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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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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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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 아마존 2021년 베스트셀러
* 굿모닝 아메리카 북클럽 선정도서
* [워싱턴포스트] 2021 올해의 소설

J. P. 모건의 개인 사서, 벨 다 코스타 그린의 실화 소설
흑인에 대한 편견을 넘어 백인의 특권으로 살다

유색인 신분을 숨기고 백인으로 살아야 했던 여자, 『벨 그린 The Personal Librarian』은 미국의 전설적인 금융 황제인 존 피어폰트 모건 (John Pierpont Morgan)의 개인 사서이자 모건 도서관 초대 관장이었던 벨 다 코스타 그린(Belle da Costa Greene)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20대의 벨 다 코스타 그린은 새로 설립된 J. P. 모건 도서관의 개인 사서로 고용되어 희귀 필사본과 고서적 그리고 예술품 등을 수집하는 일을 맡게 된다. 벨은 여성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예술적 안목과 주도면밀한 협상 능력을 발휘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고 모건 도서관을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모아 뉴욕 사교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데. . .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들키지 말아야 하는 비밀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벨 다 코스타 그린이 아닌 벨 마리온 그리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흑인 최초 하버드대 졸업생이자 유명한 흑인 평등 주창자인 리처드 그리너의 딸이었던 것이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Nov 15, 2022
ISBN979119208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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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 그린 - 마리 베네딕트

    마리 베네딕트 Marie Benedict

    역사소설 작가. 보스턴 대학교와 보스턴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10년 동안 상업 소송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피신처로 우연히 들른 J. P. 모건 도서관에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벨 그린을 발견하고 그녀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후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와 함께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백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벨 그린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대표 저서로는 《크리스티 부인의 미스터리 The Mystery of Mrs. Cristie》, 《레이디 클레멘타인 Lady Clementine》, 《방 안에서 유일한 여자 The Only Woman in the Room》, 《카네기의 하녀 Carnegie’s Maid》, 《또 다른 아인슈타인 The Other Einstein》 등이 있다.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Victoria Christopher Murray

    뉴욕 퀸즈 출생. 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은 후 현대소설 작가가 되었다. 마리 베네딕트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고 벨 그린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떠올리면서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다. 《당신의 주장을 고수하라 Stand Your Ground》를 포함하여 30권 이상의 소설을 썼으며, <도서관 저널 Library Journal> 올해의 베스트 책,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이미지 어워드 문학 작품(소설)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옮긴이 김지원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강사로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어니 트윌 외전: 마법의 발명》, 《여성의 설득》, 《나의 살인자에게》, 《루미너리스 1·2》, 《티어링 3부작》,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비하인드 허 아이즈》, 《7번째 내가 죽던 날》, 《리허설》, 《비밀을 삼킨 여인》, 《오버스토리》,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바다기담》,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등이 있다.

    The Personal Librarian

    Copyright © 2021 Marie Benedict and Victovia Christopher Murray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2 by VISION B&P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Laura Dail Literary Agency, Inc. through

    Duran Kim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듀란킴 에이전시를 통한 Laura Dail Literary Agency, Inc.와의

    독점계약으로 (주)비전비엔피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차례

    1장 ~ 42장

    에필로그

    역사적 배경

    작가의 말 (마리 베네딕트)

    작가의 말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감사의 말

    벨 다 코스타 그린

    벨 마리온 그리너라는

    벨의 두 모습을 위하여

    1장

    1905년 11월 28일

    뉴저지 프린스턴

    올드 노스 교회의 종이 시간을 알리자, 나는 아무래도 지각할 것 같았다. 풍성한 치마를 치켜들고 프린스턴 대학의 오솔길을 따라 날듯이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무거운 치맛자락을 손으로 쥘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벨, 항상 숙녀답게 행동해야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숙녀는 절대 뛰지 않는 법이다.

    나는 치마를 놓고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처럼 설계된 프린스턴의 나무가 우거진 고딕 양식 건축물 사이로 천천히 걸어갔다. 남들의 관심을 끌 만한 과도한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블레어 아치를 지나갈 무렵 내 걸음은 빠르긴 해도 숙녀의 도를 넘지는 않았다.

