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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미식가 3권
던전 미식가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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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미식가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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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눈 떠보니 내가 모험가를 대학살한 괴물? 용사를 죽였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가 너무나 고파. 일단은 밥.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Nov 16, 2020
ISBN9791132778431
던전 미식가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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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미식가 3권 - 대대원

    Recipe 1. 슬라임 샐러드 (1)

    그 후 나는 금방 귀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즈라 대삼림에서부터 아드라마까지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요즘은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도 개발은 됐다지만 골드를 줘가며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긴 부담스러웠다.

    토 나올 정도로 마차를 갈아타 어느덧 나는 해가 뉘엿거리는 고향 땅에 돌아오게 되었다.

    새하얗게 새로 지어진 깨끗한 건물들이 늘어선 아드라마의 거리엔 아직도 몇몇 사람이 보였다.

    전부 살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드라마에 도착한 나는 곧장 여관으로 가진 않았다.

    우선 광장을 지나쳐 가는 길에 직접 딴 것으로 보이는 색색의 꽃을 바구니에 담아 팔고 있는 어린아이에게서 꽃을 샀다.

    나로선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모두 합하여 두 닢의 은색 동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꽃을 사 든 나는 이번에도 여관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을 돌아 사탕 가게에 들러 사탕 한 묶음을 샀다. 제법 많은 양이었다.

    그럼, 이렇게 꽃과 사탕이란 달콤한 것들만 쥐고서 내가 도착한 곳이 어디겠는가.

    …….

    이내 내가 발 디딘 곳이란 이 아드라마의 구석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무덤이다.

    나는 엘프에 비하면 같잖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적어도 이 적은 인원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성 리어스 고아원의 아이들 묘에는 사탕을, 그리고 어른의 묘에는 꽃을 올려두었다.

    어른도 사탕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뭐, 애들이 먹고 남기면 알아서 먹으라지.

    …….

    사실 이 모든 행위는 그다지 의미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묘에 지저분하게 나있는 풀을 뽑고, 이렇게 화려한 선물을 들고 와도 아무 이득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한참 무덤을 가꾸었다.

    그리고 잠시 우두커니 서서 조용한 무덤가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는 빈손으로 뒤를 돌아 걸어간다.

    이제 슬슬 회피하지 말고 진짜 약속을 지키러 가야 했으니.

    여관 다프네.

    똑똑똑똑똑똑.

    이 노크하는 방식은 설마… 역시나 너였냐뇨?! 와! 어서 오라링~!

    …….

    손에는 무슨 냄비를 들고 왔… 아, 그래. 마침 잘됐다링! 들어와라뇨!

    이모탈이 문을 활짝 열자 보이는 것은 바닥에 늘어진 금화와 은화를 높게 쌓아 올리고 있던 작은 늑대 수인 두 명, 그리고 얼굴에 그을음이 있는 크림색 머리카락의 엘프 하나였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 스승님은 건강하시던가?

    그래.

    그나저나 마침 잘 왔어. 이모탈 이 녀석과 더 이상 못 해먹겠다고 말하려던 찰나였거든.

    다알이 이를 드러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없는 사이 다알과 이모탈은 꾸준히 의뢰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하필 오늘 의뢰에서 이모탈의 거리 조절을 실패한 마법 탓에 다알이 재투성이가 됐었다고 한다.

    이모탈 쪽에선 그래도 다치지 않았으니 만사 오케이인 게 아니냐는 속 터지는 반응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다알이 금방이라도 침을 뱉을 것처럼 눈에 핏발을 세운다.

    다녀오면서 여관 뒤뜰에서 밤 구워 왔는데.

    오, 밤! 정말이냐? 아직 남아있었구만. 기특한 인간 같으니! 마롱 녀석이 모처럼 돌아왔으니 오늘만 특별히 봐주도록 하마. 이모탈.

    하지만 다행히 내가 가져온 군밤을 보고서 화가 사그라든 모양이지.

    다알은 이제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들고 온 냄비를 가지고서 동전 쌓기 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들 앞에서 밤을 하나씩 까먹었다.

