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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호 박사가 선정한 세계의 명연설
김양호 박사가 선정한 세계의 명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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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477 pages4 hours

김양호 박사가 선정한 세계의 명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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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연설』은 동서 고금을 통하여 탁월한 연사들과 그들이 한 연설 가운에 명연설로 꼽히는 연설문들을 골라 실었다. 시간적으로는 2500년 전 아테네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명 연설가 페리 클레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의 위인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자 탁월한 연설가인 오바마까지, 공간적으로는 광활한 국토와 인구 대국인 중국의 주석 시진핑에서부터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인구 10만의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달라이라마까지 소개되어 있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Jul 15, 2016
ISBN9791157711680
김양호 박사가 선정한 세계의 명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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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호 박사가 선정한 세계의 명연설 - 김 양호

    저자소개

    김양호

    저자 김양호는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법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미국 컴벌랜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와 중국 랴오닝 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지도자 자질 양성’, ‘언어 표현력 개발’이라는 모토로 사회교육기관 한국언어문화원을 창립하였다. <스피치대강좌>, <언어교양대학>, <인생대학>, <파워스피치 최고경영자과정>, <파워스피치세미나>, <명강사프로모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국적으로 개최하여, 100만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한국산업교육연합회 회장과 월간 <언어문화>, <언어생활>, 계간 <산업교육2000>의 발행인, 이화여자대학교와 중앙대 산업경영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언어문화원 원장, 언어문화국제학교 이사장, 중국 랴오닝 대학교와 발해대학교의 명예교수, 전국웅변협회 수석부총재로, 기업과 대학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다.

    저자역서는 《스피치대강좌》, 《스피치대백과사전》, 《언어교양대학》, 《대화의 심리작전》, 《설득의 심리작전》, 《자기계발을 위한 135작전》, 《화술과 인간관계》, 《화술과 비즈니스》, 《대중연설의 비결》, 《5분 연설, 10분 대화》,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성공하는 사람은 화술이 다르다》, 《성공하는 사람은 스피치가 다르다》, 《강사의 화법》, 《그 말이 정답: 예화 스피치 365》, 《킹스 스피치》 《정상에서 만납시다》 등 80여 권이 있으며, 중국과 태국에서도 9권이 번역 출간되어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국내 주요 인명록은 물론 미국 마르퀴스 사가 발행하는 세계명인대사전 《Who's Who in the World》에 2001년부터 현재까지 연속으로 올라 있으며,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한 ‘21세기의 탁월한 지성인’과 ‘신화적인 현존 인물’ 그리고 ‘세계 100대 교육자’에 등재되었다. 수상 경력은 ‘서울특별시장상’, ‘국방부장관상’을 받았고 사회 교육자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으며, 미국 UCC에서 ‘국제평화상’을 수상했다.

    서문

    명연설은

    역사 속에 핀 꽃이다

    인류의 역사는 ‘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서로 말로 소통하고, 말로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오늘날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말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탁월한 명연설이야말로 역사 속에 향기롭게 피어 질 줄 모르는 꽃이 아닐까요?

    나는 스피치speech라는 꽃을 좋아하고, 탁월한 연사speaker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연사들을 만났고, 그들의 스피치를 듣고 보아왔습니다. 살아 있는 현존 인물은 삶의 현장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간 역사 속의 인물은 문헌을 통해서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외친 절규나 함성에 감동을 받았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들의 스피치에 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을까?’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지적 탐구는 내가 한국언어문화원을 설립한 1971년 이래 지금까지 45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발견하고 터득한 ‘스피치의 원리와 비결들’을 강의와 책을 통해서 계속 발표하였고, 그때마다 뜨거운 호응에 감사하며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세계의 명연설》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탁월한 연사들과 그들이 한 연설 가운데 명연설로 꼽히는 연설문들을 골라서 실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 시대를 대변하고 이끌었던 인물들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들의 사상과 견해를 주창한 명연설 가운데 하이라이트를 소개한 그야말로 스피치의 보고寶庫라는 것입니다.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나 걸작품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든 당신은 만인이 우러러보는 시대의 총아 114명과, 만인이 좋아하는 명품 스피치 114편을 단번에 얻게 되었으니, 실로 축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책에는 시간적으로는 2500년 전 아테네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명 연설가 페리클레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의 위인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자 탁월한 연설가인 오바마까지, 공간적으로는 광활한 국토와 인구 대국인 중국의 주석 시진핑에서부터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인구 10만의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달라이라마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제적으로는 세계적인 부호였던 강철왕 카네기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우루과이의 무히카까지, 연령적으로는 95세로 타계한 만델라 대통령에서부터 19세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저항소녀 말랄라까지 선보이고 있습니다.

