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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26권
메모라이즈 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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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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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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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26권 - 로유진

    1. 철혈(鐵血) 여왕의 분노, 김수현의 환희 (2)

    그거야 강철 산맥을 넘으면 새로운 대륙이 나오니까.

    그 새로운 대륙이란 걸 꼭 발견하고 가져야만 합니까? 지금 주어진 것들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겁니까?

    흠. 사람이 아닌 용의 입장에서 보면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건가?

    처음에 장난스러웠던 헬레나의 목소리는 이어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마치 현자에게 답을 구하는 말투처럼. 그러고 보니 어느덧 사샤도 은근슬쩍 다가와 귀를 들이밀고 있다. 나는 잠깐 목을 가다듬은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만족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야. 우선 사용자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지?

    다소 들어본 바는 있어 약간이나마 알고는 있습니다.

    좋아. 일단 홀 플레인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야. 사용자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강해질 의무가 있지. 하지만 그 강해지는 방법이 크게 보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거야.

    자기 수련이라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사용자 정보라는 설정이 들어온 이상, 수련으로 강해지는 건 한계가 있어. 그건 스스로의 잠재성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 시작부터 선이 그어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고. 밖을 돌아다니며 괴물들을 처리하고, 고대 유적을 발견하고, 탐험해서 좋은 무기나 클래스 금화 등을 얻는 것 등등.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 또한 한계가 있지. 한 대륙에 잠들어 있는 자원이나 성과는 절대로 무한하지 않아. 계속해서 캐고 발굴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져. 그리고 지금 북 대륙이 바로 그런 포화 상태인데, 사용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상황이지.

    호. 그러면 새로 들어오는 사용자들을 위해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는 겁니까?

    물론 새로운 사용자들을 키울 여건을 마련하는 측면은 있지만, 그게 궁극적인 목적은 되지 않아.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대륙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도 하거든? 아직 개척되지 않은 만큼 새로운 대륙에는 아직 손닿지 않은 값진 자원과 짭짤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대륙이 있는데, 사용자들이 가만히 있겠어? 또한 목숨을 걸고 원정에 참가했으니 나름의 특권은 누려야지. 어느 정도 뱃속을 채우고 난 후에야 아마 다른 사용자들에게도 개방이 될 거야.

    발전을 위해서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지만, 그래도 고생한 이들에게는 우선권을 보장해 준다는 말씀이시군요.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와는 관점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이유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왜, 그러니까 왜 꼭 이 강철 산맥을 넘어야 하는 겁니까? 새로운 대륙이라면 북쪽으로도 개척되지 않은 지역이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런 데는 이런 대규모 원정대를 편성하지 않는 겁니까?

    헬레나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해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돌연 주변이 고요한 게, 모두가 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별안간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확실성이 없으니까.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

    확실성?

    지금으로부터 8, 9년 전 바바라도 미개척 지역이던 때가 있었지. 지금 강철 산맥과 같이 중앙의 숲을 통과해서 바바라를 공략했고, 이후 다른 도시들도 발견해서 북 대륙이라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했어. 그 공략하는 과정에서… 정확히는 바바라에 있던 고대 도서관에서 아틀란타라는 새로운 대륙이 있다는 기록을 발견한 거야. 그에 반해 북쪽의 미개척 지역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고.

    과연. 확실성이란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은…….

    그 아틀란타라는 대륙도 언젠가는 포화 상태에 이르겠지. 그러면 우리는 또 새로운 대륙을 찾아야 할 테고. 과연 또 다른 새로운 대륙의 기록이 아틀란타에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문제는 이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에 북 대륙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야.

    하나가 아니다?

    우리 북 대륙은 강철 산맥을 남진하면 아틀란타라는 새로운 대륙이 나오잖아? 다른 대륙도 똑같아. 동 대륙이 불모의 황야를 서진하면 플로렌스, 서 대륙이 서리 협곡을 동진하면 아이리스, 그리고 남 대륙이 오크 성을 북진하면 라그나로크라는 새로운 대륙이 나오지. 그러면 생각해 봐. 이렇게 각 대륙이 현재 위치한 지점의 반대 방향으로 계속 밀고 간다면 종내에는 어떻게 될까?

    …서로 부딪히게 되는군요.

    정답이었다. 정확히는 테라라는 마지막 대륙을 두고 경쟁해야 하지만,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는 노릇.

    다행스럽게도 헬레나는 충분히 호기심을 해결했는지 더는 묻지 않았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덕분에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홀가분한 기분이다?

    이윽고 헬레나는 약간은 쓸쓸해 보이는 얼굴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헬레나는 왜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한 걸까?

    홀가분한 기분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그리고 마지막에 보인 쓸쓸한 기색의 의미는 무엇일까?

    클랜 로드!

