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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뼈의 방: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뼈의 방: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Ebook176 pages1 hour

뼈의 방: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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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죽은 이의 신원, 사소한 습관, 다잉 메시지까지…
뼈에 새겨진 기억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미국인 의사 프리저브드 포터는 노예 한 명이 1798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골을 연구용으로 쓰려고 남겨두었다. 훗날 포터의 후손이 유골을 박물관에 기증했고, 박물관에서는 해골에 적힌 대로 표본에 ‘래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60여 년 뒤인 1999년에 뼈를 분석해보니 래리의 진짜 이름은 ‘포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포춘의 손발 뼈에 남은 흔적은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인대를 다쳤다는 증거였다. 또한 그는 사고를 당해 익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실은 넘어져 경추가 부러진 것이 실제 사인이었다고 밝혀졌다.
이렇듯 뼈를 분석해서 고인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사인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법의인류학자가 하는 일이다. 그들은 고고학, 인류학, 법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단서와 흔적을 찾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 조사 결과는 고인의 신원을 밝히는 자료가 되며 법정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법의인류학자는 억울하게 잊히는 죽음이 없도록 지금도 사건 현장에서 묵묵히 진상을 밝혀나가고 있다.
책의 제목인 ‘뼈의 방’은 기증받은 유골을 모아둔 법의인류학자의 특별한 공간을 말한다. 뼈의 방에 보관된 수백, 수천 개의 상자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신진 법의인류학자로 주목받는 저자는 뼈 하나하나에 새겨진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았다. 역사 속 미제 사건, 세계적으로 논란거리가 된 사건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쓸쓸히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려준다.
이 책은 단지 뼈에 얽힌 사건의 전말을 서술한 기록이 아니다. 저자는 뼈를 통해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고인이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뼈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한때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치열한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죽음과 삶 그리고 인간의 소중한 권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Jun 21, 2021
ISBN9791166816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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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의 방 - 리옌첸

    1장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미국 샌디에이고 남쪽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지역에 히스패닉 20여 명이 모여들었다.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멕시코로 출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완수해야 할 임무는 오직 하나, 국경을 넘다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것이었다.

    사막의 독수리들

    사막에서 뼈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랜 시간 햇볕을 쬔 탓에 유골이 표백되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날은 열 달 전쯤 밀수업자를 따라나섰다가 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새벽부터 모인 사람들은 ‘사막의 독수리Aguilas del Desierto’라 불리는 조직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미국 국경을 넘다가 실종된 사람들을 애타게 찾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든 단체다. 사막에 서식하는 독수리는 시각이 예민해서 먹잇감을 잘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독수리가 사냥을 하듯 실종자들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독수리’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꽤 많은 뼈를 찾았다. 갈비뼈는 물론이고 어깨뼈, 빗장뼈, 척추뼈, 아래턱뼈까지 부위도 다양했다. 근처에서 짙은 색 계열의 바지, 아디다스 축구화, 노란색 지갑 같은 소지품도 함께 발견되었다. 지갑 안에 있던 신분증에는 ‘필라델포 마르티네즈 고메즈Filadelfo Martinez Gomez’라는 이름과 출생일이 적혀 있었지만 발견된 뼈들과 신분증이 관계가 있는지 곧바로 증명할 수는 없었다. 신원을 되찾을 때까지 그 뼈들은 ‘170422145’라는 번호로 불렸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던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듯 고메즈 역시 급격한 탈수로 죽었다고 추정되었다. 미국의 ‘비밀 묘지’라고 할 만한 이곳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해 죽는 사람이 흔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몰래 국경을 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애리조나주를 통하는 길이 가장 험하다. 애리조나주 쪽의 국경을 넘는 데는 7~10일이 걸린다고 한다. 가장 큰 난관은 국경 순찰대도 높은 울타리도 아닌 날씨다. 사막 지역은 해가 뜨면 기온이 40도에 이른다. 이런 환경에서 성인 한 명에게 필요한 물은 하루에 4~7.5리터 정도다. 7일 만에 여정을 끝낸다 해도 약 53~57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1리터의 무게가 1킬로그램이므로, 7일 동안 57킬로그램의 물을 지고 국경을 건너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탈수로 죽는다.

