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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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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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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정통 판타지. 현실감과 환상이 공존하는 중세풍에서 시골 청년이자 환생자인 드낙이 출세하는 이야기.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Mar 10, 2020
ISBN979113276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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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의 전사 2권 - 쿠우울

    9. 찾아다니는 용병단 (2)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금방 비가 내릴 것처럼 흐렸지만, ‘보부상 요베’와 뜻을 모은 다섯 명 중 세 명은 마을 곳곳에 흩어져서 광장에 자리를 폈음을 알리고 다녔다. 이 사람 저사 사람 필요한 것을 묻기도 했다.

    있든 없든 무조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험상궂은 세제본’은 요베와 함께 있었다. 얼굴이 험악한 세제본은 몸도 마르고 작아서 사악해 보였기 때문이다.

    요베가 그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했다. 진상을 쫓기 위함이었고, 싸움도 잘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르겠지만,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용병을 고용한 것과 같지.’

    ‘산골 상단’의 수익을 나누는 것이었기에 용병 하나 고용하는 것보다 싸게 치는 것이었다. 세제본은 뒤에서 뒷짐을 지고 요베가 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하고 있었다.

    오시오! 오시오! 보부상 요베가 왔소!

    자리를 편 곳의 밖으로는 궁색하게 만든 나뭇가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구경할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한 사람씩 서비스하는 것을 좋아하는 요베의 생각이 담긴 것이었다.

    내가 찾는 물건이 있다던데?

    뭘 찾으시오? 말만 하시오!

    굵직한 자물쇠를 찾소. 대장간에 의뢰하려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한 주먹 하는 자물쇠를 보여줬지만 고개를 저었다.

    더 굵은 것은 없소?

    없소! 다음!

    아니, 있다며! 분명 있다고 했다니까! 이 자물쇠가 끝이야? 다른 건 없어?

    역정을 내는 고객을 보며 요베가 세제본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가 단번에 나서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마을 사람은 순식간에 엉거주춤 기세를 줄이다가 이내 헛기침하며 몸을 돌렸다.

    ‘잘한다, 잘해. 하하!’

    요베가 웃음기가 만연해서 세제본의 양 어깨를 잡아서 뒤로 가게 만들고 한껏 목청을 높였다.

    다른 사람 오시오!

    물물교환은 대부분 가격이 제법 고정적인 가죽이나 광물로 이루어졌고, 때때로 상태가 좋은 신발 같은 생필품과도 바꾸기도 했다. 화폐를 주면 가격을 더 내려준다고 크게 말하기도 했다.

    투둑. 툭.

    해질녘이 되자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요베와 세제본을 비롯한 보부상들은 서둘러 짐을 싸 빈집으로 향하였다.

    우비가 어디 있더라.

    저녁은 먹고 가야지.

    대충 빵으로 때우고 가야 해. 큰 건이라니까.

    ‘보부상 요베’가 아주 서두르자 세제본이 흥미를 가졌다. 다른 세 사람은 밥을 먹으려는 듯했다.

    밥 먹고 쉬어. 나랑 세제본만 갔다 올 테니까.

    큰 건이라며? 나도 같이 가.

    빵 하나에 미지근하게 아직 끓지도 않은 수프를 한 입 먹은 ‘막내 제큰’이 따라나섰다. 나머지 두 사람은 피곤한지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빗줄기는 굵직했지만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한참 더 내리겠는데…….

    세제본의 중얼거림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목장으로 가는 길은 빗물이 내리면서 질척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꽈당 하고 넘어질 수 있었다.

    어엇!

    ‘막내 제큰’이 미끌거리면서 휘청거렸다. 주르륵 미끄러지고,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조심해.

    요베의 말에 제큰이 알겠다며 소리를 한 번 냈다.

    목장에서 가축이라도 살 거야?

    아니. 이 마을에는 간이 배 밖으로 나간 사냥꾼이 하나 있거든.

    비가 내리면서 목장을 운영하는 세르낙과 할다낙은 모두 집에 있었다. 또한 드낙도 날씨가 흐려서 숲에 오래 있지 않았다. 태양과 달이 없는 숲속은 어둠이 내려뻗기 좋았고, 두려운 곳이었다.

    드낙은 이미 한 번 ‘진짜 어둠’을 경험해 보았다. 그만큼 환경에 따라서 자신의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노련함을 가졌다.

