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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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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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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등을 5도만 구부려도 죽는 죄수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수박 살리기 스펙터클.

 

나라 자체가 형벌 국가인 곳이 있다. 이곳의 모든 죄수들은 귀 뒤에 박힌 칩 때문에 조금도 등을 구부릴 수 없다. 일명 '바른 자세 고문'이다.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들로 미어터지는 주변 국가들은 죄수들의 이러한 고문 생활을 리얼리티 쇼로 방송에 내보내며 사회 안전을 유지한다. 폭동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신참으로 죄수의 나라에 입장하려던 와중에 입구에서 수박씨를 발견하는데……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Jun 27, 2023
ISBN9781637931486
수박연가
Author

아임 한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입니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합니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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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연가 - 아임 한

    서문

    <아무 말 기기괴괴>라는 시리즈를 쓴 적이 있다. 세 개의 단어를 랜덤으로 받아 이야기를 쓰는, 놀이와 같은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하면 짧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사전이나 타인이 랜덤하게 던져준 단어를 이야기에 엮으려면 아무래도 간결한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처음에는 실제로 그랬다. <골프, 가죽, 왕>은 읽는 데 5분도 안 걸릴 정도였다. <운동화, 하모니카, 자랑>과 <메일, 볶음밥, 미술>도 그랬다.

    그러나 그 짧은 와중에도 이야기들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두피, 북, 지갑>에서는 단편 소설 길이가 되었고, <수돗물, 낙서, 오지> 때 잠깐 초단편의 특성을 회복했다가, 다시 <재판, 열, 턱>에서 일반 단편 소설처럼 되었다.

    ‘나는 왜 짧은 이야기를 못 쓰나,’ 괴로워하고 있던 와중에 ‘자세,’ ‘나라,’ ‘수박’이라는 세 단어가 키워드로 등장했다.

    얘라도 짧게 좀 써봐야지. 그러면 <아무 말 기기괴괴> 모음집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

    그런데 웬걸. 초단편을 못 써서 단편 소설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중편이 나왔다. 얘는 짧은 맛에 읽을 녀석이 아니었다. 제목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이 이야기, <수박연가>다.

    제목에서 탈락된 ‘자세’와 ‘나라’ 키워드에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수박이 달아서 그랬다.

    1

    등을 구부리면 죽는 나라가 있었다. 그냥 비유적인 게 아니라, 직각이어야 할 등이 5도 이상만 앞으로, 아니면 뒤로, 아니면 심지어 좌우로 기울어져도 그 사람은 죽었다.

    누가 가까이 접근해서 그 사람을 칼 혹은 총으로 죽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현대식 사형 집행관이나 옛날식 망나니 같은 자는 없었다. 그저 이 작은 나라가 주변 국가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을 형벌로 보내는, 그야말로 나라 자체가 감옥인 곳이라서 그랬다. 그래서 이곳에는 최첨단 레이저 테크놀로지 기능이 셀 수 없이 많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이스트 영화를 본 적 있는가?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서 은행처럼 돈이나 귀금속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터는 장르다. 딱 그런 영화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을 보관하는 방에 설치되어 있는 레이저 같은 것이 이 작은 나라에는 온 국토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 레이저가 너무나 최첨단이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빨간 광선을 피해서 될 일이 아니었단 뜻이다.

    따라서 누가 자세를 구부정하게 하기만 하면 삐비빅! 레이저가 그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그 죄수의 귀 뒤에 박힌 칩을 작동시켰다. 아주 작은 칩이었다. 새끼손톱만 한 것. 그게 독극물을 뿜어내고, 그것을 죄수의 심장이 펌프질해 피가 열심히 온몸으로 실어 나르면, 그자는 죽는 거였다.

    독에 더럽혀진 피는 죄수의 몸 안에만 있었다. 피가 마룻바닥, 아니면 대리석 바닥,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곳에도 흐르는 일은 절대 없었다. 죄수들을 이 나라로 보내는 주변국들은 청소 따위의 뒤치다꺼리에 자기네 세금을 쓰는 걸 싫어했다. ‘바른 자세 고문’이라고 불리는 이 형벌이 리얼리티 쇼의 형태로 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실제로 범죄율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이 죄수들을 살려 두지도 않았을 터였다. 밥? 침실? 죄수의 인권 따위에 쓸 돈이 어딨단 말인가?

    심지어 옷도 그저 천 쪼가리였다. 그러니까, 참, 옷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할 지경이었다. 왜, 그, 병원 같은 데서 검사를 하기 전에 환자에게 입히는 옷 중에서도, 뒤가 뻥 뚫린 일체형 옷 있지 않은가? 그 옷에서 뒤가 뚫리지 않았을 뿐이지, 생김새는 비슷했다. 그야말로 얇은 천으로 만든 포대자루 같았다. 특히 여름엔 그랬다. 소매가 짧고, 무릎까지만 닿기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동복으로 소매가 길고 발목까지 닿는 포대를 주었다. 이렇게 인권을 챙겨주는 척하면서도 하복동복, 또는 동복하복 갈아입기 행사가 진행될 때 가장 많은 죄수들이 죽었다. 시청률은 치솟았다.

    옷의 색은 전부 하얬다. 심지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운동화도 하얬다. 그 운동화 바닥에 붙은 고무까지도. 이 비주얼은 흡사 정신 병원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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