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 millions of ebooks, audiobooks, and so much more with a free trial

Only $11.99/month after trial. Cancel anytime.

메모라이즈 6권
메모라이즈 6권
메모라이즈 6권
Ebook202 pages2 hours

메모라이즈 6권

Rating: 0 out of 5 stars

()

Read preview

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122
메모라이즈 6권

Related to 메모라이즈 6권

Titles in the series (41)

View More

Related ebooks

Reviews for 메모라이즈 6권

Rating: 0 out of 5 stars
0 ratings

0 ratings0 reviews

What did you think?

Tap to rate

Review must be at least 10 words

    Book preview

    메모라이즈 6권 - 로유진

    1.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간신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신한 숙녀 여관을 나섰다.

    또다시 한숨이 푹푹 나온다. 어쩌다 김수현이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애들과 함께 지내며 내면이 영향을 받는 걸까?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해도 가면 갈수록 변태가 되어가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생각들은 잠시 깨끗이 비우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뮬의 거리를 통과해 광장을 넘었다. 오늘 들를 장소는 보석상. 나는 눈앞에 보이는 상점들이 몰린 거리 안으로 진입했다.

    일단 오늘 아침 간단히 다녀올 상점은 보석상 한 곳이었다. 앞으로 뮬에서 해결할 일들은 돈도 만만치 않게 드는 일들이다. 그런 만큼 나 또한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시간은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앞으로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해도 늦장을 부리는 건 내 성미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은 되도록 빠르게 해치우고 나중에 여유를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일을 해결한 후 또 일을 찾는다는 게 문제지만.

    원래 개척 도시는 항상 일정 수 이상의 사용자의 거주를 보장한다. 개척 도시가 이렇게 한산한 건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그만큼 황금 사자 클랜의 강철 산맥 진군 계획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바바라는 지금 여관에 자리가 없음은 물론,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성공하면 대박이다. 남부 도시와 아틀란타를 잇는 안전한 통로 하나만 확보한다면 쏟아져 들어올 이득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내가 직접 강철 산맥 원정에 참여한 만큼 나는 참가에 대한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원정대는 강철 산맥으로 들어간 후 이틀 만에 전력의 1/4 이상을 소실하게 된다. 그런데 그 피해를 입고도 무리하게 원정에 들어가 결국 5일도 안 되어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나고 소수 사용자들만 거지꼴로 돌아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미래를 내다본 클랜들은 그때부터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차분히 힘을 비축하고 있었을 테니까. 아마 절규의 동굴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가장 쉽다고 생각한 동굴을 마지막으로 놔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나는 간간이 캐러밴을 구하는 사용자들 몇 명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그대로 지나치자 어느새 상점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내 양옆으로 복잡하게 얽힌 상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마 처음 오는 사용자라면 틀림없이 어디가 어딘지 헤맬 게 분명했다. 개척 도시인 만큼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도 조금 아리까리했지만, 이내 기억을 더듬어 내가 목표한 보석상을 찾을 수 있었다.

    영감님은 잘 있으려나.

    나는 입맛을 다시고 상점 앞에서 간판으로 고개를 올렸다. 단순한 이름이 써진 검은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영감님 보석상

    몇 번을 봐도 고약한 네이밍 센스라고 생각하며 보석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석상 안에서 보석 하나를 들고 한창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용자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 지구로 돌아가면 호랑이 할아버지로 불릴 만한, 딱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슬며시 호기심이 일어 제3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사용자 정보(Player Status)

    1. 이름(Name) : 이만성(6년 차)

    2. 클래스(Class) : 보석 감정사(Rare : Jewel Certified Public Appraiser)

    3. 소속 국가(Nation) : 바바라

    4. 소속 단체(Clan) : ―

    5. 진명 · 국적 : 은둔을 원하는 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67)

    7. 신장 · 체중 : 173.7cm · 51.2kg

    8. 성향 : 중립 · 온건(Neutral · Moderation)

    [근력 18] [내구 26] [민첩 34] [체력 28] [마력 86] [행운 78]

    업적(0)

    고유 능력(1/1)

    1. 가치를 탐구하는 자(Value Seeker)(Rank : B Plus)

    특수 능력(1/1)

    1. 보석 세공술(Rank : A Plus)

    잠재 능력(3/3)

    1. 정통 마법(Rank : B Zero)

    2. 질속 영창(Rank : D Plus)

    3. 물품 감정술(Rank : C Plus)

    레어 클래스. 뭔가 애매한 능력치였다. 하지만 나는 진명을 보고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나이를 잡수신 만큼 별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그냥 소도시에서 이런 소소한 생활을 하며 삶을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실력이면 아주 들어갈 데가 없는 건 아닐 텐데.

    특히 고유 능력 가치를 탐구하는 자는 전투 계열 능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현재 그의 직업과 상성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만성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보석을 보다가 내가 가만히 서있자 비로소 주름진 입을 열었다.

    …손님으로 온 건가?

    네.

