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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Ebook279 pages3 hours

프랑켄슈타인: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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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인공지능, 유전공학, 인간복제 등의 최근 이슈까지 담아내면서도
진정한 인간다움을 고민하게 하는 독특한 고전

“우리 장르는 200년 전, 메리 셸리라는 19세 천재 소녀의 발명품이다.” 어떤 SF 작가의 고백처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과학을 소재로 한 SF 장르는 놀랍게도 이 책으로부터 출발한다. 『프랑켄슈타인』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학 발전의 명암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이며, 괴물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오늘날 인공지능, 유전공학, 복제인간 등의 이슈에서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등의 탄생에도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작가는 산업혁명 당시 큰 관심사였던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의 생체전기 실험을 참고했고, 전기 · 화학 · 해부학 · 생리학 등의 발달과 당시 과학자들의 생명 창조에 관한 고민을 토대로, 자신의 여행 경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특히 19세기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공생명체를 주제로 최근 논의되는 기본개념, 가령 전기자극, 세포배양, 줄기세포, 체세포 복제 등의 복잡한 과학적 이슈의 원형을 정교하게 배치해 넣었다.
또한, 괴물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다. 인간 내부의 무의식이 실체화되어 주인에게 모반을 일으키는 ‘분신’의 관점, 인간의 비극적 성장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관점, 폭력과 복수로 범벅이 된 괴물의 삶은 자신이 처했던 ‘사회 상황’의 산물이라는 관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욕망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를 소설로 담아낸 것이라는 ‘페미니즘’ 관점 등이 있다.
최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창조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피조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연구 중인 여러 ‘프랑켄슈타인 실험’이 결국 인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생각거리와 울림을 주는 이 생생한 작품을, 현대지성 클래식에서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를 전공한 번역가의 꼼꼼한 번역과 깊은 해제를 담아 선보인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May 21, 2021
ISBN97911668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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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셀리

    첫 번째 편지

    새빌 부인 앞, 영국

    17××년 12월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누나, 누나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그토록 걱정했던 사업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참 기쁘겠지. 어제 이곳에 도착했어. 나의 첫 임무는 사랑하는 누나에게 내가 잘 있다는 소식을 알리고 일도 성공할 거라고 더욱 안심시키는 거야.

    나는 이미 런던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어, 누나. 이곳 거리를 걷다 보면 벌써 싸늘한 북풍이 뺨을 간질이는 게 느껴져. 신경이 팽팽히 조여오고 환희가 차올라. 누나가 이런 느낌을 이해할까? 이곳 바람은 내가 가려는 땅에서 불어오는 거야. 얼음같이 차디찬 날씨를 미리 맛보는 셈이지. 이 생생한 바람의 기운을 받아 내 꿈은 점점 더 강렬하고 명료해지고 있어. 북극은 서리 가득한 황폐한 땅이라는 말로 자신을 설득하려 하지만, 소용없다니까. 내 상상 속에서 그곳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기쁨만 그득하니까.

    마거릿 누나, 그곳에서는 늘 태양이 보여. 커다란 원반 같은 햇살이 지평선 주변부터 영원한 광채를 뿌려대는 거야. 그곳에서는 눈과 서리도 여지없이 추방을 당하지. 누나만 괜찮다면 나보다 앞서 그곳에 갔던 선원들의 말을 어느 정도 믿고 싶어. 이제 우리는 고요한 바다를 가로질러 여태껏 발견된 지구상의 인간 거주지 중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땅으로 흘러가겠지. 그곳 산물과 특색은 유례없이 새로울 거고. 천체들의 경이로운 광경은 분명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독 속에 있는 거잖아. 영원한 빛의 나라에서는 뭐든지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곳에서 나는 나침반 바늘을 끌어당기는 경이로운 힘을 발견하게 되겠지. 그리고 하늘에서 발견할 수많은 관측 내용을 정리할 거야. 물론 그러려면 변화무쌍하고 일관성이라고는 찾기 힘들어 보이는 그 현상들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임을 확인할 만큼 이 항해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야.

