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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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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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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올바른 삶에는 진정한 이득이 있는가?”
플라톤을 이해하는 관문이자, 서양철학의 모판이 되는 필독서

“정의롭게 사는 게 불의하게 사는 것보다 더 멋진 삶이야!” 이 말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실천하지는 못한다. 현실에선, 불의한 자들이 의인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이고 별문제 없이 잘살기 때문이다. 『플라톤 국가』(이하 『국가』)는 분량이 많고 논쟁이 복잡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정의로운 자가 불이익을 당하는데, 정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중에 누가 더 행복한지 따져보자”라는 글라우콘의 제안에 소크라테스가 치밀하고 철저하게 논변하면서 이 틀 안에서 모든 논의가 흘러간다.
플라톤의 많은 대화편처럼 『국가』도 소크라테스가 화자가 되어, 어느 날 저녁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정의를 행하여 얻는 보상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는 것 자체가 더 좋고 행복한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정의의 관점에서 ‘국가’라는 큰 그림을 통해 개인의 삶을 진단한다. 가장 좋은 국가인 왕도정(王道政)이 어떻게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으로 변해가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양철학사의 유명한 주제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가령 국가의 기원과 구성원, 교육의 목적과 방법, 철학자의 역할, 이데아론, 정치 체제의 변천, 영혼의 불멸성 등을 두루 다루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사유하도록 이끈다. 특히 민주정이 최악의 국가인 참주정(독재국가)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전 세계의 상황을 직접 보면서 묘사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테네 민주정치가 쇠퇴기에 접어들며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플라톤은 이상국가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고, 그것이 『국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국가』는 지난 2,400년 동안 정치학, 철학, 문학, 교육학 등 서양 문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논의를 위한 토대를 제공해온 독보적 문헌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50번째로 『국가』를 펴내면서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옮겼을 뿐만 아니라 사변적이고 복잡다단한 원문을 한글판 독자들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세심히 글을 다듬었다. 본문에서 궁금한 부분을 다시 찾지 않아도 되게끔 366개의 친절한 각주를 달았으며, 숲과 나무를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해제를 제공해 방대한 독서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고 (‘참된 실재’를 향해 나아가는) 플라톤 철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Apr 20, 2023
ISBN97911397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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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국가 - 플라톤

    제1권

    어제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과 함께 페이라이에우스에 갔었네. 여신을 참배하고 아울러 거기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축제가 어떻게 거행되는지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그곳 사람들의 축제 행렬도 훌륭했지만 트라케인들이 선보인 축제 행렬도 그에 못지않게 볼 만했네.¹

    1화자는 소크라테스다. 페이라이에우스는 아테네의 외항으로 성내에서 남서쪽으로 성벽을 따라 8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아리스톤은 플라톤의 아버지이고, 글라우콘은 플라톤의 작은형이다. ‘여신’은 트라케인들이 숭배한 벤디스 여신으로 그리스의 아르테미스에 해당한다. 트라케는 에게해 북동쪽에 있던 지방이고, 여기에 언급된 트라케인은 아테네로 이주해온 거류민들을 가리킨다. 페이라이에우스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두 여신의 축제가 통합되어 열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참배하고 축제 구경도 마친 후 성내를 향해 출발했네. 그런데 케팔로스 님의 아들 폴레마르코스²가 서둘러 귀가하는 우리를 멀리서 알아보고는 급히 하인을 보내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하지 뭔가. 하인이 뒤에서 내 옷자락을 붙들며 폴레마르코스 님이 두 분에게 기다려주기를 청하십니다라고 말하더군. 나는 돌아서서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 하인은 뒤에 오고 계시니 기다려주십시오 했고, 글라우콘은 그렇다면 기다리기로 하지요라고 말했다네.

    2케팔로스와 폴레마르코스는 ‘등장인물과 배경’을 보라.

    잠시 후 폴레마르코스가 글라우콘의 형 아데이만토스, 니키아스의 아들 니케라토스를 비롯해 몇몇 사람과 함께 왔더군.³ 모두들 축제 행렬을 구경하고 오는 길인 것 같았네.

    3아데이만토스는 ‘등장인물과 배경’을 보라. 니키아스(기원전 470년경-413년)는 아테네의 유명한 장군이며, 그의 아들 니케라토스는 기원전 404년에 폴레마르코스와 함께 30인 과두정에 의해 처형된다.

    폴레마르코스가 소크라테스 선생님, 이제 성내로 돌아가려 하시나 봅니다라고 말했네.

    나는 자네 추측이 틀리지 않았네라고 대답했지.

    우리 쪽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 보이시지요? 그가 말했네.

    왜 안 보이겠나.

    그렇다면 우리를 힘으로 이기시든지 아니면 여기에 머무시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네.

    내가 말했지. 가능성이 하나 더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도록 자네들을 설득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과연 설득할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네.

    그렇다면 방법이 없지요. 글라우콘이 말했네.

