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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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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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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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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추천도서
아마존 알츠하이머 분야 베스트셀러

한국인 치매 발병률은 65세 이상 10%(2020년), 85세 이상에서는 40%(2016년)에 달한다(중앙치매센터).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암 환자보다 오히려 치매인을 더 많이 만나는 듯하다. 사회가 노령화될수록 비율은 점점 높아진다. 치매에 걸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고, 언제 치매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기가 알던 세계가 모두 허물어지고 사라지려 할 때,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의사들의 진단이나 사람들의 편견이 아닌, 치매인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느낌일까?
이 책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감을 그 근원부터 찬찬히 살펴보면서, 무조건 맞서거나 회피하려 하기보다, 치매인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할 수 있도록 놀라운 관점을 제시한다. 나이가 들어도, 치매를 앓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다. 늙어감과 망각은 삶을 살아내는 한 과정일 뿐, 나와 그들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치매와 늙어감에 관한 통찰을 제공하는 이 책을 통해, 치매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May 6, 2021
ISBN9791166815379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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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린 캐스틸 하퍼

    치매에 대한 선입견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의 고전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은 암 진단을 받은 뒤에 암에 대한 평판이 암환자들의 고통을 더 키운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분개하면서 쓴 글이다. 1978년에 손택은 암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들, 예를 들면 암이 재앙, 침략자, 포식자, 악령의 침입, 악마 같은 적, 몸속 야만인이라는 의견들과 맞섰다. 그 당시에는 암의 근원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심리적인 데 있으며, 그런 심리적 요인은 환자에게서 표출된 감정에서 나온다고 상상했다. 암에 대한 이런 은유적인 개념은 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겼으며, 많은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아예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저서 『에이즈와 그 은유AIDS and Its Metaphors』에서, 손택은 새 ‘재앙’인 에이즈를 둘러싼 은유에 대한 비판으로 화제를 돌렸다. 에이즈는 ‘접촉 감염’과 ‘오염’이라는 표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더 심한 오명을 얻었다. 손택은 에이즈가 단순한 질병 수준을 넘어서서 몹시 심각한 중병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언급했다. 에이즈는 단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질병으로 여겨져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품위를 잃고 완전히 와해된다. 손택은 이 병에 걸리더라도 뜻을 품고 맞서 싸우면 언젠가는 에이즈도 그저 하나의 병에 불과하게 될 날이 오기를 희망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알츠하이머병이 그렇게 ‘뜻을 품고 맞서 싸울’ 병이 아닌가 싶다. 알츠하이머병도 환자의 품위를 손상하고 무너뜨린다. 이 병은 균의 침입과 감염에 따른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곧 잊힌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이 병을 ‘긴 작별’ 혹은 ‘몸을 남겨두고 떠난 죽음’으로도 표현한다. 병을 앓는 사람은 눈에는 보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사라진 ‘산 송장living dead’이 된다. 치매는 사람의 얼굴을 넋 나간 멍한 표정으로 바꿔놓고, 몸을 껍데기에 불과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낯선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도둑, 유괴범, 행동이 느린 살인마가 되어, 사람의 기억과 정신, 성격을 강탈하고, 훔치고, 지워버리며, 심지어는 그 사람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 치매를 앓으면 서서히 진행되는 멈출 수 없는 고통의 소용돌이에 굴복해 세상에서 차츰 사라져간다고 묘사된다. 이는 죽음과 병에 대한 일반적인 두려움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의 불안이다. 치매에 관한 은유는 이처럼 강력하게 부정적인 특징을 보이고 이런 부정성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는 단지 뇌의 질병을 생생히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증폭된 두려움을 드러낸다. 이제 치매는 단순한 질병 이상이 되었다.

    알츠하이머병의 악명 높은 평판은 이 병을 앓는 환자들, 가족들 그리고 치매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즉, 앞으로 노년을 맞을 우리 모두)의 고통을 가중한다. 치매에 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치매인에게서 멀어지고,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불은 켜져 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즉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사람에게—옮긴이) 누가 들어가고(다가가고) 싶겠는가?