    난 이제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세계의 일부 지역을 보면서 내 왕성한 호기심을 채우게 될 거야. 이 매력적인 유혹만으로도 위험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거뜬히 이겨내고 기쁜 마음으로 고된 항해 길을 나설 수 있어, 누나. 이 기쁨은 어린아이가 휴일에 놀이 동무들과 작은 배를 타고 사는 곳의 강 상류로 탐험을 떠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해. 누나가 내 예상이 모조리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북극 인근에서 다른 나라까지 가는 빠른 항로를 발견해서 소요 시간을 줄인다거나, 자기장의 비밀을 밝혀 마지막 세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전체에 남을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누나도 반박할 수 없을 거야. 지금 내가 하는 탐험을 통해서만 그런 일이 가능하니까 말이야.

    이런 생각들 때문에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불안이 많이 사라졌고 지금은 드높은 열정 덕분에 하늘에도 닿을 것 같은 느낌이야. 한결같은 목표만큼 정신을 고요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없어. 영혼은 꾸준한 목표에 지성의 눈길을 보내는 법이잖아. 북극 탐험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즐겨 꾸던 꿈이었지. 그때는 항해를 다룬 다양한 글을 탐독했어.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통해 북태평양에 도달할 가능성을 찾으려 시도했던 항해에 관한 여러 기록 말이야. 누나도 기억할 거야. 발견이라는 목표를 향한 온갖 항해의 역사를 다룬 장서가 토머스 삼촌(참 좋은 분이지)의 서재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지. 내가 공부에는 게을렀지만, 독서만큼은 열심이었잖아. 나는 이 책들을 밤낮 파고들었고 책과 친해질수록 아쉬움도 늘어만 갔어. 아버지께서 임종 때 남기셨던 경고 말씀이 있어서 내가 항해를 업으로 삼는 것을 토머스 삼촌이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야.

    항해에 대한 꿈은 희미해져 갔어. 감정을 분출시켜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갔던 시인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기 때문이야. 나 또한 시인이 되었고 일 년 동안은 내가 지은 시의 낙원에서 살았어.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가 찬란한 영광 속에서 자리했던 시의 사원 한 칸을 나 또한 얻을 수 있으리라 상상했던 거야. 하지만 누나도 잘 알지. 나는 실패했고 실패로 말미암은 실망에 크게 짓눌려 있었던 것 말이야. 그렇지만 바로 그즈음 사촌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면서 내 마음은 다시 어린 시절의 꿈으로 방향을 틀었어.

    항해를 결심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어. 내가 이 위대한 사업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구체적인 시각이 지금도 기억날 정도야, 누나. 이 일을 하려고 우선 몸을 혹독하게 단련해서 고된 일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어. 북해까지 가는 여러 원정대의 포경선을 얻어 탔고, 추위와 기아와 목마름과 수면 부족을 자진해서 견뎌냈지. 낮에는 일반 선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밤에는 수학과 의학 이론, 물리학 공부에 매진했어. 항해라는 모험은 이러한 이론에서 가장 큰 실용적인 이득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그린란드 포경선에서는 항해사 보조로 고용되었고,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해 칭찬도 많이 받았어. 지금 와서 자랑스러웠던 일을 고백하자면 말이야, 선장이 2등 항해사 자리를 제안하면서 배에 남아달라고 성심성의껏 부탁했었다는 거야. 내 근무 실적이 꽤 우수하다고 여겼던 거지.

    사랑하는 마거릿 누나. 지금의 나는 원대한 목표를 이룰 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동안 쉽게, 꽤 사치스레 살아왔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유복함이 내 길에 깔아준 유혹들보다 명예를 더 가치 있게 여겼어. 아, 내 생각이 옳다고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용기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아. 하지만 희망은 오르락내리락 요동치고 영혼은 종종 우울해지곤 해. 이제 막 길고 어려운 항해를 나설 참이야. 항해의 위기마다 내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겠지. 배를 이끄는 자로 선원들의 기운을 살려주고 때로는 그들의 사기가 떨어질 때 나도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해.

    지금은 러시아를 여행할 최적기야. 사람들은 썰매를 타고 눈밭을 쏜살같이 날아다녀. 움직임은 경쾌한데, 내가 보기에는 영국의 승합마차보다 훨씬 더 쾌적해 보여. 추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 물론 털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으면 말이야. 나는 이미 한 벌 장만했어. 갑판을 걸어 다니는 것과 여러 시간 꼼짝없이 앉아 있는 건 정말 다르거든. 추위가 심하지 않다고 해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는 그 후에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혈관 속 피까지 얼어붙어 버릴 테니까.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아르한겔스크 사이, 길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아.

