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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유토피아: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유토피아: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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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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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경제적 평등, 공유사회…
현재 논의되는 이상국가의 기본 틀을 이미 500년 전에 제시하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토머스 모어의 신념과 사상이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서의 파격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수작, 『유토피아』가 현대지성 클래식 33번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절대왕정의 시대를 살면서도 ‘공화국’을 이상국가로 제시했는데, 당시까지의 이상향에 관한 모든 사상과 철학적 논의를 한데 모았고, 이상국가 시민의 의식주와 경제활동, 정치·사회 생활 등 세밀한 부분까지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듯 묘사했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시대에 영국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치며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숲에는 도적 떼가 몰려 있었고 상인들은 무사를 고용해야만 했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민이 몰락하고 런던의 인구는 폭발하여 온갖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모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범죄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가 16세기에 언급한 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정책, 경제적 평등과 같은 여러 급진적 사상은 후대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으로 연결되었으며, 21세기인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최상의 공화국을 철학적 담론이 아닌, 하나의 실제 모델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라는 주제를 인문주의자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소설로 풀어낸 이 책은 이 시대의 이상향을 꿈꾸는 독자의 사유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Nov 2, 2020
ISBN9791191174601
유토피아: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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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탁월한 인물 라파엘 히틀로다이오⁶가 말하고 영국의 유명한 도시 런던의 시민이자 사법집행관 대리⁷인 고명한 토머스 모어가 기록한 최상의 공화국 형태에 관한 글

    6히틀로다이오스는 그리스어로 말도 안 되는 것, 시덥잖은 것을 뜻하는 ‘휘틀로스’와 나누어 주다를 뜻하는 ‘다이오’를 합성한 말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는 자라는 의미다. 이 책에서 라파엘은 유토피아라는 이상적인 나라를 다녀와서 토머스 모어에게 그 나라에 대해 얘기해준 화자로 등장한다. 그의 이야기는 도무지 믿기 힘든 말도 안 되는 것들이어서, 이런 별명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7토머스 모어는 1510년부터 런던의 사법집행관 대리를 맡아 일했다. 그의 주된 업무는 런던에서 발생한 아주 다양한 소송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커스버트 턴스톨]

    훌륭한 군주로서 모든 자질을 갖춘 무적의 영국 국왕 헨리 8세 폐하⁸께서는 최근에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신 카를로스 각하와 꽤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되었다.⁹ 그래서 이 문제를 협상으로 매듭짓기 위해 나를 사자로 삼아서 플랑드르로 보내셨다.¹⁰ 최근에 모든 사람의 열렬한 축하 속에서 국가 공문서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된 커스버트 턴스톨이 나와 동행하게 되었다.

    8헨리 8세는 1509년에 17살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고, 교양 있고 정의로우며 평화를 사랑하는 인문주의자로서 모든 자질을 갖춘 군주로 보였다. 그래서 토머스 모어는 그의 즉위를 열렬히 환영하여 라틴어로 된 몇 편의 시까지 지어 축하했다. 하지만 헨리 8세가 프랑스를 침공하려고 시도하면서, 이 책을 쓴 1516년에 이르러서는 왕에 대한 토머스 모어의 생각이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9카스티야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 있던 가톨릭 국가로, 1035년에 백작령에서 왕국이 된 후에 1516년에는 스페인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1516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된 카를로스가 네덜란드를 지배하게 되면서, 네덜란드는 수입된 영국 양모에 엄격한 관세를 부과했고, 헨리 8세는 이에 맞서 네덜란드에 양모 수출을 금지했는데, 여기서는 이 양모 교역을 둘러싼 분쟁을 언급하고 있다.

    10헨리 8세는 영국의 양모 교역에 타격을 주었던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515년 5명으로 구성된 협상단을 플랑드르로 보냈다. 플랑드르는 주로 현재의 벨기에 동플랑드르와 서플랑드르 두 주로 구성된 지역을 가리킨다. 벨기에는 1515년에 스페인에 병합되었다. 이 협상단의 총책임자는 커스버트 턴스톨(1474-1559년)이었는데, 그는 존경받는 학자이자 영향력 있는 성직자였다.

