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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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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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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소설 읽기의 전범이 될 현대소설의 백미!”작가 이문열을 사로잡았던 세계의 명작,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필독서!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이십여 년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간 변화해온 시대와 달라진 독서 지형을 반영해, 기존에 수록된 백여 편의 중단편 중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의 번역자들의 원전 번역으로 바꾸어 보다 현대적인 책으로 엮었다.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3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새로워진 개정판이 되었다. 여기 세련된 장정과 판형으로 소장가치까지 한층 높였다. 지난 이십여 년간 그래왔듯이, 이번 개정판도 수많은 독자들을 세계명작의 산책로로 안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엮은이인 이문열 작가는 초판 서문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주요 문학잡지의 해외 특집란을 검토해 추린 후, 주제별로 세계의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엮어내고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수 없는 미진함이 남을지라도(혹은 그런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가는 이 선집이 작가 자신의 문학 체험의 한 결산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 체험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한 전범이자 기준이 될 것이며, 소설 연구자들에게는 주제별 비교가 가능한 텍스트로서, 그리고 대중 독자들에게는 수준 높은 세계명작들의 풍성한 세계를 접하는 첫 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수록된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 수준의 문학 교양을 쌓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총 10권으로 기획된 시리즈 중 우선 1권과 2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2권 “죽음의 미학”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을 모았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되는 법이다.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다만 모두에게 다른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우러를 것인가, 예비하고 다가갈 것인가, 혐오하고 두려워할 것인가, 할 수 있는 한 기피할 것인가. 우리 삶의 무수한 선택이 죽음에 대한 이 선택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자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워 삶을 이야기한다. 2권에 수록된 9편의 중단편을 통해 문학이 다루는 “죽음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스티븐 크레인의 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을 새로이 번역해 실었고, 기존에 중역했던 헤르만 헤세의 중편 는 원전을 재번역해서 수록했다. 그 외에 레프 톨스토이의 , 잭 런던의 , 셔우드 앤더슨의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 샤를 루이 필리프의 , 바이올렛 헌트의 와 같은 세계적 문호들의 작품을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거장들의 손길을 거쳐 독자들에게 ‘미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목차『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머리말레프 톨스토이이반 일리치의 죽음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스티븐 크레인구명정죽음과 맞서는 인간의 태도 또는 자세잭 런던불 지피기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마르셀 프루스트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삶이 죽음의 일부인가, 죽음이 삶의 일부인가셔우드 앤더슨숲속의 죽음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헤르만 헤세크눌프삶의 최종심어니스트 헤밍웨이킬리만자로의 눈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샤를 루이 필리프앨리스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바이올렛 헌트마차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저자 소개레프 톨스토이러시아의 대문호. 1828~1910년.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 출생.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처 소나타」 등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스티븐 크레인미국의 소설가 겸 시인, 신문기자. 1871~1900년. 스물아홉 살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생생하고 강렬하며 독특한 방언과 아이러니가 넘치는 글을 썼다. 사회적 고립이나 인간의 두려움 같은 주제에 천착했던 그는 사회적 사실주의 소설과 이미지즘 시의 선구자로 불리며, 헤밍웨이를 비롯한 현대 미국 작가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작품으로는 『붉은 무공훈장』, 『거리의 여인 매기』 등이 있다.잭 런던미국 작가. 1876~19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본명은 존 그리피스 체니이다. 형편이 어려운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신문 배달, 통조림 공장 직공, 바다표범 잡이 배 선원 등 육체노동과 방랑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8세 때는 감옥에 가기도 했다. 1904년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일본군을 따라 조선을 방문한 적 있으며,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비포 아담』, 『강철군화』, 『달의 계곡』, 『바다의 이리』, 『늑대개』 등이 있다.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 작가. 1871~1922년. 파리 근교 오퇴유 출생. 신경성 천식으로 평생 고생한 그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쓰며 사교계를 드나드는 생활을 계속하다 1895년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벌 그림과 같은 자서전적 소설 『장 상퇴유』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09년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집필하며 침거 생활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해 1919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편 『피어나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출간하고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퇴고 작업을 했다고 전해지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셔우드 앤더슨미국 작가. 1876~1941년. 미국 오하이오 주 캠던 출생. 스무 살 무렵 야간학교를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다. 플롯 중심의 기존 단편소설 틀을 깨고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을 육체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며, 헤밍웨이 등 후배 작가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1916년 최초의 장편소설 『윈디 맥퍼슨의 아들』을 펴냈고, 연작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 인정을 받았다. 『달걀의 승리』, 『말과 인간들』, 『검은 웃음소리』 등의 작품이 있다.헤르만 헤세독일 작가. 1877~1962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 출생.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주요 소설로는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지와 사랑』 등이 있고, 그 밖에 시집, 우화집, 여행기, 평론, 수상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어니스트 헤밍웨이미국 작가. 1899~1961년.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시카고) 출생.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기사와 단편을 썼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엔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21년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과 교유하는 등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해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등의 작품이 있다.샤를 루이 필리프프랑스 작가. 1874~1909년. 프랑스 중부 세리이 출생. 파리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에 힘썼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글을 주로 발표했다. 출세작 『뷔뷔 드 몽파르나스』는 매춘부와 포주, 그리고 그녀를 구하려는 젊은 지식인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며, 그 밖에 『어머니와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Oct 15, 2020
ISBN979119714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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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미학 - 레프 톨스토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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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1. 옮긴이 주는 괄호로 묶어 따로 표기했으며, 그 외의 괄호 안 설명은 모두 지은이가 단 것이다.