    어, 언니이. 나두 저거 먹고 싶어링!

    맛있게 먹는다링~

    동전 쌓기를 하고 있던 이모탈의 동생들이 다알이 군밤을 까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모탈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두 다리를 한 짝씩 꼭 끌어안고 졸라대기 시작한다.

    안 돼. 저건… 너희가 먹으면 탈 난다링! 야, 다알! 애들이 보니까 옆방에라도 가서 먹으란 말이다뇨!

    내 방에 들어오겠다고?

    아서라. 저 인간 녀석이 투구 속에서 싸늘한 표정 짓는 거 안 느껴지나? 평소에도 자기 돈 버려가며 방을 따로 잡는 놈인데…….

    잘 구워진 따끈따끈한 군밤의 속살을 하나 까먹던 다알이 심드렁히 답했으며 마롱 쪽에선 아직 할 말이 끝난 것이 아닌지 투구 안에서 시선만 슬쩍 돌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알, 내가 자리를 비웠을 동안의 수입은?

    …….

    …….

    밤을 먹던 다알이 돌연 손을 멈췄다.

    크윽… 하찮은 기억력의 인간 주제에 이런 것만…….

    한참 뒤 세상에서 가장 비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킬에서 돈을 꺼내 나에게 90실버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는 투덜댄다. 오자마자 하는 짓이 수금이냐며 말이다. 그건 아니지. 밤을 준 행위 뒤에 수금한 거니까 괜찮다고.

    나는 착실하게 65골드를 갚아나가는 다알의 행동에 흡족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내 옆으로 무언가 작은 것이 후다닥 지나갔다.

    이모탈의 동생들이 침대 쪽으로 뛰어간 것이었다.

    마롱! 녀석들 좀 붙잡으라링!! 방금 밤 들고 도망갔다뇨!!

    먹을 수도 있지.

    내가 널 때릴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냐링?

    아니, 그건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하여간 맛만 좋은 것을 너무 무서워만 한다며 나는 속으로만 되뇌고 리더의 명령대로 도망간 동생들을 옆구리에 덥석 집어 둘 다 회수했다. 작은 수인들은 군밤을 이모탈에게 빼앗기자 제법 독기 오른 표정을 했다.

    갑옷 딱딱해뇨~!

    마롱 갑옷 딱딱해링!

    어, 그런데 내가 든 이모탈의 동생들이 옆구리에서 꼼지락거린다. 나는 아직 갑옷을 벗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들이 제법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놓으니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이번엔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아무튼… 아우, 정신없다뇨! 내일부터 갈 새 던전을 물색 중이었는데 마롱 너도 왔으니 회의에 참가해라링. 혹시 피곤한 건 아니지뇨?

    괜찮아.

    그럼 일단 여기, 뽑아둔 던전 리스트인데 말이지링. 네가 없는 사이엔 아무래도 몰이 사냥은 힘들었으니까 역시 이번엔 킹 슬라임이 나온다는 이 던전에…….

    나는 이모탈의 제안에 방에 있던 목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 파티의 리더인 그녀는 열정적으로 다음에 가야 할 던전에 대해 계획을 세웠고 다알도 밤을 우물대며 경청했다.

    역시 행동력이 있는 두 사람이다 보니 내가 없던 사이에도 잘하고 있던 모양이다. 흐름이 이리도 매끄러울 수 있을까.

    이 던전엔 다양한 종류의 슬라임이 나온다고 했는데링. 최근 사람들이 근처에 생긴 신규 던전에만 가다 보니 조금 넘쳐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니…….

    나는 이모탈의 말을 들으며 투구 속에서 가만히 이 방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따스한 여관의 마도 조명, 작게 재잘대는 웃음소리, 다알의 집중한 얼굴, 지도를 가리키는 이모탈의 손짓들.

    간만에 그들의 곁으로 돌아왔기 때문인가, 실질적으론 며칠 되지도 않는데 왜 이리 감회가 새로울까.

    …….

