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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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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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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악의 날에 괴상한 여자를 만났다.
상당히 좋지 않은 기분으로 들어선 바에서 무진은 독한 싱글몰트를 마신다.
위스키의 향을 음미하고 있는 와중에 옆에서 어느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저 남자가 마시는 걸로 저도 하나 주세요.”
자기 입으로 독한 년이니 독한 술을 달라고 하는 골 때리는 여자였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향을 음미하지도 않고 단번에 입에 털어 넣는 이 미친여자.
무진은 충동적으로 예약한 방의 호수를 적어서 여자의 자리에 놓아둔다. 여자와의 격렬한 밤을 보내고, 무진은 바닥에 나뒹구는 여자의 지갑을 열어본다.
그녀는 경호원이었다.
원나잇을 한,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진은 이상한 끌림에 그녀의 명함을 안주머니에 고이 넣어둔다.
선배와 닮은 남자를 호텔에서 보게 되었다. 설은 무신 선배의 생일을 맞아 그와 함께 갔던 호텔로 향한다.
3년 전, 죽은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선배를 닮은 남자를 만났다. 그가 마시는 술을 따라 마셨다.
속이 타버릴 것 같이 독한 술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자리에는 호수가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 종이에 적힌 방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와 아주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는 완전 곯아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주민등록증을 보았다.
그는 이름을 속였다. 원나잇 상대에게 이름을 그대로 말하기는 싫었나보다.
그러면서도 설의 명함을 가져가는 이 남자.
도대체 꿍꿍이가 뭘까. 다시 이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Language한국어
Publisher텐북
Release dateAug 3, 2018
ISBN979119645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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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여자 - 해수

    작가 소개

    해수

    커피와 글을 좋아하는 사람

    목차

    1~15

    최고의 여자

    지은이 : 해수

    펴낸이: 김기철

    펴낸곳: 텐북

    주소: 경기도 부천로 30번길 25, 2층 우)16440

    전화: 070-8823-8681

    FAX: 032-667-8681

    출판등록: 제 2018-000040호

    전자우편: edit@tenbook.co.kr

    홈페이지: www.tenbook.co.kr

    ⓒ해수, 2018

    ※ 가격: 4000원

    ※ 발행일: 2018년 8월 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

    인생 최악의 날에 괴상한 여자를 만났다.

    1년 동안 공을 들여온 프로젝트가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파토가 났다. 몇 시간 뒤, 다른 쪽에서는 대규모 펀드 투자유치를 목전에 앞두고 깡그리 엎어졌다.

    두 이벤트가 각각 성공할 확률은 95% 이상, 고로 둘 다 동시에 실패할 확률은 0.25% 미만.

    벼락을 맞는 것보다 조금은 높은 확률을 그러잡은 사내는 이 개 같은 행운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살면서 이렇게 지독한 실패는 처음이었다. 어릴 적, 형을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고 어머니께 살의에 가까운 눈초리를 받은 이후로 이렇게 감정이 엉망이 된 적도 처음이었다.

    후두두둑.

    밤을 수놓는 봄비가 차의 앞유리를 두드렸다. 3월의 밤을 적시는 이 불청객이 무진의 시야를 가렸다. 밤과 비의 조합은 짜증을 유발했다.

    손가락이 분노를 머금고 와이퍼 스위치를 켰다. 두어 번 정도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아냈을까. 번쩍, 하고 맞은편의 차선에서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무진의 동공을 사정없이 침범했다.

    이런 씹….

    찌푸린 눈가를 겨우 떴을 때, 어려 보이는 무리들이 차창을 내리고 무진의 차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킬킬거렸다.

    입을 크게 벌리며 뭐라고 지껄이는 것 같기는 했는데 들릴 리가 만무했다. 입모양만 봐도 추측이 가능한 단어는 ‘개새끼야’, 뿐이었다.

    비가 오는 도로에서 저딴 조무래기들한테 욕을 먹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오늘은 별의별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무진을 괴롭혔다. 이 모든 확률을 합치면 벼락 한번 정도는 맞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벼락을 내려. 씨발!

