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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미식가 11권
던전 미식가 11권
던전 미식가 11권
Ebook276 pages2 hours

던전 미식가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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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눈 떠보니 내가 모험가를 대학살한 괴물? 용사를 죽였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가 너무나 고파. 일단은 밥.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Nov 16, 2020
ISBN9791132778516
던전 미식가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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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미식가 11권 - 대대원

    Recipe 1. 예티 갈비 (2)

    Guten Tag.

    Hello.

    Xin chào.

    您好!

    ……?!!

    연이어 귓가에 여러 나라의 언어 같은 것이 쏟아진다.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니 목소리의 위치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

    나는 외국어를 많이 알지 못하는데 대체 왜일까.

    난 허공에서 들리는 단어들이 전부 같은 뜻이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의 뜻만은 직감적으로 머릿속에 느껴지는 게 아닌가.

    …….

    하나같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라니.

    정말 기이한 현상이지만 누군가가 인사하면 대답하라고 지난 15년간 배웠으니까.

    안녕하세요……? 어?!

    난 허공에 어색하게 인사를 되돌려 줬다.

    그런데 인사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찬물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화들짝 깼다.

    어…….

    아까까지는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손끝과 발끝의 감각도 아주 확실하고 머리털 하나하나 쭈뼛 서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새하얗고 생소한 공간이 꿈이 아님을 억지로 이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

    당혹스러웠다.

    지금까지의 무딘 감각과는 달리 이젠 온몸의 땀구멍에서 식은땀이라도 나올 것 같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여기는 어딘데?

    ……!

    하지만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이 새하얀 공간에 드디어 첫 변화가 일어났다.

    ‘아까 저런 거 없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뭔가 새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자 내가 저녁 외식을 위해 앉았던 것과 비슷한 테이블이 떡하니 놓여있었다.

    저 하얀 식탁보, 분명 기억이 난다.

    ……!

    안녕하세요.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이거였다.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 떴더니 이번에는 테이블에 의자 두 개가 생기고, 다시 한번 눈을 깜빡이자 맞은편의 의자에 무언가가 앉아있던 것이다.

    ‘설마…….’

    처음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빛무리가 있었다.

    그것에 눈가를 찌푸리니 빛무리가 내가 아는 예수의 모습으로, 또는 성모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같은 모습도 되었다.

    그리고 끝으로 여우와 나비 같은 모습을 깜빡거리며 덧입었다.

    ……?

    그런데 끝으로 그것은 예스러운 복식을 입은 성인 인간의 형태로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머리카락 대신 어째서 포도 넝쿨 같은 걸 늘어트리고 있을까 생각할 즈음엔 뒤늦게 인물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

    깜빡깜빡.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차림의 인간을 바라보니 그것이 마지막으로 형태를 바꾼다.

    ‘스피커.’

    내 방의 컴퓨터 스피커로 쓰이는 것이 덜렁, 테이블 위에 놓여있을 뿐 지금껏 봐왔던 것들은 더 이상 의자에 온데간데없었다.

    어? 의자 또한 개수가 둘에서 하나로 줄어있다.

    ‘사람 모양으로 대화하면 내가 낯을 가리니까 이렇게 돼준 거구나.’

    어째서 나는 그것의 형태가 변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왠지 이건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 현상 같았고, 당연했고, 그것의 행동이 뜻하는 바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세요.

    ……? 네.

    일단 하라니 앉긴 했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던 도중 자기도 모르게 한 가지 질문을 해버렸다.

    혹시 하나님이세요……?

    스피커를 향해 혹시 당신이 신이냐 물은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나는 은연중에 상대가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아니.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당신의 부모님이 모시던 신이냐 묻는다면 아닙니다.

    ―나는 온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아니고 나를 창조하신 더 높은 지위의 존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능성이 있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반말과 존댓말을 조금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깔끔한 음성,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그것을 가만히 듣는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죽음은 기억나나요?

    네?

    ―당신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온 말을 순간 이해 못 한 나는 갈색의 나무 스피커를 향해 되물었다가 덜컥 굳었다.

    죽어?

    깜빡했던 물건의 위치를 되뇌는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떠올려 냈다.

    아…….

    매캐한 연기, 활활 타오르는 매서운 불, 뜨거운 손잡이…….

    …….

    그 외에도 모든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와 가족의 죽음을 기억해 낸 것이다.

    ‘마지막에 숨이 좀 막히긴 했는데, 파노라마처럼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는 건 거짓말이구나.’

