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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과 한국문화: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
인류문명과 한국문화: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
인류문명과 한국문화: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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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과 한국문화: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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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인류문명과 한국민족」을 제명으로 하고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을 부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우주적 시각을 취해, 인류문명의 형성과 전개과정에서 한국민족이 행했던 구체적 관여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또 금후 그것이 전개되어 나가게 될 과정상에서의 그 주도적 역할을 고찰해낸 인류문명사적 접근의 형태를 취한 한 한국문명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기존의 글로벌적 시각을 넘어 시간과 공간이 일원화된 우주적 시각을 취해 한국민족을 주축으로 해서 복합융합학적 접근을 통해 구체적인 고고인류학적·역사적 사례들을 근거로 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입증해 낸 인류문명사적 차원의 한국문화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은 석기, 옥기, 청동기, 철기 문명의 형태로 전개해 나와, 이제는 철기문명의 한 구체화된 형태인 전기전자산업이나 반도체산업 등과는 괘를 달리하는 광기(光器)문명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차후 그것은 분명 이 광기문명과도 괘를 달리하는 진공기(眞空器)문명, 예컨대 초극저온의 우주적 환경에서 행해지는 초전도체산업의 경우처럼 분명 한 단계 더 전진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민족은 인류문명의 이상과 같은 전개과정상에서 다음과 같이 깊이 관여해 왔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민족은 신석기문명이 청동기문명으로 전환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지역의 북방에 위치한 요하유역의 서편 요서지역에서 기원전 24세기 후반기에 출현했다. 그런데 석기시대에는 그 지역이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스텝루트(초원로)의 동단에 해당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유라시아대륙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대서양·인도양·태평양과의 연접지대들로 이루어진 해로(海路)의 동단과도 연접된 지역(발해연안)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그 지역은 유목과 농경지대의 경계지역이었는데 다가, 이 지구상에서의 최다의 옥석매장지이자 신석기시대후반이래의 최대의 옥기생산지였던 지역으로서, 그 후반기 이후에 와서 석기문명으로부터 옥기문명을 출현시켜냈던 지역이었던 것이다.
유라시아대륙의 구석기인들은 그들의 원향인 아프리카대륙으로부터 유라시아대륙으로의 다음과 같은 세 갈래의 루트들, 즉 북대서양, 지중해, 그리고 아라비아해의 각각의 동 연안들을 통해 유라시아대륙의 내부에 도착하여, 해 뜨는 동쪽을 향해 끊임없이 이동해 나갔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신석기문명을 출현시켰다. 또 그들은 그 이동과정에서 지상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 하루에도 수차례 변화해 가는 그 무상한 변모양상들을 체험해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결국 그들의 이동생활을 지배해가는 존재, 구체적으로 말해 연옥·청옥·홍옥 빛 등을 띄는 하늘(天)을 그들의 신앙적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석기문명에 후속되는 옥기문명이란 유라시아의 동단에 도착해 그 지역에서 정착해 거주하게 된 인류가 그러한 빛깔들로 인간과 하늘을 심적 내지 정신적 차원에서 연결시켜주는 옥기들을 가지고 일으킨 문명을 가리킨다. 그 문명을 일으킨 인류는 그것을 통해 물질문명의 기초가 된 신석기문명에 대응해, 또 다른 차원의 문명을 창출해냈었는데, 그것이 차후 물질문명과 대응관계를 취해 갔었던 정신문명의 기초가 됐었던, 다름 아닌 바로 옥기문명이었던 것이다.
현재 인류는 철기문명의 구체화된 최첨단 형태인 전자기(電子器)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등과 같은 것들과는 괘를 달리하는 광기(光器)문명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처해 있다. 차후 인류는 오래잖아 그것에 후속되어, 진공기(眞空器)문명의 시대라고 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진공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를 주축으로 해서 형성된 우주중심적 사고에 의해 창출될 시대이다. 2050년대쯤에 가서는 그 시대가 일반화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 진공기시대는 단군연방조선제국(2333~
238,BC)시대에 하늘(우주)과 인간을 하나로 연결시켜내는 것을 목적으로 옥기문명을 일으켰었던, 단군민족의 후예인 우리 한국민족에 의해 단연코 주도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인류가 처해 있는 시대는 광기(光器)문명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기존의 철기문명이 확립시켜낸 자본주의적 가치체계로부터 벗어나 광기문명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정립시켜나가고 있는 시대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취해야 할 시대적 정신은 우리민족이 추구해 나온 고대의 초기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자 근대의 초기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이다. 그것의 실천 강령은 단연코 홍익인간과 백의종군(白衣從軍)이 결합된 홍익종군(弘益從軍)이다. 이 정신이 구현될 때에, 우리 한국은 세계를 주도해온 인접의 강대국들에 대한 사대주의적 근성으로부터 벗어나, 차후의 진공기문명의 시대를 주도해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대주의적 근성으로부터 벗어만 난다면, 우리의 현안들인 지역감정의 문제도, 좌우라고 하는 이념적 대립의 문제도, 그리고 분단의 문제도 자연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Apr 15, 2023
ISBN9788990213037
인류문명과 한국문화: 광기(光器)시대 홍익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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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문명과 한국문화 - 김 채수

