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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화가: 싱싱의 그놈
유랑 화가: 싱싱의 그놈
유랑 화가: 싱싱의 그놈
Ebook156 pages2 hours

유랑 화가: 싱싱의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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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보이는 것만 믿고 산 건 아니지만 보이는 대로 그리고 보여주는 삶을 살았던 초상화가 정시연.

어느 날, 잘만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만다. 심지어 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 들리게 되는데.

나름 실용적이면서도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삶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시연은 적응하고 흥하고, 심지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나쁜 녀석들과의 싸움에서 승할 수 있을까?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Jun 14, 2022
ISBN9781637930793
유랑 화가: 싱싱의 그놈
Author

아임 한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입니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합니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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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랑 화가 - 아임 한

    1

    무대

    맨 처음 시연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무대 위에서였다.

    무대. 왜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것도 초상화를 그리는 작자가 조용한 작업실 어딘가에 처박혀 얌전히 일이나 하지 않고 굳이 시끄러운 공연장의 플랫폼에 올라갔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이 시연이라는 자는 왜 한사코 가진 것 없는 척, 맨발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또한 그러면서도 왜 최대한 이목을 끌도록 몸에 착 붙되 소매도 길이도 긴 샛분홍색 드레스를 의상팀에 주문하고, 헤어/메이크업팀에는 파마 풀린 긴 머리를 산발로 만들고 화장도 신라 시대 화랑만큼 기괴할 것을 요구하고, 조명팀에는 화려하고 어지러운 네온 빛줄기를 바랐는가.

    의아함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건 시대를 잘못 알아서다.

    그래. 당신. 초상화가라면 모름지기 자기 작업실이든 클라이언트의 대저택이든 어딘가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예술 행위를 한 다음, 그것이 끝마쳐지면 완성품만 ‘짜잔!’ 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여기는 당신. 아니면 심지어 공개의 순간조차 없고, 수백 년 전 메디치 가문을 연상시키는 후원자의 보호 아닌 보호 아래에서 우아하고도 안전하게 예술을 할 줄로만 아는 당신. 말하자면 완성품, 그리고 극도로 소수인 계층의 이타주의를 통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고 믿는 당신.

    그런 시대는 애저녁에 저물었다.

    초상(肖像)계에서는 그 구시대의 초상(初喪)을 알린 작가가 시연이었다. 처음에는 뮤지션이 작곡 과정을 공개하고, 배우는 #bts를 태그하고, 특히나 시연과 같은 일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작업 과정 영상을 올리길래 ‘나도 한 번?’ 싶어서 그랬다.

    잃을 것이 없었다. 당시 시연은 다섯 명의 다른 작가와 함께 작업실 겸 수면실 겸 거실 겸 부엌 겸…… 그야말로 화장실 빼고는 모두 ‘겸’인 거주 형태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낮이 언제 시작하고 밤은 언제 끝나는지, 만약 밤이 시작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고요함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어제 점심에 최초로 끓였으나 그날 저녁에 재탕됐으며,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재탕된 된장찌개 냄새는 언제 없어질 건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일러스트레이터가 화가와 같은 작업을 한다고 하면 얼굴이 시뻘게지며 제 인생 최대의 모욕인 양 반응하는 다섯 하우스메이트들이었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월급이 쥐꼬리만 하다면 시연은 물론이고 이 다섯 작가들의 월급은 쥐꼬리를 수억 개로 잘라 믹서기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가 세상을 수백 년 떠돌아 닳고 닳아 없어지기 직전까지 간 상태보다도 적었다.

    돈이 아무리 다가 아니라지만, 돈 없는 게 자랑은 아니라고 시연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과 계속 같이 산다면,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뇌될 것만 같다는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참. 굳이 다른 직종이 아니라 배우가 #bts를 태그한다고 한 것은, 시연의 이 시절이 bts가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behind the scenes를 의미할 정도로 오래전이었음을 뜻한다.