    그러니 우리가 듣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어떻게 하실지 마음을 정하시지요.

    그때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며 말했네. 저녁때 여신을 위한 마상 횃불 경주가 예정된 것도 두 분은 모르고 계시겠군요.

    말 위에서? 그거 새롭군. 횃불을 든 채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자기편에게 넘겨주는 이어달리기 경주를 한다는 것인가? 내가 말했네.

    그렇답니다.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철야 축제도 열린다니 볼 만할 겁니다. 우리도 저녁 식사 후에 철야 축제를 구경하고 많은 청년과 어울려 대화도 나눌까 합니다. 그러니 딴생각일랑 마시고 여기에 머물러주시지요.

    글라우콘이 아무래도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나는 말했네.

    우리는 폴레마르코스의 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의 아우인 리시아스와 에우티데모스 외에도 칼케돈 출신의 트라시마코스, 파이아니아 출신의 카르만티데스,⁴ 아리스토니모스의 아들 클레이토폰도 만났다네. 집에는 폴레마르코스의 부친인 케팔로스 님도 계셨는데,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지 많이 연로해 보이셨네. 안마당에서 막 신에게 제물을 바친 후⁵ 머리에 제관을 쓴 채 등받이 안락의자에 앉아 계셨지. 그 옆에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어 우리는 그분 곁에 앉았네.

    4파이아니아는 아티카 지방의 174개 구역(데모스) 중 하나다. 외국인은 이름 앞에 출신 국가를, 아테네 시민은 출신 구역을 붙여서 불렀다. 나중에 카르만티데스는 수사학으로 유명한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년)의 제자가 된다.

    5케팔로스가 제우스를 가문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집 안마당에 제우스의 제단을 차려놓고 매일 제사를 지냈고, 이 때문에 ‘안마당의 제우스’(제우스 헤르케이오스)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케팔로스 님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말씀하셨네. 소크라테스 선생, 선생은 당연히 우리를 만나러 페이라이에우스에 자주 내려오셔야 하는데도 그리하지 않으시는군요. 내가 여력이 있다면 성내로 선생을 찾아가 뵐 것이니 선생이 굳이 여기로 오실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선생이 더 자주 와주셔야 합니다. 잘 알다시피 육신의 즐거움이 시들해질수록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와 대화에서 얻는 즐거움이 점점 더 커지는데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른 생각 마시고 우리를 선생의 친구로, 아니 가족으로 여기고 자주 찾아와 이 청년들과 어울려주시오.

    나는 말했네. 꼭 그리하겠습니다, 케팔로스 님. 사실 저는 나이드신 분들과의 대화를 좋아합니다. 우리도 걷게 될 길을 먼저 걸어가신 분들이니 그 길이 험난하고 힘든지 아니면 수월하고 순탄한지 그분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르신은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⁶에 들어섰다고 표현한 연세에 이르셨으니, 어떤 심경으로 이 시기를 보내시는지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그 연세가 인생에서 과연 어려운 시기인지 어떤지 말씀해주시지요.

    6‘노년의 문턱’은 호메로스의 글(『일리아스』 22권 60행; 『오디세이아』 15권 246행)을 비롯해 고대 작가들의 글에 여러 번 나오는 전래 문구로 ‘죽음의 문턱’을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리스인들은 ‘문턱’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의미로 이해했다.

    케팔로스 님이 말씀하셨네. "소크라테스 선생, 맹세하건대 인생의 이 시기를 보내는 내 심경을 선생에게 말하겠소이다. 나는 내 연배의 여러 사람과 종종 만나는데, 옛 속담⁷이 틀린 게 없더이다. 그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그리워하고 연애와 술과 축제 등을 회상하다가 결국에는 엄청난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화를 내면서 신세 한탄을 한답니다. 그 시절에는 사는 게 즐겁고 좋았는데 지금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면서요. 어떤 이는 늙어서 가족한테까지 괄시받는다며 탄식하고, 모든 불행이 늙은 데서 왔다며 매사를 나이 탓으로 돌리지요.

    7여기에서 옛 속담은 동년배들끼리 어울린다, 즉 유유상종을 가리킨다. 이 속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161b34 등에도 언급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선생, 그들은 탓해서는 안 될 것을 탓하는 것 같소. 그 모든 게 정말 나이 탓이라면 나도 늙었으니 그들과 똑같은 경험을 했어야 하지 않겠소. 다른 노인들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만난 적이 있소. 한번은 시인 소포클레스⁸와 함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소포클레스 선생님, 성생활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하시나요?’라고 묻더이다. 그러자 선생은 ‘이 사람아,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도 말게. 거기에서 벗어나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네. 미쳐 날뛰는 포악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기분이야’라고 대답하셨지요. 나는 훌륭한 대답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소. 노년이 되어야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지요. 욕망의 기세가 수그러들어야 비로소 소포클레스 선생의 말대로 미쳐 날뛰는 포악한 주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8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중 한 명이다. 3대 비극시인 중 최고로 꼽히는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5년경-456년)에게 사사를 받았다. 28세인 기원전 468년에 비극 경연대회에서 스승인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처음으로 우승한 이후로 18회나 우승했고 123편의 작품을 썼다.