    2. 단행본 가운데 장편소설 및 소설집은 겹낫표(『   』), 단편소설과 논문, 기사에는 낫표(「  」), 신문과 잡지에는 겹화살괄호(《   》), 노래와 영화 제목에는 홑화살괄호(<    >)를 썼다.

    3.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국립국어원의 용례를 따랐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출간된 제목과 저자명을 그대로 썼고, 필요에 따라 원제를 밝혔다.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세계명작(단편)산책』 개정판을 다시 낸다. 1996년 살림출판사에서 초판을 내고 삼 년 반 뒤인 1999년에 15쇄 발행 기록이 확인되더니 2000년대 초에 하드커버로 나온 2판은 2017년 연말에 저자와 출판사의 합의로 절판되었다. 한 쇄에 몇 부씩 찍어내었는지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지나간 이십여 년 세월이나 그간에 들어온 인세로 어림잡아도 수십만 부는 될 듯싶다. 그것도 아직 한 해에 한두 쇄는 찍는 책을 갑작스레 절판시킨 것이라 더러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번에 무불(無不)출판사의 요청으로 개정신판을 다시 내게 되었다.

    내가 이십오 년 전 처음으로 『세계명작산책』 열 권을 엮은 목적이나 희망한 효용, 그리고 해외 중단편 명품 백 편을 주제별로 열 편씩 엮은 전집으로 펴낸 과정의 구구한 경위에 대해서는 초판 서문에 잘 나와 있다. 궁금한 독자는 그 쪽을 들춰보면 대강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을 엮기 두어 해 전 나는 팔자에도 없는 대학교 국문과 정교수가 되어 어울리지도 않게 한 한기에 9학점이나 좌지우지하며 보냈다. 그 가운데 교양 과정 3학점을 두 학기에 걸쳐 이어진 <현대문학 특강—해외명작 단편산책>에 주었는데, 그 강의안이 초판 『세계명작산책』을 엮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좀 황당하고 무모한 강좌로 보였을 수도 있는 그 특강을 그때 대학당국이 무얼 믿고 개설을 허락해주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정색을 한 대학 국문과 교수님들을 아연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는 그 강의를 두 학기로 그만두고, 큰맘 먹고 나를 교수로 불러준 대학당국에 미안해하며 교수 노릇을 그만둘 구실만 찾고 있던 이듬해 가을, 이번에는 어떤 출판사가 그 별난 강좌 소문을 듣고 내가 제풀에 지쳐 때려치운 그 강의안을 책으로 꾸며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처음부터 그걸 책으로 엮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때는 내가 쓴 것만도 책으로 어지간히 쏟아낸 뒤라 썩 내키지도 않았지만, 그전 한 해 그 강좌에 쏟은 골몰이 그대로 흔적 없이 지워지는 것도 한편으로는 서운해 나는 못 이긴 척 따랐다. 그리하여 그게 책으로 바뀌는 과정 또한 초판 서문에 대강은 나와 있다.