    서장 금후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가야 할 것인가

    제1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사회적·시대적 현실

    1. 사회적 현실의 문제들

    이제 우리는 질량이 없는 빛의 특성을 활용해 가게 된 그러한 ‘광기문명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당면된 문제들, 즉 이전의 철기문명시대에 일어났던 제 문제들을 우선 일차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고 하는 그러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가 이 글로벌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러한 문제들을 일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해결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홍익종군한다’고 하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취해, 우리자신들의 삶을 실현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우리 한국사회가 우선 일차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철기문명이 확립시켜낸 인간중심의 자본주의체제가 우리 한국사회에 몰고 온 퇴폐적 산물들, 예컨대 분단의 문제, 지연(地緣)·학연(學緣)의 문제, ‘좌우’라고 하는 이념적 대립의 문제,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 그리고 빈부의 격차 등과 같은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국민들의 삶의 도덕적 기반 그 자체를 붕괴 시켜가는 청년들의 자살이라든가 저 출산, 그리고 세대 간, 부모·자식 간 등의 심각한 갈등 등과 같은 문제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어느 정도는 다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은 바로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을 가까스로 실현시켜나가기에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그러한 문제들이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도 우리들에게 시급히 처리해 되어져야할 긴박한 현실적 문제들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사실상 위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사회의 그러한 퇴폐적 산물들이 어느 정도 해결만 된다면, 특히 유교적 도덕을 기반을 해서 확립 한국사회의 경우에서의 그러한 문제들이란 상당부분 자연 해소될 수 있는 부수적 문제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그러한 문제들을 우선 일차적으로 해결해 가고, 그 다음 단계에 가서 다양한 산업재해의 문제들, 기후변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중차대한 문제들 등의 해결에 대해 국제사회와 연계해 전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켜 가야할 것이라는 입장이 취해지는 것이다.

    2. 시대적 현실의 문제들과 문명사적 전환기

    그런데 현재 우리는 2년 이상에 걸쳐, 전혀 예기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라는 것을 겪어가고 있다. 그 동안 게다가 대외적으로 이미 미국대선에서의 트럼프대통령의 비상식적 파격적 행보를 목격했었고, 또 대내적으로는 한국대선에서의 집권여당과 그 당 후보의 트럼프 못지않은 그러한 기상천외한 파행적 행태들을 목격해 왔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래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겪어온 그러한 사태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의 문제해결의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 여겨왔던 합리적 사고의 접근만으로는 그야말로 가늠하기 힘든 것들이라는 생각들이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예기치 못한 파행적 행태들이란 과연 무엇인가? 아닌 게 아니라, 사실상 현재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문명사적 대전환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철기(鐵器)시대에서의 ‘광자기(光子)시대’혹은 ‘광기(光器)시대’ 내지 ‘광기문명시대’라 명명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의 대전환기에 들어서 있다고 말해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자신들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그러한 문명의 대전환 과정에서 야기된 것들이라 한다면, 금후 우리들에게 여기저기로부터 새롭게 돌출될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대처되어져야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금후 우리에게 돌출되는 문제들이 이 대전환기에 야기되는 것들이라면,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들의 뿌리들이 다양하고 또 깊은 것들일 것들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것은 전 우주적 차원의 것일 수 있는가하면, 또 어떤 것은 전 지구적 규모의 것일 수 있고, 또 동아시아나 혹은 한국적 규모의 것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야기되는 문제들의 대처방법: 전 지구 사적 차원의 대처