    내가 그들을 아직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에 로즈가 답했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기에 나는 좀처럼 이모탈의 브리핑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래야만 할 거야.

    그래. 영원한 비밀은 죽지 않는 이상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비밀의 주인인 내가 살아있는 이상 언젠가는 더 숨기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로즈.’

    하나 나는 입조차 벙긋하지 못한 채로 속으로 조용히 생각할 뿐이다.

    ‘그 언젠가가 왔을 때 이마저도 또 잃게 된다면 어떡해?’

    따스한 여관의 마도 조명, 작게 재잘대는 웃음소리, 다알의 집중한 얼굴, 지도를 가리키는 이모탈의 손짓. 같은 풍경이 다시 한번 내 뇌리에 새겨졌다.

    ‘내 투구 속 얼굴이 살가죽이 뜯겨 나간 붉은 괴물이어도 이들이 날 지금과 같은 표정으로 보겠어?’

    정말 그럴까? 로즈.

    어쩐지 나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서 거리감을 느꼈다.

    * * *

    오늘은 슬라임을 잡을 거다뇨. 다들 주의해라링!

    이곳은 대륙의 동부 외곽, 인적이 드문 한 마을에 위치한 B등급 던전 루베리캄.

    그동안 의뢰를 진행하면서 어느덧 우리 중 가장 길드 경력이 길던 리더 이모탈이 B등급 모험가가 되었기 때문에 파티를 맺은 상태라면 이 정도 난이도의 던전까진 올 수 있게 되었다.

    던전 내부의 풍경은 마치 거대한 사원과 같았다.

    고대의 유적지를 그대로 옮겨둔 듯한 풍경이라니. 웅장한 석상들이 뜻 모를 형태로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도대체 저 괴이한 모습은 무얼 표현하려 했던 걸까.

    여기에선 인간, 네 녀석이라 하더라도 애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아무튼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슬라임, 그리고 또 슬라임, 마지막으로 보스까지 킹 슬라임.

    물론 보스는 토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재생 주기가 한참이나 남아서 조우할 확률 같은 것은 희박했다. 그래도 일반적인 몬스터들이 죄다 슬라임이기 때문에 그 물컹한 것들을 질릴 정도로 볼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슬라임이라.

    ‘그러고 보니 꽤 까다로운 마물이었지…….’

    슬라임, 말랑말랑한 부정형의 몸을 지닌 액체 괴물.

    그것들은 보통 표면 장력 때문인지 뭔지 둥근 물방울 모양으로 생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종에 따라 점도가 상당히 달라서 갑옷의 틈새로 침입할 수 있는 슬라임도 있는가 하면 조금 단단한 젤리처럼 굳어있는 종도 있다.

    보통의 RPG에선 슬라임이란 초보자 마을쯤에서나 등장하는 약골 몬스터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의 슬라임은 그리 만만한 마물이 아니다. 아니, 되레 공포의 대상 격이기도 하다.

    다들 색적도 집중해링! 천장도 잘 봐야 한다뇨…….

    초보자 같은 것들에게 맡길 만한 수준이 전혀 못 되는 것이다.

    우선 슬라임의 위험한 점, 첫 번째.

    그들은 형태가 모호하다. 따라서 보물 상자 안쪽 같은 곳에 숨어있다가 기습하는 슬라임도 있고 천장의 틈새 같은 곳에서 떨어지는 슬라임도, 무엇보다 검으로 베어봤자 물처럼 아무 타격을 받지 않는 슬라임도 있다.

    그럼 위험한 점 두 번째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아종이 많다는 것이다.

    슬라임이란 이분법으로 간단히 번식하는 마물이기에 아무래도 종의 분화도 활발하다는 설정인 모양이라, 이 던전만 해도 각기 다른 공격을 해 오는 슬라임이 대략 19종이나 됐다. 여러모로 번거롭다.