    내가 뉴욕의 아파트를 떠나 이 나른한 뉴저지의 대학 도시로 온 지 5년이 되었는데도 고요함은 여전히 불편했다. 주말에는 활기 넘치는 뉴욕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열차표 60센트도 우리 가족의 생활비로는 부담이었다. 대신 나는 그 돈을 아껴 집에 보냈다.

    총안이 있는 탑 아래를 지나가면서 나는 (도착했을 때)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걸음을 늦췄다.

    ‘넌 지금 프린스턴 대학에 있어. 남자들밖에 없는 곳에서 일하려면 특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해. 조심하고, 절대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마라.’

    거의 1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는 마치 내 머릿속에 사는 것 같았다.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천천히 무거운 참나무 문을 밀고, 나는 송아지 가죽 부츠를 신은 발로 가능한 발소리를 줄이며 대리석 입구를 가로질러 두 명의 다른 사서들과 함께 쓰는 사무실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사무실이 비어 있는 걸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냥한 매케나 씨가 지각한 나를 보는 건 별문제 안 되겠지만, 게슴츠레한 눈에 참견쟁이인 애덤스 씨가 본다면 언젠가 상사에게 일러바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코트와 모자를 벗고, 반항적인 고수머리를 신중하게 쓸어 넘겼다. 그런 다음 짙은 남색 치마를 깔고 의자에 앉았다. 몇 분 후 사무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나무 패널을 댄 벽에 쾅 부딪치자 나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내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 사서이며 동거인인 거트루드 하이드였다. 도서관의 존경받는 구매부장 샬럿 마틴스의 조카로서 거트루드는 혼이 날 염려 없이 신성한 도서관 홀의 고요함을 깨뜨릴 수 있었다. 적갈색 머리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발랄한 스물세 살의 이 아가씨는 그 누구보다 나를 웃게 만들곤 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벨. 이제 너한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사과해야겠네. 첫 번째는 우리가 오늘 아침에 널 두고 우리만 온 것 때문이야. 아마 그래서 네가 늦었겠지.

    거트루드는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벽시계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방금 널 소스라치게 만든 것까지.

    무슨 소리야. 내가 잘못했지. 엄마한테 보낼 편지는 나중에 쓰고 너랑 샬럿 이모랑 함께 출발했어야 했어. 아니, 마틴스 씨 말이야.

    나는 말을 고쳤다.

    거의 항상 샬럿과 거트루드, 그리고 나는 대학로에 있는 그들의 큰 주택에서 함께 걸어왔다. 나는 그 집에 방을 얻어 살면서 샬럿과 거트루드,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식사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나를 자신들의 집과 사교 모임에 기꺼이, 관대하게 받아들였고 직장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들이 없었으면 프린스턴에서 내 생활이 과연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벨, 왜 샬럿 이모 호칭을 갖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너랑 나 말고 여기 아무도 없는데.

    거트루드가 장난스럽게 꾸짖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거트루드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 기준이라는 검열을 통과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하루 24시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것을. 거트루드는 자신이 쓰는 단어, 걸음걸이, 예의범절을 분석할 필요 없지만 나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거트루드와 함께 있을 때조차 나는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훨씬 진보적이어야 할 북부가 아니라 흑백분리 정책이 남아 있는 남부처럼 돌아가는 이 대학 도시의 예리한 감시의 눈길을 고려하면 더더욱 말이다.

    애덤스 씨의 독특한 구두창 소리가 사무실 바깥 복도에서 울렸고, 거트루드가 치마를 바스락거리며 나갔다. 거트루드는 나만큼이나 나의 사무실 동료에게 호감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나가려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완전히 나가기 전에 거트루드가 나를 돌아보고 속삭였다.

    오늘 밤 철학 수업에 갈 수 있어?