    가족 관계에서도 탓할 것은 단 하나, 바로 나이가 아니라 사람의 성품이지요. 됨됨이가 반듯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노년도 충분히 견딜 만하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늙어서 힘든 게 아니라 젊었더라도 힘들어했을 거요,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감탄하며 그분이 계속 말씀하시도록 이렇게 응수했네. 케팔로스 님, 제가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르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르신이 노년을 힘들지 않게 견디시는 건 성품보다는 많은 재산⁹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부자들에게는 위안거리가 많다고들 하니까요.

    9여기에 나오는 ‘성품’과 ‘재산’의 대비는 이후의 대화에서 ‘정의’와 ‘이익’이라는 중요한 주제가 된다.

    케팔로스 님이 말씀하셨네. 옳은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사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라오. 이 경우에는 오히려 테미스토클레스¹⁰의 말이 더 맞소. 그가 명성을 얻은 건 그의 공이 아니라 국가 덕분이라며 한 세리포스인이 그를 욕했지요. 그러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자기가 세리포스인이었다면 유명해지지 못했겠지만, 그 사람은 아테네인이었어도 유명해지지 못했을 거라고 대답했다지요. 부자가 아니면서 노년을 힘겹게 견디는 사람들에게도 이 말은 잘 들어맞소. 착해도 가난하면 노년을 견디기가 쉽지 않고, 나쁜 사람은 부자여도 자기 처지에 만족하지 못할 테니 말이오.

    10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524-459년경)는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궤멸시켜 이후로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넘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일화와 약간 다른 이야기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8권 125장에 나온다. 세리포스는 에게해 중앙의 키클라데스 군도에 속한 작은 섬으로 아테네와 크레타 사이에 있다.

    나는 물었네. 케팔로스 님, 어르신의 재산은 대부분 물려받으신 건가요, 아니면 직접 벌어 모으신 건가요?

    케팔로스 님이 대답하셨네. 소크라테스 선생, 내가 직접 벌어 모은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는 말이지요? 사업가로서 나의 수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중간 정도 됩니다. 나와 이름이 같은 조부께서는 지금 내가 소유한 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아 몇 배로 늘리신 반면, 내 부친 리사니아스께서는 그 재산을 물려받아 지금 내가 소유한 재산보다 줄어들게 하셨으니까요. 나는 물려받은 재산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아들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가 말했네. 그런 질문을 드린 이유는 제가 보기에 어르신은 특별히 재물에 애착을 갖고 계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재물에 집착하기 마련이니까요. 시인이 자기 시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재물이 유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물을 마치 작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들과 사귀기란 어렵습니다. 그들은 재물 말고는 아무것도 높이 평가하지 않으니까요.

    케팔로스 님이 옳은 말이오라고 말씀하셨네.

    내가 말했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쭤볼 게 더 있습니다. 많은 재산을 모아서 어르신이 가장 크게 이득 보신 것은 무엇입니까?

    케팔로스 님이 대답하셨네. "내가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믿지 않을 거요. 소크라테스 선생, 선생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면 전에 없던 두려움과 염려에 휩싸인다는 것이지요. 저승에 관한 이야기들, 예컨대 이승에서 나쁜 짓 한 사람은 저승에 가서 벌 받는다는 이야기¹¹를 전에 들었을 때는 웃어넘겼지만,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진짜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진답니다. 노년이 되어 쇠약해져서인지, 벌써 저승과 가까워져 저승을 좀 더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어서인지, 불길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보게 되지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쁜 짓을 많이 했음을 깨달은 사람은 자다가도 무서운 꿈을 꾼 아이처럼 겁에 질려 자주 깨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반면에 살면서 나쁜 짓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달콤한 희망이 함께하며, 핀다로스¹²가 말했듯이, 그에게 훌륭한 ‘노년의 부양자’가 되어주지요. 소크라테스 선생, 그분은 일생을 바르고 경건하게 살아온 사람에 대해 이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시를 썼다오.

    11케팔로스가 언급한 이 이야기는 『국가』 끝부분에 나오는 저승 이야기의 복선 역할을 한다.

    12핀다로스(기원전 518-438년)는 테바이 출신의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각종 제전과 경기가 활발해지면서 우승자들을 위해 지은 장엄한 찬가로 유명하다. 여기에 인용된 내용은 핀다로스, 『단편』 214(Snell)에 나온다.

    달콤한 희망은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노년의 부양자가 되어 그와 늘 함께한다네.

    희망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마음을

    가장 잘 인도하는 길잡이기 때문이라네.

