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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만화방: 56편 일본만화로 비정한 세상읽기
하드보일드 만화방: 56편 일본만화로 비정한 세상읽기
하드보일드 만화방: 56편 일본만화로 비정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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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만화방: 56편 일본만화로 비정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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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일본만화를 통해 투영한, 이 비정한 세상을 보라

A보다 반음 낮은 곳에 숨어있는 대중문화의 모든 것.
‘에이플랫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는 일본만화 56편에 대한 리뷰이자 에세이다. 저자 김봉석은 등 다양한 매체의 기자를 거쳐, 문화잡지 와 만화리뷰 웹진 편집장을 지냈고, 오랫동안 영화평론가 및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문화 전방위에서 활약해 온 저자가 지난 2000년대 웹진 에 기고한 만화 칼럼을 묶어낸 것이다. 격주로 7년 넘게 연재한 칼럼을 통해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만화 작품은 물론,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연재 중인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작품을 아우른다. 저자는 독특한 취향의 만화 애호가에서 문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점차 시야를 확장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즐거운 만화’를 발굴하고 권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잊고 있던 만화의 세계에서 새삼 새로운 걸작을 찾아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시선은 책의 백미라 할 만하다. 그는 우리네 세상이 품은 비정함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이를 토대로 캐릭터와 작품의 태도를 분석하고, 사색한다. 그렇게 고단한 여정을 거쳐 마침내 진중한 삶의 의미를 건져내는 순간, 뜻밖의 깨달음과 더불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일상과 청춘의 드라마]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 평범하면서도 이상한 여고생들의 4컷 개그만화 , 괴상하고 웃기는 레스토랑의 일상 소동극 , 청춘의 음악만화 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열정적인 즐거움을 주는 만화를 먼저 살핀다. 반면 전혀 다른 일상과 청춘을 보내는 이들도 놓치지 않는다. 에서는 갓 고등학생이 된 소녀가 겪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입하면서 흔히 ‘감상적’이라고 착각하는 일본문화의 또 다른 축인 ‘폭력성’을 설명한다. 도쿄의 번화가 이케부쿠로에서 펼쳐지는 폭력과 섹스의 현장 에서는 ‘소년’ 마코토가 다양한 범죄를 해결해 나가며 아프게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비정한 현대사회를 스케치한다.

[2. 다른 세계를 꿈꾸다]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와 49회 쇼가쿠칸 만화상 수상 후 끊임없이 각종 기록을 경신했던 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또한 현재까지도 연재중인 의 인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아보고, 에서는 우주로 향한 인간의 끝없는 분투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되짚는다. 에서는 불사의 몸을 가진 방랑무사 만지를 통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 안에 놓인 영원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허무를 이야기한다.

[3. 취미와 직업의 현란한 세계]에서는 일본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에서 이름을 따온 의학만화 과, 1980년대 일본영화계를 정밀하게 그려낸 히로카네 켄시의 으로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은 천재와 범인 간의 대립을 통해 마침내 자격지심을 넘어서는 인생의 다채로운 지점들을 따라가고, 에서는 스포츠카가 아닌 평범한 차로 아키나산 다운힐의 왕으로 군림하는 주인공 탁미의 강렬한 레이싱을 통해 마니아들이 누리는 특별한 즐거움을 논한다.

[4. 어른의 사정이란?] 편에서는 으로 유명한 히로가네 켄시의 과 70년대 절판되었다가 복각된 에로망가 로 거친 세상 안에서 펼쳐지는 어른들의 희로애락을 관찰한다. 에서는 비정한 돈의 세계에서 발버둥치는 대부업체 사람들 안에서 우리네 삶에 서린 보편적인 위태로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5. 미스터리와 범죄의 세계]에서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와 영화 의 원작 만화 로 미스터리 만화의 장을 연다. 이밖에도 의 스토리 작가가 참여한 는 뚜렷한 탐정 역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일본 민담에 방점이 찍힌 색다른 추리의 재미를 찾아낸다. 또한 는 검시관이 바라보는 기구한 삶과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이란 착한 이들의 죽음으로 지탱되는 곳은 아닌지 그 슬픈 진실을 향해 침잠하기도 한다.

[6. 스포츠는 인생의 단면]은 한 격투가의 생애를 담은 부터 여자 야구선수 아소우 하루카가 고교야구 규정과 정면충돌하는 까지, 삶 그 자체나 다름없는 치열한 스포츠의 세계를 조명한다.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최고의 답을 내주는 는 물론,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또 다른 걸작 역시 인생과 맞닿은 스포츠의 정수를 건져낸다.