    그럼에도 애리조나주 방향으로 가서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0년 이전에는 시체가 몇 구 발견되지 않았지만, 2001년에는 그 수가 79구로 크게 늘었다. 이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국경 순찰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시망을 피하려면 애리조나주를 넘어가는 가장 위험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에는 시체가 249구나 발견되었다. 2016년에 발견된 시체는 169구로 줄었지만 이것이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의 수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비교적 안전한 미국의 서남쪽, 캘리포니아주를 통해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은 줄었지만 사망률은 해마다 증가했다. 2016년에는 398명, 2017년에는 412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관련 수색 팀과 법의학 전문가들은 사망자 수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종자들이 국경을 넘다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가족들은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시체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

    이렇게 찾은 시체는 보통 시체 보관소에 맡겨졌다가 상태에 따라 법의학자forensic pathologist나 법의인류학자forensic anthropologist에게 간다. 법의인류학자는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서 뼈를 분석한다. 법의인류학forensic anthropology에서 ‘forensic’은 법적 증거 혹은 법의학을 의미한다. 원래 ‘forensic’은 라틴어 ‘forum’에서 유래한 말로 법원이라는 뜻이다. ‘Forensic’과 관련된 학과는 모두 법원에 증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사건의 옳고 그름이나 유죄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이 법의학의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법의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효과적으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할 단서와 흔적을 찾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의 역사는 길지 않다. 법의인류학과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로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송자宋慈가 1247년에 편찬한 『세원집록洗寃集錄』을 들 수 있다. 중국 법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자는 『세원집록』에 사건 조사 방법과 상세한 검시 순서, 사인 추론 방법 등을 실었다. 그중에는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적용 가능한 내용도 있어 옛사람들의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당시에는 법의학 전담 인력이 없었고 검시관들은 산파만큼이나 관가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사건 담당자들은 시체를 검사하고 해부할 때 사고사인지 타살인지를 분명히 식별할 뿐만 아니라 상처가 죽을 때 생긴 것인지 사후에 생긴 것인지도 엄격하게 판별해야 했다.

    송자는 『세원집록』에 시신의 성별 식별법과 사망 시간을 확인하는 법을 상세히 기록했다.

    1. 성별 식별법

    남자는 총 365개의 뼈가 있다. 이는 일 년이 365일인 것과 일치한다. 남자의 뼈는 여자의 뼈에 비해 검다. 여자는 아이를 낳을 때 피를 흘려 뼈가 물들기 때문이다.

    남자의 두개골은 총 8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골은 경부(頸部)부터 양쪽의 귀, 뒤통수까지 포함한다. 머리 뒤쪽에는 가로 봉합선이 있고 위에는 머리카락 모근을 따라 두개골 끝까지 이어지는 세로 봉합선도 있다. 여자는 두개골이 6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로 봉합선만 있다.

    골반은 돼지의 콩팥과 같은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간 부분은 척추뼈와 접합점이 있다. 골반의 가장자리는 황궁 지붕의 장식처럼 뾰족한 가지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골반에는 9개의 구멍이 있다(송자가 골반이라 묘사한 이 부위는 골반 옆의 엉치뼈다).

    2. 시체의 부패

    시체 부패 양상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봄 세 달 동안은 2, 3일만 방치해도 입안의 연조직(신체에서 힘줄, 혈관 따위처럼 단단한 정도가 낮은 조직―옮긴이)과 코, 배, 가슴뼈, 명치가 모두 혈색을 잃기 시작한다. 열흘 뒤에는 코와 귀에서 액체가 흘러나온다.

    여름에는 이틀 만에 연조직이 변색된다. 변색은 얼굴과 배, 갈비뼈, 명치에서 시작된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는 시체가 회색빛으로 변하고 액체가 흘러나오며 시충(시체에 생기는 벌레―옮긴이)이 나타난다. 시체 전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피부가 벗겨지는 탈피 현상과 수포가 일어난다. 그로부터 4, 5일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가을에 시체를 2, 3일 정도 두면 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연조직, 특히 얼굴과 배, 갈비뼈, 명치에서부터 변색이 시작된다. 그로부터 4, 5일 뒤에는 코와 입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며, 시체 전체가 부풀어 오르고 수포가 일어난다. 그로부터 다시 6, 7일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4, 5일이 지나면 시체가 누런 자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보름 뒤에는 봄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시체를 거적으로 싸매두었거나 습한 곳에 묻었다면 부패 과정이 더뎌질 수 있다. 날씨가 매우 더울 때는 죽은 지 하루 만에 바로 부패가 시작되기도 한다. 시체는 혈색을 잃고 회색이나 검은색을 띠게 되며, 악취를 풍긴다. 그로부터 3, 4일이 지나면 피부와 연조직이 모두 부패하고 시체가 부풀어 오른다. 코와 입에서 시충이 나타나며 머리카락도 빠지기 시작한다.

