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 millions of ebooks, audiobooks, and so much more with a free trial

Only $11.99/month after trial. Cancel anytime.

메모라이즈 20권
메모라이즈 20권
메모라이즈 20권
Ebook222 pages2 hours

메모라이즈 20권

Rating: 0 out of 5 stars

()

Read preview

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269
메모라이즈 20권

Related to 메모라이즈 20권

Titles in the series (41)

View More

Related ebooks

Reviews for 메모라이즈 20권

Rating: 0 out of 5 stars
0 ratings

0 ratings0 reviews

What did you think?

Tap to rate

Review must be at least 10 words

    Book preview

    메모라이즈 20권 - 로유진

    1. 한결의 구출, 그러나… (2)

    나는 재빠르게 검을 던졌다. 일월신검은 핑그르르 날아가 망인의 목을 정확히 절단했고, 더 나아가 흙바닥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러나 머리만 남은 망인은 여전히 유정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한순간 몸이 휘청휘청했으나 유정은 곧바로 균형을 잡았다. 조금 전 예쁘장한 인상은 어디로 갔는지 표독스러운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곧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는가 싶더니 유정은 오른발을 번쩍 들어 올려 망인의 머리를 거칠게 짓밟았다. 나는 혀를 찼다. 하여간 저 성질머리 하고는.

    찌직!

    꺄아악!

    살이 찢어지는 소리. 유정은 얼굴을 와짝 일그러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된 비명을 들었는지 신재룡이 금세 달려와 유정의 상태를 살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전투는 거의 정리된 상태였다.

    이 XXX가!

    유정 양. 여성이 그렇게 입이 험하면 어쩝니까.

    에이, 쌍! 아, 짜증 나!

    …지금 치료해 드릴 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신재룡은 조곤조곤 타이르고는 곧바로 주문을 외워 유정의 발목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재룡의 옆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유정의 상처를 살폈다. 망인이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살이 거의 한 움큼은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장은 없겠습니까?

    예. 제 신성 주문 수준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혹시 몰라 물약도 넉넉히 챙겨왔으니 제대로 치료만 한다면 차후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신재룡의 장담에 마음이 놓였는지 유정은 안도한 얼굴로 한숨을 토해내었다. 그러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우우. 아파…….

    하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 빨리 좀 치료해요! 아파 죽겠는데.

    뭐? 이게 지금 어디서 신경질이야?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유정은 한껏 고개를 움츠렸다. 그러나 신재룡이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손을 도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유정은 살살 눈웃음치며 시선을 피하더니 땅에 박힌 일월신검을 뽑아 얌전히 내밀었다. 나는 검을 받은 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전투가 끝나고 바로 재정비에 들어갔는지 안솔이 부산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신재룡. 이번에 부상자는 몇 명입니까?

    두 명… 아, 유정 양까지 있으니까 세 명이군요. 한나와 한별이가 다쳤습니다. 그리 심각한 상처는 아닙니다.

    신재룡은 유정을 치료하느라 대수롭잖게 말했지만, 나로서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전위가 뚫린 겁니까?

    예. 클랜 로드가 맡으신 전방에서는 한 놈도 오지 않았지만 왼쪽에서는 세 놈이, 오른쪽에서는 다섯 놈이 오더군요. 엇차.

    이제 치료를 마쳤는지 신재룡은 유정의 발목을 몇 번 매만진 후,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나와 한별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둘은 안솔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세 놈은 키퍼였던 정민이가 묶었지만, 남은 두 놈이 한나와 한별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다행히 잘 처리하기는 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약간 다치는 건 어쩔 수 없었지요. 아. 한별이 검술 솜씨가 예상외로 뛰어나더군요. 갑자기 빛나는 검을 소환해 망인을 상대하는데,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으흠! 으흠, 으흠!

    하하하. 물론 유정 양도 왼쪽에서 들어오던 세 놈을 막아내 주었지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나 서운할 뻔했어요. 재룡이 아저씨. 히히.

    유정이 히히 웃자 신재룡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참 이 아저씨도 오냐오냐 하는 게 탈이라 생각하며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큰 부상자 없이 전투를 끝낸 건 좋았다. 그러나 진이 뚫렸다는 건 자못 씁쓸하게 다가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전투에 출현한 망인들의 숫자는 총 73명. 용이 잠든 산맥에 들어온 후, 네 번째로 치르는 전투였다.

    클랜원들은 확실히 전투를 치를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망인들의 공격 패턴이나 대응 등을 기억해 보다 수월히 상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산맥도 마찬가지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난도가 높아지는 추세라 결국에는 서로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래서 한결이가 필요한 건데.’

    각성 시크릿 클래스 신의 방패. 한결의 방어 능력은 안젤루스 신성 주문을 익힌 안솔도 몇 수는 접고 들어갈 정도로 사기적이다. 아마 지금 한결을 후방에 배치했다면 진이 뚫려도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부상자 치료와 재정비를 마쳤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진의 선두로 걸음을 옮겼고, 다시 나타날 한결을 기다렸다.