    3년 전에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 되어 온갖 종류의 학업 개편을 한 이래로 학교 직원들과 구성원들이 들을 수 있는 강좌가 더욱 늘어났다. 거트루드와 나는 대학의 강의를 듣는 이런 생활을 굉장히 즐겼다. 하지만 나는 윌슨의 몇 가지 다른 결정들, 예컨대 다른 모든 아이비리그 학교들이 유색인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프린스턴은 여전히 백인만 받고 있는 것 등은 굉장히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절대 입 밖에 내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질 수 없지.

    서가의 고요함이 부드러운 담요처럼 나를 감쌌다. 나는 방문객들이 책장을 넘기는 나직한 소리와 가죽 표지 냄새를 맡으며 긴장을 풀었다. 중세 필사본과 초기 인쇄본 책들과 함께하는 긴 하루 동안 나는 마음이 진정되고 즐거웠다. 최초의 인쇄기 사용자들이 글자 하나하나 조판하여 텅 빈 종이를 숭배자들과 독자들을 감화시키는 아름다운 원고로 바꾸는 꼼꼼한 작업을 통해 영어라는 언어를 기념하고 문학을 널리 전파한 그 노동을 상상하면, 나는 아빠가 항상 믿었던 것처럼 지금의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아빠에게 글은 자유로운 생각과 더 넓은 세계로 가는 초대장 같은 것이었고,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대중이 처음으로 이런 초대를 받은 인쇄물 시대의 여명기처럼 그 말이 어울리는 때도 없었다.

    그린 씨.

    서고 너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단순한 단어이지만 억양과 독특한 말씨에 방문객의 정체가 드러났다. 게다가 나는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모건 씨.

    나는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내가 부드럽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콧 씨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출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 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동료 사서인 나와 수집품 기부자의 친밀한 관계에 짜증 났을 것이다.

    주니어스 모건은 표면상으로는 은행가였지만, 대학에 수십 개의 고대 및 중세 필사본들을 관대하게 기부했다. 그래서 부관장이라는 명목상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직업상 친밀한 관계라 해도 우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기는 건 모건 씨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콧 씨는 생각했다.

    성긴 갈색 머리에 동그란 안경 아래로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덩치 작은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늘 일진은 좀 어떤가요, 그린 씨?

    좋답니다. 선생님께서는요?

    내 말투는 정중하고 차분했다. 우리가 약속했던 시간보다 20분 늦었기에 그가 우리 약속을 잊어버렸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각을 절대 언급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어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베르길리우스 원고를 보러 갈 예정이지요. 아직도 나랑 함께 갈 마음이 있나 해서요. 물론 그린 씨의 업무나 관심사와 맞다면 말이지요.

    내 머릿속으로는 주니어스라고 부르곤 하는 모건 씨는 도서관의 가장 귀중한 수집품에 관한 내 열의가 그 자신만큼이나 강하고, 다른 어떤 업무도 그가 약속했던 특별 관람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우리 둘 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도서관은 그의 시집을 52권 보유 중이었다. 《아이네이스》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암울한 여행기에 관해 주니어스와 이야기하는 게 내 일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였다. 주니어스는 오디세우스를 흠모하는 반면 나는 있을 곳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따라 처절하게 노력하는 트로이의 난민 아이네이아스가 늘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네이아스는 의무감에 따라 움직였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제 일정을 다 비워뒀답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됐군요. 그럼 따라오겠어요?

    주니어스를 따라 베르길리우스가 보관되어 있는 작고 우아한 방으로 가는 동안 내 치마가 참나무 바닥을 스쳤다. 그가 주머니에서 묵직한 열쇠고리를 찾는 동안 나는 숨을 들이쉬고 발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지 않도록 꾹 참았다.

    마침내 그가 문을 열자 귀중한 희귀서적들이 진열된 유리 장식장이 나타났다. 현재 남아 있는 베르길리우스의 시집 인쇄본은 겨우 150권뿐이었다. 이 책들은 전부 다 15세기에 인쇄된 것들이었고, 그 중 대부분이 주니어스가 기부한 거였다.