    반면, 몹시 추운 계절에는 5일 동안 부패하는 정도가 봄철 하루의 부패 정도와 같으며, 보름 동안 부패가 진행되어도 더운 날 3, 4일 동안 부패하는 정도에 못 미친다. 게다가 남북은 기온 차이가 있다. 산 위의 기온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시체의 모든 변화를 자세히 살펴본 뒤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시체의 부패는 다양한 환경 요소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앞서 열거한 검시법이 오늘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법의학에 대한 집념은 느껴진다. 13세기에 송자는 이미 날씨와 기후가 시체 부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줄 알았고 곤충 활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서양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40년 이전까지 법의인류학은 해부학자나 수술을 맡은 의사, 박물관과 대학에서 일하는 형질인류학자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이 시기에는 법의학과 관련된 연구가 매우 적었고, 법의학을 사건에 활용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19세기 말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토머스 드와이트Thomas Dwight는 법의인류학과 관련된 성별 및 연령 식별에 관한 연구 결과를 여러 차례 발표하며 ‘미국 법의인류학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 뒤로 법의인류학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학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법의인류학 단체 ‘SWGANTHScientific Working Group for Forensic Anthropology’가 생겨났다. 이 단체는 법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원칙과 지침을 규정하여 연구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힘썼다.

    이름을 찾아주는 일

    법의인류학자의 임무는 뼈를 분석하여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법의학자와 다르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사망 원인을 관찰해낸다. 법의학자들은 연조직이 남아 있는 시체를 다루기 때문에 부패 단계에 들어서거나 백골화된 시체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법의인류학자들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다룬다. 심지어는 미라화된 시체를 접하기도 한다.

    법의인류학자는 유골을 건네받은 뒤 ‘Big 4’라고 부르는 정보(성별, 나이, 혈통, 키)를 찾아낸다. 여기에 생전의 흔적인 외상, 만성 질병, 활동 흔적을 조사해 보태면 유골의 주인에 관한 기록 파일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기록이 있으면 가족을 찾을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법의인류학자를 일컬어 ‘이전-이후before-after’ 전문가라고도 한다. ‘이전’이란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한 일, 겪은 일이 뼈에 미친 영향을 뜻하며 ‘이후’는 죽은 뒤 뼈에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한다. 법의인류학자는 이 외에 인골을 찾아 수색하고 수습하는 일, 신원 식별에 도움이 될 만한 특징과 단서를 분석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전통적으로 법의인류학자는 거의 백골화되었거나 완전히 백골로 변한 시체를 분석할 때 혹은 해부가 허락되지 않는 경우 등 특수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점점 활동 범위가 확장되어 오늘날에는 외상 분석, 장례 방식 분석, 사후 경과 시간 추론 등을 통해 재난성 사건 조사에도 참여한다. 국제법이 적용되는 검시 과정에서 증거를 찾아 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살아 있는 사람을 조사할 때 투입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법의인류학자는 자기 분야의 지식과 더불어 인류의 문화와 역사, 뼈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연구해야 한다.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법의학 업무를 담당하는 법의학 팀은 다양한 전문가들로 채워지며, 관련 기관의 인도적 구호 작업에 협조한다. 이때 법의학 팀에는 법의병리학 의사, 법의인류학자, 법치의학자, 생물학자 등이 참여해 정밀한 과학적 검증으로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같은 시각, 경찰은 지문 감식과 여권 같은 문서를 감정하는 등의 업무를 진행한다. 법의인류학자들은 국제 법정에서 전범戰犯을 판결하는 데 증거를 제공하기도 하고 무연고자들이 묻힌 집단 무덤에서 사망 원인을 분석하여 고인이 생전에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연구할 때도 있다. 이런 일은 대체로 법의학자의 소관이 아니어서 법의인류학자들의 존재 가치가 드러난다.

    법의인류학자는 골학骨學 교육에 집중하여 인류학을 바탕으로 눈앞의 상황에 대한 전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받는다. 법의인류학의 사고방식과 연구 방법은 인류학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앞서 말했듯이 법의인류학자는 다양한 종족의 생활 방식과 음식, 환경을 모두 연구하기 때문에 법의학자들의 ‘비장의 카드’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부하고도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 법의인류학자가 작은 단서라도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업무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법의학자와 법의인류학자는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존중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법의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시체 해부를 관찰한 경험이 있으며, 시체 보관소에서 일해본 사람도 있다. 법의인류학자들은 법의학자들의 작업 방법과 순서, 단계를 숙지하고 있다.

    법의인류학자와 법의학자, 법치의학자는 모두 법정에서 전문가 증인이 될 수 있다. 법의인류학자는 법의학의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달리 전쟁 범죄와 대량 사망 사고의 조사 업무에도 참여한다. 법의인류학은 인도주의 색채가 매우 강하고, 그렇기에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법의인류학자들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도 없고 정책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에 주목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든 무고한 사람이든 전쟁 범죄자든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그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존엄한 대우를 받았느냐에 주목한다.

    안타깝게도 모든 시체의 마지막 순간이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초반에 언급했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독수리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앞서 몇 개월 전에 사막에서 네 무더기의 사람 해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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