈으로 본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마법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갖고 있던 루키우스는 어느 날 연인의 실수로 당나귀가 되고 만다. 그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장난으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도 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는다. 그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루키우스, 이 호기심 많은 당나귀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가 들은 재미있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황금 당나귀』는 고대 로마 작가가 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이자, 오늘날까지 원본이 완전하게 보전된 유일한 라틴어 소설이며, 세계 최초의 액자 소설이다. 일인칭 화자인 루키우스가 내용을 이끌어 나가는 서술 방식은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불리는 문학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매우 선정적이고 방탕하다. 이 책에는 소름 끼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과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 이야기,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인간이 가장 비천한 동물인 당나귀로 변하여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간들을 관찰한다는 내용은 굉장히 기발하고 풍자적이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선정된 『황금 당나귀』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고, 모험 소설과 판타지 소설을 동시에 읽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안겨 줄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Aug 1, 2018
ISBN979118714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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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 당나귀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독자여, 나는 밀레투스식¹의 몇몇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나일 강의 여린 나무줄기에 쓰여진 이 파피루스를 읽고자 한다면, 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당신의 귀를 유혹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신은 인간이 동물로 변하고, 후에 수많은 모험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1기원전 2세기경에 살았던 밀레투스의 아리스티데스의 극작품과 관련된 익살스러운 장르. 기원전 1세기경에 시세나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가 그리스어 작품을 번역하여 라틴 문학에 소개한 후, 라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나는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입니다. 북아프리카의 마다우라에서 태어났지만, 그리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의 선조들은 아티카² 근처의 히메투스와 한때 코린토스라고 불렸던 에피라와 라코니아의 타에나루스에 살았습니다. 이곳은 모두 나보다 유명한 작가들을 배출하여 불멸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행운을 지닌 책들 때문에 영원히 칭송받을 장소입니다.

    2지금의 아테네.

    나는 어렸을 때 아티카로 와서 그곳에서 아티카의 언어를 배우며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나는 로마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 주는 선생님도 없이 열과 성을 다해 키리테스의 언어³를 공부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무지한 수다쟁이인 내가 외래어나 법정의 전문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더라도 용서해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문체의 변화는 지금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리스 문체⁴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독자여,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아주 즐거울 것입니다.

    3라틴어를 뜻한다.

    4그리스의 이야기는 주로 사랑과 모험을 다룬다. 이것은 라틴 문학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기사 소설과 연애 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작품들이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이다. 뛰어난 작품들로는 론고의 『다피니스와 클로에』를 비롯하여 작자 미상의 『칼리마코와 크리소로에』, 『아폴리니의 이야기』 등이 있다.

    나는 사업상 테살리아로 가고 있었다. 그곳은 우리 어머니의 가문이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와 그의 조카인 철학자 섹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테살리아 태생의 순종 백마를 타고 높은 산과 위험한 계곡과 습기 찬 평원과 경작지를 지났다. 그러자 말은 완연히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나 역시 계속해서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피로에 지쳐 있었다. 나는 저린 몸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한 줌의 잎사귀로 조심스럽게 말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서 귀를 쓰다듬은 후, 고삐를 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말의 긴장을 풀어주고, 피로로 축 처진 말의 호흡이 정상을 되찾게 하고 있었다.

    말이 고개를 한쪽으로 숙인 채 걸음을 멈추지 않고 풀을 뜯어 먹는 동안, 나는 조금 앞서가던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대화하며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에 말고삐를 죄었다. 내가 그들과 나란히 서게 되자, 갑자기 한 사람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소!

    그 말을 듣자 나는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궁금해 하면서 말했다.

    내가 주책없이 남의 말에나 끼어드는 경거망동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오. 물론 몇 가지는 내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말이오. 나는 당신들이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알고 싶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얘기해 주면 고맙겠소. 내가 보기에 이런 이야기들은 이상스러운 매력이 있어서 우리가 거칠고 힘든 언덕을 올라가는 데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웃음을 터뜨렸던 사람이 다시 말했다.

    난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소! 마법이란 것을 들먹이면서 요란한 급류를 뒤로 거슬러 올라가게도 하고, 잔잔한 바다를 소용돌이치게도 하며, 거센 바람의 힘을 약화시켜 멈추기도 하고, 태양을 한곳에 멈추기도 하며, 달을 커다랗게 만들기도 하고, 별들을 이동시키기도 하며, 낮 시간을 빨리 지나가게 하거나 밤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요.