    얼마나 훌륭하고 놀라운 시입니까? 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재산이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훌륭하고 바른 사람들에게만 그러하겠지만요. 본의 아니게 속이고 거짓말하거나 신에게 제물을 빚지든, 사람에게 돈을 빚지든, 무엇인가 빚져서 두려움을 안은 채 저승으로 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데 재산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재산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됩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비교해봤을 때,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재산의 가장 중요한 용도라고 생각할 것 같소,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말했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르게 산다는 것, 즉 정의¹³란 무엇일까요? 진실을 말하는 것과 빌린 것을 돌려주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런 일이 때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불의가 되기도 하는 걸까요? 가령 정신이 온전한 친구에게서 무기를 빌렸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정신이 이상해진 상태에서 무기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면요? 그런 경우에 친구에게 무기를 돌려준다거나 진실을 말하는 건 정의롭지 않다고 누구나 말할 겁니다.

    13‘정의’(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쉬네)는 『국가』 전체의 주제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미덕(탁월함)을 갖춘 상태를, 좁은 의미에서는 법과 관습을 지키고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좁은 의미의 정의를 말한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넓은 의미의 정의를 다루기 때문에 ‘정의’ 대신에 ‘올바름’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그분은 말했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한다거나 빌린 것을 돌려주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이때 폴레마르코스가 끼어들며 말했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적어도 시모니데스¹⁴의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지요.

    14시모니데스(기원전 556-468년)는 에게해에 있는 케오스 섬 출신의 서정시인이다.

    그러자 케팔로스 님이 말씀하셨네. 자, 이 토론은 여러분에게 넘기겠습니다. 나는 제사 지낼 준비를 하러 가봐야 해서요.

    그러면 제가 아버지의 상속인이 되는 건가요?라고 폴레마르코스가 물었네.

    케팔로스 님은 웃으며 물론이지라고 말씀하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가셨네.

    내가 말했네. 이제 자네가 토론을 물려받은 상속자니 말해주게. 시모니데스가 정의에 관해 무슨 말을 했길래 자네는 그의 말이 옳다고 하지?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그분은 누구에게든 빚진 것을 갚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분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네. 시모니데스는 신처럼 지혜로운 분이니 그분의 말을 안 믿기는 어려울걸세. 하지만 폴레마르코스, 그분이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자네는 아는 것 같은데 나는 모르겠네. 방금 우리가 말한 경우와 같이, 친구의 무기를 맡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무기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분명 아닐 테니 말일세. 그럼에도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는 말은 맞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려달라고 했을 때 돌려줘서는 안 되네.

    그는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말했네.

    그렇다면 시모니데스는 그와는 다른 의미로 빚진 것을 갚는 게 정의라고 말한 듯하네.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맹세하건대 다른 의미로 말한 게 분명합니다. 친구 간에는 서로 잘해주고 절대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인 것 같거든요.

    내가 말했네. 알겠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어떤 사람의 황금을 맡았다가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 일이 돌려받는 사람에게 오히려 해롭고 두 사람이 친구인 경우, 시모니데스는 황금을 돌려주는 것이 정의는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 아닌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적에게 빚진 경우는 어떤가? 이때도 반드시 갚아야 하는가?

    그는 물론입니다. 하지만 적에게 빚진 것이라면 정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 해로운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렇다면 시모니데스는 시인답게 정의를 모호하게 규정한 것 같네.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각자에게 빚진 것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일세.¹⁵

    15정의는 원래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인데, 시모니데스는 각자에게 ‘빚진 것’이라고 표현하여 정의의 의미를 모호하게 해버렸다는 뜻이다. 시모니데스에 따르면 적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그 빚도 되갚는 것이 정의인데, 전자의 규정에 따르면 적에게는 오로지 해를 끼치는 것이 정의가 된다.

    그가 물었네. 그렇다면 선생님은 시모니데스가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했다고 보십니까?

    내가 말했네. 맹세하건대 누군가가 그에게 ‘시모니데스여, 예컨대 의술이라는 기술은 어떤 빚진 것 또는 합당한 것을 누구에게 돌려주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해보세. 그가 어떻게 대답했을 것 같은가?

    그는 의술은 인간의 신체에 약과 음식을 돌려주는 기술이라고 말할 게 분명합니다라고 말했네.

    그렇다면 요리 기술은 누구에게 어떤 빚진 것 또는 합당한 것을 돌려주는가?

    음식물에 맛을 줍니다.

    좋네. 그러면 정의라는 기술은 누구에게 무엇을 돌려주는가?

    우리가 앞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정의는 친구에게는 이익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끼치는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친구에게는 잘하고 적에게는 해를 끼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 것이로군.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질병이나 건강과 관련해 친구에게는 잘하고 적에게는 해를 끼치는 일을 누가 가장 잘하겠는가?

    의사입니다.

