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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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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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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이 극찬한 최고의 풍자문학 완역본
환상적인 모험에 숨겨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

풍자문학의 대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스위프트는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 출판되었을 때부터 엄청난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며, 신랄한 묘사로 인해 내용이 삭제되거나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19세기 초 『걸리버 여행기』는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 등을 삭제하고 아동문학으로 발행되었는데, 이런 판본들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아동용 『걸리버 여행기』를 접한 사람은 원전의 풍자를 이해할 수 없다. 현대지성 클래식의 『걸리버 여행기』는 완역본으로 풍자문학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며, 일러스트의 대가 아서 래컴의 삽화로 재미를 더했다. 또 꼼꼼한 해제를 수록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
조지 오웰은 『걸리버 여행기』를 두고 “이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으며, 다른 모든 책들을 파괴하고 오로지 여섯 권만 골라야 한다면 그 중의 하나로 이 책을 고를 것이다.”라고 했으며, 영국 문학사가 조지 세인츠베리는 “스위프트는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완전한 재미의 원천이다.”라고 평했다. 당대의 부패한 사회와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행태에 날리는 스위프트의 독설은 몇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그의 날카로운 풍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즐거움과 깨달음을 줄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Sep 4, 2019
ISBN979118714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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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제 1 장

    저자가 그 자신과 가족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하고 처음 여행에 나서게 된 이유들을 설명한다. 그는 바다에서 배가 난파하여 목숨을 건지려고 열심히 헤엄을 쳤고, 릴리펏 나라의 해안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는 그 나라의 포로가 되어 수도로 끌려간다.

    나의 아버지는 노팅엄셔에 자그마한 땅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다섯 아들 중 세 번째였다. 아버지는 내가 열네 살이었을 때 케임브리지의 에마누엘 칼리지에 보냈고, 나는 그곳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학업에 전념했다.¹ 그러나 나를 유학시키는 비용은(나의 생활비가 아주 소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작은 재산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의 유명한 의사인 제임스 베이츠 선생님의 도제로 들어가서 그분 밑에서 4년을 일했다.

    1열네 살은 그 당시 대학에 들어가는 정상적인 나이로서, 스위프트는 열다섯 살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가끔 내게 소액의 돈을 부쳐 주었다. 나는 그 돈을 잘 모아두었다가 항해술과 그에 관련된 수학 지식을 배우는 데 사용했다. 그런 지식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었는데 나는 장래 언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늘 생각했다. 나는 베이츠 선생님의 집을 나온 뒤에는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삼촌 존, 그리고 다른 친척들의 도움으로 레이던² 대학교 유학 자금 40파운드를 마련했고, 또 연간 30파운드를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나는 레이던 대학교에서 2년 7개월 동안 의학을 공부했는데, 그 지식이 장거리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네덜란드의 도시로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의과대학이 있었던 곳.

    레이던에서 돌아온 직후에 나는 고마운 스승 베이츠 선생님의 추천으로 스왈로 호의 선상 의사가 되었는데, 그 배의 선장은 에이브러햄 패널이었다. 나는 그 선장 밑에서 3년 반을 근무하면서 지중해 동부 지역과 다른 지역을 두 차례 여행했다. 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런던에 정착할 생각을 했다. 옛 스승 베이츠 선생님은 그것을 적극 격려했고 또 내게 여러 명의 환자들을 보내 주기도 했다. 나는 올드 주리에 있는 자그마한 집을 얻었고 결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 그리하여 뉴게이트 거리에서 양말 가게를 하는 에드먼드 버튼 씨의 둘째 딸인 메리 버튼과 결혼했는데 장인은 내게 4백 파운드의 지참금을 주었다.

    그러나 고마운 스승 베이츠 선생님이 그 후 2년 만에 돌아가셨고 나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므로 내 의원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나는 양심상 내 동료 의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비양심적인 행위를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와 몇몇 친지들과 상의한 끝에 다시 선상 의사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두 배에서 연속하여 의사로 근무하면서 6년 간 동인도 제도와 서인도 제도³를 여러 번 여행했고, 그로 인해 내 재산도 상당히 늘어났다. 나는 여가 시간이면 고대와 현대의 최고로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배에 좋은 책들이 다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항해 중에 어떤 지역에 상륙하면 그 지역의 언어뿐만 아니라 그곳 주민들의 풍습과 기질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기억력이 좋아서 그 사람들의 언어를 쉽게 배웠다.