[7. 우리가 아는 세계 너머의 무엇]에서는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재난과 그로 인한 절대적인 공포의 의미를 심도 있게 파헤치는 ,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현실과 이세계를 넘나드는 만화 , 실존했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등 우리가 아는 세계 너머에서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에이플랫
Release dateNov 12, 2018
ISBN979119652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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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보일드 만화방 - 김봉석

    저자 소개

    김봉석

    영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 현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다.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등에서 기자를, 컬처 매거진 〈BRUT〉와 만화리뷰 웹진 〈에이코믹스〉 편집장을 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기자가 되었고 이후 영화, 만화, 장르소설과 웹소설,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호러〉 〈슈퍼히어로 전성시대〉 등이, 공저로는 〈탐정사전〉 〈좀비사전〉 〈내 안의 음란마귀〉 〈호러영화〉 〈SF영화〉 〈클릭! 일본문화〉 등이 있다.

    목차

    만화의 세계와 일상의 풍경들

    1. 일상과 청춘의 드라마

    ▪ 일상적인 연애의 순간들

    〈미유키〉 아다치 미츠루

    ▪ 사소하지만 모든 것이 담긴 일상

    〈아즈망가 대왕〉 아즈마 키요히코

    ▪ 위험하지만 무해한 일상

    〈헤븐?〉 사사키 노리코

    ▪ 가장 밝은 순간의 가장 어두운 경험

    〈라이프〉 스에노부 케이코

    ▪ 목적 없는, 그러나 절박한 질주

    〈폭음열도〉 다카하시 츠토무

    ▪ 버블 시대의 빛나는 청춘 이야기

    〈도쿄 80's〉 안도 유마, 오시이 토모야

    ▪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벡〉 해롤드 사쿠이시

    ▪ 다정하고 따뜻한 특촬물의 일상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 아치 타로, 야가미 유

    ▪ 위험하지만 순수한 청춘의 날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시다 이라, 아이토 세나

    2. 다른 세계를 꿈꾸다

    ▪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

    ▪ 인생은 등가교환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아라카와 히로무

    ▪ 열혈, 과장, 왜곡의 극한

    〈전략인간병기 카쿠고〉 야마구치 타카유키

    ▪ 소년만화의 정석, 꿈과 우정

    〈원피스〉 오다 에이이치로

    ▪ 압도적인 이미지의 향연

    〈동몽〉 오토모 가츠히로

    ▪ 인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쿄시로 2030〉 토쿠히로 마사야

    ▪ 바다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해황기〉 카와하라 마사토시

    ▪ 우주에서의 인간과 일상

    〈플라네테스〉 유키무라 마코토

    ▪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형과 모범

    〈우주해적 코브라〉 테라사와 부이치

    ▪ 인간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미지

    〈브레임〉 니헤이 츠토무

    ▪ 역사의 너머를 찾아가는 모험

    〈일리어드〉 토슈사이 가라쿠, 우오토 오사무

    ▪ 영원을 살아간다는 허무

    〈무한의 주인〉 사무라 히로아키

    3. 취미와 직업의 현란한 세계

    ▪ 의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헬로우 블랙잭〉 사토 슈호

    ▪ 몰락한 일본영화의 풍경

    〈꿈의 공장〉 야마사키 주조, 히로카네 켄시

    ▪ 엔카와 음악 산업의 한 풍경

    〈엔카의 혼〉 타카타 야스히코

    ▪ 인간을 치유하는 피아노

    〈피아노의 숲〉 잇시키 마코토

    ▪ 미술계 내부를 들여다보는 즐거움

    〈갤러리 페이크〉 호소노 후지히코

    ▪ 자동차 마니아의 놀라운 세계

    〈이니셜 D〉 시게노 슈이치

    ▪ 목숨을 거래하는 교섭인

    〈용오〉 마카리 신지, 아카나 슈

    ▪ 기차와 철도의 모든 것

    〈아이러브 트레인〉 야마구치 요시노부

    ▪ 영국과 메이드의 모든 것

    〈엠마〉 모리 카오루

    4. 어른의 사정이란?