    손이 얼얼할 정도로 운전대를 내려쳤지만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서울의 하늘은 비만 토해낼 뿐, 고요했다. 좀처럼 흥분을 하지 않는 무진도 오늘만큼은 멘탈을 잡기 쉽지 않았다. 무진은 깊게 호흡하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부드러운 코너링을 자랑하는 차도 오늘따라 핸들이 뻑뻑했다. 가늘어진 눈초리로 앞을 주시하며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싱글몰트로.

    눈치가 빠른 바텐더는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더욱 어두운 기색을 발산하는 무진의 분위기를 눈치 챘다. 평소 무진이 마시던 것보다 몇 배는 독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잔에 따라 건네주었다.

    흐읍.

    어떤 것도 첨가되지 않은 위스키의 잔을 몇 번 돌리고는 코를 대고 호흡했다. 마시기 전의 풍부한 향만으로도 취기가 올라올 것 같은 이 기분. 싱글몰트 위스키를 선호하는 이유였다. 천천히 한 모금 입으로 털어 넣고 잠시 머금은 채 코로 숨을 내쉰다. 향이 배가 되어 얼굴 전체로 퍼졌다. 마무리는 깔끔하게 목으로 넘겨준다. 뜨겁게 목을 긁고 내려가는 독한 위스키의 풍미가 더러운 기분을 잊게 만들어주었다.

    크으….

    얼마나 독한지 머리부터 내장까지 후끈거렸다. 무진은 목구멍으로 그을음을 토해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얼핏 바텐더를 노려봤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거나 마시고 속에 있는 것들을 다 태워버리라는 듯이.

    코로는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머리는 알딸딸해지는 기분이 공존하는 이 시간. 엔돌핀이 더 필요한 무진은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속이 활활 타올라 동공까지 열이 올라왔다.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이 시간에 특급 호텔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펍에 있는 인간들은 세 부류 중에 하나다. 한량이거나, 기분이 아주 좆같은 인간이거나, 기분이 좆같은 한량이거나.

    펍은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드문드문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유독 소란을 떠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 깔깔거렸다.

    과장된 남자의 제스처와 표정에 여자들은 더 오버를 하며 웃는다. 99% 한량인 저 새끼와 그 비위를 맞추느라 바쁜 여자들을 보고 있자니 역겨움이 치밀었다. 세상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 저 한량들을 보니 자신은 무슨 영광을 누리려고 이렇게 사나 싶어 기분이 더 엿 같았다.

    술을 당기게 하는 밤이었다. 세 모금 째 들이켠 술이 혈액을 타고 퍼지는 순간, 세상이 잠시 흔들, 거렸다.

    프로젝트 기간에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조우한 알코올은 무진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손목을 들어올렸다. 소매 끝에 살짝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시계는 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남자가 마시는 걸로 저도 하나 주세요.

    처진 음성이 야심한 시각과 미묘하게 어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에서 의자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앉은 여자가 무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경우 없는 여자의 손가락이 몇 번이나 무진을 가리켰다. 하나, 둘, 셋… 무진은 속으로 가만히 세어보았다. 한 번만 더 손가락을 들이대면 잡아다가 부러뜨려 버릴지도 몰랐다. 부모님을 빼고는, 그것도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누구한테 삿대질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여자는 더 이상 손가락을 놀리지 않고 거뒀다.

    저 술이 좀 독합니다.

    독하면 더 좋고요.

    생각보다 많이 독합니다.

    저도 생각보다 많이 독한 년이니까 그냥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바텐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술을 준비하였다. 자기 입으로 독한 년이라고 독한 술을 달라니… 골 때리는 여자였다. 바텐더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무진은 알 것도 같았다.

    이 시간과 이 장소에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아래위로 검은 자켓과 바지, 까만 단발머리, 화장기 하나 없는 저 얼굴. 입술에 립밤이라도 발라주고 싶을 정도였다. 저 꼴을 하고 한량을 꼬시러 이곳에 왔을 리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갖다 놓으면 딱 어울리는 자태였다.

