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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캔터베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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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742 pages8 hours

캔터베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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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유럽 문학의 새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중세 영국의 사람과 생활, 문화, 예술, 역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1387년 집필을 시작하여 1400년 초서의 사망으로 중단된 이 책은 성 토머스 베켓의 성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서로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31명의 순례자가 토머스 베켓의 묘소를 참배하고, 기도하기 위해 캔터베리로 떠나기 전에 타바드 여관에 모인다. 여관 주인은 그들에게 한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그들이 말을 타고 캔터베리 대성당까지 순례 여행을 갔다 오는 동안 순례길의 재미를 위해 이야기 내기를 벌여서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에게 한턱내기로 한다. 그들은 여관 주인의 제안으로 순례길에 각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상위 계급에 속한 사람에서부터 하위 계급에 속한 사람까지 다양한 계층을 구성하며, 순례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모인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한다. 독자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의 인간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순례자들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음탕한 것에서부터 도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로우며 중세 영국의 생활상과 인간의 희로애락이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 편의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본서에 담긴 유머와 리듬감, 아이러니와 깊은 통찰력, 그리고 세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독자의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하여 마치 독자가 캔터베리 순례자의 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줄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Dec 13, 2017
ISBN979118714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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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터베리 이야기 - 제프리 초서

    기사의 이야기

    1

    아주 오랜 옛날에 테세우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주인이었으며 통치자였고, 그보다 힘센 정복자는 태양 아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부유한 왕국들을 지배하고 있었답니다. 또한 뛰어난 용병술과 기사정신으로 당시 스키타이¹라고 불리던 용감한 여자전사들인 아마존족의 나라까지 정복했고, 그들의 여왕인 히폴리테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화려하고 멋진 행렬을 벌이며 히폴리테와 그녀의 동생 에밀리를 자기 나라로 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선장군처럼 요란한 연주를 받으며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아테네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1. 흑해 북부지역.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여기에서 나는 테세우스와 그의 군사들이 여자들의 왕국을 어떻게 함락했는지를 자세히 서술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테네 군인들이 여전사들과 벌인 치열한 전쟁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스키타이의 아름답고 용감한 여왕인 히폴리테가 어떻게 공격을 받았는지와, 그들의 결혼식 때 벌어진 성대한 잔치와, 테세우스가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폭풍우에 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지금 내가 경작해야 할 땅이 넓은데,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약한 소들만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의 귀환〉, 워릭 고블 그림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길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할 시간을 나 혼자 독차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 차례가 돌아오면 우리 모두가 각자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누가 이겨서 축제를 상으로 받게 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중단한 부분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테세우스 왕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아테네 근처의 한 마을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옆을 바라보았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젊은 여인들이 둘씩 짝을 지어 길가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커다란 소리로 외치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그렇게 처절한 통곡을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왕의 말고삐를 잡고서야 겨우 울음을 그쳤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 길을 울음으로 망치려는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테세우스가 물었습니다.

    내가 영예를 얻은 것이 싫어서 이렇게 울면서 통곡하는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가 너희들에게 해를 끼쳤거나 모욕을 했느냐? 내가 어떻게 해야 너희들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는지 말해 보아라. 그리고 도대체 왜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지도 말해 보아라.

    그러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가장 나이 많은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창백해서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운명의 여신²이 승리를 선사하시고, 정복자에 걸맞은 모든 영광을 주신 우리의 주인이시여. 우리는 당신의 월계관이나 승리를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신의 자비와 도움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고통과 불행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롭고 고결한 당신의 마음에서 한 조각의 연민을 오려내시어, 우리처럼 불쌍한 여인들에게 내려주소서.

    2. 운명의 여신은 인간의 운명을 수시로 바꾼다. 그래서 수레바퀴로 표현된다.

    여기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예전에 귀족 부인이거나 왕비였지만, 지금은 당신이 보다시피 운명의 여신이 돌리는 뜻하지 않은 수레바퀴 때문에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여인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무런 영화도 누릴 수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보름 내내 자비의 여신이 계신 신전에서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이렇게 울부짖는 이 소첩은 과거에 카파네우스³ 왕의 아내였습니다. 그는 테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정말 저주스런 날이었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여기에서 흐느끼는 여인들은 모두 테베가 포위되었을 때 남편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테베의 통치자인 늙은 크레온은 분노와 부정(不正)으로 가득 찬 나머지 시체마저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학무도한 앙심을 품고 목 잘린 우리 남편들의 시체를 마구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화장시키거나 매장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고 비웃으면서 개들이 뜯어먹게 하고 있습니다."

    3. 테베를 포위했던 일곱 용사 중의 하나.

    이 말이 끝나자 여자들은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면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렸습니다.

    우리 불쌍한 여인들에게 동정을 베푸소서. 그리고 우리의 슬픔이 당신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게 해 주소서.

    테세우스는 이 여인들의 말을 듣자, 말에서 뛰어내렸습니다. 한때 높은 지위에 있던 여인들이 불행하게 몰락한 것을 보자, 그의 마음은 동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팔을 벌려 여인들을 일일이 안아 주고 용기를 북돋우면서, 기사의 명예를 걸고 모든 힘을 다해 폭군 크레온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죽어도 마땅할 크레온을 테세우스가 어떻게 처치했는가를 모든 그리스의 백성들이 알게 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테세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군사들을 소집하여 깃발을 높이 펼쳐들고 테베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테네를 향해 가려고 하지 않았으며, 반나절도 쉬지 않은 채 그날 밤 테베로 가는 길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하지만 히폴리테와 젊고 아름다운 처제 에밀리는 아테네로 보내 그곳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타고 계속 테베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창과 방패를 든 마르스⁴의 붉은 얼굴이 커다랗고 하얀 그의 군기 속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모든 들판에는 마르스의 얼굴이 환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군기와 더불어 테세우스는 크레타 섬에서 처치한 미노타우로스의 얼굴이 새겨진 황금 깃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복자 테세우스는 기사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예부대와 함께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몰았습니다. 테베에 도착하자 병사들은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추었습니다.