    나는 어떻게

    치매와 만났는가

    개인적으로 치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4번째 생일을 맞던 여름에, 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첫 과정을 어느 병원에서 이수했다. 10주 동안 진행되는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전에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런 일이 내 체질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당시 병원에 갈 일은 5년 전 이후로 전혀 없었다. 5년 전 그때는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를 병문안할 때였다. 친구가 엉덩이뼈에 나사를 박아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입원실 타일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그날 오후 내내 응급실에 머무르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그런 일도 있어 병원 연수 프로그램 지원이 약간 꺼려졌지만 다른 기회가 없어, 결국 등록했다. 나는 뇌수술을 받고 난 뒤 회복 중인 환자들이 있는 신경과 병동에 배정됐다. 병동 환자들은 뇌종양, 뇌동맥류, 뇌졸중을 앓았던 사람들이었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일상의 기본적인 활동을 힘겹게 다시 배우고,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조차 버거운 환자들과 날마다 함께했다. 뇌사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 사륜 오토바이를 타다가 나무를 들이받은 십 대 환자의 병실에 불려갔을 때였다. 그 환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의 뇌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의 자아 정체성과 가치를 주로 지적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판단해왔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판단 기준이었다. 나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뇌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 몰랐다. 병원에서의 목사 연수 프로그램을 끝내고 2주 뒤에는 1년간의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필수 코스였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어느 은퇴자주거복합단지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였다. CCRC는 독립주거, 노인생활보조주거, 숙련된 요양보호사들이 상주하는 요양원 등 단계별 보호 체계를 갖춘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병원에서 봤던 심각한 뇌손상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정신적 쇠퇴 현상을 접했다.

    나는 주거단지 내의 교회 두 곳을 운영하는 목사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한 곳은 모리스 목사가, 다른 곳은 레이 목사가 담당했다. 모리스는 치매를 심하게 앓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할머니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리스는 몰두해서 듣는 것 같았다. 그에 따르면, 환자가 발화하는 단어 토막들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라틴어 음소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당시 나는 그의 조언을 따분하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여겼다. 하지만 그가 환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실제로 환자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 환자는 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말을 세심하게 듣고 창의적으로 해석할 대화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매주 레이를 따라 기억력 향상의 집이라 불리는 치매인 거주지도 방문했다. 큰 건물의 한 구획에 자리한 이곳은 치매인 십여 명의 보금자리였다. 집처럼 편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으며, 거실과 부엌 식탁은 함께 사용했다. 레이는 보통 이곳에 와서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델마라는 할머니에게 마무리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 델마는 젊은 시절에 목사 부인이었다. 기도의 어조와 열정에서 그녀가 수십 년 동안 해왔던 식사 기도, 교회 소모임, 주일 학교에서의 경험이 느껴졌다. 기도 내용이 논리정연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기도의 진정성과 차분하고도 확신에 찬 태도는 나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전했다.

    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뉴저지 병원 예배당에 상주하며 9개월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내가 담당했던 병동은 세 곳이었는데, 그중 한 병동은 지하층 영안실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병동은 폐기종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환자들은 중환자실에 입원할 만큼 위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도 될 만큼 안정된 상태는 아니었으며, 대부분 고령이었다. 그리고 그해에는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들어와 정신병동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이 병동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병원 한구석에 자리한 이 음산한 병동에는 몸이 쇠약한 노인들과 정신병을 앓는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 병원 공동체마저 이들을 소외하는 듯한 현실이 슬펐다.

    그런데 이런 환자 조합을 경험했던 것이, 치매 노인에게 따라다니는 오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나는 이 구역에서 특히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환자가 병원 규칙상 정해진 임상적 대면 그 이상의 인간적인 만남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단편적인 대화는 말할 기력이 없거나 집중력이 부족한 환자들에게 위안이 되지 못했다.