    심지어 방탄소년단 중 몇 명은 그 당시 태어나긴 했었나? 그렇게까지 어리진 않은가? 미성년자는 아니잖아. BTS도 활동한 지 한참 됐잖아. 시연은 다른 젝키와 핑클의 팬들, 그러니까 그 나름 아직은 ‘요즘 세대’라고 대강 퉁쳐지는 사람들과 사춘기를 보내지 않았는가? 시연이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에 다닌 세대의 끝자락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니…… 근데 설마 진짜 미성년자인가?

    시연은 궁금했으나 검색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런 건 모르는 편이 나았다. 아무튼 시연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이가 많다.

    처음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 올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하는 것처럼 캔버스도 좀 나오게, 자신도 좀 나오게 구도를 잡고 ‘녹화’를 눌렀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영상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도,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도 상상을 못 하던 때였다. 시연조차 그랬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 그저 반쯤은 관심에 목말라서, 반쯤은 뭐라도 세상에 내놓는 용감한 사람들이 멋져 보여서 올렸다. 하지만 업로드 스케줄? 그런 게 뭔지도 몰랐다.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영상이 올라가고 며칠 후, 문제라면 문제고 축복이라면 축복일, 시연은 생각지도 못한 요소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연 본인이었다.

    정치인이 아름다우면 지지율이 올라가고, 범죄자가 아름다우면 무죄를 선언해야 한다며 팬클럽이 생긴다. 미친 시대다.

    그 미친 시대에 가난했던 초상화가 하나가 댓글을 훑어보고는, 프레임 안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요소가 자기 그림이 아니라 자신임을 깨달았다고 나무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있다면 필시, 누군가가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도록 관심이 없는지를 눈곱만큼도 모르는 인간들이겠지. 이는 비단 ‘예술’의 경우에만 그런 게 아닌데도 말이다.

    세계 ‘최고’ 의대에 들어가면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아줄 것 같은가?

    결혼을 어마무시하게 ‘잘’하면?

    돈을 ‘억’ 소리 나게 벌면?

    지나가다 알아볼 순 있을 것이다. 네트워킹 이벤트며 동창회 같은 데서. 하지만 진짜 관심, 진짜 애정, 존경, 심지어 존재의 인정 같은 걸 원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이는 매우 잔인하지만 또한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저절로 보장하는 아름다운 현상이다. 하지만 당시 시연은 이를 아름답게 여길 겨를이 없었다. 자유를 갈망할 정도로 구속되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고마웠다.

    제발 사람들이 지들 욕구를 시연에게 투영하는 게 아니라, 시연 본인을, 그게 아니라면 제발 초상화 자체라도 봐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의식적으로 깨닫게 된 건 한참 나중이었다.

    무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음을 깨달았을 즈음.

    이백 명이 들어가는 공연장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쿵. 쿵. 쿵. 일정한 리듬이 박동 쳤다. 장르의 정확한 이름은 몰랐다. 여하튼 시연은 ‘가사가 없되 비트가 일정해서 전쟁에 나가는 느낌이 나는 음악’을 주문했고, 음향팀이 가져온 곡 중 하나가 이것이었으며, 따라서 이것을 골랐을 뿐이었다.

    시연이 서 있는 무대 아래로는 검정의 파도가 물결쳤다. 드레스코드 때문이었다. 현실적 이유는 관객들이 갖가지 색의 옷을 입으면 카메라에 담기는 그림이 예쁘지 않아서였고, 시연이 자기 브랜드에 맞게 승화시킨 이유는 ‘타인이 순간에 녹아듦에 해가 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효과는 완벽했다. 움직이는 검정 물결 위로 보라와 파랑의 네온 조명이 춤추었고, 시연만 샛분홍색이었다.

    누가 주인공인지는 영상이란 매체를 처음 접한 갓난아기도 알 수 있을 터였다. 시연 앞에 거대한 이젤과 캔버스가 놓여 있는 것쯤이야 무시할 수 있었다. 걔들은 나무였고 천이었고 바랜 갈색이었고 흰색이었다. 번쩍이는 조명의 향연과 현대 기술에 힘입어 몇 시간 만에 세워지고 몇 시간 만에 또 허물어지는 무대, 그리고 관객석에 둘러싸여 있으니, 수백 년 역사를 견뎌온 캔버스와 이젤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구식 물체들 건너편에 서 있는 남자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어딘가에서라면 참으로 아무것이었을, 누가 봐도 잘생긴 자였다. 그 잘생김을 모두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보도록 하려고 의상팀은 그에게 검은 천을 입힌 상태였다.