    4. 전쟁의 신.

    이 이야기는 간단히 끝내겠습니다. 테세우스는 테베의 왕인 크레온과 정정당당하게 싸웠고, 용감한 기사답게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는 크레온의 병사들도 쳐부순 후 테베를 공격하여 성벽과 대들보와 서까래를 모두 부수었습니다. 그런 다음 여인들에게 죽은 남편들의 유골을 되돌려주어 관습대로 장례를 치르도록 했습니다. 남편들의 시체가 불에 탈 때 그 여인들이 얼마나 통곡했는지 자세히 서술하자면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고결한 정복자 테세우스가 떠날 때 그녀들에게 베푼 엄숙한 행사를 자세히 말하려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나는 되도록 짧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크레온의 목을 베고 테베를 점령하여 테베 전체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게 되자, 훌륭한 테세우스는 그날 밤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테베군이 도주하자, 그리스 병사들은 시체에서 무기를 빼앗고 옷가지를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인 시체들 속에서 두 젊은 기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갑옷을 입고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 갑옷의 여러 곳에는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한 기사의 이름은 아르시테였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팔라몬이었습니다.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있는 몸이었지만, 테세우스의 병사들은 그들의 문장(紋章)과 장비를 보자 그들이 테베 왕족이며 사촌임을 알았습니다.

    약탈군들은 시체 더미에서 두 기사를 꺼내 조심스럽게 테세우스의 천막 안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그들의 몸값을 받고 석방해야 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테네로 보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런 선고를 내린 후, 테세우스와 그의 군사들은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테세우스의 머리에서는 정복자의 월계관이 찬란히 빛났으며, 그는 고국에서 여생을 기쁘고 명예롭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팔라몬과 그의 친구 아르시테는 평생을 옥탑(獄塔)에 갇힌 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그들은 자유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날이 가고 해가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5월의 아침이었습니다. 푸른 줄기에 핀 백합보다 아름답고, 꽃이 만발한 5월보다도 더 싱싱하고 발랄하며, 장미꽃과도 겨룰 정도로 발그레한 에밀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날이 새기도 전에 몸치장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습관이었습니다.

    5월의 밤은 잠자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모든 사람의 가슴이 설레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봄을 찬양하라.’

    에밀리는 가슴속에서 이런 말을 듣자, 5월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새 옷을 입고, 석 자나 되는 금발을 땋아 내려 어깨까지 흘러 내려오게 했습니다. 해가 밝아오자, 에밀리는 정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흰 꽃과 붉은 꽃을 꺾어 아름다운 화관을 만들어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을 생각을 하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은 마치 천사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정원에서 꽃을 따는 에밀리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 두 기사들이 갇힌 거대한 탑은 두껍고 견고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으며, 아테네 성에서 가장 중요한 감옥이었습니다. 이 탑은 에밀리가 산책을 하던 정원과 잇닿아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태양은 밝고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포로 팔라몬은 평소처럼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는 간수의 허락을 얻어, 높이 솟은 탑의 감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이 감방에서는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으며, 또한 화사하고 아름다운 에밀리가 거닐고 있는 푸른 정원도 보였습니다. 포로 팔라몬은 슬픈 마음으로 방안을 서성거리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종종 커다란 소리로 가련한 내 신세야,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며 울부짖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그가 말뚝만하게 생긴 굵고 튼튼한 쇠창살이 쳐진 창문으로 에밀리를 바라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를 보자,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아르시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팔라몬. 왜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 왜 소리를 지른 거야? 누가 널 해치려고 했던 거야? 제발 부탁이니 우리의 운명에 순종하도록 해. 다른 방법이 없어. 이런 고통은 행운의 여신이 준 선물이야. 사투르누스 별과 다른 나쁜 별자리의 흉계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하더라도 헛수고일 뿐이야.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우리는 이런 별자리의 운명을 갖고 있는 거야. 그러니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그러자 팔라몬이 대답했습니다.

    넌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 내가 울부짖은 것은 바로 이런 감옥에 갇힌 내 신세가 가련하기 때문이 아니었어. 내 눈은 가슴까지 파고 들어온 화살에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난 정원을 거닐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았어.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슬퍼했던 것이야. 그녀가 과연 사람인지 아니면 여신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베누스 여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서 팔라몬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베누스 여신이여, 당신은 나처럼 고통 받는 불쌍한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제발 이 감옥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감옥 속에서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 나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폭군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우리 왕족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팔라몬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아르시테도 정원을 거닐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 앞에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팔라몬이 사랑의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아르시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곳을 거니는 상큼하게 아름다운 여자를 보자, 난 단숨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어. 내가 그녀의 자비와 은총을 얻을 수 없다면, 적어도 날마다 그녀를 볼 수가 없다면, 난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팔라몬은 이 말을 듣자 사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게 농담이야, 아니면 진담이야?

    그러자 아르시테가 대답했습니다.

    내 진심이야. 하느님께 맹세할 수 있어. 지금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잖아.

    이 말을 들은 팔라몬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사촌일 뿐만 아니라, 의형제를 맺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해. 네가 신의를 저버리거나 배신을 하면, 넌 평생 떳떳하지 못할 거야. 우리는 죽음이 우리를 떼어놓을 때까지 함께 있기로 서로 맹세를 했어.

    고문을 당해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랑의 문제를 비롯한 다른 일에 훼방을 놀아서는 안 돼. 아니, 이런 것과는 반대로, 네가 나를 필요로 하면 난 너를 도와주어야 하고,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에는 네가 나를 도와주어야만 돼. 이것이 우리가 맹세했던 것이야. 난 네가 그 맹세를 깨뜨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그래서 네게 나의 모든 마음을 털어놓았던 거야.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맹세를 깨뜨리고 내 심장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여자를 사랑하려고 하고 있어.

    아르시테, 난 네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내가 먼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너에겐 나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내 마음을 말했던 것이야. 너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맹세했어. 그러니 기사인 너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도움을 주어야만 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거짓 맹세를 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말 거야."