    3동인도 제도는 동남아시아 말레이 제도, 서인도 제도는 북아메리카 동쪽 카리브 제도를 말한다.

    이 여행들 중 마지막 여행에서는 그리 큰돈을 벌지 못했고 나는 바다가 싫증이 났다. 그래서 더 이상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와 가족과 함께 육지에 머무르기로 결심했다. 나는 올드 주리에서 페터레인으로 이사를 했고, 거기서 다시 부두 가까운 지역인 워핑으로 옮겨갔는데 선원들을 내 의원의 환자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개업 생활은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의원의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3년을 보냈으나 별 성과가 없었고, 나는 남태평양으로 출항 예정인 앤틸로프 호의 선장 윌리엄 프리처드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아 다시 항해에 나섰다. 우리는 1699년 5월 5일 브리스틀에서 출발했고 항해는 처음엔 아주 순조로웠다.

    이 해역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보고하여 독자들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된다. 단지 다음의 사항만 말하면 충분하리라. 동인도 제도로 가는 길에 우리는 폭풍을 만나 태즈메이니아의 북서쪽으로 밀려갔다. 방위를 관측해 보니 우리의 위치는 남위 30도 2분이었다. 선원들 중 12명은 과도한 노동과 영양 부족으로 사망했다. 나머지 살아 남은 선원들도 아주 허약한 상태였다. 그 해역에서 여름이 시작되는 11월 5일, 해상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는데, 선원들이 배에서 약 2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 우뚝 솟은 암초를 발견했다. 그러나 바람이 워낙 거세었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볼 사이도 없이 곧바로 그 암초로 밀려갔고 배는 좌초하여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를 포함하여 선원들 중 여섯 명은 배에서 바다로 작은 보트를 내려 그 위에 올라타고서 난파하는 배와 암초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내 계산으로 약 15킬로미터 정도 노를 저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팔을 돌릴 수가 없었다. 본선에 있을 때 이미 상당히 체력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체력이 바닥나 버린 우리는 파도가 치는 대로 몸을 내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 반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북쪽에서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우리의 보트가 뒤집혔다. 그 보트에 함께 탔던 내 동료 선원들, 암초 위로 도망친 선원들, 배 안에 그대로 남아 있던 선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심 그들이 모두 실종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나는 운명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헤엄을 쳤고 바람과 조수의 도움으로 계속 앞으로 밀려 나갔다. 나는 종종 다리를 밑으로 내려 보았으나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았다. 내가 거의 탈진하여 더 이상 헤엄을 칠 수 없었을 때, 갑자기 두 발이 땅바닥에 닿는 것을 느꼈다.

    이 무렵 강풍은 상당히 잦아들었다. 땅 바닥의 경사도 아주 완만하여, 거의 1.6킬로미터 정도를 걸어가니까 해안이 나왔다. 나는 그때가 저녁 여덟 시 무렵이라고 짐작했다. 곧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8백 미터 더 걸어갔으나 인가나 주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몸이 너무나 탈진하여 그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주 피곤했고 날씨는 무더웠으며 게다가 배에서 탈출하기 직전에 브랜디를 약간 마셨으므로, 아주 나른하여 그냥 드러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곧 나는 짧게 자란 부드러운 풀밭 위에 쓰러졌다. 거기서 평생 그런 단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곤하게 잠이 들었다. 내 추측에는 아홉 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깨었을 때 여전히 대낮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려 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있었는데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숱이 많고 기다란 나의 머리카락 또한 그런 식으로 결박되어 있었다. 나는 내 겨드랑이에서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나의 상체를 묶고 있는 여러 갈래의 가느다란 끈도 느꼈다. 그리하여 오로지 하늘만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햇빛은 내 두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주위에서 혼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왔지만 내가 누워 있는 자세에서는 하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곧 나는 어떤 살아 있는 물체가 내 왼쪽 다리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앞으로 계속 전진하여 내 가슴을 통과하더니 바로 턱 앞까지 왔다.

