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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14권
메모라이즈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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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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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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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14권 - 로유진

    1. 역관광이란 무엇인가? (2)

    나는 바로 다음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주위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5명의 부랑자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하나같이 공포감이 맺혀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을 목표해서 들어간 순간, 나는 커다란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아아아악!

    부랑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집중사격진을 만들다가 말았는지 남아있는 5명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도주했다. 잠시 동안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가 끝난 구역에는 10명이 훌쩍 넘는 시체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교적 깔끔했던 대지가 부랑자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로 여느 곳과 다름없이 변해간다.

    그런 광경을 보며 나는 치솟아 오르는 살기를 억누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추격해 모조리 도살하고 싶었지만, 고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일일이 쫓아갈 여유는 없다.

    수현. 고생하셨어요.

    이윽고 부근에서 고연주의 나른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제야 살육에 도취되어 있던 정신을 일깨울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빠져나가자고 했던 주제에 정작 머뭇거리는 꼴이라니. 문득 내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난 바로 고개를 돌려 클랜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고연주를 위시한 다른 클랜원들이 얼굴만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그중 나는 그림자 여왕과 눈을 마주쳤다. 이번 외곽구역을 돌파하는 데는 그녀의 공도 혁혁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림자로 한 번 덮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집중사격진에 휘말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적절한 원호였습니다. 과연 그림자 여왕다웠습니다.

    별말씀을. 낯간지러워요. 호호.

    고연주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시체들을 보며 대답했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거주민 거주 지역을 돌파할 때는 최대한 좌 방향으로 돌파했다. 이제 정말로 지긋지긋했던 외곽구역을 빠져나가기 위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왼쪽 사선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오는 클랜원들의 발소리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5분가량 달렸을까. 부서진 건물에 가려 난잡했던 주변 광경이 일순 뻥 뚫리며 시야가 훤해졌다. 비릿했던 피 내음이 약해지고 매캐한 연기가 코로 흘러 들어온다. 그리고 눈앞 정면에서 거대한 성벽 아래 높이 15척은 되어 보이는 뻥 뚫린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외곽구역을 벗어난 것이다.

    예상대로 성문은 텅 비어있었다. 난도질당한 경비병의 시체 두 구가 보이긴 했지만, 그리고 멀리서 다시금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동문은 확실히 비어있었다.

    일단 성문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생존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설령 추적을 해온다고 해도 도시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기에 따돌리는 데 훨씬 수월하다. 어찌 됐든 지금 중요한 것은 외부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후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도시를 탈출하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난 비로소 거리에 발을 걸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씽!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하자 치밀어 오르는 불길과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뭔가 길쭉한 것이 어둠을 타고 짓쳐 드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와 동시에 살육에 도취된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일부러 꺼뜨렸던 감각을 다시 끝까지 끌어 올렸다.

    목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제법 매섭게 느껴졌다. 뭔가 이상한 공격이다 싶어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 극한까지 활성화된 청각에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준선 정렬(Fine Shot). 마탄, 격발(Demon Bullet, Flush)!

    그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화끈한 기운이 뒤에서부터 덮쳐들었다.

    [마력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하늘의 영광, 태양의 영광이 상호작용하여 대응합니다.]

    [마력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잠재 능력, 전장의 가호(Rank : EX)가 대응합니다.]

    [하늘의 영광, 태양의 영광이 완벽히 방어합니다! 완전 방어로 판정되었습니다!]

    무수한 파편이 보호막을 두들기는 게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아무튼 방금 전의 일격으로 위치와 거리는 파악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직 건재하는 3층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조준하고 있는 어슴푸레한 인영을 확인한 후 곧바로 몸을 튕겼다.

    궁신탄영과 오로스로스 부츠의 능력을 발휘하자 건물은 순식간에 내게로 다가와 옥상을 아래 두게 되었다. 궁수가 작게 침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럼에도 대처는 훌륭했다. 당황은 짧게 끝내고 위로 뛰어올라온 나를 보자마자 곧장 시위를 당긴 것이다.

    씽! 씽! 씽! 씽! 씽! 씽!

    단 한 번 당겼을 뿐인데, 여섯 발의 화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허공으로 쏘아진 어두운 화살은 이내 꿈틀꿈틀 춤추듯 방향을 틀어 삽시간에 육 방위를 점거했다. 마치 살아있는 화살을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칠흑색 화살들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히 무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화살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크게 원을 그리듯 검을 휘둘렀다. 마력을 가득 담아서 그런지 푸른빛 궤적이 허공에 남아 반원을 그린다. 그리고 화살과 반원이 맞부딪치는 순간, 육중한 충격이 짜르르 손목을 타고 들어왔다.

    스카카카카칵!

    화살, 아니 마탄은 여지없이 잘려나가며 부채꼴 모양으로 퉁겨 나갔다. 이윽고 부서져 내리는 파편을 헤치고 달려들자 나에게 화살을 쏜 부랑자의 얼굴이 점점 더 크게 보인다. 코 아래를 흑두건으로 가려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긴 생머리나 가녀린 체형으로 보아 여성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크게 떠져있었다.