    처음에는 죽고 나서도 의식이 남아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사후 세계라는 거 진짜 있던 걸까? 속없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 그게… 진짜 다 끝이에요?

    그러나 몇 분 뒤, 홀로 자신과 가족의 죽음을 곱씹다가 갑자기 모든 게 억울하고 무서워져서 엉엉 울었다.

    새하얀 공간에서 그렇게 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쳤다.

    ‘그동안 괜히 성실하게 살았어.’

    ‘부모님도 돌아가셨어.’

    ‘어른 되면 염색해 보고 싶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못 해?’

    ‘엄마…….’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공포감과 슬픔의 눈물이 자꾸만 나온다.

    하지만 새하얗고 끝없는 무한의 공간은 시간마저 그러한지 내가 아무리 울며 슬퍼해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벌써 하루는 넘게 괴로워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정이 됐을 즈음엔 내 앞에 스피커가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나는 한참 지나서야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계속해서 울고 몸부림치고 후회하는 걸 반복했는데도 눈가가 아리거나 짓무른 고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죽었는데 이러고 있어서 뭐 하나.’

    나는 체념은 빠른 편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일을 계속 고통스러워해 봐야 의미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으니까.

    먼 훗날, 갑자기 사무치듯 슬퍼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제법 괜찮아졌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잠시 뒤 울음을 그치게 된 내게 스피커에서 상냥한 어조의 말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사후 세계를 믿나요?

    믿진 않았는데, 지금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세계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그 말에 머릿속으로 고민한다.

    ‘그럼 정말 좋겠지. 항상 바라던 일이잖아.’

    그러자 허공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당신의 영혼이 저를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부디 제 세계에서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육신으로 살아가 주세요.

    어.

    나는 지금 분명 입으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린 긍정적인 생각이 상대에겐 훤히 들리는 모양이다.

    스피커 속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읽고 제안했으니 말이다.

    뭘 도와요?

    나는 사람의 기억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윤회란 것을 했다 한들 자기가 자신이었다는 기억을 잃는다면 그게 과연 동일한 인물인가?

    그래서 막연히 죽고 나면 살아온 기억을 잃을까 싶어 사후의 일을 무서워해 보곤 했다.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따라서 기억을 남기고 전생하게 해준다는 말은 덥석 잡고 싶을 만큼 환영인데, 그래도 이걸 승낙하기 전에 왜 내게 제안을 하는지 묻고팠다.

    단지 궁금해서였다.

    ―저를 창조한 분은 지구라는 곳에 사는 당신들을 매우 아낍니다.

    ―그래서 작은 세계를 하나 주며 저에게 역할을 맡겼습니다.

    ―이 시험 지구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인류가 가장 ‘행복’할지 찾아내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낡은 우드 스피커 사이로 나오는 목소리는 이윽고 내게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모든 인간이 영생하고 아프지 않은 세상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평생 실존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게다가 먹지 않아도 죽지 않으니 하나둘 일생의 목표를 잃고 무료해져 오히려 모두가 기쁨과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다음엔 그들에게 자식을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번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영생과 개체 수의 증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죽음과 병을 돌려줬습니다.

    드르륵.

    스피커의 볼륨 조절 버튼이 살짝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과 병을 가지게 된 인류는 처음엔 영생하는 인류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들은 점차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건강함에 기뻐하며 보다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냈습니다.

    ―1,000만 년 동안 인류가 살아간다고 했을 때 그들이 겪는 행복의 총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론 당신들이 살고 있는 본래의 지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조성해 봤자 같은 끝에 도달하고야 맙니다.

    …끝?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 끝이란 게 있었나. 아, 맞다. 그런 말이 있었지. 엄청난 미래에 태양의 수명이 다하면 지구도 같이 죽던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예측한 그 이유가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당신의 행성은 멸망하게 됩니다. 인류의 수와 문명이 발전하며 몇 번을 관측해도 비슷한 시기에 생명이 전부 죽었습니다.

    ―생명을 저희가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지속 가능한 세계를 지향합니다. 적어도 태양이 죽는 시간까지 누군가의 손이 닿지 않아도 인류와 많은 종류의 생명이 대를 이으며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 하얀 공간에 나를 불러낸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의도는 이러했다.

    우리 인류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건가.

    그런 방법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다던 작은 시험 지구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던 거고?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한 세상도 만들어 봤어요.

    ―인간의 수명이 모두 똑같은 세상도.

    ―빈부 격차가 없는 조건이나 천재가 흔한 조건도.

    ―혹은 인류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나는 상황도 만들어 봤지만.