    이렇듯 이 대전환기에 우리가 직면해 가야할 문제들의 특성은 그 다양성과 역사성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후 우리가 직면해갈 문제들에 대한 그 일차적 대처방법은 전 우주적 차원의 것들이 차치될 경우 그것은 전 지구적(글로벌적) 차원임과 동시에 또 전 인류사적 차원의 접근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 취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분단문제나 혹은 그것의 통일문제가 설혹 그것들이 한반도 내의 한국민족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분단 원인이나 그것의 통일에 대한 당위성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로벌 시대에는 그것의 대처와 해결방안이 단순히 한국 차원에서만 강구될 것이 아니라 전 지구사적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러한 차원에서 접근될 때만이 그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에, 금후 우리가 직면해갈 문제들은 결단코 전 지구사적 측면에서 접근될 때만이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 제시가 본서의 제일차적 저술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은 고질적 문제들, 예컨대 ‘분단’의 문제, ‘지역차별’의 문제, ‘출신대학’의 문제, 그리고 흙·금수저의 문제 등은 그야말로 그 뿌리가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의 영국의 인도·스코틀랜드 식민지통치방법으로부터 취해진 ‘분할 통치’, 그리고 일본사회가 만들어낸, ‘번벌’(藩閥)·‘학벌’(學閥)·‘재벌’(財閥) 문제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것들이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한국사회에 이식되었고, 또 그 식민지 시대에 한국민족을 대표했던 친일파세력들이 전후에 와서 한국사회를 주도해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박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은 한반도 차원의 접근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그야말로 전 지구사(글로벌사)적 차원에서 그것들이 접근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거듭 강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우리가 전 지구사적 시각, 근대동아시아사적 시각, 근·현대한국사적 시각 등과 같은 다각적 시각들을 통해 상기와 같은 문제들의 해법을 강구해 가자는데, 본서의 저술목적이 두어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제2절 한국이 금후 미·중에 대해 취해야할 태도

    사실상 이 문제는 우리가 이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 삶속의 어떤 것들을 어떤 식으로 실현시켜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 일까,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 글로벌자본주의사회는 1세기 이상 미국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금후 얼마간도, 적어도 10여 년 이상은 미국에 의해 이 글로벌 자본주의세계체제가 분명 더 주도 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30년대 이후 경에 가서는 분명 상황이 좀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글로벌자본주의세계의 주도권은 분명 유라시아대륙 동단의 동아시아에 위치한 중국 쪽으로 태반 넘겨질 것이다. 그러한 징후는 현재 여기저기의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미국인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의 기초를 구축해냈고, 또 과학에 대한 지식을 통해 그것을 확립시켜서, 1세기이상 자본주의세계를 선도해왔다. 그런데 관련통계자료에 의하면, 2019년도부터 미국과학자들의 과학논문수와 그것들의 피인용지수가 중국학자들의 그것에 추월당해 왔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안보·사회 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금후에도 그러한 영향을 끼쳐갈 입장에 처해 있는 이들 중국과 미국에 대해 우리 한국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현재 우리가 풀어가야 할 최대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중국은 특히 단군조선이 소멸된 기원전 3세기이후부터 근대초의 19세기말까지 2000여년이상 한국민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20세기 초 일제에 패망하기 직전까지도 사실상 한국은 청의 속국상태에 처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해, 한국이 승전국 미소의 도움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사실은 군사적 측면에서는 특히 남한의 경우 현재까지도 미국의 관리 하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우리와 이들 두 나라들과의 관계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해 보겠다. 미국이 남북전쟁(1861·4~1865·4)을 끝낸 그 이듬해,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통해 평양에 도착해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행패를 부리다가, 결국에 가서 그 상선이 소각되고 선원들이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1866년 8월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로부터 5년 후인 1871년 6월에 강화해협에서 조선과 미국과의 사이에서 신미양요라 불리는 전투가 벌어졌다. 미국 측에서는 「한미전쟁」(United States-Korea War of 1871)이라 불리는 이 전투는 미국이 평양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겪은 후에, 일본의 규슈지역으로 후퇴해, 그곳에서 일본으로부터 자신들의 군함을 정박시킬 수 있는 나가사키 항의 사용권을 부여받은 다음에, 그곳에서 재차 조선을 침략할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전투를 통해 자신들의 의지, 즉 조선의 개항을 관철시키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미국은 그간 무기가 부족해 조선과의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던 일본에 무기를 대주었고, 또 일본 측에 조선의 문호개방의 전략 술까지를 가르쳐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의 문호를 개방케 했다.³) 조선이 1876년 일본과 맺은 그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은 당시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행했던 일본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행해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해서 한국은 결국 미일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손아귀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이래 한국에 대한 미일의 공모(共謀)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러일전쟁(1904.2.8.~1905.9.5.)의 과정에서 가쓰라(桂)·테프트밀약(1905.7.29.)을 통해 일제로부터의 자신들의 필리핀 강점을 인정받는 대가로 일본에 한국의 단독지배를 인정해주었다. 당시 러일전쟁 중이었던 일제는 그 밀약을 발판으로 해서, 러시아와의 강화조약의 중재를 미국에 요청했다. 그 결과 그 해 8월 10일부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그 강화조약회의가 시작되어, 결국 9월 5일 그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강화조약에 의거해 러시아제국은 만주와 조선에서 철수하고, 일제는 남만주철도 및 영지의 조차권과 조선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획득했다. 그 결과 조선은 통째로 일제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되었고, 조선은 외교권과 군사권이 박탈된 상태에 처해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됐었다.