    병원 예배당 목사 실무 인턴 활동이 끝나고 몇 달 후, 나는 뉴저지 해안에 있는 CCRC의 전임목사로 채용됐다. 거주자가 1,400명에 이르는 이 단지에는 스카이브리지와 여러 개의 통로로 서로 연결된 독립주거용 아파트 여덟 동이 있었고, 그 외에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다. ‘가든스the Garden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건물에는 생활지원시설과 전문요양시설이 자리했다. 나는 이 건물의 주민들을 보살피는 일을 맡았다. 가든스 건물은 나머지 시설들과는 조금 떨어진, 한쪽 구석에 자리했다. 이곳에서의 근무 경험은 내가 치매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심적 취약성을 둘러싼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문제 해결에 열정적으로 마음을 쏟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7년 가까이 목사로 근무했다. 첫날에는 그곳 관리자와 함께 5층 건물 전체를 둘러봤다. 그날 둘러봤던 것 중에 4층을 돌아보면서 들어온 장면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4층은 중증 치매를 앓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로, 전문요양치료사들이 상주하며 이들을 돌봤다. 넓은 공간에 마련된 특별활동실에 막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하와이안 셔츠에 헐렁한 밀짚모자 차림인 젊은 직원은 엉기적거리며 걷는 노인을 옆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그날 특별활동실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 중에 휠체어에 앉은 이들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분들을 또렷이 기억한다. 나를 안내했던 그곳 관리자는, 이곳에서는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을 것이라고 옆에서 귀띔해주었다. 내가 돌봐야 할 입주민이 거의 20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자리를 뜨자마자 나에 대한 기억이 송두리째 지워질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내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더 생산적이고 나은) 쓰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기억은 교묘한 데가 있다. 그 관리자가 정말로 그런 편견을 내게 이야기했는지, 아니면 내가 간접적으로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내가 들은 건 치매를 혐오하는 문화와 상통하는 명확한 메시지, 즉 4층 치매 요양소 입소자들을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으며, 내가 그곳을 찾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내게는 이들이 필요하지 않으며, 이들의 부재로 내가 영향받을 일도 없다. 이들은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들이고, 나도 이들의 기억에서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추론이 가능했던 것이다.

    2014년에는 남편이 2년 동안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방문 학자로 가게 되면서 나도 가든스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옮겨갔다. 그곳에서는 치매와 정신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치매에 관한 워크숍도 이따금씩 진행했다. 종교 단체들이 치매에 걸린 신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대부분 노인 전문 요양사와 환자 가족들이었다. 덕분에 치매인을 가까이에서 보살피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하고 소통할 기회가 있었다. 2016년에 남편의 계약 연구 기간이 끝나면서 우리 가족은 뉴욕으로 이사했고, 이후에 나는 맨해튼 북부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의 목사로 부임했다. 리버사이드 교회는 다양한 인종과 교파가 모인 교회였다. 나는 교회에서 노년층을 주로 상대했고 때때로 치매 관련 워크숍도 진행했기 때문에, 뇌의 노화라는 주제와는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가든스에서 지냈던 시기의 경험과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말년에 대한 기억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치매인과의 거리

    치매를 앓는 노인들과 가깝게 지낼수록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다. 그분들을 장애 때문에 의식이 흐려진 사람이 아니라 개성 있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가든스의 치매 노인들에게서도 위축과 상실을 목격하고 수시로 경험했지만, 늘 퇴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 이들에게서 연민, 정직, 겸손 같은 더 높은 의식을 목격하기도 했다.

    내가 만난 이곳 치매요양소 입소자 중 수학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한 에블린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종종 내게 선생님이 맡은 학생들은 요즘 잘하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런가 하면 메리라는 할머니는 극심한 불안 증세가 있으면서도 특별활동 시간이나 식사 시간이 되면 남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이웃을 도왔다. 파티 준비에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버니스라는 할머니를 통해서는 치매와 관련된 상실이 무조건 안타깝고 비극적인 것은 아님을 알았다. 그녀가 장기간 앓아 온 정신질환의 고통스러운 증상 일부가 말년에 해소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안과 편집증적 망상은 없어지고 웃음과 기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루는 그녀가 내 흰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이것 봐! 목사님도 늙는구나! 우리처럼!이라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들을 포함해 그곳에서 지내는 많은 사람을 단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사람들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치매에 대한 의식 전환을 주장하는 사회운동가 모리스 프리델이 제시한 용어를 빌려서 ‘일시적으로 뇌가 건강한 사람들temporarily able-brained(뇌 건강은 일시적인 것이므로 치매 환자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뜻에서 나온 용어로, 비장애인을 뜻하는 ‘일시적으로 몸이 건강한temporarily able-bodied’이라는 표현에서 파생됐다—옮긴이)’은 어째서 치매인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우리는 그들이 사라져가거나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보는 걸까? 이렇게 치매인과 비치매인 사이의 거리를 벌린 결과로 우리가 놓친 가능성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못 본 체하는 영혼은 그 거리를 좁히려고 어떤 방식으로 애를 쓸까?