    하지만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집요하게 말했다.

    이봐요. 당신이 이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질질 끌지 말고 끝까지 말해 보시오. 이게 과도한 부탁이 아니라면 제발 끝까지 말해 주시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친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소. 그런데 그게 당신의 감성이 천성적으로 무뎌서 그런 것이 아니며, 학문에 대한 고리타분한 관념 때문도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소? 처음 듣는 이상한 이야기나, 아니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시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검증도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오. 자,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소? 있으면 한번 말해 보시오. 우선 내가 먼저 말해보겠소.

    어제 저녁 식사 때, 나는 내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과 먹기 시합을 벌였소. 내가 아주 커다란 치즈케이크 한 덩어리를 통째로 삼키려고 했는데, 그만 케이크의 끈끈한 부분이 목구멍에 붙어 버렸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자칫하면 죽을 뻔했소.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아테네의 ‘페킬로스의 현관’⁵ 앞에서 칼날이 오뚝 선 기사도騎士刀를 손잡이가 아닌 칼날 부분부터 삼켜 버리는 마법사를 바로 이 두 눈으로 보았소. 그런 후 그는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동냥하고서 기사도를 삼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냥용 창을 손잡이 끝부분만 남긴 채 자기 배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소. 우리는 그의 목구멍에서 하늘로 치솟은 손잡이를 그의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었소.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소. 잘생긴 어린아이가 머리 위로 불쑥 솟은 창 손잡이 위로 기어 올라가 곡예사처럼 힘차고 유연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오. 우리는 모두 너무나 감탄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소. 의술의 신이 갖고 다니는 거칠거칠한 올리브 나무 지팡이⁶를 매끄럽게 감아 오르는 뱀처럼 말이오. 우리가 보기에 그 아이는 뼈도 없고, 근육도 없는 뱀 같았소."

    5이것은 아테네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아주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잡상인들의 공연장소로 이용되는 아주 널리 알려진 장소이다.

    6뱀 두 마리가 칭칭 감고 있는 메르쿠리우스의 지팡이를 지칭한다. 이것은 고대에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때 나는 고개를 돌려 이야기하던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 이제 당신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보시오. 나는 절대적으로 그 이야기를 믿을 것이오. 그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첫 번째 여관에 들어가면, 그 보답으로 당신에게 내 점심을 나누어 주겠소.

    그러자 그가 말했다.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고맙소. 하지만 나는 무슨 보답을 바라고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오. 그럼, 내가 하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겠소. 하지만 그 전에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태양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하는 말은 틀림없으며 검증된 것이오. 당신들이 오늘 오후에 테살리아에 도착하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오. 그곳의 모든 사람이 내가 겪은 사건이 사실임을 알고 있소. 이건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설명하겠소. 나는 아에기니움⁷ 출신으로 식품 도매업자요. 나는 치즈와 꿀과 이와 유사한 물품들을 구입하여 테살리아와 아에톨리아, 보에오투스 전역으로 갖고 다니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오. 그리고 내 이름은 아리스토메네스요.

    7테살리아 지방의 한 도시.

    그건 그렇고, 나는 테살리아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히파타에서 아주 맛있고 신선한 치즈를 싼 가격에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소.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커다란 치즈 한 덩이를 사려고 서둘러 길을 나섰소. 하지만 이런 종류의 장사를 할 때 종종 일어나듯이, 내가 치즈를 사려는 계획은 엉망이 되고 말았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루푸스라는 도매상인이 치즈를 전날 모두 사재기해 버렸다는 것을 알았소.

    이토록 서둘러 왔건만 아무런 성과도 없게 되자, 나는 기운이 빠져 이른 저녁에 공중목욕탕으로 갔소.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내 친구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었소. 그는 낡고 오래된 누더기만 걸친 채 바닥에 앉아 있었소. 몸은 야위어 거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머리는 빗지 않아 엉망이었소. 길모퉁이에서 동냥하는 불쌍한 거지들과 진배없었소. 나는 그와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과연 소크라테스일까 잠시 의심했소. 그러다가 그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소."

