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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맛 B컬처: 대중문화, 그 쾌락의 지점들
빨간 맛 B컬처: 대중문화, 그 쾌락의 지점들
빨간 맛 B컬처: 대중문화, 그 쾌락의 지점들
Ebook240 pages2 hours

빨간 맛 B컬처: 대중문화, 그 쾌락의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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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잃어버린 ‘빨간 맛’을 찾아서

A보다 반음 낮은 곳에 숨어있는 대중문화의 모든 것.
‘에이플랫 시리즈’의 첫 번째 책.

강상준의 는 등 그동안 저자가 다양한 대중매체 전문지에 기고한 글을 일종의 1인 잡지 형식으로 구성해 묶어낸 전자책이다. 이 책은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음악 등의 분야에서 글을 써온 ‘영화 기자’이자 ‘문화지 기자’이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의 관점에서 현 대중문화의 중요 지점과 그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적시한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B컬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대중문화의 쾌감과 의미 그 이상의 고지에 자연히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집01] 드래그 미 투 ‘헬조선’은 왜 이 땅이 ‘헬’이라는 서늘한 애칭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를 다양한 매체에선 어떻게 다루는지 날카롭게 서술한다. 드라마 를 비롯한 여타의 작품을 통해 ‘헬조선’ 장르의 실체를 분석하고, 사회학저서 로 조선일보가 제기한 달관 세대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또한 전형적인 ‘한국형 흥행 영화’가 아니었던 과 의 함의를 살펴보고, 에서 소녀들이 벌이는 비인간적인 경쟁을 즐기며 관람하는 우리를 탐구한다.

[특집02] 미디어 컨버전스 흥망성쇠에서는 OSMU(One Source Multi Use)시대 안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하게 변모하는 모습을 다채롭게 서술한다. 드라마 과 영화 를 비교하고, 코믹스계의 또 다른 강자 DC 코믹스의 스크린에서의 약진을 점쳐보기도 하며, 미드 이 가진 캐릭터의 힘에 주목한다.

[특집03] Change the World에서는 故신해철, 서태지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비판 메시지의 유행가의 시대와, 과거 ‘싸움닭’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가 미국 의료정책의 문제를 파헤치는 여정을 좇는다. 또한 영화 을 비롯한 다양한 영화가 드러낸 사회운동의 모습에도 주목한다.

[특집04]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해 다루는 다양한 미스터리 작품을 다룬다.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추리 장르의 근원을 이루는 작가를 통해 미스터리문학 장르를 소개하고, 같은 특색 있는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 시리즈와, 스웨덴의 어두운 현실을 알려주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추천한다.

[여성] 챕터에서는 소설과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을 살펴본다. 소녀에 대한 사회적 서사를 동화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전지현이나 김혜수 등 매력적인 여성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주목하면서 소위 ‘걸크러시’ 현상을 한국영화의 면면에서 찾아낸다. 또한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화 를 소개한다. [피플] 챕터에서는 의 원작자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풍과 일생을 조명하고,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시마다 소지와 더불어, ‘연상호 월드’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낸 애니메이션감독이자 영화 의 감독 연상호의 작품세계로 안내한다. [만화] 챕터에서는 한국마저 강타한 으로 재패니메이션의 부활을 점쳐 보고, 나 이 일본 요리만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엇핀트 테마극장] 챕터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한 테마 안에 모았다. 예컨대 김종빈 감독의 처럼 ‘고문관’을 소재로 한 영화나 처럼 승자가 아닌 패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영화들, 처럼 취향의 바다에 빠지는 영화들, 그리고 처럼 우리가 흔히 믿는 인간본성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과 한 줄기를 이루는, 전혀 다른 영화들이 그 아래 놓여있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에이플랫
Release dateNov 12, 2018
ISBN97911965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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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맛 B컬처 - 강상준

    저자 소개

    강상준

    〈DVD2.0〉 〈FILM2.0〉 〈iMBC〉 〈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웹소설 작가 입문〉 〈매거진 컬처〉 〈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 〈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로서 글쓰기에 주력하는 동시에 방송,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parandice@naver.com

    목차

    책을 펴내며

    [특집01] 드래그 미 투 ‘헬조선’

    ▪‘헬조선 장르’ 전성시대

    ▪성실하고 막돼먹은 앨리스들의 초상

    ▪달관을 강요당한 세대는 행복하지 않다

    ▪서브컬처는 무혐의다

    ▪실화의 재구성, 사회파 영화와 사건 파일

    ▪2016년 한국 천만 영화의 이변

    ▪루저만화, 웃기고 슬픈 시대의 자화상

    ▪개그맨 혐오 발언, 그 불의의 코미디

    ▪TV의 ‘컴피티션’이 담지 못한 진짜 힙합은?

