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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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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85 pages48 minutes

번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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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번역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 이야기_번역하다_vol. 3

별별 이유로 매몰차게 등을 돌린 세상에서 아등바등 사는 번역가들의 일상과 생각과 철학을 엿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보니 번역가의 희로애락과 성찰이 잘 어우러져 한 ‘작품’ 나오겠다 생각했다. 번역가는 보편적인 작가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희열과 좌절을 느낀다. 원작이라는 경계와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100퍼센트 창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늘 애매하고 모호하다. 이때 경계선을 조율하는 주체는 오직 번역가뿐이다. 은연중에 선을 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자가 (원문을 모르는 터라) 되레 이를 반기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된다. 그러면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겠지만 겉으로는 멋쩍은 미소를 날릴 것이다. 그 외의 생생한 경험담도 기대해 봄직하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투나미스
Release dateFeb 15, 2022
ISBN97727998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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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하다 - 유미주

    번역하다

    Translating 

    창간호

    the 1st issue

    투나미스

    발간사Publisher’s Remark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어찌어찌 세상에 나왔다. 창간호라는 점도 그렇지만 동종업계 최초로 발간한 동인지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매거진—잡지라야 옳겠지만 ‘잡雜’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아 외국어인 매거진을 차용키로 했다—이라 자부한다.

    얼마 전 번역‧출판인 여럿에게 발간 계획을 알렸더니 꽤 반기는 분위기였다. 사실, 예상했던 반응 아닌가?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인사치레라도,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작년 말 잡지사업 등록을 마치고 난 후, 현직 번역가뿐 아니라 이를 꿈꾸는 지망생과 ‘번린이’ 모두에게 투고를 부탁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할지 막막한 터라 질문이 쏟아졌다. 주제는 자유지만 번역이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고만 강조했다.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글을 주문했다. 최종적인 결은 지금 보이는 그대로다. 부왈라Voila!

    실은 별별 이유로 매몰차게 등을 돌린 세상에서 아등바등 사는 번역가들의 일상과 생각과 철학을 엿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보니 번역가의 희로애락과 성찰이 잘 어우러져 한 ‘작품’ 나오겠다 생각했다. 번역가는 보편적인 작가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희열과 좌절을 느낀다. 원작이라는 경계와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100퍼센트 창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늘 애매하고 모호하다. 이때 경계선을 조율하는 주체는 오직 번역가뿐이다. 은연중에 선을 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자가 (원문을 모르는 터라) 되레 이를 반기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된다. 그러면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겠지만 겉으로는 멋쩍은 미소를 날릴 것이다. 그 외의 생생한 경험담도 기대해 봄직하다.

    1년은 넘기자는 ‘소박한’ 목표로 매거진을 기획했다. 필자는 대장동 스케일은 엄두도 못 내지만 일단 설계를 하면 꼭 실물이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 시작이 반이라 하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제 절반은 시간이 결정해줄 것이다.

    모쪼록 『번역하다』가 고민을 평생 안고 사는 모든 번역인의 쉼터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인사치레가 진심이 되는 날도 그려보련다.

    발행인 유지훈

    calendar

    커버스토리cover story

    겨울여행 / 유미주

    winter-3974511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어딘가 기록했다. 낡은 공책이나 메모지 귀퉁이에 빼곡하게 적힌 기록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 외에도 그날 날씨라던가 기분, 해야 할 일 같은 일상이 담겨있어서 기록이라기보단 내킬 때 쓰는 일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적은 순간들을 곁에 두고 자주 보다 보면 자연스레 덧정이 붙어 좋아하는 것을 금방 사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어느 브랜드의 과자부터 사강이나 뒤라스 같은 작가들, 프랑스어에 이르기까지 총총히 모인 애정의 역사는 여전히 크고 작은 설렘을 유지한 채 먼지 쌓인 상자 안에서 리듬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왜인지 번역을 시작한 뒤로 좋아하는 것을 적어본 적이 없다. 타국의 언어를 옮겨내는 과정 밖의 일들에 무심하거나 방 안에 고립되고 지쳐 무언가를 좋아할 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뭐라고 할까, 여남은 것을 제쳐두고 먼저 적어내야 할 소중한 것이 남았다는 모호한 심경으로 오랫동안 공책 한구석을 비울 뿐이었다. 그러니 새로 읽거나 들은 것을 좋아하게 되어도 쉽사리 인상을 새겨두기 어려운 것은, 청산해야 할 사랑 하나가 오롯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아직 기록하지 못한 것, 나는 그것이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잊고 있던 상자를 우연히 열게 된 작년이었다. 예년보다 지난한 겨울을 맞아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려 짐을 챙기는데, 겨울옷을 꺼내려 헤집은 장롱 어느 구석 익숙한 상자 하나에 손길이 멈췄다. 어렵지 않은 문서 번역을 맡았지만 일이 겹치고 작업이 더뎌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겨우 일이 끝나 공부를 시작해도 마음이 뜨고 어지러웠다. 묘한 권태감이 문장 사이를 메우자 밀도 높은 피로가 몰려왔고 더는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시작한 여행이었다. 홀린 듯 다 제쳐두고 상자만 든 채 제천으로 떠났다. 십이월 어느 날 여전히 공책에 번역을 적지 못한 채로.

    소설로 인생에 복무한다던 이승우 소설가처럼, 나 역시 책상 앞에서 번역으로 인생에 복무하고 싶다는 조그만 바람을 되새기고 있다. 언제 무엇을 하든 어디서 어떤 자신으로 존재하든, 때를 잊고 자리로 돌아가 작은 나라 둘을 잇는 것으로 생이 두터워질 거라 믿는다. 일어나면 어제 먹다 남아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홀짝이고 재떨이를 갈거나 세수를 하고, 샌드위치를 먹고 피곤하면 체조도 한다. 순서가 뒤바뀌어도 좋다. 어쨌거나 끝에는 오래 사용해 푹신하지 않은 방석과 칠이 벗겨진 나무 책상 앞에 앉게 되는 순리에 따르게 된다.

    woman-1919143

    사소한 루틴이 모여 오밀조밀한 단어가 되고, 단어가 쌓여 문장을 이루는 고요한 방식으로 몇 해 겨우 살아내도 순간마다 번역은 낯설고 생경하니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멀어 배울 것이 많아 오히려 두근대는 마음이다. 지금도 처음 번역가가 되기로 다짐했던 시절과 같은 양의 소중함을 안고 만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번역은 책상 앞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마무리되니 도무지 설레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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