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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0권
메모라이즈 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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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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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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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40권 - 로유진

    1. A Poisoned Chalice, Two (6)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지?

    바라 마지않던 일을 해냈음에도 왜 기쁘지 않은 거야?

    그때였다.

    아?

    찰나의 순간, 시야가 느닷없이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위험해요!

    누군가가 내 등을 받치더니 팔을 붙잡는다.

    언뜻 정신이 드니 천장이 보였다. 돌연히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던 것 같다.

    괜찮아요?

    고연주가 눈을 살짝 내리뜬 채 그늘진 얼굴을 가까이했다.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긴 한숨과 함께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손에 쥔 걸 다시금 물끄러미 응시했다.

    제로 코드는 예의 말간 푸른빛을 은은히 흘리는 중이다. 꼭 이대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싶을 만큼 아주 아름답다.

    그 순간 또다시 나를 확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수현!

    예, 예?

    깜짝 놀라 눈을 들자 고연주가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네?

    왜 이래요. 제가 뭘 어쨌기에.

    아니… 눈빛도 죽은 사람 같고……. 꼭 당장에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제가 말입니까?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순간적으로 맥이 풀리기는 했지만, 몸에 별 이상은 없는데.

    그러나 고연주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숫제 눈까지 그렁그렁해졌다. 비단 고연주뿐만이 아니라 한소영의 낯에도 한 줄기 수심이 서렸고, 남다은과 마르도 근심하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망연한 기분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화정. 방금 내가 진짜로 그랬어?’

    ―…….

    ‘화정?’

    ―…조금 이상하기는 했어. 정신 차……! 아니, 아니야. 아무튼 속 좀 추슬러봐.

    조금이라. 마지못해서 말한 것처럼 느꼈다면 착각이려나.

    아니, 화정의 말대로다. 일단 이곳에서 서둘러 나가는 게 좋겠다. 이렇게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니까. 목적은 달성했고, 갑자기 사라졌으니 밖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고민은 돌아가고 난 후에 하자.

    정신을 차리려는 요량으로 뺨을 세게 쳤다. 곧바로 제로 코드를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나갑시다. 돌아갑시다.

    그렇게 방을 나서기 직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뒤를 돌아봤다.

    안은 여전했다. 오직 시퍼런 화롯불만이 쓸쓸히 장내를 밝히고 있었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건 하나.

    이제 여기로 돌아올 일은.

    …….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약속의 신전을 나온 후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면, 다름 아닌 네 지대의 행방이었다. 성스러운 지대로 돌아가자마자 빛무리들이 다가와 아까처럼 우리를 안내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일 회차 때는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했으니 비교할 수 없고.

    해답은 화정이 알려줬다. 거두절미하고 말해서 내가 제로 코드로 법역을 해제하는 즉시 사라진단다. 물론 약속의 신전은 물론 최후의 관문이나 고대 유적은 계속 남겠지만, 수호자는 ‘제로 코드를 지킨다.’는 명분이 없어진 이상 무(無)로 돌아가야 한다고.

    만약 가능하다면 아군으로 동원할 계획을 세웠던 나로서는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니 깨끗이 포기하기는 수밖에.

    그렇게 아까처럼 안내받으며 돌아가는 와중.

    으으. 정말 보면 볼수록 아쉽다. 마르야. 얘네 데려가고 싶지 않아? 키울 맛도 있을 것 같아.

    네. 저도 할 수만 있다면 같이 지내보고 싶어요. 그런데 다은이 언니는 칼이니까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여인은 기웃거리는 수호자와 놀거나.

    흠. GP를 삼억이나 받아본 건 처음이네요. 사실 아직도 얼떨떨해요.

    저도 삼억은 처음이지만,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이스탄텔 로 로드는 모르시겠지만, 저희 클랜에서는 이런 걸 보고 김수현 효과라고 부르죠.