    ▪ 추악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희망

    〈인간교차점〉 야지마 마사오, 히로카네 켄시

    ▪ 70년대 에로망가의 최전선

    〈탈선녀〉 이시이 다카시

    ▪ 중년, 노년의 사랑과 섹스

    〈황혼유성군〉 히로카네 켄시

    ▪ 대부업체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

    〈돈이 울고 있다〉 쿠니모토 야스유키

    ▪ 스스로를 구원하는 사람들

    〈폴리스 스테이션 라쇼몬〉 야지마 마사오, 나카야마 마사아키

    5. 미스터리와 범죄의 세계

    ▪ 악이란 무엇인가

    〈몬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도 없는 죄

    〈올드보이〉 츠치야 가론, 미네기시 신메이

    ▪ 비정하고 황량한 세계

    〈블루 헤븐〉 다카하시 츠토무

    ▪ 민담과 전설 그리고 미스터리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카나리 요자부로, 야마구치 마사카즈

    ▪ 살인수사는 검시에서 시작한다

    〈여검시관 히카루〉 고다 마모라

    6. 스포츠는 인생의 단면

    ▪ 세계 최강 남자의 유랑기

    〈콘데 코마〉 나베타 요시오, 후지와라 요시히데

    ▪ 여성 야구선수의 도전 그리고 승리

    〈와일드 에이스〉 타나카 세이이치, 치바 키요카즈

    ▪ 거리에서 살아남는다

    〈홀리랜드〉 모리 코우지

    ▪ 전설이 된 농구만화

    〈슬램덩크〉 이노우에 타케히코

    ▪ 휠체어 농구의 박력 그리고 리얼

    〈리얼〉 이노우에 타케히코

    7. 우리가 아는 세계 너머의 무엇

    ▪ 우리가 아는 뱀파이어 그 이상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2000〉 타마오키 벤쿄

    ▪ 종말은 인간이 만들어냈다

    〈드래곤 헤드〉 모치즈키 미네타로

    ▪ 악몽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타지카라오〉 모리 진파치, 요시카이 칸지

    ▪ 도발적이고 현란한 뱀파이어 만화의 결정판

    〈헬싱〉 히라노 코우타

    ▪ 이 세계라는 수수께끼

    〈가면 속의 수수께끼〉 우에시바 리치

    ▪ 죽음과 복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스카이 하이〉 다카하시 츠토무

    ▪ 아름답고 신비한 초자연의 세계

    〈음양사〉 오카노 레이코

    ▪ 호러 거장의 소품 단편집

    〈무서운 책〉 우메즈 카즈오

    ▪ 도시괴담의 섬뜩한 공포

    〈좌부녀〉 모치즈키 미네타로

    ▪ 닌자의 기묘하고 폭력적인 세계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 야마다 후타로, 세가와 마사키

    ▪ 악마와 싸우는 미소녀 경찰

    〈특수기동수사대 토코〉 후지사와 토루

    만화의 세계와 일상의 풍경들

    〈씨네21〉 기자로 있으면서, ‘숏 컷’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의 일이다. 대중문화에 대해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여, 내가 좋아하는 만화와 장르소설, 대중음악과 일본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매주 썼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아 연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만이 아니라 ‘숏 컷’에 썼던 만화, 소설, 음악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었다.

    겁 없을 때라 청탁이 들어오면 무조건 썼다. 만화잡지 〈나인〉에 만화 칼럼을, 〈중앙일보〉에 영화음악 칼럼을, 〈한겨레〉에 TV 칼럼을 썼다. 음악은 식견이 미천하여 지금은 글을 안 쓰고, TV는 제대로 볼 시간이 없어 종종 거절한다. 그래도 꾸준하게 쓴 것은 만화와 장르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지금은 미국과 일본의 드라마들에 대해서도. 좋아해서 보고, 보다 보니 쓰기도 하고 그렇게 이어졌다.

    이 책에 담긴 글은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에 2000년부터 연재했던 만화 칼럼의 일부다. 격주로 7년이 넘게 쓰면서 많은 만화를 봤다. 만화방이 흥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한양문고와 북새통만이 아니라 중고만화를 찾아서 온라인 사이트를 뒤지기도 했다. 만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재미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는 재미있는 작품을 알려 주고 싶어서다. 내가 좋아하는, 재미있게 본 작품들이 무엇이고 왜 좋았는지를 말하는 것.