    말이 좀 이상한데, 그야말로 천 쪼가리를 넝마처럼 둘렀단 뜻이다. 그리고 그 천은 촘촘하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듬성듬성한 건 아니었고, 시스루. 그래, 시스루였다.

    완전한 노림수였다. 인간이란 제아무리 심심한 범인(凡人)이라도 상상의 동물이라서, 다 벗은 것보다는 가린 척한 게 자극적이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인기가 어떻게든 결국 성적 매력으로 귀결된다는 건 이 업계에서도, 저 업계에서도, 업계라고 불릴 만한 것들에서는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가상 애인의 역할을 하는 인플루언서가 다른 인플루언서를 만나면 어떻게 된다? 인플루언스의 폭발이 일어난다. 모두가 바라는 바다. (아, 그게 요즘 시연의 타이틀이었다. 초상화가가 아니라, 인플루언서.)

    이 남자는 팔로워가 많았고, 스캔들도 많았으며, 광고도 찍었고, 자기 이름을 단 헬스클럽 체인이 있었다나, 뭐라나…… 아니, 그건 이 사람 이전 사람이었었나…… 이재원인지 이제원인지 이재훈인지,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전에 이재원과도 이런 공연을 하고, 이제원하고도, 이재훈하고도 했을 테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관객이 무대로 올라와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면 그 모든 이름들이 뒤섞여 흐릿해졌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래서 시연은 그리게 될 자의 얼굴을 그리는 순간 전까지는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것도 아닌데 사람 얼굴을 뜯어보는 데 습관이 들다 보면, 노동을 주체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더 큰 문제는, 같은 얼굴을 계속 보다 보면 얼굴 아닌 것들이 섞인다는 점이다. ‘얼굴 아닌 것’이라 함은, 시연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배경, 시연이 생각하는 그 사람의 성격, 취향, 꿈 등을 뜻했다.

    ‘시연이 생각하는’이 키포인트였다. 사실일 필요는 없으나 사실로 여겨지는 것.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섞이게 되면 마치 지방이 과하게 낀 내장 같은 초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암……

    아니 사실, 솔직해지자면, 시연은 원래 사람 얼굴에 너무 관심이 많았다. 자꾸 쳐다보다가 처맞을 뻔한 적이 몇 번 있게 되면, 그 이후에는 이렇게 무슨 가짜 이유를 들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 때면 쳐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시연!

    인이어로 들려오는 민진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시연은 움찔했다.

    미쳤어? 움찔하기는.

    그렇다. 나의 행동과는 별개로 누가 자꾸만 인이어로 이래라저래라하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면, 뭐라 지껄이든 흘려듣는 척하면서도 다 알아듣는 내공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시연은 무대 위에서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관객들은 이 정도 실수는 실수라고 눈치채지도 못했다. 전쟁 행진곡 같은 음악 때문에 사람들의 눈은 열망에 가득 차 빛나고 있었다. 그게 네온 조명이 그들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뚜렷이 보였다. 땀도 흘리고 있었다. 공연장이란 아무리 냉방을 해도 결국 더워지게 되었다.

    이 순간 이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다. 시연은 의식을 준비하는 고대 사제처럼 물감을 가져오고, 섞고, 그야말로 쇼를 했다.

    쇼걸. 어떤 사람들은 시연을 그렇게 불렀다. 처음엔 기분 나빴는데 이제는 상관없었다. 아니, 상관없다고 여기려고 노력했다. 그런 말을 쓰는 작자들은 마치 지들이 지들 돈으로 시연의 작품 내지는 시연 자체를 샀다는 뉘앙스를 풍기느라 그런 단어를 쓰는 모양이었는데, 실제로는 시연의 수입에 그놈들 돈은 아마 한 푼도 섞이지 않았을 터였다. 원래 그런 놈들은 예술에 돈을 쓰지 않았다. 해적판을 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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