    이후 조금 기다리고 있자 또다시 한쪽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한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한결이 우리를 지나치기를 기다렸다가 곧 차분히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안개는 약간이지만 옅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완연한 밤이 찾아들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서 그런지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선두에 선 이상,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나는 쉬지 않고 클랜원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약 20분을 아무 말도 없이 행군했을 때, 누군가 살금살금 거리를 줄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언뜻 눈길을 돌리니 비비앙이 비장한 얼굴로 다가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아까 또 그 얘기?

    아까 또 그 얘기라 함은 지금 우리가 결계 속에 들어와 같은 장소를 헤매고 있다는 비비앙의 주장이었다.

    먼저 말을 던지자 비비앙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곧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며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맞아. 김수현. 내가 아까부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는데, 아무리 따져 봐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그게 아니라면 왜 백한결이 아까부터 계~속 빙빙 돌고 있겠어?

    흠……. 아니라니까.

    이익! 쫌! 그냥 아니다, 아니다, 이렇게만 말하지 말라고! 나한테는 증거도 있단 말이야!

    증거?

    비비앙은 억울해하는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탓에 클랜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는지 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물론 입술은 여전히 튀어나와 있었지만.

    비비앙은 한동안 씩씩대더니 과도한 몸동작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곧게 편 손가락은 왼쪽 흙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이쪽을 잘 보고 있어봐.

    왜?

    아~까 전에 내가 왼쪽 대지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견했어. 그리고 걸으면서 똑같이 부러진 나뭇가지를 또 하나 발견했고, 다시 걸으면서 또 하나를 발견했어. 떨어져있던 위치나 모양새가 전부 비슷한 거로 보아 이건 확실히……. 어, 어? 저, 저기! 저기, 저기!

    ……?

    ‘또’를 말할 때마다 삿대질하던 비비앙은 갑작스레 불침 맞은 멧돼지처럼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전방 30미터 앞에 비비앙의 말대로 성인 팔만 한 나뭇가지가 떨어져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자 비비앙은 발끈하며 후다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마 직접 나뭇가지를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어차피 한결이 가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나는 차분히 나뭇가지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사실 내가 아니라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제3의 눈으로 어떠한 결계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비비앙이 말한 나뭇가지들은 나도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보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비비앙의 말대로였다면 진작 행군을 멈췄을 것이다.

    하기야, 설명도 안 해주고 그냥 아니라고만 하니 비비앙의 답답한 심정도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아까 본 나뭇가지랑 위치, 모양새가 똑같아! 어때. 이제 내 말을 믿겠어?

    이윽고 비비앙은 나뭇가지를 던지듯 건네더니 양손을 허리에 척 얹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는 제3의 눈으로 나뭇가지의 절단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이익!

    비비앙. 다시 말하는데, 우리는 결계 속에 있는 게 아니야. 정상적으로 한결이를 따라가고 있고, 한결이가 주변을 배회하는 건…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왜! 어째서! 어떻게! 무슨 까달으로!

    까달이 아니라 까닭. 그리고 왜냐하면 네가 말한 나뭇가지들은 나도 오면서 보았던 것들이거든.

    뭐, 뭐라고?

    비비앙의 되물음에 나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들었다. 클랜원들은 어느새 전부 다 흥미로운 얼굴로 나와 비비앙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나뭇가지의 절단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떨어진 위치는 볼 것도 없이 절단면만 봐도 답이 나오지. 첫 번째 나뭇가지는 거의 수평이지만 미묘하게 사선으로 잘려있었어. 두 번째 나뭇가지는 아예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여 잘려있었고, 그리고 세 번째 나뭇가지는 두 번째와 비슷하게 잘려있지만 각도가 조금 더 완만했지. 어때.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나는 이 모든 설명을 아주 빠르게 마쳤다. 비비앙은 한두 번 눈을 끔뻑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네가 본 떨어져있던 나뭇가지들은 각각 다른 것들이라고.

    비비앙은 멍청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영리하고 똑똑하다. 곧장 내 말을 이해했는지 황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하, 하지만… 어째서?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잖아!

    글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어떤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의도라면……. 그럼 범인이 있다는 소리잖아! 말도 안 돼!

    왜 안 돼? 망인이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산맥이 스스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아니면 필드 효과의 일종일 수도 있고. 이러나저러나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미개척 지역이고, 우리는 침입자나 다름없지.

    사용자도 아닌 거주민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하는 게 신기했지만, 미개척 지역이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비비앙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조심스레 나뭇가지를 가져가더니, 심유한 눈동자로 절단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확인 사살을 해줄 요량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참고로 그 나뭇가지는 절단된 게 아니라 부러진 거야. 면이 한결같지 않고 삐죽삐죽하…….

    ‘어?’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한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앞선 나뭇가지들의 절단면은 한결같이 예리하게 베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한 나뭇가지는 베어진 게 아니라 부러진 것이다. 말인즉슨, 누군가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거나 또는 억지로 부러뜨렸다는 소리였다.