    항해를 하다가 위험에 빠졌을 때 친구에게는 잘하고 적에게는 해를 끼치는 일은 누가 가장 잘하겠는가?

    선장입니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람은 어떤가? 그는 어떤 행위나 일에서 그런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전쟁을 하거나 동맹 맺는 일에서 그럴 것 같습니다.

    좋네. 그런데 여보게 폴레마르코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네.

    옳은 말씀입니다.

    항해하지 않을 때에도 선장은 필요하지 않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지 않을 때에는 정의가 필요 없지 않겠는가?

    제 생각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평화로울 때에도 정의가 필요하다는 건가?

    필요합니다.

    농업에도 필요하겠군, 그렇지 않나?

    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겠지?

    네.

    신발 만드는 기술도 필요한가?

    네.

    아마도 신발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가? 평화로울 때 무슨 일을 하거나 확보하는 데도 정의가 필요한 건가?

    계약을 맺는 데 필요합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계약이라면 거래를 말하는가?

    당연히 거래를 말합니다.

    그 거래가 장기를 두는 것이라면, 정의로운 사람과 장기를 잘 두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필요하고 훌륭한 상대겠는가?

    장기를 잘 두는 사람입니다.

    그 거래가 벽돌이나 돌을 쌓는 일이라면, 정의로운 사람이 벽돌공보다 더 필요하고 훌륭한 상대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키타라¹⁶ 연주에서는 키타라 연주자가 정의로운 사람보다 나은 상대일 테니, 도대체 어떤 거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건축가나 키타라 연주자보다 쓸모 있겠는가?

    16일곱 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리라를 개량한 고대 그리스의 현악기다.

    아마도 금전 거래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폴레마르코스, 공동으로 말을 사고파는 것 같은 금전 거래는 예외겠지. 그런 경우에는 말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할 테니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그럴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배를 사고팔 때도 선박 기술자나 선장이 필요하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금전 거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쓸모 있다는 말인가?

    돈을 안전하게 맡길 때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쓰지 않을 돈을 맡기고 싶을 때 그렇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돈을 쓸 필요가 없어 보관해둘 때 정의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포도나무 가지치기용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할 때도 정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로군. 그런데 정작 그 가위를 사용할 때는 포도나무 재배 기술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방패나 리라를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해둘 때는 정의가 필요하지만, 막상 그것을 써야 할 때는 중무장한 보병이나 연주자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일에서도 무언가를 사용할 때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을 때만 정의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러네요.

    여보게, 정의가 그런 거라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걸세.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게. 권투 같은 시합에서는 공격을 잘하는 사람이 방어도 잘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요.

    그렇다면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게 하는 일도 잘하겠지?

    그럴 테지요.

    그렇다면 아군을 잘 지키는 사람이 적군의 기밀과 작전을 알아내는 일도 잘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잘 지키는 사람이 훔치는 일도 잘할걸세.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람은 돈 지키는 일을 잘하니 훔치는 일도 잘할걸세.

    지금까지 말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요.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람은 일종의 도둑이라는 셈인데, 자네는 이것을 호메로스에게서 배운 것 같네. 호메로스도 오디세우스¹⁷의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에게 호의적이었으면서도 그가 도둑질과 거짓맹세에서 모든 사람을 능가한다고 말했으니 말이야. 자네와 호메로스와 시모니데스에 의하면, 정의란 친구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일종의 도둑질인 셈일세. 자네가 말하고자 한 바가 이것인가?

    17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자 이타케의 왕이며 트로이아 전쟁에서 그리스군 최고의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그가 전쟁 후 귀향길에서 겪은 모험담을 담고 있다.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맹세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생각에 정의란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 같습니다.

    자네가 말하는 친구란 누구인가? 자네에게 좋게 보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좋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좋은 사람인가? 자네가 말하는 적이라는 자도 둘 중 어느 쪽인가?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호감 가는 사람을 좋아하고, 싫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네.

    그러다가 잘못 판단해 실제로는 좋은 사람을 싫어하거나 나쁜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요.

    그럴 경우에 좋은 사람이 적이 되고 나쁜 사람은 친구가 되겠지?

    그렇지요.

    그런데도 친구인 나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이지만 좋은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는 게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분명 정의로우며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네.

    옳은 말씀입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가 되네.

    그는 그건 말도 안 되지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제 말이 어디에선가 잘못된 것 같네요라고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렇다면 불의한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고,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것이 정의겠군.

    좀 전보다 나은 말씀 같습니다.

    그렇다면 폴레마르코스, 사람들이 잘못 판단할 경우 실제로는 나쁜 사람인 친구에게 해를 입히고, 좋은 사람인 적에게는 도움을 주는 게 정의가 되는 경우가 꽤 많을걸세. 이것은 시모니데스가 말했다고 우리가 주장한 바와는 반대되는 결론이네.

    그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바로잡아야지요. 우리가 친구와 적을 바르게 정의한 것 같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네.