    나는 이 책들을 복원팀과 함께 있을 때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이건 신성한 순간이었다.

    모건 씨의 목소리가 나의 신성한 생각을 뚫고 들어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좀 들어줄래요?

    주니어스는 베르길리우스의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희귀한 슈바인하임과 판나르츠 인쇄본을 들고 있었다. 독일 수사였던 콘라트 슈바인하임과 아르놀트 판나르츠는 15세기에 처음으로 인쇄기를 사용했던 사람들이었고, 그가 내밀고 있는 책은 그들의 인쇄기로 찍은 초판본 중 하나였다.

    괜찮을까요?

    나는 이 기회를 믿을 수가 없어서 물었다.

    물론이죠.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똑같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순간이 그에게도 짜릿한 경험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가 내민 하얀 장갑을 손에 꼈다. 책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무거웠다. 나는 펼쳐진 책 앞에 앉았다. 아빠라면 이 순간을 얼마나 즐기셨을까.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나에게 이 고고한 예술과 필사본의 세계를 알려주신 아빠를 떠올렸다.

    네 정신의 아름다움과 이 예술의 아름다움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거다.

    아빠는 언젠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빠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나는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겼다. 나는 책장 첫머리를 표시하는, 손으로 직접 쓴 장식 글자 T를 관찰하며 금박의 광택에 감탄했다. 주니어스가 말하기 전까지 그가 옆으로 다가온 것조차 몰랐다.

    어제저녁에 삼촌과 만났어요.

    삼촌이 누군지 주니어스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악명 높은 자본가 J. P. 모건의 조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는 거였다. 내가 주니어스 본인의 박식함을 좋아하는 것임을 그가 알아주길 바랐다.

    아?

    나는 책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롤리에 클럽에서.

    그가 말하는 클럽을 안다. 아니, 최소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20년 전인 1884년에 설립된 이 회원제 클럽은 장학금과 책 수집을 장려하는 게 주된 목표인 돈 많은 애서가들로 이루어졌다. 이스트 32번가에 있는 로마네스크식 타운하우스의 닫힌 문 너머를 볼 기회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여자로서 나는 절대 그곳에 가입할 수 없고, 그 남자들에게 내가 가진 죄악은 성별만이 아닐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강의에 참석했나요?

    나는 잡담을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사실 말이죠, 그린 씨, 재미있었던 건 강의가 아니었어요.

    주니어스의 말투에는 거의 보기 힘든 장난스러운 감정 같은 게 담겨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나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눈을 뗐다. 주니어스의 차분한 얼굴, 언제나 온화하지만 늘 진지한 그 얼굴에 미소가 커다랗게 떠올랐다.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라서 몸을 약간 뒤로 젖히며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 걸까 생각했다.

    강의가 별로였나요?

    내가 물었다.

    강의는 괜찮았지만, 어제저녁에 가장 흥미진진했던 일은 삼촌이랑 삼촌의 예술품과 필사본 개인 소장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거였어요. 난 삼촌에게 가끔씩 수집품에 관한 조언을 하고, 뉴욕에 있는 삼촌 집 바로 옆에 삼촌의 소장품들을 위해 짓고 있는 새 도서관에 대해서도 조언하거든요.

    아, 맞아요. 혹시 그분이 흥미로운 새 물건을 수집할 생각이신가요?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니어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삼촌이 새로운 수집품을 찾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그는 다 안다는 투의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난 삼촌한테 새로 짓는 도서관의 개인 사서를 찾고 계시다면 그린 씨를 만나보라고 추천했어요.

    2장

    1905년 12월 7일

    뉴욕

    브로드웨이 선 트롤리가 업타운 방향으로 덜커덩거리면서 굴러가고 뉴욕의 밤이 서서히 펼쳐지자 나는 리처드슨 씨가 오후 늦게 사무실에 나타난 덕분에 7시 열차로 늦춘 것이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달이 없는 하늘은 짙은 남색이었으나 뉴욕은 밝고 생생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커플이 팔짱을 끼고 길을 따라 걸어가고, 그 옆으로 도서관에서 돌아오거나 술집으로 가는 중인 젊은 남학생들이 있었고, 신문판매원이 신문을 팔려고 애쓰며 머리기사를 외쳤다. 내가 나른한 프린스턴으로 서둘러 떠나기 전에 이 도시에서 10년 넘게 살았으니 한밤의 법석에 익숙할 법도 한데, 매번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 활기찬 모습에 놀라곤 했다.