    내가 가능한 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아 바라보았더니 그것은 키가 불과 15센티미터 정도인 사람이었다. 그는 양손에 활과 화살을 들었고 등에는 화살통을 메고 있었다. 곧 적어도 그런 사람 40명쯤 되는 무리가 첫 번째 사람을 따라 내 몸 위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자 그들은 겁을 집어먹으며 뒤로 달아났다.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지만, 그들 중 일부는 나의 양 허리에서 땅으로 뛰어내리다가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다시 돌아왔다. 그들 중 한 명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지점까지 올라왔는데, 너무나 놀랍다는 듯이 두 손과 두 눈을 치켜 올리더니 헤키나 데굴이라고 날카로우면서도 뚜렷한 목소리로 외쳐댔다. 다른 자들도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독자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나는 결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운 좋게도 줄을 끊을 수가 있었고 내 왼쪽 팔을 땅에다 고정시킨 핀들을 잡아 뺐다. 나는 왼쪽 팔을 얼굴 쪽으로 들어올림으로써 그들이 나를 결박한 방법을 알아냈다. 방금 전에 사납게 머리를 잡아당겨 머리가 엄청 아팠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내 머리카락을 왼쪽 땅에다 고정시킨 줄들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제 고개를 약 5센티미터 정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사로잡기도 전에 두 번째로 달아났다. 그리고 곧 아주 날카로운 억양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멈추자 그들 중 하나가 톨고 포낙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곧 나는 백여 개의 화살이 내 왼쪽 손에 발사되는 것을 느꼈다. 그 화살들은 백여 개의 바늘처럼 내 손을 찔러댔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 유럽에서 포탄을 쏘아대는 것처럼 공중을 향해 또다른 화살들을 발사했는데, 그것들 중 다수가 내 몸에 떨어졌으나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일부 화살들은 내 얼굴에 떨어졌는데 나는 즉각 왼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이 한바탕의 화살 세례가 끝났을 때, 나는 슬픔과 고통으로 신음 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결박에서 풀려나려고 다시 버둥거리자 그들은 전보다 더 강력한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창으로 나의 양 옆구리를 찔러댔다. 운 좋게도 나는 몸에 꽉 끼는 가죽 상의를 입고 있었으므로 창이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 계획은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는 이미 풀린 나의 왼손을 써서 쉽사리 결박을 풀어버리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몸집이 아주 작은 그곳 주민들을 보니, 나머지 주민들도 내가 보았던 그 자와 똑같은 신체 구조라면 설령 그들이 대군을 이끌고 온다 해도 충분히 대적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조용히 있는 것을 보더니 그들은 더 이상 화살을 발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음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의 숫자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에서 약 4미터 떨어진 곳, 내 오른쪽 귀 위쪽에서 한 시간 이상 뭔가 두드려 만드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정 핀과 결박 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땅에서 약 45센티미터 높이의 임시 가설 무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시설의 평대 위에는 주민 네 명이 올라설 수 있었고, 거기에 오르는 사다리가 두세 개 설치되어 있었다. 그 평대에 올라온 주민들 중 하나는 지체 높은 사람인 모양인데, 내게 장황한 연설을 했으나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지체 높은 사람이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 랑그로 데훌 산이라는 말을 세 번 소리쳤다는 것은 미리 말해 두고 싶다(이 말과 앞에 나온 말들은 나중에 내게 설명이 되었다).

    그 즉시 50명의 주민들이 앞으로 나서더니 나의 왼쪽 머리를 땅에다 결박시킨 줄들을 끊어 주었다. 그러자 나는 머리를 자유롭게 오른쪽으로 돌릴 수 있었고, 곧 연설을 하려고 하는 사람과 그의 몸짓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중년의 나이였고 그를 수행한 다른 세 사람보다 훨씬 키가 컸다. 그 셋 중 한 명은 시종으로, 그 지체 높은 사람의 옷자락을 약간 들어올리고 있었는데 그의 키는 나의 가운뎃손가락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그의 양 옆에 공손하게 서 있었다. 나는 협박의 어투를 여러 번 느낄 수 있었으나 약속, 연민, 친절함 등의 분위기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공손한 태도로 몇 마디 대답을 하면서, 태양 쪽으로 나의 왼손을 들어올리고 두 눈을 치켜뜸으로써 태양을 나의 증인으로 부르는 시늉을 했다.