    「어이, 소크라테스 아닌가! 몰골이 이게 뭔가? 왜 이렇게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자네 집에서는 이미 통곡을 하면서 장례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리고 지방 법원은 이미 자네 자식들에게 후견인을 지명했다네. 또한 의연히 장례식을 치른 후에도 자네 아내는 계속되는 슬픔을 참지 못해 너무나 눈물을 흘린 나머지 형편없이 되어 버렸다네. 거의 시력을 잃어버렸어. 심지어 자네 집안의 친척들조차도 재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라고 그녀를 부추기고 있어. 그런데 자네는 여기서 귀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게 웬일인가?」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내게 말했소.

    「아리스토메네스, 자네가 포르투나⁸는 인간에게 극히 경망스럽고 변덕스러운 속임수를 쓰는 존재임을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는 못할 걸세.」

    8그리스의 티케와 동일인물이다. 로마 신화에서 포르투나는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나는 변덕스러운 상황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시인과 예술가들은 포르투나를 눈에 붕대를 감고 날개를 가진 채 한쪽 다리는 수레바퀴에 올려놓고 다른 다리는 허공에 놓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더덕더덕 기운 넝마를 끌어당겨 얼굴을 가렸소. 하지만 그런 행동은 불행히도 배꼽부터 발까지의 나머지 육체를 벌거벗겼소.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참고 볼 수가 없었소. 그래서 그에게 손을 내밀며 일어나라고 권했소. 그러나 그는 내 손을 뿌리치며 신음하듯이 말했소.

    「놔두게, 그냥 이대로 놔두란 말이야! 포르투나가 나를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실컷 승리의 축배를 마시게 말이야.」

    하지만 결국 그가 날 따라오게 하는 데 성공했소. 나는 입고 있던 두 개의 웃옷 중에서 하나를 벗어 그를 덮어 주고 독탕獨湯으로 데려갔소. 나는 매우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에게 쌓인 때를 모두 벗겨 주고 깨끗이 씻겨 준 다음에 기름을 발라 주었소. 황금보다도 더 윤이 나자, 나는 내가 묵고 있던 여관으로 그를 데려갔소. 그리고 침대에 눕힌 다음 먹을 것과 포도주를 푸짐하게 주고서 그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 주었소. 또한 최근 고향 소식을 전해 주었소. 그 이야기에 그의 표정은 밝아졌고, 우리는 함께 웃으며 농담을 했소. 그런데 그가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고통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소. 그리고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소.

    「아, 비참한 나의 운명이여! 이건 모두 라리사 근처에서 있었던 검투사 시합 때문에 생긴 거라네. 내가 장사를 하려고 마케도니아로 떠났다는 사실은 자네도 익히 알고 있을 걸세. 10개월 후, 나는 상당한 돈을 벌어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네. 그런데 라리사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나는 시합장에 보다 빨리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어.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그만 잔인무도한 도둑놈들에게 붙잡혔다네. 나는 갖고 있던 것을 모두 털려서 알거지가 되고 말았지만, 목숨만은 무사하게 도망칠 수 있었어. 그래,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이 마을에 도착했다네. 나는 메로에라는 여인이 관리하던 여인숙으로 갔어. 그녀는 젊지는 않았지만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어. 그래서 나는 그 여인숙에 짐을 풀고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만 했던 이유와 내가 당했던 빌어먹을 강도와 얼마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마음 깊이 동정하면서 공짜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대접했어. 그러고 나서 그녀는 열정의 노예가 되어 나를 자기 침대로 끌고 갔다네.

    단 한 번의 사랑을 허용한 죄로 내 몸은 아파 왔고, 내 의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네. 나는 긴 시간 동안 탐욕스러운 그녀의 손에 잡혀 일해야만 했어. 그녀는 내가 일할 수 있는 몸일 때에는 짐을 나르며 벌었던 몇 푼 안 되는 돈까지 빼앗았지. 하지만 몸이 점점 약해지자, 나는 도둑놈들이 내가 몸을 가릴 수 있게 남겨준 옷까지도 벗어 주어야만 했다네. 그리고 지금 자네도 보다시피 매혹적인 여인 때문에 얻은 불행으로 이 지경이 되었던 거야.」

    그러자 나는 말했소.