    그는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를 칭찬하는 말은 일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내가 그의 친구라서 나의 증언이 참되고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성품과 학식은 무척 뛰어나서 나로서는 제대로 소개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의 그러함이 어디에나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고 잘 알려져 있는데, 내가 그를 굳이 소개하는 일이 등불로 태양을 비추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스티야 왕에게서 이 일과 관련된 협상을 위임받은 사람들과 미리 약속을 잡고서 브뤼헤¹¹에서 만났는데,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이 협상단의 책임자이자 우두머리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브뤼헤 시장이었지만, 그들의 입과 심장은 카셀 수도원 원장인 헤오르게스 데 템세케였다. 그는 훈련받기 전부터 이미 타고난 달변가였고, 법률에도 정통했다. 타고난 능력으로 이런 일들을 오래 하다 보니 협상에 아주 능숙했고 탁월했다.

    11브뤼헤는 영국의 양모 교역에서 중요한 항구였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서 서북쪽으로 9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헤오르게스 데 템세케도 브뤼헤 태생이다. 뒤에 언급되는 안트베르펜은 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벨기에의 도시로 수도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여러 차례 만났지만 몇 가지 문제에서는 충분한 합의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며칠 동안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기 왕의 의견을 묻기 위해 브뤼셀로 떠났다. 그 동안에 나는 볼 일이 있어 안트베르펜으로 갔다.

    [페터 힐레스]

    거기에 머물면서 자주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장 반가웠던 사람은 페터 힐레스¹²였다.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한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학식으로나 인품으로나 그와 비견될 만한 청년을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12페터 힐레스(1486-1533년)는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서 에라스무스의 문도이자 친구가 되었고, 1510년에 이 시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에라스무스는 1515년에 토머스 모어에게 그를 소개했다. 이때에 토머스 모어(1478-1535년)는 37세였고, 페터 힐레스는 29세였다. 에라스무스(1466-1536년)는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문예부흥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의 인품은 대단히 훌륭했고, 박학다식했다. 게다가 모든 사람에게 정직하고 친절했으며, 특히 친구들에게는 진실한 마음과 사랑과 신뢰와 우정을 쏟았기 때문에, 세상 어디를 다 찾아보아도 모든 면에서 그토록 완벽한 친구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그는 보기 드물게 겸손했고, 그 사람만큼 꾸밈이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으며, 그 사람만큼 정직하고 소박하면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의 말은 아주 유쾌했고,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기지가 넘쳤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4개월이나 되어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해서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였지만 그와 함께 달콤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런 마음이 상당 부분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나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했다. 이 성당은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건물이었고,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그런데 미사를 마치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려던 찰나에, 그가 이제 막 노년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어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있었고, 수염을 길렀으며, 어깨에는 망토가 제멋대로 걸려 있었다. 그 얼굴과 행색을 보고 뱃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에 페터도 나를 보고는 즉시 내게로 다가와 인사했다. 그는 내가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나를 거기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더니, 자기가 방금 이야기 나누던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을 보십시오! 지금 막 저 사람을 데리고 선생님께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당신이 데려오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는 말했다.

    저 사람이 어떤 분인지를 선생님이 알게 되면, 저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분을 환영하게 되실 겁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미지의 나라에 대해 저분만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선생님은 그런 얘기를 몹시 듣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내 추측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즉시 선장일 것이라고 직감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라파엘 히틀로다이오]

    "하지만 그건 한참 잘못 추측하신 겁니다. 저 사람은 배를 타고 항해하기는 합니다. 한데 팔리누루스¹³ 같은 유형이 아니라 오디세우스 같은 유형이지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플라톤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저 사람의 이름은 라파엘이고, 성은 히틀로다이오인데, 라틴어도 좀 알고, 특히 그리스어에 정통합니다. 그가 라틴어보다 그리스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이유가 있답니다. 저 사람은 온통 철학에 빠져 있는데, 로마인은 철학 분야에서 세네카와 키케로의 몇몇 저작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네요.¹⁴

    13팔리누루스는 베르길리우스가 쓴 장편 서사시인 『아이네이스』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아이네아스 일행이 탄 배를 몰던 조타수였다.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으로,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후 10년에 걸쳐 온갖 모험을 한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즉, 라파엘은 돈이나 벌자고 배를 모는 단순한 선장이 아니라, 참된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플라톤 역시 참된 지식을 찾기 위해 널리 여행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4토머스 모어가 1518년에 옥스퍼드에게 보낸 서신 속에 그의 이러한 견해가 나타나 있다. 세네카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고, 키케로도 스토아학파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드러날 히틀로다이오의 생각 속에는 스토아학파 사상이 깊이 배어 있다.