    집. 그 단어에 내 모든 생각이 멈췄다. 뉴욕이 정말로 내 집인가?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여기 살았지만, 가장 따뜻한 추억이 샘솟는 곳은 뉴욕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이었다.

    트롤리가 브로드웨이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조그만 소녀에게 미소 지으며 과거 속으로 빠져들었다. 워싱턴 DC의 T 가(街) 노스웨스트에 있던 우리 가족의 2층짜리 연립주택 앞마당에 있는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 양옆에는 엄마의 가족들이 살았다. 오른쪽에는 플리트 할머니가 제임스 외삼촌과 벨리니 외삼촌과 함께 사셨고, 왼쪽에는 모차르트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아들이 살았다. 거기는 늘 안전하고, 기분 좋고, 심지어 나 자신이 온전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느릅나무 아래 내가 좋아하던 자리에 딱 알맞은 그늘을 발견했던 더운 여름날도 기억난다. 오래전 나는 느릅나무를 내 것이라고 선언했고, 아무도 집안의 최고봉인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던 손녀에게 안 된다고 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나무 몸통에 기대서 스케치북을 펼치고 복잡하게 얽힌 이파리들을 그리려던 중이었다. 나무의 뿌리는 할머니의 앞마당에 있었지만 가지는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와서 모차르트 외삼촌의 집으로 향할 만큼 길게 뻗어 있었다. 하지만 선을 몇 개 그리기도 전에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번 부를 때까지 무시하다가 결국 스케치북과 연필을 잔디밭에 내려놓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시 대여섯 살 정도였지만, 그 나이에도 나는 엄마가 세 번째로 부른다는 건 플리트 집안의 행동 규칙 중 하나를 깨는 것임을 잘 알았다. 그것은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절대 어른들이 우리에게 목소리를 높일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야 하는 수많은 원칙 중 하나일 뿐이었다. 플리트 가 사람이라는 건 고등교육을 받고(이모들과 외삼촌들 모두 대학을 다녔다) 열심히 일한다는(여자들은 전부 교사이고 남자들은 전부 기술 연구원이었다) 뜻이었다. 플리트 가 사람들은 절제된 옷차림과 태도를 갖추었고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우리만의 작은 세계 밖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다 해도 항상 예의 바르고 품위 있게 행동했다.

    우리 아가 왔구나.

    할머니는 항상 나를 보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팔을 벌려 나를 꼭 껴안으셨다. 나는 할머니의 앞치마에 코를 박고 천에 항상 남아 있는 이스트 롤의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할머니의 품에 영원히 머무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가서 네 자리에 앉으렴.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며 식탁을 가리켰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이 특별한 시간을 즐겼다. 특히 아빠가 집에 계셔서 더 즐거웠다. 아빠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늘 바쁘셨기 때문이다. 어른들을 위한 10인용 식탁과 언니 루이즈와 에델, 오빠 러셀, 그리고 모차르트 외삼촌의 아들이자 우리 사촌인 클래프튼과 함께 앉는 좀 더 작은 식탁, 이렇게 두 개의 식탁에 모두 앉으면 아빠가 기도를 한 다음 잔을 들고 일어섰다.

    플리트 가를 위하여. 여러분이 항상 우리의 작은 에덴동산에서 번창하고 평화를 누리기를. 그리고 나의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자 세상을 구하려는 내 열의를 용서해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쥬네비브, 언제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기를. 자기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내 귀여운 아이들아, 너희들 하나하나가 저 위에 계신 훌륭한 분의 자비로움과 가끔씩 부리는 변덕에 감사하게 되기를.