    「맙소사! 자네는 그런 천벌을 받아도 마땅한 짓을 했군. 가정과 자식보다 창녀의 육체와 가랑이를 즐겼기 때문에 그런 벌을 받은 걸세.」

    그러자 그는 입술에 둘째 손가락을 대고 두려움에 질려 「쉿! 조용히 해!」라고 말했소.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무도 자기 말을 엿듣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소.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그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게. 잘못하면 자네에게도 아주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 여자가 여인숙 주인이자 창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런데 자네 말을 듣자니 초자연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그러자 그는 애처로운 말투로 말했소.

    「마녀일세. 자기가 하고 싶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지. 초자연적 힘을 지니고 있으며, 하늘을 두 동강 낼 수도 있고, 땅을 들어 올릴 수도 있으며, 흐르는 물을 땅처럼 굳게 만들 수도 있고, 바위산을 물로 만들 수도 있으며, 죽은 사람을 불러내거나 신들을 옥좌에서 내던질 수도 있고, 별빛을 사그라지게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타르타로스⁹에도 불을 환히 밝힐 수 있는 여인이라네.」

    9이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역. 지옥 밑에 있으며, 신들이 자기들의 적을 감금하던 곳이다.

    「자, 너무 두려워 말게, 소크라테스. 슬프고 침울한 표정은 이제 그만 짓고 평소처럼 말해 보게.」

    「그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하나만 말해주면 자네는 내 말을 믿을 수 있을 걸세. 아니면 두 개나 그 이상을 말해줄까? 그녀의 위업을 몇 개나 듣고 싶어? 그녀는 남자들을 열렬히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네.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인도인이나 심지어 에티오피아인 혹은 안티온¹⁰들까지도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단 말이야. 물론 이런 것은 그녀가 지닌 힘을 볼 때 대수롭지 않은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이런 막연한 것들보다는 믿을만한 증인들이 있는 분명한 것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군. 내가 몇 가지만 얘기해 주지. 우선 그녀의 어느 정부情夫가 겁 없이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한 적이 있었다네. 그러자 단 한마디만 중얼거리자, 그는 비버로 변해버렸다네.」

    10북아프리카의 종족을 일컫는다. 현재의 에티오피아에 위치한다.

    「그런데 많고 많은 것 중에서 왜 하필이면 비버인가?」

    「비버는 사냥꾼들에게 붙잡힐 것 같으면 자기의 음경을 거세하고서 그것을 강둑에 놔두고 가버리거든. 그렇게 해서 냄새를 쫓는 사냥개들을 피해 자유의 몸이 되는 걸세. 또한 자기 정부와 부정을 저지른 이웃 여인숙 주인을 개구리로 만들기도 했다네. 그래서 지금 그 불쌍한 노파는 포도주 통에서 헤엄치거나, 아니면 포도 찌꺼기에 파묻혀 걸걸하고 비굴하게 ‘개굴개굴’ 울면서 자기의 옛 고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지. 그리고 그녀를 기소했다는 이유로 변호사에게 양의 뿔을 달아주었지. 그래서 그는 이마에 난 꼬불꼬불한 뿔을 단 채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네. 마지막으로 그녀를 농락했던 어느 정부의 아내는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를 했어. 그러자 메로에는 임신하고 있던 그녀의 자궁에 마법을 걸어 태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했어. 그게 대략 8년 전의 일이야. 그러니까 8년 동안 배가 커져서 그 여인의 배는 마치 코끼리를 출산할 듯이 커진 상태라네.」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

