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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2권
메모라이즈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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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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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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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2권 - 로유진

    1. 반으로 갈라지다 (2)

    시작은 꼬였는지 몰라도 역시 나이는 똥구멍으로 먹은 게 아닌 모양이다. 이신우와 이보림은 자신들이 미끼나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목숨이라는 이름값 앞에 굴복했든가.

    김한별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개운하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박동걸을 방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는 일부러 자리에서 나온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판은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나와 그에 한해 윈윈이 될지도 모른다. 박동걸은 주도권을 잡는 데 거슬리는 안현과 이유정을 쳐냈고 나는 염두에 둔 네 명 중 세 명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아까부터 살심이 솟을 정도로 걸리적거렸는데,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방해한다면 바보 아니겠는가. 인재들이 현란한 말솜씨에 말린 건 답답했지만 어차피 그건 개인들의 문제로, 내가 상관할 건 없었다. 이제 남은 한 명만 잘 끌어들인다면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풀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박사박.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뒤편에서 풀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키며 왼팔에 석궁을 장착했다. 김한별만 보면 예전의 그녀가 떠올라 왠지 나도 모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전방을 향해 석궁을 겨누고 열심히 주변을 살피는 척하고 있자 곧이어 나를 발견했는지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저기…….

    네?

    깜짝 놀란 얼굴로 몸을 돌리자 김한별은 고요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왼팔을 주물럭거리며 팔이 아픈 표정을 짓곤 입을 열었다.

    울음소리가 한두 번 들리긴 했는데, 주변에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어요. 의견 조율이 거의 끝나서 이제 그만 오셔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지금 바로 가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예상대로 김한별은 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다시 몸을 돌리자 김한별은 주저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이상한 방향이요?

    네. 어떻게 됐나면요…….

    김한별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곤 그동안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얘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고 싶었지만, 김한별은 매우 객관적인 관점으로 핵심적인 내용만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좋든 싫든 어느 한쪽으로 얘기가 편향되기 마련인데, 나는 그녀에게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래서 현재 이렇게 됐어요. 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얘기가 끝난 후 내가 어느 편에 설지 궁금했는지 김한별이 바로 물었다. 이미 마음을 정했지만 나는 고민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얘기가 될진 몰랐네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아요.

    저도 그래요.

    그쪽은 그 아저씨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요?

    내 물음에 김한별은 잠시 내 눈을 보고는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네. 그 아저씨만 보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그때는 아저씨가 한 말에서 잘못된 점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이신우와 이보림은 넘어갔다. 그들을 보며 김한별은 고민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그녀가 직접 나를 데려오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더 얘기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도 상당히 시간이 흘렀기에 난 발걸음을 옮기며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마음을 일부분이나마 확인한 이상 돌아가면서 조미료만 치면 될 것이다.

    서로 간에 말은 없었지만 김한별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건 확실했다. 어느 정도 뜸을 들였다 싶을 즈음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아저씨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애초에 자신의 논리의 장점과 허점을 교묘하게 섞었어요. 그러니 틀린 말은 없을 수밖에요. 장점으로 허점을 잘 포장해 자신의 말을 잔뜩 유리하게 만들었는데요.

    어떠한 대답도 없었지만 나는 더 설명을 해보라는 무언의 시선을 느꼈다. 박동걸이 제법 꾀를 부렸지만 난 김한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고민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하나씩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랑 솔직한 건 하나의 조건이 있어야 해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킬 수 있는가. 그 아저씨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잘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아니요.

    김한별은 즉각 대답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인상도 별로이고, 행동은 팀의 화합을 깨뜨리고 있어요. 그의 불확실한 말을 믿고 팀에 들어가느니 그냥 기존에 있는 사람들하고 남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러니 저는 기존 사람들과 남겠어요.

    슬쩍 뒤를 돌아보니 김한별은 내 말을 곱씹는지 한창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1분도 흐르지 않아 저기 멀리서 사람들이 보이자 그녀가 내 등 뒤로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들어간 두 사람이 걱정이네요.

    이 말은 김한별도 마음을 정했다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나는 직구로 들어가는 게 아닌, 최대한 완곡하게 돌려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박동걸 그 시발 놈이 이보림이랑 이신우 먹으려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가지 마요. 가면 님도 이용당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그녀는 나도 불신했을 것이다. 나름 머리 회전이 빠른 것 같아 보이니 조금만 찔러줘도 내 말의 의미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것이다.

    이윽고 언덕 위로 두 패로 갈라진 사람들이 눈에 확실히 들어올 정도로 거리는 줄어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상황이랑 달라진 건 없었다.

    한편에는 안현을 위시한 안솔과 이유정이, 그리고 반대편에는 박동걸을 내세운 이신우와 이보림이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로 올라온 순간, 나와 김한별한테 쏠리는 여섯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지금 오는군. 아무튼 망보느라 수고 많았다.