    ▪우리는 왜 1인 미디어에 열광하는가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했나요?

    : Mnet 〈프로듀스 101〉

    [특집02] 미디어 컨버전스 흥망성쇠

    ▪〈미생〉은 흥하고 〈이끼〉는 망한 이유

    ▪DC 코믹스 라이즈, 그날을 기다리며

    ▪미드 〈왕좌의 게임〉, 영상화된 판타지물의 마력

    ▪〈미녀와 야수〉, 진실한 사랑에 대한 변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왜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날까?

    ▪〈고스트 월드〉, 우리 모두는 ‘이니드’였다

    ▪얘네들 대체 얼마나 나쁜 놈인 거야?

    :만화로 읽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캐릭터

    ▪거대로봇, 주류문화의 중심으로

    ▪만화 〈설국열차〉와 영화 〈설국열차〉, 다른 레일을 달리다

    ▪〈백야행〉,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의 3色行

    [특집03] Change the World

    ▪신해철이 그립다

    ▪Zombie, in your head

    ▪싸움닭 마이클 무어, 의료정책에 박치기!

    : 다큐멘터리 〈식코〉

    ▪동성애, 그 일상으로의 초대

    ▪〈1987〉, 모두가 광장에 서기까지

    ▪〈실종일기〉, ‘흑역사’와 마주하는 법

    [특집04]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추리문학, 논리와 재미로 키워낸 철학의 나무

    ▪이케부쿠로가의 소년 피스 메이커

    :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스웨덴을 파헤치는 민완기자

    :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죄악의 도시여, 내 죄를 사해 주소서

    :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여성]

    ▪소녀의 모험과 여성의 성장담

    : 동화 〈빨간 망토〉 다시 읽기

    ▪언니들은 살아 있다

    : 한국영화 ‘걸크러시’ 캐릭터 열전

    ▪영화 〈그르바비차〉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피플]

    ▪다니구치 지로, 우직하게 만화의 길을 걸은 구도자

    ▪시마다 소지,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연상호 감독의 ‘헬조선’ 연대기

    [만화]

    ▪〈너의 이름은.〉이 보여준 재패니메이션의 신세계

    ▪〈헌터×헌터〉, 제발 일해라 토가시!

    ▪〈하이큐!!〉, 배구의 과학을 웅변하다

    ▪〈미스터 초밥왕〉, 요리만화 원조집

    ▪〈전염됩니다.〉, 격이 다른 헛소리

    [엇핀트 테마극장]

    ▪이상한 나라의 고문관

    ▪2등이라도 괜찮아

    ▪소년이여, 오덕이 되어라

    ▪인간 본성에 관한 위험한 실험

    ▪온 세상이 나를 속이다

    ▪불사는 괴로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영화 찍는 영화

    책을 펴내며

    보통 잡지에 기고하는 글은 주간지의 경우 1주, 월간지의 경우 1달이 지나면 곧 휘발되기 마련이다. 매체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잘 알기에 안타까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읽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있지만 내 손에서 떠난 글이 어디서 부유하고 있는지 크게 궁금해했던 적은 없었다. 가끔은 낯선 웹의 바다에서 생경한 반응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그뿐이다. 솔직히 말해 어떤 글이라도 일단 쓰고 난 다음, 글 자체에 애착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일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매체에 기고해 왔다. 과거에 썼던 원고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꽤나 다양하게도 써 왔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내가 이런 글을 썼나 싶어 의아하면서도 다른 한편 반가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주아주 가끔은 조금 뿌듯하기도 하고. 대체로 재미나고 보람찬 시간이어서 다행이다 싶다.