    모두가 웃었고 나도 뭐가 그렇게 웃긴지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그때 아빠가 몸을 구부려 엄마한테 키스했다. 아빠는 기회만 있으면 항상 그랬다. 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눈을 가렸다. 엄마 아빠가 손을 잡고 키스하는 걸 보면 온몸이 따뜻해지곤 했지만 말이다.

    트롤리의 요란한 소리에 나는 회상에서 깨어나 한숨을 쉬었다. 그 시절로부터 거의 20년이 흘렀고, 처음에는 명절에 종종 가곤 했지만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제 워싱턴 DC와 나의 유일한 연결 고리는 우리 모두가 플리트 할머니한테 받는 생일 축하 카드와 모차르트 외삼촌이 정기적으로 보내는 편지뿐이었다. 외삼촌은 우리가 처음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는 우리 집을 종종 방문하곤 했다. 모차르트 외삼촌과 아빠는 좋은 친구였고, 처음에 우리 부모님을 서로 소개해준 것도 외삼촌이었다. 하지만 외삼촌도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고,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추억뿐이었다. 이 기억들은 오래되고 약간 흐릿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하루하루를 소중히 아꼈고, 워싱턴 DC는 언제나 내 고향이다.

    트롤리가 덜커덕 멈추자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기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었다. 트롤리에서 내린 다음에도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까지는 네 블록이나 더 걸어가야 했다. 겨울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휘감았다. 기온이 영하권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마차를 타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일정에 없던 이동인지라 가족의 경제 여건상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발걸음 속도를 높이려고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회색 사무용 드레스와 굽이 높은 새 레이스업 부츠를 넣은 짐가방이 무거웠다. 브로드웨이에서 웨스트 113번가로 접어든 다음 얼어붙은 손끝으로 나는 507이라는 숫자가 붙은 맨션의 앞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자물쇠에서 달칵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자물쇠가 또 망가져서 열쇠가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게 제대로 작동되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으로 들어가서 장갑 낀 손을 서로 비비고는 1층 계단참까지 올라갔다. 머리 위로 동그란 모양의 조명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최소한 망가진 등은 교체된 상태였다. 다행히 열쇠는 문손잡이에 쉽게 들어갔고, 나는 우리 가족의 아파트에 들어섰다.

    여기가 2년 전 러셀 오빠가 컬럼비아 대학교 공과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엄마와 형제들이 이사한 집이다. 그 전에 우리 가족은 훨씬 더 다운타운에 가까운 웨스트 90번가에 살았다. 대부분 독일,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계 후손들로 남자들은 목수와 경찰관, 회계원, 가게 주인, 여자들은 재봉사, 점원, 교사들로 가득한 살기 좋은 중산층 동네였다. 이 새로운 동네는 학생과 교수, 대학에 종사하는 온갖 배경의 노동자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컬럼비아에서 겨우 세 블록 떨어진 제일 값싼 아파트를 찾았다. 오빠는 우리 가족 전체의 경제적 기반을 높이기 위해 광업, 전기공학, 증기공학에서 다중 학위를 따려고 했다. 우리는 오빠가 대단히 자랑스러웠다.

    밤이라 침실 문 두 개는 닫혀 있고 러셀 오빠는 소파에서 자고 있을 테니 아파트가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즈 언니와 에델은 교사였고, 러셀 오빠는 일찍 수업이 있고, 막내 여동생 테오도라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응접실의 작은 탁자 램프 옆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발목을 꼬고 양손은 포개서 무릎 위에 올린 모습이 온실화로 만든 꽃다발을 완벽하게 꽂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이목구비는 꽃처럼 섬세하고 사랑스러웠다. 높은 광대뼈, 내가 항상 질투한 곧고 좁은 코, 장미 꽃잎 같은 입술. 짙은 갈색 머리의 회색 줄만이 쉰 살이라는 나이를 암시했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선물로 준 자수 장식 실크 로브를 입고 있었다.

    저 왔어요, 엄마.