    세월에 따라 몸이 늙어가듯이 사람의 기호나 지향도 변한다. 시대와 세상 사람들도 사반세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변한 이쪽저쪽을 살펴가며 바꾼 것이 기왕에 선정된 중단편 백 편 가운데 열두 편을 다른 작가 혹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고, 일본어 중역이 포함된 낡은 번역도 새로운 세대들이 원어에서 바로 한 번역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바뀌거나 더해진 것이 전체의 삼 할은 된다. 출간 이십오 년 만에 명색 개판을 한다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달라진 그 세월을 그냥 못 본 체할 수는 없었다. 그 바뀌고 달라진 것의 세목에 대해서는 각권 서문에서 다시 그 세목과 간략한 해설을 덧붙이기로 한다.

    2020년 가을 負岳기슭 蒼友崗에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 소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에서도 좋은 전범을 가지는 것은 원리의 탐구를 위해서건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서건 매우 중요하다. 학문적으로 인정받은 논리에 따라 소설을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은 문법만으로 회화를 배우는 것보다 더 비효율적이며 풍부한 전범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이론 중심의 연구는 소설을 화석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저런 이름으로 문학, 특히 소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게 되면서 내가 늘 아쉽게 생각해온 것 중 하나는 소설 연구와 창작에서 아울러 전범이 될 만한 좋은 단편 선집이었다. 여기서 장편보다 단편을 앞세운 것은 우리 문단에서 아직은 지배적인 창작 및 비평의 풍토 때문이다. 요즘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우리 문단의 등단 절차는 대개 단편 중심으로 되어 있다. 평론도 사정은 비슷하다. 간혹 장편만으로 대중적인 이름을 얻는 수도 있긴 하지만 단편으로 검증받지 않은 작가의 장편에 대해 진지한 평론을 대체로 의심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강하게 추측되는 것은 전일적全日的인 습작 기간이 허용될 수 없는 우리의 문학 환경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문학청년의 괴로운 성장 과정은 최근 몇 년까지의 각박했던 사회 여건을 감안하면 일 없는 빈둥거림으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사회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관대할 수 없었고, 많이 나아졌다는 지금도 그들을 격려하거나 그들의 미래에 투자할 여유까지는 기르지 못했다.

    따라서 이 땅의 문학작가 지망생이 고통스럽지 않게 글을 쓸 수 있는 습작 기간은 대개 학창시절의 자투리 시간과 졸업 후 한두 해가 전부가 되고, 더 있어봤자 따로 생업을 가진 일요작가로서의 몇 년이 보태질 뿐이다. 그 경우 손쉬운 습작의 대상은 아무래도 장편보다는 짧은 시간에 완결을 볼 수 있는 단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습작 방식도 반드시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크게는 같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습작의 많은 부분은 겹쳐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단편에서의 철저함과 정확함을 익혀두는 것은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장편의 형식미를 다잡아주는 데 아주 유용하다. 장편 작가와 단편 작가를 구분하는 듯한 서양에서도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은 그 둘을 겸하고 있는데, 그 또한 단편 습작의 유용성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찾아보면 전범으로 쓸 만한 국내 작가들의 단편은 작가별 시대별에, 때로는 주제별로까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듯하다. 수고스럽게 이 책 저 책 뒤적이지 않고도 그대로 교재가 될 만한 단편 선집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학자들이나 출판사의 노력도 있었지만, 달리 보면 결국은 국문학 안에서의 문제라 선별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소설의 전범을 찾는 일이라면 국내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논리로도 우리 현대소설이 서구의 현대소설을 전범으로 삼아 성장해왔다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못한다. 설령 그것을 우리 전통소설에 가해진 ‘서구의 충격’이란 말로 바꾼다고 해도 세계문학, 특히 서구의 현대문학이 지닌 전범으로서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 단편들을 전범으로 가르치려 들면 가장 먼저 빠지게 되는 것은 그 소재所在를 찾는 어려움이다. 작가별로 단편집이 몇 나와 있기는 하지만, 기준이 무엇인지 짐작 가지 않을 만큼 작가와 작품의 선정은 혼란스럽고 묶는 방식은 한 권을 다 읽어내기에도 따분할 지경이다. 그래도 마음먹고 고른 흔적이 보이는 것은 윌리엄 서머싯 몸(1874~1965년)의 『세계의 문학 백선』인데 그와 동시대로 접근할수록 난조를 보이고, 다음이 국가별로 묶은 『세계단편선』류인데 그것은 또 천편일률적인 체제에다 대부분 이십 년 이상 묵은 전집들이라 도서관이 아니면 찾기 어렵다. 나머지는 구닥다리 세계문학전집 속에 흩어져 있거나 잡지사들이 생각난 듯 끼워 넣는 해외 명작 소개란에 반짝 보이고는 자취를 감춘 것들이었다. 어떤 작품은 끝내 번역되지 않아 해당 언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읽어볼 수 없기도 하다.

