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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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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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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성령을 사모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기도하는 집”이 되면 성령만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신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뿐 아니라 목회자들도 크게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운동을 접고 말씀만 가르치는 교회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없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과 은사에 대한 책은 많으나 양신 역사를 어떻게 분별하고, 그들을 어떻게 다루고 회복시킬 수 있는지, 적절하게 안내를 해주는 책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가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축사 사역자도 아니고 감히 제가 이 주제에 대한 책을 쓸 수 있는 적격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쓴 것은 예기치 않게 이 주제의말씀이 제게 레마로 임했기 때문이며, 또한 절박한 현실적인 필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더 탁월한 책을 써서 실제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Jun 8, 2011
ISBN979119034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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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신 역사 - 변승우

    썼습니다.

    | 제1장 |

    양신 역사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가?

    고린도후서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강력한 축사 사역자였던 맥스웰 휘트 목사님은 본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들에게 그들이 ‘다른 영’(고후 11:4)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성령 충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사탄의 영을 받을 수 있다.³ 고 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던 교회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활발했던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유리한 점이 더 많지만 불리한 점도 있습니다. 즉 다른 영을 받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교회는 오히려 영적 전쟁 자체가 없으므로 성령도 안 받고 악령도 안 받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싸워 보지도 않고 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도 강하게 일어나는 대신 일부는 다른 영을 받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 중에 양신 역사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정상적인 사람과 정신이상이 있는 사람이 다르듯이, 성령 받은 사람과 양신 역사 하는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 차이를 알면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7:37-39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경에서 성령은 강에 비유됩니다. 성령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강처럼 흘러갑니다. 성령은 강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성령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그 흐름을 탑니다. 하지만 양신 역사 하는 사람은 그 흐름에서 벗어납니다. 양신 역사하는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성령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눈에 띄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양신 역사임을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방언하고, 울부짖어도 그것은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봄나물이 식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기도하고픈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기도 소리는 즉각 귀에 거슬립니다. 아니 영에 거슬린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공부할 때의 소음처럼 방해가 되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쇠 철판을 못으로 긁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강의 흐름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흐름을 끊는 목소리와 기도가 있는데, 이런 것은 거의 다 양신 역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집회 때 사람이 기도 받고 쓰러질 수도 있고 웃음(거룩한 웃음)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 중에 혹은 주님의 잔잔한 임재가 흐르는데 그 영적 분위기나 흐름에 맞지 않게 아무 때나 웃음을 경망스럽게 터트리는 자가 있습니다. 지난 번 마크 듀퐁 집회 때 그런 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집회 후반부에 주님의 고요하고 거룩한 임재가 다른 시간보다 강하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주님의 거룩한 임재가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일부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영적 흐름에 맞지 않고 흐름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만든 분위기를 깨지 않습니다. 캐더린 쿨만이 말한 것처럼 성령은 성령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령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인위적인 웃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영성집회 강사들은 이런 것을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집회를 돋보이게 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영성집회의 강사들이 가장 격렬하게 육체적으로 반응하는 영이 혼탁한 사람들을 지목해서 예언 기도를 해주는 일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마크 듀퐁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그때 웃음을 터트린 사람들은 성령 자체가 아니라 현상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현상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단순히 혼에서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자들이고, 또 일부는 실제로 양신 역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렇더라도 매일 넘어지기만 하고 교만한 사람, 넘어지지만 이기적인 사람, 넘어지지만 다혈질적인 사람, 거룩한 웃음은 혼자 터트리고 혼탁한 사람, 매일 부들부들 떨면서 변화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게 뭐하는 짓이야! 변화는 안 되고 부들부들 떨고 있고, 변화는 안 되고 웃고 있고, 변화는 안 되고 요란하게 넘어지고, 저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짜 성령의 역사라면 그 사람의 자아가 죽고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없고 현상만 일어난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면 안 되지만 진정한 성령의 역사에는 그 사람이 변화되고 신앙의 성숙이 동반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언제 예수님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까? 넘어지든지, 진동을 하든지, 웃든지, 열매가 없는 것은 다 가짜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진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영분별 하시고 속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영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전에는 그랬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회개가 안 되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행함 있는 산 믿음이 없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거룩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시험 들어야지, 왜 비본질적인 것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십니까? 성경에 너 떨라 그런 명령이 있습니까? 회개하라! 믿어라! 순종해라! 거룩해라! 사랑해라! 겸손해라! 이런 명령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비본질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마시고 본질적인 것을 붙잡고 충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예로, 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춤추며 찬양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의 춤은 자연스럽고 보기에 아름답고 편안함을 주는데, 어떤 사람의 춤은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동작들이 자꾸 눈에 거슬립니다. 한마디로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울산에 늘 춤을 추면서 찬양하는 분이 있었는데, 꺾기 춤을 춥니다. 팔을 자꾸 로봇 동작처럼 꺾는 듯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데, 볼 때마다 걸리고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교회에 적응을 못하고 다른 교회로 갔습니다. 서울에도 한 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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