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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8권
메모라이즈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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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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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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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8권 - 로유진

    1. 예상치 못한 만남 (2)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그녀는 까르르 웃고는 내 팔을 살짝 잡으며 이끌었다. 그렇게 나와 고연주는 다시 북문을 나섰고 곧 일행이 밟아온 길을 되짚으며 걷기 시작 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윽고 먼저 말문을 연 사용자는 고연주였다.

    길게 말하는 거 싫어해요?

    필요하면 상관없지만, 빙빙 돌아가는 건 싫어합니다.

    저도 그래요. 그러면 빙빙 돌리는 얘기는 하지 않고 직구를 날리도록 하겠어요. 그런데 그래도 조금 길지 몰라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원하던 바입니다. 경청하도록 하지요.

    경청을 하겠다고 한 순간,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문득 어디선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것 같다고 느껴졌다. 김한별, 정하연. 두 여성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으나, 이내 고연주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지워지고 말았다.

    당신,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아요.

    흠.

    침음성을 흘리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는 손을 들어 내 말을 제지했다. 나는 일단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능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저도 아직 5년 차에 불과한 사용자인 만큼 전부 안다고 보기는 힘들겠죠. 그 아가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좋아요. 홀 플레인에서 강하다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건 당신만의 능력이니까. 개인적인 호기심은 있지만 파고들 자격은 없겠죠.

    확실히 노련한 사용자인 만큼 그녀가 말하는 것들이 하연과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외적인 능력에 대해 저렇게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면 다른 부분에 대해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소리였다.

    내 예상대로 고연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3층 특실에서 당신은 그랬죠. 생존과 지구로의 귀환을 목표로 삼는다. 생존과 귀환. 홀 플레인에 있는 사용자들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들이에요.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말들은 내 마음을 흔들었어요. 단순한 0년 차 사용자의 치기 어린 말이 아닌, 정말로 앞의 상황을 예측하고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그리고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도 이번에 보여줬어요. 고민했어요. 지금 이대로 도시로 들어가서 내일 아침 상황을 보게 되면. 그리고 당신의 말이 맞았다는 게 증명된다면 그 놀라움에 지금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불안감이 사라질 것 같았거든요.

    그 불안감의 정체를 알고 싶군요.

    제 불안의 근원은 다른 게 아니에요. 바로 당신. 0년 차 사용자 김수현이 제 불안감의 원인이에요.

    …….

    사사사. 사사사.

    차가운 새벽바람이 불고 풀들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우묵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두 팔을 벌려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만끽하고 있을 뿐. 그렇게 한동안 바람을 맞던 그녀의 입술이 다시금 살며시 열린다.

    경험에서 발로한 감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면 여성 고유의 직감이라고 해도 좋아요. 당신은 알 수 없는 남자예요. 이번에 탐험 동행을 허락한 것도 당신이라는 사용자를 관찰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어느새 조금씩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나는 호흡을 정리하며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관찰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알 수 없다고 했잖아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애들을 돌보는 마음씨 좋은 사용자. 그런데 가끔씩 나에게 살기를 날리는 무서운 사용자. 그러다가 또 보면 일행을 위해 희생하는 헌신적인 사용자. 하지만 어쩔 때는… 마치 피에 젖은,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는 살인마 같은 사용자. 결론은 자신의 일행이 다친 것에 대해 분노한 건지, 아니면 단순한 도발에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사용자.

    …….

    하나씩 끊어 말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그제야 나는 고연주가 호렌스를 처리한 직후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눈동자에 탐색하는 빛이 어려있다고 느꼈는데, 그녀의 물음들은 전부 나를 떠본 것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딱히 다른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고연주는 내게로 서서히 다가와 뒷짐을 지고는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그녀의 도발적인 눈매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시선을 맞추고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생각해도 말이 아귀가 맞지 않죠?

    사람이, 사용자가 꼭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요. 하지만 당신의 행동에는 딱 하나가 결여되어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지 말아요. 일관성이에요. 아마 각 행동을 할 때마다 얼굴만 바꿔 놓는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할 거예요. 그리고 시치미 떼는 것 같으니 미리 말해 두는데.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이윽고 훌쩍 몸을 빼며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생존과 귀환. 좋아요.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그 구변 좋은 말들로 내 불안감을 덮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진정으로 궁금한 건 그 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당신의 내면이니까.