    2~3주 안에 아르한겔스크로 떠날 거야. 그곳에서 배를 한 척 빌려(소유주에게 보험료를 내면 쉽게 빌릴 수 있어) 필요하다고 여기는 만큼 고래잡이에 익숙한 선원들을 채용할 거야. 6월까지는 항해가 없을 거야. 언제 돌아올 예정이냐고? 아, 누나.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성공한다면 몇 개월, 아니면 몇 년이 지나야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혹시나 실패한다면 우리는 조만간 만나거나 영원히 못 보게 되겠지.

    사랑하는 나의 멋진 누나, 잘 있어. 천국의 축복이 누나에게 가득하기를. 그리고 나를 지켜주어 내가 다시 누나의 사랑과 친절에 감사를 전할 수 있기를.

    사랑하는 동생

    R. 월턴

    두 번째 편지

    새빌 부인에게, 영국

    17××년 3월 28일 아르한겔스크

    이곳 시간은 얼마나 천천히 흐르는지 몰라. 주위는 온통 서리와 눈뿐이야, 누나. 하지만 내 사업은 이제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어. 배를 한 척 빌렸고, 지금은 선원을 모집하는 중이야. 이미 고용한 선원들은 내가 의지할 만해 보이고, 뭐 하나 꿀리지 않고 용기도 대단해 보여.

    다만, 아직 채워지지 않은 한 가지 결핍이 있어. 그게 없어서 지금은 나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져. 친구가 하나도 없거든, 누나. 성공을 향한 열정으로 빛날 때 나의 기쁨에 동참해줄 친구, 낙담해서 몹시 괴로울 때 실의에 빠진 나를 지탱해줄 사람이 없어. 물론 내 생각을 종이에 옮겨 적을 수는 있지. 하지만 종이는 감정을 주고받기에는 매력 없는 매체야. 나와 공감해주고, 내 눈빛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함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 누나는 내가 대책 없는 몽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정말 비통해하고 있어. 다정하지만 용감하고, 폭넓고 세련된 정신세계를 갖춘 사람, 나와 같은 취향을 갖고 있고 내 계획을 알아주고 고쳐줄 수 있는 그런 벗이 곁에 하나도 없어. 그런 친구라면 이 가엾은 동생의 결점을 고쳐줄 텐데!

    나는 일할 때는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어려움을 만나면 참을성이 없거든. 훨씬 더 안 좋은 건 내가 독학을 했다는 거야. 어릴 적 14년 동안 제멋대로 놀았던 데다, 읽은 책이라고 해봐야 토머스 삼촌 서재에 있던 항해 관련 책 외에는 전혀 없어서 말이야. 그 나이 때 영국의 유명한 시인들을 알게 되긴 했지만, 모국어 외의 여러 외국어를 익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땐 거기서 중요한 이득을 얻어낼 힘이 다 빠진 상태였지. 이제 내 나이 벌써 스물여덟 살인데 실제로는 열다섯 살짜리 학생들보다 더 무지한걸. 물론 생각이야 많지. 상상의 나래 역시 무한히 넓기도 해. 하지만 (화가들이 말하듯) 그런 상상을 붙들어줄 수 있어야 하잖아. 내가 몽상가여도 한심해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의 고삐를 잘 잡아줄 만큼 애정이 있는 그런 친구가 절실해, 누나.

    뭐, 다 쓸데없는 불평이겠지. 이 망망대해에서 그런 친구가 있을 리가. 아르한겔스크의 상인이나 뱃사람 사이에서도 힘들겠지. 그래도 이 거친 사람들 가슴속에서도 인간 본성의 찌꺼기와는 사뭇 다른 어떤 감정이 요동치고 있긴 해. 가령 내 부관은 경이로울 만큼 용감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야. 명예를 미친 듯 갈구하는 인간이지. 잉글랜드 사람인 데다가, 자기 민족과 자기 일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수양을 쌓아 교화된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고결한 인간애는 갖추고 있어. 처음 그를 만난 건 포경선에 탔을 때였어. 이 도시에서는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은 것을 알고 내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쉽게 채용할 수 있었지.