    「물론이지. 그녀가 너무나 자주 마법을 남용했고 너무나 많은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분노가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다네. 그래서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다음 날 그녀를 석형石刑¹¹에 처해 엄하게 복수하기로 결정했지. 하지만 채 하루도 못 되어 그녀는 마법의 도움으로 그들의 의도를 알았고, 크레온에게 얻은 단 하루의 시간 동안 왕의 가족 전체를 화염 속으로 몰아넣은 메데아¹²처럼 행동했어. 그녀가 술에 취한 어느 날 내게 말해준 바에 의하면, 그녀는 묘구덩이를 팠고, 그 위에서 의식을 행했어. 그리고 마법의 힘으로 여러 신을 불러 모아 그 신들의 힘을 사용했어. 그녀는 히파타에 있는 모든 집의 대문과 방문에 마법을 걸었어. 그래서 이틀 동안 사람들은 빗장을 풀 수도 없었고, 문지방을 움직일 수도 없어서 거리로 나올 수 없었지. 심지어 벽에 구멍을 뚫고 나올 수도 없었어. 마침내 모든 주민은 집에서 나올 수 있게 해주면 절대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들이 그녀를 구하러 달려올 것이라고 약속했어.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음모를 꾸민 주동자에게 복수했어. 그녀는 벽과 바닥을 포함해 그 집을 통째로 100마일도 더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갔어. 물론 그도 그 집 안에 있었지. 그녀가 데려간 곳은 물도 없는 언덕 꼭대기였고, 그곳 주민들은 빗물에 의존해 살아야만 했어. 하지만 집들이 너무 촘촘히 있어서 그 집을 놓아둘 공간이 없었어. 그래서 성문 밖에 그 집을 놔두었던 것이네.」

    11죄인을 돌로 쳐서 죽이는 처형 방법.

    12메데아와 크레온 : 크레온 왕은 자기 딸을 메데아와 사랑을 나눈 야손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래서 마녀인 메데아를 코린토스에서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만 추방을 연기해 달라고 애원하는 데 성공했고, 그 하루 동안 결혼 예복과 예물을 독으로 가득 적셔 놓았다. 그리고 불로 왕의 딸과 왕을 불태워 버리고, 궁궐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그에게 말했소.

    「소크라테스, 자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끔찍하지만, 동시에 매우 멋지네. 자네는 내 몸에 두려움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어.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단 말이야. 사실대로 말하면 무서워 죽겠네. 그런데 그 마녀가 초자연적 힘을 통해 우리 대화를 들었으면 어떻게 하지? 자, 밤이 아직 깊지 않았으니까,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이 저주받은 소굴에서 벗어나게 말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크라테스는 깊은 잠이 들어 코를 골기 시작했소. 피곤한 상태에서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효과가 나타난 것이었소. 나는 침실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소. 그리고 경첩 달린 곳에 침대 머리를 갖다 대고서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려놓고 누웠소. 나는 소크라테스의 무시무시한 이야기 때문에 한참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소. 한밤중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붙일 수 있었소. 그런데 갑작스럽게 울리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깼소. 그리고 도둑놈들이 힘을 합쳐 어깨로 밀친 듯이 갑자기 문이 열렸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이 경첩과 함께 뿌리째 뽑혀 쓰러졌던 것이오. 갑자기 문이 열리자, 작은 데다 삐걱거리고 썩어 있던 침대는 그 충격으로 산산조각 나며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이내 아래로 내려오면서 내 위를 덮쳐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소.

    그때 나는 감정의 모순점을 깨달았소. 다시 말하면 너무 기쁠 때 눈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어떤 느낌은 거꾸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나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 자신에게 「어이, 아리스토메네스,¹³ 자네 거북이 신세가 되었구먼」이라며 농담을 하고 있었소. 사실 나는 침대 밑에 안전하게 있으면서 옆으로 머리를 내밀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훔쳐보고 있었소. 마치 거북이가 껍데기 속에 몸을 숨기고서 주위 상황을 살펴보는 것과 똑같은 신세였소.

    13이 경우는 이야기하는 화자와 동명이인인 아테네의 희극 시인을 지칭한다.

    나는 나이 지긋한 두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소. 한 여자는 불을 밝힌 촛불을 들고 있었고, 다른 여자는 해면과 시퍼런 날이 오뚝 선 칼을 들고 있었소. 그들은 아직 잠자고 있던 소크라테스의 양편에 각각 자리를 잡았소. 칼을 들고 있던 여자가 먼저 말했소.

