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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book277 pages2 hours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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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나님의 은혜로 저의 지혜로는 평생 풀지 못할 것만 같았던 로마서 9장을 나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염원했던, 사람의 계명이라는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다윗의 물맷돌 같은 책을 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제 영에 ‘그 책을 쓰기 전에 다른 책을 먼저 쓰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책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승리하는 교회』를 다시 읽고 있을 때, 그 내용 중 일부를 깊이 소화하고 보강하여 책을 써야 한다는 강력한 부담감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즉각 그것이 로마서 9장에 대해 쓰기 전에 먼저 써야 할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9장에 관한 것은 비성경적인 칼빈주의에 미혹되어 있는 교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극히 강력한 책입니다. 종교개혁보다 나 자신을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을 개혁해야 종교개혁도 의미가 있습니다(고전 9:27). 따라서 왜 로마서 9장에 관해 쓰기 전에 먼저 써야 할 책이 있다고 제 영에 그렇게 느꼈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저는 본서의 핵심 소스를 제공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길용 목사님도 전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큰 변화와 돌파를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본서를 구상하면서 저는 이례적인 성령의 강력한 감동과 흥분, 그리고 기대감을 느꼈습니다. 수년 동안 이렇게 강력한 성령의 감동은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본서가 독자들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본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되고 자유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의 부르심과 은사 분야에서 놀라운 돌파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본서를 읽고 절대로 내용을 흘려보내지 말고 자기 것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본서가 여러분 모두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Aug 12, 2013
ISBN9791190341325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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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보다 나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변승우

    6:12

    정말 말씀으로 변화됩니다!!!

    (수원 사랑하는교회 성도님의 승리의 간증)

    살아 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살아 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변화시켜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주시는 변승우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교회 안에서 같은 진리의 말씀을 계속 선포하여주시고 먹여주시는 박상백 목사님, 이유진 전도사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교회에 와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행할 수 있는 길을 인도하여주셔서 변화되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절에 다니고 절에서 하는 수련회도 참여하고 불교를 믿는 엄마가 좋아하실 정도로 절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선한 행실이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길인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교회는 강요하여 다니게 하는 곳으로 여기며 가까이 가지도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제 인생이 바뀌게 된 일이 25살 때 일어났습니다. 25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 교회에 다니는 고모가 교회 분들을 모시고 오셔서 아빠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엄마는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염을 한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작은아빠들이 들어가셔서 보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가서 얼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편안한 얼굴로 갔다’며 안심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선한 행실이 아닌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장례를 다 치르고 그 다음 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주님의 사랑이 느껴져 한없이 눈물이 나오고 늦게 믿은 것에 대해 후회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알고 믿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다닌 교회에서 제자교육, 셀 모임, 예배를 통해 말씀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깨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5년 내내 저의 모습은 자신이 느낄 정도로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전 교회를 다닐 때 고모가 사랑하는교회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지만, 주변에서 이단이라고 들었기에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걱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교회를 뒤로한 채 지내던 제가 생각지도 못하게 이전 교회를 나오게 되고, 그 뒤로 사랑하는교회에 다니다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 선포와 주님 안에서 모든 역사가 일어나는 사랑하는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이것이 신앙생활이며 정말 주님이 세우시고 함께하시는 교회’임을 깨달아가며 사랑하는교회에 와보거나 설교 말씀을 들어보지도 않고 이단이라고 등을 돌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는 모든 사람들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교회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을 주님께 고백하며 우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교회 안에서 말씀을 통해 주님 닮은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의 자녀인지, 내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배워가며 행하게 되었습니다. 새 계명에 대해 말씀 선포해주실 때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러 가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붙잡고 사랑하러 각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프뢰벨 방문교사입니다. 20분~40분 수업을 하는데 월요일부터 사랑하러 간다고 말하고, 아이들을 만날 때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했습니다. 눈을 맞춰주고,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네가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등 사랑의 말들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 오는 것을 싫어하고 한글이 어려워서 배우기 싫어하던 아이가 엄마에게 선생님 언제 오세요?라고 물어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글을 예습·복습해야 선생님과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면서 예습·복습하며 기다리자고 한다고 어머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께 감사드리고 변승우 목사님, 사랑하는교회에 감사드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 언제 오시냐고, 선생님 아프시면 안 된다고, 그러면 못 만난다고 하며 기다려주는 집들이 많아지면서 방문교사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사랑할 수 있어 기쁘고, 어머님들께서 선생님 교회 다니시죠? 어느 교회세요? 하고 물어봐주시면 예. 사랑하는교회 다니고요. 전 수원지교회를 다닙니다.라고 말씀드리는 일이 기쁜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무엇과 씨름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선포하실 때, 어떻게 고백하고 선포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그 주부터 계속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사랑, 본성, 생명이 있음을 크게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음을 선포하고, 말씀을 읽으며 선포하였습니다. 날마다 그때그때 올라오는 감정이나 주님과의 시간을 가지려고 할 때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짜증, 분노, 부정적인 생각, 미움,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것, 예수님과 상관없는 것을 거부합니다.라고 선포하며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 생각이 변화되고 대적에게 생각과 마음에 틈을 주는 일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 감사, 기쁨, 승리,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안 되는 건가, 아직도 멀었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사랑하는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고 진심으로 믿음, 감사, 기쁨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을 느끼며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 ■ ■