    또 그로부터 5년 후에는 결국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신세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연합군의 승리로,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주권국가로 전환되어 나올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당시 사실상 한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강대국 미소가 패전국 일제로부터 넘겨진 ‘전리품’의 신세 격이었다. 그래서 남·북한은 3년간 미소군정에 의해 통치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을 통치해갔던 미군정의 경우는 소군정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로 6.25직전까지 500여명의 군사고문단들이 남한에 남아 있었다. 6.25를 치르고 7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군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국가적 명운을 좌우하는 전쟁의 작전권을 한국군에게 넘기지도 않고 있는 실정에 있다.

    사실상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일본이 패망할 경우 미국이 한국을 신탁해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카이로회담(1943.11.27.)이후 지금까지 일관되어 있다. 당시의 회담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수상,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 등이었는데, 미국의 그러한 입장에 대해 영국은 반대 입장을 취했고, 중국의 경우는 즉각 독립을 제시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입장을 줄곧 견지해온 미국은 일본패망 후 전후처리가 다루어졌던 모스크바 삼상회의(1945.12.27.)때에도 4개국에 의한 5년간 한국의 신탁통치를 강력 주장했다. 그 결의가 한국인들의 거국적 반탁운동에 부딪히자, 결국에 가서는 그것이 소련의 제안으로5년 이내로 수정되었는데, 그래도 한국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국의 입장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한국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으로 변경되었다. 그 결과 제1,2차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1년 만에 결렬되고, 미국에 의해 한국의 독립문제가 미국에 주도되는 유엔에 제출되어, 결국 유엔에 한국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래서 한국문제가 그것을 통해 다루어지게 되어, 결국에 가서 ‘남북분단’이라고 하는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주시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1867.8)이래 미국이 한국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는 그 집요한 관심의 핵심이란 과연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단순히 통상(자본주의)이나 자유민주주의(미국문화)의 전지구화만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국민의 대다수는 그러한 미국이 한국을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구해주었고, 또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구해주었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친일세력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맞는 말이다. 그러면 미국이 한국을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킨 후, 미국은 한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던가? 미국의 그러한 입장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그 원인 제공자였다는 사실과 그 맥락이 정확히 닿아 있는 것이다. 또 미국이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남한의 국민을 구제해준 후, 어떤 입장을 취했던 것인가? 소련군과 중공군은 한반도로부터 완전 철수했지만, 미군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미군의 남한주둔의 주된 목적이 과연 남한국민을 위한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한국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생각하는 그러한 미국으로부터 어째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를 감안해서 미국을 한반도에 잡아두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그것도 우리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들 중의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입장이란 사실상 이 글로벌시대에 우리민족이 우선적으로 지양해 가야할 사대주의적 특성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에게서의 사대주의란 지금까지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해 나온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민족이 지닌 사대주의적 근성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민족의 이 사대주의적 근성 때문에 결국은 근대화과정에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고, 그 직전에는 중국 청나라의 종속국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종속국 상태로 전락한 것은 한국민족의 한 주류가 발해(698~926)를 멸망시킨 요(遼,916~1125)에 밀려서 요하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생활하게 된 고려시대(918~1392) 이후였다. 그 이전 한국민족은 단군조선(2333~238,BC)이래 요하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인접의 타민족들을 지배해가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원지역에서의 진(秦,221~206,BC)·한(BC206~AD220)제국의 출현을 계기로 해서, 요하·송화유역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던 단군조선은 결국 사분 되어 각지로 흩어졌고, 10세기로 들어와서는 한국민족의 강역이 한반도로 국한되는 바람에, 그때 이후, 결국에 가서는 중국대륙에서 출현한 강대국들의 종속국으로 전락해 가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민족의 특성에 사대주의라고 하는 근성이 형성되어 나오게 됐던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서의 그러한 사대주의적 근성은 그 뿌리가 2000여년이상이나 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결코 낙담할 것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단군조선 민족은 그것에 못지않은 기간에 걸쳐 타민족을 지배해왔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러한 사대주의적 근성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충분한 저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단군민족은 기원전 2300년대서부터 기원전 200년대 후반까지 동아시아지역에서 건립된 최초의 제국으로 군림해오면서 타민족들을 지배해온 역사를 지닌 민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 제국의 건립이념은 여타제국들의 경우들과는 달리 ‘인접의 타민족들에 대해 널리 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 ‘홍익인간’이었다. 따라서 금후 후기글로벌시대의 우리민족의 목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종주국시대에 물들었던 사대주의적 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그 속에 묻혀있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일깨워 내서, 그 이념으로 새롭게 무장한 연후에 글로벌시대의 시대적 이념을 ‘홍익인간’으로 확립, 확장시켜나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우선 일차적으로 미국의 군사식민지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제3절 우리가 글로벌자본주의세계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 홍익인간과 홍익종군

