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 millions of ebooks, audiobooks, and so much more with a free trial

Only $11.99/month after trial. Cancel anytime.

메모라이즈 34권
메모라이즈 34권
메모라이즈 34권
Ebook229 pages2 hours

메모라이즈 34권

Rating: 0 out of 5 stars

()

Read preview

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405
메모라이즈 34권

Related to 메모라이즈 34권

Titles in the series (41)

View More

Related ebooks

Reviews for 메모라이즈 34권

Rating: 0 out of 5 stars
0 ratings

0 ratings0 reviews

What did you think?

Tap to rate

Review must be at least 10 words

    Book preview

    메모라이즈 34권 - 로유진

    목차

    1. 최후의 전조는 조금씩 대동하고 (1)

    2. 최후의 전조는 조금씩 대동하고 (2)

    3. 새로운 출격(出擊)

    4. 빙하(氷河)의 설원(雪原)

    5. 군신(軍神)의 전설

    6.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

    7. 최후의 기록

    8. 조우(遭遇)

    9. There May Be Blue And Better Blue

    10. 내흉(內凶)

    11. 본처(本妻) 강림(降臨) (1)

    1. 최후의 전조는 조금씩 대동하고 (1)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아스타로트도 아니고, 설마 당신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네요.

    어둠 속, 깔끔한 야회 예복을 입은 악마가 어둠에 몸을 묻는다. 말하는 목소리는 약한 비난조가 섞여 있었으나, 이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앉으시죠. 아쉽네요. 미리 기별을 주셨다면 좀 더 좋은 공간에서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요.

    함부로 침입한 건 사과하도록 하지. 루시퍼.

    사탄은 순순히 사과했다. 루시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시답잖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누가 그러면 철없는 행동처럼 보일지 몰라도 말쑥한 인상의 루시퍼가 그러니 까닭 없이 품위 있어 보였다.

    사탄은 느릿하게 걸어와 적당한 어둠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흘깃 오른편을 흘겼다가 도로 앞을 응시했다. 방금 사탄이 쳐다본 곳은 루시퍼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공간이었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루시퍼는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시는 겁니까?

    흠?

    아뇨. 이미 소문은 들으셨을 거라 생각되니까요.

    …플루톤 말인가.

    사탄은 낮은 침음을 흘렸다. 플루톤. 그저 그런 마족도 아니라, 무려 악마 14군주 중 일 좌를 차지하는 악마. 그런 악마가 얼마 전 소멸했다. 소중한 전력임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아무리 대악마라도 속이 쓰릴 일이다.

    한데 플루톤을 예하로 두고 있던 루시퍼는 먼저 말을 꺼냈다. 흡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탄은 느긋이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어떻지?

    이야, 정말 큰일이라니까요. 플루톤을 잃은 슬픔이 큰지 프로세르피나도 필사적으로 장악에 힘쓰고 있어요.

    청승맞게 웃어 젖히는 루시퍼. 사탄은 문득 짜증을 느꼈다. 루시퍼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실없는 얘기를 꺼내는 건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를 전달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사탄은 고민했다. 적당히 화제를 돌릴까, 아니면 툭 까놓고 직구를 던질까?

    결국 선택한 건 후자였다.

    상황이 썩 좋지가 않아.

    루시퍼는 또 한 번 눈을 크게 치떴다. 아까는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확실한 감정이 드러났다. 비록 살짝 내비친 정도에 불과할지라도.

    별일이네요.

    루시퍼는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소식은 간간이 듣고 있습니다. 남 대륙 일은 꽤 잘 돼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얼마 전 오딘 클랜의 주도로 아르코느 오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라그나로크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고…….

    그랬지. 손을 좀 썼어.

    한데.

    하지만 느려.

    사탄은 딱 잘라 말했다. 루시퍼는 머리를 갸웃하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턱을 쓰다듬었다. 과연 어떤 의미로 느리다는 말을 한 걸까? 루시퍼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면 저한테 강요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현재 북 대륙에 손을 대는 대악마는 저 혼자로 알고 있거든요.