    그 바람에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전범으로 쓸 만한 세계명작 단편 선집을 내가 직접 엮어보았으면 하는 분에 넘치는 야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좀체 여유가 나지 않다가 1993년 말에야 출판사의 격려와 협조에 힘입어 본격적인 작품 수합에 들어갔다. 먼저 젊은 시절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어 기존의 여러 선집과 출판사 직원들이 복사해온 문학잡지의 해외 특집란을 검토해 부실한 기억을 보충했다. 그리하여 1994년에는 대략 지금 이 선집에 실린 작품 수의 두 배 정도로 목록이 압축되었다.

    하지만 그 목록이 한 번 더 걸러지고 책의 편제가 지금과 같이 확정된 것은 1995년 들어서가 된다. 마침 재직하는 대학에서 ‘현대문학 특강’을 맡게 되어, 나는 그 시간을 작품 선택과 해설의 객관성을 검증하는 기회로 삼았다. 특별히 내용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강의인 데다 그 작업이 학생들에게도 유익할 거라 믿어 겁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 내 강의안은 비교문학과 연관 지어 나라별로 몇 주를 할당하고 그 나라 단편 중에서 전범이 될 만한 것을 골라 읽는 것으로 짜였다. 하지만 그 강의안은 곧 철회되고 말았다. 그렇게 골라지는 작품들은 기존의 국가별 명작 선집과 다를 바 없어 개별적인 감동의 기억을 주는지 몰라도 머릿속에 정리된 효과적인 전범으로는 기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수정한 강의안이 바로 지금 이 선집의 편제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매주 한 주제로 전범이 될 만한 단편 열 편씩을 골라주고 각자 찾아보게 한 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 한 편씩을 골라 독후감을 작성하게 했다. 강의는 바로 그 독후감의 발표와 토의였고, 시험은 학생들이 그렇게 제출한 독후감에 대한 평점을 집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론 기존의 대학교 국문학과 교과과정에 대해서도 나름으로는 용의주도하게 배려했다. 국내 작품의 전범집으로 쓸 만한 단편 선집을 하나 골라 주 교재로 삼고 내가 선정한 외국 작품들은 부교재란 명칭을 닮으로써 대학교 국문학과 교과과정에 대한 경의는 충분히 표했다. 다만 주 교재는 각자 집에서 읽어보는 것으로 하고 부교재만 함께 토의해 나가기로 했을 뿐이었다.

    처음 한두 주일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실감하기 시작했다. 수천수만 편이 넘을 세계 각국의 단편 중에서 어떤 주제로 전범이 될 만한 작품 열 편을 고른다는 것은 엄청남을 넘어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된 무모함일 뿐이었다.