    선장은 인품이 탁월하고, 배에서도 신사로 통해. 규율도 심하지 않아 명망이 높지. 성품이 지극히 다정하고 사냥도 하지 않아(여기서는 누구나 가장 즐겨 하는, 거의 유일한 오락인데 말이야). 피 흘리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야. 게다가 선장은 너그럽기가 영웅을 방불케 할 정도야.

    몇 년 전 그는 젊은 러시아 여인을 사랑했는데 상대의 집안에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선장은 상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모은 참이라 여인의 아버지는 그의 재력을 보고 딸의 결혼에 동의했어. 선장은 결혼식 전에 여인을 한 번 보았는데 그녀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의 발치에 몸을 던지고는 자신을 놓아달라고 간청했대. 자신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데 그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절대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거지. 이 너그러운 친구는 애원하는 여인을 안심시켰고, 연인의 이름을 듣고는 결혼을 포기했어. 이미 자기 돈으로 농장까지 사둔 참이었고 거기서 여생을 보낼 계획까지 세웠는데 말이야.

    선장은 농장을 연적에게 넘겼을 뿐 아니라 가축을 사려던 남은 상금까지 다 주고 나서는, 여인의 아버지에게 가서 그녀가 그 남자와 결혼하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까지 했어. 여인의 아버지는 단호히 거부했지. 선장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어. 결국, 여인의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게 된 친구는 자기 나라를 떠났고, 여인이 원하는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았어. 참 고결한 사람이구나!라고 경탄할 만하지. 선장은 정말 그런 사람이야. 그렇지만 그 역시 평생을 배에서만 살아서 돛대랑 밧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걸.

    하지만 내가 불평 좀 한다고 해서 혹은 위로할 길을 찾기 힘든 내 마음고생을 어떻게 다독일지 상상을 좀 했다는 이유로 내 결심이 흔들린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줘. 내 결심은 운명만큼이나 견고해. 항해는 날씨가 출항을 허락할 때까지 지금 잠깐 지연되고 있을 뿐이야. 겨울은 끔찍하게 혹독했어. 하지만 여름은 반드시 올 것이고, 올해는 꽤 일찍 온다고들 해. 그러니 항해는 내 예상보다 더 빨라지겠지. 뭐든 서두르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사람들의 안전이 내게 달려 있을 때 내가 얼마나 신중하고 사려 깊은지 신뢰할 만큼 누나는 날 잘 알잖아.

    출항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을 누나에게 다 설명할 길이 없어. 출발을 앞두고 항해 채비를 하면서 느껴지는 이 떨림. 절반의 두려움과 절반의 기쁨. 이런 마음을 누나에게 다 전달하기란 불가능한 일인걸. 나는 탐험하지 않은 미지의 땅, 안개와 눈의 땅*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앨버트로스**를 죽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안전은 걱정하지 마, 누나.

    *낭만주의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늙은 수부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

    **<늙은 수부의 노래>에 나오는 새. 주인공인 늙은 수부水夫가 신의 사자인 이 새를 죽이는 바람에 저주에 시달린다.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광대한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최남단 곶을 지난 후 다시 돌아와서 말이야. 그런 성공은 감히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견딜 수가 없어. 기회 있을 때마다 편지 계속 써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내 기운을 북돋기 위해 누나의 편지가 절실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편지를 받을 수 있게 말이야. 내가 누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설사 내게서 다시는 소식이 가지 않더라도 나를 사랑으로 기억해줘.

    사랑하는 동생, 로버트 월턴

    세 번째 편지

    새빌 부인에게, 영국

    17××년 7월 7일

    사랑하는 누나,

    황급히 몇 줄 보내. 내 안전과 순조로운 항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야. 이 편지는 아르한겔스크에서 영국으로 떠나는 상인 손에 들려 영국에 도착하게 될 거야.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지. 나는 장차 몇 년간 조국 땅을 못 밟을지도 모르거든.