    처음 책 제목으로 떠올린 것은 ‘B컬처 G스팟’이었다. 7년 전 딱 한 번 연재했던 칼럼의 제목이었는데, 해당 잡지의 폐간과 더불어 지면은 사라졌고, B급 문화, 그 쾌락의 지점을 건드려보겠다는 의미의 제목은 내내 다른 기획의 제목으로, 술자리 우스개로 돌고 돌았다. 제목의 천박함과 역사의 처연함에 문득 졸저 <위대한 망가>에 실은 프로필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언제나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연연했으며 앞으로도 종신토록 그렇게 살 예정 문득 누군가 이 문구를 비웃었던 기억도 난다. 비웃거나 말거나 그렇게 살아 왔고, 원하든 원치 않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이 책 역시 그런 의미를 더욱 뒷받침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제목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G스팟’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고 염려하는 시선을 적잖게 목격한 탓이다. 다소 도발적이고 부러 선정적인 제목을 의도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굳이 이 땅에 만연한 엄숙주의와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게 편집팀의 중론이었다. 분하지만 한편으론 조금 귀찮기도 했고. 물론 조금은 순화한 표현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빨간 맛’이 훨씬 더 마음에 든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공감각적 표현이자 유명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한 빨간 맛의 의미 역시 곱씹을수록 바라마지 않던 의미가 배어 나왔다. 우선 빨강은 정열, 사랑, 기쁨을 은유하는 색이다. 중국에서는 행운을 상징하는 색이라 더더욱 널리 쓰이고, 노동자 계급을 나타내는 색이기에 혁명을 뜻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경고나 정지를 의미할 때도 빨강을 사용한다.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한 색상 중 하나지만 이를 맛으로 치환한다는 것 역시 우리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남은 것은 ‘B컬처’다. 언뜻 B급 문화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포괄적으로 A 다음에 자리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 언저리에 있는 무언가, 때때로 ‘A’에 좀 더 많이 기댄 문화까지 다채롭게 수록했다. 무엇보다 그 의미나 기조가 책 전반에 흐르리라 자신한다.

    그렇게 이미 휘발되고도 남을 것들을 붙잡아 다시금 세상에 내놓는다. 전자책이라는 형태가 아니면 더더욱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글을 모으고 모아서. 사실은 이렇게 그러모은다 한들 큰 감흥은 없을 줄 알았다. 웬걸. 원고를 읽고 그 가운데 다시금 읽어봐도 좋을 글을 추리는 시간은 지난하기보다는 의외로 즐거웠다. 아마 괴로운 시간은 이미 다 희석되고 오롯이 결과만 취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꽤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의미가 비단 글을 쓴 나만이 아닌 다른 독자들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 의미까지는 무리더라도 읽는 동안 조금의 흥미나 재미를 느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 땅의 문화에 대한 작디작은 편린이자 내게는 나 자신의 기록이기도 한 이 책. 모쪼록 대체로 유쾌하고 때때로 조금은 불편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018년 여름, 지은이 강상준

    ‘헬조선 장르’ 전성시대

    2016년 8월, 〈문화+서울〉 114호

    최근 OC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38사기동대〉는 온갖 낯익은 광경으로 그득하다. 시청 세금징수국 공무원의 악전고투를 그린 이 작품은 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악덕 고액체납자를 응징하기 위해 전문 사기꾼과 결탁, 사기를 쳐 체납 세금을 걷는 것을 골자로 한다. 조금은 황당한 발상일지 몰라도 그 배경만큼은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다. 국세와 지방세를 포함해 무려 57억7천만 원의 세금을 체납한 극 중 어느 작자만 봐도 답은 금방 나온다. 그는 세금도 못 낼 정도로 쪼들리는 것이 아니라 강남에만 십여 개에 달하는 룸살롱을 운영하며 누구보다 호의호식하는 치다. 심지어 법망을 피하려 아등바등하는 것도 아니다. 고위공직자와의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부정한 재산을 유유히 지켜낼 뿐만 아니라, 늘 없는 자들을 업신여기며 부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적대감을 켜켜이 쌓아올린다.

