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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Ebook231 pages5 hours

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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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엄마의 아픔에서 나를 지키고 싶은
세상 모든 딸을 위한 치유의 심리학

엄마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감정과 관계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후줄근한 옷에 억척 부리는 아줌마? 일밖에 모르고 자식은 방치했던 사람? 아니, 엄마로서의 엄마 말고. 엄마가 소녀이고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청춘이었고, 반짝였고, 꿈이 많았던 엄마는 왜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 책에는 엄마와 갈등을 겪었던 수많은 여성이 나온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어떤 엄마와 딸이라도 이런저런 갈등을 겪는다. 우리는 엄마의 결핍과 상처에 영향을 받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엄마의 잘못을 내 자식에게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일한 해결책은 엄마의 삶을 마치 영화를 보듯 바라보며, 엄마를 한 명의 인간이자 여자로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또한 독립적이고 온전한 인간으로 마음껏 성장해나간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Mar 26, 2021
ISBN9791166812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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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딸의 심리학 - 클라우디아 하르만

    들어가는 글

    온갖 연령의 여성들과 마주앉아 모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던지면 다들 한마디씩 적어주었다. 엄마에 관한 책? 그거 재밌겠네요! 하고 응원을 보내는가 하면, 엄마? 집어치워! 끝났어라며 분노의 메시지를 담기도 했고, 엄마는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아. 늘 다른 걸 원하시지라며 푸념을 적기도 했다. 할머니는 좋지만 엄마는 별로야라고 적은 메모도 여러 장이었다. 때로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 엄마를 살펴드리고 있어요. 엄마에겐 제가 필요해요라고 적은 메모도 있었지만 엄마는 휴식처 혹은 힘들 때 엄마를 뒤에서 꼭 안으면 힘이 불끈 솟아요 같은 긍정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우리 딸이 자라서 엄마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요? 벌써부터 미래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젊은 엄마들의 글귀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여러 생각을 담은 수백 개의 메모를 모았다. 이 작은 메모들은 모녀 관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웅변한다. 모녀 관계는 사랑 주변을 빙빙 맴돈다. 때로는 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때로는 올바른 사랑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며, 또 때로는 온갖 요구와 죄책감이 사랑에 그늘을 드리운다. 가끔은 원치 않았으나 빠져나갈 방법을 몰라 힘들었던 고통스러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 애쓰기도 한다.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오해와 침묵, 질책과 희생, 접촉에 대한 갈망이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 관계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었을까? 엄마는 왜 지금처럼 살아갈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또 어떤 사람인가? 딸인 나는 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 책에서 살펴볼 질문들이다.

    신경학과 애착 이론의 연구 결과가 대답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엄마는 우리와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엄마와의 결합은 우리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스템 이론과 트라우마 연구는 세대를 아우르는 측면을 보지 않고는 관계를 섬세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엄마의 과거, 엄마의 역사는 우리, 나아가 우리의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메모지에는 이런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엄마는 관심 없고, 아빠 이야기를 쓰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많은 여성에게 아빠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중요한 사람이다. 그 여성들이 왜 그런 말을 적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오랜 세월 아빠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성찰했다.

    하지만 결국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건 풀리지 않은 엄마와의 관계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엄마와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딸인 나의 시각에서 탄생하였다. 엄마를, 그리고 우리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독립적인 인생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아빠와 엄마를 둘러싼 질문은 양쪽 다리와 같다. 한쪽 다리만 바라보고 거기에만 힘을 실으면 몸에 문제가 생긴다. 균형을 잘 잡아서 힘차게 걸어가려면 두 다리를 다 사용해야 한다.

    아들은 어떤데요?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이 책은 아들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 많다. 엄마의 ‘태만죄’는 아들에게도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으며, 엄마와의 관계가 왜 그렇게 복잡한지에 대해서는 아들과 딸 모두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애착의 춤>(2장)과 <과거의 메아리>(4장)는 남성들에게도 큰 울림을 줄 것이다. 물론 아들은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 즉 남성성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엄마와의 초기 경험들은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제가 워낙 크고 광범위하다 보니 건드리기만 하고 상세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임신 시기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도 그중 하나이다. 임신 기간은 아이에게는 물론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도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애착의 춤> 부분에서 기본 내용은 설명할 예정이다.