    내가 속삭였다. 러셀 오빠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헤이즐색 눈이 파르르 뜨이고 잠시 후 나를 알아보았다.

    아, 벨 마리온. 드디어 집에 왔구나.

    엄마가 졸린 어조로 말했지만 나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내 첫 번째 이름과 어린 시절에 종종 썼던 중간 이름으로 부르는 걸 보니 엄마가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가 프린스턴으로 옮겨 간 이래로 가족들 모두에게 마리온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종종 나한테 강조하듯 나는 벨 다 코스타 그린이어야만 했다.

    나는 엄마 뺨에 살짝 키스했다.

    저 때문에 안 자고 기다리신 거예요, 엄마? 늦었는데.

    오빠 쪽을 힐끗 보았으나 오빠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내 딸을 맞이하지 못할 정도로 늦지는 않았어.

    엄마는 주머니 시계를 꺼내고서 말을 이었다.

    이런 세상에, 11시가 넘었구나. 네가 이 시간에 도시 길거리를 혼자 지나왔다니.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5시 열차로요. 하지만 나오기 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난 그냥 지금이라도 네 아름다운 얼굴을 봐서 기쁘단다, 벨. 내일 큰일을 앞두고 있잖니.

    어둑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엄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우리 중 한 명에게 이득이 되는 건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니까.

    엄마가 일어났고 나는 엄마를 따라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최대한 조용히 식탁 의자를 당겼고, 나도 엄마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 둘뿐인데도 부엌은 비좁았다. 6인용 식탁은 냉장고와 스토브 사이에 빠듯하게 들어간 찬장 앞쪽 공간을 꽉 채웠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가 비좁게 느껴졌다. 다섯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작았지만 이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형제들의 월급과 엄마가 학생들에게 바이올린 강습을 해서 벌어오는 약간의 돈은 공과금 고지서들과 러셀 오빠의 교육비만 겨우 충당할 정도였다. 나도 할 수 있는 한 돈을 보태고 있지만, 프린스턴에서 방세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자, 면접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좀 말해보렴.

    엄마가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엄마를 봐서 굉장히 기쁘지만, 이젠 짜증이 났다. 엄마의 질문과 말투는 내가 혼자서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은근히 내비쳤다. 대외적으로는 본래 나이에서 몇 살을 빼고 말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스물여섯 살에 직업상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사서가 교사만큼 많이 벌지는 못한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여전히 내가 열아홉 살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그래서 짜증을 드러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주니어스-

    나는 말을 고쳤다. 엄마는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모건 씨 말이에요. 젊은 모건 씨가 도움을 줬어요. 저한테 모건 씨의 수집품 목록을 줬고, 저는 그분의 미술품, 책, 공예품을 적절하게 분류할 방법뿐만 아니라 통일성 있게 추가할 만한 물품까지 조사했어요. 그리고 수집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보관할지 제안하기 위해서 새 도서관의 건축 도면까지 연구했어요.

    그래, 잘했구나. 네가 그 사람의 새 건물과 소유물들에 관해 의논할 준비가 되었다니 기쁘다. 물론 그 사람이 주제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 사람이 아직 널 고용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너한테 그것만 물어볼 건 아니잖니. 너도 알지, 벨?

    엄마가 말했다. 평소에 살짝 드러나는 엄마의 남부 억양이 강해졌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들어간다는 신호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J. P. 모건 씨가 네 교육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말할 거니? 그 사람에게는 대단히 인상적인 학위를 가진 사서들이 줄 서 있을 거야. 네 능력을 입증해야 할 거란다.

    엄마는 초조하거나 회의적일 때면 항상 그러듯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간과한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공식적인 자기소개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서가 되는 데 특정한 교육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프린스턴에서 일한 5년 동안 아무도 나한테 학력에 관해 물어본 적이 없다.

    난 교육대학을 나왔어요.

    네가 지금 교사 자리에 지원하는 거니?

    엄마가 마치 면접관처럼 팔짱을 꼈다.

    아뇨, 물론 아니죠.