    내가 배를 탈출한 지 여러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동안 단 한 조각의 음식도 먹지 못했으므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자연의 욕구가 너무나 강력하게 압박해 왔으므로, 나는 더 이상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비록 예절을 위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다 대면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표시했다. ‘후르고’(내가 나중에 안 바이지만, 그들은 고관대작을 이렇게 불렀다)는 내 몸짓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임시 가설무대에서 내려가더니 여러 개의 사다리를 내 양쪽 옆구리에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백여 명의 주민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내게 접근해 왔다. 그들은 고기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그 음식은 나에 대한 최초의 첩보를 받은 황제의 명령으로 즉각 준비되어 그곳으로 수송되어 온 것이었다.

    바구니 속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있었지만 맛만 가지고서는 어떤 동물의 고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양고기같이 생긴 어깨, 다리, 허리살 등이 잘 조리되어 있었는데 크기는 종달새 날개보다 더 작았다. 나는 그것들을 한 번에 두세 개씩 먹어치웠다. 소총 총알처럼 생긴 빵은 한 번에 세 개씩 먹었다. 그들은 나의 식욕과 먹성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부지런히 음식을 대 주었다.

    이어 나는 음료가 필요하다는 몸짓을 했다. 그들은 나의 먹성으로 보아 음료도 보통의 양으로는 감당할 수 없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었으므로 아주 교묘한 기술을 발휘하여 그들 나라에서 제일 큰 통을 줄을 써서 들어올리더니 내 손까지 굴려 와서 마개를 땄다. 거기에는 음료가 4분의 1 리터 정도밖에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그것은 부르고뉴 와인 같은 맛이 났지만 한결 더 감미로웠다. 그들은 내게 두 번째 큰 통을 가져왔고 나는 단숨에 마시고서는 좀 더 가져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내놓을 통이 없었다.

    내가 이런 경이로운 행동을 해보이자 그들은 기뻐서 소리쳤고 내 가슴 위에서 춤을 추면서 아까 했던 말인 헤키나 데굴을 몇 차례 반복해서 말했다. 그들은 깨끗이 비워버린 두 통을 땅으로 내던지라고 나에게 신호를 했고, 그에 앞서 보라크 미볼라라고 외치면서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켜서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공중에 떠오르는 두 통을 보자 다 같이 헤키나 데굴 하고 소리쳤다.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들이 내 몸 위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내 손아귀로 잡을 수 있는 마흔 명 혹은 쉰 명을 손아귀에 움켜잡고 땅에다 패대기치고 싶은 욕구를 문득문득 느꼈다. 그러나 아까 몸에 맞았던 화살의 고통이 기억났고, 그건 그들이 내게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또 내가 아까 지체 높은 사람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명예를 지키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런 공격적 욕구를 억누를 수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비용도 아끼지 않고 내게 관대한 대접을 해준 사람들에게 나 또한 상호 우의의 정을 베풀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인들의 대담한 행동에 내심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왼쪽 손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내 몸 위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다. 또 틀림없이 내가 아주 엄청난 괴물처럼 보일 텐데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잠시 뒤 내가 더 이상 고기를 달라고 하지 않자 내 앞에 황제가 보낸 높은 신분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 정부 고관은 내 오른쪽 다리의 발목 부분에서 올라와서 내 얼굴까지 전진해 왔는데 수행원이 약 열두 명이었다. 그는 폐하의 옥새가 찍힌 신임장을 꺼내서 내 눈 앞에 들이밀고서 약 10분간 연설을 했다. 그는 화를 내는 기색은 없었으나 말하는 어조는 결연했다.

    그는 가끔씩 앞쪽을 가리켰는데, 비록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8백 미터 정도 떨어진 수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정부의 내각에서 나를 수도로 데려오라고 결정했고 폐하가 승인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마디 대답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자유로운 왼손을 들어서(그들이 다칠까봐 정부 고관과 수행원들의 머리 훨씬 위쪽으로 들어올렸다) 오른손에다 갖다 놓고 이어 내 머리와 몸을 가리키면서 결박을 풀어 달라는 표시를 했다. 고관은 내 뜻을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안 된다는 뜻을 표시하고 또 양손을 포개어 보여 주면서 내가 포로 자격으로 수송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렇지만 고관은 내가 고기와 음식을 충분히 먹는 등 잘 대접을 받지 않았느냐고 몸짓과 손짓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그 순간 또다시 내 힘으로 결박을 풀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얼굴과 양손에 아까 화살을 맞았을 때의 따끔거리는 고통이 여전히 느껴졌다. 사실 내 피부는 물집이 잡혔고 또 여러 개의 화살이 아직도 얼굴과 양손에 박혀 있었다. 게다가 적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목격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처분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후르고와 그의 수행원들은 아주 공손하면서도 쾌활한 표정으로 내게서 물러갔다.