    선정 기준은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시대의 대변자로서 이슈가 있는 인물과 심금을 울린 내용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것은 세계 명연설가 대열에서 빠져서는 안 될 위인 몇 명이 빠졌습니다. 링컨, 처칠, 스티브 잡스 등은 꼭 들어가야 하지만, 그들의 연설문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고, 또 저자의 다른 책에 이미 소개가 되었기에 넣지 않았습니다. 누락이 아니라 유명세를 치른 셈입니다.

    스피치는 실용 학문입니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닙니다. 스피치를 하게 되거나 스피치에 관한 글을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그야말로 풍부한 자료집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당신의 교양과 스피치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김양호

    차례

    서문: 명연설은 역사 속에 핀 꽃이다

    정치 1

    최초의 미국인, 벤저민 프랭클린

    평민의 대변인, 빅토르 미라보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혁명의 펜, 토머스 제퍼슨

    아일랜드의 데모스테네스, 헨리 그래튼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

    헤인에게 답한다, 다니얼 웹스터

    의회 정치의 거인, 벤저민 디즈레일리

    자유주의를 추구한 윌리엄 글래드스턴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승리의 아버지, 조지 클레망소

    입지전적인 인물, 로이드 조지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러시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오시프 스탈린

    불멸의지도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리틀 빅 맨, 해리 트루먼

    아돌프 히틀러에게 배우는 연설 기법

    전쟁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샤를 드 골의 명연설과 리더십

    환상의 대통령, 휴이 롱

    천재적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

    위대한 사회를 주창했던 린든 존슨

    비운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

    뉴 프런티어의 기수, 존 F. 케네디

    살아 있는 양심,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냉전시대를 끝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을 와해시킨 보리스 옐친

    테러와의 전쟁, 조지 부시

    미국 경제를 되살린 빌 클린턴

    부부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

    훌륭한 패자, 앨 고어

    황제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영국의 케네디, 토니 블레어

    이민자의 아들로 대통령이 된 니콜라 사르코지

    이 시대의 웅변가, 버락 오바마

    정치 2

    건국 대통령, 이승만

    중국혁명의 상징, 손문

    조선 제일의 웅변가, 여운형

    문필 혁명가, 조소앙

    13억이 추앙하는 모택동

    못살겠다, 갈아보자! 신익희

    부국의 아버지, 등소평

    필리핀의 우상, 라몬 막사이사이

    쿠데타군에 맞서다 숨진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싱가포르 신화를 만든 리콴유

    20세기의 풍운아, 피델 카스트로

    피플 파워 혁명, 코라손 아키노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비운으로 끝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노조 출신 대통령, 레흐 바웬사

    빈민국을 ‘희망의 대국’으로 만든 룰라 다 실바

    중국의 위대한 부흥, 시진핑

    민중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

    문학ㆍ예술

    우국의 사자후, 요한 피히테

    프랑스의 국민 영웅, 빅토르 위고

    콩코드의 철인, 랄프 왈도 에머슨

    영국 제일의 극작가, 버나드 쇼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조선의 벗, 야나기 무네요시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작가, 펄 벅

    세계 문학사의 거장, 윌리엄 포크너

    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일본 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

    초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영혼의 스피치로 더 유명해진 조지 손더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작가, 치마만다 아디치

    희극왕, 찰리 채플린

    연기의 화신! 로버트 드 니로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할리우드 명배우, 톰 행크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팝의 여왕, 마돈나

    명배우이며 환경 운동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행동하는 여배우, 엠마 왓슨

    종교ㆍ인권운동

    인권운동의 전설, 소저너 트루스

    흑인들의 영웅, 프레데릭 더글러스

    설교의 왕자, 찰스 스펄전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

    무저항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국민계몽 운동가, 안창호

    인간 승리의 표본, 헬렌 켈러

    열정의 꽃, 라 파시오나리아

    약자의 대변자, 함석헌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한국 여권운동의 선구자, 이태영

    아프리카의 전설, 넬슨 만델라

    내면의 평화로 크게 성공한 S. N. 고엥카

    흑인 민족주의자, 말콤 엑스

    비운의 혁명가, 체 게바라

    탁월한 연설가, 마틴 루터 킹

    게이 인권운동의 순교자, 하비 밀크

    살아 있는 성인, 달라이라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 산 수지

    농구계의 전설, 짐 발바노

    탈레반 피격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고전ㆍ경제ㆍ기타

    대정치가, 페리클레스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

    위대한 전술가, 한니발 바르카

    로마 제일의 웅변가, 마르쿠스 키케로

    불세출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설적인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미국 경제의 초석, 알렉산더 해밀턴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송미령