    그는 포르투갈 사람인데 세상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형제들에게 나눠 주고는 아메리고 베스푸치¹⁵ 탐험대에 지원했답니다. 그런 후에 베스푸치의 네 번의 탐험 중에서 첫 번째를 제외한 세 번의 여행에 동행했지요. 거기에 관한 책은 이미 출간되어 지금은 어디에서나 읽힙니다. 하지만 마지막 여행에서는 베스푸치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스푸치를 설득하고 통사정해서 반강제로 허락을 받아내어, 결국 마지막 탐험 여행에서 도달한 가장 먼 지점에 세운 요새를 지키는 수비대원 스물네 명 중 한 사람이 되어 거기 남게 되었지요.

    15여기에서 토머스 모어가 라파엘의 국적을 포르투갈로 설정한 것은 당시 위대한 탐험가들은 포르투갈 출신이거나 포르투갈 왕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51년에 태어나 1497년과 1504년 사이에 네 번의 탐험 항해를 했다. 그는 자기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1500년대 초에 여행기를 두 권 펴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남았으니 그로서는 소원 성취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곳을 정하는 것보다 이곳저곳 두루 여행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는 무덤에 묻히지 못한 사람은 하늘이 덮어준다느니, 어디에서 가도 하늘로 가는 길은 다 똑같다느니 하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¹⁶ 하지만 만일 신이 그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그런 태도로 큰 고초를 치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16첫 번째 말은 세네카의 조카이자 로마의 정치가이며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루카누스(39-65년)가 한 말이고, 두 번째는 로마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년)가 한 말이다.

    아무튼 베스푸치가 떠난 후에 그는 요새 수비대원 다섯 명과 함께 많은 지역을 탐험했답니다. 마지막에는 기막힌 행운 덕분에 타프로바네¹⁷로 갔고, 그곳에서 다시 캘리컷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때마침 포르투갈 국적의 배들을 만나, 뜻밖에도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17타프로바네는 지금의 스리랑카를 가리키는 그리스어였다. 이 나라는 실론으로 불리다가, 1972년에 국명을 스리랑카로 바꾸었다. 캘리컷은 오늘날 인도 남서부에 있는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코지코드의 옛 이름이다. 1498년에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을 때 처음 기항한 곳이 바로 이 항구였다.

    페터가 말을 마치자, 함께 대화를 나눈다면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사람을 소개해준 페터의 대단한 호의에 감사한 후에, 나는 라파엘에게로 갔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에 통상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를 교환하고 나서, 세 사람은 나의 숙소로 갔다. 우리는 그곳 정원으로 가서 푸른 잔디로 덮여 있는 벤치¹⁸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18이 벤치는 나무로 길게 상자처럼 만들어서 거기에 흙을 채운 후에 그 위를 뗏장으로 덮은 것이었다.

    라파엘은 베스푸치가 약속대로 그를 남겨두고 떠난 후에, 요새에 남은 자신과 수비대원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지역 원주민들을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환심을 사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무 위험 없이 지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친밀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왕도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호의적으로 대했다. 하지만 그 왕과 나라 이름이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또한, 친절하게도 이 왕은 그와 다섯 대원이 탐험 여행을 할 때 필요한 충분한 식량 그리고 여행 시 이동 수단들, 즉 물에서 필요한 작은 배와 뭍에서 필요한 마차를 마련해주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아주 믿음직스러운 안내인까지 붙여주었는데, 그 안내인은 그들이 만나고 싶어 했던 다른 왕에게 안내하고 세심하게 그들을 천거하면서 부탁하는 말까지 건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많은 날을 여행했고, 촌락과 도시는 물론이고,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살면서 그리 나쁘지 않은 문물과 제도를 갖춘 나라도 여럿 발견했다고 말했다.

    물론 적도와 그 근방은 태양이 위아래로 운행하는 길이어서, 끊임없이 내리쬐는 열기 때문에 바짝 말라 광활해진 황무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지역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기분 나쁘고 황량하며 경작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어서 모든 것이 섬뜩하다. 또한, 거기에는 들짐승들과 뱀들 그리고 야수들보다 잔인함이나 야만스러움이 덜하다고 말하기 힘든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소수 거주한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모든 상황이 서서히 완화하고 나아진다. 기후는 덜 가혹하게 변하고, 대지는 푸르러서 한층 매력적이며, 짐승들의 성품도 온순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과 도시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기끼리, 또는 이웃한 지역의 사람들과도 교역하고, 육로와 바닷길을 이용해서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도 교역을 한다.