    선정의 객관성도 나를 몹시 괴롭힌 문제였다. 그것이 바로 문학에 대한 내 안목을 드러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모든 게 자신 없어졌다. 그때 다시 유혹된 게 기존의 선집들이었다. 특히 브룩스와 워렌, 혹은 노튼 같은 이들이 선정한 영문판 선집의 체제가 강렬한 유혹이 되었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 선정 기준에서도 많은 부분 동의하기 어렵거니와 주제별로 뽑는 데는 거의 참고가 되지 못했다. 그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는 길은 결국 선정 범위를 나의 독서 체험으로 축소하고 기준을 주관적인 감동으로 삼는 것밖에는 없었다. 네 번째 주로 접어들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의 자신만만함과는 달리 풀 죽은 목소리로 그와 같은 선정 범위와 기준의 축소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솔직히 고백한다. 내 희망은 틀림없이 전 세계를 망라하는 객관적인 전범의 선정이었으나, 이루어진 것은 내 대단찮은 독서 범위 안에서 주관적으로 고른 작품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그런데도 나는 이 선집의 유용함에 대해서는 한 가닥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선집에 적용된 범위와 기준은 거치나마 사십 년이 넘는 내 문학 체험의 한 결산이며, 나의 소설도 결국은 이 범위와 기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쓴 모든 것이 한 점 남김없이 문학사의 쓰레기더미에 묻혀버리지 않을 것이라면 이 선집도 단편소설의 창작에서든 연구에서든 약간의 유용함은 있을 것이다. 특히 주제별로 세계 각국의 단편들을 정리한 것을 이 선집의 한 자랑이 될 만하다.

    써놓고 보니 딱딱한 교재의 서문 같은 데가 있어 한마디 덧붙인다. 틀림없이 이 선집을 엮은 의도는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지만, 어쩌면 실제적인 효용은 교양으로 접근하는 쪽에 더 높게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의 다양한 주제들이 세계 각국의 거장들에 의해 어떻게 소설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비교하여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지금의 추세에서도 청소년들에게 활용도 높은 문학 교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무모한 시도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이 선집이 책으로 묶여 나오는 데는 여러 분의 도움이 있었다. 1993년부터 내가 준 목록을 들고 이 도서관 저 도서관 뛰어다니며 작품을 복사하느라 애쓴 살림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은 그만큼 내 노고와 시간을 절약해주었다. 장경렬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편집위원은 나의 천학과 단견에 좋은 거름 장치가 되어주었으며 세종대의 강자모, 박유하 교수도 작품 선정과 번역에서 귀한 시간을 쪼개준 분들이다. 한 학기 내내 작품 조사와 보고서 작성으로 고생한 현대문학 특강 수강생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03년 겨울

    이문열

    차례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머리말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스티븐 크레인

    구명정

    죽음과 맞서는 인간의 태도 또는 자세

    잭 런던

    불 지피기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르셀 프루스트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삶이 죽음의 일부인가, 죽음이 삶의 일부인가

    셔우드 앤더슨

    숲속의 죽음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헤르만 헤세

    크눌프

    삶의 최종심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샤를 루이 필리프

    앨리스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바이올렛 헌트

    마차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背音으로 한 기상곡

    머리말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끝없는 상태 혹은 지루한 상황의 연속으로서 그 독특한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그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어떤 가르침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착안해 삶을 죽음의 일부로 간주한다. 운동과 변화 없이도, 극단적으로는 그것들을 인식하는 주체조차 없어도 흐르는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죽음 뒤에도 흐를 무한한 시간에 시선이 뺏겨 삶을 찰나로 의식한다. 그들은 삶의 덧없음을 과장하며 우리에게 죽음 쪽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를 권한다.

    그와는 달리 죽음을 삶의 일부로 가르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인식주체가 이미 쓰러져 버린 뒤의 시간에 대해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내며, 그 못 미더운 무한보다는 짧지만 우리가 확실하게 소유한 이 땅에서의 시간을 굳게 움켜쥐라고 권한다. 시간은 증명할 수도 없는 절대자의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하는 자의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편을 믿든 죽음은 여전히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다.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닥쳐온다는 점만으로도 죽음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우러르며 예비하고 다가가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기피할 대상인가만이 달라진다.

    우리 배움의 많은 부분은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태도 결정과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우리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문명의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동양 문명은 죽음에의 대비와 친화를 가르치고 서구 문명은 기피와 무시를 가르친다고 말해져 왔다. 현대 문명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도 하지만, 실은 그것도 지역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대 혹은 문명의 단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문명사로 보면 실패도 양쪽 모두에게 공평했다. 어떤 문명은 죽음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투자해서 멸망했고, 어떤 문명은 오직 삶을 향해 치닫다가 시들어간 듯 느껴진다. 그러나 그 어느 편도 죽음으로부터 끝내 자유롭지는 못했다.