    「판티아, 이것 좀 봐. 여기에 바로 내가 애인으로 선택한 사람이 누워 있어. 나의 사랑하는 엔디미온¹⁴이자 나의 카타미투스¹⁵가 바로 우리 앞에 있어. 나는 이 사람이 정말로 뜨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어. 그런데 이놈은 오랜 시간 동안 밤일을 하면서 내 청춘을 비웃기만 했지. 이놈은 내 사랑을 거부한 놈이야. 나에 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더니, 이제는 도망치려고 계획한 놈이야. 이제야 이놈을 잡았어. 오디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칼립소¹⁶처럼 이놈 때문에 내가 영원한 고독 속에서 울며 지내야 할 팔자가 되었던 거야.」

    14잘 생긴 목자로 유피테르(제우스)의 손자. 루나(셀레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피테르는 그에게 가장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영원히 잠을 자는 것을 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루나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그를 사랑했으며, 이 여신은 유피테르에게 엔디미온이 영원한 잠을 자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보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는 꿈을 상징한다.

    15그리스 신화의 가니메데스, 트로이 왕자다.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신의 아버지의 마음속에 무한한 사랑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런 이유로 올림포스의 술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유피테르의 술잔에 과일주를 가득 담아 주는 일을 담당했다.

    16아름다운 목소리와 외모로 유명한 바다의 요정. 서부 지중해 섬에 살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표류하던 오디세우스를 구조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에게 조국과 가족을 버리고 자기와 결혼하면 불멸의 삶을 선사하겠다고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유피테르의 명령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를 떠나 보내게 될 때까지 7년간 그를 억류하고 있었다.

    그런 후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소.

    「침대 밑에서 우리를 엿보고 있는 이놈이 바로 아리스토메네스야. 이놈이 내 사랑에게 도망치자고 사주한 놈이야. 만일 이놈이 무사히 나를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일생일대의 오산일 거야. 초저녁에는 나한테 욕을 퍼붓더니, 이제는 건방지게 우리 행동을 흘끔흘끔 엿보고 있어. 하지만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 거야.」

    이 말을 듣자 나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있음을 느꼈소. 그리고 동시에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소. 그 떨림 때문에 내 어깨 위의 침대도 진동하고 있었소. 그러자 착한 판티아가 메로에에게 말했소.

    「이놈을 주신제酒神祭에서 하듯이 난도질해 버릴까? 아니면 음경을 꽁꽁 묶고서 서까래를 쳐다보게 한 다음 거세해 버릴까?」

    판티아와 함께 온 다른 여인은 소크라테스가 내게 말한 메로에 같았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소.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잠시 살려 줘야 해. 적어도 이 빌어먹을 소크라테스를 땅 밑에 묻어 줘야 할 놈이 있어야 하니까 그냥 놔 둬.」

    이렇게 말하면서 메로에는 소크라테스의 머리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왼쪽 늑골 구멍으로 칼을 깊게 찔러 넣었소. 피가 솟구쳤지만, 그녀는 이미 준비한 조그만 자루로 그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받았소. 나는 이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소.

    그런 다음에 이런 희생 의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메로에는 칼로 찌른 상처 안으로 오른손을 집어넣어 창자를 휘저었소. 그녀는 내 불쌍한 친구의 심장을 떼어 낼 때까지 그렇게 했소. 동시에 상처 입은 목구멍에서는 신음이,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희미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소. 그는 마지막 호흡을 하고 있었던 것이오. 판티아는 열린 상처를 해면으로 막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소.

    「해면이여, 해면이여. 넌 짜디 짠 바다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저 개울을 막아다오.」

    그렇게 말하고서 해면을 거두었소. 그다음에 내 위를 덮쳤던 침대를 치우고서 내 얼굴 위로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방광을 드러내었소. 그렇게 앉아서 내 얼굴에 오줌을 쌌고, 내 얼굴은 더러운 오줌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소.