    그렇다고 이자가 정점에 자리한 절대악인 것도 아니다. 57억7천만 원을 어렵사리 회수했더니 그 위에는 500억 짜리 체납자가 더욱 견고한 벽을 쌓고 있다. 애초에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법은 이미 가진 자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으니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반칙’밖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38사기동대〉는 악덕 체납자를 상대로 여러 명이 협력하여 범죄를 완성하는 일종의 케이퍼 무비Caper movie 형식을 취하지만 낯익은 건 이런 장르적 구조만이 아니다. 악을 그려내는 방식이야말로 시종 기시감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됐던 영화들 또한 피차일반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한낱 유희로 일용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재벌가 자제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대결을 그린 영화다. 천만 관객의 호응을 받은 〈베테랑〉의 주역은 단연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였다. 영화는 조태오의 악행을 세세하게 보여주며 그의 악마성을 한껏 부풀림으로써 영화 말미 반드시 처단되어야 할 악의 축으로 내세웠다. 직위를 이용한 일방적인 폭행과 은밀한 마약 파티 등은 재벌 조태오를 더더욱 생생한 악역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2015년 또 하나의 화제작이었던 〈내부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재계 수뇌부의 끈끈한 공생관계에 보수언론까지 가세한 모습은 충분히 관객의 공분을 살 만했다. 특히나 영화는 단순히 뉴스에서 보아오던 사건의 정황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법이 없었다. 대중을 ‘개, 돼지’에 비유하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저열한 작태와, 하수인의 손목을 자르고 심지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데도 거리낌 없는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법과 정의 위에 도사리는 악의 정체를 낱낱이 전시했다.

    어디 이뿐인가. 영화 〈성난 변호사〉 〈치외법권〉 〈검사외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비롯해 드라마 〈어셈블리〉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은 모두 실정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를 악으로 두고 여기 속절없이 스러져가던 약자들의 극적인 역전승을 그린 작품이다. 위정자, 재벌 등 그 위치야 어찌됐건 악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겉으로 보이는 높은 사회적 위상과는 무관히 그들의 민낯은 하나같이 추악하기 짝이 없다. 선민의식을 바탕에 둔 그들의 말 하나하나는 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기 일쑤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인명을 경시하는 것은 마치 기본소양으로 보일 정도. 온갖 위법행위를 일삼지만 그럼에도 법으로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다. 이를 확증하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며 자연히 주인공 측의 좌절도 내내 계속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엔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그치들의 얕은꾀를 역이용해 제 무덤 파게 만드는 술수로 승리하곤 한다.

    물론 이 모든 악은 대단원에 이르러 어느 정도 척결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 구축한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그동안 휠체어 타고 검찰 출두하던 회장님들 모습에서 익히 보아 왔듯이 단지 법정에 세우고 감방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마치 어렵사리 악을 처단하고 난 후 그와는 견줄 수도 없는 거악巨惡을 발견하고 여기 좌절하는 탐정의 하드보일드 스토리와도 같아 보인다. 뉴스에서 늘 보아 왔던 사건에 살을 붙인 듯한 악, 그리고 그에 대항해 또 다른 악으로 맞서는 한국판 누아르, 한국형 하드보일드가 지금 우리 시대 이렇게나 차고 넘친다.

    이유야 뻔하다. 얼마 전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만 봐도 충분히 알 만하다. 아무리 용 나는 개천 마른 지 오래라지만 교육부 요직에 있는 공직자마저 민중을 개, 돼지에 비유하며 먹고 살게만 하면 된다 말했다는 것은 가슴 아프도록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 시대 거의 유일무이한 신분상승 기회인 교육 분야에서조차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애초에 위선으로라도 양극화 현상을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영화는 그저 실존하는 우리네 절망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은 늘 픽션보다 강력하다. 그래서일까. 진짜 현실에 살을 붙여 완성된 ‘가진 자들의 악행’은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상대적으로 이를 깨부쉈던 대단원의 카타르시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해결책만큼은 현실에서 영감을 얻을 수 없었던 탓에 늘 영화적 판타지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법과 정의로는 맞설 수 없는 자들을 대놓고 악으로 설정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 시대. 그렇게 영화는 오늘도 계층화 사회라는 지옥 속에서 한줌 희망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연한 악을 응시한 채 늘 희미한 환상으로 위안 받는다. 아마도 이런 ‘헬조선 장르’는 당분간 계속 양산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영화도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이제는 선연한 악만큼이나 선연한 승리가 필요하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성실하고 막돼먹은 앨리스들의 초상