    보상 메시지를 보고 감탄하는 등등 돌아가는 내내 수선을 떨었다. 심지어 한소영도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내게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고 있다는 걸. 그리고 정말 즐거워서 떠드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일부러 저러고 있다는 사실을.

    기실 스스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여 가끔 맞장구도 치고 웃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분위기는 외려 어색해졌다. 특히 한소영은 걱정하는 빛이 심히 짙어지기까지 했다. 아마 초감각으로 내 감정 상태를 알아차린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입 닫고 있기로 했다.

    그리하여 성스러운 지대, 철혈의 지대, 칼의 지대를 거쳐 첫 번째 그림자 지대로. 우리는 진입할 때와 비슷한 시간을 들여 처음 들어왔던 지점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래,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여기 들어온 지 몇 시간이나 지났죠?

    그때 그림자 거인과 작별을 나누던 고연주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마 일고여덟 시간쯤 됐을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있었죠.

    한소영이 어림잡아 말했지만, 거의 정확하다.

    가는 데 약 세 시간, 약속의 신전에서 한 시간 삼십 분, 돌아오는 데 세 시간. 즉, 대강 일곱 시간 삼십 분쯤 지났을 터. 확실히 짧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다. 물론 일 회차와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지만. 워낙 신기한 현상을 겪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하튼 이제 남은 건 하나. 제로 코드로 법역을 해제하고, 나가자마자 워프 게이트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난다. 십오 년의 홀 플레인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생각이지만… 참 길기도 길었다.

    나는 손을 더듬어 보이지 않는 막을 찾았고, 법역 앞에 선 후 품에서 작고 푸른 구슬을 꺼내 들었다. 가슴은 두근거리는데, 머릿속은 이상하게 멍하다.

    그럼…….

    잠시 후, 제로 코드를 쥔 손을 천천히 막과 맞붙였다.

    그러나.

    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법역이 해제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반응이 전혀 없다. 혹시 몰라 제로 코드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라? 설마 이대로 쭉 갇히는 게……?

    아직은 여유로운지 고연주가 너스레 떠는 소리가 들렸고, 남다은이 웃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그래도 좋을 것 같은데. 신전을 왕국으로 삼고 다섯이서 오순도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외로워지면 오빠랑 애 낳으면 되고.

    다은이 너, 입조심해. 마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왜요? 어차피 형식상으로만 부녀지간이니까 근친은 아니잖아요.

    네, 네에에에? 제, 제가 아빠랑요?

    마르야. 왜 그렇게 놀라는 거니. 저런 말은 신경 쓸 가치도……. 아니, 얼굴 붉히지 말라고. 누구를 짐승으로 만들려고.

    일단 좀 더 기다려보죠. 이 막의 크기가 있으니 해제에 시간이 걸리는 걸지도 몰라요.

    그나마 한소영이 가장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말을 하는구나. 덕분에 곤란한 상황도 벗어났다.

    눈빛으로라도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나는 막에 손을 댄 채로 한소영을 돌아봤다.

    그 순간이었다.

    ……?

    문득 매캐한 연기가 코를 훅 찔러오는 것과 동시에.

    화르르르, 화르르르!

    앞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물씬 흘러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찰나.

    …아?

    한소영이 탄식 같은 신음을 터뜨리며 두 눈을 치떴다.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본 나는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을 느꼈다.

    화르르르, 화르르르!

    짙게 깔린 석양빛 아래 곳곳에서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

    황혼의 하늘로 펑펑 솟구치는 회색 연기.

    그리고 귀가 저릿해질 정도로 메아리치는 괴성과 단말마의 비명.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처음 도착했을 때 안개로 가득 차있던 신비로운 대지는 더 이상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안개는커녕 오직 헤아릴 수 없는 시체만이 광활한 초원을 나뒹굴고 있을 뿐. 거기다 줄기줄기 흘러나온 핏물은 강을 이루며 흘러 역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온다.

    그뿐일까.

