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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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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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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대중문화에 할 말 있습니다!


A보다 반음 낮은 곳에 숨어있는 대중문화의 모든 것.
‘에이플랫 시리즈’의 네 번째 책.


<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은 영화, 만화, 웹툰 등 다양한 대중문화 컨텐츠에 대해 저자가 ‘각 잡고 쓴’ 비평과 리뷰를 모은 책이다. 저자 손지상은 SF소설 <우주아이돌 배달작전>과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시리즈를 집필했고, 일본소설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을 번역하였으며, <크리틱M> <유어마나> 등의 매체에도 꾸준히 글을 기고하는 등 다채로운 영역에서 활동했다. 이 책은 SF작가로서의 과학적 사유가 담뿍 담긴 대중문화 보고서인 동시에 인상적인 대중문화 해설서다. 갖가지 대중문화에 진중하게 다가서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대중문화 이면에 숨은 진의는 물론 새로운 시각까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럼1] 손지상의 과학 환상곡은 영화 <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등에서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시간여행과 더불어 이러한 작품들이 자연히 빠질 수밖에 없는 ‘시간 모순’을 다룬다. 또한 인기 미드 <스타 트렉>의 전송장치로부터 원본과 복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상을 통해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지 고찰한다. 심리학자 밀그램의 유명한 실험을 통해서는 선한 개인들의 집합이라도 언제든 악해질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설명하며 이를 경계하고, 영화 <고지라>의 괴수들처럼 대개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된 돌연변이를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를 타자에 대한 관용의 당위성으로 수렴한다. 여기에 왜 사람들이 좀비영화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함의는 무엇인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칼럼2]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지구지부 서울파출소 정기보고서]는 활자를 없애려는 외계인의 음모와 이에 저항하는 지구인의 입장에 서서 이를 반박한다는 형식의 색다른 서평을 선보인다. 에드 맥베인의 소설 <살의의 쐐기>가 담보한 속도감 있는 추리극을 활자 보호의 근거로 삼기도 하고, 마르틴 후베르트의 <의식의 재발견>에서 설명하는 뇌과학을 활용해 ‘중2병’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코스믹 호러의 창시자라 불리는 H. P. 러브크래프트를 인터넷 우익 커뮤니티 ‘일베’의 집단의식과 대비하면서 신화적 상상력의 필요성을 진단한다.


[리뷰1] 웹툰 편에서는 웹툰 <1호선>에서 재난과 좀비라는 다분히 대중적 소재를 통해 구현한 전복적 상상력의 ‘한계’를 분석하고, 웹툰 <스페이스 차이나 드레스>로 ‘서비스 컷’의 연원을 따라가며 작품이 야기한 논란과 그 근원적 실패 사유를 제시한다. [리뷰2] 만화에서는 작가 아즈마 히데오의 개인적 일탈 과정이 오롯이 반영된 <알코올 병동: 실종일기 2>가 시쇼세츠(私小說) 형식에서 점점 더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성을 찾아내고, <나와 악마의 블루스> <효게모노>가 담아낸 예술의 정수를 탐구한다.


[비평1] 만화에 모노모스! 편은 잔혹한 폭력이 지배하는 사무라이 만화 <시구루이>의 파시즘적 성향에 집중하는가 하면, 구술문화적인 ‘장르’가 웹 채널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탐색하면서 창작자와 독자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새로운 기준점 마련에 주목한다. [비평2] 일본 대중문화에 모노모스!에서는 ‘야쿠자모노’ 집단의 역사적 흐름에서 ‘망가’와 ‘오와라이 게닌(코미디언)’의 상관관계를 소개하고, 나아가 만화 <멋지다 마사루>의 숨은 맥락까지 살펴본다. 이에 더해 일본의 ‘오와라이(코미디)’ 장르를 다각도로 파고들면서 일본 개그만화를 이해할 만한 단초를 마련하고, 일본의 전통 만담인 ‘라쿠고’와 ‘만자이’가 개그만화에 미친 영향을 짚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긴장과 완화를 이끌어내는 ‘오와라이 방정식’으로 개그만화의 서사 구조를 정립한다.


