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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삶의 환희를 만나는 4단계 전략
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삶의 환희를 만나는 4단계 전략
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삶의 환희를 만나는 4단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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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삶의 환희를 만나는 4단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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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국내 죽음학의 영역을 개척한

최준식 교수의 40년 연구 갈무리

인간, 죽음, 종교를 넘나드는 독특한 철학 강의



우리는 누구나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가야 한다. 죽음이라는 근본적 허무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 불안감이 아니라 삶의 환희를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국내 죽음학계의 선구자이자 종교학 권위자인 저자는 죽음학과 종교학, 심리학을 넘나드는 통합적 관점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참되고 생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자의식을 초월한 깨달음의 상태로 도약해야 한다. 이것은 헉슬리가 말한 영원철학(perennial philosophy)에,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자아실현을 넘어선 욕구에 해당하는 새로운 의식이다. 저자는 인간 의식과 종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그 깨달음의 상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파스타 레시피처럼 단계적으로 제시하면서, 철학적 개념과 심오한 초월의 세계를 맛깔스런 인문학적 언어로 풀어낸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 가까이 종교학과 죽음학 등을 넘나들며 수행한 연구를 대중을 위해 갈무리한 종합 철학 선물 세트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Jun 24, 2019
ISBN9791189809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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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 최준식

    최준식 교수의

    철학 파스타

    1판1쇄 발행 2019년 6월 7일

    지은이 최준식

    펴낸이 김형근

    펴낸곳 서울셀렉션㈜

    편   집 문화주

    디자인 홍성욱, 윤지은

    마케팅 김종현, 황순애

    등   록 2003년 1월 28일(제1-3169호)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6 출판문화회관 지하 1층 (우110-190)

    편집부 전화 02-734-9567 팩스 02-734-9562

    영업부 전화 02-734-9565 팩스 02-734-9563

    홈페이지 www.seoulselection.com

    ⓒ 2019 최준식

    ISBN 979-11-89809-07-2


    본 전자책은 빌드북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주소│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6길 39 명성빌딩 401호

    대표전화│070-7848-9387

    대표팩스│070-7848-9388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시에는 형사/민사상의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본 컨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회의의 KoPub서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삶은 망망한 고해苦海와 같아서 우리는 누구나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그곳을 헤엄쳐가야 한다. 이러한 생의 한가운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고통을 벗어난 다른 차원의 삶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러한 기대를 품은 사람,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철학적 조언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난 삶을 기대하며 종교를 찾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종교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데, 현실의 종교들은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교의 본령이 퇴색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종교가 잃어버린 철학을 거울삼아 종교의 본령을 되짚어보고, 인간과 삶의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그런 다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2005년에 출간한 졸저 《종교를 넘어선 종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번 책에서는 종교의 핵심을 영원철학perennial philosophy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각 세계종교들의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가 달라도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의 일치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이들의 주장이다. 그 핵심은 간단한데, 우리 인간의 의식이 세 단계를 거쳐 진화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의식이 없는 전인격적 단계에 있다가 자의식이 나타나면서 인격적 단계로 진화한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단계에서 인간은 자의식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경험하며 허무하게 살아간다.

    인간 의식의 진화가 인격적 단계에서 끝난다면 인간은 가련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고통과 허무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교가 등장한다. 종교, 특히 영원철학은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구해내는 구조선 역할을 자청하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의 의식은 한 번 더 진화한다. 자의식을 초월하는 초인격적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단계는 보통 불이론不二論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불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나와 신(혹은 우주)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원론적 영역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나누기 때문에 하나일 때는 발생하지 않는 온갖 고통이 생겨난다. 고통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본문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고심하다 우여곡절 끝에 ‘철학 파스타’라는 제목을 얻게 되었다. 파스타는 면과 소스, 여러 재료를 뒤섞어 만든 음식인데, 이 책에도 그와 비슷하게 여러 요소가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그 문제가 해결된 상태, 그 상태에 이르는 길에 관한 단계적 설명을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에 빗댄다면, 독자들이 그 설명을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모든 요리가 그렇겠지만,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날것의 재료를 손질해 익히고, 그것들을 적절히 배합해 최상의 맛을 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파스타를 요리하듯 영원철학을 탐구하고 실천해본다면, 적어도 파스타 한 접시만큼의 인생의 양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을 가능한 한 쉬운 말로 쓰려 노력했다. 특히 절대 실재에 대해 설명할 때 그런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절대 실재는 초인격적 단계의 상태며, 삶의 환희를 만나는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신경을 썼는데, 부디 필자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빛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출간에 힘써준 서울셀렉션 김형근 대표와 편집진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원고를 적절하게 가공해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 데는 출판사의 공이 지대하다. 필자와 출판사의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9년 봄