    아르시테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맹세를 어길 가능성은 나보다 네가 더 많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약속을 어긴 사람은 바로 너야. 네가 그녀를 사랑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녀를 사랑했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여자인지 여신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어. 즉, 너는 영적인 대상을 사랑한 것이었어. 반면에 나는 살아 있는 여자를 사랑한 거야. 그래서 나의 사촌이자 의형제인 너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았던 것이야.

    백보 양보해서 네가 먼저 사랑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하겠어. ‘누가 연인에게 법을 강요하겠는가?’라는 옛 성현의 속담도 들어보지 못했니? 맹세코 말하건대 사랑은 인간들이 만든 법이나 계율보다 훨씬 강한 법칙이야. 따라서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은 인간들이 만든 법이나 계율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매일 깨뜨리고 있어. 사람이 사랑할 때에는 이성(理性)이 소용없는 법이야. 한번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과부이든 처녀이든 유부녀이든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피할 도리가 없어.

    어쨌거나 우리 둘 중의 한 사람이 그녀의 사랑을 얻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영원히 감옥에서 살아야 할 목숨이고, 몸값을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도 없으니까.

    우리는 지금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들처럼 싸우고 있는 꼴이야. 하루 종일 뼈다귀 하나를 차지하려고 싸웠지만, 솔개가 날아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뼈다귀를 낚아채 가는 바람에 결국은 아무도 그걸 차지하지 못했지.

    이봐, 상류층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법이야. 이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네가 원한다면 그녀를 사랑하도록 해. 하지만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거야.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이 감옥 생활을 견뎌야 해. 그러니 각자 기회를 찾는 수밖에 없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시간이 있다면, 두 사람의 길고 격렬한 말싸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기서는 간결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요점만 간추려 말하겠습니다.

    어느 날 페로테우스라는 훌륭한 왕이 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테세우스의 죽마고우(竹馬故友)였습니다. 그는 휴가를 즐기고 동시에 옛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종종 이렇게 먼 길을 오곤 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테세우스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테세우스도 이에 상응하는 사랑과 애정으로 그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너무나 깊고 진실했습니다. 옛 작가들이 말하듯이,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친구도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 함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이니 그만하겠습니다.

    페로테우스 왕은 오랫동안 잘 알고 있던 아르시테를 몹시 아끼고 있었습니다. 페로테우스가 거듭해서 간곡히 애원한 결과, 테세우스 왕은 한 푼의 몸값도 받지 않고 아르시테를 석방하면서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테세우스와 아르시테가 맺은 조건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만일 밤이든 낮이든 아르시테가 테세우스의 왕국에 발을 들여놓아 잡히기만 하면, 칼로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테네를 떠나 급히 조국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목숨이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르시테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자기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울고 통곡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자살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게 너무나 슬프구나! 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이 생활은 예전보다 더욱 가혹하구나. 나는 연옥은커녕 지옥에서 살아갈 신세가 되었구나. 아, 가련한 내 신세야! 내가 왜 페로테우스를 알았던가? 그렇지만 않았더라도 감옥에 갇힌 채 테세우스의 땅에 남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런 절망감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텐데.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지라도, 그녀를 보는 것만도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어. 사랑하는 팔라몬, 이번에는 네가 이겼어. 네 감옥살이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행복이야! 감옥이라니? 아니야, 그건 바로 천국이야!

    운명의 여신은 네가 유리하도록 주사위를 던졌어. 너는 에밀리를 보며 즐거워하지만, 나는 그녀가 없기에 슬퍼하고 있어. 너는 그녀 가까이에 있으며, 재치가 뛰어나고 용감한 기사야. 그러니 변덕스런 운명의 여신이 우연을 통해 조만간 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해 줄지도 몰라.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모든 희망을 빼앗긴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어. 물, 불, 흙, 공기나 이런 요소로 만들어진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하거나 치료해 줄 수 없어. 나는 아마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혀 이 삶을 마감할 것 같아. 생명과 기쁨과 행복이여, 모두 안녕!

    아!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하느님의 섭리나 운명의 여신에게 불평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종종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해. 어떤 사람은 돈이 많지만, 그것으로 인해 죽거나 불치의 병에 걸릴 수도 있어.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지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하인의 칼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지. 이렇게 수많은 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들에게 기도를 하지만 정작 신들에게 무엇을 달라고 원하는지 알 수는 없어.

    우리는 자기 집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모주꾼처럼 행동해. 술 취한 사람은 미끄러운 길로 걷기 마련이야.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야. 우리는 행복을 찾아 무작정 이 세상을 헤매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곳을 찾지 못하지. 이건 우리 모두에게 틀림없는 사실이야. 특히 내게는 그래.

    나는 감옥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이제는 내 사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한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어. 에밀리, 내가 당신을 보지 못한다면, 나는 살아 있는 시체와 다름이 없소. 이젠 다른 방법이 없소."

    아르시테가 석방되어 떠나자, 팔라몬은 너무나 슬퍼서 울었습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던지 거대한 옥탑마저 뒤흔들렸고, 그의 발목을 채워 놓은 커다란 족쇄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쓰라린 눈물로 촉촉이 적었습니다.

    "아, 나의 사촌 아르시테여! 하느님은 우리의 싸움에서 그대가 승리했음을 알고 계셔. 이제 자유의 몸이 된 너는 나의 불행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테베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겠지. 너는 지혜롭고 의연한 사람이니, 우리 백성들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 아테네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과감하게 공격을 하거나 조약을 맺어 에밀리를 아내로 맞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녀를 위해 여기에서 죽어야 할 몸이야. 우리의 가능성을 비교해 본다면, 나는 이곳에 갇혀 죽어가는 목숨이니 네 상황이 나의 상황보다 훨씬 유리해. 너는 이제 감옥에 있는 왕자가 아니라 자유의 몸이 된 왕자야. 하지만 나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울고 슬퍼해야만 해. 게다가 내 마음속은 이루지 못할 사랑이 주는 고통까지 겹쳐, 나의 고통과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갈 거야."