    내 게시판에는 아직도 메모지 한 장이 붙어 있다. 늙은 엄마 — 질병과 간병이라고 적힌 메모지이다. 많은 여성이 연로하신 엄마와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거나 앞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평생 갈등하며 힘들어 했던 엄마를 보살핀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이 문제를 적극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책이 그런 엄마와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엄마와의 관계를 조금 더 느긋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세상 빛을 본 것은 다 내게 영감을 주어 책의 탄생을 도운 여성들 덕분이다. 그들이 들려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과 사연들은 흥미와 감동, 깨달음을 이끌어냈다. 이 책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히 고백해 준 많은 엄마와 딸은 정말로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자신과 엄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익명으로 소개했다 해도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연이 있었기에 구체적이고 풍요로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또 딸로서, 엄마로서 내 모습도 자주 떠올랐다. 때로는 너무 벅찼고 내가 과연 이 책을 마칠 수 있을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장애물을 만날 때면 친구들이 달려와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특히 이 책의 편집을 맡아준 파트리치아 망겔스도르프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녀는 나의 스파링 상대이자 코치였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마다 그녀가 항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녀의 지원이 있었기에 이 책이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 하르만

    2012년 개정판 서문

    2010년 9월에 SWR 라디오방송국에서 라이브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제목이 《그래도 난 널 사랑해. 엄마와 딸, 힘든 관계》였다. 방송 후 나는 엄마들에게서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두가 비슷한 내용이었다. 물론 전 여전히 딸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가 절 피하는 걸까요? 대체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까요? 왜 나랑 안 만나고 싶을까요? 모두가 절망한 여성들이었다. 원치 않는 상황과 맞닥뜨렸으나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이었다.

    스스로 버림받은 엄마라고 부른 여성들도 있었다. 딸이 예고도 없이, 그러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관계 단절은 상처받은 관계의 종착점이다. 딸은 아무 이유 없이 엄마를 자기 인생에서 내쫓지 않는다. 분명 무척이나 힘들고 긴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결별한 딸에겐 대부분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드러나는 중대한 이유들이 있다. 다만 어른이 된 후에야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깨닫고 인정하게 된 것뿐이다. 본질적인 고통을 말할 수 없을 때 모녀 관계엔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 말 하지 않으니 부모는 정상이라고 느꼈을 테지만 아이는 오랜 시간 그저 도덕적인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짜 갑자기 관계를 뚝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이면에는 역시 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대부분 ‘우연히’ 딸이 가족의 진실을 발견한 경우다. 그것이 가족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고, 딸은 가족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 책은 딸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화해의 책이다. 하지만 내게 온 수많은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모녀 관계가 어긋났을 땐 엄마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엄마가 먼저 딸을 향해 발걸음을 떼고 관점을 바꾸고 딸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8장 <더는 못하겠다면>이 그 걸음을 돕는다. 모든 엄마가, 심지어 딸과 잘 지내는 엄마들도 그곳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는 런던의 존 볼비 센터에서 일하는 심리치료사 케이트 화이트와의 인터뷰도 추가하였다. 그녀는 초기 엄마와의 신체 경험이 성인이 된 후 성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녀의 테제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사랑을 이해할 때 비로소 풍성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녀가 보기에 사랑은 질투나 증오보다 더 위험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케이트 화이트와의 대화는 <애착의 춤> 부분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제목을 『엄마는 엄마지Mütter sind eben Mütter』(이 책의 원제)로 바꾸어 새로 나오게 될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이 출간된 후 내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주제를 마지막에 추가하였다. 그동안 내가 받은 편지 대부분은 딸과 연락이 끊어진 엄마들이 보낸 것이었다. 분명 관계 단절은 중요한 주제이고 앞으로 더 많이 논의될 주제이다.

    모녀 관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면모를 가진 원대한 모험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가치가 있다.