    곧 나는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데, 페플롬 셀란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내 왼쪽 옆구리에 달라붙어 결박한 밧줄을 어느 정도 풀어 주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소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양의 오줌에 소인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앞서 나의 동작으로 내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엄청난 소음과 격류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살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서 내 오른쪽 옆구리에서 좌우로 멀찍이 벌려 서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전에 그들은 내 얼굴과 손에 아주 좋은 냄새를 풍기는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 연고 덕분에 몇 분 사이에 화살에 맞아 따끔거리던 통증이 다 사라졌다. 이런 편안한 상황에다 아주 영양가 높은 고기와 음료를 먹고 마셔서 원기가 회복된 탓인지 나는 곧바로 다시 잠에 떨어졌다. 나중에 들어서 안 이야기지만 나는 여덟 시간 정도 잠을 잤다. 그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의사들이 황제의 명령으로 와인 통에다 수면제를 섞었던 것이다.

    내가 상륙하여 풀밭에 드러누워 자고 있던 그 순간에, 황제는 지급至急 전령에 의하여 그 소식을 보고받은 듯하다. 황제는 이어 내각에서 내가 위에서 말한 방식으로 나를 결박하도록 명령을 내렸다(결박 작업은 내가 잠들어 있던 밤중에 수행되었다). 또 내게 다량의 고기와 음료를 보내 주고 그 다음에는 수송 기계를 준비하여 수도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결단은 아주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것이었다. 나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만나면 그 어떤 유럽의 군주도 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조치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관대한 것이었다. 가령 이 사람들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창과 화살로 나를 죽이려 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따끔거리는 화살을 느끼자마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고 그 고통 때문에 나의 분노와 체력은 엄청나게 솟구쳤을 것이다. 당연히 나를 결박한 밧줄 따위는 가볍게 풀어버렸을 것이고, 그 다음에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을 것이며 또 내게서 아무런 자비도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이었고, 명성 높은 학문의 후원자인 황제의 포용과 격려에 의하여 완벽한 수준의 기계공학에 도달했다. 이 군주는 나무들이나 다른 무게 나가는 것들을 수송하기 위하여 바퀴 달린 운송 기계를 여러 개 준비해 두었다. 그는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 엄청나게 큰 군함들–그중 어떤 것은 길이가 3미터나 되었다–을 건조하고는, 이 수송 기계들을 사용하여 3백 내지 4백 미터 떨어진 바다까지 수송했다. 5백 명의 목수와 기사들이 즉각 그들 나라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수송 기계를 준비하는 작업에 달려들었다. 그것은 땅에서 8센티미터 높이로 들어올린 목제 기계였는데 길이 2미터에 너비가 약 1.2미터였고 그 밑에는 22개의 바퀴가 달려 있었다.

    나는 아까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데 그건 바로 이 수송 기계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계는 내가 상륙한 후 네 시간만에 출발한 듯했다. 기계는 누워 있는 나의 바로 옆에 평행이 되게 놓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들어서 그 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 작업을 위하여 30센티미터 높이의 기둥 80개가 세워졌다. 그리고 갈고리를 써서 짐 꾸리는 끈처럼 굵은 노끈들을 일꾼들이 내 목, 양손, 상체, 두 다리 등에 튼튼하게 감아 놓은 무수한 붕대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9백 명의 힘센 인력이 달려들어 기둥에 고정시킨 도르래를 이용하여 이 노끈들을 잡아당겼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나는 세 시간도 안 되어 수송 기계 위에 올려졌고 다시 단단하게 결박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이 인양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 나는 와인에 들어간 수면제 탓에 내내 곤히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키가 12센티미터 정도 되는, 황제 폐하의 말 1천5백 마리가 동원되어 나를 수도까지 끌고 갔다. 수도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8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가 길 떠난 지 네 시간쯤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뭔가 고장이 나서 수송 기계가 잠시 멈추어 선 동안에, 두세 명의 젊은 원주민들이 잠든 내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수송 기계 위로 올라와 내 얼굴까지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인 근위대의 장교가 그가 휴대한 단창의 날카로운 끝을 내 왼쪽 콧구멍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것은 볏짚처럼 내 코를 자극했고 나는 거세게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사라졌다. 나는 수송 도중에 갑자기 깨어난 사건의 전말을 3주 후에나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 내내 장거리 행군을 했고 밤이 되자 멈추어 섰다. 나의 양옆에는 각 5백 명의 근위대원이 보초를 섰는데 절반은 횃불을, 나머지 절반은 활과 화살을 들고 대기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것 같으면 화살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 우리는 행군을 계속했고 정오 무렵에 도성의 출입문으로부터 약 2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황제와 궁중 신하 전원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고관들은 황제가 직접 내 몸에 올라가서 옥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며 만류했다.