    문학이, 특히 소설이 죽음을 즐겨 다루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 고대로부터 죽음은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이면서 또한 가장 감동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현대 단편소설이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이번 개정판 2권도 일부 변동이 있다.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발다사르 실방드르의 죽음」 두 편이 들어가고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마르크 베르나르의 「연인의 죽음」이 빠진다. 「연인의 죽음」이 빠진 것은 초판의 독후감에서 썼듯, 그 작품이 죽음보다는 삼십 년이 넘는 사랑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회고적인 데가 있어서다.

    번역을 새로 한 작품도 하나 있다. 바로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다. 「크눌프」는 기존 중역을 직역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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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대문호. 1828~1910년.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고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하기도 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크로이처 소나타」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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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법원 건물. 멜빈스키 사건 공판이 진행되던 중, 휴식 시간에 판사들과 검사는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의 집무실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 유명한 크라소프 사건을 화제에 올렸다.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는 그건 자기네 관할이 아니라고 역설했고 이반 예고로비치는 반론을 폈지만, 애초부터 논쟁에 끼어들지 않은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누구 편도 들지 않은 채 조금 전에 배달된 관보만 훑어보고 있었다.

    여러분! 하고 표트르가 말했다.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군요!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자, 직접 읽어보세요.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렇게 대꾸하고,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신문을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에게 건네주었다. 검은 선으로 테를 두른 부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골로비나는 깊은 애도의 뜻을 가지고 친척 및 친구 여러분께 삼가 알립니다. 저의 사랑하는 남편 이반 일리치 골로빈 판사는 1882년 2월 4일 사망했습니다. 장례식은 금요일 오후 한 시에 거행할 예정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동료였고, 그들은 모두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몇 주 전부터 앓아누워 있었는데, 불치병이라는 것이었다. 법원에서 그가 맡고 있는 자리는 그동안 줄곧 공석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가 죽으면 그 자리에는 알렉세예프가 앉게 될 것이고, 알렉세예프의 후임으로는 빈니코프나 시타벨이 임명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나돌고 있었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 방에 모여 있던 이들의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그들 자신이나 친지들에게 전근이나 승진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번에 틀림없이 시타벨이나 빈니코프의 자리를 얻게 될 거야. 그건 오래전부터 약속된 자리니까. 그 자리로 승진하면, 수당을 빼고도 해마다 800루블을 더 받게 돼.’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처남을 칼루가에서 이곳으로 전근시켜달라고 신청해야겠군. 집사람도 무척 기뻐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더러 처가 식구들을 위해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는 못하겠지.’

    이반 일리치가 병석에서 다시 일어나기는 어려울 걸로 생각하긴 했지만…….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소리 내어 말했다. 정말 안됐군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나빴던 겁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의사들도 진단을 내리지 못했답니다. 아니, 진단할 수는 있었지만, 그 진단이라는 게 의사마다 제각각이었다지요.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만 해도 차츰 좋아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는 명절 휴가가 끝난 뒤로는 뵙지 못했습니다. 문병을 가려고 늘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그건 그렇고, 재산은 있나요?

    부인이 좀 갖고 있나 보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에요.

    조문을 가긴 해야 할 텐데, 집이 너무 멀어서…….

    당신 집에서 멀다는 뜻이겠지요. 하기야 당신 집에서는 어디나 다 머니까.

    이 친구는 내가 강 건너에 살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못마땅한 모양이군요.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셰베크 쪽으로 미소를 던지면서 말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시내의 어디서 어디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윽고 법정으로 돌아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친지들 가운데 좀 더 가까웠던 사람들, 이른바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반 일리치와 가장 친했던 사람은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였다. 특히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평소에는 저녁식사가 끝나면 잠시 누워서 선잠을 즐기는 게 버릇이었지만, 오늘은 그것도 포기한 채 연미복을 입고 이반 일리치의 집으로 마차를 몰았다.