    열다섯 살에 불과했지만 드낙의 키는 170cm가 넘었고, 실전을 여러 번 경험한 것에 ‘센다빌의 백병전술’ 때문에 기세가 대단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누구도 그를 열다섯 살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마적 습격’ 이후로 사람이 변했다고 말하는 마을 사람도 많았다. 세르낙과 할다낙은 이미 드낙을 어엿한 한 명의 남자로 여겼다.

    누구시오?

    보부상 요베입니다!

    몇 번이고 이곳에 방문했던 요베였다. 드낙이 ‘깊은 숲’에서 가져오는 가죽은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술이 고프다.’

    아주 좋은 통가죽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파는지 말하다가 그만 실제 판매 가격을 말해 버린 것이다. 그 덕에 그 물건, 그 큰 건에 대한 흥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첫째로 몸집이 커서 가죽이 컸다. 그것만으로도 웃돈을 받고 팔 수 있었다.

    둘째로 통가죽이 대부분이고, 바람구멍도 적었다. 통으로 가죽을 능숙하게 썰어 놓는 드낙의 기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만, 세심함이 요구되는 것이라서 모든 사냥꾼이 하는 일은 아니었다. 또한 바람구멍이 적거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안쪽에 상처를 내어서 잡기 때문에 ‘박제 가죽’으로 쓰기에 아주 좋았다.

    ‘박제사들이 줄을 선다.’

    보부상 요베는 이미 드낙의 통가죽으로 이득을 제법 본 적이 많았다. 어느 박제사든 ‘보부상 요베’라고 말하면 선뜻 문을 열어줄 정도였다.

    드낙! 네 손님이다!

    예에에!

    소리가 나며 드낙이 2층에서 내려왔다. 그의 모습을 본 요베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폈다. 고요한 물웅덩이에서 몇 번이나 연습한 ‘상인의 얼굴’은 그의 주특기였다. 동글동글해서 웃음이 아주 잘 어울렸다.

    ‘돈덩이가 내려오는구나!’

    희희낙락하는 요베와는 다르게 세제본은 얼굴을 굳혔다.

    ‘피 냄새…….’

    드낙의 기세와 풍채에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사냥꾼 특유의 짐승 피 냄새가 아니다. 인간을 몇이고 도살한 놈들의 기세가 조금 뒤섞여 있었다. 그것을 절로 알았다. 세제본은 거친 놈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요베 씨. 잠시 우비를 가지고 올 테니,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물건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법 큰 놈이라.

    잔잔한 말투에 세제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풍기는 기세와는 완전히 딴판이네. 거칠게 사냥해서 그런가?’

    요베는 기다리는 사이에 세제본과 뒤에서 생각 없이 멍하게 서 있는 제큰에게 말했다.

    ‘깊은 숲 사냥꾼 드낙’이라는 사내지. 저렇게 보여도 나이는 고작 열다섯 살이야. 하지만 반말할 생각은 하지 마. 대단히 서로 간의 존중을 요구하는 남자야.

    열다섯? 한참 ‘애송이’로 지낼 나이에…….

    막내 제큰이 놀라워했다. 거기에 자신은 ‘막내’라고 불리는데 저 열다섯 살짜리가 ‘깊은 숲 사냥꾼’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깊은 숲에는 야수와 몬스터가 제법 출현하는데, 그곳에서 사냥을 하는 건가?

    그래. 숲 초입에는 함정을 놓고, 깊은 숲에서 사냥을 한다더군. 대단해.

    그들이 쑥덕거릴 때, 새로운 냄새에 자극을 받은 ‘갈색 늑대 도노(Dono)’가 고개만 빼꼼 거리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저거 늑대 아냐?

    늑대치고는 머리가 조금 큰데. 다이어 울프의 새끼인가?

    세제본의 심각한 말에 요베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여기에 사는 놈이야. 야생 늑대랑 다르게 워낙 먹어대어서 몸집이 커졌다더군.

    아하…….

    잡담을 하는 사이에 드낙이 내려왔다. 촉촉하게 젖은 코를 크게 벌름거리며 늑대 도노가 드낙의 옆에 따라붙었다.

    갑시다.