    [이상한 모양의 배들]

    그때부터 라파엘은 많은 지역을 가볼 기회를 얻었다. 어느 지역으로 가는 배라도, 그와 그의 대원들이 요청하기만 하면 흔쾌히 태워주었고, 거절당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바닥이 평평한 배들이었는데, 돛은 갈대나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것이었고, 나머지는 가죽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뾰족한 용골¹⁹과 범포로 만든 돛을 갖추고 있어 모든 점에서 자기 나라의 것과 흡사한 배들도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19용골은 배의 밑바닥에서 선체의 중심선을 따라 선수에서 선미까지 관통하는 단단한 통나무로, 포르투갈의 배들은 평평하지 않고 뾰족한 용골을 사용했다. 범포는 돛으로 사용하기 위해 두껍고 질기게 만든 면직물이다.

    [자석 나침반]

    선원들은 바다와 기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석으로 된 나침반²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므로 라파엘은 나침반 사용법을 알려주고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전에는 늘 바다를 두려워해서 여름철에만 안심하고 항해하고 다른 계절에는 항해를 꺼렸지만, 자석 나침반을 완전히 신뢰한 다음부터는 겨울철 항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이 물건을 유용하게 사용하겠지만, 그들의 무모함과 경솔함 때문에 큰 재앙을 가져다줄 빌미가 될 수도 있었다. 나침반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이다.

    20자석으로 된 나침반은 15세기부터 항해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가 각지를 여행하며 보았다고 말해준 것을 여기서 일일이 말하기에는 너무 길기도 하거니와 이 글의 의도와도 맞지 않다. 그가 들려준 것 중에서 특히 알아두면 유용할 것들, 이를테면 문명화한 나라에서 눈여겨보았던 바르고 지혜로운 문물과 제도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도 흔쾌히 설명해주었다. 다만 괴물들에 대해서는 일체 물어보지 않았는데, 괴물은 이제 더 이상 새롭거나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스킬라와 켈라이노, 사람을 잡아먹는 라이스트리곤²¹ 같은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대한 얘기는 도처에서 들을 수 있지만, 건전하고 지혜로운 문물과 제도를 갖춘 나라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21스킬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여섯 개의 머리를 지니고, 상체는 여성의 모습을, 하체는 여섯 마리의 개의 모습을 한 바다의 흉칙한 괴물이다. 시칠리아 연안에서 가장 폭이 좁은 메시나 해협의 어두운 동굴에서 사는데, 지나가는 배를 습격해서 닥치는 대로 선원들을 잡아먹었다. 켈라이노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르피이아의 자매 중 하나로, 여자의 머리와 새의 몸을 한 괴물이었는데 폭풍우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 같은 어둠을 뜻한다. 라이스트리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식인 거인으로, 오디세우스가 이끄는 열두 척의 배 중에서 열한 척을 침몰시킨 것도 이 거인족이었다.

    라파엘은 자신이 여행했던 새로운 나라들에서 본 잘못된 제도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사는 이 도시와 나라와 민족과 왕국에서 자행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할 때 모범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제도에 대해서도 꽤 많이 알려주었다. 이런 부분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다시 말할 것이므로, 지금은 유토피아에 살던 사람들의 관습과 제도에 관해 그가 말해준 것만을 그대로 전하려고 한다. 그러면 우선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그 나라를 언급하게 됐는지를 말하겠다.

    라파엘은 먼저 우리가 사는 여러 나라와 그가 다녀본 나라에서 자행되는 잘못된 관행을 아주 사려 깊게 지적해나갔다. 두 곳 모두에 잘못된 것은 상당히 많았다. 그런 후에 그는 이곳과 그곳에서 시행되는 건전하고 지혜로운 것들을 설명해나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다녀온 각각의 나라에 속한 관습과 제도를 마치 거기에서 평생 살다 온 사람처럼 줄줄이 다 꿰고 있었다. 페터는 거기에 감탄해서 존경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라파엘 씨, 당신 같은 분이면 그 어떤 왕이라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째서 어느 한 왕을 섬겨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 것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학식이 있는 데다가 많은 지역과 그곳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왕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사례를 제시하고 조언한다면 국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도 큰 이익을 얻고 당신이 부양해야 할 사람들도 많은 혜택을 입을 텐데요.