    손을 대는 게 아니라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플루톤의 소멸을 말미암아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그러자 루시퍼는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적막한 공간에 끅끅거리는 웃음이 울리고, 사탄의 시뻘건 동공은 뱀처럼 가늘어졌다.

    잠시 후, 간신히 웃음을 그친 루시퍼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참, 딜레마네요. 선택은 두 가지인데, 어느 걸 선택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니.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악화할 필요는 없지 않나?

    제 실패를 확신하시는 겁니까?

    너는 성공을 확신하는가?

    되돌아온 물음에 루시퍼는 느긋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플루톤이 소멸한 마당에 확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꼴불견이겠죠. 저는 그냥…….

    그냥?

    …우리가 처한 상황이 재미있을 뿐입니다. 하하.

    …….

    잠깐의 침묵 후 돌아온 회답. 사탄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틀렸다. 방금 말한 대로 루시퍼는 현 상황을 재미있어하고 있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뜻이 깃든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루시퍼의 이명은 ‘타락 천사’. 스스로 타락한 이유를 물어봤을 때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아스타로트의 말마따나 성격은 어찌나 외곬인지, 한 번 결심한 일은 정말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언뜻 보면 예의 바르고 유해 보일지 몰라도 7명의 대악마 중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악마가 바로 루시퍼였다.

    생각을 정리한 사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루시퍼는 의외라는 듯 뜻밖의 기색을 비쳤다.

    어라? 벌써 가시는 겁니까?

    더 이야기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런, 심기가 상하신 모양이군요.

    …별로.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짧게 작별을 고한 사탄은 서서히 몸을 돌렸다.

    이윽고 천천히 공간을 벗어나는 사탄의 등을 루시퍼는 하염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사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 * *

    머리를 젖힌 순간,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를 스쳤다.

    저건…….

    그림자가 아니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새와 비슷했으나, 절대로 참새 따위로는 볼 수 없다.

    가로 길이는 약 5미터쯤 돼 보일까? 몸무게는 못해도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다. 등에는 박쥐의 날개와 비슷한 모양의 날개가 쭉 뻗어있고, 푸르게 빛나는 몸통은 만화에서 나오는 드레이크와 흡사하다. 그냥 괴조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으려나.

    아무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어지간히 경계심이 없지 않고서야 괴물은 도시로 접근하지 않는다. 아니, 집단 습격이면 또 모를까? 그러나 허공에 나타난 괴조는 단 한 마리였다.

    그렇게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동안 괴조는 하늘을 부드럽게 선회하며 캐슬 가까이 다가왔다. 공격하려는 건가?

    용족……. 어?

    용족화를 사용하려는 찰나,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쨍쨍한 햇살을 가르며 빙그르르 도는 괴조의 등에서 무언가 익숙한 형상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안력을 높이니 그 형상이 더욱 자세히 들어왔고.

    수현아!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형을 보며 크게 기함하고 말았다.

    후유. 이제 좀 살겠네.

    형?

    아, 잠깐, 잠깐. 우선 좀 앉자. …아이고, 이제 좀 살겠다.

    …….

    소파에 풀썩 앉는 형을 보니 절로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네. 어때,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지?

    그동안 고생깨나 하고 다녔는지 형의 몰골은 영 말이 아니었다. 허나 그것보다는 현 상황이 중요하다.

    테라스 밖으로 나가 쳐다보자 날개를 접은 채 정원에 얌전히 앉아있는 괴조가 보였다. 클랜원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잔뜩 경계하는 중이고, 정문 밖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웅성웅성 모여있다. 그리고 아기 페가수스는 용감무쌍하게 덤비며 괴조의 긴 꼬리를 물어뜯고……. 아니, 너는 또 왜 그러고 있는 건데. 무섭지도 않나 봐.

