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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괴담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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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78 pages41 minutes

환상괴담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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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들에게 납치되어 고초를 겪는 남자 이야기부터 아이의 모습으로 씨름을 거는 시바텐과 사람을 홀리는 너구리 등의 요괴 이야기는 물론 한국의 구미호 전설처럼 비밀을 간직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버린 난봉꾼 남편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조강지처의 한 맺힌 이야기까지, 일본 괴담의 대가 다나카 고타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6편을 엄선하여 수록했다.

-책 속으로

그녀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분명 우는 것처럼 보였다. 미시마는 어느덧 저녁 식사 따위는 잊은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시마는 문득 길모퉁이에 이르러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왼편으로 걸음을 옮기던 차에 어느 문간이 눈에 들어왔다. 문간의 느티나무 뒤에는 철망에 싸여 둥그런 등갓을 쓴 전등이 기둥에 매달려 빛나고 있었고, 그 주변을 널빤지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다. 해장죽 두세 그루가 그 기둥을 따라 작은 잎을 틔우고 서 있었다. 문득 전등갓 안쪽의 검은 반점이 슬쩍 보였다. 도마뱀붙이였다. 도마뱀붙이는 먹이를 찾은 듯 목을 다섯마디나 주욱 빼고 있었다. 미시마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전등갓이 지구본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불길한 것을 봤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난 울퉁불퉁한 길을 잰걸음으로 꺾어 들어갔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책보요여
Release dateJun 30, 2022
ISBN979119005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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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괴담 모음집 - 다나카 고타로

    img_top

    두꺼비의 피

    1

    미시마 죠는 선배의 집을 나섰다.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이 금방이라도 다시 비를 뿌릴 것만 같은 밤이었다. 어두운데다 땅이 질척거리는 탓에 흙탕물이 튈까 봐 서둘러 걸을 수 없었다. 거기다 고지대의 변두리 마을이라 그런지 열 시를 조금 넘자 잠자리에 든 불 꺼진 인가들 때문에 길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차가 있다면 역까지 얻어 타고 싶었지만, 지금 시간에 그럴 만한 곳도 없었다. 그러다 미시마는 문득 선배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좀 더 그 여자의 신원이나 집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법학과 출신 선배인 후지와라가 보기에 집안은 물론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여자와의 동거는 너무 충동적으로 보였다.

    ‘아무리 과거는 상관없다지만 말이야⋯.’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재혼 상대인 어업회사 사장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 삼 년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냉랭해진 집안 분위기를 참다 못해 집을 뛰쳐나왔다는 말이 사실일까?’

    ‘집안 내력이야 모르겠지만 그리 대단한 집안도 아니겠지….’

    ‘여자가 그리 쉽게 생긴다는 게 말이 되냐?’

    그리 말하며 웃던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 생각해보니 그 여자와 만남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우연히 찾아왔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미시마는 원래 이번 고등문관시험¹을 준비하기 전에 오륙일 정도 바닷바람이나 쐬려고 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그날 밤 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마이니치(毎日) 신문의 사회면 기사만 보더라도 있을 법한 일이다.

    1 일본에서 시행된 고급관료 채용시험으로 1894년부터 1947년까지 시행되었다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 날의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노란 석양빛이 소나무숲 너머에서 하늘을 물들였고, 봄날처럼 습한 공기 때문에 얼굴과 손끝이 끈적거리던 나른한 날이었다. 그는 소나무숲을 따라 늘어선 상수리나무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빠져 나갔다. 이곳에 온 이후로 아침저녁으로 거닐던 길이었다. 상수리 나뭇잎은 이미 색을 잃은 채 바람 부는 날에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 상수리나무숲 앞 조금 넓은 경작지에는 노란 빛깔로 물든 벼와 푸른 빛의 무, 그리고 파밭이 있었다. 상수리나무숲과 나란히 사토가와강(里川)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띄엄띄엄 자라난 강둑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낚시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을 때도, 적을 때도 있었지만 매일 보이던 풍경이었다. 낚시꾼들 사이에는 바다에 놀러 온 사람 한둘이 꼭 끼어 있었다. 사람들은 숙소의 큰 대야를 물고기 바구니 대신 가져와서는 작은 붕어 한 두 마리를 낚거나 세네 마디쯤 되는 망둥어를 잡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사토가와강을 가로질러 놓은, 흙이 깔린 가교에 이르렀다. 다리 오른쪽 곁에도 낚싯대를 쥔 남자가 서 있었다. 튀어나온 광대뼈에 코 밑에는 구둣솔 같은 수염이 난 남자는 검은 천으로 된 허리띠를 엉덩이에 묶고 있었다. 소학교 교사나 순경처럼 보였다. 남자 발 근처에 망둥어 대여섯 마리가 들어있는 물고기 바구니에 힐끔 눈이 갔다.

    망둥어를 잡으셨군요.

    미시마는 인사 대신 말을 걸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더 잡힐 것도 같은데 안 잡히네요.

    날씨에 따라 다른 가봐요?

    너무 맑아서 바닥까지 보이는 날은 안 잡혀요. 오늘처럼 조금 구름이 끼면 더 좋지요.

    그렇군요

    슬쩍 하늘을 올려봤다. 흘러가는 옅은 구름이 그물처럼 보였다. 그러다 강둑으로 가려는 참에 가교로 고개를 돌리다가, 다리 건너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띄는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거친 보랏빛 비단 같은 기모노가 그녀의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녀 같기도 하고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얗고 긴 얼굴에 까만 눈동자. 근처 별장에 놀러 온 사람이겠거니 싶어, 더는 신경쓰지 않고 강둑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걸었다. 이정(二丁)² 정도 걷자 왼쪽의 경작지가 사라지고 소나무숲이 있는 붉은 대지가 펼쳐졌다. 이 곳에도 통나무 두 개를 놓아 만든 다리가 있었지만, 미시마는 건너지 않고 대지를 따라 붉은 흙을 밟으며 완만한 길을 걸었다.

    2 정(丁): 과거 일본에서 거리 또는 길이를 잴 때 사용하던 단위로 일정은 약 109.09미터에 해당한다.

    그곳에는 크고 오래된 큰 흑송(黒松)의 뿌리가 땅거미처럼 여기저기 뻗어 있었다. 어제도 엊그제도 그 중 하나에 기대어 잡지를 읽었기에, 이 날도 익숙한 뿌리에 기대앉아 하류 쪽을 바라보았다. 옅은 햇살 아래 서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보였다. 미시마는 좀 전의 여자를 떠올리고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녀인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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