    어느새 바람이 멈췄다. 사방이 고요하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럼 이제 그만 대답해 주시겠어요?

    어느 순간 그녀와 나의 거리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폈지만 이내 살짝 구부리며 자신의 쇄골 부분에 가볍게 대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미약하게 한 번 끄덕여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 순간, 그녀의 고운 입술이 천천히 열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초원에 나른히 울려 퍼졌다.

    지금도… 저를 죽이고 싶나요?

    지금도 나를 죽이고 싶나요. 귓가를 타고 들어온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잔잔히 두드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정말로 나는 고연주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걸까?

    …….

    아니었다. 아니,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를 맹목적으로 죽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다만 죽일 필요성이 있었을 뿐. 해답은 금방 나왔지만 선뜻 말을 꺼내기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이 얽히려고 하자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고연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얼굴과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받는 순간, 나는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림자 여왕의 말마따나 어설픈 시치미나 구변 좋은 말들보다는 숨어있는 본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나에게나 그녀에게나 더 나을 것 같았다.

    아니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는 지금 당신의 눈동자에도, 그리고 말투에도 미묘한 살기가 담겨있어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다만…….

    다만?

    당신을 죽일 필요성은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말을 아꼈다. 그녀의 표정을 읽으려고 했지만, 읽을 수 없었다.

    일전에 사용자 정하연과 자리가 있었을 때 그러셨죠? 죽이고 싶다고. 홀 플레인에서 뭘 따지고 있는 거냐고.

    네. 그랬었죠.

    저 또한 비슷합니다. 조금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신의 말대로 앞으로 제가 그려나갈 그림에서 고연주란 사용자는 너무도 커다랗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변수입니다.

    변수라. 억울할 거는 없어요. 홀 플레인은 원래 그런 세상이니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변수를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제거하고 싶다. 그게 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라는 건가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가볍게 수긍하자 곧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열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묘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나라는, 사용자 고연주라는 변수가 위험하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저는 당신과 당신 일행한테 그렇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요. 혹시 몰라도 후일에 이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홀 플레인에서는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당신을 놓아주고 후회하느니,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야릇한 확신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경험에서 발로한 감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면 남성 고유의 직감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게 했던 말들을 그대로 되돌려주자 그녀는 일순 말문이 막힌 듯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슬슬 승부수를 던져야 할 타이밍이 온 것을 느꼈다. 이 정도면 할 말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대로 당신을 놔두고 떠나기에는 뒤가 너무 찜찜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한 클랜의 로드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큼 매력적인 사용자입니다. 제가 당신을 품을 수 없다면, 끌어안을 수 없다면 여기서 죽이는 게 개인적으로 옳은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

    이제는 사용자 고연주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본심을 모두 드러낸 순간, 비로소 고연주의 얼굴에 표정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읽는 건 힘들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또 어떻게 보면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북받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연주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두 번 심호흡을 하는 게, 숨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양손을 들어 머리를 크게 뒤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나를 가지고 싶은 건가요?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피어난 것 같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네.라고 대답해 주었다.

    진심인가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녀의 되물음에 목소리에 힘을 주어 한 번 더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내 확답을 듣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마음을 정했어요. 대답은 지금 들려드리죠.

    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빛을 내뿜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

    그녀가 단검을 들어 올린 순간,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가득히 밀려들어 왔지만 품고 있는 호렌스의 구슬이 곧바로 빈 공간들을 채워주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고는 허리에 걸려있는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사용자 고연주. 지금 행동을 당신의 대답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사용자 김수현. 그림자 여왕은 당신의 클랜에 들어가겠어요.

    그 순간, 나는 막 검을 뽑으려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의 여성 사용자가 뭐라고 한 거지?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말에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고연주의 얼굴은 태연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뜻 모를 열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검을 몇 번 던졌다 받은 후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호.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쳐다봐요?

    …이유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별거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상투적인 이유들이에요. 죽고 싶지 않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라는 사용자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궁금한 건 단검을 들어 올린 이유입니다. 오해할 뻔했어요.

    오해가 아니에요.