    저 여자가 한량은 절대 아닐 테고. 그렇다면 기분이 별로인 건가. 여자는 반쯤 취한 얼굴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무진은 판단을 포기했다. 30초쯤 지났을까. 바텐더에게 잔을 받아들자마자 술을 마시는 여자를 보고 결론을 내렸다.

    여자는 받아든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입에 다 털어 넣고는 꿀떡 삼켰다. 한 모금만 마셔도 속에서 열이 확 오르는 저 독한 싱글몰트를 저렇게 향도 음미하지 않고 원샷으로 때리는 인간은 단 하나다. 미친 거다. 저 여자는 미친 여자였다.

    으윽….

    여자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토해내더니 열 개의 손가락을 모두 동원하여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악…!

    이윽고 입을 벌리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영락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었다. 무진은 몸을 배배 꼬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여자를 보고만 있어도 속이 미식 거렸다. 위세척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119 정도는 불러줄 용의가 있었다.

    하아… 하아….

    머리를 부들부들 거리던 여자가 호흡곤란이라도 왔는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뱉기를 반복했다. 무진은 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조금만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면 바로 번호를 누를 태세였다.

    음….

    여자의 상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던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무진은 목덜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정말 미친 여자인가.

    와, 이거 쎄네.

    싱글몰트가 뭔지, 저게 한 잔에 얼마나 하는 줄도 모를 게 뻔한 저 여자는 불을 뿜듯 크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는 무진을 향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게슴츠레한 시선은 보너스였다. 술이 마음에 든다는 건가. 이런 여자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안 그래도 습한 공기에 부담스러운 시선이 눅눅하게 얼굴에 달라붙었다. 싱글몰트를 무식하게 마시는 여자에게 보낼 배려는 없었다.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응대를 해주니 여자는 무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 이후로도 여자는 몇 잔의 위스키를 더 주문하고 마시기를 반복하였다. 무진이 한 잔을 다 비우는 동안 아마 네 잔은 마신 것 같았다.

    한 잔을 더 마실까 말까. 무진은 덧없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아저씨,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여자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바텐더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여자는 갈지자를 그리면서도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발걸음만큼이나 위태로운 여자였다.

    아까부터 뭐라고 구시렁거리던 여자가 사라지니 조용한 재즈의 선율이 무진의 귀를 적셨다. 베이스 기타가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음성이 마음에 들었다. 무진은 비어 있는 여자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하였다.

    오늘은 모든 것이 충동적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려 유턴을 한 것도, 호텔 주차장에 들어선 것도, 스위트룸을 잡은 것도, 처음 본 여자의 술값을 대신 계산한 것도, 결정적으로 비어 있는 여자의 자리에 호텔방의 호수가 적힌 종이를 두고 온 것도.

    계획되지 않은 일은 무진이 금기시 하는 것이었다. 충동적인 것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십여 년 전, 사업이 풀리지 않을 때 속이 너무 답답하여 가끔 원나잇을 한 적은 있었지만 회사가 자리를 잡고 서른이 넘은 이후로는 그런 충동적인 짓은 물론이고, 여자와 관계를 가진 적도 없었다. 오로지 일뿐이었다.

    오늘,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호텔에서 창밖의 야경을 보며 초조하게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무진은 모든 것을 확률로 수치화 시키곤 했다. 원래대로라면 동료들과 성공의 축배를 들어야 할 자신이 호텔방에서 미친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은… 1%도 아닌, 0.1% 미만.

    말도 안 되는 확률은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다. 온몸의 혈액을 점령하고 있던 알코올이 서서히 후퇴하자 현실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왜, 왜.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여자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가치를 전혀 모른 채 1초 만에 목구멍으로 액체를 삼켜버리는, 무진이 아주 기피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 관심이 간 것은 아주 사소한 감정의 파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자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거의 눈이 풀려 있었다. 몸에 열이 올라오는지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는 풀어헤친 채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어두운 조명에 그녀의 쇄골과 뽀얀 속살이 비쳤다.

    이미 두 잔째 위스키를 다 비운 무진의 뇌는 이성을 잠시 구석에 처박아두고 경계심을 서서히 누그러뜨렸다. 무진은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는데 여자의 모습은 선명해지는 기이한 상황을 경험 중이었다.