    어떤 슬라임은 닿기만 해도 장비를 녹이고, 바닥의 돌 같은 것을 삼키고 몸속에서 정제해 엄청난 속도로 사출해 내는 저격 슬라임이 있질 않나, 벨 때마다 개체 수를 늘려가는 끔찍한 특성의 슬라임까지 있었다. 제대로 된 대응 방법을 외우지 못하면 허둥대기 쉽지.

    ‘일단 나와 이모탈이 불 속성에 적성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럼 이 슬라임을 어떻게 토벌해야 좋으냐. 일단 최고로 꼽히는 방법은 불이다.

    슬라임에 핵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핵조차 없이 온몸이 액체인 종도 있기에 결국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불에 익혀 통째로 대미지를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마력이 너무 많이 들기에 정석적인 방법은 바로… 무기에 마법으로 인챈트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불 속성의 인챈트를.

    물론 슬라임의 종류에 따라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슬라임은 단백질로 이루어진 몸체에 고열이 닿으면 계란이 삶아지듯 불가역적으로 변형되기에 심한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몸 전체를 굽기보다 슬라임의 체력이 다할 정도로만 불로 감싼 무기로 썰어준다면 평소 물리적 대미지를 거의 입지 않던 그들도 어느 정도 토벌할 수 있다.

    인챈트는 다들 잘 돼있지뇨? 풀리면 바로 말해야 한다링. 다시 해줄게뇨!

    우리들은 이모탈이 걸어준 인챈트 마법 효과를 한 번씩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순간 저 앞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인다.

    화이트 슬라임 다섯 마리.

    캐스팅 준비해뇨!

    한 번에 맞히기엔 너무 많이 몰려다니는군.

    슬라임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뭐, 슬라임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몇 번이나 말해봤자 사실 레벨 차이로 찍어 누른다면 안 될 일이야 없다.

    이모탈! 인챈트.

    알았다링! 웨폰 인챈트!

    다알은 숲에서 생활할 적, 길드에서 관할하지 않는 숲 고유의 던전을 마을에서 관리해 왔기에 마을 내의 토벌단 생활을 하며 레벨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이모탈 쪽은 무려 콜로세움의 영웅이란 칭호까지 달고 있는 잘나가던 투사가 아니던가. 물론 기쁜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기반으로 역시나 터무니없는 레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파티는 그 뒤로 제법 안정적으로 사냥했다. 나도 간간이 불꽃이 둘린 모닝스타로 몇 마리를 썰기도 하면서 말이다.

    일단 보이는 것은 다 잡았군.

    으… 왜 사람들이 슬라임이 아니라 옆 던전으로만 가는지 알 것 같다뇨. 슬라임은 토벌 증거를 채취하기가 너무 귀찮다링.

    이윽고 다시 한 무리의 슬라임을 처치하게 되자, 이모탈이 쭈그려 앉아선 작은 병에 슬라임 사체의 일부를 떠 넣으면서 투덜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이 던전, 묘하게 몬스터의 밀도가 높았는데 그 이유가 새로 생긴 신 던전으로 사람들이 몰려버린 까닭이라 했다. 확실히 슬라임은 토벌도 귀찮고, 토벌 증거의 채취도 귀찮고, 심지어 길드에서 그 증거를 확인하는 것도 당일에 처리가 안 된다.

    여러모로 번거롭네. 내가 그리 생각하며 멍하니 있었을 무렵이다.

    냐앗! 저기 위에 뭐냐뇨! 끈적끈적한 녹색의… 슬라임이다링!!

    아, 그사이에 또 슬라임이 출몰한 모양이다.

    이번엔 이 신전 건물의 천장 틈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슬라임. 떨어진 슬라임의 몸체 일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엄청나게 끈적거리지만 형태 변형은 자유로운 편인 슬라임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람에겐 이렇게 특성을 분석하기보다 더욱 간단하게 슬라임의 종을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감정.’

    띠링.

    [산성 슬라임]

    닿기만 해도 철제 무장을 녹여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슬라임. 보통 녹색의 반투명한 몸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다른 생물의 옷이나 갑옷 사이를 파고 들어가 살과 뼈를 녹여 섭취한다.

    [마물]

    [레벨 39]

    [공격력 207]

    [방어력 207]

    산성 슬라임.