    본서는 현재 우리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우리에게 명확히 이야기해 준다. 또 금후 우리가 글로벌자본주의세계의 중심에 처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그야말로 필연이라는 사실도 말해 준다. 우리가 우리의 민족적 통일을 끈질기게 방해해온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이룩해낼 수 있는 방법이란 ‘홍익인간’의 실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의 실천 강령 ‘홍익종군’(弘益從軍) 밖에 없다는 것이 본서가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이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세계는 미·중의 치열한 경쟁이 행해지고 있는 글로벌자본주의사회의 세계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미국이 서부의 건너편에 있는 동아시아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부개척시대(1803~48)가 끝난 이후였다. 미국이 동아시아지역에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영국이 유럽의 신교도국가들과 합세해 중국을 자신들의 반식민지상태로 떨어트렸던 아편전쟁(1840~42)에서의 승리와 그것의 후속조치로 이루어졌던 영국과 중국과의 사이에 맺어진 불평등한 난징(南京)조약(1840.8)이었다.

    미국은 그것을 모델로 해서 1854년 3월에 미국의 서부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시켰다. 그간 일본은 서구로부터의 그리스도교의 유입을 완벽히 차단해 가기 위한 방안으로, 215년간이나 쇄국정책을 취해 갔었다. 미국이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켰던 목적은 신교의 전파가 아니고, 통상이었다. 현대적 측면에서 그 ‘통상’을 해석해볼 것 같으면, 그것은 일본의 자본주의화의 초석을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의 조선에 대한 문호개방의 목적도 당시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일차적으로는 ‘통상’이었다. 그렇기는 했었지만, 그것 이외에도 ‘통상’ 못지않은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으로부터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중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지역의 중심에 파고들어, 동아시아지역을 자신들의 상품판매시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전략기지를 구축해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그러한 욕망은 지난 1세기 반에 걸쳐서의, 한국의 일본식민지 화와 한국의 남북분단 화를 조장해 왔었다.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 급기야 그들의 그러한 욕망은 남한의 중심지역인 평택에 세계최대의 미군 기지를 건설한 것으로 실현되었다. 미군은 사실상 중국과의 대립적 긴장관계가 완전 해소되지 않는 한, 결코 한반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다 붙여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발을 붙여 놓고 있게 될 것이다. 또 미국은 차후 북한이나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해소된다 하더라도, 일본과의 군사적 대립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경우까지를 감안한 나머지, 한국으로부터의 자국의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다. 어째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 있는 한은 우리에게서의 남북통일은 요원한 일이다. 그 주된 이유는 미군이 남한에 머물러 있는 한, 북한의 수뢰는 6.25이래 현재까지의 경우처럼, 지속적으로 남한과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조장해 북한 인민들을 무력으로 통치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가 언제까지 지속되어 갈 것인가? 코로나사태가 발생한 2년 전부터 미중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무역보복전에 돌입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것은 일본과의 영토분쟁을 일으켜온 동중국해와 ‘아시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대결양상으로도 전개되어 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가 미중간의 이러한 군사적 대결양상과 맞물려 있어 미중간의 대립양상이 전개되어 나가는 한, 한반도에서의 남북 간의 군사적 대립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미중간의 그러한 대립적 상황에서 한국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가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는 일차적으로 미국만이 갖고 있는 장점들과 중국만이 갖고 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차원에서 손에 넣어서, 그것들을 융합시켜 그들에게 없는 새로운 것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그것들을 세계화시켜 나간다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 한국민족은 남북 간에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해갈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대외적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취해가야 하고, 대내적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해 가야한다.⁴)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은 우선 보안법부터 개정해 가야하고, 남한은 북한을 통해 그동안 북한에 축적된 북중과 북러의 외교관계를 활용해 가야하고, 또 남한도 북한이 우리의 축적된 한미·한일외교를 활용해 갈수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의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는 다름 아닌 바로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 것이다.