    클라우디아 하르만

    2010년, 에센에서

    2019년 개정판 서문

    우리 여성들에겐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엄마’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친밀했던 사람, 애착과 관계를 함께 경험한 사람, 우리 모델이었으며 감정과 신조와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 자기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 엄마의 운명은 우리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엄마는 항상 생각과 대화와 꿈의 대상이다. 쾨젤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낸다고 하여 2008년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초판을 다시 읽어보며 몇 군데 줄이기도 하고 보충하기도 했다. 그사이 이 주제에 대해 신경학과 애착 이론이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내놓았지만 이 책은 여전히 적실하다.

    여기 사연을 털어놓았던 여성들이 나이를 훌쩍 더 먹었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나이가 달라진다고 해서 주제가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보통 더 느긋해지고 이해심과 통찰력도 커지지만 말이다.

    엄마, 할머니와 함께 읽은 후 마침내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독자도 많다. 이 책이 다시 출간되어 가족 문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니 감사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클라우디아 하르만

    2019년 7월, 에센에서

    °다채롭고 적응력이 뛰어난 엄마라는 종種

    엄마라는 종은 세상에서 가장 다채로운 생명체이다. 어떨 땐 괴물이 되었다가, 또 어떨 땐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가, 어떨 땐 무서운 흡혈귀로 변신한다. 온 세상을 떠받칠 듯 강인하다가도 곧 무너질 듯 나약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가도 미워 죽을 것 같으며,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다가도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어떻게 신은 이토록 다채로운 피조물을 창조했을까?

    만약 찰스 다윈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네 엄마들을 보고 환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세상에 저렇게 적응력이 뛰어난 종이 있다니! 자식을 키우는 엄마 종은 항상 사회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한다. 현재 우리 엄마 종들은 연령에 맞는 지능 발달을 중시하고, 특히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 관심을 많이 쏟는다. 또 자식의 운동 능력, 언어 발달, 사회 능력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무엇이든 엄마는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운전기사이고, 심리치료사이며, 영양 전문가이다.

    °전부 내 책임이야!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특수한 능력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엄마만의 능력인데, 바로 모든 실패를 자신이 떠안겠다는 결연한 마음가짐이다.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를 때리면 엄마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이가 너무 뚱뚱하거나 야위어도 혹시 자신이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닐까 고민한다. 자식이 운동이나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가 늦으면 의욕을 고취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못해도, 옷이 찢어져도 다 자기 잘못이다.

    그 책임감은 시한을 모른다. 엄마는 자식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영원히 자기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의 행복은 엄마 덕분이고, 자식의 고단한 인생은 엄마 탓이다.

    우리는 영원히 엄마의 사랑에 의지한다. 널 사랑해. 넌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야. 엄마의 진심 어린 이 말 한마디면 눈앞에 지상 낙원이 펼쳐진다. 그것이 흰머리 성성한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세상 모든 시름은 스르르 녹아버린다.

    엄마 종이 되면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작용이 있다. 있는 힘껏 노력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다. 정성과 노력을 다했어도 무언가 여전히 부족하고, 바로 그 ‘무언가’가 항상 엄마와 자식 사이를 얼쩡댄다. 엄마와 딸은 특히 더 그렇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선 그 ‘무언가’가 빵에 바른 버터처럼 항상 붙어 다닌다.

    엄마의 인생은 우리가 태어나야 시작된다. 우리가 없으면 엄마도 없다. 엄마를 엄마로 만들어 준 장본인은 우리다.

    물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엄마의 시간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빠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엄마한테도 엄마, 아빠가 있다. 내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그들 역시 그들만의 특징을 가진 별종들이다.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이야기

    그럼 우리는? 딸들은 어떤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불평을 한다. 그 누구보다 불평불만이 많다. 늘 뭔가가 부족하다. 엄마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했어야지! 그렇게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불평은 평화를 위협하고 서로를 괴롭히는 화약고이다.

    대체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을까? 한편에는 엄마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딸들이 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착 달라붙어 종일 떨어지지를 않는다. 응, 케이크 맛있어 …… 아니, 아무것도 필요 없어 …… 알았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할게. 딸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 한마디뿐이다. 제발 간섭 좀 그만해! 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엄마가 아닌 그냥 여자, 자식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가 이제 자식 걱정은 그만하고 자기 일을 하거나 밖에서 문화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런 간섭이 그립다는 딸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엄마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나 자기 몸매 가꾸는 데에만 혈안이 된 여자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다. 엄마, 밥 좀 해줘 …… 엄마, 나가면 전화 좀 해 ……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지?