    내 그럴 줄 알았다뇨!

    후다닥, 천장에서 떨어지는 액체에서 멀리 피한 이모탈은 스킬의 캐스팅을 준비했다.

    그 후 슬라임의 몸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제 형태를 갖추었을 즘엔 여지없이 이모탈이 만들어 낸 마법의 불꽃이 슬라임의 몸을 태웠다.

    도대체가 슬라임이 끝이…….

    마력을 제법 사용했기에 지치는 모양인지 이모탈이 주섬거리며 허리춤에 두었던 포켓에서 포션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마나 포션을 섭취하는 동안 내 귀에는 이질적인 소리가 울렸다. 마치 묵직한 질량을 가진 농구공이 바닥에서 튀어 오를 때 나는 둔탁한 소음이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가까워지고 있어……?’

    통, 통, 통.

    그런 공 튀는 소리와 함께 모퉁이를 돌아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슬라임.’

    역시나 또 슬라임이다.

    게다가 이미 한 번 해치웠던 슬라임 개체였기에 우리는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저건 바로 ‘변조 슬라임’이라는 이름의 마물인데, 그것들은 제 몸의 일부를 딱딱한 칼날처럼 돋아나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저리도 통통 튀어 다니는 걸로 미루어 보아 엄청난 탄력을 지닌 슬라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방패를 고쳐 잡으며 생각했다.

    ‘일단 가드를 올려두고…….’

    변조 슬라임이 공격해 오는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위협적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바로 이 신전의 벽을 이용하여 공격하는데, 경이로운 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벽에 튕겨가며 각도를 달리해 사방에서 칼날을 드리우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벽에 튕길 때마다 슬라임 스스로 몸을 움직여 가속하기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슬라임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기엔 충분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변조 슬라임이 벌써 제법 몰려들었다. 대략 여섯 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그들이 저 멀리에서부터 바닥에서 튕겨 오르며 우리들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우선 나는 ‘도발’ 스킬부터 사용해 둔 뒤에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저것들의 레벨은 기껏해야 40쯤이고, 아까도 멍하니 있다가 공격을 한 대 어깨에 맞았지만 역시나 간지러움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내 몸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변칙적으로 튕겨 오는 변조 슬라임을 굳이 애써서 회피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만히 도발만 반복하며 동료들이 맞히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런 발상들을 떠올렸다. 이모탈은 그렇다고 쳐도 다알은 정신 사납게 움직이는 슬라임 정도야 눈 감고도 맞히는 명중률이었으니 무리 없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곧바로 도발 스킬을 두어 번 반복해 변조 슬라임들이 씨근거릴 정도로 화를 돋웠고, 그 직후 쏟아지기 시작하는 다알과 이모탈의 스킬 사이에서 잠시 헛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변조 슬라임이 제일 맛있으려나. 탄력이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 기준에선 자그마치 200레벨 정도나 수준이 낮은 던전을 요 몇 달이나 반복하고 있는 건데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물론 내가 긴장감을 쫓아다닐 정도의 성격은 아니지만,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의 슬라임은 죽은 뒤에 물처럼 액체가 되어버려서 먹기 애매하지… 아니, 의외로 주스 대용으로 맛있을지도 몰라. 일단 이번 무리만 다 잡으면 마셔볼까.’

    나는 방패와 모닝스타 한 쌍을 든 상태로 그렇게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여섯 마리의 변조 슬라임은 다알의 화살과 이모탈의 화염 마법에 의해 하나씩 수가 줄어들었고, 나도 너무 가만히 있긴 좀 그래서 대충 인챈트된 모닝스타를 휘둘러 한 마리를 처치했다.

    그리고 그때 마지막 남은 슬라임이 왼쪽 위의 벽에서 튕겨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슬라임이 나를 향해 돌진하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니까. 어차피 나는 이제 다칠 일 따위는…….

    파악.

    ……?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튀어 오른 이 피는 도대체 왜 나온 거지?

    ……!

    나는 드물게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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