    전설적인 경영자, 리 아이어코카

    조직 활성화의 탁월한 공로자, 코피 아난

    빈민들의 희망, 무하마드 유누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일본 제일의 부자가 된 손정의

    새롭게 떠오른 큰 별, 마윈

    최초의 미국인,

    벤저민 프랭클린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

    100달러 지폐에 실려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만큼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정치가, 저술가, 과학자, 교육자, 인쇄인, 계몽 사상가로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래서 ‘최초의 미국인’, ‘건국의 아버지’, ‘미국 최초의 위대한 작가’, ‘미국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했던 인물’ 등등 그에 대한 수식어도 많다.

    프랭클린은 1706년 보스턴에서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열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집안 형편 때문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1923년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형과 다투고 가출하여 필라델피아 인쇄소의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낮에는 힘든 노동을 열심히 하고, 밤에는 탐욕스럽게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생활이었다. 그의 성실한 태도는 곧 주위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쇄소의 경영자가 되었다. 1729년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라는 신문을 사들여 단기간에 이를 펜실베이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만들었다.

    1732년에는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을 펴냈다. 다가올 한 해의 날씨, 생활정보, 간단한 지식, 삶의 지혜 등을 다룬 일종의 종합 안내서인데 나오자마자 식민지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1958년까지 발행되었으며 매년 1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프랭클린은 큰 재산을 모았고 동시에 그의 이름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1736년 식민지 최초의 주민자원봉사 소방서인 유니언소방서를 설립했고, 1751년에는 필라델피아 대학교의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과학에도 일가견이 있어 고성능 난로, 사다리 의자, 다초점 안경, 피뢰침 같은 물건들을 발명했다. 이런 뛰어난 과학적 업적으로 하버드, 예일, 윌리엄앤메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왕립학술원 명예 회원도 되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2년밖에 받지 못한 그가 ‘프랭클린 박사’가 된 것이다.

    1747년, 그의 나이 50대에 인쇄사업을 정리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751년 펜실베이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757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사절로 영국에 15년 동안 파견되어, 영국이 식민지에 부과한 인지세법을 철폐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775년 식민지 독립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선봉에 서서 싸움을 이끌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신생 미 합중국 대사로 프랑스에 파견되어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과 참전을 끌어냈다. 1787년 그는 82세의 노령이었으나 제헌회의에 펜실베이니아 주 대표로 참석해, 헌법 제정에 이바지한 것을 마지막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1790년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미국 연방헌법안을 지지하는 연설

    다음은 1787년 9월 17일, 미 합중국 헌법 최종안 서명 직전에 헌법제정회의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명연설의 요지다.

    "의장님, 솔직히 이 헌법안에는 지금 제가 찬성할 수 없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오래 살다 보니 중대한 사안에조차 제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깊이 생각을 하면, 제가 옳다고 믿었던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했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제 판단을 더욱 의심하게 되고, 다른 분들의 판단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종파가 그러하듯 대개 사람들은 자기만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할 때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영국 개신교도인 스틸이 봉헌에서, 교황에게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각자 교리의 확실성을 믿음에 있어 유일한 차이는 전자가 전혀 오류가 없는 교회임에 반하여 후자는 결코 잘못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종파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잠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들려드릴까요? 여기 아주 현명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니와 말다툼을 하던 프랑스의 한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찌된 때문인지 모르겠어. 항상 옳은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말이야.’

    자기 자신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의장님, 저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 헌법안이 가진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헌법안에 찬동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연방정부는 우리에게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입니다….

    의장님, 저는 이보다 더 좋은 헌법을 기대하지도 않고 이것이 최선의 헌법이 아니라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이 헌법에 찬동합니다. 이 헌법안에서 잘못된 부분에 대해 품었던 제 생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버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국민의 일부인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을 위하여, 우리의 영향이 미치는 한 이 헌법을 지지함에 있어 충심으로 만장일치를 이루어 함께 행동하기를 희망합니다. 나아가서 이 헌법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 우리의 사유와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랍니다. 저의 뜻을 다시 요약해 말씀드리면, 한 가지 소망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이 헌법안에 반대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신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한번쯤 의심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만장일치 합의를 천명하는 뜻에서 이 문서에 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평민의 대변인,

    빅토르 미라보

      귀족 출신의 평민 대변자로 정계 진출

    프랑스혁명 초기의 중심 지도자이며, 가장 영향력 있었던 웅변가 미라보Victor Riquetti Marquis de Mirabeau. 그는 1749년 가티네의 비뇽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어학・수학・음악・미술 등에 재능을 보였으나 청년 시절에 방탕하여 아버지의 분노를 사서 여러 번 감금된 일도 있었다.