    왔으면 얘기를 하든가. 뭐 그리 가만히 서있누?

    집중하고 계신 것 같아 차마 말을 걸기 어려웠습니다.

    흠.

    그는 내 대답에 들고 있던 보석을 가만히 놓고는 몸을 돌려 앉았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이만성은 이윽고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내게 말했다.

    흠흠. 오랜만에 보는……. 아무튼 이리 와 앉게.

    감사합니다.

    나는 확실히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남용할 생각은 없다. 아직 홀 플레인의 세상은 나를 0년차 사용자로 보고 있었고, 나는 그에 맞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노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도 하등 나쁠 건 없었다.

    그래, 보석을 사러 온 건가, 아니면 판매하러 온 건가?

    이 영감님은 장황하게 말하는 걸 싫어한다. 그렇다면.

    보석 판매입니다. 보석의 종류는 루비 하나고, 개수는 총 여덟 개입니다.

    좋아. 꺼내보게.

    사용자 이만성은 다른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평이 좋지 않았다. 꼬장꼬장한 성격도 한몫했지만 언제나 칼 같은 보석 감정으로 흥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높게 받으려는 사용자들은 다들 예외 없이 쓴소리를 들었고, 흥정 요구를 거절당했다. 가끔 성미 급한 사용자들이 덤비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만성은 마법사 사용자의 능력치가 절대 녹록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는 나름 쿵짝이 잘 맞는 영감이었다.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 끄는 걸 싫어하고,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보석을 감정해 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용자들은 그래서 이 보석상을 자주 찾곤 했다. 그래도 아주 차가운 성격은 아니라서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단골손님들은 알게 모르게 보석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쳐주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보석을 넣은 주머니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그가 곧바로 보석 주머니를 거꾸로 쏟자 차르르 소리와 동시에 붉은빛을 번들거리는 루비 여덟 개가 그의 앞으로 흘러내렸다. 폐허의 연구소 1층에서 발견했던 보석들이었다.

    그는 익숙한 듯 거침없는 손길로 가까이 있는 루비 하나를 손으로 집어 살폈다. 이리저리 돌리며 전체적으로 훑고, 손으로 톡톡 두들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에서 마력 연산이 일어난 걸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고유 능력의 발현이겠지. 그는 가치를 탐구하는 자로, 다른 루비들 또한 동일한 과정으로 하나씩 들어보았다.

    감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분 만에 여덟 개 전부를 감정한 그는 일렬로 보석을 죽 늘어놓은 다음 하나씩 손으로 짚으며 입을 열었다.

    맨 왼쪽부터 차례대로. 108골드, 112골드, 102골드, 117골드, 136골드, 122골드, 147골드, 101골드. 도합 945골드. 참고로 흥정은 받지 않네. 정확한 가격이니까. 아무튼 이 가격에 팔 생각이 없으면 그대로 나가…….

    좋습니다.

    …음?

    일말의 고민도 없는 즉답에 영감은 이채를 띤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용자들이 오해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보석을 대충 훑어보고 가격을 매기는 것 같지만, 나 또한 애초에 이 보석들을 개당 100골드 내외로 추정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사용자 정보를 확인한 이상, 눈앞의 사용자는 보석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정 실력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흥정 같은 거 안 하는가?

    아는 분께 소개를 받았습니다. 감정에 관해서 깊은 조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 또한 장인의 자부심을 믿습니다.

    그렇게 좋게 대해준 사람이 별로 없는데, 별난 놈이로군. 자네나, 자네한테 그 얘기를 해준 놈이나.

    하하.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그는 입에 연한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웃는 걸 보면서 헛기침을 연발했다.

    큼큼! 어디서 이런 것들을 구했는지는 모르겠네만, 원래 나는 이 정도 보석들을 웬만해서는 100골드 이상 준 게 드물어. 그래도 다들 질이 좋고 알도 굵군. 간간이 빛깔이 맑은 놈들도 보이고. 오랜 세월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흩어지지 않은 마력의 순도가 높군. 집약성이 높은, 마법사들이 좋아할 보석들이야.

    보석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의견도 달지 않고 순순히 동의하자 영감은 별난 놈을 다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야 던전 탐험으로 보석을 길 가다 돌멩이 줍듯 해서 그럴지 몰라도, 초보 사용자들이 몬스터를 상대로 보석을 줍는 건 나름대로 행운이었다. 특히 초반에 삶이 쪼들리는 사용자일수록 어떻게든 높은 가격에 팔려고 흥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나 또한 별일인 건 마찬가지였다. 1회차에 이곳에 들르면 항상 보석 주고 돈 받고 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가끔 주머니가 예상보다 묵직하면 오늘은 조금 더 넣어줬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나도 그도 따로 말을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만성이, 그것도 처음 보는 사용자한테 먼저 입을 열었다는 건 확실히 드문 일이었다.

    예의를 갖춘 내 대답에 그는 차분한 손길로 서랍을 뒤적이고는 이내 주머니 하나를 내 앞으로 툭 던졌다.