    드낙이 앞장섰다. 목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창고가 목적지였다. 드낙이 몇몇 청년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건축한 개인 창고였다. 물론 대가로 사냥한 것을 내주어야 했다. 청년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서로 협력하고 돕는 것’에 있는 것이지, 공짜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방인은 결코 청년회에 들 수 없었고, 들려면 마을을 위해서 제법 노력을 해야 했다. 락손처럼 ‘범죄 농노’를 열 명이나 끌고 오지 않는 이상은 마을의 텃세에서 휘둘려야 했다.

    ‘범죄 농노’들은 락손이 죽고 나서는 ‘검은 산골 마을’에 소유되어서 청년회 소속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을을 떠날 수 없었지만 결혼까지 해서 마을의 일원이 되고 있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대부분이 빚을 져서 농노가 되었기 때문에 마을에 스며들 수 있었다.

    텅텅!

    자물쇠를 풀고, 쇠사슬을 빼내었다. 창고를 두르고 있는 쇠창살에는 온갖 소음을 내는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화륵!

    창고 안의 세 곳에 고정된 횃불에 불을 붙였다. 안으로 들어선 요베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나무로 된 테이블에 쫙 펴져 있는 곰의 통가죽이었다. 테이블은 6개나 붙여져 있었다. 그만큼 거대했다.

    엄청난 놈이군. 보통 곰이 아닌데?

    몬스터조차도 피하던 놈이었죠.

    드낙이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사냥법을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놈의 머릿가죽을 들어 올렸다.

    목 아래를 베어서 출혈로 죽였죠.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요베는 그렇게 말하면서 통가죽을 꼼꼼하게 살폈다. 빗으로 털을 조심스레 역으로 움직여서 고개를 까닥이면서 바람구멍을 찾았다. 어느 곳에도 없었다.

    아, 여기 뒷다리에 물린 자국이 있군요.

    제 늑대가 물었습니다. 목을 벨 때 신경을 분산시켜야 했거든요.

    그것조차도 털 때문에 가려져 있었고, 오히려 이런 ‘스토리’는 박제사들이 특히나 좋아했다. 요베는 드낙의 말을 들으면서 곰 사냥할 때에 대해서 자주자주 물었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거품처럼 불어나서 전해질 것이다.

    세제본은 혀를 내둘렀다. 곰의 발바닥이 자신 얼굴보다도 컸다.

    이렇게 큰 놈의 목을 벨 생각을 하다니…….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덩치가 두 발로 굳건하게 서는 순간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척추가 쫙 하고 짜릿해졌다.

    으흐.

    팔뚝을 쓱쓱 손으로 비볐다.

    드낙은 그 모습에 흘흘하고 웃었다. 센다빌을 죽였던 숲에서의 경험이 큰 덕이 되었다. 덩치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보부상 요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화 30닢.

    그 말에 막내 제큰이 헉 소리를 냈다. 엄청난 돈이었다. 4인 가족이 은화 하나로 한 달은 알뜰하게 먹고살 수 있었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은화 10닢으로 합시다. 이 가죽, 실로 대단하지만 박제사에게 가져가면 25닢도 겨우 받을 정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요. 이렇게 큰 놈이 시장에 내놓인 적이 없는데……. 아닙니까? 시간을 충분히 들인다면 은화 50닢도 거뜬합니다.

    그렇게 팔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드낙 님께서 멀리 나가셔서 파실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은화 30닢을 가져가기엔 힘들지 않겠습니까? 자주 상인이 이 마을에 오는 것도 아니고.

    은화 20닢은 받아야겠습니다.

    보부상 요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온갖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막내 제큰과 험상궂은 세제본은 콩닥콩닥거리는 기분으로 그것을 숨죽여서 지켜보았다.

    15분이 넘도록 이야기를 했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보부상 요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화 15닢이 아니면 안 하겠습니다.

    그럼 은화 20닢이 준비되면 다시 찾아오시오.

    드낙이 그리 말했다. 요베는 손을 떨었지만 이내 주먹 쥐고 우비를 썼다. 이미 결렬했는데, 다시 협상하려 한다면 드낙은 또 돈을 올릴 것이다. 사냥꾼이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여겼다.

    ‘그도 오랫동안 방치는 하지 못할 거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어.’

    아주 큰 놈이었다. 시간을 들이면 금화 1닢도 가능했다. 혹은 큰 상단에 은화 60닢에 넘길 수도 있어 보였다.

    허탕을 친 채 빈집에 돌아왔지만 요베의 표정은 밝았다. ‘큰 놈’을 직접 보니 실로 대단했다.