    하지만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담대하고 목표의식도 굳건해 보여. 게다가 우리가 향하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부빙이 계속 옆을 지나가도 겁도 안 내는 것 같고. 배는 이미 아주 높은 위도까지 당도했어. 하지만 여름이 한창이고, 영국처럼 덥지는 않지만, 남쪽의 돌풍이 내가 그토록 열렬히 가고 싶어 하는 해안 쪽으로 배를 신속하게 질주시키면서도, 활기를 줄 만큼 더운 바람을 어느 정도 뿜어주고 있어. 예상치 못했던 일이야.

    아직은 편지에 적을 만큼 눈에 띄는 사건이 벌어지진 않았어. 한두 차례 심한 돌풍이나 돛대가 부러지는 일 정도는 노련한 항해사에게는 기억도 안 날 사건이지. 항해하는 동안 더 나쁜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대만족일 거야.

    안녕, 사랑하는 마거릿 누나. 누나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 무모한 위험에 뛰어들지 않을 거니까 내 말을 믿어도 좋아. 침착하고 냉정하고 인내하고 신중할게. 약속해.

    영국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전부 안부 전해줘.

    사랑하는 동생

    로버트 월턴

    네 번째 편지

    새빌 부인에게, 영국

    17××년 8월 5일

    우리한테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나서 기록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이 편지가 누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누나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이야.

    지난 월요일(7월 31일) 우리는 사방으로 얼음에 포위되어 있었어. 얼음이 배를 온통 둘러싸고 있어서 배가 있을 공간조차 거의 남지 않을 정도였지. 특히 짙은 안개까지 잔뜩 끼어 있어서 상황이 좀 위험했어. 그래서 뱃머리를 바람 부는 쪽으로 돌려놓고 배를 세운 채 날씨와 대기가 바뀌기만 바라고 있었지.

    두 시쯤 안개가 걷히고 보니 사방팔방으로 울퉁불퉁한 설원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게 보였어. 몇몇 동료는 낮게 신음을 냈고 나 역시 불안한 마음에 경계심이 커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돌연 이상한 풍광이 주의를 끌지 뭐야. 우리가 처한 상황까지 잊을 정도로 기이한 광경이었어. 개 몇 마리가 끄는 썰매에 나지막한 마차가 묶여 있는데, 800미터 거리에서 북쪽을 향해 지나가는 모습이었어. 인간의 꼴이긴 한데 엄청 거대한 누군가가 썰매에 앉아 개들을 끌고 있었어. 망원경으로 그 여행자가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지. 울퉁불퉁한 평원을 지나 멀리 사라질 때까지 말이야.

    그 모습은 우리에겐 경악과 흥분 그 자체였다니까. 육지가 수백 킬로미터쯤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유령 같은 존재 때문에 육지가 생각만큼 멀지는 않은 것 같았거든. 하지만 배가 얼음에 포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행로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어. 촉각을 잔뜩 곤두세우고 그 궤적을 지켜보기만 했지.

    그러고서 두 시간가량 지났는데 큰 파도 후에 잔물결 소리가 들렸어. 그리고 밤이 되기 전에 얼음판이 깨져 배가 움직일 공간이 생겼고. 하지만 우리는 아침까지 배를 움직이지 못했어. 깨진 얼음이 이리저리 떠다니는데, 어둠 속에서 거대한 부빙이라도 만날까 봐 두려워서 말이야. 그 참에 몇 시간 더 쉴 수도 있었고.

    날이 밝자마자 나는 갑판으로 나갔어. 선원들이 죄다 배 한쪽에서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어. 바다 위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 같더라고. 사실 그건 썰매였어. 전날 본 것과 같은 종류였지. 썰매는 간밤에 거대한 얼음 파편을 타고 우리 배 쪽으로 표류했던 모양이야. 개는 한 마리만 살았고, 안에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선원들이 그에게 우리 배를 타라고 권유하고 있었지. 일전에 멀리서 본 여행자는 미지의 섬에서 온 야만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번 사람은 유럽인인 것 같았어. 내가 갑판에 모습을 드러내자 선장이 말했어. 여기 우리 대장님이 오시네요. 대장은 당신이 망망대해에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요.