    1,000골드 주머니일세. 개당 6~7골드 정도 더 쳐주도록 하지.

    엇. 그러실 필요는…….

    내가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젓자 이만성은 심드렁한 얼굴로 더욱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 영감이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어차피 이번 한 번뿐이야. 이 정도의 질 좋은 보석을 구하는 것도 쉬운 건 아니고, 요새 손님들도 잘 안 오니까. 다들 원정이다 뭐다 정신이 팔려서. 쯧쯧. 그냥 가져가게. 그리고…….

    고맙습니다.

    더 이상 거절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며 주머니를 집었다. 끽해야 800골드 내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200골드의 추가 수입을 벌었다. 클랜 창설 신청을 할 때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곧 GP를 사용해 돈을 추가로 가져올 생각은 있었지만, 공돈은 공돈이니까.

    이만성은 넙죽 주머니를 챙기는 나를 보며 한 번 더 말을 이었다.

    …자주 오게. 저기 건너편으로 가지는 말고. 그곳보다는 내가 더 나을 걸세.

    여부가 있나요.

    흥. 볼일 다 봤으면 그만 나가봐.

    그는 선선한 내 대답에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보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가. 나는 처음 보는 그의 신선한 모습에 키득 웃고는 보석상을 나섰다. 주머니가 묵직한 게,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신전으로 갈 차례였다. 탐험 보고를 하고 증명을 받아야 실적으로 인정이 되니까. 그리고 아마도 지금쯤이면 세라프의 호출이 한 번 정도 들어왔을 때였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맞이한 사람은 저번에 비비앙과 왔을 때 보았던 사용자들이 아니었다.

    축복을 다루는 사용자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사용자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사용자의 이름, 그리고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금빛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리한 선한 인상의 소유자인 신관이 점잖게 고개를 숙인다. 눈앞의 남성은 사용자가 아닌, 거주민이었다. 어차피 계약서를 이용하러 온 게 아니라 탐험 보고를 하러 왔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보고는 거주민들을 거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사용자와 거주민은 일반적으로 귀족과 평민의 관계를 지닌다. 그러나 홀 플레인의 설정을 ‘도와주는’ 거주민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설정 도우미’로 선택된 거주민들의 숫자가 많은 건 아니다. 그중 신전에 있는 거주민들은 사용자들과 거의 동등한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정중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름은 김수현. 0년차 사용자입니다. 방문 목적은 탐험 보고입니다.

    오. 사용자 김수현이시군요. 일단 들어오시지요.

    탐험 보고 절차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보고하는 사용자는 본인이 탐험한 내용을 간추려 문서에 기록하고 제출하면 된다. 그러면 신전에서 일하는 거주민들이 제출한 기록서를 먼저 읽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들을 질문한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제출한 내용들을 토대로, 어디까지나 필요한 경우 조사단을 꾸리기도 한다. 대체로 조사단을 결성하는 경우는 도시를 위협할 수 있는 일들일 경우, 사용자의 탐험이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경우였다.

    나는 눈앞의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성에게 그동안 짬짬이 기록한 서류들을 건네주었다. 공손한 손짓으로 서류를 받은 그는 이윽고 진중한 얼굴로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흠.

    한동안 기록을 읽던 도중 거주민의 신음성이 들렸다. 시선을 돌리니 마침 그의 눈매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 클랜 창설을 맡은 고압적인 거주민 놈들이라면 당장에 기록서를 던지고 소리부터 질렀을 텐데, 확실히 신전에 있는 거주민들은 침착한 면이 있었다.

    그는 애매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보고서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더 질문할 부분들은 없어요. 0년차 사용자치고는 대단하지만… 믿을 수 없군요.

    이윽고 모든 기록을 읽은 듯 거주민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라면 당연히 조사단을 만들어 진상 파악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당장 도시의 대표 클랜이 자리를 비울 정도인데, 그렇다고 아무 보호도 없이 거주민들로만 도시 밖으로 나가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혹시 신전에서 조사단을 모은다면 해당 장소들로 우리들을 안내하실 수 있으신지요.

    힘듭니다. 정비 기간 동안 처리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비가 끝난 후 바로 다시 탐험에 나갈 예정이구요.

    내 단호한 거절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다시 그 장소로 조사단을 안내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면 혹시 증거들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너무 엄청난 기록들이고 현재 신전의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이 기록들이 사실이라면 필시 확인할 문제들입니다.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조사단을 꾸리려면 우리들을 움직일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어떤 증거를 원하시나요?

    거주민의 요청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를 보여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증거를 꺼낼지 묻자 다시 기록서를 잠깐 살핀 거주민은 두 개의 증거를 요구했다.

    칠흑의 숲 안에 있는 던전에서 얻은 거미의 영단과 상급 마족 벨페고르의 심장입니다.

    나는 곧바로 품에서 한 손에 잡히는 구슬을 하나씩 꺼내었다. 탁한 마기가 흘러넘치는 동그란 구슬 하나와

    Enjoying the preview?
    Page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