    10년도 전에 본 만화들 중에는 아직도 연재되는 작품이 있고, 그 시절에도 이미 고전이었던 만화들도 있다. 이제는 완전히 잊힌 작품도 있고. 모두 걸작은 아니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고, 한 번은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2018년 김봉석

    일상적인 연애의 순간들

    〈미유키みゆき〉 아다치 미츠루

    이미 오래전 만화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유키〉와 〈일곱빛깔 무지개〉가 완결됐다. 완결편인 〈미유키〉 12권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미유키〉를 보았을 때는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만화방에는 중간 정도밖에 없었다. 기억나기로 그때는 제목도 참 황당한 〈오렌지 로드〉였다. 예전에 본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제목에는 〈H1〉 〈오렌지 로드〉 같은 이상한 것들이 끼어 있었다. 해적판이었고, 주인공의 이름도 한국명이었다. 이제는 〈터치〉라는 제목을 찾은 〈H1〉은, 근작인 〈H2〉의 전편이라는 의미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황당하기도 해라. 〈H2〉의 H는 주인공인 히로와 히데오의 이름 첫 자 알파벳에서 따온 것이다. 〈터치〉와 〈H2〉는 고교 야구와 연애물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없다. 주인공인 타츠야의 알파벳 첫 자는 T다. 죽은 동생은 카즈야고.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늘 그렇듯이 인물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캐릭터가 비슷비슷하기는 하다. 그래도 〈터치〉라는 엄연한 제목을 내팽개치고 〈H1〉을 선택한 것은 너무했다.

    〈미유키〉라는 제목을 버리고, 〈오렌지 로드〉를 붙인 것은 그럴 만도 하다. 극 중 일본 이름도 바꾸는 판에, ‘미유키’를 제목으로 쓰기는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 듯한 〈오렌지 로드〉란 제목을 달았고, 한동안 나는 〈오렌지 로드〉가 〈미유키〉란 것도 모르고 있었다. 투니버스에서 〈미유키〉를 방영할 때 아 예전에 본 만화인데, 하고 무릎을 치는 정도였다.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인 〈미유키〉는 이상하게도, 스포츠가 끼어들지 않은 순수 연애만화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보면서 서로 소년만화니, 소녀만화니 우길 수 있는 영역에 서 있는 독특한 청춘물이다. 사랑이 중심이지만, 그걸 담아내는 방식으로 주로 스포츠가 쓰인다. 그러면서 일상의 평범한 상황에서, 별것 아닌 단어에서 포착하는 여운과 소용돌이가 일품이다.

    하지만 〈미유키〉에는 스포츠가 없다. 그냥 청춘 연애물이다. 주변 인물 중에도 크게 스포츠에 열광하는 인간은 없다.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어릴 적 친구가 축구를 하고, 동생 미유키에게 청혼하기는 하지만. 하여튼 〈미유키〉는 오로지 연애만 파고든다. 〈미유키〉는 두 미유키를 사랑하는 소년 마사토의 이야기다. 하나는 동급생 미유키, 그리고 또 하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 미유키다. 동생 미유키는 6년이나 헤어져 살다가 돌아왔고, 마사토와 단둘이 ‘가정’ 생활을 시작한다. 설마 동생에게 연정을 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미유키〉는 그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반복되었던 바로 그 이복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그 애절하지만 단순한 이야기로 〈미유키〉는 무려 12권을 끌어간다.

    늘 엇비슷한 이야기이지만, 〈미유키〉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마사토가 그냥 평범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아니 평범 정도가 아니라 공부나 운동도 잘 못하고, 길 가다 부딪치거나 넘어지기도 잘하는 어리숙한 소년이다. 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무엇보다 헌신적이다. 〈H2〉의 주인공은 야구를 잘하고, 〈러프〉의 주인공은 수영을 잘한다. 신작 〈카츠〉에서도 권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터치〉의 타츠야는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었던 마사토 같은 소년이었지만, 동생인 카즈야가 죽은 후 그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주기 위해 마운드에 선다. 그리고 고시엔甲子園 정상에 오른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H2〉의 2루수 야나기가 말하듯, 꿈을 주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녀석들인 것이다.

    그러나 마사토는 진짜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 소년이 최고의 소녀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도대체 마사토의 미덕이 무엇이기에? 진정한 악인이 없다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진정한 동화다. 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에게는. 마사토는 헌신적일 뿐 아니라, 결코 질투하지 않는다. 잘생긴 데다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인 사와다 유이치에게조차 질투심을 갖지 않는다.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사와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음을 알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부럽고, 그래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작 중에서, 제목을 잊어버렸는데, 주인공이 응원단장을 하는 만화가 있다. 그 소년은 말한다. 누군가 힘을 내도록 도와주어서, 그가 꿈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그는 열심히 응원을 하고,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마사토 역시 그런 소년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에 찬탄하고, 위대한 것을 존경한다.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친다. 아마 두 소녀가 보았던 것도 마사토의 그런 순수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마사토를 두 소녀가 사랑하고, 마사토는 동급생 미유키와 연애를 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미유키와 있을 때는, 언제나 저 미유키를 생각하게 된다. 〈미유키〉는 정말 잔잔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를 그저 충실하게 따라가며 일상적인 사건들을 변주할 뿐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게 또 특기다. 어떻게 보면 아다치의 만화는 모두가 동일한 것을 변주한 작품이다. 심지어 사랑의 형식이나 삼각관계까지도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다치의 만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우리의 삶이란 늘 비슷하고, 다른 사람들과 닮아 있기 때문에. 아다치는 그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잡아낸다. 단편집 〈쇼트 프로그램〉에 실려 있는 만화들을 보면,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다.

