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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명상록: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명상록: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Ebook242 pages9 hours

명상록: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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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에서 출간한 『명상록』은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박문재 번역가가 심혈을 기울여 꼼꼼히 번역한 그리스어 원전 완역판이다. 여기에 독자들을 위해 번역 과정에서 알게된 지식을 바탕으로 번역가의 상세한 해제를 수록하였고, 또한 아우렐리우스가 많은 영향을 받은 에픽테토스의 ‘명언집’을 부록으로 담아 이 불멸의 고전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플라톤이 꿈꾸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은 전쟁을 수행하고 통치하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책으로, 논증적인 글과 경구가 번갈아 나타난다. 그에게 자신의 내면은 외적인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였다. 따라서 명상록은 우리가 그의 요새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킨 것을 근간으로 삼아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던 아주 민감한 도전들이자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도전들에 대처하기 위한 힘을 발견하기 위해서, 자신의 핵심적인 신념들과 가치들을 짤막하면서도 강렬하고 흔히 힘 있는 성찰들을 통해 정확하게 표현해내려고 애쓴다. 그 도전들은, 그에게 다가오고 있던 죽음을 어떤 식으로 맞아야 하는가 하는 것,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정당화해 주는 논리를 발견하는 것, 자연 세계 속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것 등이었다.
명상록은 오랜 세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 사상은 마르쿠스 자신의 것이긴 하지만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스토아 철학이고,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지만, 일부는 플라톤주의에 가까웠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영원의 관점에서 성찰한 마르쿠스의 이 저작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도전과 격려와 위로를 주는 영속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Apr 2, 2018
ISBN9791187142393
명상록: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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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

    해제

    1. 서론

    이 『명상록』은 고대 세계의 이른바 고전시대에 씌어진 현존하는 글들 중에서 그 연대와 문화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독보적인 저작으로서,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자신의 생애 말기에 외적들의 침공을 제압하기 위해서 제국의 북부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으로 원정을 간 1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철학 일기다. 우리는 그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는 일과 이민족과의 전쟁이라는 외적인 압박감과 무거운 짐으로부터 물러나서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교훈들을 기록한 책을 마주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내면은 외적인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였다. 따라서 『명상록』은 우리가 그의 요새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그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킨 것을 근간으로 삼아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던 아주 민감한 도전들이자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도전들에 대처하기 위한 힘을 발견하기 위해서, 자신의 핵심적인 신념들과 가치들을 짤막하면서도 강렬하고 흔히 힘 있는 성찰들을 통해 정확하게 표현해내려고 애쓴다. 그 도전들은, 그에게 다가오고 있던 죽음을 어떤 식으로 맞아야 하는가 하는 것,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정당화해 주는 논리를 발견하는 것, 자연 세계 속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것 등이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영원의 관점에서 성찰한 마르쿠스의 이 저작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도전과 격려와 위로를 주는 영속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글은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강력한 도덕적인 헌신, 만물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철학적인 확신, 인간과 신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누구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기원후 121-180년)는 로마에서 정치적인 명망을 이미 얻고 있었던 스페인 출신의 한 가문에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Marcus Annius Veru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에 죽었고, 그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친척이었던 자신의 조부에 의해 양육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어린 마르쿠스를 대단히 아껴서 베루스(Verus, 진실한)라는 이름에 빗대서 베리시무스(Verissimus, 아주 진실한 사람)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를 자신의 상속자이자 후계자로 선택하면서, 안토니누스로 하여금 마르쿠스와 루키우스를 양자로 삼게 했다. 마르쿠스는 수사학자였던 프론토(Fronto)를 비롯해서 여러 유명한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그가 그 스승들과 주고받은 서신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마르쿠스는 12세 때부터 철학에 깊은 흥미를 보였는데, 어린 나이에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의 지도 아래 스토아 철학에 입문해서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을 배웠고, 이 책은 그의 『명상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르쿠스는 145년에 안토니누스의 딸인 파우스티나(Faustina)와 혼인해서, 여러 자녀들을 두고서 대체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명상록』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제1권에서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에게 끼친 윤리적이고 지적인 영향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양부이자 선황제였던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영향을 자신이 많이 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황제로서의 마르쿠스의 치세 기간(기원후 161-180년)은 일반적으로 황제와 원로원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선정을 베푼 시기로 평가된다. 마르쿠스는 루키우스 베루스가 169년에 병으로 죽을 때까지는 그와 공동 황제로서 통치하였고, 이 두 사람의 공동 통치는 순조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기는 외적들의 준동으로 말미암아 로마 제국의 안녕이 위협을 받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마르쿠스는 그러한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62년부터 165년 사이에는 파르티아가 제국의 동부 지역을 침공한 것이 주된 문제였고, 166년과 16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전염병과 루키우스 베루스의 죽음으로 인해 제국의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시도들이 중단되었다. 그 결과 170년에 게르만족의 침공이 심각해져서, 마르쿠스는 180년에 죽을 때까지 북부 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에서 일련의 원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원정들은 대체로 성공적이었고, 제국의 국경 지대들은 안정되었다. 175년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총독이었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Avidius Cassius)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비록 진압되기는 했지만 마르쿠스가 겪어야 했던 또 하나의 위협이었다. 대외적인 이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마르쿠스 황제 시대는 당시에나 그 이후에나 선정이 베풀어진 시기로 평가되었는데, 그는 특히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그의 아들 코모두스(Commodus, 기원후 180-192년)가 폭정을 일삼아서 결국 폭군으로 낙인찍혀 암살된 것과 대비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기원후 96년에 네르바 황제가 즉위함으로써 시작되어서 180년에 마르쿠스의 아들 코모두스가 즉위하면서 끝이 난 5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였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년)은 80여 년에 걸친 이 시대를 회상하면서 인류의 황금시대라 부르며 그리워하였다: 세계사 속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대를 꼽으라고 한다면, 인류는 주저 없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때로부터 코모두스가 즉위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을 꼽을 것이다.

