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 millions of ebooks, audiobooks, and so much more with a free trial

Only $11.99/month after trial. Cancel anytime.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Ebook170 pages1 hour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Rating: 0 out of 5 stars

()

Read preview

About this ebook

인민군 소년병 출신 실향민의 애절한 기록
전투와 포로수용소 생활을 세밀하게 재현한 한국전쟁 이야기

이 책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은 인민군 소년병 출신 실향민의 살아 숨 쉬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동안 남한 출신 소년병이나 빨치산을 다룬 문학작품은 꽤 소개되었지만, ‘인민군 소년병’이 직접 쓴 수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한 청소년 소설은 이 작품이 최초일 듯하다. 주인공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고향이기도 한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일제 강점과 해방의 역사를 경험했다. 해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소련군이 주둔했고, 그가 열여섯 살이던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소용돌이는 한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는 강제로 징집되어 가족과 고향을 영원히 떠나야 했고, 끔찍한 전투와 참담한 포로 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 소설은 이처럼 한 인간의 내밀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비극의 순간을 충실하게 그려내 전쟁의 참담함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고향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조명하고 있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Sep 9, 2020
ISBN9791189809393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Read more from 문영숙

Related authors

Related to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Related ebooks

Reviews for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Rating: 0 out of 5 stars
0 ratings

0 ratings0 reviews

What did you think?

Tap to rate

Review must be at least 10 words

    Book preview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 문영숙

    나의 할아버지,

    인민군 소년병

    1판1쇄 발행 2020년 8월 24일

    지은이 문영숙

    펴낸이 김형근

    펴낸곳 서울셀렉션 ㈜

    편 집 문화주

    디자인 이찬미

    마케팅 김종현

    등 록 2003년 1월 28일(제1-3169호)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6 (03062)

    편집부 전화 02-734-9567 팩스 02-734-9562

    영업부 전화 02-734-9565 팩스 02-734-9563

    홈페이지 www.seoulselection.com

    ⓒ 2020 문영숙

    ISBN 979-11-89809-34-8 43810

    * 이 책의 내용과 편집, 디자인의 무단 도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본 전자책은 주식회사 북틀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주소│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9 보부빌딩 3층

    대표전화│070-7848-9387

    대표팩스│070-7848-9388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시에는 형사/민사상의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본 컨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회의의 KoPub서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인민군 소년병의 수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다. 주인공 ‘나’의 이야기는 수기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다만, 원작자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아직 북한에 살아 있을 수 있어 그들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원작자 자녀의 염려 때문이다. 수기를 남긴 주인공과 이를 소설로 쓸 수 있게 허락해 준 가족분들께 감사드린다.

    증인들을 찾아서

    고등학교에서는 누구나 하나 이상의 동아리 활동이 필수다. ‘학종’ 시대에는 동아리 활동이 대학 진학 점수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현우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다. 수많은 동아리 중에서 현우는 그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동아리를 들고 싶었다.

    아직 고1인데 벌써부터 대학 입시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조금 서글펐지만 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었다면 평소 좋아했던 축구나 미술 동아리를 선택했겠지만, 이제부터는 실전이라는 생각이 현우의 머리를 맴돌았다.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이왕이면 이름 있는 대학에서 사회과학 계열을 전공하는 것이 좋고, 그러려면 학생부에 그런 분야와 관련해 좋은 기록이 하나라도 더 남는 게 중요했다.

    그러던 중에 담임 선생님이 지도 교사인 역사 토론 동아리 ‘증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선생님의 동아리 홍보에 현우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는 1학년 때부터 외교관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사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현우의 머릿속에 대학 입시에 쓸 자기소개서 문구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증인들’은 현우가 찾던 동아리였다. 현우는 단짝인 수현이에게 졸랐다.

    너 나랑 증인들 안 할래?

    수현이는 시큰둥했다.

    증인들? 담탱이 동아리? 왜?

    너 교대 가고 싶다며? 교사는 말발이야. 토론하면서 말발 좀 키우라고. 어차피 정해 놓은 동아리도 없잖아.

    하긴,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가려면 동아리가 중요하긴 하겠지?