    그러나 미처 깊숙이 생각할 틈도 없이 선유운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생각을 접고 선두로 다가가자 걸음을 멈춘 채 우뚝 서있는 선유운이 전방을 가리켰다. 나는 곧바로 정지 신호를 보낸 후, 선유운이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너무 이야기에 빠졌던 걸까. 잠시 지루한 기분은 잊을 수 있었지만, 어느덧 전방에서는 탁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남아있었지만, 이제 거의 통로의 끝에 다다랐는지 새로운 입구가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무언가 꼿꼿이 선 채로 우리를 마주 보고 있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사용자 같기도 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허수아비 같기도 했다. 안력을 한껏 높여도 이 거리에서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쿵!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울리는 소리에 이어 꼿꼿이 서있던 것들 중 하나가 맥없이 무너졌다. 그 순간, 눈동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내 클랜원들이 재빠르게 모이는 기척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무검을 뽑았다.

    …적어도 나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입구 너머 공간을 스쳤다는 것을.

    수현. 그림자를 보내볼까요?

    안개화로 선진입할 수도 있다.

    고연주와 사샤가 동시에 말했다. 그러나 나는 차분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방금 마력 감지를 최대한으로 높여 돌렸는데도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마?

    바로 진입하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후, 나는 지체 않고 걸음을 옮겨 통로를 통과했다. 그렇게 약 5분가량을 빠른 걸음으로 걷자 곧 입구 너머의 너른 공동에 다다를 수 있었다.

    새어나오는 탁한 불빛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벽에 걸려있는 횃불이었다. 넓이는 아까 공동의 3분의 2정도 되는 크기였고, 우리가 들어온 쪽으로 총 9개의 굴이 뚫려있었다. 말인즉, 한 공간으로 모든 통로가 이어져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빠르게 주변 탐색을 마치고 중앙을 바라본 순간, 옆에 있던 선유운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 무슨 일이에요?

    고연주가 물었다. 그러나 곧 중앙을 확인했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며 건너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중앙에 꼿꼿이 서있는 건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허수아비의 모양을 한 여덟 구의 시체였다.

    흙바닥에 박힌 여덟 개의 나무 막대기 끝에는 사용자들이 각각 가슴께부터 꽂힌 상태였다. 복부 아래는 무참히 뜯긴 상태였고, 내장이나 장기는 싹싹 긁어먹었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나마 온전한 거라고는 머리와 덜렁덜렁 늘어진 두 팔뿐.

    나는 가장 정면에 있는 사내의 시체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사내는 죽을 때 꽤 고통스러웠는지 온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는데, 그에 반해 입은 귀밑까지 찢기고 고정된 상태였다.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는 게, 웃는지 우는지 모를 기괴한 형상이었다.

    아까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들어갔던 조예요.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은 남다은이 무너진 시체를 뒤집으며 말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조라면……. 처음 구덩이에 들어왔을 때 뼈에 걸려 넘어졌던 여인이 포함된 조였다. 유지태의 농담에 환영하는 방식이 저질이라고 욕하던 여인.

    말인즉, 한 조가 몰살당했다. 방금 설마 하고 추측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여인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사내의 시체만 보이는데?

    클랜 로드. 잠시만요. 여기 좀 보세요.

    남다은은 머리가 꽂힌 막대기를 치우고서는 바닥을 가리켰다. 아까 시체가 무너졌던 자리였다. 약간 허리를 굽혀 살펴보자 지면에 삐뚤빼뚤 그려진 벌건 핏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구덩이로 내려왔을 때 본 것과 똑같은 필체였다.

    건방지게. 멋대로 들어온 주제에 어디서 불평불만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신경 좀 썼지. 어때. 이 정도면 저질이 아닌가? 히히, 히히히!

    P.S. 아. 다른 3명은 고맙게 사용하도록 할게.

    이 XXX들!

    안현의 분노한 목소리가 공동을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안현을 흘긋 흘겼다가 어깨를 건드리는 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탐색을 마치고 왔는지 고연주가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수현. 이상해요.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요.

    터벅. 터벅.

    분명 나가거나 들어온 기척이 있어야 하는데……. 수현?

    고연주. 쉿.

    …아.

    …….

    고연주도 이제 들은 걸까. 나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금방 들어온 굴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힘없이 걸어오는 소리. 소리는 지금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우리가 들어온 굴 바로 오른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정상적인 걸음 소리는 아니다. 느릿느릿 힘없이 걷는 것 같으면서, 이따금 발을 질질 끄는 기척까지 들려온다. 그리고…….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코를 쓱 닦은 사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모든 길에서 어마어마한 적들이 출현해, 우리는 9개의 길에서 상당한 전력을 잃어야만 했다.

    그렇게 간신히 두 번째 공동에서 모인 이후,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사용자 한소영은 모든 인원을 통합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어떤 말도 않고 두 번째로 나타난 5개의 길, 아니 함정의 길을 향한 진군을 시작했다.