    구르는 소리, 부딪치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폭발하는 소리……. 여러 소음이 사방에서 정신없이 난무하는 중이다.

    법역이 해제되고 드러난 바깥은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이었다.

    직감적으로 늦었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전장은 이미 무시무시한 광기에 휩쓸렸다.

    무조건 닥치는 대로 죽이는.

    이성 따위는 저편으로 날린 채 서로 물어뜯고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것에 열중하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보는 듯하다.

    망연히 걸음을 옮긴 찰나, 무언가가 발끝에 툭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용자였다. 복부 아래가 끔찍하게 뜯겨나간 어느 사내의 주검. 죽을 때 몹시 고통스러웠는지 얼굴도 잔뜩 일그러져 있다.

    …….

    그 어느 때보다 심안이라는 능력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머리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던 가슴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상황은 아직 잘 모르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애초 이런 짓을 벌일 놈들은 그놈들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로 제3의 눈을 활성화하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부담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잠시 후, 시야로 과거의 장면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첫 번째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왜냐면 안솔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창의 형상을 한 시커먼 기운에 온몸이 관통당한 채 힘없이 쓰러지는 중이었다. 주변의 사용자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며, 허공에는 익숙한 낯짝이 우수수 떠올라 있었다.

    낯설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요정.

    리리스, 아스모데우스, 아스타로트.

    악마 군주.

    거기다 심지어 타나토스까지 모조리 안솔 한 명을 겨냥하고 있었다.

    상황을 확인하자 이가 절로 갈렸다. 내가 강제로 소환당한 사이 적들이 습격했다는 것까지는 유추했다. 하지만 설마 공중을 통한 기습으로 안솔을 가장 먼저 노렸을 줄이야.

    ―막아! 막으라고!

    다음 순간, 영상이 휙 넘어가더니 고성과 함께 새 전투 영상이 보였다. 마족이 세 방향을 에워싸며 쳐들어오고, 아군은 제단을 지키며 맞서 싸우는 장면이다.

    ―워프 게이트에서 지원군이 넘어왔답니다! 어서 후퇴를……!

    ―무슨 소리야! 그럼 우리 형은 어쩌라고!

    ―여기서 개죽음 당하자는 겁니까!

    ―그쪽에서 오라고 하면 되잖아! 형이 언제 나올 줄 알고……!

    개중에는 머셔너리 클랜원도 여럿 있었다.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후퇴를 외치고 있으나, 안현이 벌컥 화를 내며 거절한다.

    파직!

    그때 시야가 갑작스럽게 잡신호 일색으로 칠해지며 화끈한 통증이 눈을 덮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부여잡으며 강한 침음을 흘렸다. 제3의 눈 지속 시간이 끝난 것이다.

    탈력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알아낸 사실은 두 가지. 안솔이 저격당했다는 것과 워프 게이트에서 타 도시 원정대가 넘어왔다는 것.

    그나마 형이 발 빠르게 대처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의문은 한층 강해졌다. 지원군이 왔다면 병력이 못해도 이만 명에 가까웠을 텐데,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걸까?

    나는 가렸던 손을 내리며 다시 앞을 응시했다.

    전장은 여전하다. 도처에서 중구난방으로 전투가 벌어지는 걸 보니 북 대륙의 진영은 붕괴하다 못해 아예 지리멸렬해 버린 것 같다. 차라리 한 군데 뭉쳐있으면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이건 이미 난전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최악이라면 최악이다. 몸이 하나인 이상,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콜록콜록! 그런데…….

    그러한 찰나, 약간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갑자기 요정 군대가……. 콜록! 수천에 달하는 정령을 소환해서……. 콜록!

    한소영이 어느새 생존자를 발견해 말을 듣는 중이었다. 아마 전장을 보고 시체 더미 속에서 숨이 붙어있는 사용자를 찾아내 상황을 알아내려 한 듯싶다.

    부지불식간에 좌측을 강타……. 마족도 겨우 막아내고 있던 터라……. 결국 뿔뿔이……. 끄르르륵!