    당연하지. 우리 중학교 때 독서동아리도 재미있었잖아. 같이 하자. 너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수현이는 이것저것 살펴본 후에야 증인들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 지원자가 많으면 면접도 본다던데.

    내가 알아봤는데 그 동아리는 별로 없을 거래. 암튼 같이 하기로 한 거지?

    수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 때부터 붙어다니던 단짝 친구와 동아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우는 토론에 별 소질이 없어 괜히 혼자 뻘쭘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였다.

    며칠 후 현우의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많은 엄마가 물었다.

    현우야, 너 역사 토론 동아리 신청했다며?

    역시 엄마들은 정보가 빨랐다. 엄마는 수현이 엄마한테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는 이름이 좀 특이하더라. 증인들? 그게 무슨 뜻이니?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역사의 증인이 되라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의미는 생각 안 해봤어요. 그냥 나중에 대학 갈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정한 거라.

    역사의 증인들이라······ 멋있는데? 우리 집에도 산 증인들이 많지. 아무튼 동아리 잘 든 것 같네. 열심히 해 봐.

    누구요? 우리 집에 정말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럼. 옛날 사람들은 다 증인들이지. 엄마 아빠 세대는 군부독재 시대를 살았는걸. 너희 할아버진 전쟁도 겪으셨고. 에휴, 그냥 겪은 게 아니고 인생이 아주 송두리째 바뀌셨지. 전쟁이 뭐라고.

    그때 아빠가 현관문을 닫으며 들어오셨다.

    애한테 뭔 쓸데없는 소리야?

    엄마는 하려던 이야기를 멈추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셨다. 현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더 묻지 않았다.

    아빠와는 날이 갈수록 사이가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현우는 얼마 전 저녁을 먹다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빠는 그 말에 별 반응이 없었다. 식사가 끝날 즈음 나지막이 왜 굳이 공무원이 되려 하냐며 되물을 뿐이었다. 현우는 그런 아빠가 너무 섭섭했다.

    사실 현우는 아빠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언제인지 몰랐다. 현우는 젊은 아빠들이 부러울 정도로 아빠의 나이가 많은 게 싫었다. 아빠와 엄마가 늦게 결혼한 탓도 있지만 결혼한 후에도 5년 동안이나 아이가 없다가 아빠 나이 마흔이 넘어 현우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우는 어릴 때 말고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며칠 후 동아리에서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수현이도 같이 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무엇보다 정규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드디어 동아리 첫 모임이 있는 날. 동아리 회원은 모두 열 명이었다. 2학년 선배들이 동아리를 소개하고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학교 옆 돈가스 식당에서 조촐하게 신입회원 환영회를 치렀다.

    돈가스를 먹는 내내 선배들은 우리 동아리가 ‘빡센’ 동아리라고 겁을 주었다. 공부할 것도 많고 모임도 잦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현우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국사 같은 수능 과목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안심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2학년 선배 네 명이 서로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론이 끝난 후 동아리 회장이 한 학기 동안의 계획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원래는 토론과 역사 탐방이 주요 활동이지만, 이번 학기는 탐방 대신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 현우는 왜 그런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지 의아했다. 그때 회장 선배가 말했다.

    한국전쟁 때 군인들이 우리 학교를 임시 병원으로 사용했었대. 그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생존한 군인 중에 한 분이 우리 학교에 장학금도 주고 그랬나 봐. 뭐 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교장 선생님이 이번 70주년 때 일 층 복도에다 한국전쟁 사진이나 기록물 같은 걸 전시해 보자고 하셨거든. 우리가 역사 동아리니깐 우리 동아리 주관으로.