    이 일이 끝나자 그들은 나를 남겨두고 떠났소. 그들이 문지방을 넘어가자 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 위치로 돌아갔소. 경첩은 기둥 틈에 끼워졌고, 빗장은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으며, 걸쇠는 아래를 향해 잠겨 있었소. 나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었소. 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온몸은 차갑고 끈적끈적한 오줌으로 적셔져 있었소. 마치 어머니 배 속에서 갓 나온 아이 같았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이제 내 생애에는 전혀 미래가 없어. 단지 과거만 존재할 뿐이야. 나는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그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나 진배없어. 내일 아침, 사람들이 목이 잘려 죽어 있는 소크라테스의 시체를 발견하면, 내 목숨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믿지 않을 거야. 「당신이 여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면 소리라도 질러야 했을 것 아니야?」라고 내게 말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겠지. 「당신처럼 몸집도 크고 강인한 사람이 당신 눈앞에서 친구의 목이 잘리는데 한마디도 외치질 않다니! 당신만 혼자 살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 당신은 증인이고, 증거를 없애려면 당연히 증인을 죽여야 하는데, 왜 그들이 당신을 죽이지 않았지? 그런 거짓말이나 늘어놓고 있다니, 당신은 사형을 당해도 마땅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두운 밤이 지나고 환한 아침이 되고 말았소. 나는 어둠을 더듬으면서 위험한 길을 가야 할지라도 이 여인숙에서 몰래 도망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나는 꾸러미를 메고, 열쇠로 자물쇠를 열기 시작했소. 하지만 밤에는 스스로 열렸던 문이 너무도 완고하게 버티고 있었소. 자물쇠를 열려고 아주 힘들게 수없이 시도했고, 결국 손잡이가 덜걱거리면서 겨우 문이 열렸소. 그리고 안뜰로 나가자 나는 이렇게 소리쳤소.

    「이봐, 문지기! 어디에 있어? 대문 좀 열어 줘! 날이 밝기 전에 떠나야 한단 말이야!」

    그러자 문 옆에 쓰러져 잠자고 있던 문지기가 잠에서 깨지 않은 채 내게 대답했소.

    「도대체 누가 대문을 열어 달라는 거요? 누가 이 밤에 밖으로 나가겠다는 거요? 길에는 도둑놈이 가득하다는 것도 몰라요? 그런데도 밤에 여행을 떠나려 한단 말이요? 당신이 삶에 지쳐 목숨을 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살인 공모자였기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골빈 놈이 아니요. 당신에게 대문을 열어주면 도둑놈들이 몰려들어 올지도 몰라요. 난 당신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아요.」

    나는 그에게 대답했소.

    「머지않아 날아 밝아 올 것이오. 어쨌거나 도둑놈들이 당신처럼 가난한 여행자한테 뭘 훔칠 수 있겠소? 내가 보기에 당신은 도둑을 겁내는 겁쟁이임이 틀림없소. 열 명의 검투사가 모여도 한 푼 없는 비렁뱅이 여행자한테는 아무것도 뺏을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르오?」

    반쯤 잠이 든 그 얼간이는 등을 돌리며 투덜댔다.

    「당신이 어제저녁에 함께 잠을 잔 동료를 죽이고, 감옥에 가기 싫어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한 순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소. 바로 그 순간 나는 지옥이 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소. 그 안에서 케르베로스¹⁷가 나를 삼켜 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소. 나는 메로에가 착한 마음을 먹고 불쌍히 여겨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을 주기 위해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17죽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를 지키면서 그들이 나가지 못하게 보초를 서는 플루토(하데스)의 개. 이 괴물은 개 머리 세 개와 뱀 모양의 꼬리를 하고, 등에는 수많은 뱀 머리를 지녔다.

    침대로 돌아오면서 나는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었소. 하지만 포르투나 여신은 내게 허름한 침대라는 무기밖에는 손에 쥐여 준 것이 없었소. 그래서 나는 침대에게 말했소.

    「내 사랑하는 침대야, 너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남아있는 유일하게 진정한 내 친구야. 너만이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증인이야. 너는 오늘 밤에 일어났던 고통스러운 사건을 나와 함께 끝까지 참고 견디어 냈어. 침대야, 난 이제 빨리 지옥으로 가고 싶어. 그곳으로 갈 수 있게 날 좀 도와줘.」

    나는 침대의 대답을 기다리며 침대에 얽혀 있던 밧줄을 풀기 시작했소. 나는 이쪽 창문에서 저쪽 창문으로 연결된 대들보 위로 밧줄을 맸소. 한쪽을 단단히 매면서 나는 다른 쪽에 매듭을 맸소. 그리고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침대 위로 올라가 둥근 밧줄에 목을 집어넣었소. 그리고 발로 딛고 있던 것을 치워 버리면서 밧줄이 내 목을 조여주길 바랐소. 하지만 내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소. 내 몸무게 때문에 낡고 썩은 밧줄이 일순간에 끊어져 버렸던 것이오. 나는 옆에서 잠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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