    현관 앞에는 승용마차 한 대와 삯마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아래층 현관홀의 옷걸이 옆에는 금속 가루로 윤을 낸 관 뚜껑이 벽에 세워져 있었는데, 금실과 술로 장식된 황금빛 천으로 덮여 있었다. 검은 상복 차림의 두 여자가 외투를 벗고 있는 참이었다. 그중 한 여자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전부터 알고 있는 이반 일리치의 누이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여자였다. 동료 판사인 시바르츠가 2층에서 내려오다가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눈을 깜박여 보였다. 그 눈짓은 마치 ‘이반 일리치는 일을 망쳐버렸지 뭐예요. 당신이나 나와는 달리……’ 하고 말하는 것 갈았다.

    마른 체구에 연미복을 걸치고 영국식 구레나룻을 기른 시바르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잖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사실 이런 태도는 평소의 소탈하고 쾌활한 성격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 엄숙한 얼굴에 유난히 신랄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니, 표트르 이바노비치한테는 그렇게 보였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두 여자를 먼저 가게 한 다음,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층계를 올라갔다. 시바르츠는 내려오지 않고 층계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오늘 밤에 어디서 카드놀이를 할 것인지, 그 문제를 의논할 작정인 게 분명했다. 두 여자는 2층으로 올라가더니 미망인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시바르츠는 눈썹을 움직여, 빈소가 차려져 있는 오른쪽 방을 가리켰다. 입술은 심각하게 꽉 다물고 있었지만, 눈에는 장난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듯이, 표트르 이바노비치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빈소로 들어갔다. 이런 경우에는 성호를 긋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호를 그으면서 동시에 고개를 숙여 절을 해야 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중용을 택했다. 빈소로 들어가면서 성호를 긋기 시작하는 동시에, 고개를 살짝 숙여 절하는 시늉을 한 것이다. 그리고 머리와 팔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재빨리 실내를 둘러보았다. 두 젊은이—고인의 조카인 듯싶었고,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이었다—가 성호를 그으며 방에서 나가고 있었다. 한 노파가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었고, 눈썹이 초승달처럼 묘하게 생긴 여자가 그 노파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프록코트 차림의 건장하고 활기찬 부사제가 어떤 반박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 큰 소리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주방 담당 하인인 게라심이 표트르 이바노비치 앞을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가면서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이를 본 순간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썩어가는 시체에서 희미한 악취가 풍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반 일리치를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게라심을 서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병자를 수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관과 부사제 그리고 한쪽 구석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성상들의 중간쯤 되는 방향으로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계속 성호를 그었다. 그러다가 문득 성호 긋는 동작이 너무 오래 계속된 것 같아, 손을 멈추고 고인의 유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으레 그렇듯이, 고인이 된 이반 일리치도 관 속에 유난히 묵직하게 누워 있었다. 뻣뻣해진 팔다리는 부드러운 깔개 속에 폭 파묻혀 있고, 베개 위에 얹힌 머리는 영원히 축 늘어져 있었다. 움푹 꺼진 양쪽 관자놀이 위에는 머리가 벗겨진 누르스름한 이마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온 코는 윗입술을 짓누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모습이 많이 달라져서,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지만, 모든 시체가 그렇듯이 이반 일리치의 얼굴도 살아 있을 때보다 한층 멀끔하고 무엇보다도 위엄이 있어 보였다. 그 얼굴 표정은, 필요한 일은 모두 해냈다, 그것도 올바르게 해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표정에는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비난과 경고도 담겨 있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한테는 이 경고가 다소 엉뚱하게 여겨졌다. 그는 왠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서둘러 성호를 긋고는 발꿈치를 홱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서둘러 나온 것이 예의를 무시한 행동이었다는 것은 그 자신도 의식했다.

    옆방에서는 시바르츠가 두 다리를 쫙 벌린 채 뒷짐 진 두 손으로 실크해트를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쾌활하고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금세 기분이 상쾌해졌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마음이 울적해지는 법인데, 저 친구는 이런 일에 초연해서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바르츠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이라고 해서 그것 때문에 평상시의 관례를 어길 필요는 없어. 오늘 밤에 하인이 새 양초 네 자루를 켜놓은 탁자에 둘러앉아 새 트럼프를 뜯어서 뒤섞는 일을 막지는 못할 거라는 얘기지. 요컨대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 밤을 유쾌하게 지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야.’ 실제로 그는 앞을 지나가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그런 말을 속삭이면서,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의 집에서 열리는 카드놀이에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날 밤 카드놀이에 참석할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복 차림의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살을 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 밑으로는 몸뚱이가 꾸준히 옆으로 퍼지고, 관 옆에 서 있던 여인처럼 눈썹이 유별나게 생긴, 땅딸막하고 살찐 여자)가 레이스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자기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그 여자들을 빈소로 안내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곧 예배가 시작될 거예요. 들어들 와주세요.