    미라보는 감옥에 있을 때의 사령관 부인 소피와 네덜란드로 달아나다가 3년 간 다시 하옥되고, 거기서 《소피에게 서한》을 써서 출판했다. 1784~88년엔 영국・독일・스웨덴・프랑스 등을 여행했으며 1786년부터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재정 위기였다.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여했는데 그 비용이 얼마나 막대했던지 빚을 갚을 방법이 없었다. 루이 16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프랑스 의회인 삼부회三部會를 소집해달라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삼부회는 제1신분 성직자, 제2신분 귀족, 제3신분 평민의 대표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로 왕이 주도하여 국민의 대표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자문기관이다. 1789년의 위대한 프랑스혁명은 바로 이 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라보는 원래 귀족이지만 영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평민의 대표로 참여했다. 가장 힘 없는 평민들의 입장을 대변한 미라보는 귀족의 특권을 공격하면서 평민의 대표권을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에는 자유로운 체제 아래 웅변술이 발달하여 능란한 웅변가 미라보는 삼부회의 지도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웅변가였는지에 대해 고향 친구이며 재무장관이었던 클라비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미라보는 비상한 웅변 능력, 타고난 힘, 절제된 감정의 소유자로 광범위한 지식과 예리한 지성, 앞을 내다보는 탁월한 정치 감각을 지녔다.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형식과 내용에서 놀라울 만큼 설득력을 지녔다.

    클라비에르의 말처럼 미라보는 말이 날카롭고, 형이상학적이었으며, 친절하고 신중한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항상 호감 가는 말씨와 목소리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연설은 매우 친근하게, 마치 일대일로 말하듯,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이야기하듯, 수수께끼를 설명하듯 했다. 그러나 즉석연설은 잘하지 못했으며, 화가 나 있거나 자존심이 상했을 때는 의회를 휘어잡을 정도의 감동적인 어조로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면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고, 미라보는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어 의회를 장악하곤 했다.

    1791년 국민의회 의장이 되고, 민권의 신장과 왕권의 존립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궁정에 매수되었음이 밝혀져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다. 무절제한 방탕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1791년 4월 2일 밤의 풍성한 파티 후, 미라보는 한창 나이 42세에 갑자기 사망했다.

      특권층은 사라져라, 인민은 영원하다

    다음은 미라보가 1789년 2월 3일, 프로방스 삼부회의에서 한 명연설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귀족들은 항상 인민의 편에 선 사람들을 가차없이 공격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다 귀족사회에 그런 친구가 등장하면 곧바로 그 사람을 매도하고, 그들이 이전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 강조하면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라쿠스도 그렇게 귀족들의 손에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죽도록 얻어맞은 그라쿠스는 하늘을 향해 흙을 뿌리며, 복수의 신들에게 이 광경을 기억해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흙으로부터 마리우스가 태어났습니다. 킴브리족을 물리쳤고, 로마에서 귀족의 독재를 근절한 것으로 유명한 마리우스 말입니다.

    여러분, 박수에 현혹되지 않고 그것을 가슴속에 간직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사람은 서로 단결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고, 평화를 통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집만 센 사람이 되기보다 신념이 굳은 사람이 되십시오. 감정이 앞서는 사람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방종한 사람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마음만 조급한 사람보다 민첩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려운 순간이 아니라면 멈추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의 생각은 무시한 채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억지로 균형을 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다른 무엇보다 여러분이 겁을 먹고 피했다는 비난을 하고 있는 그들이 결과를 더욱 두려워할 것입니다. 다양한 주장이 펼쳐지고 다양한 악행이 개선되며, 권리가 다시 수립될 삼부회의, 한마디로 군주 자신이 그것을 통해 프랑스가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그 삼부회의를 앞당기십시오.

