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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권
메모라이즈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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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라이즈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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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 개정판입니다 ◆

현대와는 다른 세상 홀 플레인.
김수현은 군 전역을 신고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홀 플레인의 세상에 강제로 소환 당한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하지만, 홀 플레인에서 활동한 10년의 세월은 이미 너무나도 슬픈 과거로 얼룩진 상태였다.
김수현은 슬픈 과거를 바꾸기 위해, 제로 코드의 힘을 10년의 시간을 되돌리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WHISTLE BOOK
Release dateJun 3, 2019
ISBN979113275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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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라이즈 4권 - 로유진

    1. Mage and Alchemist(Rare) (3)

    안현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거미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안솔은 말없이 지팡이를 들었고 유정은 단검을 꼬나 쥔 채 스산한 살기를 뿌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당장에라도 뛰어나갈 듯한 얼굴들이었다.

    그에 반해 인면 거미, 아니 비비앙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동생의 투정을 보듯 무른 미소를 흘리던 그녀는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금 활기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말을 거는 대상은 바로 나였다.

    웃어? 웃는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인간 수컷아?

    네 관점에서 본다면 일리는 있다고 봐. 거미 암컷.

    요호호호! 거미 암컷이라니. 깔깔깔. 농담 터지는구나, 정말. 역시 너는 뭔가 달라 보여. 좋아! 오랜만에 선심 좀 쓴다. 너는 죽이지 않고 음… 생포로 결정!

    비비앙은 정말로 단단히 인심 좀 쓴다는 얼굴이었다. 앞에 있는 두 다리를 들어 팔짱(?)을 끼고 음음, 고개를 주억이는데 보면 볼수록 웃겼다. 애들은 웃기지는 않지만 기가 막혔는지, 헛바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내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유쾌한 괴물이었다. 나 또한 연한 미소를 머금은 후 살짝 장난기가 가미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이왕 선심 쓴 김에 조금 더 쓸 생각 없어?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비비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있어. 뭔데? 뭔데? 다른 애들도 살려달라고?

    그거 말고. 이곳으로 오면서 사용자 시체 두 구를 봤는데, 그 두 명 전부 다 네가 죽인 거니?

    내 물음에 거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내가 했지. 그런데 왜?

    그래도 명색이 연금술사인데, 실험에 인간의 신체를 쓸 일도 있지 않아? 그렇게 버려두고 방치해 둔 게 이해가 안 돼서. 안 그래, 비비앙?

    에이~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놓은걸……. 오잉? 근데 내가 연금술사 비비앙인 건 어떻게 알았어?

    비비앙의 반응을 본 후 나는 슬며시 나오려는 미소를 억지로 참으며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제법 상쾌하고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추긴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예전 연금술사 시절 보였을지도 모르는 고등한 사고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일단 원하던 반응을 확인한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비비앙은 환한 얼굴로 폴짝폴짝 뛰어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는 데 기쁨을 표시했다. 여담이지만 한 번 뛸 때마다 땅이 들썩여 던전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순전히 내 추측일지 몰라도 비비앙은 아마 더 살고 싶다는 욕심에 신체 개조, 아니면 의도성이 다분한 감염 분야에 손을 댔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리치가 될 정도로 수준이 높지 못한 마법사 또는 연금술사들의 비참한 말로로 볼 수 있었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보기 드문 유형이었다.

    처음 다른 인간 수, 암컷들이 들어오긴 했어. 하등한 놈들 주제에 그래도 한가락 하는 애들이 몇 명 보이더라구. 덕분에 쓸모 있는 부하들을 잔뜩 잃었지. 너희들, 고블린들이 있는 공터를 통과했지? 원래 걔네들이 쓰던 공터가 아닌데. 원래 있던 놈들이 전멸하는 바람에 급하게 채울 수밖에 없었지. 에잇! 열받아!