    나는 비비앙에게서 나뭇가지를 빼앗듯이 가져와 전체적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흔적은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발자국.’

    거의 지워지기는 했지만, 중앙 부분에 희미한 발자국이 남아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결을 찾았다. 그러나 그새 우리를 지나쳤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결이는?

    앞에 있어요!

    한별의 외침에 나는 바로 전방을 쳐다보았다.

    있었다. 한결은 어느새 우리를 약간 지나친 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둘러보는 게 길을, 아니 ‘자신’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한결이 여태껏 왜 산맥을 배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한결이는 마지막에 정신을 잃었던 거야.’

    안현과 한결을 습격한 망인은 무척이나 교활한 놈이었다. 한결의 반쪽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찾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려놓았다. 그래서 한결이 여태껏 비슷한 장소에서 자신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끼릭. 끼릭.

    그때, 머리 위쪽으로 돌연히 삐걱대는 소리가 흘러들었다. 아니, 이건 갈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굉장히 미약하기는 했지만, 뭔가가 나무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소리였다.

    소리의 진원지는, 나뭇가지가 떨어져있던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 즉,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을 거라 추측되는 나무였다.

    나는 나뭇가지를 툭 떨구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머리 위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2. 증오, 그리고 갈등

    다시 눈을 떴을 때, 가물가물한 시야로 어슴푸레한 회색빛 세상이 보였다.

    이 장소가 어디인지.

    나는 왜 여기 있는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제 더는 궁금하지 않다. 오직 마음속으로 어두운 절망이 자리 잡는 걸 느꼈다.

    사삭! 사사삭!

    왜냐하면 이미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보아온 풍경이니까. 아까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상황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싫어.’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쳐 보았지만,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봤자 지금 이 상황을 조작한 놈이 그만둘 리 없다는 것을.

    사삭! 사사삭!

    역시나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이 잠시 후 목을 칭칭 동여매는 가슬가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중으로 몸이 천천히 떠오른다. 이내 서서히 목이 조여오는 느낌과 함께 호흡이 막혀오기 시작.

    이제 이 상태로 한참 동안 고통 받다가 나는 다시 기절하겠지. 그리고 다시 눈을 뜨게 되면 회색빛 세상을 마주할 테고.

    덜컥!

    그때였다. 이제 곧 다가올 고통에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으려는 찰나, 천천히 올라가던 풍경이 갑자기 멈춘다. 그 탓에 이리저리 흔들려 목의 압박이 느슨해져 나도 모르게 설핏 눈을 뜨고 말았다.

    ‘벌써 멈출 리가 없을 텐데?’

    이윽고 시선을 한 바퀴 빙글 돌렸을 때, 나는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버렸다. 누군가 내가 매달린 장소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꾹 눈을 감았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고통만 받다가 죽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껏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에서 심장 고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꿈은 아닐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살그머니 눈을 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아래쪽에 서있는 형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형님이었다! 얼굴이 자세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언뜻 보이는 모습은 확실한 형님이었다. 아니, 비단 형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료들도 서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마음속으로 말 못 할 기쁨이 차올랐다.

    이제 곧 구출 받을 수 있다. 몇십, 몇백 번을 반복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

    문득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고통과 절망만 남은 속내에서 사라졌다 생각한 희망이 조금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컥!’

    그때, 잠시 느슨해졌던 목의 압박이 느닷없이 크게 조여들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고통 속에서 나는 다시 형님을 쳐다보려 애썼다. 그리고 간신히 시선이 닿은 순간, 돌연 이상한 위화감이 내려앉았다.

    ‘형님……?’

    까닭 없이 속이 착 가라앉는다. 얼른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한시라도 빨리 이 반복되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데. 그런데 형님은 왜 아까부터 가만히 있는 걸까?

    아니, 그전에. 아예 나를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그러고 보니 형님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다. 모습은 분명 형님의 모양새였지만, 나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전방만 응시하고 있다.

    ‘설마…….’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곧바로 아닐 거라 부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씩 기지개를 켜던 희망이 일순 고개가 꺾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마침내 형님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일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따로 선택지가 없었다. 자꾸 목이 조여오는 와중에도 나는 있는 힘껏 눈길을 내려 형님의 시선과 마주치려 발버둥 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보게 되었다. 무덤덤한 형님의 얼굴을.

    ‘저건… 형님이 아니야…….’

    한순간 형님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피부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더니 썩어 문드러져 버렸다. 입은 귓불까지 쭉 찢어져 검붉은 피를 흘러내렸다.

    그래. 나를 올려다보는 건 형님이 아니었다. 저것은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망인이었다. 말인즉슨, 지금 이러한 상황도 망인이 조작했다는 소리였다.

    ‘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한참 동안 나를 비웃던 망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한쪽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양은 영락없는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속으로 연신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분명 아닐 거라고, 망인이 조작한

    Enjoying the preview?
    Page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