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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 죽지 않는 사람들
백년법 1: 죽지 않는 사람들
백년법 1: 죽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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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 죽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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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를 이은 작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야마다 무네키의 소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어떤 미래를 꿈꿀 것인가?

원자폭탄 여섯 발이 일본의 도시를 송두리째 불태우며 멸망의 길에 이르게 된 일본. 미국의 점령 하에 공화제 국가가 된 일본에 1949년 불로화 기술인 ‘HAVI’가 도입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가능케 하는 불로화 기술로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된 일본 국민은 세대교체를 위해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은 100년 후 죽어야 한다는 법률인 생존제한법, 이른바 ‘백년법’을 제정하게 된다.
그리고 2048년. 백년법 시행을 눈앞에 둔 일본은 강요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아래에서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누군가는 죽어야만 지속될 수 있는 사회. 미래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인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불로불사의 꿈과 현실의 비극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20대의 외모 그대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원한 젊음’을 얻지만 그 대가로 100년이 지난 뒤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불로불사의 꿈이 실현된 사회에서 인생의 유통기한을 예고하는 ‘백년법(생존제한법)’을 둘러싸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소설. 인류에게 궁극의 꿈인 ‘불로불사의 삶’이 실현된 사회를 배경으로,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었을 때 세상은 과연 낙원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까운 미래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그려내고 있다.

인구조절을 위한 명목으로 인간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백년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발달과 반비례해 인권과 생명이 가벼이 여겨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한 권력의 행태를 꼬집는다. 또한 자연스런 늙음과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나 백년법을 거부하는 이들이 한 사회에서 얽히고설키면서 펼쳐지는 미래사회의 다양한 군상은 사회의 커다란 흐름과 인간의 선택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진다. 충격적이고 신선한 주제, 긴박감 넘치는 전개와 생생한 갈등과 심리 묘사로 진정 인간다운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담보하는 수작이다.

☞ 선정 및 수상내역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 제10회 일본서점대상 수상작

Language한국어
Publisher애플북스
Release dateFeb 21, 2023
ISBN979119208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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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법 1 - 야마다 무네키

    야마다 무네키山田宗樹

    1965년 일본 아이치현 출생. 츠쿠바 대학 대학원 농학연구 과정 수료. 제약회사에서 농약 개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98년에 《직선의 사각》으로 제18회 요

    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2003년에 발표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크게 히트를 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 《검은 봄》 《자폭》 《미친 도시》 《마욕》 등이 있다. 그중 《백년법》은 제10회 일본 서점 대상 9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제66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고은 옮김

    대학에서 일본사와 정치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일본 대중 문화론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64 육사》 《침묵의 거리에서》 《부러진 용골》 《소녀지옥》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모방살의》 등이 있다.

    HYAKUNENHO 1

    ⓒ Muneki Yamada 2012

    First published in Japan in 2012 by KADOKAWA CORPORATION, Tokyo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KADOKAWA CORPORATION, Tokyo

    through Eric Yang Agency Inc, Seoul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한 저작권자와의 독점 계약으로 비전 B&P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저자의 말

    기다리던 한국 독자와의 만남

    드디어 한국 독자들에게도 《백년법》을 선보인다 생각하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조차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로화 기술이 보급된 세계. 하지만 모든 인간이 영원히 살아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불로화 시술을 받은 이는 법으로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

    이 설정을 생각해낸 건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착상이 떠오른 순간 재미있는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플롯을 짜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설정은 재미있지만 그 재미를 잘 끌어내는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았죠. 초조해하다 점점 체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집필을 시작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비슷한 설정의 만화가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년법’의 가장 큰 매력은 설정의 참신함이었습니다. 선행 작품이 나왔으니 그 매력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품을 쓴들 의미가 없다.’ 저는 집필을 완전히 단념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담당 편집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SF작품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저는 주저하면서 ‘백년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설정이 비슷한 만화가 나왔기 때문에 집필을 포기했다고요. 편집자는 낯빛을 바꾸며 말했습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쓰십시오. 묻어두기에는 아깝습니다. 쓰세요.