    정말 화가 나는 듯 볼을 부욱 부풀린 비비앙. 그녀는 이내 턱주가리에서 독액을 왈칵 쏟아내 자신의 분노를 증명하더니 숨을 고르며 높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걸 보고만 있어?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나섰지. 그런데 가관이더라. 딱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조금만 힘을 썼는데, 한 명이 바로 도망을 치는 거 있지? 그 활을 들고 있던 놈! 다른 인간들은 버려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데, 보는 내가 다 열받더라. 나 참. 뭐, 그래도 덕분에 나머지 놈들도 전의를 상실하긴 했지만.

    그래서?

    솔직히 그놈 먼저 죽이고 싶었지만 다른 인간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어. 특히 그 남자 사제. 마음에 들긴 했는데, 자꾸 신을 들먹이면서 거슬리게 하기에 먼저 죽여줬지. 다른 애들을 챙기면서 도망가는데, 뒤로 따라가 다리 하나 꽂은 후 허리를 반으로 댕강 잘랐어. 그냥 그렇게 하고 바로 처음 도망친 수컷을 쫓았거든? 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래서 확인을 못 했네. 걔 죽었지?

    비비앙은 이 모든 말을 아주 빠르게 얘기했다. 어지간히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듯싶었다.

    애들은 내가 비비앙과 스스럼없이 대화하자 다들 벙찐 얼굴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안현이 갑자기 아차 한 얼굴로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애들을 향해 눈짓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대화로 시간을 끄는 동안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난 그저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건데…….

    그래도 이런 오해는 하등 나쁠 게 없기에 간단히 수긍한 후 비비앙의 물음에 답했다.

    응. 죽었어. 그럼 그 궁수 사용자도 결국 너한테 당한 건가?

    히히. 오랜만에 대화하니까 너무 즐겁다. 응응! 있잖아, 있잖아. 솔직히 그런 놈들은 내가 봐도 썩 별로거든. 그래서 끝까지 쫓아갔지. 아주 목을 비틀고 뽑는데, 비명을 꽥꽥 지르더라. 나 잘했지? 우히히히.

    비비앙은 진심으로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듯 눈을 감고 음미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안현은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얘는 솔이 얘기만 나오면 답이 없는데, 이럴 때 보면 정말로 싹수가 보이는 놈이었다. 밀고 당기고,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이윽고 눈을 반짝 뜬 비비앙은 신난다는 얼굴로 다리를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얘! 얘도 물어봐줘! 나 지금 이상하게 너랑 대화하는 게 너무 즐거워. 히히.

    …그래. 천장에 매달린 여성 사용자는 어쩌다 저 꼴이 된 거니?

    내가 자상한 목소리로 묻자 거미는 몸을 배배 꼰 후 발그레 볼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뒤에서 저 X년이.라고 유정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유정아. 지금 괴물을 상대로 질투하는 거니?

    꺄응. 위에 매달린 암컷은…….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되게 마음에 안 들더라. 오연한 눈깔로 나를 내려다보듯 깔아보는데, 정말 짜증 났어. 결국 저렇게 될 거면서 뭘 그렇게 거만을 떨어? 마음에 안 들어. 안 들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저건 좀 심하다.

    친구와 담화를 하듯 말을 건네자 비비앙은 픽 웃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또다시 회상 모드로 들어간 것 같았다. 이미 해치울 기회는 수십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말을 꽤 맛깔나게 해 듣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딱히 공격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 또한 계속 얘기를 듣는 와중 딴생각이 슬슬 나고 있어 조만간 처리할 생각이었다.

    히히. 너도 같이 봤으면 재밌었을걸? 처음에는 꽁꽁 묶이고도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데, 정말 부서트리고 싶더라. 히히히힛! 멍청한 년. 그러기에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잖아. 그러면 다른 수컷과 암컷처럼 일단 살려두기는 했을 텐데 말이지.

    그럼 아직 살아있는 사용자가 있다는 소리군.

    웅. 고치로 똘똘 말아서 잘 모셔놨지. 뭐, 당분간은 살아 있을걸. 그런데 어디에 쓸지 걱정이 들어. 애들 양분으로 줄까, 아니면 키메라로 만들까. 흐음. 후자가 더 당기기는 하는데.