    3. 『명상록』은 어떤 유형의 책인가

    『명상록』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상 문학적인 형식을 지니고 있지 않고, 고대의 저술과 관련해서 알려져 있던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명상록』이라는 명칭은 17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었고, 그 이전에는 『그 자신에게』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후자의 명칭의 기원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저작은 마르쿠스가 출판할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한두 구절을 적어두는 식으로 순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비망록으로 쓴 것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처음부터 제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소에 사용한 언어는 당연히 라틴어였지만, 『명상록』은 헬라어로 썼는데, 이것은 헬라어가 고대 철학의 표준 언어였고, 그도 이 언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저작이 그의 생애 말기에 씌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여러 단서들이 눈에 띄는데, 제2권과 제3권에 그의 게르마니아 원정을 보여주는 표제들이 붙어 있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명상록이 어떤 표준적인 장르에 속한 저작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저작을 쓴 전체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 일차적인 목적은 마르쿠스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생각들을 살펴보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지를 자기 자신에게 충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 저작에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를 떠받쳐 왔던 중요한 명제들, 윤리와 관련된 핵심적인 원리들과 통찰들을 짧은 글들 속에 명료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다음으로 좀 더 큰 틀에서 이 저작의 목적은 기원후 1세기와 2세기에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윤리를 담은 책을 펴내어 널리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 후자의 목적은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의 시기)에 출현했던 철학 학파들, 특히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기원전 4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이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 중에서도 특히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마르쿠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에픽테토스(Epictetos, 기원후 55-135년)가 스토아 철학에 의거해서 실천 윤리에 대해 쓴 『담화록』이었다. 또한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아주 깊게 받았던 또 한 명의 로마 정치가 세네카(Seneca, 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도 대화편, 산문, 서신 같은 문학 장르를 빌려서 실천 윤리에 대한 글을 광범위하게 썼다.

    마르쿠스가 주로 기반으로 하고 있던 스토아 철학에서 널리 사용되던 이 두 가지 유형의 저작은 그의 『명상록』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중 한 가지 유형의 저작은 윤리적인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인간의 삶은 선한 성품들이나 미덕들을 표현하는 삶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비추어서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과 일들을 해나갈 것을 강조했는데,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또 한 명의 인물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년)가 쓴 『의무론』이 그 유명한 예였다.

    또 다른 유형의 저작은 인간이 심리적이고 윤리적으로 어떤 실패들을 겪는지를 밝히고서, 그것들을 질병으로 규정하여 치유하는 수단으로 철학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키케로가 쓴 『투스쿨룸에서의 대화』와 세네카의 『분노론』이 그런 저작들이었다. 마르쿠스의 『명상록』은 이 두 유형의 저작들의 저술 목적과 주제들을 반영해서, 충고와 치유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제시한다.

