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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15권
메모라이즈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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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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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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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15권 - 로유진

    1. 뭐예요, 그럼 안 해요 (2)

    …….

    …….

    그렇게 약간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들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애꿎은 목울대만 움직이고 있을 즈음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피로함이 감도는 고려 로드의 목소리가 나직이 회의실을 울렸다.

    일단 그 말을 확인해 보고 사실이라면… 진실의 수정을 준비해야겠군.

    뭐라고? 김승현이 부랑자? 이 자식, 예전에 황금 사자에서 받아준 놈 아니에요?

    맞습니다.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탈퇴 선언할 때 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소집령은 끝났다. 백서연이 자신이 알고 있는 부랑자들의 말을 실토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효을은 소집령의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회의실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고연주와 백서연에게 달라붙어 그녀가 말하는 명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이었다.

    머셔너리 로드.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왔는지 약간 뒤에 한소영이 초연히 서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보는 듯하더니 이내 어여쁜 입술을 떼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은요. 제가 한 건 별로 없는데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머셔너리 로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정말로 저 부랑자의 말대로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이라는 말을 들어보니 한소영도 아직 긴가민가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사용자들의 눈을 피해 버젓이 클랜 내에서 활동하던 부랑자들이었다.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추후 놈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예상하는 건 아무리 한소영이라도 어불성설이었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까 들어보니 이스탄텔 로에는 부랑자들이 침투하지 못한 것 같던데요.

    네. 불행 중 다행이죠. 다른 클랜은 상황이 다른 것 같지만…….

    한소영은 가슴 아래로 팔짱을 끼어 풍만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머셔너리 로드.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잠깐 이야기를…….

    수현아.

    그때였다. 등 뒤로 이번엔 형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 * *

    안솔은 현재 상황이 지극히 불만스러웠다. 언니인 이유정을 제치고 수행 인원으로 선발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소집령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하는 중이었다. 회의실에 들어와 한 일이라곤 사용자들의 시선을 견디며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분명 뭔가 중요한 분위기였다는 건 느꼈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모른다. 그저 가슴속으로 뭔지 모를 서러운 감정만이 차오를 뿐. 그렇기에 안솔은 뚱한 기분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랜만에 생떼를 부리리라 단단히 마음먹고는 어딘가에 있을 김수현을 찾았다.

    아니,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쾅!

    이 빌어먹을 자식!

    클랜 로드!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명색이 간부라는 자식이!

    우선, 우선 확인을 해봐야지요. 그리고 저희만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일단은…….

    바닥을 내려찍는 거친 소음과 함께 걸걸한 목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안솔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지만, 새가슴은 이미 크게 놀란 상태였다. 안솔은 반사적으로 소음의 진원지를 쳐다봤다가 이내 울상을 지었다. 회의실의 중앙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흉포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꾹!

    스멀스멀 불안감이 차오른다. 안솔은 딸꾹질을 하는 입을 막으며 재빠르게 김수현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속을 점령했던 불만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상태였다. 그저 1분이라도 빨리 김수현의 옷깃을 잡아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게 현재 심정이었다.

    잠시 후, 안솔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수현을 찾을 수 있었다. 이윽고 ‘어디서 감히’라는 표정으로 김수현에게 걸어가는 아주버님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얼른 합류할 생각에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그때였다.

    얘.

    억지로 꾸민 것 같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설픔이 느껴지는 자상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안솔은 막 떼려던 걸음을 멈칫했다. 그리고 찬찬히 돌아보자 포근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 이효을이 있었다.

    저, 저요? 딸꾹!

    그래. 거기 너. 혹시 네가 머셔너리 클랜원 안솔이니?

    혹시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안솔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클랜명과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눈앞의 여성이 자신을 알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안솔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문득 안솔은 스스로가 참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다.

    얘는. 왜 그렇게 무서워하니? 나야, 나. 이효을. 예전에 한번 봤었지?

    네에.

    얼굴에는 ‘해치지 않아요~’라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지만, 이효을의 눈동자는 기이한 열망으로 이글거리는 중이었다. 안솔은 침을 꿀꺽 삼키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이효을이 두 걸음 다가섰다. 그것도 아주 빠른 발놀림으로. 안솔은 당황했다.

    이윽고 코앞까지 다다른 이효을은 안솔의 가녀린 어깨를 쥐곤 농도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잠시 언니랑 얘기 좀 할까?

    따, 딸꾹.

    이어진 이효을의 말투는 뭔가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해밀 로드 김유현입니다.

    처음 뵙네요. 이스탄텔 로 로드 한소영이에요. 반가워요.