    그러자 그의 가슴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일었고, 그 불길은 이내 그의 마음을 강하게 휩쓸었습니다. 그의 얼굴빛은 회양목이나 불 꺼진 재처럼 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세상을 영원불멸의 법으로 다스리는 잔인한 신들이여! 당신들의 결정과 명령은 단단한 돌에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우리에 갇힌 양 떼보다 더 나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죽으며, 종종 감옥에 갇혀 고통을 받기도 하며,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았는데도 병들어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결백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십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예지와 선견(先見)을 어떤 방법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까?

    오히려 우리 인간들은 짐승들보다 더욱 큰 고통을 받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짐승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법칙에 따라 길을 가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야 합니다. 짐승들은 죽으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지만,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 겪은 고통과 슬픔도 모자라 죽은 뒤에도 울며 지내야만 합니다. 이런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신학자들이 이것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도 한 가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도둑이나 독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활보하며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사투르누스와 유노 여신이 질투의 분노를 느껴 테베의 훌륭한 가문들을 멸하고 두꺼웠던 테베의 성벽을 모두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나는 감옥에 갇혀 괴로운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베누스 여신은 아르시테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으로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제 나는 팔라몬의 이야기를 잠시 멈추어 그를 감옥 속에 있게 해 두고, 아르시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자, 아르시테와 포로 팔라몬의 고통은 한층 더해만 갔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괴로워했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팔라몬은 죽을 때까지 족쇄와 쇠사슬에 묶인 채 감옥에서 살아야 했지만, 아르시테는 테세우스의 영토에서 눈에 띄는 날이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영원히 그 나라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모하는 사람을 영원히 만나지 못할 신세였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여,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아르시테와 팔라몬 중에 누가 더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매일 사랑하는 여자를 보지만 영원히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절대로 사랑하는 여자를 볼 수 없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괴로워했겠습니까? 여러분은 마음대로 판단을 내리시어 선택하십시오. 하지만 나는 시작했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2

    테베에 도착한 아르시테는 자기가 사모하는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었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잃거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마 그의 고통은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겪지 못했고,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그 누구도 겪지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아르시테는 잠도 자지 않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그러자 몸은 막대기처럼 비쩍 말라갔으며, 눈은 움푹 패어 시체 같았고, 얼굴은 잿빛처럼 창백하고 누르스름해졌습니다. 그는 항상 혼자였으며, 온밤을 통곡하며 지내기 일쑤였고, 노랫소리나 악기 소리가 들릴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답니다.

    그의 마음도 너무나 쇠약해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모습도 바뀌어 아무도 그의 목소리나 말투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마치 상상력이 자리 잡은 머리 앞부분에 우울증 체액이 고여⁵ 발광한 사람 같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슬픔에 잠긴 아르시테 왕자의 행동과 성격은 완전히 변해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5. 중세 때 뇌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앞부분에는 상상력이, 가운데에는 이성이, 그리고 뒷부분에는 기억력이 위치하고 있었다. 우울증은 뇌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시테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하루 종일을 소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조국인 테베에서 잔인한 고통과 고뇌를 겪으며 한두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날개 달린 메르쿠리우스 신이 나타나 기운을 북돋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메르쿠리우스는 잠을 자게 하는 수면봉을 손에 들고 있었고, 윤기 흐르는 머리칼 위에는 투구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 신은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를 잠재웠을 때처럼 옷을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르쿠리우스가 아르시테에게 말했습니다.

    아테네로 가거라. 그러면 네 슬픔이 끝날 것이다.

    이 말이 끝나자 아르시테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큰 위험이 도사린다 하더라도 즉시 아테네로 가는 거야. 내가 사랑하고 섬기는 여자를 볼 수만 있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그곳으로 가야지. 그녀 앞에서라면 죽어도 한이 없어.’

    이렇게 마음을 굳힌 그는 커다란 거울을 들어서 자신을 바라보았고, 이내 자기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머리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얼굴은 상사병 때문에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고, 따라서 아테네에 가더라도 자기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남의 의심만 사지 않도록 행동하면 거의 매일 사모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즉시 그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어 가난한 노동자로 변장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가 슬퍼하는지 잘 알고 있던 종자 한 명을 데리고 가장 빠른 지름길을 택해 아테네로 향했습니다. 종자도 그의 옷처럼 초라한 행색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르시테는 궁궐로 찾아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좋으니 일거리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에밀리와 함께 사는 시종장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잔소리 심한 시종장은 날카로운 눈으로 하인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는지 빠짐없이 감시했습니다. 아르시테는 젊고 키가 크며 체격이 좋고 힘도 센 젊은이였기에 무슨 일을 시켜도 잘했습니다. 특히 도끼로 장작을 패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에는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필로스트라트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하인으로 일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에밀리를 위해 한두 해를 보냈습니다. 에밀리의 처소에서 일하는 하인 중에는 아르시테가 일하는 것의 반만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의 성격은 점잖아서 온 궁전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러자 테세우스가 그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직책을 맡긴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느냐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예의바르고 일 잘한다는 명성이 테세우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테세우스는 그를 불러 자기 방에서 일하는 시종장으로 임명하고, 이 새로운 직책에 걸맞은 돈을 주었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매년 그는 자기 조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돈을 송금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썼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돈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전시건 평화시건 훌륭하게 처신하면서 3년을 살았고, 마침내 테세우스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행복하게 사는 아르시테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고 잠시 팔라몬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팔라몬은 난공불락의 어두컴컴한 감옥 속에서 7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고통과 절망으로 초췌해졌습니다. 고통과 비극이라는 이중의 괴로움에 있어서 팔라몬과 견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슬퍼한 나머지 마침내는 그것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보내야만 할 신세였습니다. 그가 겪은 수난과 고통을 말로 제대로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지나가기로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고대 작가들에 의하면, 감옥에 갇힌 지 7년째 되던 5월의 셋째날 밤에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었다면, 일어나야만 하는 법입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팔라몬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빠져나와 아테네를 재빨리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옥리에게 향신료와 꿀을 섞은 술을 한 잔 마시게 했었습니다. 그 술에는 테베산 고급 아편과 마약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술을 마시자, 옥리는 밤새 내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잠을 깨우기 위해 아무리 흔들었다 하더라도 소용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팔라몬은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5월의 짧은 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팔라몬은 몸을 숨기기 위해 근처에 있던 숲 속으로 조심스레 숨어 들어갔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는 환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발길을 재촉하여 테베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테베에 도착하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군사를 일으켜 테세우스와 전쟁을 벌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든지 아니면 에밀리를 아내로 맞이하든지 결판을 내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아르시테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함정에 빠뜨릴 찰나에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온다는 것을 알리는 전령(傳令)인 종달새들이 기쁘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불타오르는 태양이 눈부시게 떠올랐습니다. 온 동녘 하늘이 환한 광채 속에서 미소를 지었고, 햇빛은 풀잎에 달려 있던 이슬방울들을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했습니다.