    엄마가 모든 상황에 대비하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짜증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래도 엄마의 말투에 우리가 6년 전에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얌전한 루이즈 언니나 에델과 똑같이 안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시련을 겪게 되든 간에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는 교사 같은 직업을 가져야 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동기생이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에 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누가 뭐라든 그 자리에 지원해야만 했다. 내가 그 일을 얻고 나자 엄마는 훨씬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교사 자리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뭐라고 말할 거니?

    머릿속이 텅 비었으나 곧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겠어요. 프린스턴에서 보낸 시간이 세계 최고의 교육이 되었죠.

    엄마가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다가 러셀 오빠가 소파에서 몸을 뒤척이자 손가락으로 입술을 눌렀다.

    그래, 그게 정답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정답이겠니.

    엄마가 속삭이는 투로 말을 이었다.

    정말 완벽하구나. 그리고 젊은 모건 씨가 거기 있을 테니 자기 모교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며 삼촌에게 네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을 거야.

    우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 엄마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람이 프린스턴에서 네 선생들과 네가 받은 훈련에 대해 물어보면 어쩔 거니? 네가 말했듯이 네 ‘교육’에 대해 물어보면? 어쨌든 거긴 남자들이 다니는 대학이잖니.

    다시 안전한 주제로 돌아왔다.

    사서장인 리처드슨 씨에게 받은 광범위한 교육에 대해 설명할 거예요. 그리고 구매부의 총책임을 맡은 사서 샬럿 마틴스 씨에게 받은 훈련도요. 그리고 물론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했던 수습 과정이랑, 그 사람이 정말 몰아붙이면 애머스트 대학의 플레처 여름 사서 학교에서 받은 서지학 교육을 얘기하겠어요.

    훌륭하구나, 얘야.

    엄마가 낮은 휘파람 소리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상해보렴. J. P. 모건 씨 직속으로 일할 기회라니. 그 사람은 뉴욕에서, 어쩌면 이 나라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야.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고, 나는 엄마의 취조를 거쳤으니 모건 씨와의 면접은 쉽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시 입을 열기 전에 나는 이미 엄마가 뭐라고 말할지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런 길을 선택한 이유란다.

    엄마는 다시금 그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려는 것처럼 말문을 열었다.

    벨 마리온 그리너라는 유색인 여성은 J. P. 모건 씨가 모집하는 자리에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을 거야. 벨 다 코스타 그린이라는 백인 여성만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엄마의 말에 과거가 밀려들었고, 나는 더 이상 성인이 아니라 열일곱 살 소녀가 되었다. 이른 저녁 시간, 따뜻한 빵과 치킨 스튜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10년 전 아빠가 그랜트 기념물 협회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되자 워싱턴 DC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고 나는 도시를 즐기기 시작했다. 특히 센트럴파크에서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웨스트 99번가의 우리 아파트를 말이다. 오빠와 언니들, 동생과 나는 넓은 집으로 옮겼을 때 굉장히 흥분했다. 긴 복도를 따라 네 개의 침실이 있고 그 끝에서 한쪽은 거실, 반대편은 부엌과 식당이 있는 집은 공원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부엌에 앉아서 테디가 숙제하는 것을 도와주다가 고함 소리를 들었다. 나는 옆집에 사는 시끄러운 영업사원과 그 아내, 종종 요란하기 짝이 없는 담황색 머리의 어린 남자아이 다섯 명이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이게 당신 목표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 처음부터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였다는 걸 알았어야 했어. 이 동네를 고르고 이 아파트를 얻을 때 집주인이 착각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부터 알았어야 했다고.

    아빠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우리 아이들과 당신, 그리고 날 위한 거였어요.

    평소에는 속삭임보다 살짝 높은 정도로 교양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만큼이나 컸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충격적이었다. 물론 한해 한해 흐르면서 애정 어린 눈길도 줄어들고, 손을 잡는 일도 적어지고, 몰래 하는 키스도 사라져가는 걸 알아채긴 했다. 부모님 사이에 긴장감이 쌓였지만, 그건 아빠가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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