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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 황당한 교회
무진장 황당한 교회
무진장 황당한 교회
Ebook215 pages1 hour

무진장 황당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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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종교 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는 이제 다시 성경과는 상관없는 황당한 교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 이젠 한번쯤 조용히 이제까지의 배움은 내려놓고 성경을 읽어보고 상고해보는 기회가 왔으면 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Gabrielle Kim
Release dateJul 24, 2023
ISBN9798223626749
무진장 황당한 교회
Author

Elliot Kim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in CA graduate with MDiv.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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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장 황당한 교회 - Elliot Kim

    서문

    1.성경

    성경 66권

    영감으로 쓴 성경

    성경의 무오성

    신약과 구약

    예표와 완성

    2.율법

    신약 시대의 율법

    쓸모없는 율법?

    개판

    완전케 된 율법

    3.교회

    두 가지 의미의 교회

    교회 성장

    교회의 조건

    성만찬

    세례

    유아 세례

    세례는 구원?

    말씀 선포

    지키게 하라

    치리하는 방법

    이방인과 세리로 여김

    치리와 사랑

    신도의 할일

    선교

    지상 목표인 교회

    4.구원

    구원의 오해

    구원얻는 참 방법

    신자의 삶

    5.목사

    목사의 생계

    목사의 근무 조건

    담임 목사

    목사의 업무

    목사 청빙

    목사의 소속

    6.기도

    기도의 은밀성

    기도 시간

    기도 제목

    기도 응답

    중보 기도

    7.찬양

    찬양의 정의

    간절함의 표현

    곡조 실린 기도

    찬양의 대상

    지존자 하나님

    리듬과 멜로디

    8.천국

    천국은 이미

    두루 도는 화염검

    느껴지지 않는 천국

    현실의 천국

    언어의 저주

    안식일

    9.성경의 개념들

    의와 불의

    참과 거짓

    새것과 헌 것

    저자 후기

    서문

    한국에 기독교 탄압이 없어진 이후로 정말 많은 교회들이 생겼다. 당구장 위층에도 생기고 나이트 클럽 옆에도 생겼다.

    또 이렇게 난무하는 교회에서 역시 성경 공부들도 난무했다.

    짧게는 몇 주, 몇 개월, 심지어는 몇 년에 걸친 공부들이 메뉴도 다양하게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깜짝 놀라는 것은 그렇게 전문적인 성경공부를 오래 해 온 교인들이 의외로 성경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는 교인들도 많다.

    그래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까 성경 공부라는 것이 너무 복잡하고 길다. 어제 점심 뭐 먹었는지도 생각이 안 나는 복잡한 현실속에서 몇 개월 전에 교 회에서 배운 성경 공부의 내용이 생각날 리가 없다.

    또 복잡하게 무슨 원어가 어떠니 저떠니 해가면서 자꾸 전문적으로 나가는 바람에 아예 교인들은 배우기를 포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실로 황당한 현상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목도한다.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시작한 개신교가 아무 성경적 근거도 없는 교회 위주의 탈성경 현상으로 범벅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몇 가지 깨달음을 주셨고 그래서 부족하나마 그 몇 가지라도 주의 백성들과 나누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복잡하지 않게.

    혹 이 글을 읽다가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을 만나면 한번 얘기나 들어볼까나 하는 차분한 마음을 갖는다면 자신의 신앙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 일에 모두에게 주의 은혜가 임해서 간단하고 명쾌한 성경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한다.

    1.성경

    성경 66권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뿌리이기 때문에 먼저 성경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성경은 왜 66권인가? 왜 그것만 딱 성경이라고 하는가? 소위 말하는 외경이라는 것도 왜 성경에 포함시키면 안 되나?

    왜 66권만을 성경에 포함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영어로 integrity의 문제다.

    한국말로 말하자면 통일성, 일관성이라고 해야 하나?

    말하자면 여기서 하는 말과 저기서 하는 말이 서로 앞뒤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난 소영이만을 사랑해 라고 했다가 조금 있다가 난 영숙이만을 사랑해 하면 둘 다 사랑을 안 하거나 이 사람이 정신 병자일 수 있다.

    난 소영이도 사랑해 라고 한다거나 영숙이도 사랑해 한다고 하면 그나마 말이 되지만 한쪽만을 사랑한다고 해 놓고 동시에 다른 쪽도 사랑하면 이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된다.

    예수님과 하나님에 관한 책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66권만을 우리는 성경이라고 부르고 다른 것들은 외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외경은 성경 66권에 포함 안 시킨다.

    왜냐하면 성경 66권만이 서로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서로 보완되는 조화로운 말들을 하고 있고, 다른 외경이라는 것은 이 66권에 어긋나는, 일 관적이지 않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성경에 포함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 외경을 성경으로 채택하고 66권은 안 채택하면 되질 않느냐 왜 서로 상반적일 때 어느 한쪽만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는데, 그 외경을 안 택한 이유는 그 외경이 자기네끼리도 서로 앞뒤가 안 맞는 것이기 때문에 이 66권을 버리고 외경을 성경으로 채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66권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서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이것만을 우리는 성경으로 채택한 것이다.

    영감으로 쓴 성경

    이런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어졌다고 한다. 이 말은 성경은 결국 하나님이 쓰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각기 저자가 다 있다. 즉 사람이 쓴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쓰셨으되 사람의 손을 사용하여 쓰셨다는 말이 다.