    공직에 있는 제가 행여나 그릇된 행위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고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양심을 방패삼아 원칙적으로 무장한 저는 우주를 상대로도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저는 의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노력하여 여러분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단지 기도만으로 여러분을 돕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공허한 소란이나 분노에 찬 협박, 독기 넘치는 항의와 같은 그런 발작적인 편견으로 저를 위협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사람 중에서 처음으로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덜 긴박한 때에 국가의 중대사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힘차게 선언한 사람을, 과연 무엇으로 멈추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저는 자유와 헌법을 수호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입니다. 귀족이 아닌 인민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특권계층은 사라져야 하며, 더 이상 특권이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인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

      웅변과 문필에 뛰어났던 정치 이론가

    영국의 정치가, 웅변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그는 1729년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 입학하여 1748년에 문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 남아 미학 연구를 계속한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1750년 런던의 법학원 미들 템플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에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1755년부터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1756년에 첫 저술인 《자연적 사회의 옹호》를 출간했고 1757년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로 지식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758년에는 연감 《애뉴얼 레지스터》를 창간했다.

    버크의 정치적 이력은 1758년 이후 아일랜드 수상이 된 윌리엄 해밀턴의 비서로 시작되었다. 1765년 해밀턴과 결별하고 휘그당의 지도자로 자신의 첫 내각을 꾸리게 된 로킹엄 후작의 비서가 된다. 그리고 그는 1765년 12월 후작의 후원에 힘입어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766년에 의회에 들어가 의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당당하게 발표하였다.

    국왕 조지 3세와 ‘왕의 친구’라고 불린 보수주의자 당원들이 명예혁명 이후 제한된 권한을 되찾으려고 하는 중, 1770년에 <현대의 불만의 원인에 대한 고찰>에 의해 정당정치의 의의를 말하고 의회의 왕권으로부터의 독립, 의회 정보의 공개를 주장했다.

    그는 식민지 정책을 둘러싸고 통상정책을 중시해 ‘미국에 대한 과세’, ‘화해의 제안’을 적어 미국 식민지 주민과의 화해를 주장했다. 또 아일랜드의 가톨릭교도를 변호해 경제상 형벌상의 규제 완화를 호소했다. 게다가 동인도회사에 의한 부패한 인도 통치를 시정하기 위해 인도 법안의 기초자가 된다. 초대 인도 총독인 워렌 헤이스팅스에 대해서는 1773년에 불신을 표명해 후에는 탄핵운동을 시작해 1794년에 자신이 의원을 은퇴할 때까지 계속했다.

    그는 자기주장을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제시하는 한편, 웅변조의 화려함과 열기를 적절하게 혼합할 줄 아는 산문 작가이기도 하였다. 1797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정치적 이슈에 관한 유명한 연설과 저술을 남겼다. D. 브롬위치는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 저술가이며 가장 영감에 찬 웅변가’라는 찬사를 바쳤다.

    브리스톨 선거구에서 입후보했을 때는 근대 민주주의의 대표제에 있어서의 ‘국민 대표’의 관념으로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을 했다. 1784년에는 글래스고 대학교의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1794년에 의회를 물러나 비콘즈필드에서 은퇴생활을 하다가 1797년 68세로 영면했다.

      승리에는 불가피한 중상과 비방이 따릅니다

    다음은 1783년 12월 1일, 영국 하원에서 한 동인도회사 개혁안에 대한 지지 연설의 일부다.

    "저는 자신의 감정을 평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잠자코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퍼붓는 비난이 의회 자유를 무색케 할 만큼 비열하고 교양 없는 말뿐이라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가장 참혹하게 억압당한 최대 다수를 사상 최악의 독재에서 구하려는 임무가 그 일을 수행할 능력과 성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부여된 점, 위험을 감수하고 박애를 행하려는 훌륭한 법안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과 그것을 떠맡을 용기와 변호할 언변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된 점이야말로 이 시대를 규정지을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용기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기 때문에 나타나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가려는 길 위에 어떤 함정이 놓여 있는지 잘 압니다. 그것은 개인의 증오에서 비롯된 함정일 수도 있고, 의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책일 수도 있으며, 대중적 망상에서 기인한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평안과 안위와 이득과 권력을 잃더라도 심지어는 대중적 인기마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보다 앞선 모든 영웅이 걸었던 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동기를 제멋대로 상상하고, 그를 비방하고 매도합니다. 악담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영광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라는 것을 그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승리에는 불가피한 중상과 비방이 따른다는 것은, 고대 로마 시대에만 유효한 이치가 아닙니다. 그것이 세상 이치이자 사물의 본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만이 일시적 불명예의 부담에서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을 지탱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진정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아무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대개의 사람들이 품는 욕망과도 다른 것입니다. 그에게 시간을 줍시다. 그에게 자신의 박애를 실천할 기회를 줍시다.