    나는 하강하는 힘을 그대로 이용해 무검을 세게 내리그었다.

    싹둑!

    ‘이것 봐라?’

    무검은 방금 전까지 여성이 나를 조준했던 자리를 예리하게 갈랐다. 그러나 여성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날의 대부분이 허공을 베어 가른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검 끝에 걸리는 느낌은 있었다.

    의아한 기분에 시선을 앞으로 두자 상의의 중앙이 일자로 찢어진 채 뒤로 물러서는 부랑자를 볼 수 있었다.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살결은 미세한 혈흔과 함께 가느다란 핏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궁수는 아주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졌다. 내가 화살을 쳐내는 것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후퇴한 게 유효했다. 사용자 정보도, 빠른 상황 판단 능력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다만 부랑자인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나는 바로 자세를 잡고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전투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부랑자는 궁수로서의 솜씨는 훌륭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리를 두었을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나 거리를 좁힌 이상, 궁수에게 승산은 없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궁수는 아예 이곳을 이탈하려는지 재빠르게 발을 놀리며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 민첩 능력치 98포인트. 거기에 오로스로스 부츠까지 신고 있으니 제아무리 실력 좋은 궁수래도 나와의 간격을 벌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한껏 벌어지던 거리는 단 2초 만에 무검에 사정거리가 닿을 만큼 줄어들었다. 흑두건 위로 보이는 궁수의 눈동자에 절망감이 어리는 게 보였다. 나는 왼발로 땅을 강하게 밟음과 동시에 무검을 신속하게 찔러들었다.

    푹!

    악!

    보이지 않는 검은 상의의 찢겨진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어가 궁수의 가슴팍에 꽂혔다. 부드러운 살덩이를 파고들어 가는 느낌. 그리고 이쯤이면 충분히 들어갔다고 여길 즈음, 나는 있는 힘껏 마력을 폭발시켰다.

    꿍! 꽝!

    마치 몸속에 폭탄을 심어놓고 터뜨린 것처럼 어마어마한 폭발이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궁수의 내구 능력치는 폭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는지, 이내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며 허공으로 비산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신체의 잔해들. 그 순간, 폭발로 튀어나온 뜨끈한 핏물이 내 전신을 덮쳤다.

    푸.

    ‘오늘은 완전 피로 샤워를 하는군.’

    실력자를 제거했다는 후련함도 잠시, 나는 입안까지 들어온 핏물을 퉤 뱉은 후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문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아니, 비어있지 않았다. 고연주가 나를 보며 태연히 손을 흔들었다. 클랜원들은 바로 나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클랜원들을 향해 돌아선 후 성문을 향해 크게 뛰어올랐다.

    드디어 대망의 탈출이었다.

    * *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백서연은 주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살기가 메아리치는 그녀의 고함에 곁에 있던 이들은 움찔 몸을 움츠렸다.

    항상 촉새처럼 떠들던 동수도, 새침데기처럼 투덜거리던 해연도, 멍한 백치미 소녀 가인도 하나같이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 백서연은 아끼는 부하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한 번 눈이 회까닥 돌면 본래의 잔혹한 본성이 가차 없이 드러난다는 것을.

    실제로 백서연은 지금 미쳐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연락이 끊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다. 하지만 광장과 워프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그 설마가 현실로 다가왔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자신의 부하들이 맡은 구역의 상황을 전해 들은 순간, 기어코 폭발한 것이다.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분노를 풀기 위해 사용자들을 보이는 족족 잔혹하게 살해하기는 했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확실히 백서연은 ‘진짜 부랑자’치고는 비정상적이라 여길 정도로 흑백논리가 강한 부랑자였다. 오죽하면 실력은 둘째 치고서라도 현이 그녀에게 지휘를 맡기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할 정도였다.

    백서연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다시 말해. 지금 피해가 몇 명이라고?

    …….

    백서연의 물음은 박동수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이리저리 눈치만 보며 침만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녀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자마자 황급히 입을 열었다.

    과, 광장에 있던 65명, 워프 게이트에 있던 77명. 도합 142명이 전멸했어요.

    …….

    또 거주민 주거주 지역의 피해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총 129명이며 그… 아직 수색 중이라고 해요.

    하……. 그럼 271명이 죽었다고? 그것도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가?

    백서연은 기도 안 찬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동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한 번 크게 괴성을 질렀다.

    씨바아아아아아알!

    쨍그랑!

    백서연은 평소 애용하던 단검을 내동댕이치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실상 이번에 뮬을 침략한 부랑자들의 숫자는 총 2,800명에 달했다. 물론 뮬에 있던 사용자들보다는 적은 숫자였지만, 이들은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수뇌부들과 그들 휘하의 부대 몇 개를 제외하면 가히 최정예라 봐도 좋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부랑자 말살 계획에서 무사히 도망쳤으며, 대륙을 횡단하고 미개척 지역을 건너온 이들. 고르고 고른 알짜배기들 중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는 이들.