    그 순간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기 페가수스를 지켜보던 괴조는 느닷없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음, 그대가 그 인간이 말한 동생이라는 사람인가.

    …어? 화정이 말한 건가? 아니, 이건 화정의 고운 음성이 아닌데?

    ―고, 곱다니. 내 목소리가 그렇게 좋아? 헤헤…….

    ―흠. 듣던 것보다는 별로인 것 같은데.

    화정이 부끄러워하는 음성에 이어 이상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그제야 이 거칠거칠한 음성이 저 괴조의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괴조는 아주 정확하게 나를 직시하고 있었으니까. …잠깐만. 강철 산맥에 영물이 있었던가?

    ―인간.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그 인간한테서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멋지고, 잘생기고, 아름답고……. 여하튼 최고의 동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기대 이하였을 뿐이니까.

    ……?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하도록 하지.

    뭐, 뭐라고?

    무언가 굉장히 창피한 말을 들었는데, 머리가 혼미해지는 기분이다. 어질어질한 이마를 붙잡고 몸을 돌리니 빙긋 웃는 형이 보였다. 나는 곧장 득달같이 달려갔다.

    그런데 수현아. 너 분위기가 꽤 변한 것…….

    설명해.

    탕.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묻자 형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곧 여유를 되찾고는 숨을 길게 흘렸다.

    아……. 그냥 별것은 아니야.

    별것이 아닌데, 저런 괴조를 타고 와? 아니, 도대체 어떻게 타고 온 거야? 괴물이잖아!

    수현아, 설명해 줄 테니까 너도 앉지 않을래? 정신 사납다.

    윽…….

    순순히 자리에 앉자 형은 흘끗 바깥을 쳐다보고는 소파에 묻었던 등을 들었다.

    좋아. 우선 저 괴조는 확실히 괴물이지만, 지성을 갖고 있어. 즉,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소리지. 이건 너도 알고 있지?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말하는 괴물이 아예 없는 경우도 아니고, 조금 전 겪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대단한 건 없어. 그냥 강철 산맥으로 들어가서 저 괴물을 찾고, 이야기하고, 결과적으로 서로 협력 관계를 맺었을 뿐이야.

    형은 매우 간단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허나 이 정도로 의문이 풀릴 리가 만무하다.

    강철 산맥으로 들어가서 찾았다고? 그럼 일부러 그런 거야?

    응. 저 괴조와는 강철 산맥 공략 때 약간의 인연을 맺었거든. 너도 알고 있을걸? 거인들을 공략할 때… 말이다.

    거인이라는 말을 꺼낼 때 형의 낯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제3지역 공략 당시, 웬 괴조 무리가 거인들의 후면을 공략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

    그럼 강철 산맥에서 꼭 하고 싶다는 일이 이거였어?

    그래, 맞아.

    그렇다는 듯 형은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얼굴에 서렸던 어두운 기색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멍하니 형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문득.

    …미안하다.

    내 능력이 부족했다.

    북 대륙에서는 무서운 게 없었는데……. 모든 게 생각대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아. 그게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는 총 사령관의 자격이 없어.

    …거인 같은 괴물들이 많은가 봐?

    종족이라. 그럼 1회차에서 말이다. 그 종족의 존재가 우리한테 밝혀지고 나서 다들 어떻게 됐지?

    제3지역 공략이 끝나고 형이 내게 했던 말들이 우수수 뇌리를 스쳤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왜냐고? 그야 쿠샨… 아니, 아니다.

    무언가 말하려던 형은 불현듯 머리를 흔들었다.

    쿠샨이라. 혹시 형은 그때 거인과 모종의 관계를 맺었던 게 아닐까? 그냥 갑자기 스친 생각이었다.

    왜? 너는 별로라고 생각해?

    별로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모르겠다. 그냥 당혹스러울 뿐이다. 세상에, 괴물과 협력이라니. 노예라면 몰라도 이렇게 요상한 관계를 맺은 전례는 1, 2회차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니까.