    거래에 실패했는데 왜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세제릭의 말에 요베는 신나게 이야기해대며 데운 술을 마시고 빵을 뜯었다.

    좋을 수밖에. 그런 큰 놈은 어디 가든지 환영이야. 못해도 은화 40닢을 받을걸.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10닢을 내렸다. 너무 크게 이야기했다가 못 받으면 자신의 체면만 구겨지기 때문이었다.

    40닢이면 그냥 20닢 주고 사버리면 되잖아.

    세제본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빈집에 모인 이들에게 요베가 일장 연설을 늘어뜨려 놓았다.

    보부상에게는 동화 만지는 게 일이야. 동화도 못 잡을 때가 있어. 오늘 물건 팔면서 은화 구경이라도 한 녀석이 있나?

    …….

    요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보부상에게 큰 건은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야. 그가 왜 ‘깊은 숲 사냥꾼’이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이런 시골에 사는 사냥꾼이야. 밖에 나가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 그때까지 확실하게 이득을 봐야 해.

    나이가 열다섯이니, 그 점을 노리자는 뜻이군.

    세제본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출세를 원해도 나이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드낙에 대한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 중에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락손에게 검술을 배운 것부터 모든 정보를 술잔을 기울이며 얻어낸 것이 ‘보부상 요베’였다.

    요베는 늦은 저녁 식사와 데운 술을 마시며 드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산골 상단’이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드낙은 좋은 고객이어야 했다.

    ‘길을 들이는 것이지.’

    두런두런 일을 하고 늦은 밤이 되었고, 세제본은 빈집을 나가서 그가 짐을 풀어놓은 곳에 다시 들어섰다.

    화덕에 불을 피우고 자리를 고쳐 잡는 사이에 자정이 넘으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소리와 냄새가 멀리 가지 못하는 날씨지.’

    그가 가슴 안쪽의 단검을 더듬었다. 옛날의 나쁜 습관이 삐쭉하고 튀어나왔다.

    ‘험상궂은 세제본’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단검이 쥐여져 있었다. 불로 달구고, 비에 살살살 적신 상태로 물 묻은 돌로 슥슥 갈았다.

    솩! 쏵!

    여기에는 10여 분을 투자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신속이 최우선이었다.

    ‘쇠창살을 단검으로 뜯어야 해.’

    다른 곳에 가기에는 동선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윽!

    닫힌 나무 창문으로 밖을 이리저리 주시하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곰 가죽을 넣을 상자가 필요했다. 아주 큰 상자가 필요했다. 당연히 그것도 있었다.

    덜컹! 스슥!

    보부상용 나무 상자가 쩍 하고 열렸다. 세제본이 짊어지는 보부상용 가방이었고, 팔아야 할 물건이 가득했다.

    ‘조심, 조심.’

    그곳에서 말끔하게 하나씩 꺼내서 조심스럽게 바닥 놔두었다. 자신이 몸을 뉘었던 천에 놓았다. 또한 습기를 우려해서 누더기 천 자투리로 덮어 놓기도 하였다.

    ‘충분해. 이런 폭우에서도 보부상 상자는 특출하지.’

    폐기름으로 둘러치고 며칠이고 며칠이고 함께했던 중고 보부상용 나무 상자를 들쳐 멨다. 폭우가 심했기에 위에만 옷을 걸쳤다. 빗줄기에 제대로 맞으면 폐기름으로 둘러치고 몇 년이나 사용한 중고품이라도 물이 침투할 수 있었다.

    ‘후우.’

    단검을 가슴속에 품으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주변은 빈집들이 제법 있었고, 하늘에는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둑놈들이 활개를 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세제본은 폭우 속에서 움직였다.

    ‘늑대는 볼 것도 없다.’

    후각이 발달한 늑대는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X밥이나 다름없었다. 쫑긋 세워져서 청각을 듣기도 좋은 늑대 귀 또한 빗소리가 자신의 발소리를 지워줄 것이다.

    흙 내음과 비 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의 냄새를 맡는다? 어렵다. 집 안에서 어찌 자신을 볼 수도 없었다.

    ‘안 들킬 자신이 있다.’