    즉, 지금껏 끔찍이도 아껴온, 즉시 전력감을 넘어 최고급 전력으로 분류되는 부랑자들이었다.

    그 2,800명 중에서 백서연이 지휘한 부랑자들은 총 800명이었다. 이 중 300명은 자신이 직접 이끌었고, 나머지 500명은 각각 300명과 200명으로 나눠 좌우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200명이 맡은 구역이 바로 거주민 주거주 지역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70%가 거주민에 해당하는지라 점령에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에 100명을 적게 배정한 것이다.

    물론 아무리 부랑자들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도시를 습격한 이상,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습격이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벌써부터 병력의 10%를 잃었다. 그중에서도 사망한 부랑자들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백서연의 부하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피해가 적으리라 예상한 외곽구역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게 지금 바로 백서연이 눈이 뒤집힌 이유였다.

    그때였다. 저기 멀리서 외곽구역을 지원하러 간 인원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달려온 부랑자들에게로 모였다. 백서연을 제외한 모두는 눈을 감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다음에 나올 말을 익히 예상했으리라.

    외곽 후미 지역에서 사망 인원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몇 명인데.

    17명입니다! 그, 그런데 사망자 중에 정규강 님과 이지현 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7명……. 뭐, 뭐라고?

    부랑자의 보고가 끝난 순간, 사위로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다. 정규강은 실력은 물론이고 부랑자들 중 연차가 높은 축에 속했고, 그만한 명성 또한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지현은 시크릿 클래스 ‘마탄의 사수(Freischutz)’를 가진, 귀중한 전력이다. 무엇보다 백서연이 가장 크게 믿고 의지하는 이들 중 두 명이었다.

    백서연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부랑자를 응시하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서서 멱살을 쥐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않고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시체까지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제대로 확인했어? 잘못 본 게 아니라?

    예, 예! 그때 간신히 도망친 인원이 있었는데, 놈이 증언해 주었습니다! 트, 특히 정규강 님은 한 놈한테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셨다고! 그리고 이지현 님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확실치 않아?

    그, 그게, 신체가 완전히 찢어져 이곳저곳에 흩어진 상태라……. 그래도 일단 얼굴이나 옷으로 보면……!

    툭.

    백서연은 그대로 부랑자를 떨어뜨렸다. 동수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비단 동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부하의 멱살을 잡았을 때부터 백서연의 이성을 근근이 이어주던 줄이 뚝 끊겼다는 것을.

    백서연은 차분히 몸을 돌려 아까 떨어뜨렸던 단검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인.

    예!

    지금 당장, 도망쳤다는 놈 내 앞으로 끌고 와. 아니, 시체 옆에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전해. 살고 싶으면 그놈의 특징이나 인상착의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생각해 놓고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이해인은 후다닥 뛰어나갔다. 백서연은 다음으로 동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동수.

    네, 네.

    너는 지금 당장 추적 준비해. 달리기 빠른 놈들로 최소 50명은 모아놔.

    누, 누님. 지금 한창 습격 중인데 추적이라……. 윽!

    일순 백서연의 눈동자에서 붉은 안광이 폭사되듯 흘러나왔다. 박동수는 온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양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럴수록 누님이 냉정하게……. 큭!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고, 설령 나갔다고 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아, 씨! 그래도… 보고는… 해야 하잖아요! 누님!

    …….

    젠장, 알아요! 누님이 지현 누님이랑 규강 아저씨랑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지 알고 있다고요. 누님 마음 이해하니까, 그럼 최소한 말이라도 하고 가요. 지금 광장이나 워프 게이트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남문에 예상보다 빠르게 사용자들이 몰리고 있어요. 남문이요. 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누님? 가더라도 최소한 할 거는 하고 가자고요! 누님이 똥 싸는 건 좋은데! 적어도 치워줄 사람은 필요할 거 아니에요!

    백서연은 박동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던 안광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박동수의 목울대가 두어 번 움직인 순간, 백서연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일단 모아놔. 먼저 모아놓고 보고해. 알겠어?

    제길. 보고가 들어가기도 전에 나갈 생각……. 아, 알겠어요. 지금 모을게요. 모은다고요.

    박동수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둥지둥 한쪽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백서연은 잠시 동안 박동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쏜살같이 앞쪽으로 튀어나갔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복수심이 한층 격렬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백서연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의 선택으로 인해 차후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그리고 대륙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그녀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아주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2. 사냥당하는 악마들, 사냥하는 악마

    하늘은 어두웠다. 어두운 하늘에 떠있는 달은 세상에 시퍼런 빛을 오롯이 뿌리고 있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와 풀은 달빛을 머금어 서슬 퍼런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한밤의 숲속은 도시보다 훨씬 캄캄하고 침침하다. 그러나 이런 어둠과 환경은 오히려 내게 반길 만한 것이었다. 과거 요정의 숲에서 겪었던 경험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여궁수를 처리하고 나서 나는 클랜원들과 함께 바로 뮬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비록 도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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