    무엇 하나 ‘진짜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가지는 행복감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원본 지구의 인류 양식을 옮겨 심었다.

    빈부 격차가 있고, 수명이 모두 다르고, 재능이 다양한 인류를 선택한 전지전능한 그것은 거기에 아주 ‘작은’ 변경 사항을 포함한 현재의 형태에 정착했다고 한다.

    ‘작은 변경……?’

    그게 대체 뭘까.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시간축 저편의 일입니다.

    ―나는 이미 주어진 문제를 해결했고 지금은 마지막 확인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

    이어진 말은 제법 흥미로운 것이기에 나는 금방 관심을 돌렸다.

    그것의 목소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를 내면서도 매우 편안하게 느껴져서 속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잊고 집중할 수 있었다.

    ―인류가 가장 행복해할 만한 사회 구성은 다양성이 있는 원본 지구가 최적의 조건입니다.

    ―따라서 나는 인류의 수가 범람하고, 문명이 고도로 발달해 세계를 죽이는 단점만을 막으면 됐습니다.

    ―해결법은 간단합니다. 바벨탑을 무너트리는 겁니다.

    바벨탑.

    그 말을 듣고 나는 원래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가슴속으로 어렴풋이 받아들였다.

    ‘인류의 수를 주기적으로 줄이고, 그때 문명도 같이 쇠퇴시킬 방법이 있던 거구나.’

    어찌 됐든 그들의 목적은 지속 가능한 정원이니까 중간마다 가지를 치는 정도의 느낌으로 수를 줄여서라도 오래 유지하면 그만인 거겠지.

    아픔은 잠깐이지만 나무의 싱그러움은 오래갈 터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해 낸 방안은 바로… 일정 주기마다 인류의 수를 크게 줄이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었죠. 그건 바로 마왕이라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꽤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왕’과 ‘던전’을 함께 만들어 ‘던전’으로 힘을 기른 인류가 청소 때 적정한 저항을 하고,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인구와 문명이 남을 때 마왕이 쓰러져야 하는 모델이지만.

    ―던전이란 것만 덜컥 만들어 놓으니 위험한 괴물이 나오는 장소의 입구를 봉할 뿐, 인류 대부분이 단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뭐지?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데 묘한 익숙함이 감돈다.

    내가 평소 즐기는 판타지 설정의 게임에서 종종 보이는 단어들이어서인가?

    ―그래서 다음엔 던전 안에 보물을 숨겨두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필요한 수준까지 단련하지 못했고, 결국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자신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넣어둔 겁니다.

    힘이 숫자로 표시되고 그런 거요?

    ―그렇게 하는 편이 모두가 의욕을 갖고 성취감이 높아져서 행복해했습니다.

    게임 같네요.

    ―좋은 문화죠. 그것의 기작을 집어넣은 세계는 원본보다 명확한 행복이 발생했습니다.

    더불어 과학의 발전을 더디게 하기 위해 마법 또한 쓸 수 있게 했다고 그것이 말했다.

    마법의 개념을 넣으니 환경 파괴가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물론 그 어떤 대체 기술을 추가해도 최후엔 황폐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직 작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는 생물의 자유 의지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간혹 세계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는 개체가 태어납니다.

    ―그럼 ‘조절’의 시기가 빨라지거나, 너무 늦어지거나…….

    ―그 외에도 자연스럽게 개체 수를 조절했을 때 적절한 인류가 살아남지 못해 특정 문화의 발전이 너무 느려져도 문제가 됩니다…….

    이쯤 되니 나는 어째서 완벽에 가까운 세계에 굳이 본래 지구의 영혼을 불러들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오차 범위를 줄이는 역할로 원본 세계의 영혼을 초대합니다.

    ―지금은 100년에 한 명 정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만간 제 별은 원래 세계의 조정자가 필요치 않게 될 겁니다. 완벽해지고 있으니까.

    나는 살짝 틀어진 이쪽 세계의 톱니를 바로 맞추기 위해 쓰이는 거구나.

    제가 가게 되면 뭘 해야 하나요?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니 뭐라도 할 수 있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 질문에 스피커에서 이러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마음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당신의 모든 행위가 이미 조절에 도움 될 예정입니다.

    ‘딱히 뭘 시키는 건 아닌 건가?’

    그저 행복하게만 살아가면…….

    그야말로 제안을 받는 입장에선 나쁠 것 하나 없는 이야기다.

    …….