    벌써부터 뭐라도 된 마냥 구는 박동걸을 보며 무언가 아니꼬운 감정이 치솟았지만, 나는 억지로 속을 억눌렀다. 안현의 묵묵한 눈동자, 안솔은 불안한 눈동자, 이유정은 긴장된 눈동자, 이신우의 떨리는 눈동자, 이보림의 힘없는 눈동자. 다양한 눈동자들에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그들한테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내 뒤를 따라오던 김한별의 걸음도 덩달아 멈추었다.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아무튼 오면서 대충 얘기는 들었지?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힘들겠지만 네가 이해 좀 해라. 이것도 다 살자고 하는 거잖아.

    박동걸의 말이 끝나자 이유정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동걸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우리 팀으로 들어와. 우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 너라면, 그리고 뒤에 있는 아가씨도 환영하겠다.

    주변 공기를 감싼 긴장감이 최고로 오르고 모두가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다른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손을 외면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권유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박동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손을 거두지 않은 채 김한별을 향해 물었다.

    그럼 너는?

    저는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물론 김한별 역시 그를 외면했다. 자신을 지나치는 우리 둘을 보며 박동걸은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오면서 저 여우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분명 후회할 거다.

    자기 목숨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도 귀한 줄 아시길 바랍니다.

    헛소리하고 있네. 기껏 생각해 줬더니만. 뭐, 마음대로 해. 나도 싫다는 사람 억지로 들일 생각 없어. 나중에 다시 팀에 끼워달라고 애원만 하지 말라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신우야. 보림아. 그만 가자! 저런 위선에 가득 찬 녀석들과 함께 있다간 우리 목숨도 남아나질 않겠다.

    벌써 통성명도 했나. 이신우와 이보림을 억지로 붙잡고 떠나는 그를 보니 큰 짐을 던 기분이었다. 나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남은 사람들 앞에 섰다. 그들의 눈에서 안도감과 뜻 모를 호의 섞인 감정이 나에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안현은 한숨을 푹 내쉬곤 내게 말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보셨다시피…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흥. 잘됐지, 뭐. 기죽을 필요 없잖아요? 지들이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건데, 멋대로 하게 놔둬요. 죽든 살든 알아서들 하겠지.

    이유정의 가시 돋친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 말대로 그들은 떠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남겨진 게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고.

    이 두 말은 아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떠난 사람들 걱정보다는 지금 당장 우리 걱정부터 하죠. 일단 언덕을 내려가 이 숲을 벗어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모두를 보고 한 말이 아닌 안현을 지목해 한 말이었다. 내 시선이 안현을 향하자 자연스레 이유정과 김한별의 시선도 안현에게로 넘어갔다. 골목대장 노릇 좀 해본 경험이 있는지, 안현은 시선이 몰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흔쾌히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언덕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는 건 좋습니다만,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야 할지 고민이네요. 지금 위치도 어딘지 모르니…….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린 안현은 아직도 데드맨들이 우글거리는 공터와 박동걸 일행이 따라간 길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박동걸이 잡고 간 길은 공터와 정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머리 좀 굴린 것 같지만, 내가 볼 때는 그건 절대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낫지 않을까요?

    그때 처음처럼 조용히 있던 김한별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자 공터를 기준으로 약 90도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유정은 공터와의 거리를 가늠하는가 싶더니 살짝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차라리 공터랑 아예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아? 저기는 공터와 거리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여기 박동걸과 같은 생각한 사람 추가요.

    안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것같이 생겼는데, 제법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인 것 같았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정을 보며 김한별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해요. 현재 저것들은 공터로 상당수 몰린 상태예요. 이 숲에 저것들이 고르게 분포해 있다고 가정하면 한곳에 몰린 만큼 다른 곳은 비어있다는 소리죠.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바로 이 부근일 거예요.

    공터와 정반대 방향은 그때 소란을 듣지 못하고 그것들이 그대로 있을 수 있잖아.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몰라.

    안현의 부연설명이 이어지고 김한별은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내가 생각한 탈주로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흡사하다고 할 만했다. 어쨌든 이제 좀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기분에 나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아까 그 새끼가 간 방향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아무튼 우리도 이 아래로 쭉 내려가 숲을 벗어나는 걸로 하자. 솔아. 그만 일어나.

    응? 응!

    안솔은 깍두기처럼 손가락만 빨며 우리들의 대화를 보다가 안현의 말에 황급히 일어섰다. 나와 안현이 나서서 일을 결정하는 걸 보며 다들 큰 불만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박동걸이 있을 때보다 얼굴도 분위기도 훨씬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유정은 박동걸의 고생길이 고소한지 얼굴에 미소까지 보이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인 나와 일행은 신속하게 언덕을 내려갔다.