    나를 본 그 이방인은 외국 억양이 섞인 영어로 물었어. 귀하의 배에 오르기 전에 배가 어디로 가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죽기 일보 직전에 처한 사람이 맨 먼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누나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이 사람에게는 우리 배야말로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못할 귀한 선물일 텐데 저런 질문을 하다니. 어쨌건 우리 배는 북극을 향해 탐사 항해 중이라고 대답은 해주었지.

    그는 내 대답을 듣더니 흡족한 듯 선선히 승선했어. 하느님 맙소사! 마거릿 누나, 북극을 향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승선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인 이 사람 몰골을 누나가 보았더라면 아마 끝도 없이 놀랐을걸. 사지는 죄다 얼어붙기 직전이었고, 몸은 피로와 그간의 고초로 끔찍하게 수척해져 있었어. 이렇게 비참한 상태는 본 적이 없다니까. 우리는 그를 선실로 옮기려 했어. 그런데 신선한 공기가 통하지 않는 실내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해버리는 거야. 그래서 그를 다시 갑판으로 데리고 나와 브랜디로 몸을 문질러 일어나게 한 다음 억지로 조금 마시게 했지. 살아난 기미를 보이자마자 그의 몸을 담요로 감싸고 부엌 화로 굴뚝 옆에 데려다 놓았어. 점차 기력을 회복하더니 수프도 조금 먹었어. 그 덕에 상당히 원기를 회복하더군.

    이런 식으로 이틀 정도가 지나니까 간신히 말을 할 정도가 되었어. 고통 때문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 두려웠어. 어느 정도 회복된 그를 내 선실로 옮긴 다음 내 몫의 근무를 하고 남는 시간은 가능한 한 그를 보살폈어.

    이렇게 흥미로운 존재는 처음이야. 이 남자의 두 눈은 야생의 기운이랄까, 대체로 광기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어. 하지만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거나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하면 얼굴 전체가 환하게 밝아지더라고. 그렇게 다정하고 자애로운 표정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지. 하지만 대체로는 침울하고 절망스러워했어. 때로는 이를 악물기도 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비애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았어.

    손님이 약간 회복되자 이번에는 선원들에게서 그를 떼어놓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다들 그에게 온갖 질문을 해대려고 안달이었거든. 하지만 선원들의 하릴없는 호기심 때문에 그를 고통받게 내버려두진 않았어. 온전히 휴식을 취해야만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 같았으니까.

    한번은 부관이 묻더라고. 그렇게 이상한 썰매를 타고 얼음을 건너 이 먼 곳까지 온 이유가 대체 뭐냐고 말이야. 그는 즉시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대답했어.

    제게서 달아난 자를 찾기 위해섭니다.

    그럼, 당신이 쫓고 있는 그 사람도 당신과 같은 썰매를 타고 다니는 겁니까?

    네.

    그렇다면 우리도 그자를 본 것 같군요. 당신을 구하기 전날, 몇 마리 개가 끄는 썰매를 모는 사람이 얼음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우리가 목격했거든요.

    이방인은 이 말에 촉수를 곤두세웠어. 그러더니 그 악마 —자신이 쫓는 자를 그렇게 부르더라고—가 지나간 경로에 관해 질문을 쏟아냈지. 곧이어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그가 말했어. 제가 저 선한 분들과 대장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게 분명한데도 배려가 깊으셔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군요.

    물론입니다. 제 질문으로 귀하를 괴롭힌다면 아주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일이겠지요.

    하지만 대장님은 낯설고 위험한 상황에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너그럽게도 제 목숨을 살려주셨고요.

    그 직후 그가 물었어. 얼음이 깨지면서 그 악마가 탄 썰매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말이야. 나는 확실한 대답은 못하겠다고 말했지. 얼음이 깨진 건 자정 무렵이 다 되어서고 여행자는 그 시각 전에 안전한 곳에 도착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 역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다고 대답했어.

    그때부터 이방인은 갑판에 몹시 나가고 싶어 했어. 일전에 나타났다던 그 썰매를 보려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선실에 남아 있으라고 설득했지. 몸 상태가 너무 약해 바깥 공기를 그대로 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야. 대신 다른 사람을 보초로 세워 새로운 물체나 사람이 눈에 보이면 즉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어.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오늘까지 벌어진 이 기이한 사연의 전말이야. 이방인은 점차 건강을 회복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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