    나는 양쪽 사이의 거리를 조사해보고 싶다. 또 치매의 지배적인 상징이 어떤 점에서 편파적인지, 그런 상징은 어떻게 치매에 오명을 씌우는지를 살피겠다. 어떤 가치 기준으로 인지 능력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는지도 알고 싶다. 나는 치매를 묘사하는 더 강력하고 새로운 표현을 탐색 중이다. 우리 시야를 점진적인 망각과 두려움 너머로 확장해줄 만한 표현 말이다.

    치매인에게 다가가기

    내가 맨 처음 생각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베티의 공이 컸다. 베티는 내가 가든스에서 일을 시작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4층에 거주하는 치매 노인들에게 있던 풍부한 잠재력에 눈뜨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베티는 다 낡고 닳아빠진 성경책을 늘 다리 위에 올려놓고 휠체어를 탄 채로 4층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런 베티에게 성경 공부를 해보자고 권했다. 베티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휴게실 건너편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베티와 그녀의 이웃 몇 명과 모여 앉아 성경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창세기부터 읽어 내려갔다. 베티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은 채로 성경 공부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물론 나중에는 대화에도 참여해서 좋은 의견도 보태고 재담도 펼쳤지만, 처음에는 늘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대목을 읽어가던 어느 오후였다. 베티가 갑자기 이런, 질투했구먼! 하고 외쳤다. 다른 참가자들은 감사 기도를 끝내고 다들 흩어지던 참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베티가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이 집중력 부족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성경 공부 시간에는 지문을 더 천천히 읽고, 다 읽은 뒤에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전도에 열의가 있는 신도들이 다들 그렇듯, 베티는 모임 규모가 작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새 신자들이 더 들어오기를 기대했다. 사람을 더 데려오려는 그녀의 열정은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고 자기 밖의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랑스럽고 순수한 욕구로 보였다. 베티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그녀가 세상을 뜬 뒤에 모임이 한층 커지는 기반이 됐다. 모임에는 9~10명의 참석자가 모였고 다양한 종파의 신도들로 구성되었다. 이 모임은 매주 일과 중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이 모임을 진행하고, 4층에서 지내는 노인들과 가족을 만나고, 과중한 업무에 지친 직원들과도 틈틈이 담소를 나누면서 다른 층에서보다 4층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삶과 죽음, 그 역설의 공존

    <바니타스 정물>의 두개골은 의심의 여지없이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와 동시에 앞니 빠진 얼굴로 쓴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살 없이 뼈만 남은 인간의 두개골에서는 저절로 배어 나온 어렴풋한 미소가 느껴진다. 두개골의 삭막하고 벌거벗은 모습은 엄숙함을 암시하지만, 그 쾌활함에서 회복의 힘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쩌면 이 그림에서 두개골은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와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양쪽 모두를 담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도서의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누가 봐도 명확히 상반된 두 가지를 연결해서, 태어날 때와 죽을 때 … 무너뜨릴 때와 쌓아올릴 때 … 돌을 버려야 할 때와 돌을 모아야 할 때…처럼 병렬관계로 배치한다. 이런 지혜의 구절은 존재의 양극단이 강렬한 긴장을 만드는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 삶과 죽음, 끌어모으기와 놓아 보내기, 포용하기와 멀리하기, 울기와 웃기의 관계는 서로 부정하기보다는 함께 균형을 이루면서 한층 강화된다. 상실과 죽음에서조차 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치매도 이런 유형의 결합을 일어나게 하는데, 희석과 정제, 수축과 확장, 부조不調와 항상성이 함께 나타난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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