    셋째 한국은 인공지능, 광자산업, 초전도체산업 등과 같은 최첨단산업과 전통문화를 동시에 육성해 가야하고, 금후 한국이 주도해가게 될 진공기산업의 기반도 적극 조성해 가야 할 것이다. 넷째 한국은 미국에 한국의 운명을 송두리째 맞길 것이 아니라, 제3의 길을 적극 개척해 가야한다. 그래서 한국은 이 글로벌자본주의세계에서 한국과 같은 위치에 있는 중선진국들과 연계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강대국들을 상대해간다는 작전을 펼쳐 가야한다. 이 경우 한국은 중선진국에 대해서도 또 인접의 강대국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대립이나 대치 혹은 경쟁적 입장을 취할 것이 아니라, 화합과 조화의 정신을 견지해 간다는 입장을 취해간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글로벌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자 근대이후의 우리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과 그것의 실천 강령이라 할 수 있는 홍익종군(弘益從軍)에 대한 적극적 실천입장을 취해 가야 하는 것이다.

    제1장 옥기(玉器)문명과 단군연방조선제국

    서론  인류에게의 최초의 정신문명은 단군연방조선제국을 일 으킨 옥기문명을 통해 출현된 것인가

    현재는 전자제품이라고 하는 형태로 우리 인간들에게 다가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철기문명이 이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것은 기원전 1400년대의 일이다. 그때 이래 그것은 최근까지의 3500여 년간 인류의 문명을 주도해 나왔다. 이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미국중심의 전기 글로벌자본주의’시대를 도래케 했던 것도 사실은 철기문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금후는 지금까지의 철기문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광기(光器)문명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명이 ‘동아시아중심의 후기 글로벌자본주의’시대를 열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본서에서의 필자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이란 동아시아의 근대화과정에서 우리가 줄곧 사용해왔던, ‘서양의 물질문명과 동양의 정신문명’라는 사고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여기에서 이 ‘동양의 정신문명’이라는 것이 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애초 어떻게 형성되어 나왔었던 것인지의 문제부터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취해진다. 인간들에게서의 육체적 활동들은 사실상 인간들의 육체가 처해 있는 지상(地上)공간에서 행해진다. 또 우리의 육체와 이것이 존재하는 이 지상세계는 물질적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들은 그것들을 활용해 이루어 낸 문명을 물질문명이라 하고, 이에 대해 우리 인간들의 정신적 활동이 기초가 되어 이루어 진 문명을 정신문명이라 한다. 그런데 인간들의 육체적 활동이란 우선 일차적으로 지상공간을 무대로 행해지는 반면, 우리의 육체 속에 존재하는 정신(soul)이 행해가는 소위 정신적 활동이라는 것은, 물론 그 정신이 임해 있는 그 육체가 처해 있는 그 지상의 공간을 포함해, 그 위에 드높이 펼쳐진 공간, 즉 인간의 시각으로 잡아낸 ‘하늘’이라고 하는 끝없는 공간을 무대로 해서 행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서의 육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활동해가는 지상공간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출현했다고 한다면, 그러면 인간에게서의 정신이란 과연 어떻게 출현된 존재인가? 그것은 인간의 육체적 활동이 지상공간에서 행해지는 과정에서 그들이 행한 지상세계에 대한 체험들의 결과로서 인간의 지상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심상)의 형태로 그들의 육체 속에 쌓이게 되어 그것들로부터 잉태되어 탄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인류는 석기시대를 통해 행했던 지상세계에 대한 체험들을 통해 지상세계의 정상에 존재하는 하늘에까지 그들의 관심을 확장시켜갔었다는 입장이 취해지는 것이다. 지상세계에서의 인간들의 활동들은 타 지역으로의 이동, 예컨대 해가 뜨는 동쪽으로의 이동까지가 포함된다. 그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하늘의 상태를 점검해봐야 한다. 인간들은 그러한 점검을 지속해가는 과정에서 하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하늘빛에 대해 관심을 가져가게 되었다. 그 하늘빛이 연옥이나 비취색을 띄어 있게 될 경우 사냥이나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지상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에게서의 하늘은 때로는 지상에 존재해 있는 비취들의 색깔로, 또 때로는 연옥(軟玉)의 색깔을 띠는 존재로도 보이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지상세계에서 육체를 움직여 활동해 가는 지상세계의 인간들은 그들의 정신적 활동을 주도해가게 되는 하늘을 연상케 하는 지상세계의 비취나 연옥 등과 같은 존재들에 대해서까지 그들의 관심이 확장 되어 나갔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우리는 인류가 그것들로 자신들의 생활도구들까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정신활동을 주도해가는 하늘을 연상해감으로써 자신들의 정신문명을 정립시켜나갔다고 하는 입장을 취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에게서의 정신문명이란 우리 한국민족이 일으킨 옥기문명을 기반으로 해서 확립되어 나왔다는 입장을 취해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대략 270만년전경에 석기라고 하는 도구의 사용으로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발원지는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근방으로 고찰되고 있다. 그 후 그것은 옥기(玉器),청동기, 철기, 광기(光器)문명 등의 순으로 발전해 나갔고, 또 그것은 차후 분명 진공기(眞空器)문명으로 전개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인류는 아프리카대륙으로부터 유라시아대륙으로 이동해 나오는 과정에서 한층 더 지혜가 발달되어, 돌들을 깨서 도구들을 만들어갔던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켜 그것들을 갈아서까지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낸 마제석기를 사용했던 시대를 신석기시대라 말하고, 그 이전의 타제석기를 사용했던 시대를 구석기시대라 말하고 있다. 유라시아대륙에서의 인류는 신석기시대로 들어와서 해가 지는 서쪽에서 해 뜨는 동쪽으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과 정착이라고 하는 생활들을 행해 갔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류는 세석기(細石器)들까지를 제작해냈고, 또 그 과정에서 지상에서 옥석들까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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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기시대(선고대)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인류의 이동