    최근 하나님의 은혜로 저의 지혜로는 평생 풀지 못할 것만 같았던 로마서 9장을 나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염원했던, 사람의 계명이라는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다윗의 물맷돌 같은 책을 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제 영에 ‘그 책을 쓰기 전에 다른 책을 먼저 쓰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책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승리하는 교회』를 다시 읽고 있을 때, 그 내용 중 일부를 깊이 소화하고 보강하여 책을 써야 한다는 강력한 부담감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즉각 그것이 로마서 9장에 대해 쓰기 전에 먼저 써야 할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9장에 관한 것은 비성경적인 칼빈주의에 미혹되어 있는 교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극히 강력한 책입니다. 종교개혁보다 나 자신을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을 개혁해야 종교개혁도 의미가 있습니다(고전 9:27). 따라서 왜 로마서 9장에 관해 쓰기 전에 먼저 써야 할 책이 있다고 제 영에 그렇게 느꼈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저는 본서의 핵심 소스를 제공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길용 목사님도 전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큰 변화와 돌파를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본서를 구상하면서 저는 이례적인 성령의 강력한 감동과 흥분, 그리고 기대감을 느꼈습니다. 수년 동안 이렇게 강력한 성령의 감동은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본서가 독자들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본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되고 자유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의 부르심과 은사 분야에서 놀라운 돌파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본서를 읽고 절대로 내용을 흘려보내지 말고 자기 것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본서가 여러분 모두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CHAPTER 1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한

    인본주의적인 견해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 시대 최고의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3장을 강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본문 구절들 특히 10절에 대한 주석을 끝내기 전에 지금까지의 견해와는 전혀 다르지만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한 가지 해석을 최소한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것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우주적 존재들(다시 말해서 천사들과 귀신들)로 보지 않고 인간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들로 본다. 이 견해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비평은 6:12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때까지 유보해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문제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문제의 중요성은 10절에 관한 캐어드(G. B. Caird)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에베소서에 대한 주석이 잘되었느냐 못되었느냐는 이 구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

    나는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 학자들 앞에서 저절로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볼 때 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나는 바울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하여 기술하였을 때 지상의 사회적 구조들을 언급하고 있다거나,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그들에게 알리는 것을 구속적(교육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다."¹

    약속한 대로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6장 12절을 강해하면서 다시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바울이 말하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는 것을 악령의 인격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이 말을 통해서 사상, 구조, 특히 국가와 그 제도 속에서 구현된 사상 구조(전통, 인습, 법, 권위, 심지어는 종교까지)를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 이론이 점차 득세해나가고 있다. 1930년대에 수많은 독일 신학자들은 이미 이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여왔지만, 영어를 말하는 나라들의 경우는 2차 대전 이후에 와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문제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선 이 이론이 발전되어 나온 과정을 살펴본 후에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²

    이렇게 입을 연 존 스토트는 고든 럽, 핸드릭 벌코프, G. B. 캐어드, 마르쿠스 바르트의 견해를 요약해서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여러분이 굳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 네 사람의 견해를 소개한 후에 그는 왜 그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지를 겸손한 자세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나는 우선 그 착상이 훌륭하다는 점에 대해서 감탄해 마지않는다. 관계되는 학자들은 바울이 하늘의 권세에 대해서 모호하게 언급한 것을, 실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말한 것이라고 노련하게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이 이론의 매력이 있어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진 많은 저자들도 이 견해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미진한 점이 있다. … 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자들이 재구성한 내용이 착상은 훌륭하지만, 인위적인 설명 때문에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에베소서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언급하고 있는 중요한 본문 세 곳을 잘 살펴보라. 1:20-21의 경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모든 지상의 주관자들과 제도들 위에 높이 들어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사실이 그렇고 또 이런 사상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로 삼으셨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지극히 높임을 받으신 영역은 특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하늘에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3:10의 경우에서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는 대상이 지상의 권력 구조라고 바울이 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에서’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 없이 첨가하는 결과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세 번째의 경우도, 기독교인의 영적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한 것’이라고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령의 세력에 대한 것’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 그것들을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갑주 및 무기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도, 두 번이나 마귀가 언급되고 있는 문맥 속에서 바라본다면 초자연적인 권세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에 있는’이라는 말은 그 역시 아무런 의미 없이 첨가된 결과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실상 나는 새로운 이론가들 가운데서 에베소서에 기록된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관한 세 곳의 본문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의 세계인 하늘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하늘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확고부동한 사실로서, 바울은 이 말을 통해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의 신분과 그것들이 활동하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³