    그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말하자면, 사람을 멍때리게 해 놓고 받아 적어라 하는 식으로 썼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을 쓴 사람은 자신의 성향이나 의지가 하나도 안 들어가고 무조건 하나님이 부르는 대로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론은 맞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사람을 무언가에 홀리게 해 놓고 하나님이 부르는 것을 사람이 무작정 썼다고 하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 전부 하나님의 성격과 성향, 문체가 드러나서 같은 분위기의 글이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히브리서는 저자를 모른다고 한다.

    이걸 사도 바울이 썼다고 하기에는 바울의 문체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각 복음서나 서신서는 그 작자의 고유의 문체, 성향,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이 사람을 잠시 멍하게 해 놓고 부르는 대로 쓰게 한 것이 아님을 이런 것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정말 어떻게 씌여진 것일까?

    우리가 성경을 봐서 알지만 각 성경은 전부 그 기록자의 성격과 문체, 배 경, 각자의 신학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썼음이 확실한 것은 누가 봐도 이런 문체와 논리 전개, 신학이 마태가 아니고는 도저히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마태만의 고유의 색깔이 나타나 있다.

    마가 복음 역시 마가가 썼다는 것이 확실한 것은 그의 문체, 논리 전개 방식 등등이 고스란히 마가복음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 각자의 성향과 배경,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럼에도 성경은 성경을 하나님이 쓰셨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하나님은 사람의 성격, 배경, 신학적 사고방식, 인품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이 원하시는 내용을 기록하셨으므로, 각 성경 저자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성경을 기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 등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글을 완성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책인데 각자의 성향과 인품, 배경 등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용을 완전하게 전하는 책이다.

    그것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는 뜻이다.

    성경의 무오성

    성경이 하나님이 쓰셨다는 말은 곧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된다.

    만약 성경을 하나님이 쓰셨다면 거기에 오류가 있을 수가 없어야 된다. 만약 오류가 있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이 쓴 것이겠는가?

    만약 사람이 썼다고 하면 오류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오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하나님이 쓰셨는데 오류가 있다면 오류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잘못이겠지.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 중 누가 더 똑똑하겠는가?

    내가 푼 미적분 문제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교수님이 평가할 수 있지 초등 학생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성경이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얘기다. 사람이 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식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이 틀렸다고 하면 그를 쓴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고 그렇다면 그런 성경을 전혀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쓴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니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고 그가 썼다는 성경도 던져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누가 성경이 오류가 있고 믿지 못할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아예 기독교에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도 성경이 한 말이니 믿을 수 없고 우리가 구원을 얻어야 하는 상황인 것도 다 성경이 한 말이니 믿을 수 없다면, 그는 왜 기독교 안에 들어와서 이게 틀리니 저게 틀리니 하면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일까? 아예 믿을만한 다른 종교를 찾아 갈 것이지.

    그런데 과연 그럼 성경은 전혀 오류가 없는 것일까? 과연 성경은 진짜 틀린 데가 하나도 없는 것일까? 나같이 별로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도 성경은 틀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경의 한곳에서는 예수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이 똑같은 상황에서 말을 다르게 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그럼 누구 말이 맞는가?

    예를 들어 보자.

    마태복음 19장 16절과 마가복음 10장 17절을 비교해 보면 하나는 '선한'이란 말을 예수님 앞에 붙였고 하나는 '일' 앞에 붙였다

    둘 중의 하나는 분명 틀린 것이다.

    물론 두 경우가 각기 다른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두 경우가 여러 정황들을 놓고 봤을 때 같은 사건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분명 같은 사건인데 두 제자는 다르게 기록하 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둘 중에 하나는 잘못 들어서 잘못 기록했거나 둘 다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성경에는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성경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이는 억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속한 교단과 학교에서는 성경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나더러 내가 너더러 그거 하지 말라고 골백번도 더 말했잖냐? 라고 하셨다.

    그럴 때 내가 아버지가 그런 말씀하신 날자와 시간과 횟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가, 아버지 아버지가 그거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정확히 43번입니 다. 한국말에 골이라는 말이 얼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골 자를 뺀다 하더라도 백 번도 안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43번입니다. 원하시면 그 시간과 날자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1대 얻어 터질 걸 10대이상은 터질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말씀이 틀린 걸까?

    아무도 이런 아버지의 말씀을 틀렸다고 말하는 아들은 없다 제 정신이 아닌 담에야.

    아버지는 또 가끔 내게 니 나이가 몇 살이냐?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질문에 네 제 나이는 올해로 정확히 45살입니다. 만으로는 생일이 안 지나서 44살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버지가 내 나이를 몰라서 묻는 것인가?

    당연히 내가 하도 그 나이 먹도록 철이 없게 구니까 한심해서 그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내 나이를 모르겠는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어떻게 내 나이를 나보다 모르겠는가?

    그런 아버지의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거기다가 대고 내 나이는 몇입니다.라고 정신 없는 대답을 했다가는 이것도 역시 1대 맞을 걸 10대도 더 맞을 것이다, 그것도 비 오는 날 먼지 날리게.

    가만히 예를 들다 보니 마치 내가 불효자인 것같은, 부모 말을 죽어라 안 듣는 사람 같은 인상을 주게 되는데, 사실은 난 정말 효자임을 밝혀 두고 싶다. 이런 예를 든 것은 순전히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어쨌든 이런 아버지의 말씀을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아버지의 말씀은 과학적 정확성을 필요로 하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어차피 아버지의 말씀은 역사적 고증을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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