    찌릿!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형과 한소영은 서로 손을 스쳤다. 악수를 한 게 아니라 그저 손끝만 가볍게 닿고 다시 거둔 것이다.

    이윽고 서로를 냉랭한 눈으로 응시하는 둘을 보며 나는 굉장히 어색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오고 가는 말은 예의 바르지만, 각자의 눈동자는 차갑게 타오르고 있다. 왠지 괜히 소개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1회차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형과 한소영을 잇고 추후 머셔너리, 해밀, 이스탄텔 로 세 클랜의 공조를 구축하려는 나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한소영이라면 형을 양보할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형의 태도에 문제가 있기는 했다. 오자마자 이건 웬 도둑년이냐는 시선으로 은근히 한소영을 쳐다봤으니까. 그리고 눈치 빠른 그녀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당연히 싸늘한 눈빛으로 형의 시선을 마주했고, 그에 따라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에서 형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오른팔을 붙잡는 기척이 느껴졌다.

    흐흠. 수현아. 지금 잠깐 시간 있어?

    응? 나 지금 바쁜데. 마침 이스탄텔 로 로드랑 이야기를…….

    이 녀석. 요새 들어 친형한테 연락도 없고, 클랜 하우스에도 오지 못하게 하고. 이 친형은 정말 섭섭하구나.

    …….

    형은 ‘친형’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마치 누가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에 질세라 내 왼팔을 아주 살짝 붙잡는 기척 또한 느껴졌다.

    머셔너리 로드. 아까 했던 얘기를 이어서 하고 싶어요. 단둘이서요.

    이런. 조금 급한데.

    둘은 나에게 얘기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나를 통해 서로에게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툭 까놓고 말해 보자면, 한소영의 말은 ‘꺼져요.’였고 형의 대답은 ‘싫은데.’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아직 10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1분이 흐른 것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분위기는 더더욱 가라앉고 있었다. 카리스마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소영이지만, 형도 만만찮다.

    다들 얼굴은 태연해 보여도 이미 전투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마치 얼음과 얼음이 맞부딪치는 착각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렇게 불편한 흐름이 이어지는 도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현아. 너 얼마 전에 뮬에서 탈출했었잖아.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형이었다. 뭔가 좋은 건수를 잡은 듯 입가에는 옅은 미소까지 걸려있었다. 형은 한소영을 슬쩍 흘겨보고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구조대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몇 명이 여기 와있거든. 잠깐이면 되니까 같이 가지 않을래? 그 사람들이 너를 보고 싶어 해서 말이지. 백서연을 포로로 잡은 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하더라.

    ‘와. 진짜 유치하다.’

    형의 말을 듣자마자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진짜 치사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괜히 그런 말을 꺼냈을 리가 없었다. 쉽게 말하면 형은 구조대 참가를 명목으로 한소영을 떼어내겠다는 소리였다.

    이스탄텔 로가 대표 클랜이기는 해도, 따지고 보면 머셔너리는 자유 용병 클랜이니 구조대에 참가할 어떤 의무도 없었다. 물론 설마 왜 너는 참가하지 않았냐, 이런 뜻으로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한소영을 주춤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사유가 될 수 있었다. 그녀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하겠지만.

    한소영은 처음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나도 조금 놀랐다. 그러나 역시나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이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바로 낯빛을 고치고는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형을 빤히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얘기해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윽고 한소영이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모습이 사라질 즈음, 옆에서 형이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현아. 조심해라. 아까 멀리서 보니까 가관이더라.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 걸까.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며 시선을 돌리자 제법 진중한 빛을 띠고 있는 형을 볼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가관인데?

    못 봤어? 너랑 이야기할 때 갑자기 팔짱을 끼고 가슴을 일부러 드러내더라. 그리고 눈은 갑자기 왜 깔아? 딱 봐도 끈적거리고 색기가 넘치는 게, 바로 답 나오지. 네가 이제 유명해지려고 하니까 유혹하고 이용하려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방금 전 상황을 겪은 나로서는 고운 말투가 나갈 리 없었다.

    저 여자가 모니카의 대표 클랜 로드라고 했지? 안 되겠어. 수현아. 원래는 그냥 놔두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프린시카로 오는 게 나을 것 같다. 너무 느낌이 안 좋아.

    그러나 형은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열변을 토했다.

    쓸데없이 가슴만 커서는……. 속이 보인다. 보여.

    이윽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혀를 차는 형을 보며 나는 차분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 그럼 나는 클랜원들에게 ‘한소영의 가슴이 쓸데없이 크므로 모니카를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아주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팔을 붙잡고 있는 형의 손을 거세게 쳐내었다.

    수, 수현아?

    나중에 나랑 얘기 좀 해.

    너 갑자기 왜…….