    테세우스 궁전의 으뜸가는 종자인 아르시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미소짓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5월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잠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발 빠른 말을 타고 궁전에서 2km 떨어진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산사나무 잎사귀나 덩굴나무로 화관을 만들기 위해 숲으로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우연의 장난인지, 그곳은 우리가 조금 전에 말한 그 숲이었습니다. 그는 햇빛을 흠뻑 받으며 큰 소리로 노래했습니다.

    꽃으로 치장한 예쁜 5월이여,

    당신의 꽃과 잎사귀를 환영합니다.

    당신에게 푸른 잎사귀를 받고 싶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말에서 내려 재빨리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덤불 근처에 있는 길을 이리저리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그 덤불은 목숨이 달아날지도 몰라 두려워하던 팔라몬이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숨어 있던 곳이었습니다. 팔라몬은 그 사람이 아르시테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도 그가 그런 생각을 하기란 전혀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 속담에는 ‘들판은 눈이 있지만, 숲은 귀가 있다’라고 했는데, 이런 점에서 이 말은 정말로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침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 않은 순간에 의외의 사건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아르시테는 자기 친구가 덤불 속에 숨어서 꼼짝하지 않은 채, 자기의 말을 모두 들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에 지친 아르시테는 기쁜 노래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이상한 습관입니다. 그들의 기분은 마치 우물 안의 두레박처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어떤 때는 금방 나무 꼭대기로 치솟는 듯하다가도 이내 잡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맑았다가도 폭우가 퍼붓는 금요일처럼 변덕스런 베누스는 그녀의 신봉자들인 연인들의 마음을 산뜻하게 하다가도 잔뜩 먹구름으로 뒤덮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이 다른 주중의 날처럼 아침 날씨가 저녁까지 지속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아르시테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온 날은 저주스런 날이야! 인정머리 없는 유노 여신이여, 앞으로도 얼마나 더 당신은 테베와 전쟁을 할 생각입니까? 카드모스와 암피온⁶ 왕가의 혈통은 이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카드모스는 테베의 창시자요, 테베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혈통이며 왕가의 직계 후손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불쌍하고 가난한 노예이며, 나의 철천지원수를 섬기는 종자입니다.

    6. 테베의 전설적인 창시자들.

    그러나 유노 여신은 나를 더욱 수치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은 아르시테인데 지금은 필로스트라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명조차도 떳떳하게 밝힐 수가 없습니다. 필로스트라트라니, 얼마나 우스운 이름입니까! 오, 잔인한 마르스 신이여! 오, 유노 여신이여! 당신의 분노는 우리의 모든 가족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단지 나와 테세우스의 감옥에서 박해받는 불쌍한 팔라몬만이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사랑의 신 쿠피도는 나를 죽이기 위해 뜨겁게 불타는 화살을 쏘아 내 가슴을 관통시키고 나를 뜨겁게 불태웠습니다. 에밀리여, 그대의 시선은 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습니다. 당신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아무리 슬픈 일을 당해도 기꺼이 참을 수 있답니다."

    이렇게 말한 후 아르시테는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숲 속에서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팔라몬과 아르시테

    팔라몬은 마치 싸늘한 칼이 심장을 뚫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분노로 몸을 떨었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르시테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 팔라몬은 미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잡초 덤불에서 나와 소리쳤습니다.

    못된 배신자, 아르시테야! 이제 넌 내 손에 잡혔어. 네가 감히 내 여자를 사랑하다니! 난 그녀 때문에 크나큰 고통과 슬픔을 참고 이겨내고 있는데 말이야. 너는 나와 같은 피를 나누었고, 내가 수없이 상기시켜 주었던 것처럼 친한 친구가 되기로 맹세했어. 그런데 너는 교활하게도 이름까지 바꾸어 테세우스를 속였어. 이제 우리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돼. 넌 절대로 에밀리를 사랑할 수는 없을 거야. 그녀를 사랑할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나는 바로 너의 원수 팔라몬이란 말이야! 간신히 감옥에서 빠져나온 몸이라 난 무기라곤 가진 것이 없어. 겁내지 마라. 너는 죽을 것인지, 아니면 에밀리를 포기할 것인지 하나를 택해. 어서 선택하도록 해. 넌 도망칠 수 없어!

    팔라몬을 알아본 아르시테는 그의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경멸의 분노로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난 사자처럼 그는 칼을 빼어들고 외쳤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두고 말하겠어. 만일 네가 사랑으로 병들고 미치지만 않았더라도, 또 무기만 옆에 갖고 있었더라도, 넌 살아서 이 숲 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 손에 죽었을 거야. 넌 우리가 서로 맹세를 했다고 말하는데, 난 그런 것 따위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사랑에는 장벽이 없다는 말을 머릿속 깊이 새겨 둬.