    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침이 절로 넘어갈 만큼 아름다운 쇄골 라인이었다. 저런 여자에게 저런 숨은 쇄골이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본능이랄까. 예상치 못한 쇄골에 저 옷 안에 숨겨진 몸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녀가 한쪽으로 늘어뜨린 단발을 손으로 쓰윽 쓸어 올리는 순간, 취기가 오른 뇌가 멋대로 경고음을 날렸다. 어느새 손은 묵직해진 사타구니 사이로 가 지퍼를 뚫고 나올 듯한 페니스를 꽉 쥐고 있었다.

    이대로 혼자 보내기에는 너무 엉망인 밤이었다. 이 밤을 잊게 해줄 손길이 필요했다. 그게 지금 저 앞에 있는 여자라고 뇌가 신호를 보냈다.

    무진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조금 풀어헤쳐진 셔츠의 단추를 모조리 뜯어버리고 그녀의 알몸을 보고 싶었다. 오늘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강무진이라는 자신의 존재조차.

    그 사이에 여자는 또 화장실을 갔는지 자리를 비웠다.

    고민할 것은 없었다. 바텐더에게 메모지를 하나 얻어 예약한 방의 호수를 적어 자리에 올려두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자조 섞인 무진의 음성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그 공허함은 취기를 더욱 날려버렸다.

    정신이 돌아오자 이성이 활동을 재개했다.

    처음 본 여자. 독한 위스키를 원샷하는 여자. 머리를 쥐어뜯다가 웃는 여자. 삿대질을 아무렇게나 하는 여자. 미친 여자.

    결론은 종잡을 수 없는 위험한 여자. 이런 여자와 원나잇을 해서 얻을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그것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리스크를 알면서도 짊어지는 것은 무진이 경멸하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빨리 후회를 할 선택을 했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그 여자는 원나잇을 할 분위기도 풍기고 있지 않았다. 속에 응어리진 것이라도 있는지 술만 퍼마셔댔다.

    그 여자가 그 쪽지만 보고 이 방으로 찾아올 확률은? 10% 미만.

    만약 온다면? 바로 돌려보낼 것이다.

    모든 리스크는 사라질 테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 계획된 생활을 이어나가면 아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띵동. 띵동.

    평범한 벨소리가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새벽 세 시에 울리는 벨소리는 유난히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오늘은 낮은 확률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시간에 벨을 누를 사람은 미친 여자뿐이었다.

    문을 열어젖히자 예상했던 얼굴이 서 있었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침착하게 돌려보내면 된다. 무진이 돌아가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여자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이름이 뭐예요?

    무진은 섣불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까보다 하나는 더 풀어진 단추, 더 헝클어진 머리, 어두운 조명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빨개진 볼. 오묘하게 실실거리는 저 입가. 그리고 삼켜버리고 싶은 저 입술.

    강…유진.

    돌아가라는 말 대신 엉뚱한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원나잇을 하는데 이름을 물어보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정체는 숨길수록 좋다. 본능적으로 형의 이름을 내뱉었다.

    나는 이설.

    뭘 어쩌라는 거지. 잠시 새 학기가 시작된 초등학교 어느 교실을 떠올렸다. 느닷없는 통성명에 무진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통성명은 했고, 그럼.

    설은 다짜고짜 무진에게 입을 맞췄다. 여자의 입에서 퍼지는 위스키와 보드카와 꼬냑… 갖가지 술 냄새가 섞여 냄새만으로도 몽롱해졌다. 설이 입을 벌려 무진의 입술 위에서 호흡할 때마다 알코올의 풍미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이 미친 여자에 무진은 속수무책이었다. 호리호리한 게 한줌이면 날아갈 듯한 여자가 힘은 왜 이리 센 건지,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왔다. 여자가 조용히 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림을 그렸던 무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자에게 밀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무진은 아직 잠식당하지 않은 한 줌의 이성을 되찾아 정신을 차리고 멈춰서 여자를 밀쳐냈다. 입술을 매개로 닿았던 두 남녀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설은 키스를 하던 그 상태로 입을 약간 벌린 채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숨결에 녹아 있는 불쾌한 감정이 그대로 무진에게 전해졌다.