    마르쿠스 시대에 스토아 철학자들도 사람들이 꽤 체계적인 방식으로 인격도야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실천 윤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체계를 제시했다. 예컨대, 세네카는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는 어떤 일의 윤리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 일의 윤리적 가치에 동기를 일치시키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동기와 행동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에픽테토스도 마찬가지로 세 단계로 이루어진 체계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원하는 일의 가치와 우리의 욕구를 일치시켜서 적절한 정서적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윤리적으로 적절한 동기를 형성하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우리의 다양한 신념들 간의 일관성, 그리고 우리의 신념들과 행위들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명상록』에서도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이런 방법론이나 체계를 발견한다.

    4. 마르쿠스는 당시의 철학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스토아 철학이 마르쿠스의 지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쿠스가 스토아 철학자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근거들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스토아 철학을 신봉한다고 밝힌 적도 없고,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Zenon, 기원전 334-262년)을 언급하지도 않으며, 스토아학파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였던 크리시포스(Chrysippos, 기원전 280-206년경)도 단지 두 번만 언급할 뿐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철학 교육을 받아서 스토아 철학의 세 가지 주된 분야인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의 기반을 철저하게 닦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기도 한다.

    아울러, 『명상록』은 다른 철학 학파의 이론들로부터의 영향도 강하게 보여주고, 그의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방식은 그가 스토아 철학의 몇몇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당시에 자연 속에 내재된 목적이 존재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스토아학파와 첨예하게 맞섰던 에피쿠로스학파가 사용하던 개념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황제가 된 후에는 아테네에 당시의 주요 철학 학파들이었던 플라톤학파,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의 사상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학당들을 아테네에 다시 세우기도 했다. 따라서 마르쿠스는 『명상록』에서도 오직 스토아 철학에만 의거해서가 아니라 여러 철학 학파들의 사상을 혼합해서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절충주의적인 태도는 당시의 지식인 세계에서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르쿠스의 자문의사들 중 한 사람이기도 했던 갈렌(Galen, 기원후 129-216년경)은 사상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절충주의자였지만, 이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은 어느 한 철학 학파를 신봉하여 따르는 것이었다. 마르쿠스가 언급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같은 몇몇 사상가들은 스토아 철학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마찬가지로 마르쿠스가 언급한 견유학파도 스토아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명상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에픽테토스의 『담화록』에는 마르쿠스가 언급한 이 사상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들이 담겨 있고, 마르쿠스보다 더 전문적인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사상 간의 공통점을 기꺼이 인정했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이 마르쿠스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좀 더 적극적인 이유는, 『명상록』에서 그는 스토아 철학의 전문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때에는 그 개념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스토아 철학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쿠스는 기본적으로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따르면서 거기에 기반해서 여러 철학 학파의 사상들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5.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들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우리는 마르쿠스 당시의 스토아 철학의 특징으로 적어도 다섯 가지를 들 수 있고, 이것들은 『명상록』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주제들과 일치한다.

    첫 번째는, 미덕을 따라 사는 삶만이 행복한 삶이라고 본 것이다. 즉,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덕이 전부라는 사상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선하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들인 건강이나 물질적인 풍요로움,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조차도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로 치부된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가치중립적인 것들이고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두 번째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들을 가치 있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느냐와 관련된 신념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사상이다. 즉, 감정과 욕망은 인간의 정신생활에서 별개의 비이성적인 차원을 형성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감정과 욕망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신념들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질병으로 취급된다.

    세 번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자 하는 내재된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그러한 성향은 제대로 바르게 발전하는 경우에는 가족과 공동체에 진심으로 헌신하고, 모든 사람들을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동일한 시민들, 또는 형제들로 여기고서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세 가지 사상이 결합되었을 때에는, 인간의 윤리와 정신에 대한 고도로 이상화된 견해가 탄생하게 되는데, 고대의 비평가들은 그러한 견해를 대단히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든 인간이 그 이상을 완벽하게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완전한 미덕과 행복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에서 윤리적인 삶은 그러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 또는 여정이었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 여정을 밑받침하고 돕기 위해서 실천 윤리의 방법론들을 제시하였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윤리적인 발전과정과 관련되어 있는 이 세 가지 주제를 윤리학의 영역에 배치하였다.