    지은이 삼가 씀

    파스타 한 접시에 삶의 진리를 담을 수는 없을까? 진리가 담긴 곳에서 우리는 삶의 환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 한번 만들어보자. 진리의 파스타를. 이 파스타 요리의 첫 단계는 ‘나’라는 반죽이다. 나는 단단하게 뭉친 자의식 덩어리다. 자의식 때문에 나는 인간이며, 나의 생은 고통스럽다.

    자의식

    인간은 동물과 다른 독특한 인식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이다. 인간만이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 의식 덕분에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존재’와 ‘비존재’ 혹은 ‘있다’와 ‘없다’가 병존하는 상대적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의 의식은 이원론dualism 구조를 갖게 된다. 의식이 이렇게 구조화되면서부터 인간은 모든 것을 구분하고 비교해서 본다. 내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의식이 둘로 나뉘었기 때문에 타자 혹은 외계를 인식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내가 내 의식을 둘로 나누었듯 그것을 바탕으로 나와 나의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구별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곧 나의 자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의식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 의식은 자기를 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만이 자신의 의식을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 나눌 수 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주체적 나subject-I’와 ‘객체적 나object-I’로 자신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히 어려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나는 내가 너무 싫다’와 같은 표현을 보자. 여기서 나는 ‘싫어하는 나’와 ‘싫어함을 당하는 나’, 이렇게 둘로 나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나를 대상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주체와 객체로 갈린 것이다.

    의식의 대상화 작용은 생각을 탄생시킨다.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내 생각을 대상화하는 일이다. 한편에는 생각하는 주체가, 다른 한편에는 대상화된 내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의식이 ‘생각하는 나’와 ‘생각되는 나’로 이원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은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다. 아니 생각 자체가 언어라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면 그 생각을 개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개념은 항상 언어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언어를 가지고 개념을 떠올려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어라는 도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언어는 생각을 ‘개념화’하는 매개며, 인간만이 언어를 매개로 무엇인가를 개념화할 수 있다.

    인간은 개념화라는 능력을 통해 문화라는 독특한 사회 현상을 만들어냈다. 문화는 개념화 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에 개념을 덧입혀 새롭게 주조한 것이 문화다. 예를 들어 통나무라는 자연물에 조각가가 자신의 개념을 투영해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예술품이라는 문화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사람과 민족에 따라 다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의식의 대상화 작용과 관련된 극적인 예로 자살을 들 수 있다. 자살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살이란 아주 쉽게 말하면 주체적 자아가 대상화된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 자아가 둘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보는 나가 보이는 나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객체화할 수 없으면 자신을 죽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동물은 스스로를 객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살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혹자는 동물도 자살을 한다고 주장하며 해변에 와서 죽은 고래 무리를 예로 든다. 해외 뉴스를 보면 가끔 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해변에 와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래들이 머리가 좋아 자살을 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상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먼저 고래는 왜 하필 무리지어 왔을까? 이러한 집단 자살은 사람도 거의 하지 않는 일이다. 자살은 대부분 혼자 하는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혼자 조용히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래에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 고래들 중 특정 고래가 인간처럼 자신의 처지를 크게 비관한 나머지 홀로 해변에 와서 자살을 택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설령 그 고래가 자살을 하고 싶다면 혼자 바다 속에서 하면 되지 굳이 해변으로 올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여러 마리가 함께 자살했다는 점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고래가 혼자 죽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무리지어 죽을 수 있을까? 이 현상은 다르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 동물학자가 아니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죽은 무리의 리더 고래가 아마 무엇인가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해변으로 왔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고래들은 영문도 모르고 리더를 따라왔다가 엉겁결에 죽게 된 것이 아닐까?