    고연주는 눈을 곱게 흘기고는 허공에 떠오른 단검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그리고 곧 그것을 내 정면으로 겨누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대답은 잘 들었어요. 불안감의 원인도 알았고요. 하지만 불안감이 표면 위로 떠오르기만 했지, 아직 해소된 건 아니에요.

    보기보다 소심하시네요.

    웃기는 소리 말아요. 불안감 해소는 내가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해주어야 하는 거죠.

    …꽤나 거친 해소 방법이 될 것 같군요.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멈추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문득 사용자 창고에 고이 모셔놓은 무검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 일만 끝나면 카오스 미믹에서 꺼낸 척하고 들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지금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웠다.

    물론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연주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1회차 시절 그녀의 능력이나 기술은 이미 철저히 파악한 상태였다.

    미리 말해 두지만 그 동굴에서 내가 보였던 실력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답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호호. 그럼 저만한 사용자를 영입하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았나요?

    네. 네. 나는 속으로 대답한 후 바로 자세를 잡았다. 이래저래 유리하다고는 해도 고연주 또한 10강에 이른 사용자. 방심하다가는 큰코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질 수도 있었다. 그녀 또한 진한 미소를 흘리며 몸을 살짝 구부리고는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진심으로 가겠어요. 0년 차 사용자 김수현을 죽일 마음으로 말이죠. 그러니 당신은…….

    말을 하는 도중 그녀의 주위로 그림자가 수십 개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림자 여왕의 특수 능력, 심연의 무리. 랭크는 S+였던가. 시작부터 세게 나온다는 생각에 목구멍으로 절로 침이 넘어갔다.

    이윽고 그림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분열되는 게 보였고, 고연주는 혀를 날름 내밀어 입술을 슬며시 적셨다. 그리고 눈가에 가느다란 호선을 그리며 말을 매듭지었다.

    이 불안감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부숴주세요. 당신을 죽일 각오로 달려드는 저를, 이 그림자 여왕을 완전히 굴복시켜 보란 말이에요.

    기꺼이.

    ‘완전히’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즉, 그녀의 말뜻은 ‘간신히’ 또는 ‘겨우’가 아닌, 모자람이 또는 흠 없이 자신을 완벽하게 제압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원한 대답으로 받아쳐 주었다. 그 대답을 함과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그림자들이 수십 줄기로 바뀌며 내게로 쏜살같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슬며시 눈을 뜨자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로 비쳐들고 있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여관에 들어오긴 했지만 평소보다 오래 자기는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일어나자마자 하는 명상을 마친 후 곧바로 방문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가자 일행이 하나의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실컷 떠들고 있다가 내가 내려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다들 계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사제용 로브를 입은 귀여운 사용자 한 명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앗. 오라버니다아.

    오, 형. 오늘은 웬일로 늦게 일어나셨어요.

    그러게. 오빠가 우리들보다 늦게 내려오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나를 보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달려드는 애들을 제쳐두고 나는 가까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원래 잠을 자면 몸이 상쾌해야 정상인데, 오늘따라 몸이 약간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김수현. 그런데 어제 뭐 했어? 기다리다가 하도 안 오기에 냉큼 자버렸는데.

    비비앙? 거짓말은 못써요. 여관으로 오자마자 졸려 죽겠다고 방으로 달린 건 누구였죠?

    윽!

    내게 말을 걸던 비비앙은 옆에서 하연이 태클을 걸자 샐쭉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잠시 실소를 흘린 나는 주변을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린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용자 고연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나요?

    그, 그렇습니다. 오늘따라 항상 부, 부지런하던 두 분이 늦네요. 혹시 어젯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불쑥 끼어든 신상용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지려는 찰나, 꾹 닫혀 있던 여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서너 명의 사용자 무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뮬에서는 처음 보는 사용자들이었는데,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긴 생머리를 한 여성은 여관 전체를 기웃거리더니 얼떨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여기 어제까지만 해도 문 닫혀있지 않았어?

    그러게. 다시 문을 연 건가? 아무튼 럭키! 피곤했는데, 잘됐다. 사용자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다른 사용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빨리 좋은 방 잡아야겠어.

    그래, 그래. 저기요~ 혹시 이 여관에 묵고 계신 사용자들이신가요?

    벨트에 검을 찬 여성 사용자 한 명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일행은 다들 멀뚱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 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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