    당신이 이거 놓고 갔잖아.

    설은 무진의 방 호수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무진은 물끄러미 종이를 바라보았다. 지겹도록 봐왔던 자신의 필체였다.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이었다.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이 여자와 오늘 밤을 보낸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확률로 떨어지지가 않았다.

    원나잇을 보내고 아무 일도 없을 확률? 뒤탈이 날 확률?

    머릿속의 회로가 뒤틀린 기분이었다.

    뭐야, 이 미친 새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결을 나눴던 그의 입술이 꽉 다물어져 벌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묵묵부답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 다물린 입술을 향해 욕을 내뱉어줬다. 설의 손에서 구겨진 종이가 가차 없이 무진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설은 바로 뒤돌아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툭.

    눈가를 맞고 튕겨 나간 종이쪼가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진은 미친 여자에게 미친 새끼라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인중에서는 여자의 타액에서 풍기는 싱글몰트 향이 계속 코를 괴롭혔다. 아까 마실 때보다 몇 배는 향이 진했다. 이성은 점점 설의 향에 잠식 되어갔다. 돌아선 설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지 않고는 이 밤을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리스크고 나발이고, 지금은 본능이 앞섰다. 이성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밤이었다.

    거기 서.

    무진은 설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고 입술을 거세게 부딪쳤다. 오늘 받았던 분노가 모두 욕정으로 폭발이라도 하듯이, 오늘을 다 잊으려는 듯이, 내일은 없는 사람인 듯이, 설의 입술만을 탐하였다. 턱에서 꺼끌거리는 수염이 잠시 걸렸지만, 계획되지 않은 이벤트인 만큼 감수해야 했다.

    우웁.

    처음 만난 남녀가 입술을 맞대며 서로의 영혼을 나누는 이 시간. 립스틱 맛은커녕 그 흔한 립밤의 흔적조차 없었다. 입술만 훑었는데도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갔다. 자신을 별로 돌보지 않는 여자였다. 문득 이 여자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무진은 술이 범벅이 된 여자의 붉은 입술을 타액으로 적셔주었다. 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약간의 알코올과 타액이 반반씩 섞여 나오는 오묘한 맛도 색다른 기분을 주어 무진을 더욱 흥분시켰다. 태어나서 이런 입술은 처음이었다.

    입술을 맛보고 나니 설의 살결이 더 궁금해졌다. 그녀의 몸을 가두고 있는 옷들을 제거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입술은 떼지 못한 채 설의 재킷과 셔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입술을 느끼느라 손이 단추를 풀지 못하여 자꾸 헛손질을 했다. 잠시 입술을 떼고 그녀의 옷을 벗기는 것에 집중하려는데 뒤통수에 설의 손이 다가오더니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고는 입술을 비벼댔다.

    하아… 하아….

    설 또한 무진의 셔츠를 벗기려고 했지만 키스에 집중하느라 잘 되지가 않았다. 얼큰하게 도는 취기에 손을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단추가 아주 거슬렸다. 거슬리는 건 눈앞에서 없애버려야 직성이 풀렸다. 설은 두 손으로 셔츠를 잡고 힘을 주었다.

    후두두둑.

    무진은 자신의 셔츠 단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 상의가 나가떨어지자 무진의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설은 무진에게 틈을 주지 않고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킹 사이즈의 침대가 출렁거리며 무진과 설이 그 위로 포개졌다.

    설이 입술을 잠시 떼고 빠르게 브래지어를 풀어서 던지자 가슴이 출렁거리며 존재를 드러냈다. 설의 아래에 깔려 있던 무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설의 상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옷 안에 감춰져 있던 몸매가 굉장히 육감적이었다. 평소 바쁜 와중에도 운동만큼은 꼭 챙겨서 하는 무진이었기에 다른 이의 몸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나사 몇 개는 빠진 여자인 줄 알았는데 몸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냥 날씬한 몸이 아닌 철저하게 잘 다져진 몸매였다.