    스토아 철학의 네 번째 특징은 앞의 세 가지와는 달리 자연학에 속한 것으로서 윤리학과 자연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주된 쟁점 중의 하나는, 자연 또는 우주에는 내재된 목적 또는 의미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자연적인 법칙들이나 과정들이 제멋대로 작용해서 생겨난 결과물일 뿐이냐 하는 것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던 스토아 철학자들은 첫 번째 견해를 채택해서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신의 목적이나 섭리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반면에,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두 번째 견해를 채택해서, 물질의 원자적 성격에 기초한 자신들의 사상을 설파했다. 이것이 보여주듯이, 스토아 철학에서는 윤리학과 자연학 같은 철학의 분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를 밑받침해 준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의 섭리에 대한 그들의 신념은 자연학의 일부였지만, 윤리학과 관련된 중요한 틀을 제시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반대로 윤리학은 섭리를 비롯한 신과 결부된 원리들을 밑받침해 주고 의미 있게 해 주었다.

    다섯 번째는, 스토아 철학자들은 철학을 고도로 통일되고 지식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개념들 및 철학의 여러 분야들 간의 연결 관계를 추적해서 이해하는 능력은 스토아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6. 『명상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마르쿠스는 자신의 『명상록』에서 아주 표준적인 스토아 철학의 주제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방식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그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그리스어로 ‘헤게모니콘’)임을 강조한다. 그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이성을 가리킨다. 그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서로 다른 부분들인 육신정신을 대비시킨다. 마르쿠스가 정신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그리스어는 ‘프쉬케’(혼)이지만, 스토아 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누스’(정신)나 ‘프뉴마’(호흡, 숨, 생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표면상으로 볼 때에는 몸이 없는 정신과 몸을 지닌 육신을 구별하는 플라톤적인 이원론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그것은 스토아 철학에서 인간의 정신도 물질적인 것으로 보는 것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런 대목들은 사실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스토아 철학의 첫 번째 특징적인 사상을 반영해서 윤리적인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마르쿠스가 그런 표현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측면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부분이성을 사용해서 정신을 통제하고, 이번에는 정신으로 하여금 육신을 통제해서 미덕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좋은 것들이나 감각을 만족시키는 이런저런 쾌락들 같은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르쿠스가 육신을 비롯해서 물질세계 전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우리는 앞에서 말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그는 고급스러운 요리를 물고기의 시체라고 표현하거나, 육체적인 성관계를 맺는 것을 장기의 마찰과 점액의 갑작스러운 분출이라고 표현하고, 아름다운 대리석은 흙이 단단하게 응집된 것이고, 황제의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자주색 옷감은 조개의 피라고 표현한다. 그런 표현들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육신이나 물질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배척했던 플라톤적인 사상이나 인습적인 규범들을 배척했던 견유학파적인 태도를 수용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좀 더 큰 맥락에서 보면,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에 가치를 두지 않는 스토아 철학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다른 주제들에서는 마르쿠스에 대한 스토아 철학의 영향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그는 에픽테토스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나 환경에 대해서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쓸데없는 판단을 덧붙임으로써 괴로움을 자초하지 말라고 자기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충고한다. 이것은 감정과 욕망은 신념, 특히 잘못된 신념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선악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신념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는 스토아 철학의 표준적인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서, 모든 사람은 인류라는 한 동족의 형제들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스토아 철학자들이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분노 같은 감정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생이나 인간사를 저 높은 곳에서 바라봄으로써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마르쿠스의 특징적인 여러 자세들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잘못된 것으로 보고서 정상적인 질병으로 여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초연해지게 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들에 대한 마르쿠스의 충고들도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스토아 철학의 표준적인 사상들을 자기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고, 모든 사람은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윤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인간이 윤리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성향이 자신이 속한 가족과 공동체와 국가에 헌신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한편으로는 로마인이자 한 사람의 정치가이며 통치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들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킴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자연과 본성의 법을 따라 인류를 한 형제로 여기고서 자신에게 주어진 좀 더 보편적인 책무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이렇게 그는 세네카가 이중적인 시민적 책무라고 불렀던 것, 즉 모든 인간에게는 지역적인 공동체의 시민이자 보편적인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무가 주어져 있다는 사상을 따르고 있다. 『명상록』에서 그것은 안토니누스로서 나의 조국은 로마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의 조국은 우주다라는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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