    그런가 하면 자기가 엄마인 양 엄마한테 책임감을 느끼는 딸들도 있다. ‘귀 얇은’ 엄마가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허약한’ 엄마가 어디 길에서 쓰러지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그 반대편에는 난 엄마한테 관심 없어!라고 떠들고 다니는 딸들도 있다. 독립적인 척하며 엄마와의 연락을 피하고 일체의 만남을 거부한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희생’과 ‘그 무엇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오기’ 사이엔 수많은 버전들이 있다.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야라며 엄마에게 화를 내는 딸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를 깔보고 무시하는 딸들도 있다. 엄마를 낯선 사람 보듯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딸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와 매일 전화하고 무슨 일이든 다 털어놓고 손까지 꼭 붙들고 다니는 딸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다정함이 다시 숨통을 죄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엄마와 딸의 관계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격한 감정과 그리움, 기대와 희망이 뒤엉킨 복잡다단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럼 엄마는 어떨까? 엄마 역시 딸과의 관계 속에서 결핍과 결함을 느낀다. 모든 엄마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최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엄마는 이런 내적 갈등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 딸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잘못이 전혀 없는데도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네 카디건 빨아도 되니?라며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어본다. 혹은 불쾌한 심정을 비난과 책망으로 달래보기도 한다. 넌 연락 좀 하면 어디 탈이 나니? 고모 생신이었는데 잊었어? 엄마는 딸을 비난하고 질책하며 불평하고 한탄한다. 혹은 언젠가 딸이 내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조용히 입 다물고 기다린다.

    °딸들이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이로써 우리는 엄마와 딸의 관계, 그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잘못을 떠민다. 그리고 대부분의 딸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처럼 이 책망의 건반을 연주한다. 큰 소리나 나지막한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엄만 내가 필요할 때 한 번도 옆에 없었어. 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 건 다 엄마 탓이야. 엄마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했더라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거야.

    대놓고 말하건 눈빛으로 책망하건, 딸과 엄마는 냄비와 뚜껑처럼 아귀가 딱딱 맞는다. 엄마 역시 자신이 모든 걸 다 잘하지는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주고 싶었던 만큼 다 줄 수 없었노라고 생각한다. 딸들은 이 아킬레스건을 강타한다. 의식을 하건 못 하건 엄마는 죄책감을 느끼고 어떻게든 잘못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 엄마들도 딸을 낳기 전 이렇게 맹세했을지도 모른다. 난 우리 엄마보다 잘할 거야.

    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저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바구니 가득 사랑을 담아 우리에게 건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방해했던 무언가가 있다. 바로 그 ‘무언가’를 이 책에서 살펴보려 한다.

    딸들은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로서의 갈등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식을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지만 동시에 자기 한계도 느낀다.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화와 짜증을 내며 모순된 행동을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는다.

    더 잘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가 우리를 속박하고 안정을 깨트린다.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힘에 부친다. 이런 불협화음 속에서 죄책감이 쑥쑥 자란다. 그것이 많은 여성을 괴롭힌다. 중년 엄마들 입에서 튀어나온 이런 후회를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여기까지가 나쁜 소식, 엄마와 딸 사이를 가로막는 암울한 현실이다. 결핍감, 분노, 경쟁심, 비난, 거리감 혹은 과도한 친밀함이 둘 사이를 지배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여성들에게서도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점은 하나다. 딸도, 엄마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이런 오해와 다툼, 지나친 관심과 불평을 괴로워하면서도 대부분은 그게 정상이려니 생각하며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편하고 안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두 여성이 같은 눈높이에서 동등하게 서로 인정하며 만나는 날은 언제일까? 희망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여성 기자에게 엄마와 딸의 애착에 대해 생각 중이며 서로가 평화롭게 만날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딱 한마디로 잘라 대답했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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