    장난하는 거 아냐. 그럴 기분도 아니고.

    내 눈빛에 담긴 진심을 읽었는지 형은 애꿎은 눈만 끔뻑였다.

    나는 형을 날카롭게 한 번 쏘아보고는 한소영이 나간 방향으로 바삐 걸음을 놀렸다.

    이로써 소집령은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프린시카에서 모니카의 클랜 하우스로 다시 돌아온 상태였다. 이래저래 말 많고 탈 많은 소집령이었지만, 아무튼 원래 목적했던 바는 모두 전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그들 스스로 내부를 가다듬고 본래 계획했던 것들을 실행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래.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홀짝!

    흥흥.

    나는 내 눈앞에서 음료를 들이켜는 이효을을 보며 이마를 짚어야 했다. 원래는 소집령에서 형에게 떼어놓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몰래 꼭 할 말이 있다고 애원했고, 이것만 들어주면 다시는 머셔너리에 가입하겠다고 조르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걸며 기어이 따라왔다.

    그러더니 오자마자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러니까, 안솔이 북 대륙의 수호자로서 재능이 있다고?

    응, 응. 그렇지.

    그래서 어쩌라고?

    안 그래도 형의 일로 마음이 상해 있었는데, 또 문제가 터지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이효을은 수호자를 떠넘기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양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다 해놨으니까 얘한테 들으면 되겠네. 아니, 미래의 수호자님에게. 호호.

    이미 약간 짐작하곤 있었지만, 직접 얘기를 듣자 내심 입맛이 씁쓸했다. 원래는 세라프와 대화 후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이효을이 선수를 쳐버린 모양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에 이마를 꾹꾹 누르다가 나는 옆에 조신하게 앉아있는 안솔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예의 해맑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에 볼 수 없던 사명감에 젖은, 비장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효을이 달콤한 말로 구워삶은 게 틀림없었다.

    안솔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그녀답지 않은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갑자기 이런 얘기 들으셔서 당황하신 거 알아요. 하지만 잠시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부탁해요. 네?

    그 말을 듣자 나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만일 이효을이 되도 않은 말로 안솔을 유혹한 거라면 천사들과 일전을 벌이고서라도 그녀를 뺏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안솔의 말을 들어보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 줄 필요는 있었다. 그게 내가 그어놓은 마지노선이었다.

    오라버니. 일단 둘이서만 얘기해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는 안솔의 손길에 나는 차분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많이 걷지는 않았다. 안솔은 이효을이 있던 집무실을 나가더니 복도에서 걸음을 멈췄고, 이내 열린 문을 꼭 닫았다. 그러곤 결연함이 엿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오라버니. 먼저 말씀드릴게요. 저 북 대륙의 수호자 하고 싶어요. 저보고 무척 재능이 뛰어나대요.

    안솔. 수호자는 그렇게 만만한 역할이 아니야. 솔직히 갑자기 말해서 당황한 건 맞아. 그러니까 차분히 말해 봐.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들었고, 알고 있는 거지? 응?

    오라버니. 쉬잇! 다 들려요오!

    그때였다. 내가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는지 안솔은 검지를 입술에 일자로 세우고는 집무실을 쳐다보았다. 문을 닫아봤자 마력으로 청각을 돋우면 다 들을 수 있기에 어차피 소용없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전에 뺏기지 않으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던 나로서는 안솔의 반응이 조금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안솔은 후유, 귀엽게 숨을 뱉고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아요.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 일단은 제 장단에 맞춰주시면 안될까요?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단 말이에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유 없이 맞출 순 없고, 난 네 클랜 로드야. 합당한 이유 없이 허락할 수 없어.

    오, 오라버니…….

    안솔은 내 말에 잠깐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다 알고 알고 있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더니 여전히 나지막이 말했다.

    후. 어쩔 수 없죠. 자, 자. 오라버니. 진정하세요. 그리고 들어보세요. 제가 다 말씀드릴 테니까요. 솔이가요, 자세히 얘기를 들어봤는데, 북 대륙의 수호자는 특수한 능력이 굉장히 많다고 하더라고요.

    …….

    어떤 것들이 있냐 하면…….

    이윽고 안솔은 이효을에게 들은 특전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중 주된 내용은 고유, 특수, 잠재 능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안목, 탐사 등 여러 갈래로 나뉜 탐색 능력은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쓸 만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북 대륙의 수호자가 되면 한곳에 얽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정체를 최소한으로 숨기고 남을 도우며 활동해야 하는데, 안솔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삐아삐아 거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약 5분의 시간이 지나고 설명이 모두 끝났다.

    어때요. 정말 대단하죠?

    안솔은 어떠냐는, 매우 의기양양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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