    어느새 애들의 호흡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었다. 나는 슬슬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슬쩍 내렸던 검을 들었다. 검을 겨누는 나를 보며 비비앙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 싸우려고? 피차 귀찮은 일은 하지 말자~ 응? 너는 나쁘게 하지 않을게.

    귀찮긴 한데, 그래도 널 쓰러뜨려야 할 것 같거든. 우리 애들이 너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같고.

    흥. 칫. 뭐, 좋아. 굳이 벌주를 마신다는데. 그래도 나는 네가 마음에 드니까 죽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에라. 또 인심 썼다. 옆에 귀여운 수컷도 살려준다.

    안현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나와 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할수록 유정과 솔의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굵은 땀방울을 조금 흘린 후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나머지 둘은?

    으음… 솔직히 모체는 사제 년이 더 적합해 보여. 마나가 풍부해 보이거든. 그런데 이래저래 너무 연할 거 같아서. 그런 애들은 모체로 만들기 전에 자살하는 경우도 왕왕 있거든. 그러니 옆에 기가 세 보이는 년으로 할게.

    미친년.

    응. 나 미친년 맞아.

    까는 소리 하네.

    뭘 까?

    비비앙의 유들유들한 대답에 유정은 뭔가 모를 언어를 구사하며 고함을 질렀다. 연신 쏟아지는 유정의 욕설을 빙글빙글 웃으며 듣던 비비앙은 이내 진심 어린 얼굴로 순식간에 바꾸며 살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얘기를 할 때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거미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거미는 아니었다.

    한창 걸쭉한 말을 내뱉던 유정은 확연히 느낄 정도로 비비앙의 기도가 달라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애들을 보며 나도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전적으로 애들한테 맡기기에는 조금 많이 무리인 감이 있다. 이번에는 실력을 드러내 보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나설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막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묵묵히 우리들을 탐색하던 거미의 아래턱이 크게 열리며 폭포수 같은 실이 왕창 흘러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왕 잡기로 한 거, 상처 입히고 잡으면 아까우니까 한꺼번에 잡아줄게. 히히히히!

    거미의 웃음소리와 함께 아래 입에서 번들거리는 은빛의 실들이 뿜어져 나온다. 지금껏 상대한 거미들이 뿜어낸 거미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굵고 엄청난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닥을 향해 쏟아진 실들은 이내 쫙 펴진 우산처럼 흐트러지더니 곧이어 우리들을 향해 화살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나도 순간 아차 한 감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거미의 실은 창졸간에 우리들의 몸에 닿았다. 이윽고 진득한 실들이 우리의 몸을 휘감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만 있었다.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 생명의 위협이 없다면 일단 이대로 거미의 비밀 기지로 끌려간 후 다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깜짝 놀랐지? 히히힛.

    나는 그다지 저항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애들은 필사적이었다.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다.

    안현은 뒤늦게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실들을 걷어내고 있었지만 헛수고였다. 굵기와 점성도 문제였지만 워낙 양이 많아 중과부적이었다. 안현이 그러할진대 유정과 솔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용을 쓰자 비비앙은 발랄한 웃음을 터뜨린 후 약 올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히히. 헛수고일걸. 내 실이 그런 병장기에 끊어질 만큼 약하게 만든 건 아니거든. 연실을 얕보지 말라구. 그냥 담담히 받아들여. 맨 앞의 수컷처럼. 눈도, 입도, 귀도 막히긴 하지만, 적어도 코는 막히지 않을 거야.

    …응?

    야. 잠깐만. 코 빼고 다 막힌다고?

    어? 어, 응.

    내가 반색하는 얼굴로 입을 열자 비비앙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주억이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실이 몸을 감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애들은 마치 번데기 고치처럼 이미 온몸에 실을 치장(?)하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내 몸에도 또한 빠르게 감겨오는 실이 보였다. 오감이 차단된다. 그 말인즉슨 고치 안에 있는 애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문득 비밀이 보장된다면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한 나는 바로 몸 안에 잠들어있는 화정을 일깨웠다.