    그 기세에 밀려 쓰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금방 후회했습니다. 분명 이미 나온 작품이 있다는 게 집필을 단념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소재였습니다. 그러나 프로 작가인 만큼 약속했으니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간신히 초고를 완성한 건 편집자에게 약속한 지 무려 3년 반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만일 편집자가 SF를 쓸 생각이 없느냐고 묻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 묻힌 상태였을 겁니다. 여러 우연이 겹쳐, 편집자의 권유와 열정 덕에 비로소 세상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은 반응과 높은 평가를 받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한국에 소개됩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제 마음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설들이 전 세계에서 발표됩니다. 아무리 애서가라 해도 볼 수 있는 건 그 가운데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처럼, 작품과의 만남도 때로는 기적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지금 이 책을 펼친 여러분과의, 바다를 뛰어넘은 만남 또한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4년 5월 12일

    후쿠오카의 자택에서

    야마다 무네키

    CONTENTS

    저자의 말

    1부

    1장 |  서기 2048년

    2장 |  갈림길

    3장 |  미지의 영역

    2부

    1장 |  전설

    2장 |  아들에게

    3장 |  무라사키야마

    3부

    1장 |  거부자

    주요 등장인물

    유사 아키히토  |  내무성 생존제한법 특별준비실 실장

    후카마치 신타로  |  내무성 생존제한법 특별준비실 부실장

    도모나리 야스타카  |  내무장관

    사사하라 다쿠조  |  내무성 차관

    1부

    생존제한법

    LIFE LIMIT LAW

    불로화 시술을 받은 국민은

    시술 후 100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1장 |  서기 2048년

    1

    그날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한없이 맑은 여름 하늘이었을까요.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모습이었을까요.

    아니면 송두리째 불타버린 들판이었을까요.

    우리 국토는 거듭된 공습과 여섯 발의 원자폭탄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멸망했습니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 전 세계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폐허에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이대로는 조국을 지키고자 죽어간 이들을 볼 낯이 없다, 다시 한 번 살아남은 우리 손으로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그 사명감이 당신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런 당신의 모습에 세계가 감탄했습니다.

    궁지에 빠졌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근면성실함.

    풍부한 교양.

    뛰어난 협동성과 윤리의식.

    질서와 법을 중시하는 정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우리 국민의 미덕은 당신의 실천으로 이루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물론 지난 백여 년 동안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린 건 아니었습니다. 세계사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부흥을 이루어내고 보란 듯이 국력을 회복한 우리나라도 이내 긴 정체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 고난의 시대를 헤쳐나갔습니다. 하루하루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의 자랑입니다. 새 역사의 초석입니다. 지난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도 분명 장하다 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이겨냈다고.

    그리고 지금.

    되살아난 이 나라를 새로운 세대의 손에 넘겨줄 때가 왔습니다.

    법치국가의 국민인 우리는 법에 따라 이 무대를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새로운 세대는 다음 세대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이어지겠죠.

    우리가 든 깃발을 모두가 따를 것입니다. 시대가 새롭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첫걸음이 바로 우리입니다.

    자, 함께 크나큰 만족과 자긍심을 가슴에 안고 당당하게 떠납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대의 여러분!

    우리는 떠납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이 나라를 맡깁니다.

    여러분을 믿고 우리는 떠납니다.

    두 남녀 출연자의 옷이 빛에 바스러지며 나신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등을 돌리고 서로 손을 잡은 채 빛 속으로 사라졌다. 가슴 뭉클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캐치카피가 나타났다.

    지금,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 당신에게서 시작됩니다.

    이상입니다.

    손에 쥔 터치패널을 조작하자 화면에서 영상이 사라지고 무색투명한 판이 나타났다. 두께가 2센티미터나 되는 아크라이드 모니터는 한눈에도 시대에 뒤처진 물건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5밀리미터 이하의 제품이 개발되었는데도 일본 제품은 아직도 이 모양이다.

    유사 아키히토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모니터를 탁자 안으로 밀어 넣고는 찰칵, 하는 잠금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 손을 뗐다. 요즘 시대에 수동 조작인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사를 시작으로 같은 회의 탁자에 앉은 다른 이들도 모니터를 밀어 넣었다. 유사는 모두가 넣고 나서 탁자 위가 정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 보신 세 유형의 동영상을 다음 달부터 정부 홍보 영상으로 언론에 배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신 롱 버전은 보디카피를 그대로 활자화해서 각 언론지에도 노출시킬 예정입니다.

    모든 참가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은 훤칠한 남자는 연회색 정장을 입고 크림색 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기록상으로는 실제 나이 83세이지만, 육체는 ‘시술’을 받은 이십대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윈 얼굴은 어찌나 창백한지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질 것 같았다. 미묘하게 좌우 빛깔이 다른 눈동자와 두피에 달라붙은 듯한 촌스러운 머리 모양 탓에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이 남자를 우습게 본 이들은 나중에 하나도 남김없이 후회를 맛보았다.

    이런 걸로 국민들이 납득하겠나?