    그들이 동아시아지역에 도착한 연후에는 그러한 이동과 정착생활이라고 하는 지상세계에 대한 장구한 체험들을 토대로 해서 터득해낸, 하늘(天)과 땅(地)에 대한 체계적 지식들을 활용해서 동아시아지역에 대량 매장되어 있는 옥석들을 발견해 그것들을 발굴해 내서 그것들을 가지고 옥기를 만들어 옥기문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인류문명의 전개과정상에서의 옥기시대는 신석기시대(1만~기원전 4천년)와 청동기시대(4000~1400,BC)의 사이에 존재했었던 문명시대를 가리킨다. 이 지구상에서 옥기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한국민족이었다. 우리 한국민족에게서의 그것이 가능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하나는 우리 한국민족의 선조들이 아프리카·유라시아대륙에서의 지속적 이동생활을 통해 행했던 자연체험, 즉 천(天)과 지(地)에 대한 체험들이 다른 어느 나라의 민족의 체험들보다도 더 장구하고 더 두터웠었기 때문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민족의 출현지가 이 지구상에서 옥석(玉石)이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고 또 그 당시 옥기가 가장 많이 생산되었던 요하유역 서쪽의 홍산문화권(4700~2900,BC)인 요서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최초로 출현한 고대국가는 단군조선으로 고찰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건립이 ‘연방제국’(聯邦帝國)의 형태를 취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그런 형태를 취해 동아시아지역에서 최초의 고대국가로 건립되어 나왔던 것인가? 우리는 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 접근해 보기로 하겠다.

    제1절 단군연방조선제국의 성립경위와 아카드제국

    인류 최초의 제국으로 알려진 아카드제국(2334~2154,BC)이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셈족계의 아카드 인에 의해 건립된 것은 단군연방조선제국(2333~238,BC)이 건립되었다고 하는 시점으로부터 1년 전인 기원전 2334년의 일이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의 요하유역의 서쪽 요서지역에 위치한 조양지역에서 단군연방조선제국이 건립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아카드제국이 건설된 그 다음해인 기원전 2333년이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⁵)

    그런데 동아시아지역에서 최초로 성립된 고대국가였던 단군조선의 경우도 아카드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형태를 취해 건립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필자가 그 ‘단군조선제국’을 ‘단군연방조선제국’으로 명명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단군조선제국’에서의 ‘단군’이라는 말은 고대와 현대 터키인과 몽골인들 사이에서의 ‘하늘’ 혹은 ‘천신’을 의미하는 ‘Tengri’이라는 말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군조선’이라는 말은 ‘하늘’이나 ‘하늘의 천신’이 다스리는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 혹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 족들이 다스리거나, 또는 그들이 사는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단군연방조선’이라는 말은 그러한 천손들이 세운 나라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조선’ 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국으로 명명됐던 것은 하나의 제왕(帝王) 하에서,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각 지역의 부족 국들이 각 나라의 부족장들을 주축으로 한 독자적 차원의 정치적 세력들을 형성해 동등한 자격으로 연합해 이루어진 제국(帝國)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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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대륙의 스텝루트(초원로:청색 윗선)와 보석로(적색 이랫선)