[비평3] 작가에게 모노모스!에서는 고다 요시이에의 SF만화 <기계 장치의 사랑>에서 앞세운 따스한 이야기 속에 웅크린 작가의 보수우익 성향, 만화 <누들누드>의 작가 양영순이 단편적 서사에 장점을 보이던 시절부터 웹툰 <덴마>에 이르는 발전 과정 등을 살펴본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에이플랫
Release dateNov 12, 2018
ISBN9791196520540
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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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틱지상주의 - 손 지상

    저자 소개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일한번역가, 작법 연구가.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좌우명은 ‘부자연주의’.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장르부문 연간 최우수상, 제1회 크리틱M 만화평론가 신인상 우수상 수상. 주요 저서는 국내 최초로 과학소설의 서브장르인 ‘와이드스크린 바로크’에 도전한 장편소설 〈우주아이돌 배달작전〉,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시리즈, 단편소설집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장편소설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연작단편집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것〉 등이 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

    목차

    책을 펴내며

    [칼럼1] 손지상의 과학 환상곡

    ▪ 시간여행,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 사람은 매너가 만드는가, 유전으로 타고나는가

    ▪ 복제인간, 왜 ‘짝퉁’을 남기고 ‘진퉁’을 없애야 할까?

    ▪ 당신은 ‘연’입니까, ‘꼭두각시’입니까?

    ▪ 메르스 아웃브레이크

    ▪ 〈인사이드 아웃〉,

    아이가 엄마 말 안 듣는 건 누구 탓일까?

    ▪ 우파 호러: ‘제5침공’은 우리 안에 있다

    ▪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한다?

    ▪ ‘밀그램 프로젝트’

    당신은 권력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인가

    ▪ 당신 역시 진화한 돌연변이다

    ▪ ‘서울역’에서 ‘부산행’을 타도 좀비를 피할 순 없다

    ▪ 영화의 환상을 만드는 스턴트맨과 CG의 과학

    ▪ 분신사바를 ‘과학하다’

    [칼럼2]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지구지부

    서울파출소 정기보고서

    ▪ 〈살의의 쐐기〉, ‘망각’되어선 안 될 인류의 유산

    ▪ 〈의식의 재발견〉, ‘중2병’ 생리적 근거를 파헤치다

    ▪ 〈자학의 시〉는 구원의 노래

    ▪ ‘일베충’을 구원할 러브크래프트의 신화적 상상력

    [리뷰1] 웹툰

    ▪ 〈1호선〉,전복하는 데 그친 아쉬움

    ▪ 〈스페이스 차이나 드레스〉,

    ‘패러디’와 ‘서비스 컷’은 속구가 아니다

    ▪ 〈혼자를 기르는 법〉은 왜 ‘혼자 사는 법’이 아닌가?

    [리뷰2] 만화

    ▪ 〈알코올 병동: 실종일기 2〉,

    오타쿠가 망가뜨린 천재의 재활

    ▪ 〈나와 악마의 블루스〉,

    악마의 장난으로 ‘몸’이 떨린다

    ▪ 〈효게모노〉,

    너는 이 하냐앙~이 이해가 안 간단 말이냐!

    [비평1] 만화에 모노모스!

    ▪ 〈시구루이〉, 파시즘을 극복하는 ‘이미지’의 힘

    ▪ 장르, 뜨겁게 달궜다 차갑게 식히기

    [비평2] 일본 대중문화에 모노모스!

    ▪ 코미디언, SMAP, 만화가가 모두 야쿠자?

    ▪ 〈멋지다 마사루〉는 오해받아 왔다

    : 일본의 ‘개그망가’와 ‘오와라이’의 관계

    ▪ 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1) 개그

    ▪ 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2) 시바이

    ▪ 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3) 와게

    ▪ 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4) 오와라이 웃음 방정식 =긴장×완화

    [비평3] 작가에게 모노모스!