    가장 상석, 긴 등받이 의자에 몸을 젖히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내무장관 도모나리 야스타카였다. 기록상으로는 117세. 스무 살에 시술을 받아 겉보기에는 스무 살로 보였지만, 그럼에도 젊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화를 막아도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배어나기 때문일까.

    이건 어디까지나 1탄이라 의도적으로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나가면 국민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안을 느낀다는 응답이 전체의 70퍼센트에 이른다고 했네. 이미 거부반응을…….

    그렇기 때문에

    유사는 도모나리의 말을 거침없이 잘랐다.

    관련법을 되도록 빨리 통과시켜야 합니다. 백년법의 시행은 기정사실이며,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국민들에게 철저히 주지시키고 납득시켜야 합니다.

    도모나리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법만 만들면 다 된다고 생각하나? 문제는 국민 정서야. 그게 바로 민주정치란 말일세. 일개 관료의 얄팍한 술수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유사는 입을 다물었다. 싸우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장관님…….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유사의 직속 상사인 사사하라 차관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사내다운 생김새. 전쟁터에서 돌아온 직후인 서른 살에 시술을 받았고, 특공대의 생존자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내무성 안에서 유사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백년법 시행은 말 그대로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일입니다. 국민감정이 어떻든 국정의 소임을 맡은 자로서 이를 굽힐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아네.

    백년법을 성공시키려면 터미널 센터의 원활한 운영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관련 법안 정비는 아직 시작조차 못한 실정입니다. 그러니 다음 국회에서 관련법을 하루라도 빨리…….

    나도 안다고 하지 않았나!

    사사하라 차관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이 도모나리 장관이다. 별 역량도 없는 주제에 툭하면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게 자신의 위엄을 세워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회의 주제는 내년으로 닥친 생존제한법, 이른바 백년법 시행을 앞두고 대국민 홍보 활동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였다. 한마디로 선전 공작이다.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을 이용한 여론 유도는 5년 전부터 시작했다. 덕분에 백년법 시행의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아직 국민들은 그 법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국민을 한층 더 계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홍보 전략을 재고하기로 한 것이다. 유사 외에도 정무관과 유사의 부하인 후카마치 신타로가 참석했지만, 그들이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관님, 아까 그 동영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조금 더 설득력이 있어야 할 것 같군. 다시 만들게.

    그러니까 그건 2탄부터…….

    다시 만들라고 했네.

    유사는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나서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장관님께서 한 가지 확인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정부의 백년법 시행 방침에 변경사항은 없겠죠?

    왜 그런 걸 묻나?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 자네 지금 나한테 소문 운운하는…….

    고노이케 총리는 백년법 시행을 중지시키려 한다.

    도모나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씀해주시죠. 백년법 동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틀림없습니까?

    그분 생각을 누가 알겠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까?

    난 모르는 일일세.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내무장관이야. 그게 내 답일세.

    사사하라 차관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더는 추궁하지 말라.

    자네들은 홍보 활동에 전념하면 돼. 백년법이 시행되자마자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되네. 어쨌든 아까 동영상은 다시 제작하게. 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라고.

    그 일 말입니다만.

    유사는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이 일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 정식 보고는 미뤄왔지만, 실은 준비실에서 백년법 시행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유명인을 기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안이 나왔습니다.

    연예인을 이미지 모델로 쓴다는 건가? 괜찮은 생각이군. 진작 그런 안을 내놓지 그랬나.

    물론 연예인도 대상에 포함됩니다만, 단순한 이미지 모델이 아닙니다. 되도록이면 백년법 시행 첫해에 적용대상자가 되는 인물을 기용하려 합니다.

    도모나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니까 전국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그리고 국민들에게서 폭넓은 존경을 받는 인물들을 밀착 취재하여, 그들이 백년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하는 겁니다. 그걸 정기적으로 방송하고요.

    도모나리는 아직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국민의 모범이 되어달라는 뜻이죠.

    연예인을 이용한다는 건가?

    연예계뿐 아니라 정계와 재계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유사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깍지 끼며 도모나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까 장관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들이 백년법에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법률이 과연 공정하게 적용될지에 대한 불안도 의외로 큽니다. 국민들은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비밀리에 백년법의 적용을 면제받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군.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의구심일지라도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국민이 다수 존재하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의혹의 대상이 될 만한 정재계 인사들이 자진해서 백년법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죠.

    자, 자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마치 모든 정재계 인사들이 부정을 저지른다는 식으로…….

    물론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죠.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백년법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그들의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재계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도모나리는 요란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물론 생각해놓은 후보도 있겠지?

    네. 정치인 중에서는 혼마 외무장관, 공화당의 우메자키 다치노스케 상원의원, 민권당의 세지마 사토루 대표. 경제인 중에서는 가노 전자공업 회장…….