    현우는 학교가 오래된 건 알았지만 몇십 년이 지난 전쟁과 관계가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한 전쟁이 순간 가깝게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선배들은 계속해서 어떤 기록을 전시할지 의논했다. 그때 수현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전쟁을 겪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직접 듣고 손글씨로 써서 전시하는 건 어때요? 우리 옆집 할머니가 북한 뉴스만 보면 전쟁 얘길 하시거든요. 그런 이야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분 동안 갑론을박이 오간 끝에 수현이의 말대로 기록을 모으기로 했다. 일단 각자 주변에서 증언을 할 수 있는 어르신을 찾아보고, 몇 명은 참전용사 같은 분들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현우는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겪으셨다는 전쟁은 분명 한국전쟁일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현우에게 북한에 있는 고향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일이라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과 한국전쟁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렇게 궁금해하던 차에 현우에게 기회가 왔다. 어버이날이 하루 지난 토요일에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된 것이다. 동아리가 아니었으면 별로 가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은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 전망대 근처 자애요양원이다. 서울에서 가려면 자동차로 네 시간도 더 걸리는 먼 길이었다.

    여든여섯이신 할아버지는 3년 전 그곳으로 가셨다. 일흔이 다 되셨을 때부터 고성 바닷가에 있는 그곳 요양원으로 가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는데, 3년 전에야 소원을 이루신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너무 멀다고 가까이에 있는 요양원을 권했으나 아무도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마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현우는 그것 말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드릴 음식을 싸 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한여름도 아닌데 동해 바다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벌써 차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현우는 얼른 앞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웬일이냐는 듯 현우를 흘긋 보더니 뒷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부자지간에 정 좀 쌓아 보셔. 난 좀 자야겠다. 밤새 음식 만드느라 잠을 못 잤더니 너무 졸려서.

    엄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퇴근 후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손수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준비했기 때문이다. 남양주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 현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빠, 한국전쟁과 할아버지가 무슨 특별한 관련이 있어요?

    조용히 달리던 차가 갑자기 약간 흔들렸다.

    무, 무슨 말이야? 뜬금없이?

    그때 자겠다던 엄마가 뒷자리에서 얼른 끼어들었다.

    현우 너, 엄마가 저번에 할아버지 얘기했던 게 궁금했구나? 여보, 현우가 이제 고등학생이잖아요. 이것저것 뭐든 알 만한 나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예요? 아들이 궁금하다는데 알려 주면 그만이지.

    아빠, 사실 학교 동아리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이라 행사를 하거든요. 그래서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 이야기를 수집해야 해요.

    그럼 하면 되지 뭘.

    아빠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평소보다 더 딱딱한 말투였지만 현우는 한 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럼 저 할아버지한테 그때 이야기 해 달라고 해도 돼요? 솔직히 엄마가 저번에 한 얘기도 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대해 하실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요.

    많긴 뭐가 많아? 전쟁이 다 똑같은 전쟁이지. 사람 죽이고, 세상 파괴하고.

    그래도 할아버지한텐 특별했을 수도 있죠.

    그래봤자 쓸데없어.

    당신도 참. 에휴.

    아빠의 반응에 엄마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현우는 역시 아빠와 대화를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걸 느꼈다. 설사 할아버지에게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해도 아빠의 말투로 봐서 더 이상 말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현우는 앞에 앉아 있는 게 너무나 불편했다. 간신히 휴게소까지 가서 엄마와 자리를 바꿔 뒷자리로 갔다.

    할아버지가 이처럼 먼 곳에 있는 요양원에 온 것은 고향이 가까워서였다. 고성 통일 전망대에 오르면 할아버지 고향이 바로 보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통일 전망대에 올라 하염없이 고향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지만, 할아버지가 언제 고향을 떠났는지 자세한 말은 듣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일 것이라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현우는 내친김에 아빠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역정을 낼까 봐 아빠나 엄마 둘 중에 아무나 대답할 수 있게 호칭을 빼고 앞자리에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언제 오셨어요?

    전쟁 때라니까!

    아빠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전쟁 때 언제냐고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1·4 후퇴 같은 거. 할아버지도 그때였어요?

    아빠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현우야, 할아버지한테 여쭤 봐.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빠가 대뜸 말했다.

    할아버지 건강 상태 봐서 여쭤야 해. 기분 좋으면 몰라도 침울하면 그런 얘긴 안 묻는 게 좋다.

    현우는 아빠의 말투에서 뭔가 있긴 있다는

    Enjoying the preview?
    Page 1 of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