    운송 기계가 멈추어 선 곳에는 오래된 사원이 하나 서 있었는데 왕국 내에서 가장 큰 사원이었다. 그곳은 몇 해 전에 불미스러운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부정 탄 곳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용도가 전환되었고 모든 장식품과 집기들은 치워졌다. 나는 이 건물에 머무르기로 결정되었다. 북쪽을 바라보는 대문은 높이 약 1.2미터에 너비가 거의 60센티미터였다. 나는 이 대문을 통하여 안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었다. 대문의 양옆에는 땅에서 15센티미터 정도 올라온 곳에 자그마한 창문이 각각 하나씩 나 있었다. 왼쪽에 있는 창문을 통하여 국왕의 대장장이들이 91개의 쇠사슬을 반입했다. 그 쇠사슬은 유럽의 귀부인의 시계를 매단 줄처럼 생겼는데 크기도 그와 거의 비슷했다. 그들은 그 쇠사슬을 내 왼쪽 다리에다 걸고 다시 36개의 자물쇠로 꽁꽁 잠갔다.

    이 사원의 맞은편, 큰길 저쪽 약 6미터 떨어진 곳에는 대략 1.5미터 높이의 작은 탑이 하나 있었다. 황제는 나를 쳐다보기 위해 궁중 대신들과 함께 이 탑에 올랐다. 나는 그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나중에 들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목적을 위하여 도시의 주민 약 10만 명이 그곳에 나온 것으로 추산되었다. 근위병들이 나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에 걸쳐 1만 명 정도 되는 주민들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내 몸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곧 그것을 금지하면서 다시 내 몸 위로 올라가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포고령이 떨어졌다.

    일꾼들은 내가 더 이상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내 몸을 결박했던 노끈을 다 끊었다. 그러자 나는 지난 한평생 느껴 본 적이 없을 법한 우울증을 느끼며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서 걷자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커다란 고함을 일제히 내질렀는데 그 굉음은 필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의 왼쪽 다리를 묶은 쇠사슬은 길이가 약 2미터였으므로, 반원형을 그리며 앞뒤로 걸어다니는 자유만 겨우 누릴 수 있었다. 쇠사슬의 끝이 대문에서 1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고정되었으므로, 나는 대문 안으로 기어들어가 사원 경내에서 몸을 쭉 뻗고 드러누웠다.

    제 2 장

    릴리펏의 황제가 여러 명의 귀족을 데리고 구금 중인 저자를 보러 오다. 저자가 황제의 신체와 의복에 대하여 묘사하다. 저자에게 릴리펏의 말을 가르치기 위해 학자들이 임명되다. 저자가 온순한 기질로 그들의 호감을 얻다. 저자의 호주머니가 수색되어 칼과 권총을 빼앗기다.

    내가 두 발로 일어서서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그처럼 흥미로운 광경을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해야 할 듯하다. 사원 주변의 지역은 하나의 계속되는 정원처럼 보였다. 대체로 사방 12미터의 정방형인 울타리 친 들판은 그만한 넓이의 화단과 비슷해 보였다. 이 들판들 사이에 약 5백 제곱미터의 숲들이 간헐적으로 들어서 있었고, 내가 보기에 가장 높은 나무들은 키가 2미터 정도 되는 듯했다. 이어 나의 왼쪽에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는데 극장 무대의 배경으로 그려놓은 도시처럼 보였다.