    생의 대전환_

    두 살 무렵의 변화

    자의식의 탄생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없는 상태는 진정한 인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자의식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일반적 지각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발달심리학자들이 면밀히 연구한 결과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태어난 후 두 해 정도는 자의식이 없는 채로 산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자의식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그때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자의식은 언제 발현될까? 정확한 시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말이 터지는 즈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언어와 자의식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 터진다는 사실 자체를 자의식이 생겨났다는 징표로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현상은 보통 두 살을 전후한 시기에 나타난다. 이것은 엄청난 도약이다. 동물적 상태에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인간은 너무 어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여기 있고 엄마가 저기 있고 세상이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느닷없이 알게 된다. 내가 있다는 것을 지각하는 일은 나와 다른 사람 혹은 사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와 타인을, 또 나와 외계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그럴 수 없었다. 자의식이 생기기 전에는 그저 동물처럼 무엇을 느끼는 주체만 있었다. 감각만 있었지 지각하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자의식이 막 생길 때 아이는 매우 이상한 체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이 느닷없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중에 면밀하게 살펴보겠지만 이 사건을 두고 기독교의 아담과 이브 신화에서는 눈이 밝아졌다라고 표현했다.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외부 세계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으니 그렇게 표현했을 법하다. 그때 우리는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를 표현하려면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당시는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니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잘 묘사하려면 언어적 기술이 필요한데 그 시기에 이러한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사건 묘사는 성인이 된 다음에나 가능할 텐데,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 사건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겨우 두 살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대부분 이 엄청난 사건을 모른 채 살아가는데, 다행히 자의식이 발현되기 전 상태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통해 그 무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자의식 이전 상태의 인간은 인식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동물처럼 그저 욕망만 갖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발달심리학자 피아제Jean Piaget는 이 시기의 자아를 아예 ‘물질적 상태’라 규정했다. 지각하는 능력 없이 생존 욕구만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상태를 물질에 비유하다니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을 좀 더 순화시켜 ‘본능만 작동하는 상태’라 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피아제보다는 매슬로Abraham H. Maslow의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는 이 상태를 단순하게 ‘생리적 단계’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공연히 복잡한 이론을 만들어 우리를 많이 괴롭혔던 신프로이트 학파의 에릭슨Erik H. Erikson은 ‘구강-감각 단계’라는 복잡한 언어로 이 상태를 묘사했다. 프로이트 계승자답게 구강 단계와 같은 용어를 사용했는데 감각이라는 단어를 함께 썼으니 문제는 없겠다. 그러나 이 시기의 특징이 구강에만 한정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¹

    1 많은 학자들이 이 발달 단계를 연구해 여러 이론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켄 윌버의 《모든 것의 역사》 (조효남 역, 김영사, 2015) 246쪽을 중심으로 참고하기 바란다. 더 견고한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은 윌버의 Sex, Ecology, Spirituality - The Spirit of Evolution (Shambhala Publications, 1995) 을 보라. 그 밖에 메리 메도우 등이 쓴 《종교심리학》 (최준식 역, 민족사, 1992) 1권 4장에 이 발달 단계 모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

    앞서 우리는 자의식이 발현되는 시기를 대체로 말문이 터지는 시기로 보았다. 그러나 이때는 언어를 가지고 고도의 개념화 작업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그저 짧은 문장이나 단어 몇 개만 옹알거릴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기에게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현상이 나타나야 아기에게 자의식이 생겼다고 볼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러한 현상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아기가 ‘아니no’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다. 아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는 이제 자의식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니’라는 말은 부정의 표현인데 그것은 긍정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아기가 이 단어를 말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원론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원론의 세계는 자의식이 있을 때만 진입할 수 있는 곳이다. 동물은 긍정과 부정을 감각으로만 느끼지 그것을 지각해 ‘네’ 혹은 ‘아니오’라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아기는 아마 이때부터 엄마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할 것이다. 부정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엄마를 거역하고 떼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때를 일컬어 ‘가증스러운 두 살terrible two’이라고 한다. 천진난만했던 아기가 갑자기 말을 안 듣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하니 너무 이상해 ‘가증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사춘기 때도 비슷한 현상을 겪는다. 이때도 그 전까지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공연히 반항적 태도를 보이고 몽니를 부린다. 하지만 그때를 ‘가증스럽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많이 변했다고만 할 뿐이다. 그에 비해 두 살 즈음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는 한 인간이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에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겪으려면 당사자가 반드시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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