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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인디고 1
러브 인 인디고 1
러브 인 인디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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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인디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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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인디고 빛 사랑을 노래하다, 홍여람 소설
『러브 인 인디고』
“헤어진 지 2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그의 심장 박동은 궤도를 벗어나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그녀의 모습이 오피스텔 현관에 나타나고 그의 차를 발견하고선 쪼로록 달려오는 그녀 모습에 미친듯이 뛰어올랐던 그의 심장 박동은 가속도를 내며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모두의 가슴에 한번 쯤은 경험했을 \'그 사랑의 순간\'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새로운 기운을 샘솟게 하고, 정감어린 심정을 솟구치게 만드는 남해 설천을 배경으로 담아 냈다. 어떤 잿빛의 어려움과 검붉은 고통도 모두 담아내는 사랑이 이안과 결의 인디고 사랑에 곱게 여울져가는 모습을 그렸다. 남해의 깊고 너른 바다와 같은 사랑이야기, 사랑의 시작, 그리고 사랑을 확인하는,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 한결과 송이안의 특별하고도 따뜻한 사랑이야기.
붉음을 은근하고 짙은 쪽빛으로 풀어낸 러브 스토리.
상실과 결핍의 시대적 유행 속에서 다시 찾아보는 인간의 본질,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건드리다.
사랑이 인간사회에서 떨어져 나간 시대가 지금정도 인 적은 없었다. 우리는 날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지만 그 사랑은 너무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러브인 인디고에서는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고 물같은 존재인 이 사랑을 평범하지만 스마트한 송이안과 한결을 통해 우리에게 은근히 다가와준다. 우리는 모두 냉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는 사랑하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한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욕구불만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이키는 사회적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그것이 보도가 됐든 안됐든 상관없이). 러브 인 인디고는 이런 우리의 욕구를 건드리고 또 그 욕구를 소설의 내용을 통해 채워주고 있다.
끊임없이 밀어내고 끌어 안는, 바다의 파도같은 사랑
인디고 빛 남해 설천 앞바다를 배경으로 한 러브 인 인디고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와 자신을 밀어내고 끌어 안는 파도 같은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슬픔과 아픔의 사랑만 찾아헤매진 않았을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비련의 여주인공 또는 남자주인공을 그리며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감동적인 사랑, 가슴 깊은 사랑, 그 사랑을 러브 인 인디고에서는 만날 수 있다.
사랑을 확인 받다
사랑은 혼자 할 땐, 그 의미를 잃는다. 반쪽짜리가 갖는 것은 전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이 하는 사랑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종종 혼자만의 사랑방법을 선택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상처 받기 싫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러브인 인디고는 혼자만의 사랑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도 완전한 사랑으로 도전해보고 싶게 끔 마음을 바꿀 기회를 주며, 또한 실행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주인공 송이안과 한결의 사랑을 엿보면서 갈등상황에서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하는지 사랑을 어떻게 말 할 수 있는지 아픔은 어떻게 표현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지, 감사해 하고 기억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사랑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 그리고 미래형
사랑을 했다. 했었다. 있었다. 이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과거형으로 말하곤 한다.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
하지만 추억은 우리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순간에 심리적 만족감을 주고 마음의 평온을 주고 뭔가 모를 여유를 주지만 그 뿐이었다. 순간적인 사랑에 대한 임팩트 있는 러브스토리라기 보다는 사랑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미래까지를 담아 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인간은 진보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보하는 인간에게서 나온다면 같이 진보할 것이다. 스마트한 사랑의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는 데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이엘 북스
Release dateDec 20, 2018
ISBN9791195007844
러브 인 인디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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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인 인디고 1 - 홍 여람

    무슨 일인 거지?

    뭐라구? 어디가 어떻게?

    .........

    알았어... 그만 울고... 지금 당장은 곤란하지만 점심 전에는 출발하도록 할게.

    한상무는 숨을 크게 내쉰 후 다시 구내전화기를 들었다.

    양실장님, 부회장님 잠깐 뵈었으면 하는데...

    ...........

    그래요, 고마워요. 15분 후... 오케이!

    그녀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재빨리 다른 사안들의 보고서들을 챙겼다.

    방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셨습니까, 상무님.

    네.. 급한 요청에도 무리 없이 시간 잡아줘서 고마워요, 양실장님.. 매번.

    천만에 말씀입니다. 부회장님은 상무님의 요청을 언제나 우선순위로 생각하시니까요.

    인터폰이 울렸다.

    네... 네... 부회장님.

    깔끔한 인상의 김비서가 들어가도 된다며 일어나 부회장의 방문에 노크했다.

    부회장님. 한상무님 오셨습니다.

    오~~, 한상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이건 검토하셔야 할 보고서들입니다. 그리고... 그게...

    평소 한상무답지 않게 ... 무슨 일입니까?

    여쭙기가 죄송한 일입니다.

    또 누가 사고 쳤어요?

    아닙니다.

    그럼... 해외지사 일인가요?

    아닙니다.