    우리가 어떻게 정의했지, 폴레마르코스?

    호감 가는 사람을 친구라고 정의했습니다.

    내가 말했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수정하면 좋겠나?

    그는 호감 갈 뿐 아니라 실제로도 좋은 사람이 친구이고, 호감은 가지만 실제로는 좋지 않은 사람은 친구인 것 같아도 실은 친구가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적에게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야겠지요라고 대답했네.

    그 논리에 따르면 좋은 사람은 친구이고 나쁜 사람은 적이겠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친구에게는 잘해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라고 규정했는데, 이번에는 좀 보완해 ‘친구일지라도 좋은 사람일 때만 잘해주고, 적일지라도 나쁜 사람일 때만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라고 강조하는 건가?

    그는 네, 그렇게 규정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네.

    내가 물었네. 하지만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로운 사람이 할 일인가?

    그는 물론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악한 적에게 해를 입혀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네.

    말에게 해를 입히면 말의 상태가 좋아지는가, 나빠지는가?

    나빠집니다.

    그런 경우 판단의 기준은 개의 미덕¹⁸인가, 아니면 말의 미덕인가?

    18‘미덕’으로 번역한 그리스어 ‘아레테’(ἀρετή, 탁월함)는 각 사물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미덕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탁월함을 뜻하지만, 비유적으로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 확장해 사용할 수 있다.

    말의 미덕입니다.

    개가 해를 입는 경우에도 말의 미덕이 아니라 개의 미덕을 기준으로 나빠진다고 하겠지?

    당연히 그렇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해를 입는 경우, 사람의 미덕을 기준으로 판단해 나빠진다고 말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그런데 정의는 인간의 미덕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요.

    그렇다면 여보게, 해를 입은 사람은 정의와 더 멀어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네.

    그렇겠지요.

    시나 음악에 능한 사람이 그 기술로 사람들을 시나 음악에 더 둔감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말을 잘 타는 사람이 자신의 승마 기술로 사람들을 말 타는 데 더 서툴게 만들 수 있는가?

    아니요.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로 사람들을 정의롭지 않게 만들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좋은 사람이 미덕으로 사람들을 나빠지게 만들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차게 하는 것은 열의 기능이 아니라 열과 반대되는 것의 기능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렇습니다.

    습하게 하는 것은 건조함의 기능이 아니라 건조함과 반대되는 것의 기능이고.

    물론입니다.

    해를 입히는 것은 정의로운 사람의 기능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사람의 기능이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의로운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폴레마르코스, 친구든 다른 누구든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정의로운 사람의 기능이 아니고 그 반대되는 사람, 즉 불의한 사람의 기능이라는 말이 되네.

    그는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이라고 말했네.

    그렇다면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돌려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걸세. 친구에게는 잘해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라면 말일세. 누구에게든 해를 입히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의가 아님이 명백해졌고, 따라서 그 말은 참이 아니기 때문일세.

    그는 동의합니다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따라서 시모니데스나 비아스나 피타코스¹⁹나 다른 축복받은 현인 중 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자네는 힘을 합쳐서 그와 맞서 싸워야 할걸세.

    19비아스는 기원전 6세기 초에 소아시아 프리에네에서 활동한 정치가이고, 피타코스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 출신 정치가다. 두 사람 모두 고대 그리스의 7현인에 속한다.

    그는 물론입니다. 그 싸움에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그런데 친구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게 정의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아는가?

    그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네.

    아마도 페리안드로스나 페르디카스, 크세르크세스, 테바이 사람 이스메니아스,²⁰ 또는 스스로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한 어떤 부자일걸세.

    20페리안드로스는 기원전 627-585년에 소아시아의 코린토스를 통치한 참주다. 페르디카스 2세는 기원전 450-413년에 마케도니아를 다스린 왕이다.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480년에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의 왕이다. 이스메니아스는 테바이의 정치가이며 뇌물을 받고 페르시아 편에 서서 일했다. 이들은 모두 참주거나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현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좋아. 친구에게는 도움을 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이 정의 또는 정의로움이 아닌 게 밝혀졌으니, 이제 무엇이 정의이고 정의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트라시마코스가 여러 차례 끼어들려고 했지만,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끝까지 듣고 싶어 했기 때문에 번번이 제지당했네. 하지만 우리 대화가 잠시 중단되고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더 이상 가만있지 못하고 야수처럼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이 덤벼들었네.

    나와 폴레마르코스는 기겁해 숨죽이고 있었고, 트라시마코스가 큰 소리로 말했지. 두 분은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어째서 바보처럼 서로 미루기만 합니까? 소크라테스 선생! 정말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질문만 하고 남의 답변에 반박하면서 의기양양해하지 마세요. 알다시피 대답보다는 질문이 쉬우니까요. 그러니 정의가 무엇인지 선생이 대답하고 말씀해주시지요. 정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거나 합당한 것이라거나 이익이 되는 것, 이로운 것,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그 따위 헛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정의가 무엇인지 명료하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시지요.