    저 팔에 있는 건 뭐지.

    어깨 부분부터 팔꿈치까지 깊은 자상의 흔적이 나 있었다.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의 깊이가 느껴져 섬뜩할 정도였다. 그 상처에 잠시 넋이 나간 사이, 설의 목소리가 무진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당신 몸이 꽤 괜찮네. 마음에 들어.

    무진과 같은 생각이 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진은 상처에 대한 상념을 떨쳐내고 허리를 들어 올려 다시 입을 맞추며 손으로 설의 몸을 더듬었다. 곳곳에 단단한 근육들이 숨어 있었다. 운동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여자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그런 기회가 없었다. 남성이 더욱 불끈 일어섰다.

    무진은 팔의 근육을 모두 이용하여 설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아래로 눕히고 자신이 올라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무진의 손이 설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한 손에 넘치게 들어오는 유방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손가락으로 유륜 근처를 빙빙 돌다가 검지와 중지로 유두를 가두고 거칠게 문질렀다.

    아악!

    설의 상체가 위로 솟구치면서 그 희열을 고스란히 목구멍으로 토해냈다. 그 날카로운 음성이 무진을 더욱 자극시켰다. 몇 배는 사납게 유두를 괴롭혔다. 설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입에서 침이 약간 옆으로 새어나왔다.

    스읍.

    무진은 혓바닥으로 설의 타액을 핥아주었다. 아까보다 알코올이 희석되었지만 이것대로 묘미가 있었다. 혓바닥으로 자신의 입술을 한번 쓱 훑으며 축축하게 적셨다. 아주 탐스러운 것을 먹기 전, 입맛이라도 다시는 듯이. 무진은 그대로 꼿꼿하게 서 있는 유두를 입 안에 넣고 쪽쪽 빨았다.

    침이 잔뜩 묻어 있는 입술은 아주 부드럽게 젖꼭지를 자극하였다. 손가락이 주는 자극이 아주 성급하고 자극적이었다면, 입술은 아이를 다루듯 점잖게 굴면서도 때로는 강하게 빨아들이면서 몰아쳤다. 저 자그마한 꼭지에서 시작되는 희열은 점점 몸 전체로 퍼져 발끝까지 꼿꼿하게 서도록 만들었다.

    츄룹츄룹.

    어느 정도 무진의 입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날선 혓바닥이 2차로 유두를 공격하였다. 혀의 돌기가 젖꼭지의 정점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몸이 조금씩 떨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벌써 떨면 안 되지.

    무진은 쪼오옥, 소리가 나도록 세게 유두에서 입을 떼더니 설의 몸을 들어 올려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겨버렸다. 검은 수풀이 자라난 곳에 당장이라도 손을 쑤셔 넣고 싶었다. 손을 성급하게 움직여 튼실한 허벅지 위에 설의 다리를 올려놓고 좌우로 쫙 벌렸다. 여성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입을 살짝 벌렸다.

    무진은 손을 가져다 대고 질의 입구를 슬슬 문질렀다. 건조할 줄 알았는데 입구까지 액이 흘러나와 축축했다. 그 미끌거리는 감촉에 들어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안으로 쑥 찔러 넣고 그녀의 안을 마구 저었다.

    으흡! 아… 흑! 아아아!! 천천히…!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얼굴로 설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무진의 손목을 꽉 잡았지만 무진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을 더 안으로 집어넣고 손끝에 힘을 주어 내벽을 긁어버렸다.

    흐윽!!

    설은 골반을 위로 튕기면서 여성에 힘을 잔뜩 주었다. 무진은 속살에서 느껴지는 굉장한 조임에 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조이는 힘도 장난이 아니었다. 만약 페니스가 저 안에 들어갔다면 바로 사정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이미 저 안에는 물이 흥건했기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바지를 어떻게 벗었는지, 콘돔을 어떻게 끼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나간 채로 페니스를 설의 질에 꽂아 넣었다.

    으으윽….

    무진은 묵직하게 조여 오는 질을 직접 느끼니 더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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