    그러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전지전능한 무언가에게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눈을 다시 깜빡할 무렵에는 스피커는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인상 깊은 모습의 어른이 앉아있었다.

    ‘식물 덩굴 머리카락.’

    그리고 잠시 뒤, 상대의 특징을 눈으로 훑던 내게 제법 두툼한 구슬 같은 것이 내밀어졌다.

    그럼 이것을 받는 것으로 저를 돕겠다 약속하는 겁니다. 제 세계에서 한 번의 삶을 사는 거예요.

    …….

    그렇지만 막상 선택의 때가 되니 망설여져서 나무 덩굴이 마구 얽혀있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나는 몇 마디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를 고르신 거예요?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가족과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도 아빠도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슬플 수밖에 없었다.

    그것에 대해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제가 영혼을 고르는 기준은 첫째, 어린 나이에 죽었을 것. 둘째, 그럼에도 자살이 사인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보통 살아가는 것에 지쳐있으니 쉬게 해주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때에 따라 적합한 흥미와 지식을 지닌 조정자를 부르는 것.

    하지만 그 대답을 들으니 오히려 의문점 하나가 생긴다.

    일을 시킬 거라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어른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편이 좋지 않나?

    …….

    내가 그리 생각하며 물끄러미 바라보자 어쩐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면을 지닌 그분이 미소 지었다 생각됐다.

    순수한 영혼이 필요해서요.

    이어진 대답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럼 선택한 거군요.

    …….

    즐거운 삶이 될 겁니다. 가끔은 슬픈 일도 있겠지만……. 작은 힌트를 주자면, 나는 이 세계에 아주 맛있는 걸 숨겨뒀답니다.

    ……?

    잘 찾아보세요.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지는 모든 인류에게 비밀입니다.

    역시나 전지전능한 존재답게 이쪽이 속마음으로 얼추 결론지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주어진 구슬을 쥐었고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전능하다고 하셨죠? 그럼 제가 어떤 대답을 할지도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던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날 설득하고 설명해 줄까?

    그런 질문에 그것은 막힘없이 답해주었다.

    미래의 저는 오늘의 대화를 알고 있겠죠. 하지만 현재의 대화는 첫 번째로 일어난 일이니 존재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되기 위해선 처음이 필요하죠.

    …아직 고교 과정을 밟지 못한 나에겐 좀 어려운 이야기 같다.

    뭐, 결국은 좋은 일이다.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마법이 존재하는 멋진 세상에서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라는 건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아, 정확히는 두 번째인가?

    ……?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이런 방법까지 써서 지나간 일을 엿보시다니.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과 제가 만난 이 순간은 기억에 남지 않을 겁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왠지 이쪽을 훔쳐보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이 대화를 잊는다는 건가요? 전생의 기억은 다 남고요?

    그렇죠.

    …그럼 저는 뭔가를 부탁받았다는 사실을 까먹을 텐데요.

    어차피 내 뜻대로 살라고 했으니 잊어도 상관없으려나.

    그런 내 의문에 그 사람은 답한다. 그리고 동시에 잘 보이지 않던 상대의 얼굴이 점차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어요. 내 세상 사람들은 리어스 신이 실존하는 걸 몰라야 하니까요. 명확한 증거에 가까울수록 지우고 있죠.

    왜요?

    그건…….

    동시에 테이블에 앉아있던 ‘리어스’라는 사람이 내게 검지를 치드니,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이 녹아 몸속에 스며들어 갔다.

    지금껏 맑게 깨어있던 의식은 다시 몽롱해지고 나는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갔다.

    인류는 신이 실존한다는 걸 모를 때 더 행복해하더라고요.

    끝으로, 이 문장을 듣고 나서는 까무룩 의식이 암전했다.

    Recipe 2. 예티 갈비 (3)

    …떠세요?

    ‘…….’

    어떠세요?

    ……!

    반짝.

    느긋하게 감고 있던 눈을 재빠르게 뜬다. 그러자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와 다르지 않은 천막 속의 풍경이 보인다.

    어두침침한 천막 속, 등불이 내뿜는 빛 하나에 의지하며 내 앞에서 펜듈럼을 흔드는 점술사…….

    …….

    몇 초간 꿈에 빠졌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되짚게 된 과거의 기억이란 이랬다.

    실력 있으시네요.

    그렇죠?!! 다들 제가 어리다고 신뢰해 주지 않는다니까요. 그런 평가 해주신 손님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나는 얕은 최면 속에서 전생의 단말마를 떠올렸다.

    아직 그때 식당에서 입었던 후드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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