    트라시마코스가 나를 노려보기 전부터 그를 주시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말문이 막혔을 것이네.²¹ 그러나 그가 우리 대화에 격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그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대답할 수 있었네. 나는 약간 떨면서 말했지. 트라시마코스, 너무 다그치지 말게. 나와 이 사람이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걸 알아주었으면 하네. 우리가 황금을 찾고 있는 거라면 그 일을 서로에게 미루다가 기회를 망치는 일은 없을걸세. 하물며 황금덩어리보다 귀한 정의를 찾는 일을 서로에게 미루다가 정의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분별없는 짓을 하겠는가? 여보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네. 다만 우리 능력이 부족한 것 같기는 하네. 그러니 자네같이 유능한 사람이 우리를 심하게 대할 게 아니라 동정하는 편이 훨씬 합당할걸세.

    21고대 그리스에는 사람이 늑대를 먼저 보지 않고 늑대가 사람을 먼저 보는 경우에 말문이 막혀버린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러자 트라시마코스가 크게 비웃으며 말했네. 맙소사!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 선생이 늘 써먹는 시치미 떼는 전술이오. 나는 선생이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이 사람들에게 아예 예언했답니다. 누가 무슨 질문을 해도 선생은 대답하지 않을 테고, 시치미 떼는 전술을 비롯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결국에는 답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트라시마코스, 자네 예언이 들어맞은 건 자네가 영리하기 때문일세. 예컨대 자네가 어떤 사람에게 12가 얼마냐고 물으면서 미리 이렇게 말했다고 치세. ‘이보시오, 당신은 12는 6의 두 배라거나 4의 세 배라거나 2의 여섯 배라거나 3의 네 배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따위 허튼소리를 한다면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거요.’ 그랬을 때 그 사람이 아무런 대답도 못할 것을 자네는 분명 예견했을 것이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걸세. ‘트라시마코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당신이 미리 밝힌 대답 중 하나로 내가 답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당신이 미리 밝힌 대답 중 하나가 정답이라 해도 나는 다른 답을 대야 한다는 말이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러면 자네는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는 좋아요. 선생은 이 둘이 같다고 생각하시는 거로군요라고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지. 같지 않을 것도 없지 않나? 같지 않다 해도 그 사람에게 같게 보인다면 같은 거나 마찬가지일세. 그 사람은 우리와 상관없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할걸세. 설마 그 일을 우리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는 결국 선생은 내가 하지 말라고 한 대답 중 하나로 답하시겠다는 거로군요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지. 깊이 생각해보고 합당하면 그렇게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네.

    그러자 그는 내가 정의에 관해 앞에서 말한 것과 전혀 다르면서도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한다면 어쩌시겠어요? 그럴 경우 선생은 어떤 벌을 받으셔야 할까요?라고 물었네.

    내가 말했네. 당연히 무식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 말고 다른 벌이 있겠는가? 그 벌은 유식한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라네. 그러니 나도 그런 벌을 받아야겠지.

    그는 좋습니다. 그런데 배우려면 수업료도 내셔야지요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돈이 생기면 그렇게 하지.

    글라우콘이 말했네. 돈은 있습니다. 돈 걱정은 마시오, 트라시마코스. 우리 모두가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위해 돈을 내겠소.

    트라시마코스가 말했네. 물론 자네들은 그렇게 하겠지. 그래야 소크라테스 선생이 평소처럼 자신은 대답하지 않고 남이 한 답변의 말꼬리를 잡아 반박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그래서 내가 말했네. 여보게,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알지 못할뿐더러 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설령 어떤 의견이 있다 해도 녹록지 않은 상대에게 이런저런 대답을 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를 받았다면, 그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나? 그러니 자네가 말하는 편이 더 나을걸세. 자네는 답을 알고 있고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사정이 이러하니 다른 생각일랑 말고 답을 말해 나를 기쁘게 해주고, 여기 말없이 있는 글라우콘과 여러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주게.

    내가 이렇게 말하자 글라우콘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네. 트라시마코스는 훌륭하게 대답할 자신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칭송받기 위해 말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네. 그러면서도 내가 대답해야 한다고 우기는 척하다가 결국 우리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말했네. 자기는 남들에게 가르침을 베풀려 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들에게 배우면서도 전혀 감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소크라테스 선생의 지혜지요.

    내가 말했네. 트라시마코스, 내가 남들에게 배우는 건 맞지만 감사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일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사례를 하기 때문이야. 나는 돈이 없으니 치를 수 있는 사례는 오직 칭찬뿐이네.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기꺼이 칭찬하는지 자네가 대답하자마자 금방 알게 될걸세. 나는 자네가 훌륭한 대답을 할 거라고 확신하네.