    난 네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에밀리를 사랑하고 말 거야. 그렇지만 넌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야. 그러니 애인을 차지하기 위해 정정당당하게 싸우길 바랄 거야. 내가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내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무장을 하고 이곳에 나타나겠어. 네게 필요한 무기와 갑옷도 가져오겠어. 그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네가 갖고, 나쁜 것을 내게 주도록 해. 오늘 밤에는 네가 먹고도 남을 충분한 음식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겠어. 또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옷도 가져다주겠어. 내일 네가 이곳에서 나를 죽이면 에밀리는 네 여자가 되는 거야."

    그러자 팔라몬이 대답했습니다.

    좋아.

    두 사람은 이렇게 약속을 한 후 다음날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쿠피도의 왕국에서는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말로 냉혹합니다. ‘사랑이나 권력은 우정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이는 극히 지당한 말입니다. 아르시테와 팔라몬도 이 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르시테는 곧 궁전으로 달려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밝기도 전에 그는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이 벌일 결투에 적당한 두 벌의 투구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혼자 이 투구를 말에 싣고 숲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정해놓은 시간과 장소에서 아르시테와 팔라몬은 만났습니다. 그들의 얼굴빛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곰 사냥이나 사자사냥을 나갈 때 트라키아 사냥꾼들이 나뭇가지를 헤치고 잎사귀를 밟으며 숲에서 달려 나오는 맹수의 소리를 들으면, 숲의 빈터에 서서 창을 손에 든 채 얼굴빛이 변하며 생각하곤 했습니다.

    ‘여기 지금 내가 죽여야 할 적이 오고 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 맹수가 숲 속에서 나올 때 죽여야 해. 만일 내가 실수하면 맹수가 나를 죽일 거야.’

    상대방이 용기 있는 사람이며 또한 싸움 솜씨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트라키아 사냥꾼들처럼 두 기사의 얼굴빛은 변했습니다.

    인사도 주고받지 않고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은 채, 그들은 상대방이 투구로 무장하는 것을 서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마치 친형제처럼 다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날카로운 창을 휘둘러대며 오랫동안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 누구라도 팔라몬은 성난 사자였고, 아르시테는 무서운 호랑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피가 발목을 적실 때까지 흰 거품을 뿜어내는 사나운 멧돼지처럼 싸웠습니다.

    그럼 그들이 치열하게 싸우게 놓아두고,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운명이란 하느님의 섭리를 온 세상에 실천하는 최고의 대신입니다. 그 힘은 너무나 강하여 모든 사람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더라도 머지않아 이루어지게 되지요. 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한 일도 말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쟁이나 평화 혹은 사랑이나 증오와 같은 우리의 열정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왕인 테세우스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냥 애호가였는데, 특히 5월에 사슴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해가 뜰 무렵에는 침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옷을 입고 몰이꾼들과 나팔수들,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갈 채비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냥 그 자체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사슴을 죽이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때에는 전쟁의 신 마르스를 섬겼지만, 이 시기에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그날은 아주 맑은 날이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름다운 왕비 히폴리테와 처제 에밀리를 데리고 기쁜 마음으로 사냥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초록색 옷을 입고 왕실의 장신구들이 달린 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테세우스 왕은 근처에 있는 숲을 향해 말을 몰았습니다. 그곳에 사슴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슴이 숨어 있을 만한 곳으로 달렸습니다. 시냇물을 건너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왕은 손수 고른 사냥개들과 한두 번 정도 사슴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숲 속의 빈터에 이르자, 왕은 강하게 내리쬐던 햇빛을 가리며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르시테와 팔라몬이 성난 황소들처럼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번쩍이는 칼로 허공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그 칼에 스치기만 해도 우람한 참나무가 단숨에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테세우스 왕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왕은 말에 박차를 가해 단숨에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칼을 빼어들며 소리쳤습니다.

    〈팔라몬과 아르시테의 결투〉, 존 해밀턴 모티머 그림

    멈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을 사형에 처하겠다! 군신 마르스를 두고 이르겠는데, 내 눈 앞에서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 그런데 심판도 없이 마치 마상시합장에서처럼 무섭게 싸우는 너희들은 누구냐?

    팔라몬이 황급히 대답했습니다.

    "폐하, 할 말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죽어도 마땅한 놈들입니다. 저희들은 가련한 포로이며, 저희의 삶은 수많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정의로우신 왕이시며 판관이시니, 저희들에게 한 치의 자비도 베풀지 마십시오. 우선 저를 죽여주신 다음에, 제 친구를 죽여주십시오. 아니면 제 친구를 먼저 죽이셔도 좋습니다.

    폐하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 놈은 당신의 철천지원수인 아르시테입니다. 폐하의 땅에 돌아오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조건으로 이 땅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합니다. 그는 바로 필로스트라트라는 이름으로 폐하의 문전에 접근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폐하를 속여 왔고, 그것도 모른 채 폐하는 그를 시종장으로 임명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저 놈은 에밀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몸이 죽을 날이 되었으니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바로 불행한 팔라몬으로, 몰래 당신의 감옥에서 도망쳤습니다. 저는 당신의 원수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에밀리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죽는다면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죽음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친구도 죽여주십시오. 우리 둘은 모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훌륭한 테세우스 왕이 말했습니다.

    내 판결은 간단하다. 너는 네 입으로 지은 죄를 고백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선고하겠다. 지은 죄를 밝히기 위해 너희들을 고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능하신 홍안(紅顔)의 마르스를 걸고 맹세하건대, 너희들은 죽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여자의 연약한 동정심을 이기지 못해 왕비가 울음을 터뜨렸고, 에밀리와 다른 여자 시종들도 모두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들은 그들이 모두 왕족이었으며, 사랑 때문에 이런 싸움을 벌였다는 이유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며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그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피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자 일제히 소리쳤습니다.

    폐하, 우리 여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면서 모두 무릎을 꿇고 테세우스의 발에 입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테세우스의 분노가 누그러졌습니다. 훌륭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인정이 솟아나는 법이니까요.

    비록 그는 처음에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이내 그들이 싸운 원인과 그들의 죄를 재고했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 그들의 죄를 나무랐지만, 이성을 되찾자 두 사람을 용서해 주었던 것입니다.