    〈일곱빛깔 무지개〉와 〈미소라〉가 재미없다고 흔히 비판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일곱빛깔 무지개〉와 〈미소라〉는 아다치 특유의 일상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황당한 농담으로 마구 어디론가 헤엄쳐 가는 만화다.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나는 그 농담도 즐겁지만, 그걸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다치의 진심이 청춘 연애물에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청춘 연애물은 언제나 짜릿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미유키〉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한 사실이다.

    사소하지만 모든 것이 담긴 일상

    〈아즈망가 대왕あずまんが大王〉 아즈마 키요히코

    그다지 순정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즈망가 대왕〉에는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 우선 네 컷 만화라는 형식 때문이다. 여고생의 일상을 그린 만화를 네 컷 만화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케이블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아즈망가 대왕〉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날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소하게 그려내는데, 그걸 어떻게 네 컷 안에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궁금해서 〈아즈망가 대왕〉을 집었다.

    그런데 도대체 〈아즈망가 대왕〉이 무슨 뜻일까? 완결편인 4권까지 봐도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발견했다. 〈아즈망가 대왕〉의 작가 이름은 아즈마 키요히코다. 거기서 ‘아즈마’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만화의 일본말인 ‘망가’를 합친다. 그러면 ‘아즈망가’가 된다. 이 만화를 연재한 잡지가 〈월간 전격대왕〉이란 곳이다. 거기에서 ‘대왕’을 가지고 온다. 그래서 모든 것을 더해서 나온 말이 바로 ‘아즈망가 대왕’이다. ‘아즈마가 그린 만화를 대왕이란 잡지에서 연재했다’란 뜻이 바로 〈아즈망가 대왕〉이 되는 것이다. 〈대운동회〉나 〈천지무용〉 등 인기 만화의 패러디 만화를 주로 그렸다는 아즈마 키요히코는 자신의 만화 제목도 패러디처럼 사용한다. 〈아즈망가 대왕〉 이외의 작품 제목으로는 〈아즈망가 리사이클〉 〈아즈망가 TWO〉 등이 있다. 역시 제목으로는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 안에 자신만의 법칙이 있다.

    〈아즈망가 대왕〉은 대단히 재치 있고 독특한 제목이지만, 별다르게 의미심장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용도 그렇다. 친구들이 권해서 읽어봤더니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친구들이 권했지만 어디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위의 두 문장은 〈아즈망가 대왕〉의 선전 문구에 나오는 말이다. 재미없다는 말을 과감하게 선전 문구에 쓰는 그 여유. 그것이야말로 바로 〈아즈망가 대왕〉을 보는 즐거움이다. 정말 사소하고,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네 컷 만화 속에 쓱쓱 담아내는 것. 본다고 해서 뭔가 지식이나 정보가 남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감동이 남는 것도 아니다. 누구는 ‘이게 뭐야?’라며 그냥 던져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즈망가 대왕〉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무위無爲로움.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그들은 그러면서 성장한다. 졸업식 이후를 보면 그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뭔가 열렬하게 원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지도 않고, 그냥 조금씩 전진해 간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다.

    〈아즈망가 대왕〉은 사소하다.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3년간 벌어지는 뻔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문화제, 수학여행, 시험 등이 있고 선생과 학생의 관계, 친구들끼리의 우정과 갈등 같은 것들이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아즈망가 대왕〉이 일본에서 137만 부나 팔린 것은, 그런 상큼한 가벼움을 원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음을 증명한다. 아무리 엽기와 잔혹이 위세를 떠는 세상이지만, 귀여운 여고생의 일상에 동감하는 일은 편안하고 포근하다.

    〈아즈망가 대왕〉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캐릭터다. 너무나 독특하고 기발하면서도, 우리 일상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 〈아즈망가 대왕〉은 10살의 천재 소녀 치요가 편입해 오면서 시작된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고, 귀엽고, 모든 면에서 ‘특별한’ 소녀 치요는 〈아즈망가 대왕〉에서는 오히려 평범하다. 천재라는 것 말고는, 그냥 보통의 소녀에 가깝다. 오히려 다른 소녀들이 더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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