    ▪ 〈기계 장치의 사랑〉, 고다 요시이에의 SF-힐링-프로파간다

    ▪ 양영순: 순정마초의 기하학적 고행길

    책을 펴내며

    폴 오스터는 〈빵굽는 타자기〉라는 자서전 혹은 자전적 소설을 썼다. 가난한 주머니와 붕 뜬 미래를 곱씹으며 닥치는 대로 번역을 하던 무명 시절을 ‘잘나가는 지금’ 회상하며 쓴 글이다. 잘 풀린 현재에 와 추억하자니 과거는 달콤쌉싸름하니 아련한 보랏빛 연기로 어른거린다. 나는 ‘아직 잘 나가지도 못하는 지금’ 몇 년 전 써온 칼럼을 모아, 소회를 더듬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과거를 곱씹어봤자, 폴 오스터 같은 보랏빛 연기는커녕 여전히 화생방 훈련 중이라는 쓰리고 따가운 현실만 재확인할 뿐이다. 방독면도 없이. 그런 와중에 쓴 글 치고는 제법 괜찮다. 적어도 내 눈에는. 촉박한 일정에 잘도 이렇게 많이 썼구나 싶다.

    한동안 칼럼 쓰는 일이 들어왔다. 3년 정도 드문드문 원고 의뢰가 들어왔다. 만화평론을 쓰기도 했고, 과학 기술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영화와 심리학을 결합한 글을 쓰기도 했다.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나 주짓수의 창시자 마에다 미츠요에 대해 쓰기도 했다. 심지어는 건강법도 썼다. 그렇게 120여 편 정도 되는 글이 쌓였다. 대부분 원고지 10매에서 20~30매 정도 되는 글이다. 그중 만화, 웹툰, 영화 관련 테마의 괜찮은 글을 뽑아 이곳에 모았다. 대부분의 칼럼은 만화비평매체인 〈크리틱M〉이나 〈유어마나〉에 기고한 글이다.

    ‘[칼럼1] 손지상의 과학 환상곡’은 〈KB국민은행〉의 ‘레인보우 인문학’이라는 코너에서 영화와 과학을 접목하여 소개한다는 컨셉으로 정기적으로 연재한 칼럼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일부 원고는 가필, 수정하였다. 웹 플랫폼의 특성상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 있었는데, 전부 삭제하였다.

    ‘[칼럼2] 범은하활자박멸운동위원회 지구지부 서울파출소 정기보고서’는 내가 정기적으로 서평을 연재할 때 했던 실험이다. 당시 나는 윌리엄 S. 버로스를 읽으면서 뉴웨이브라 불리는 내우주SF를 실험하고 있었다. 서평도 그냥 하는 것보다 이런 문체 실험을 하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실험해 보았다. 나중에 그만두었지만. 지금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하다만 원래 형태를 그대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 싶어 꾹 참고 올린다.

    내가 쓴 글은 대부분 소위 ‘각 잡고 쓴’ 글이다. 그저 내 느낌이나 감상을 늘어놓아 보았자 읽는 이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어지간하면 뒷받침하는 이론이나 사례가 있지는 않나, 나 말고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나, 조사한 다음 썼다. 타고난 입담이나 입심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고, 또 그런 문체를 사용한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최대한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득 담아서 몸통 박치기하듯 정면으로 달려들어 썼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글이 가타부타 시비를 따지는 내용이 된 경우도 왕왕 보인다. 일본에는 어지간하면 상대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 싶을 때 할 말이 있다하고 ‘각 잡고’ 상대를 불러 세워 이야기하는 행동을 ‘모노모스物申す’라고 한다. 이 글은 대부분 내가 특정 주제에 대해 ‘모노모스’하려고 쓴 글이다. 단일한 점과 선을 서로 이어 붙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스부호처럼, 서로 독립된 길고 짧은 조각글이 여러 곳에 따로따로 보낸 글이 하나의 커다란 메시지의 일부가 되었다. 그럴듯하니 나쁘지 않다. 돈돈쓰, 돈돈돈쓰. 돈돈돈, 쓰쓰쓰, 돈돈돈, 쓰쓰쓰…….

    모스 부호로 뭐라고 했냐면…… 각 잡고 한 마디 하겠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시길 기원하며.