    단군연방조선제국은 조양지역을 도성으로 해서 건립됐다. 그것은 그 도성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뻗혀 있는 보석로(Jade Roads)들로 연결되어 있던 각 지역들의 부족국가들로 이루어진 연방제국이었다. 각 지역의 보석거래지점의 장들에 해당되는 각 지역의 부족장들이 그 제국의 제후들로 참여하여 제국(帝國)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연방조선제국이 그 시점에서 건립되어 나왔던 것은 분명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의 아카드제국의 건립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제국을 건립한 사르곤대왕의 정적(政敵)이었던 수메르인계의 루갈자게시의 일파가 그 대왕의 추종자들에 쫓겨 조양지역으로 망명해 왔던 것이 그 주된 원인이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고,⁶) 또 「단군신화」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나라에서 삼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그러한 사실을 신화적 수법으로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르곤대왕의 일파에 쫓겨 조양지역으로 망명해왔었던 루갈자게시는 차후 있을지도 모를 아카드제국의 동방원정에 대비해, 우선 조양지역의 부족장의 아들이었던 단군왕검을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여 그를 제왕(帝王)으로 추대한 다음, 각 지역들의 보석상들을 제후(諸侯)들로 끌어들여 단군연방조선제국을 건립했던 것이다.

    그러한 출발이 가능했었던 것은 우선 일차적으로 조양지역이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최대의 옥기생산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루갈자게시(Lugal-Zage-Si)라는 이름이 ‘정복 왕’ 또는 ‘국경을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자(보부상) 출신의 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⁷), 아카드제국을 건립한 사르곤대왕보다 25년 먼저 수메르의 전 지역을 최초로 통일시켰던 그도 사르곤대왕의 경우처럼 보석상 가계나 혹은 보석상 보호 군대의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⁸) 그는 움마의 왕좌에 올라 최초로 메소포타미아제국을 건립했던 자였다.

    그렇게 망명객 루갈자게시 일당의 도움을 받아 건립된 단군조선제국은 보석 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서역의 아카드제국과 한동안 대립해갔었다. 그러다가 그 제국이 기원전 2154년까지의 약 200여 년간 지속되어 가다가 패망하자, 그 때가서야 단조선제국의 경우도 동아시아시아지역에서 제국의 형태로부터 벗어나서 김정배 박사가 제기한, 동쪽의 예족과 서쪽 지역의 맥족이 연맹해 형성시킨 ‘예맥조선’연맹국의 형태로 전환해 나갔었다고 하는 것이다.⁹) 그러자 그 과정에서 황하유역에 위치해 있었던 단군연방조선제국의 한 제후국이었던 하(夏,2070~1600,BC)가 하나의 왕국으로 독립해나가, 황하유역에서의 최초의 고대국가로 건립해 나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제2절 단군연방조선제국의 강역과 그 명칭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건립 당시의 단군조선(2333~238,BC)은 명실 공히 ‘단군연방조선제국’으로 명명될 수 있었던 정치적 조직 구조를 지녔던 고대국가였었다. 그러나 황하유역에서의 기원전 2070년경 하(夏)가 건립됐던 시점을 전후해, 단군연방조선제국의 도성천도가 북방의 조양지역으로부터 요하유역과 황하유역사이에 위치한 남방의 난하(灡河)유역으로 행해졌었다. 그 때 이후에서부터 단군조선이 취했던 연방제국 형태의 정치적 구조는 차츰 붕괴되기 시작되어, 결국 황하유역에서 주왕조(1046~256,BC)가 건립되어 나오는 역사적 상황이 형성되는 기원전 13세기말경에 가서는 단군연방조선제국의 도성 천도가 재차 북방의 요하유역의 북진(北鎭) 지역으로 행해져, 그 시점에 가서 그 제국의 정치적 형태가 각 지역들의 부족들의 연맹국가의 형태로 전환해 나가게 됐었던 것이다. 예컨대 동의 예족과 서의 맥족이 연맹해 이루어졌던 예맥연맹국이 그 일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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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단계 단군연방조선제국의 연방국들 위치

    [ 1 차오양 2 알타이 지역 3 카자하스탄 4 호탄 5 둔황 티벳 6몽골 7난하 하류 8황하하류 9산동지역 10회대지역 11양저지역 12 안산(鞍山)지역 13한반 도 14 송화유역 ]

    ‘단군연방조선제국’으로 명명될 수 있었던 초기(24~21세기,BC)의 강역은 서북쪽으로는 알타이지역, 서쪽으로는 몽골·카자흐스탄, 서남쪽으로는 둔황·티베트지역 등이었다. 또 남쪽으로는 난하(灡河)유역, 황하 하류, 산동(山東)지역, 회대(淮岱)지방(淮水와 大山<泰山> 사이의 지역), 그리고 장강하류유역의 양저(良渚)문화권 등이었고, 동쪽으로는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지역이었다. 이렇게 중국의 중원지역에서 주왕조 출현의 정치적 분위가가 형성되어 나갔던 14세기경까지만 하더라도, 황하중상류지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은 단군연방조선제국의 강역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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