    그만!

    도모나리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제정신으로 그분들을 거론하는 건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저도 냉혈한은 아니니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 믿습니다.

    미력하나마

    사사하라 차관이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이 몸뚱이라도 바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백년법 시행 첫해 적용대상자입니다.

    자, 자네도……?

    저는 내무성 차관이라는 위치상, 백년법의 책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제가 조용히 법을 따르면 국민들도 납득해주지 않을까요?

    도모나리의 기세가 꺾였다.

    자네, 진심으로…….

    장관님, 어쩔까요? 이 건을 구체적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잠깐 기다려보게.

    하지만 장관님.

    기다려보라니까.

    도모나리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았네. 취지는 이해가 가. 하지만 정치란 쉬운 일이 아니야. 특히 지금은.

    말을 마친 도모나리는 정무관을 불렀다.

    아, 장관님. 이후에 일정이…….

    한눈에도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도모나리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들었지? 이 건은 일단 보류야. 홍보 영상도 다시 만들게. 알았나?

    유사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관 집무실을 나왔다.

    후카마치가 닫힌 문을 경멸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무관이 장관 스케줄 관리까지 합니까?

    듣겠어.

    유사는 후카마치의 등을 밀며 말했다.

    장관 집무실 문 앞에서 길게 뻗은 복도에는 짙은 붉은색 양탄자가 깔려 있다. 좌우 벽을 따라서 고대 그리스 신전을 방불케 하는 대리석 문기둥이 늘어서 있으며 보란 듯이 조명까지 달려 있다. 한숨을 내쉬며 올려다보자 아치형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장관이 천장에 시스티나 성당 풍으로 그림을 그려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모양이지만, 그걸 부끄럽게 여길 정도의 양식은 있었는지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건축가가 가엾을 따름이다.

    복도 끝에서 두 번째 문을 나오면 비로소 천상계에서 지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부터는 내무성 직원들의 전쟁터다. 각국(局) 사무실을 들여다봐도 정장 차림으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와이셔츠 단추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샌들을 끌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거나, 핏발 선 눈으로 아크라이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는 건 장관이나 의원, 또는 외부 사람들을 만날 때뿐이다.

    유사 일행은 소란스러운 복도를 말없이 지나 엘리베이터 홀로 나왔다. 버튼을 누르자 바로 문이 열렸다.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마자 세 사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사하라가 층수를 나타내는 표시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제정신이 아니에요.

    유사도 표시등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오늘 밤에 공화당의 요다 간사장과 만날 예정이네. 여당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아봐야지.

    저는 후카마치를 데리고 민권당 본부에 다녀오겠습니다.

    대표와 만나려고?

    아닙니다, 친분이 있는 의원을 만나서 그 건의 진위를 알아보려고요.

    너무 깊이 파고들지는 말게. 도모나리 장관만큼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다들 예민하니 말이야.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췄다.

    사사하라는 인사 대신 손을 들었다 내렸다.

    다음은 지하 2층 주차장에서 멈췄다.

    총무과에서 공용차 이용권을 받지 않아도 됩니까?

    후카마치가 물었다. 총무과는 1층이다.

    오늘은 캡으로 가지.

    일반적으로 관청 직원이 의원회관이나 당 본부를 찾을 때는 운전기사가 딸린 검은 공용차, 한눈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차량을 이용한다. 대외적인 명분은 격식과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한마디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경시한다며 언짢은 티를 내는 예민한 의원들 때문이다. 그럴 걱정이 없을 경우나 남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될 때는 오토캡슐을 이용한다.

    오토캡슐이란 지난 10년 사이에 보급된 4인용 도시형 이동수단으로, 줄여서 캡슐 또는 캡이라고 불린다. 무당벌레를 확대시켜 놓은 듯한 차체 밑에 소형 타이어 여섯 개를 부착해, 정지한 상태로 360도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운전자는 필요 없고 안전벨트를 매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운전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탑재된 충돌 회피 시스템의 신뢰성 문제로 최고 시속이 40킬로미터로 제한된 까닭에 장거리 이동에는 적합하지 않다. 애초에 시속 40킬로미터라도 충돌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요즘은 미국 주요 도시는 물론, 서울이나 상하이에서도 시속 60킬로미터가 표준 속도다. 캡슐 도입이 정해졌을 때도, 아마 한국 기업의 로비도 있었겠지만, 어느 여당 의원이 한국제를 채택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국익을 무시한 의원의 언동에 분노를 느낀 담당자는 이 건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고, 그 결과 해당 의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명을 하느라 절절맸다. 하지만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다면 오히려 성능이 우수한 한국제를 도입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내무성 지하주차장 한구석에도 3년 전에 전용 충전소가 설치되어 늘 캡슐이 열 대 이상 대기하고 있다.