    한 손으로는 물약을 부어주며 계속 격려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용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워낙 상처가 심했던 터라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급격히 숨을 몰아쉬더니 머리를 툭 떨궜다.

    한소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짜자자작!

    돌연 귀를 찌르는 굉음과 동시에 먼 곳에서 누런 뇌광이 찬란하게 퍼졌다.

    형.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벼락은 형이 소환한 게 분명하다. 말인즉, 아직 살아있다는 것일 터.

    전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더는 가만히 있을 틈도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이쪽으로!

    나는 네 여인을 향해 외친 후, 바로 몸을 돌려 뇌전이 내리쳤던 방향으로 달렸다.

    짜자자작, 짜자자작!

    달리는 동안에도 번개는 몇 번이고 계속 내리쳤다. 그럴수록 마음은 가일층 급해졌다.

    형은 기본적으로 마력을 함부로 낭비하는 성격이 아니다. 허나 이렇게까지 남발한다는 건 그만큼 위기에 몰렸다는 방증일 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먼빛으로 유독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가 언뜻 시야에 잡혔다. 좀 더 정확히 보니 그곳은 남 대륙 사용자와 마족으로 겹겹이 포위당해 있었으며, 또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 결사적인 저지도 거의 끝나가는 중인 듯했다. 왜냐면 갑자기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며 마족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그때였다.

    형?

    문득 어지러워지는 포위망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밟혔다.

    마족 한 놈이 방어선이 무너지는 틈을 타 안쪽 깊숙하게 파고들어 가더니 이를 씩 드러내며 하늘로 팔을 뻗친다.

    그 아래에는 힘에 겨운 얼굴을 한 형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족의 손이 땅까지 쪼갤 듯한 기세로 아래로 그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

    ……!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 * *

    커허허허허허허헝!

    분노에 찬 고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저 단순한 외침이 아니다. 검의 군주에게 부여되는 권능 중 하나이며 마력이 동반된 ‘군주여, 호령하여라.’.

    크키이익?

    손을 힘껏 내리쳤던 마족은 전신을 강타하는 고함에 깜짝 놀라 주춤거렸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돌연히 세찬 바람이 불었다.

    썩둑!

    스치듯 지나치는 순간, 마족의 목이 깔끔하게 떨어지더니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땅에 닿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왜 죽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를 악물고 있던 김유현의 낯에 황망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자기를 노리고 들어왔던 마족이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쓰러져 있다. 게다가 머리통마저도 거친 발길질에 밟혀 퍽 부서졌다.

    이윽고 흘끗 시선을 올리자 죽음을 각오했던 김유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힘겨움에서 놀라움으로, 놀라움에서 환희로.

    앞을 단단하게 막아서는 칠흑색 갑옷. 펄럭거리는 붉은 망토.

    누구인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원래는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지만, 김수현이 오벨로 부츠의 능력인 ‘급가속’을 사용해 단걸음에 거리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수, 수현아……!

    김유현은 치밀어 오르는 격한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김수현은 이미 사방의 적들을 향해 칼을 가열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감동적인 상봉보다는 적의 말살이 우선이었으니.

    뻥!

    칼등으로 허공을 힘껏 후려갈기자 대기가 크게 출렁거렸다. 동시에 붉은빛 검기가 기다랗게 뿜어지더니 돌연 반월형으로 휘어지며 전방의 적을 무차별로 덮쳤다.

    콰콰콰콰!

    부메랑처럼 날아가는 검기는 포위망을 거침없이 가르며 전진했다. 붉은 선이 닿는 곳마다 검붉은 핏물이 야단스럽게 폭발하고, 때늦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몸을 피하기도 전에 수십의 열화 검까지 우수수 날아와 폭격하자 주춤거리며 서 있던 적들이 흡사 해일에 휩쓸리듯 와그르르 쓸려나갔다.

    적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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