    여기에 덧붙여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새로운 주장을 하는 신학자들이 예수님이나 사도들과는 달리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신화적’ 또는 ‘미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비신화화’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제가 존경하는 아주 실력 있는 교수님으로부터 그들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주장을 전해 들었습니다.

    디도서 3: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이처럼 성경은 천사나 귀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통치자와 권세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그 교수님은 당시 바울의 독자들이 통치자와 권세라는 말을 천사나 귀신들로 이해했겠느냐? 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냥 통치자와 권세자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존 스토트는 묵시문학의 경우는 통치자와 권세라고 할 때 주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생각한다.⁴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 교수님은 이 점에 착안하여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는 통치자와 권세들이 가정의 지도자인 부모를 비롯해서 교계의 지도자, 나라의 지도자와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분은 에베소서 2장 6절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는 하늘과 에베소서 6장 12절의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이 같은 하늘이라는 의외의 주장을 했습니다. 거기서 서로 영적으로 싸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릇된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늘들의 하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느헤미야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시편 68: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또한, 성경은 셋째 하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2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셋째 하늘이 있다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도 있어야 합니다. 세 하늘 중 첫째 하늘은 대기권 아래에 있는 허공으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구름과 비행기가 떠다니는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공간, 즉 우주입니다. 셋째 하늘은 하늘 중의 하늘로서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표현한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들이 거주하는 하늘, 즉 천국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베소서 2장 6절의 하늘은 셋째 하늘인 천국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사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바울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6장 12절에 나오는 하늘은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둘째 하늘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바울은 우리가 씨름하고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듣자마자 그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주장 중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따로 구분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뒤의 것만 하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앞의 세 가지는 땅에 있고 맨 뒤의 것만 하늘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책에서 확인한 결과 해긴 목사님은 이와 달리 앞의 세 가지는 첫째 하늘인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은 둘째 하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에베소서 3장 10절을 지적하면서, 거기에는 통치자들과 권세들도 하늘에 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받은 계시가 틀렸다는 의외의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경을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실제로 그 교수님이 말한 대로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3: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왜 똑같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하여 한 곳에는 하늘에 있다고 쓰여 있고, 한 곳에는 다르게 쓰여 있을까요? 저는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어를 찾아보았더니 ‘하늘’은 물론 ‘통치자와 권세’ 역시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곧 바울이 왜 그렇게 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귀신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천사들은 실제로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반면에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귀신들로서 공중이나 지상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다고 쓰지 않은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 어떤 분은 원어도 같다면서 왜 하나는 천사들로 다른 하나는 귀신들로 해석합니까? 너무 인위적인 것 아닙니까?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근거를 말씀해드리지요.

    첫째로, 성경의 본문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증거입니다.

    만약 이들이 귀신을 의미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귀신에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각종 지혜를 알게 하겠습니까? 이것 자체가 이들이 귀신이 아닌 천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3장 10절을 다음과 같이 강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관점은 더욱 넓어진다. 그는 비록 복음이 일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인간들을 향한 것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천사들, 즉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도 전해진다고 보았다. 사도의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과 ‘비밀’에 대해 전파함으로써 기대하게 되는 첫 번째 결과는 교회의 탄생과 성장일 것이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개종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가족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의 지체들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사실상 구원받고 화해된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의 존재는, 하나님의 능력, 은혜, 지혜를 한꺼번에 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첫째로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 다음은 그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 그리고 셋째로는 그의 각종 지혜를 나타내는 존재이다. …

    이는 마치 거대한 드라마가 공연되는 것과 같다. 역사는 극장이요 세계는 무대이며 모든 나라의 교인들은 배우이다. 하나님 자신이 희곡을 집필하셨고 그가 그것을 감독하고 연출하신다. 막과 장이 바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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