    테세우스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흐느끼고 있는 여자들이 마음속으로 불쌍하게 여겨졌고, 넓은 아량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통치자가 죄를 뉘우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오만한 자들을 대하듯이 사자처럼 혹독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이번처럼 경우를 구별할지 모르고 오만과 겸손을 똑같이 다루는 왕은 자격이 없다.’

    분노가 수그러들자 테세우스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을 들고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의 신은 얼마나 위대하고 힘이 센 분이신가! 그의 힘을 당해 낼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이루는 기적을 보면 가히 신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주무를 수 있다. 여기에 있는 아르시테와 팔라몬을 보라. 그들은 내 감옥에서 빠져나왔고, 테베에서 군왕처럼 살수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원수이며 그들의 생명은 내 손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에 이끌려, 두 눈을 뜬 채, 죽을지도 모르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너희들이 잘 생각해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바보 같은 사람이 있겠느냐?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시여, 저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피를 흘리고 있는지 보십시오! 저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다쳤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사랑의 신에게 힘써 봉사했지만, 사랑의 신은 고작 저렇게 보답해주었다. 하지만 사랑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더욱 기막히는 것은 이 엄청난 일의 원인 제공자인 에밀리가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에밀리는 어리석은 철부지 뻐꾹새나 산에서 뛰노는 토끼처럼 전혀 그들의 열렬한 사랑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랑의 보답이 있건 없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은 늙은이나 젊은이나 마찬가지다. 내 자신도 이런 사실을 오래 전에 깨달았다. 나 역시 한창 때에는 쿠피도의 노예였다. 그래서 사랑의 상처를 알고, 내가 파 놓은 사랑의 함정에 여러 차례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여기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하는 왕비와 나의 사랑하는 처제 에밀리를 보아, 너희들이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해 주겠다. 이 대가로 너희 두 사람은 더 이상 내 조국을 해치지 않고 전쟁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친하게 지내겠다는 것을 맹세하도록 하라. 그러면 너희들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겠다."

    아르시테와 팔라몬은 테세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선처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쾌히 승낙하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왕가의 혈통이며 그에 해당하는 부를 누리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의 상대방이 여왕이나 공주라 해도, 적당한 때가 되면 너희들은 그들을 아내로 삼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투와 싸움의 원인인 에밀리의 입장에서 한 마디 말하고자 한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너희가 영원히 싸움을 한다 해도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동시에 남편으로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좋건 싫건 간에 한 사람은 단념해야 한다.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들이 화를 내며 질투의 불꽃을 튀긴다 하더라도, 에밀리는 너희 둘과 동시에 결혼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각자에게 마련된 운명을 따르도록 조정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듣도록 해라. 나는 너희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렇게 제안한다.

    나의 제안은 이런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너희들의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함이다. 물론 너희들은 이 제안을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너희는 지금 이 자리를 떠나 너희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몸값 따위는 요구하지 않을 테니 신변의 위협은 없을 것이다. 그런 다음 정확히 오늘부터 1년 후에 각자 완전히 무장한 기사 백 명을 데려와 마상시합을 벌이도록 하라. 시합에 이긴 사람이 에밀리를 차지할 것이다.

    나는 기사의 명예를 걸고 너희들에게 약속하겠다. 상대방을 죽이거나, 아니면 백 명의 기사에게 도움을 받아 상대방을 시합장 밖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에게 나의 처제 에밀리를 아내로 삼게 하겠다. 나는 바로 이 자리에 마상시합장을 만들겠으며,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너희들 중 하나는 죽거나 포로가 되어야 한다. 그 이외의 다른 결과는 원하지 않는다. 만일 이 제안이 좋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말한 후 행복한 표정을 짓도록 해라. 이렇게 하면 너희들의 문제가 끝날 것이다."

    팔라몬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한 아르시테도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테세우스의 훌륭한 태도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환호했는지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왕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테베의 두 사람은 더욱 고마워했습니다. 그러자 희망에 부풀어 아르시테와 팔라몬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별을 하고 말에 올라 조국으로 향했습니다. 크고 오래된 성벽이 있는 테베로 말입니다.

    3

    테세우스가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나의 부주의를 탓할 것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세상에 그것보다 훌륭한 경기장은 없을 것입니다. 둘레는 직경이 1.6km나 되었고, 주위는 모두 돌담과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모양은 나침반처럼 둥글었고, 좌석은 계단식으로 18미터까지 올라가 있어서, 어디에 앉아도 남의 시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동쪽에는 흰 대리석 문이 있었으며, 이와 같은 문이 반대편에도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1년이란 짧은 시간을 감안한다면 이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그렇게 훌륭한 건물은 없었습니다. 테세우스가 다스리는 나라에는 기하나 산술에 정통한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타지에서 도장공이나 조각가들을 불러들여 돈을 주어 경기장을 설계하고 건설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동쪽 문 너머로 사랑의 여신인 베누스를 기리도록 제단과 신전을 만들어 제사와 공물을 바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쪽 문 너머로는 거의 마차 한 대 분량의 금을 들여서 마르스의 신전과 제단을 치장했습니다. 또한 순결의 여신 디아나를 모실 수 있도록 눈이 부시게 휘황찬란한 신전을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작은 탑 모양의 그 신전은 흰 석고와 붉은 산호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세 신전에 있는 화려한 조각물과 초상화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용모와 자태를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갈 뻔했군요. 우선 베누스 신전의 내벽에 그려진 것부터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노예들이 견뎌야 하는 것들을 그린 감동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잠을 못 이룬 채 한숨을 짓고, 성스러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면서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사랑의 맹세에 포함된 기쁨과 희망과 욕망, 무모함과 아름다움과 젊음, 화려함과 부귀와 사랑의 미약과 그 힘, 거짓말과 달콤한 유혹의 말과 사치와 음모, 손에는 뻐꾸기를 얹고 노란 금관⁷을 쓴 질투의 여신, 잔치와 음악과 노래들, 춤과 기쁨과 즐거움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열거한 것 이외에도 너무나 많아 언급하지 못하고 지나간 모든 사랑의 현상들이 순서대로 벽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7. 노란색은 질투를 의미한다.