    그는 진정 높은 곳에 올라 있으며, 전 인류의 눈이 그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오래 살든, 얼마나 많은 일을 하든, 현재 그가 있는 곳에서 더 높이 올라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할 기회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동인도회사 개혁안의 작성자에 대한 제 생각과 감정을 말했습니다. 그를 칭송한 또 다른 명예로운 동료의 말은 주도면밀하게 꾸며낸 칭찬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이 꾸며낸 칭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의 말이 면밀하게 만들어진 것은 맞습니다. 저의 말은 수많은 사색을 거쳐 20년 가까운 기간에 걸친 관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날까지 살아서, 오늘을 목격하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혁명의 펜,

    토머스 제퍼슨

      부유한 가정 출신의 위대한 대통령‘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자’, ‘철학적 대통령’, ‘자유의 사도’, ‘몬티첼로의 현자’ 등 등으로 불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년 미국 버지니아주 서부의 앨버말에서 대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네 살 때 부친이 갑작스레 사망해 5,000에이커(약 300만 평)의 토지와 수백 명의 노예를 거느린 부유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기숙학교에서 공부했고, 1764년 윌리엄앤드메리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767년 변호사가 되고, 정계로 진출하여 1769년 버지니아 식민지의회 하원의원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연설가는 아니었지만 손꼽히는 문장가였다. 1775년, 2차 대륙회의에 버지니아 주 대표로 참석한 제퍼슨은 1776년에 독립선언서 기초 위원 5인 가운데 한 명이 되어 그 유명한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는 18세기 계몽주의적 자유주의의 문맥에서 독립의 정당성의 원리를 찾았다.

    제퍼슨은 1779년 버지니아 주지사, 1784년 프랑스 주재공사를 역임하고 1789년 워싱턴 정권에서 국무장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정부제를 주장하는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과의 정책 대립으로 1793년 사임했다. 해밀턴이 주도하는 연방파聯邦派에 대항해 민주공화당을 결성하여 그 지도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민주당의 기원이다.

    1796년 존 애덤스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1800년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새 수도 워싱턴에서 취임식을 거행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재임 중 1803년 캐나다 국경에서 멕시코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매입하여 영토를 배가한 것은 제퍼슨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국제적으로는 나폴레옹전쟁에 의한 긴장에 휩쓸리지 않도록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유지하면서 중립을 지켰다.

    1804년 재선되고 1809년 4월에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 후 고향 버지니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저택 몬티첼로에 돌아가 1819년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해 민주적 교육의 보급에 노력했다. 철학, 자연과학, 건축학, 농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몬티첼로의 현자’로 불리었다.

    그가 세상을 뜬 것은 1826년 7월 4일,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이었다. 생전에 자신이 직접 정해놓았다는 묘비명 ‘미국 독립선언서와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기초자,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여기에 잠들다’라는 글귀가 유명하다.

    역사가들은 ‘혁명의 검’ 조지 워싱턴, ‘혁명의 혀’ 패트릭 헨리, ‘혁명의 펜’ 토머스 제퍼슨을 건국의 3대 위인으로 명명했으며, 토머스 제퍼슨은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정책

    다음은 1801년 3월 4일, 토머스 제퍼슨의 첫 대통령 취임 연설의 요지다.

    "친애하는 동료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이 나라의 행정 수반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충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중에는 공화당원이 있고 연방당원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합중국 체제가 해체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공화제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게 합시다.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합니다.

    공화제의 미국은 강력할 수가 없다고 걱정하는 일부 솔직한 미국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들 선량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10년 동안 우리를 강력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온 정부를 우리가 망치길 원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세계에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알아야 합니다. 3,000마일이나 되는 대양이 우리를 유럽의 독재자들과 전쟁으로부터 격리시켜주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유럽인들이 겪는 고통을 겪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태어날 수백 세대 어쩌면 수천 세대의 미국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미국의 어린이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어떤 아버지를 두었느냐가 아니라, 각자의 인격체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 개인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종교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연설에서 저는 정부가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정책이라고 믿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믿는 원칙들입니다.

    신앙, 정치관 또는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모든 나라와의 평화, 교역,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어떤 나라와도 전쟁을 위한 동맹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공화국의 최선의 수호자인 각 주 정부의 권리를 지원할 것입니다. 국내의 평화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우리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에 근거한 강력한 중앙 정부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저는 미 합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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