    나는 벌써 여러 시간 동안 극심한 생리적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는데 거의 이틀 동안 용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화급함과 수치심 사이에서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었고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나는 사원의 대문을 닫았고, 쇠사슬이 허용하는 데까지 갔다. 그리고 그 불편한 물건을 내 몸에서 방출했다. 내가 이처럼 지저분한 행동을 저지른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나는 관대한 독자들이 내가 처한 곤궁한 상황을 원만하고 불편부당하게 고려한 후에 이런 행위를 양해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 때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쇠사슬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야외로 나가서 용변을 보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에 그 지저분한 물건은 처리가 되었다. 분뇨 처리 업무를 맡은 두 명의 하인들이 손수레에 담아서 그 냄새나는 물건을 밖으로 내갔던 것이다. 청결의 문제와 관련하여 내 입장을 온 세상에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없었더라면, 나는 일견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문제를 이토록 길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중상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이 문제와 그 외의 다른 문제와 관련하여 나의 청결함을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었다.

    이 용무가 끝났을 때, 나는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황제는 이미 작은 탑에서 내려와 말을 타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황제를 태운 말은 잘 훈련된 어마御馬였지만 마치 자기 앞에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움직이는 듯한 그런 광경은 아주 생소한 것이었으므로, 놀라서 앞발을 들고서 벌떡 서 버렸다. 그러나 탁월한 기수인 황제는 안장 위에 침착하게 앉아 있었고, 그러자 수행원들이 달려들어 말의 고삐를 재빨리 잡았다. 그동안 황제는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그는 말에서 내리자 아주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으나, 나의 쇠사슬이 미치는 범위 밖에 서 있었다. 그는 이미 대기 중인 요리사와 시종들에게 내게 음식과 음료를 가져다 주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바퀴 달린 수레 위에다 그것들을 올려놓고서 내 손이 미치는 곳까지 밀고 왔다. 나는 그 수레에서 음식을 집어 들고 곧 비워버렸다. 스무 대의 수레에는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고, 열 대에는 술이 들어 있었다. 고기가 든 각 수레에는 두세 번 씹어 먹을 만한 분량의 고기가 들어 있었다. 음료는 도자기 병에 들어 있었는데, 수레 한 대당 병이 열 개씩 있어서 그것을 몽땅 한 번에 마시고, 나머지도 그런 식으로 마셨다.

    황후와 황자, 황녀들은 여러 명의 귀부인들을 대동했으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말이 놀라서 앞발을 쳐드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들은 의자에서 내려와 황제에게로 왔다. 나는 이제 황제의 용모에 대해서 말하겠다. 그는 궁정의 그 어떤 신하보다 내 손톱만큼이나 키가 더 컸는데,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얼굴은 강인하면서도 남성적이었고 오스트리아 풍의 입술에 매부리코였다. 안색은 올리브 빛깔이었고 자세는 꼿꼿했으며 상체와 사지는 잘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의 몸짓은 우아했고 행동거지는 장엄했다. 그는 당시 28세 9개월이었으므로 한창 때를 지나기는 했으나, 즉위하여 통치한 지 7년이 지났고, 하는 일마다 축복을 받았으며 전투를 하면 대체로 승리했다. 황제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나는 옆으로 누웠고 그리하여 내 얼굴은 그와 평행을 이루었다. 이제 그는 내게서 약 3미터 떨어진 지점에 서 있었다. 나는 그 후에도 황제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본 일이 여러 번이었으므로 그의 신상 묘사는 아주 정확하다고 자신한다.

    황제의 의복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했으며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해당하는 패션이었다. 그는 머리에 보석들이 상감된 가벼운 황금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투구 끝부분에는 깃털이 달려 있었다. 그는 내가 혹시라도 움직일 때를 대비하여 칼집에서 뽑은 칼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칼은 길이가 거의 8센티미터였는데 칼자루와 칼집은 다이아몬드가 상감된 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으나 아주 뚜렷하고 분명했고, 그래서 나는 일어섰을 때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귀부인들과 궁정 신하들은 대부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황금과 순은의 무늬가 장식된, 땅바닥에 펼쳐 놓은 페티코트 같은 인상을 주었다.

    황제는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대답을 했으나 우리는 서로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사제와 법률가들이 있었는데(나는 그들의 의복으로 짐작을 했다), 황제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독일어와 네덜란드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혼성 속어 등을 말해보았지만 모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있다가 궁정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고, 내 곁에는 강력한 경비 부대가 남겨졌다. 어떻게 하든 내 곁 가까운 곳에 밀고 들어오려고 조바심치는 대중의 뻔뻔함과 때로는 악의를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내가 집 앞의 문 앞에 앉아 있는데 그들 중 몇몇 뻔뻔한 자들이 나를 향해 화살을 발사했고 그중 한 화살은 나의 왼쪽 눈을 거의 맞출 뻔했다.