    정말이지 베누스가 주로 거처했던 키테라 언덕 전체의 모든 기쁨이 정원을 배경으로 이 프레스코화에 그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정원의 문지기 ‘태만’과 과거에 살았던 나르키소스나, 여자를 질투하여 죽음을 맞이한 솔로몬의 어리석은 행동, 천하의 장사 헤라클레스, 메데이아와 키르케의 마술⁸, 용감무쌍한 투르누스⁹, 그리고 감옥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부자 크로이소스 왕도 빠지지 않고 그려져 있었습니다.

    8.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도와준 마녀이며, 키르케는 인간을 돼지를 변모시킨 마녀로 「오디세이아」에 등장한다.

    9. 아이네이아스의 적으로 라비니아를 사랑한 죄로 죽는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지혜나 돈이나 아름다움, 혹은 간계나 힘이나 용기도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베누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베누스의 올가미에 빠져, 마침내는 번민 속에서 수없이 비명을 지른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지만, 한두 가지 예만 들어도 충분할 것입니다.

    벌거벗은 채 무한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멋진 베누스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배꼽 아래는 수정처럼 빛나는 푸른 파도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에 현악기를 들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신선하고 향기로운 장미 화관을 쓰고 있었으며, 화관 위로는 비둘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베누스의 아들 쿠피도는 날카로운 화살과 빛나는 활을 가진 채 그녀 앞에 서 있었습니다.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그는 어깨에 날개를 달고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이제 마르스 제단의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추운 지방인 트라키아에는 마르스의 가장 큰 궁전이 있습니다. 마르스의 신전으로 알려진 그 음산한 건물의 내부처럼, 테세우스가 세운 마르스 신전의 벽도 온통 그림으로 가득 했습니다.

    첫 번째 프레스코화에는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숲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마디가 두툼하고, 잎사귀도 없이 앙상한 고목들만이 있는 숲이었습니다. 들쭉날쭉하고 흉하게 생긴 그루터기들 사이로 모든 나뭇가지를 꺾어 버리려는 듯이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비탈길로 내려가는 언덕 가운데에는 반짝이는 강철로 만든 힘센 마르스의 궁전이 솟아 있었고, 길고 좁으며 어두운 입구에는 성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문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벽에는 빛이 들어올 만한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단지 한줄기 겨울 햇빛만이 문틈으로 새어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문은 영원불변의 금강석으로 만들어졌고, 단단한 쇠빗장이 가로와 세로로 꽉 잠겨 있었습니다. 이 신전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은 모두 큰 술통처럼 굵었으며,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은 배신과 온갖 책략을 그린 어두운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석탄처럼 잔인한 ‘분노’와 남의 것을 식은 죽 먹듯이 훔치는 창백한 얼굴의 ‘공포’, 그리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옷소매 안에는 칼을 숨긴 모습, 불타는 마구간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 침대에서 행해지는 음흉한 살인, 상처로 피범벅이 되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전쟁, 피 묻은 칼을 휘두르며 협박하는 싸움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이 장소는 신경에 거슬리는 음산한 바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심장의 피로 자기의 머리를 흠뻑 적신 자살자도 있었는데, 그의 머리는 잠자는 도중에 죽은 듯이 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죽음’이 입을 벌리고 서 있었습니다. 신전의 한가운데에는 ‘불행’이 슬프고 불편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광기’가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모습을 비롯하여, 무장 반란과 울부짖는 소리와 격한 분노도 볼 수 있으며, 목이 잘린 채 가시덤불 속에 처박혀 있는 썩은 시체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마르스에게 희생된 수천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 중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빼앗은 먹이를 먹으려고 몸부림치는 폭군과 하수구 같은 도시와 널려 있는 쓰레기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배가 휘청거리는 모습과 사나운 곰들에게 물려 갈기갈기 찢겨 죽은 사냥꾼, 방금 태어난 자기 새끼를 먹어치우는 암퇘지, 커다란 국자를 갖고도 뼛속 깊이 화상을 입은 요리사, 자기 마차 수레에 깔려 죽은 마부들도 보였습니다. 마르스의 불행이 야기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이발사와 푸줏간 주인이나 모루에서 날카로운 칼을 두드려 만드는 대장장이처럼 마르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르스의 신전 위에는 머리 위로 드리워진 가느다란 밧줄에 날카로운 칼을 걸고 왕좌에 앉아 있는 ‘정복’이 보였습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네로와 안토니우스의 죽음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지만, 그들의 죽음은 위협적인 마르스의 예언에 의해 이미 신전에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그리듯이, 누가 살해당할 것이며, 누가 사랑 때문에 죽을 것인지 그의 예언은 모두 그 그림 속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이 예들을 모두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섭고 미친 것 같은 얼굴로 무장한 마르스는 전차(戰車)를 타고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두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고대 점성술과 기하학 책에서 이 별들은 푸엘라와 루베우스로 불립니다. 여기에서 전쟁의 신은 늑대와 함께 그려져 있는데, 늑대는 피로 물든 눈으로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발 밑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르스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붓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순결의 여신 디아나의 신전을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벽은 사냥 장면과 정절과 겸손에 대한 그림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칼리스토가 디아나의 미움을 사서 여자에서 곰으로 변했다가 마침내는 북극성으로 변해 버린 이야기¹⁰도 그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10. 칼리스토가 유피테르에 의해 처녀성을 잃자, 그녀는 큰곰자리로 변했고, 후에는 북극성이 되었다.

    나는 그 이상의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모두 알다시피, 그녀의 아들 역시 별자리인 것을 보면 이 전설이 맞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는 다나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다나는 디아나 여신이 아니라, 나무로 변한 페네우스의 딸 다프네입니다.

    또한 디아나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도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로잡혔으며, 사냥개들이 그가 주인인지도 모르고 잡아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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