    2018년 손지상

    시간여행,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2015년 3월 13일, 〈KB국민은행〉

    ‘과거’가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왔다. 그들은 타임머신이라도 탔는지 1990년대 유행가가 되어 돌아왔다. 복고라는 말 자체가 복고풍으로 느껴질 정도로 요즘 거리는 어느새 90년대 감성으로 충만하다. 카페에 앉아 S.E.S와 김건모, 김현정, 터보의 노래를 듣다 보면 30대는 질풍노도 같던 학생 시절이, 40대는 풋풋했던 대학생 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잠시 눈을 감으면 정말로 20년 전, 9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럴 때마다 정말로 타임머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2015년과 시간여행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타임머신이 나오는 영화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비교적 최신 영화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작품도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백 투 더 퓨처〉나 〈터미네이터〉 같은 90년대 영화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타임머신은 매우 미래지향적인 컨셉의 자동차 ‘드로리안’이다. 주인공은 드로리안을 타고 시속 88마일(141km/h)로 달려서 1편에서는 과거로, 2편에서는 미래로, 3편에서는 1편보다 더 과거인 서부개척시대로 향한다. 2편에서는 하늘을 나는 스케이트보드인 ‘호버보드’와 버튼만 누르면 크기가 발에 맞게 조정되는 나이키 운동화가 등장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백 투 더 퓨처 2〉에서 주인공은 미래를 여행하는데, 그 미래가 바로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2015년이다. 그 외에도 2015년은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세컨드 임팩트’라는 대재앙이 벌어져 세상이 반쯤 멸망한 해이며, 〈20세기 소년〉에서는 인류의 절반 이상이 학살당하는 해이기도 하다.

    과거를 바꾸면 내가 사라진다?

    시간여행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하나 있다. 바로 ‘타임 패러독스’다. 〈백 투 더 퓨처〉의 초점은 2015년 미래(우리에게는 현재지만)의 신기한 물건보다 시간여행 때문에 생기는 ‘타임 패러독스’ 해결에 맞춰져 있다. 이 타임 패러독스는 쉽게 말해 시간여행 때문에 발생하는 인과관계의 모순을 의미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20살인 당신이 타임머신을 이용해 5년 전 과거로 갔다가 실수로 15살인 당신을 죽이고 말았다. 그럼 15살에 죽었을 터인 20살의 당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백 투 더 퓨처〉에서 타임 패러독스는 심각한 문제다. 주인공 마티는 1985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5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하필이면 젊은 날의 어머니가 아들인 자신에게 반하고 만다. 그 광경을 보고 뒤에서 질투에 치를 떠는 이가 있으니, 바로 자신의 친아버지다! ‘존재 원인’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맺어져야 자신이 태어나는데, 어머니가 자기한테 반해버린 탓에 부모님이 서로 맺어지지 않을 위기에 처한 것.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맺어지지 않으면 이들의 아들이자 1955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1985년 현재의 마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맺어져서 태어난 1985년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맺어지지 않은 1955년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과거를 바꾸면 시간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데, 주인공은 어떻게 과거를 바꾼 것일까?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도 타임 패러독스는 중대한 문제로 등장한다. 2029년의 미래에 기계 측은 인류저항군 지도자인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해 살인기계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낸다. 처녀 시절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존 코너도 부하인 카일 리스를 같은 과거로 보낸다. 그런데 놀랍게도 1984년의 사라 코너는 2029년에서 온 카일 리스와 사랑에 빠져 존 코너를 낳는다. 기계 측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결과적으로는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가 만나지 못했고, 따라서 눈엣가시인 존 코너도 안 태어났을 테니 마음 놓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 텐데, 사서 고생을 한 꼴이다. 이러한 모순이 바로 타임 패러독스다(실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를 보낸 기계 측이 스스로를 막기 위해서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의해 로봇(인공지능)은 자살할 수 없다. 기계 측의 ‘두뇌’ 스카이넷이 자기 자신을 막기 위해서 가장 근접한 경우의 수가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는 것이었다. 존 코너를 탄생시키기 위해!).