    경비대장은 그 여섯 명의 난동꾼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고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는 것만큼 합당한 처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하 병사들은 그 지시를 받들어서 창의 손잡이 부분으로 그들을 찔러대면서 내 손이 닿는 곳까지 밀어 넣었다. 나는 그들을 내 오른손으로 모두 잡아서 그중 다섯 명은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여섯 번째 주민에 대해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 자를 산 채로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불쌍한 주민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고 경비대장과 장교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특히 내가 손칼을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내자 더욱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들의 공포를 불식시켰다. 나는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 주민을 묶은 밧줄을 재빨리 끊어 주고 그를 땅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황급히 현장에서 달아났다. 나는 나머지 주민들도 호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내서 동일하게 처리했다. 그러자 병사들과 주민들은 나의 관대한 처분에 크게 감동한 모양이었다. 나의 그런 태도는 궁중 여론에서 내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했다.

    저녁 무렵 나는 아주 힘들게 집으로 들어가 거기 땅바닥에 누웠다. 나는 약 2주간을 그런 식으로 생활했다. 이 기간 동안 황제는 나에게 알맞은 침대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침대 6백 개가 수레로 내 집에 실려 와서 조립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150개의 침대들로 너비와 길이를 맞추어 내가 사용할 침대의 바닥을 만들고 나머지 450개로 그 위에 3층을 더 얹었다. 그 침대 덕분에 나는 매끈한 돌로 이루어진 딱딱한 바닥의 압박으로부터 그런대로 해방이 되었다.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침대와 같은 계산의 비율을 적용하여 내게 깔개, 담요, 덮개 등을 제공했다. 나처럼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 그 정도면 침구로서는 충분했다.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왕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자, 나를 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부자, 한가한 사람, 궁금증 많은 자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자칫 마을들이 텅 비고 농사와 가사 일에 대하여 엄청난 태만이 발생할 뻔했으나, 황제는 여러 번의 칙령과 국가 포고령을 내려서 그런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미리 막았다. 황제는 나를 이미 본 사람은 즉각 집으로 돌아가되, 나의 집 50미터 근처까지 다시 오려면 궁정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그 칙령 덕분에 정부의 재무부는 상당한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한편 황제는 각의를 여러 번 개최하여 나를 처분할 방향에 대하여 신하들과 논의했다. 나중에 나의 각별한 친구이며 정부 고관이어서 비밀 사항을 많이 아는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궁정은 나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쇠사슬을 끊고 달아날 것을 우려했다. 나의 식사 비용은 엄청난 규모였고 식량이 모자라서 기근 사태가 올 수도 있었다. 한때 그들은 나를 굶겨 죽일 생각도 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내 얼굴과 양손에 독화살을 쏘아 나를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저런 거대한 시체의 악취는 수도에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고 그 병은 왕국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도 있었다.

    이런 논의가 오고 가는 중에 여러 명의 군 장교들이 각의 장소를 찾아갔고, 그들 중 두 명이 방 안으로 들어가 위에서 말한 여섯 명의 범죄자들을 관대하게 풀어준 나의 행동을 보고했다. 황제와 각의 대신들은 그 보고를 받고서 깊이 감동을 받았고, 곧 황제의 칙령이 내려졌다. ‘수도 근처 8백 미터 범위 내에 있는 모든 마을은 내일 아침 산악 인간의 음식용으로 6두의 쇠고기, 40두의 양, 기타 고기들을 내놓아야 한다. 또 그에 비례하여 양질의 빵과 와인, 기타 주류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황제는 이어 그 비용을 국고에서 지불하라고 재무부에 명령을 내렸다. 이 비용과 관련하여 황제는 주로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충당했고, 신민들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금을 거두지 않았다. 신민들은 전쟁에 나설 때 자기 비용으로 참가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내 하인으로 6백 명이 내게 배정되었다. 이 하인들에게는 숙식비에 해당하는 임금이 지불되었고 편의를 위해 내 집 문 양옆에 그들을 위한 텐트가 설치되었다. 또 그 나라의 풍습에 알맞은 옷을 내게 지어 주라고 3백 명의 재봉사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폐하의 측근인 여섯 명의 대학자들이 나에게 그들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마지막으로, 황제의 어마들, 귀족의 말들, 그리고 근위 부대 등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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