    시바르츠는 애매한 몸짓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분명 미망인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 표트르 이바노비치라는 것을 알아본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을 잘 알고 있답니다. 이반 일리치의 진정한 친구셨지요……. 그러고는 이 말에 어울리는 반응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상대를 쳐다보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빈소에 들어갔을 때 성호를 긋는 것이 올바른 처신이었듯이, 지금 이 장면에서는 미망인의 손을 꼭 쥐고 한숨을 쉬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고, 바라던 결과를 얻었다고 느꼈다. 말하자면 자신도 감동하는 동시에 미망인도 감동시킨 것이다.

    저쪽으로 좀 가시겠어요?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미망인이 말했다. 팔을 좀 빌려주세요.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팔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시바르츠를 지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옆을 지날 때 시바르츠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동정하듯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카드놀이에 참석하기는 다 틀렸군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해도 언짢게 여기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으면, 도중에 낄 수도 있을 거예요.’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낙심하여 아까보다 훨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감사의 뜻을 더하여 그의 팔을 꼬옥 잡았다. 분홍색 크레톤 천으로 벽을 입히고 희미한 램프가 켜져 있는 객실에 이르자 두 사람은 탁자 앞에 앉았다. 그녀는 소파에 그리고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낮고 둥근 의자에 앉았는데, 그의 체중에 눌리자 스프링이 갑자기 폭 내려앉고 말았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다른 의자에 앉으라고 미리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그런 언행이 지금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던 것이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이반 일리치가 이 객실을 꾸미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는 초록빛 나뭇잎 무늬가 박힌 이 분홍색 크레톤 천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묻기도 했었다. 방은 가구와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소파로 걸어가던 미망인의 검은 레이스 숄이 복잡한 조각이 새겨진 탁자 모서리에 걸렸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그것을 벗겨주려고 일어서자 그의 체중에서 해방된 스프링도 따라 일어나 그를 홱 떠밀었다. 미망인은 제 손으로 숄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의자에 앉아 건방진 스프링을 엉덩이로 짓눌렀다. 하지만 미망인은 좀처럼 숄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일어났고, 의자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번에는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냈다. 이런 소동이 겨우 끝나자 미망인은 깨끗한 아마포 손수건을 꺼내들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감정은 숄이 탁자 모서리에 걸린 사고와 둥근 의자와의 투쟁 때문에 어느덧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멀뚱히 앉아 있었다. 이 거북한 상황을 중단시킨 것은 이반 일리치의 집사인 소콜로프였다. 소콜로프는 객실로 들어오더니, 마님께서 고른 묏자리 값이 200루블이라고 보고했다. 미망인은 울음을 그치고 희생자 같은 표정으로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쳐다보면서, 남편의 죽음이 자기한테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라고 프랑스어로 말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무언의 몸짓으로 충분히 이해한다는 뜻을 전했다.

    자, 담배 태우세요. 그녀는 관대하지만 슬픔에 짓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소콜로프와 묏자리 값을 의논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가 묘지의 다른 묏자리 값을 자세히 묻고 나서 마침내 적당한 묏자리를 결정할 때까지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일이 끝나자 미망인은 합창대를 고용하는 문제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소콜로프가 방을 나갔다.

    모든 걸 제가 직접 처리하고 있답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방명록을 치우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그의 담뱃재가 탁자로 금방 떨어지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그에게 재떨이를 건네면서 말했다. 너무 슬퍼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예요. 그이를 위한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어서 좋답니다. 그게 위안을 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녀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손수건을 꺼내더니, 갑자기 감정을 억누르듯 고개를 젓고 나서 차분한 투로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답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허리를 굽혀 보였다. 그러자 그 즉시스프링이 엉덩이 밑에서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얼른 앉음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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