    문득 생각나는데, 그때의 클랜 로드―이하 한소영―는 조금 이상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뭔가 화를 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그 당시 한소영의 쾌속한 진군을 매우 걱정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서로의 손발이 맞아가기 시작한 것 같으니까.

    그래. 그때부터 원정대 내의 무언가가 변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감히 평하건대, 그 변화는 우리가 강철 산맥 공략을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원동력, 혹은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신대륙 아틀란타(Atlanta) 고대 도서관. 『강철 산맥 공략 회고록』 中 발췌.

    * * *

    잠시 후, 어두운 통로 너머로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면면이 살펴볼 것도 없이 구덩이 공략에 참가한 사용자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가히 좋지 못하다. 입구를 드리운 탁한 불빛이 비추는 사용자들의 모습은 온 장비에 피를 덕지덕지 바른 상태였다.

    …괜찮으세요?

    안솔의 목소리였다. 가장 앞에서 걸어오던 사내는 무사 로드 고오환이었다.

    젠장, 보면 모르쇼? 습격 한 번 거하게 당했수다.

    고오환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입구 안으로 들어오고는 끙, 힘을 주어 가슴께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었다. 약간의 피가 튀는가 싶더니 화살을 뽑아낸 자리가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안솔이 금세 치료 주문을 외우려고 했지만, 또 한 번 머리를 저은 고오환은 뒤에 들어오는 사용자들을 가리켰다.

    다른 사용자들 또한 고오환과 거의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욱 심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아홉 번째 사용자를 마지막으로 더는 들어오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두 명 당했소. 골짜기에서 족쳤던 놈들이랑 똑같이 봤다가 아주 제대로 당했지.

    수가 많았습니까?

    우리보다는 많았지요. 그래도 충분히, 피해 없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라질! 칼, 활, 마법, 심지어 치료까지! 도대체 어떻게 놈들이 사용자 설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우선 치료부터 받으시죠.

    일단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한창 분노를 터뜨리던 고오환이 돌연 우뚝 말을 멈췄고, 이내 나와 클랜원들을 쓱 훑어보았다.

    …한데 그쪽은 습격을 받지 않은 거요? 상태가 꽤 괜찮아 뵈는데.

    우리는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중앙 바닥을 가리켰다. 고오환의 두 눈이 멍하니 따라가는가 싶더니 억, 소리와 함께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는 혼비백산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더 이상 회답해 줄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우리가 들어온 입구 바로 왼쪽의 굴에서 새로운 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입구라면 한소영이 들어간 굴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불안을 억누르면서 침착히 어둠 너머를 응시했다.

    이윽고 정확히 11명의 인원이 두 번째 공동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따로 습격을 받지는 않았는지 한소영 일행은 모두 정상적인 상태였다.

    머셔너리 로드.

    한소영은 처음에는 차분히 걸어 들어왔으나, 심하게 다친 사용자나 허수아비 시체들을 보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한소영은 역시나 침착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무사 로드가 오다가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사 로드 조의 습격 소식은 오면서 들었어요. 그런데 이 시체들은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세워진 상태였습니다. 아마 습격을 완료한 후, 우리보다 먼저 이 공동에 도착해 모종의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모종의 작업?

    …이걸 보시죠.

    약간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핏물로 바닥에 적힌 글씨를 가리켰다. 고개를 내린 한소영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나는 조금 더 한소영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입구 쪽으로 도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여러 굴에서 무수한 기척이 동시다발적으로 잡혔다.

    무사 로드의 조만 습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남은 6개의 조에서도 습격을 받은 조가 하나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른 5개 조가 무사히 들어왔다는 것과 습격 받은 조의 피해가 상당히 미미하다는 것.

    그냥 골짜기 전투 때와 똑같았습니다. 놈들의 수도 적었고, 제대로 부딪히기도 전에 도망치더군요. 이 정도면 딱히 보고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통신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한 조는 아예 몰살을 당했고, 한 조는 2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으며, 한 조는 살짝 건드리기만 했다. 나머지 조는 모두 무사하다.

    이것만 봐도 적의 의도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적의 수뇌부는 지금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이용해 심리전을 가미한 유격전을 벌이는 중이다.

    말인즉, 자신들의 보금자리까지 최대한 야금야금 전력을 갉아먹으면서 동시에 원하는 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다친 사용자들의 치료는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한소영을 바라보았다.

    한소영은 여전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길게 늘어진 머리가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한소영을 보고 있자니 조금이지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결과는 명백한 한소영의 실수였다. 물론 인원을 나눌 때는 한소영 나름대로 여러 방면을 고려하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적은 한소영의 의도를 꿰뚫고 역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적이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는 적은 물론 이 땅속 도시도 자세히 모른다. 정보의 부재가 가져온 패배였다.

    물론 나는 한소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입장이기는 했다. 아마 이번에도 선두에 나를 세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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