    탈주로를 정한 후 언덕을 내려간 지 약 두 시간 정도 흘렀다.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길게 뻗어서 그런지 숲 안은 언덕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어둑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어두운 숲속을 우리들은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흙과 풀을 스치는 소리와 규칙적인 호흡만이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며 선두에 선 나와 안현을 뒤따르고 있었다.

    음침한 숲은 조용했고, 또 생각보다 큼지막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그리고 현재 걷는 속도를 유지한다면 오늘 저녁이 되기 전에 숲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능력치가 준수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천사들이 일부러 난이도가 높은 숲 중앙에 떨어뜨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오늘 저녁이 되기 전에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게 좋았다. 준비의 방에는 의류와 무기들만 있었고 식량 또는 물을 제공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필품들이 있는 장소는 따로 있었다. 반나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레스트 룸이나 하루 동안 잠을 자고 지낼 수 있는 세이브 포인트. 그 외의 방법이라면 다른 사용자들을 약탈하거나, 아니면 마을에 있는 상점들을 뒤지는 방법도 있었다.

    …오빠.

    응?

    현재 선두는 안현과 내가 섰고, 그 뒤를 안솔과 김한별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정이 맨 후미를 맡은 상태로, 우리들은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며 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안솔이 안현의 옷깃을 꾹 잡아당기더니 발개진 얼굴로 입을 오물거렸다.

    나 쉬 하고 싶어…….

    …….

    안솔의 수줍은 말에 모두의 얼굴에도 어색함이 맴돌았다.

    ‘병신인가?’

    좀 천연 같아 보이긴 했는데, 이 정도라니. 현대에서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안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우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여기서 잠깐만 멈춰도 될까요. 동생이 볼일이 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이유정과 김한별은 순순히 동의했다. 여자들끼린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안솔이 혼자 가는 게 무서웠는지 오빠를 보고 같이 가자고 생떼를 부리는 해프닝은 있었지만, 안현은 매정하게 그녀를 혼자 보내고 말았다.

    오빠에게 한 소리 듣고 풀이 죽어 터덜터덜 걸어가는 안솔을 보며 이유정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녀는 땅바닥에 털썩 앉아있었다.

    괜찮겠어? 또 그것들이 달려들 수도 있잖아.

    잘 살피고 있으니까 괜찮을걸. 그리고 나이가 열아홉인데, 화장실도 혼자 해결 못하면 말이 안 되지. 근데 너 몇 살인데 반말하냐?

    나? 스물둘. 너도 반말하면서 새삼스럽게. 그런데 너 나보다 어리지 않아? 딱 봐도 갓 스물이나 스물하나로 보이는데.

    나도 스물둘이다.

    에? 동갑이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통성명이나 하는 건 어때요?

    전보다 훨씬 쾌활해진 목소리로 이유정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하자 김한별도 심적인 긴장감에 알게 모르게 지쳤는지 그녀를 따라 조심스럽게 앉았다. 나와 안현도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가운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차피 동생 돌아오면 바로 다시 출발할 거니까 간단하게 하자고. 내 이름은 안현이다. 나이는 스물둘.

    여기 오기 전에는 뭐 하고 지냈어?

    이유정의 질문에 안현은 곤란한 듯 살짝 얼굴을 긁적였지만 이내 순순히 대답했다.

    그냥 동네 양아치 짓거리 좀 하면서 알바 하고 살았어. 너는?

    나? 이름은 이유정. 나이는 똑같은 스물둘. 대학교를 휴학하고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었지.

    경찰 공무원 시험이라. 그럼 여경이 꿈인가? 왠지 경찰 제복과 이유정의 모습이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내 서로 경찰이다 양아치다 수다를 나누던 둘은 나와 김한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연 건 김한별이었다.

    김한별. 나이는 스물하나예요. 대학생입니다.

    동생이네? 어느 대학교에 다녔어?

    연세 대학교에 다녔어요.

    와~ 공부 잘하나 보네. 부럽다.

    잠시 감탄의 눈빛을 보내던 둘은 이내 혼자 남은 나한테로 시선을 돌렸고 덩달아 김한별도 뭔가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부담스런 시선에 나는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얼굴로 그들의 기대에 응해주었다.

    이름은 김수현. 나이는 스물셋. 군인이었습니다.

    오빠 발견! 그럼 말 편하게 해요, 오빠. 그런데 오빠는 육군이었어요, 공군이었어요, 해군 이었어요?

    그럼 형이네. 말 편하게 하세요. 형, 계급은 뭐였어요?

    아까는 단순히 기가 세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유정은 천성이 발랄한 듯 보였다. 동시에 안현은 군대 얘기가 나오자 호기심이 동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육군 병장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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