    2015년 10월, 〈문화+서울〉 104호

    〈암살〉과 〈베테랑〉 두 편의 한국영화가 2015년 극장 흥행을 주도하는 한편, 그 뒤에서는 또 다른 두 편의 한국영화가 조용히 들끓고 있다. 하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며, 다른 하나는 〈오피스〉다. 지난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일찌감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누적관객수 4만 명을 돌파하며 독립영화로는 상당한 호성적을 올렸다. 반면 〈오피스〉는 전형적인 상업영화다. 평범한 식품회사 영업팀을 배경으로 연쇄살인극을 펼치는 영화는 배우들의 호연과 익숙한 배경을 공포의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우직한 연출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둘은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인다. 하나는 누아르에 블랙코미디를 얹어낸 색다른 인상의 독립영화이며, 다른 하나는 사무실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공포영화의 무대로 변모시킨 작품이다. 그러나 두 작품은 묘하게 대구를 이룬다.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라는 것과는 무관히 이 땅의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기저이자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낯설게 다가올 법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에도 한국이라는 낯익은 배경이 보태는 힘은 실로 막강하다. 덕분에 과장되고 왜곡된 블랙코미디 장르의 등장인물 모두 상당한 리얼리티를 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처한 비정한 상황 역시 공감과 몰입을 자아낸다. 명실상부 공포영화의 품새를 갖춘 〈오피스〉 또한 마찬가지. 영화는 살인의 동인을 포함해 다양한 지점에서 관객의 직간접 경험을 자극함으로써 불쾌감을 부채질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자신의 힘 하나만 믿고 성실히 살아가려는 수남(이정현)의 수난사를 그린다. 단지 열심히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도 그에게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다. 그런 수남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은행 빚으로 산 집이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되면서 바야흐로 인생역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재개발이라는 달콤한 과육을 탐하는 이는 너무도 많다. 수남과 대치하며 피를 흘리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처지의 고단한 생활인일 뿐인데도 이들은 서로를 보듬어 주기는커녕 상처 입히는 데 여념이 없다. 우리 사회의 약자일 게 분명한 이들이 서로를 잡아먹고자 이전투구를 벌이는 광경일랑 참으로 잔혹하다.

    약자들끼리 경쟁을, 아니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그 무대가 바로 우리네 사회라는 데에서 이 작품의 특별함이 배어나온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익힌 손재주를 이제는 생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남 덕에 잔인한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잔인한 것은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나만 열심히 하면 돼라며 스스로를 독려하던 수남의 인생관이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는 데에 있다. 한 의사는 수남에게 ‘존엄사’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살다보면 가끔 품위가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존엄이라는 말이 고작 죽음을 이를 때에야 적용되는 잔인하고 비루한 현실이 결국 수남의 삶의 굴곡 끝에 놓인 진실이라는 얘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블루칼라 노동자의 이야기였다면 〈오피스〉는 화이트칼라의 이야기다. 성실한 회사원 김병국 과장(배성우)은 느닷없이 망치로 온 가족을 살해한 뒤 사라진다. 이후 그가 출근하는 장면이 회사 CCTV에 포착되지만 그가 회사를 빠져나간 화면은 어디에도 없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동료들, 그리고 아직 회사에 있을지도 모르는 김 과장의 묘연한 행방과 연이어 발생하는 기묘한 사건들이 공포영화의 외연을 이룬다면, 마찬가지로 회사라는 곳의 생태는 그대로 우리의 잔혹한 현실과 맞닿는다. 무례하고 고압적인 상사는 늘 부하직원을 닦달하고 멸시한다. 다른 직원들 역시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던 김병국 과장은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했고, 인턴사원 미례(고아성) 또한 김 과장처럼 단지 열심히만 일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며 핀잔을 듣기 일쑤다. 영화는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마저 진급을 앞둔 직장인으로 그려낸다. 심지어 경찰들은 어느 기업의 노조위원장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진 자, 강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약자들끼리 악다구니를 벌이는 것이다.

    한편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은 직접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인터뷰하며 노동의 공포와 불안정한 미래를 이야기한다. 열네 번째 시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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