    그러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험상궂은 세제본’은 창고를 털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잡도둑부터 시작해서 인간 백정들이 넘쳐나는 곳을 거쳐 여기까지 온 막장 인생을 겪은 자였다. 험상궂은 얼굴로 시작했던 깡패 짓으로 시작된 인생 내리막길의 끝은 보부상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나쁜 손버릇은 또 도졌다. 은화 50닢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쏴아아아―!

    미친 듯이 내리는 폭우에서도 세제본은 능숙하게 ‘드낙의 개인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은 것은 그의 날렵한 균형 감각 덕이기도 했고, 경험이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둑은 비 오는 날을 가장 좋아한다. 부상의 위험보다는 걸릴 위험을 줄이기 때문이다.

    처르렁, 철컹!

    창고를 두르고 있는 쇠창살을 한 번 잡아당겨본 세제본은 능숙하게 견적을 냈다.

    ‘단검으로 끊어내려면 좀 어렵겠는데.’

    철 자체가 탄성이 있는 것이 접쇠나 담금질을 한 강철을 사용한 듯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캉!

    캉!

    캉!

    세제본이 단검을 세 번 내려쳤다. 그러고는 끊어지지 않자 폐기름을 가죽에 먹인 중고 보부상 나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단검을 쥐었다.

    크흡!

    체중을 실어서 달달달 손을 떨었다. 뚝 하고 부러졌지만 고작 하나뿐이었다.

    ‘젠장.’

    세제본의 개지랄이 시작되었다. 단검으로 쑥쑥 톱질을 하기도 하고, 체중을 실어서 껑충껑충 뛰기도 했다.

    어엇!

    미끌어져 크게 위험할 뻔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까마귀가 입을 쩍 벌렸다. 하도 잠을 많이 자서 잠이 오지 않았다.

    목장의 2층에 있는 드낙의 방에서 카이야가 눈을 꿈뻑이면서 나무 창문을 제 맘대로 살짝 열어놓고 털을 고르고 있었다.

    최근 사춘기가 온 것처럼 구는 카이야 때문에 드낙은 ‘갈색 늑대 도노(Dono)’와 사냥을 하는 게 빈번했고, 덕분에 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는 것이 카이야였다. 아침에 슬쩍 일어나서 밥 먹고 날아올라 드낙의 침대에서 자는 게 일상이었다.

    또한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슬슬 드낙을 ‘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칭얼대면 과일과 육포가 나오고, 이제는 밋밋해서 질린 곡물 가루를 발로 슥슥 밀다 보면 말린 옥수수가 떨어졌다.

    까악!

    한껏 소리를 내지른 카이야는 세제본이 하는 것을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드낙의 개인 창고’가 무엇인지는 잘 안다.

    똑똑하다면 동물 중에서도 원탑이라고 꼽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 검은 까마귀였다.

    카이야는 단번에 드낙에게 날아가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부리로 어지럽혔다. 드낙은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불을 한껏 높였다. 카이야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카이야가 버둥거리면서 일어나서 발작하듯이 머리를 털었다.

    악! 뭐, 뭐야!

    크르르, 컹!

    드낙의 머리로 날아올라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머리를 쿵 하고 찍고 부리로 이마를 쿡 하고 찔렀다. 잘 자는 중에 고통이 느껴지니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카이야의 날개 소리에 그의 표정이 야차처럼 흉악해졌다.

    더불어서 놀란 도노도 소리를 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해졌다. 드낙은 상황을 파악했다.

    이 조류 대가리가?

    깍!

    카이야가 나무로 된 창틀에서 날개를 쿡 하고 허공에 찍었다. 비가 우수수 내리는 곳에서 나무 창문이 반쯤 열린 채 있었다. 드낙은 한숨 한 번 쉬고 창문으로 향했다. 인간의 시야로는 폭우와 어둠 속에서 250m를 꿰뚫을 수가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뭐야?

    카이야는 답답하다는 듯이 개인 창고를 가리켰다. 하지만 드낙은 영문을 모를 뿐이었다. 조류의 색채 없는 시야는 명확하게 세제본이 허공으로 양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단검으로 창고의 옆쪽을 공략하는 게 보였는데 이 멍청한 인간놈은 모르는 것이다.

    인간의 동공 확장과 까마귀의 동공 확장에도 차이가 분명했다. 빛을 흡수하는 데에도 양적으로 차이가 났다.

    드낙은 카이야가 꿀밤을 맞아도 바락바락 대들면서 개인 창고를 가리키자 이 막장 까마귀의 의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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