    아니, 별로라기보다는……. 그냥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어쨌든 목적은 있을 거 아니야.

    스스로 느껴도 까닭 없이 버젓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말이었다.

    목적? 그거야 당연히 있지.

    당연하다는 듯 회답이 듯이 돌아왔다. 흘끗 눈을 올리니 형은 잔잔히 가라앉은 눈으로 테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그러고 보니……. 흠. 뭐, 어차피 돌아오면 슬슬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

    수현아.

    나를 부르는 음성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이윽고 형은 테라스 너머를 보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우리 말이다.

    응.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준비?

    내 반문에.

    그래, 준비.

    형은 힘주어 말하고는 맑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

    * * *

    ‘왜 했느냐?’고 묻는다면 ‘필요에 의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언젠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김유현은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수현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적어도 ‘강해지는 방법’에 관해서는, 이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는 매우 명쾌한 해답이 있다. 수련을 하거나, 아니면 사용자끼리 힘을 합쳐 캐러밴을 꾸린다. 탐험을 나가 괴물을 사냥하면서 사용자 정보 상승을 꾀한다. 획득한 전리품을 처분하고 더 좋은 무기를 장만한다. 그야말로 명확한 시스템이며 김유현도 딱히 이견을 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일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김유현은 한 번쯤은 그 예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괴물이라고 무조건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왜냐고?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와, 인간이다.

    잘 먹겠습니다! 헤헤.

    물론 쿠샨 토르와의 인연이 아주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는 없다. 허나 ‘괴물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별 어쭙잖은 생각에서 발로한 계획은 절대로 아니었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고, 김유현도 똑같은 인간이다. 김수현만 제외하면 누구에게 언제든지 냉혹해질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단, 서로가 상부상조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강철 산맥으로 도로 들어갔고, 그래서 괴조를 찾아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모르겠네……. 아무튼 알겠어. 형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래서 안타까웠다.

    형과 여인을 살리고 같이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김수현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아니, 이해하는 것을 떠나서 사실 누구도 알 수 없는 차원이다. 예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는 했으나, 세세한 부분까지는 듣지 못했다. 김수현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김유현은 눈치채고 넘어갔다. 그냥 굉장히 끔찍했으리라 추측할 뿐. 이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세상에서 정점에 섰다는 건 헤아릴 수 없는 시련을 이겨냈다는 방증이리라. 당연히 그만큼 상처도 입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가끔 보면 김수현이 무언가에 꽉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1회차와 연관돼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맹목적으로 목을 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너무 변했다고 해야 하나. 한 번씩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까닭 없이 안쓰럽다는 기분이 강하게 치밀어 오른다.

    물론 김유현이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도와줄 수는 있다. 새로운 변화라는 걸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1회차는 1회차일 뿐, 현재는 2회차라는 사실을. 미래는 예정된 게 아닌, 개척해 나가는 거라는 사실을. 다가오는 미래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훗.

    김유현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옆으로는 괴조 우두머리가 터벅터벅 걷고 있다. 꽤 많은 사용자가 모였으나 자동으로 길을 터주는 탓에 걸음에 거리낌은 없다.

    이미 괴조 우두머리와 이야기는 끝냈다. 인간은 강철 산맥 내 괴조가 살아갈 터전을 보호해 줄 것이고, 괴조는 강철 산맥의 안정화를 돕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나아가 개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도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이동 수단이 생길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서로 맹약을 맺고 약속을 지킨다면 충분히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계획을 시작한 이상, 허투루 처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긴 생각을 정리한 김유현은 살그머니 왼손을 폈다. 손바닥에는 따스한 온기가 서린 남빛 구슬이 놓여있다. 실은 구슬이 아니라 영약이다. 복용 시 마력을 2포인트 올려주는 영약. 방문을 마치고 가는 길에 김수현이 억지로 쥐어주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침을 질질 흘릴 만한 영약이나, 김유현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동생이

    Enjoying the preview?
    Page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