    2. 비비앙 라 클라시더스

    화정(火正). 직역하면 불을 맡은 신으로 풀이되지만, 홀 플레인 안에서는 순수한 불의 결정체로 해석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권능. 세라프가 내 몸과 화정의 동화를 맹렬히 반대한 이유는 위의 권능 때문이다.

    화정은 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걸 태울 수 있는 신화계급의 염화다. 인간으로서 지배하고 다룰 수 있는 불의 최고 계급인 염계급보다 윗선에 있음은 물론이고, 세라프는 비슷하다고 말했지만 순수한 ‘파괴’ 측면에서 본다면 팔열지옥 최하층부인 무간을 지배하는 겁화도 한발 물러설지 모른다. 내가 연구한 고대 기록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내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는 검술 전문가의 권능과 화정의 권능을 합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가르고, 불태울 수 있다.’로 정의할 수 있다.

    문제는 화정이 신화계급이므로 신살 속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마음만 먹으면 세라프를 죽일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물론 천사들이 만만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 가능할 뿐이니까.

    어쨌든 그 파괴적인 지옥의 겁화도 한 수 접을 정도인데, 고작 인면 거미의 실 따위가 내 화정의 불길을 막을 리 만무했다. 애들이 모두 누에고치로 변하고 허공으로 쭈르륵 매달리는 걸 확인한 후 나는 곧바로 마력을 일으켰다.

    화륵!

    어…어?

    연한 주홍빛의 마나가 피어나고 이윽고 내 몸을 감싼 실들이 아이스크림 녹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비비앙은 당황한 얼굴로 연신 실을 쏘아댔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뜬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턱주가리를 크게 벌렸다. 누런 독액이 일렁이는 게, 독액을 쏠 모양인 것 같았다.

    건방진!

    비비앙이 노호성을 터뜨리고 바로 그녀의 입에서 독내가 물씬 풍기는 액이 나를 덮쳐들었다. 나는 싱글싱글 미소를 유지한 얼굴로 날아오는 독액을 부담 없이 맞아주었다. 내 피부에 닿은 독액은 이내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산화했다.

    히히히히. 어떡하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그…….

    안 죽었어.

    가볍게 응수한 후 앞으로 걸어 나오는 나를 보며 비비앙은 무슨 괴물이라도 본 얼굴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아. 억울하다. 괴물은 너고 나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아무튼 나는 뽀송뽀송한 피부를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독액이 체내로 침투하든 체외로 스며들든 화정의 힘을 빌리고 있는 이상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마, 말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하… 하등한 인간이 어떻게…….

    하… 하등한 거미가 어떻게…….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거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두 다리를 들었다. 내려찍을 셈인 듯 보였지만 화정의 힘을 빌리고 있는 나는 지금 일정 이상의 실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검을 들고 한 번 휘두른다. 남들이 보면 평범한 일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파동의 힘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이윽고 내 마력이 담긴 파동은 거미가 들어 올린 다리를 목표로 쏘아지더니.

    끼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목표를 절단했다. 이 모든 과정은 단 1초 안에 일어난 일이라 차마 다리를 내려칠 틈도 없이 당했다. 비비앙은 격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되는 대로 독액과 실을 내뿜었다. 단순한 고통에 따른 발끈 어택이라고 보기에는 꽤나 처절함이 엿보이는 공격임을 느꼈다.

    그냥 몸을 대줘도 괜찮지만 나는 일부러 검을 휘둘러 비비앙의 공격을 받아냈다. 내 방어는 실로 단순하다. 오는 실은 걷어내고, 독액은 흘려낸다. 이런 단순한 공격을 상대로 내가 익힌 고등 검술의 묘리를 펼치는 건 태극(太極)에 대한 실례였다.

    그러나 당사자는 죽을 맛일 것이다. 자기는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하고 있는데 나는 물러섬 없이, 오히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사방으로 번뜩이는 검광이 아름답게 수를 놓으며 춤을 춘다. 쏟아낸 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뿜어낸 독액은 그대로 나를 지나친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갈수록 비비앙은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태연한 얼굴로 조롱하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명색이 연금술사인데, 공격이 너무 단조롭지 않아? 고대 연금술사라는 이름이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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