    그는 정의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게 내 대답입니다. 왜 칭찬하지 않으시나요? 칭찬하고 싶지 않으신 거로군요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자네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칭찬할 게 아닌가?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게 정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트라시마코스? 설마 우리보다 힘이 센 격투기 선수 풀리다마스²²가 체력을 증진하는 데 쇠고기가 이로우니, 우리도 쇠고기를 먹는 것이 이익이고 정의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테고 말일세.

    22‘격투기’로 번역한 그리스어 ‘판크라티온’은 직역하면 ‘극강의’라는 의미로 레슬링과 권투를 합쳐놓은 종목을 가리킨다. 풀리다마스는 테살리아의 스코투사 출신의 격투기 선수로서 기원전 408년에 열린 올림피아 경기에서 우승했다.

    그는 소크라테스 선생, 선생은 정말 치졸하게 말꼬리를 잡아 사람을 질리게 만드시는군요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그건 오해네. 그나저나 자네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좀 더 분명히 말해주게.

    그러자 그는 어떤 국가는 참주정을, 어떤 국가는 민주정을, 어떤 국가는 귀족정을 채택해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이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물었네.

    왜 모르겠는가?

    각각의 국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통치자들이겠지요?

    물론이네.

    각각의 정권에서 통치자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만들지요. 민주정에서는 민주적인 법을 만들고, 참주정에서는 참주 중심의 법을 만들며, 다른 정치체제에서도 그런 식으로 법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그 법을 정의라고 공표한 뒤, 그 법을 어기는 자들을 범법자 내지 불의한 자로 규정하고 처벌합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소크라테스 선생. 모든 국가에서 정의가 정권에 이익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정권은 곧 힘 있는 자이므로 정의가 더 힘 있는 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말했네. 이제야 자네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군. 하지만 자네 말이 참인지 아닌지는 검토해봐야겠네. 트라시마코스, 자네는 내게 정의는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정의가 그런 것이라고 답했네. ‘더 힘 있는 자에게’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말일세.

    그는 뭐 사소한 것을 덧붙였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네.

    그렇게 덧붙인 것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네. 하지만 자네 말이 참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네. 정의가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자네는 ‘더 힘 있는 자에게’라는 말을 덧붙였고, 나는 그 점이 이해가 안 되니 검토해봐야겠다는 걸세.

    그는 검토해보시지요라고 말했네.

    내가 말했네. 그러겠네. 그러면 말해주게. 자네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도 정의라고 믿는가?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국가의 통치자들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가, 아니면 종종 저지르는가?

    그는 물론 그들도 종종 잘못을 저지르겠지요라고 대답했네.

    그렇다면 통치자들이 어떤 법은 올바르게 제정하겠지만 어떤 법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올바르게 제정한다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제정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게 제정한다는 뜻이겠지. 아닌가?

    바로 그런 의미로 말했습니다.

    통치자들이 어떤 법을 제정하든 따르는 것이 정의라고 자네는 말하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자네 말에 따르면, 더 힘 있는 자에게 이익이 되는 일뿐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것, 즉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것도 정의가 되네.

    그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네.

    나는 자네 말이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자세히 검토해보세. 통치자들은 종종 어떤 일이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잘못 생각해 피치자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하는데, 어떤 법을 제정하든 따라야 한다는 데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는가?

    그는 나도 동의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네.

    내가 말했네. 통치자들이 본의 아니게 자신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라고 명령하더라도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면, 자네는 더 힘 있는 자인 통치자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도 정의라는 데 동의한 걸세. 더할 수 없이 지혜로운 트라시마코스, 그러면 자네가 말한 것과 상반된 일을 하는 게 정의일 수밖에 없네. 강자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행하라고 약자에게 명령하고, 약자는 그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네.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맹세하건대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이때 클레이토폰²³이 끼어들며 말했네. 자네가 소크라테스 선생의 증인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23클레이토폰은 트라시마코스의 추종자다.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증인이 필요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통치자들은 종종 자신들에게 해로운 명령을 하고, 그런 경우에라도 그 명령을 따르는 게 정의라는 것에 트라시마코스가 스스로 동의하고 있는데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는가?

    그건 그렇네, 폴레마르코스. 통치자들의 명령을 행하는 것이 정의라고 트라시마코스가 말했으니까.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라는 말도 했네, 클레이토폰. 그런 다음 강자들은 종종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약자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한다는 데도 동의했네. 이 모든 것에 동의한다면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 것보다 더 정의롭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네.

    그러자 클레이토폰이 말했네. 하지만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강자인 자기에게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약자가 행해야 할 일도 바로 그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 걸세.

    폴레마르코스가 말했네. 아니, 그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했네. 폴레마르코스, 이러나저러나 차이는 없네. 트라시마코스의 말이 그런 의미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걸세. 트라시마코스, 말해주게. 자네는 실제로 강자에게 이익이 되든 말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정의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자네의 말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트라시마코스가 말했네. "천만에요. 선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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