    유사가 맨 앞에 있는 노란 차체를 건드리자 걸윙도어(gull-wing door)가 천천히 열렸다. 캡슐 컴퓨터가 유사의 주머니에 있는 아이디(ID)카드 데이터를 읽은 것이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문이 내려와 잠겼다. 각종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터치패널에 ‘WELCOME’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메뉴 버튼으로 목적지를 입력하고 GO 버튼을 터치하니 경쾌한 종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주행이 시작됐다.

    등 뒤에서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가 들렸다. 타이어에서도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빈말로라도 승차감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구불거리는 통로를 지나 지상으로 나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가스미가세키의 풍경이 펼쳐졌다. 과거나 지금이나 관청 둘레를 한 바퀴 에워싼 시위대의 행렬은 여전했다.

    하지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형태의 시위는 사라지고,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매스게임을 하거나 화려한 복장으로 삼바를 추는 등 오락성을 중시한 시위가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저마다 공을 들인 결과였다. 애초에 가스미가세키에서 일하는 관료들에게는 과거나 지금이나 시끄러울 따름이지만.

    유사는 터치패널을 조작해 소음 모드를 선택했다. 즉시 외부의 소리가 차단됐다. 창밖의 사람들은 무음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유사는 그 모습을 힐끗 보며 가슴주머니에서 휴대단말기를 꺼냈다.

    받는 사람을 선택해 단말기를 귀에 댄다.

    유사입니다. 네…… 어제 말씀드린 건으로…… 지금 그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립이라 불리는 이 기기는 원래 아이디카드를 수납하는 홀더에 지나지 않았지만, 후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지금은 통신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미국산으로, 그립도 미국 기업이 소유한 상표였다. 국내 기업에서도 개발에 착수했지만 아직은 실용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캡슐은 큰길로 나왔다.

    최대 속도가 시속 40킬로미터인 캡슐은 큰길에서는 모두 꺼리는 존재였다. 정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뒤따라오는 차들은 ‘거치적거리니까 꺼져.’라는 뜻을 담아 경적을 울리고 있겠지만 소음 모드라 들리지 않았다. 설령 들린다 하더라도 자동운전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다. 뒤차에게 길을 양보하는 ‘먼저 가시죠.’ 버튼이라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산업성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충고한 적이 있지만, 그런 걸 만들면 캡슐은 모두 길가로 쫓겨나 꼼짝 못하게 될 거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했다.

    차관님이 앞으로 1년 남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후카마치가 서서히 흘러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널찍한 왕복 6차선 도로 옆에는 무성한 숲처럼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조차도. 마치 시대가 멈춰버린 것처럼. 굳이 변화를 찾자면 캡슐 같은 자동운전 차의 출현 정도일까.

    차관님은 백년법이 실행되면 가장 먼저 적용대상이 되십니다. 그런데도 시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시죠.

    사사하라 차관님은 진정으로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고 계셔. 내가 알기로는 사리사욕에 휘둘린 적도 없으시고. 정말 대단한 분이야. 모든 공무원의 귀감이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엄두도 나지 않네요.

    전쟁을 실제로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1세기 전에 일어난 전쟁…….

    전에 술자리에서 그러시더군. 지금도 특공대에서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 꿈에서도 본대. 그래서 저승에 갔을 때 전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으시다더군.

    특공이라. 학교에서는 군부의 어리석은 작전의 희생자라고만 배웠는데요.

    그건 사실의 일면일 뿐이야.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적함에 돌진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후카마치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그 동영상의 마지막 문구를 기억하나? 초안을 차관님이 쓰셨어.

    그랬습니까?

    광고대행사 디렉터가 쓴웃음을 짓더군. 자기들이 나설 자리가 없다면서.

    그런 능력도 있으셨군요?

    백년법 첫해 적용자는 직접 전장에 섰든 후방에서 지원을 했든 모두 그 전쟁을 경험했어. 그래서 그 문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치면 장관님도 전쟁 경험자 아닙니까. 그런데도 오늘 그 태도는…….

    쓰디쓴 침묵이 흘렀다.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일까요? 제1야당인 민권당에서 다음 선거 공약에 백년법 동결을 추가한다는 이야기가…….

    "그러니 여당인 공화당이 입에 거품을 무는 게 아니겠나.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안 그래도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동요가 엄청날 거야. 다들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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