    그는 말했다.

    부양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 내게 주어진 의무와 책무는 이미 상당 부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그들에 대한 부담감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 자기 재산을 이제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도, 계속해서 그 재산을 틀어쥐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내어놓습니다. 하지만 나는 건강할 때, 그리고 젊어서 힘이 왕성할 때 전 재산을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거저 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들을 위해 또다시 왕을 섬기는 노예가 되라고 나에게 강요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페터가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 말은 왕의 노예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시라는 것입니다.²²

    22토머스 모어는 여기에서 노예가 되다를 뜻하는 라틴어 ‘세루이아스’(seruias)와 봉사하다를 뜻하는 ‘인세루이아스’(inseruias)를 가지고 언어 유희를 하고 있다. 토머스 모어 자신도 왕을 섬겨 봉사하는 직책 맡기를 주저했다.

    라파엘은 말했다.

    노예가 되어 섬기는 것과 봉사하는 것은 단지 한 끗 차이일 뿐이지요.

    페터가 말했다.

    당신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저는 당신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면서, 자기 처지도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려면 오직 그 길뿐이고,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파엘은 말했다.

    더 행복해진다고요! 내 마음이 그토록 싫어하는 그런 삶이 어떻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지금 나는 내가 원했던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신하 중에서 나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 한두 명이 없다고 해서 왕들이 큰 손실을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에 내가 말했다.

    "라파엘 씨, 당신은 부귀영화를 전혀 바라지 않는 것이 분명하군요. 나는 그런 정신을 지닌 분을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 못지않게 존경하고 우러러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내키지 않더라도, 자신의 재능과 힘을 공적인 일에 사용하는 것이 당신의 고귀한 철학에 잘 어울린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때는 왕에게 조언하는 직위를 얻어서, 그 왕을 설득하여 국사를 올바르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압니다. 사실 왕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물줄기를 솟구쳐내는 샘과 같고, 이롭거나 해로운 모든 것은 왕에게서 흘러나와 백성 전체 위에 쏟아지는 물줄기와 같습니다.

    당신의 학식은 아주 깊고 해박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에게는 아주 훌륭한 경험이 있어서, 설혹 학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느 왕의 고문직을 맡았더라도 그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해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라파엘이 말했다.

    "모어 씨, 당신은 두 가지를 잘못 알고 계십니다. 첫째는 나에 대해서이고, 둘째는 왕의 고문이라는 직책에 대해서입니다. 당신이 내게 있다고 한 그런 능력이 실제로는 없습니다. 설령 내게 그런 능력이 최대한으로 있더라도, 내가 즐기던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공무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게 된다면, 나의 그런 능력은 공무에서 전혀 발휘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왕들은 평화를 이루어내는 데 유용한 기술보다는 전쟁을 일으켜서 이기는 일에 더 몰두합니다. 하지만 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왕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하기보다는,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 나라를 얻는 일에 더 힘을 쏟습니다.

    다음으로, 왕의 고문이라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미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검토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하들을 대할 때 그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서, 그 신하들이 아무리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해도, 그들은 거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연신 굽신거립니다. 그 신하들에게 잘 보임으로써 자신도 왕의 총애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낳거나 키운 것을 편애하는 법이고, 그것은 타고난 본능이고 본성이지요. 마치 까마귀가 자기 새끼를 예뻐하고, 원숭이가 자기 새끼를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궁정에는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해서는 질시하고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시대에 시행되었다고 기록된 것을 읽었거나, 다른 곳에서 실제로 시행되는 어떤 정책을 제안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들은 만일 자기가 그 제안 속에서 어떤 오류가 있다는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혜롭다고 하는 자신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고, 자기가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꼬투리 잡는 사람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다른 것이 전부 먹히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말을 피난처 삼아 거기 숨어버립니다. ‘우리가 지금 시행하는 것은 조상들도 만족했던 것들입니다. 과연 우리가 조상보다 더 지혜롭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최종 선고를 했으니, 누구라도 조상보다 더 지혜로운 체한다면 크게 다친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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