    미래의 장미와 과거의 장미가 공존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고전으로 추앙받는 H. G.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의 마지막 장면으로 타임 패러독스의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타임머신〉의 대단원에서 주인공은 미래에 다녀왔다는 증거로 미래의 장미꽃을 들고 돌아온다. 이 장면은 유명한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자신을 매료시킨 장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얼핏 생각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보르헤스는 매우 신비로운 장면이라고 평한 것이다. 그 이유는 꽃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었다. 미래의 장미꽃을 이룰 분자가 지금은 다른 여러 곳에 퍼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래의 장미꽃을 현재로 가져오는 순간, 똑같은 분자가 같은 시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게 된다. 즉, 이는 패러독스다. 극단적인 예로 지금 당신이 들이마시는 숨 속에는 과거에 징기스칸이 내뱉었던 날숨의 분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담긴 비커에 잉크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보자. 잉크는 처음에는 문어발처럼 물과 섞이다가 점점 균일하게 퍼진다. 물과 잉크는 이윽고 완전히 섞여서 물의 색이 변하고 뭐가 물이고 잉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잉크 분자가 물 분자와 균일하게 섞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징기스칸이 생전에 내뱉었던 날숨의 분자도 고르게 퍼져 나갔을 것이다. 그중 하나 정도는 당신이 들이마셨다 뱉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티븐 호킹의 외로운 파티

    타임 패러독스의 원인은 시간여행이다. 어떤 과학소설에서는 같은 시공간에 같은 존재가 있으면 우주가 멸망해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일 그렇다면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가는 순간, 이미 다른 시간대의 같은 분자가 서로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기에 우주가 멸망해버리고 만다. 어쩌면 이 때문에 아직 시간여행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젊었을 적에 시간여행자를 만나고자 모종의 실험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파티를 열고 그다음 날 어제 날짜가 찍힌 파티 초대장을 나눠주었다. 세계적 석학인 자신이 여는 파티라면 시간여행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참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파티 당일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외롭게 홀로 파티를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미래 시간여행자에게는 과거의 인간과 절대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율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타키온 입자처럼 광속을 뛰어넘는 입자를 찾아내면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시간여행이란 조금 다른 의미다. 수학이 발달하면서 물리학, 심리학, 컴퓨터 공학 등 수많은 분야를 수학으로 서로 통섭하여 연구하는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여기에는 최신의 분석철학도 포함된다. 사실상 수학이나 다름없는 영역으로 발전한 분석철학 덕분에 워드프로세서에서 한자 변환을 하거나, 시리Siri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석철학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바로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석철학에서는 반대로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고 본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시간을 경우의 수, 즉 확률이라고 가정하자. 먼 미래의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미래에서 현재로 다가올수록 경우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현재를 지나 과거가 되면,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경우의 수는 0에 수렴한다. 따라서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당신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준다면 당신은 극한의 오지를 제외하고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다. 경우의 수가 세상의 거의 모든 지명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이틀로 줄여버리면 일단 티베트와 라틴아메리카의 오지, 아프리카는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 경우의 수가 상당히 줄었다. 시간을 다시 2시간으로 한정할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갈 수 있는 곳을 상당수 제외해야 한다. 시간을 1분, 혹은 10초로 줄이면? 목적지는 당신이 직접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극히 한정될 것이다.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는 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할까? 이게 우리 삶에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는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미래에 목표를 세우고 현재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힘인, 이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힘은 생명을 더욱 더 복잡하고 세련된 형태로 진화시켰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시간의 의미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래의 목표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과거의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에는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미래의 목표를 바꾸고 나니 오히려 과거의 일이 목표에 플러스가 되는 일로 뒤바뀌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순간 적어도 당신 자신의 과거는 바뀌게 된다.

    시간여행이란, 기계를 이용해 과거나 미래의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신과 함께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모순처럼 보이는 부조리한 일이 성공한 미래에 되돌아보면 마치 운명처럼 필연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당신의 과거를 바로잡을 미래는 바로 지금이다.

    사람은 매너가 만드는가, 유전으로 타고나는가

    2015년 4월 8일, 〈KB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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