    한상무는 목을 가다듬고 부회장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약 1주일 정도 연가를 내었으면 합니다.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부회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상무... 그렇게 쉬라고 해도 안 쉬더니 갑자기... 어디 아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가 송구스럽습니다.

    그래도... 좀 알아야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부회장님... 일주일동안 업무의 공백은 없도록 철저히 살피겠습니다. 그저 저를 믿어주시고 일주일만 사무실을 비울 수 있도록 허락주실 순 없으신지요?

    흐..음....

    부회장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빤히 한상무를 쳐다봤다.

    10, 20, 30초...

    좋아요. 그러나 하루 한 번 정도는 전화로 보고는 하세요. 걱정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한상무는 부회장 업무실을 나왔다.

    ‘한상무... 무슨 일인거지? 말 못할 개인 사정이...’

    *

    자신의 업무실로 들어가면서 전비서에게 일주일 일정을 정리해서 가져들어오도록 지시했다. 전비서가 잰걸음으로 따라 들어왔다.

    여기 내일부터 일주일간의 일정입니다, 한상무님.

    위부터 쭉 훑어보던 한상무는 오늘 점심 이후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모든 일정을 그 다음 주로 연기해서 다시 일정 잡으세요. 창신그룹과의 미팅은 내가 직접 연락드릴 테니까 잠시 후에 전화연결 시켜주고, 각 부서 팀별 워크숍, 일주일 일정은 3일간으로 타이트하게 조정해보세요. 그리고... 난 오늘 11시 이후부터 1주일 사무실을 비울 거예요. 전화는 가끔 놓칠 수 있지만 문자는 계속 확인할 테니까, 언제든 문자하세요. 이 서류들은 각 담당자에게 돌려주고. 필요한 메모와 지시사항들은 적어두었으니까 참고하라 하고. 전비서는 나 없는 동안 꼼꼼하게 해오던 업무 진행하면 되요.

    네, 잘 알겠습니다.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한상무의 성격을 아는 전비서는 일주일동안 사무실을 비운다는 상관의 말에 이유나 토를 달지 않았다. 그 길로 사무실을 나온 그녀는 회사 근처인 오피스텔로 걸어갔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날이 선 카리스마를 내뿜기 위해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올렸던 머리를 풀은 그녀의 얼굴은 스물 갓 넘은 소녀같이 앳된 얼굴로 변했다.

    한결.

    어찌 보면 쉬는 날이 없이 30년을 달려온 셈이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그녀는 검정고시로 1년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냈다. 세상을 조금 더 빨리 알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열여섯나이에 그녀는 용감하게 혼자 미국 보스톤으로 떠났다.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한 곳이 싸이트러스 호텔 Citrus Hotel이었다. 프론트 데스크의 기간제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성실하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능력이 출중했던 그녀는 2년 만에 플로워 매니저 floor manager가 되었다. 그녀에게 기대가 컸던 총지배인의 권유로 보스톤대학 호텔관광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학업과 커리어를 쌓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그녀는 충실하게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게 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서 싸이트러스 보스톤 지점의 부지배인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3년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관광경영학 석사와 MBA코스를 뛰어난 성적으로 끝냈다. 그러던 차에 한국의 3대 기업 중의 하나인 대한그룹이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싸이트러스 호텔 코퍼레이션을 인수합병하게 되었다. 인수합병시 미국 측 스미스회장의 강력한 주장으로 그녀는

    미국 동부지역 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때 그녀는 겨우 스물여섯이었고, 그 후 대한그룹 미국 총본부장과 유럽지역 총본부장을 거쳤다. 대한그룹이 두 아들에게 합법적으로 사업체를 상속 배분하는 과정에서 독립 기업으로 상장한 싸이트러스 리조트 코퍼레이션 Citrus Resort Corporation은 대한그룹의 총수가 회장직을 겸직하면서 둘째 아들인 송이안을 부회장으로 지명하였다.

    송회장은 둘째 아들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조력자로 합병당시부터 눈여겨 보아왔던 한결에게 한국 총괄본부의 상무로 근무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억대 연봉과 함께 싸이트러스 리조트 코퍼레이션, CRC 10% 지분의 주식을 소유하는 조건으로 송회장의 부탁을 승낙하였다.

    그렇게 그녀가 한국으로 귀국한 것은 불과 스물아홉 살 때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16살 때부터 쌓아온 그녀의 경험과 미국과 유럽에서 보여준 그녀의 놀라운 경영능력은 어느 누구나 무시할 수 없는 견고한 자산이었다. 전 세계의 리조트와 호텔 지점들을 직접 챙기는 건 물론이고, 탁월한 판단과 정확한 예측으로 그녀는 본인 연봉의 몇 백배되는 수익을 CRC에게 안겨주는 대단히 주요하고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해외 지점을 돌보면서 잠시 짬을 내어 쉬는 일 말고는 휴식이란 모르던 그녀가 일주일의 연가를 신청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연가를 내어야만 하는 이유 역시 평범한 것을 아닐 거라는 것이 지배적인 회사 내 의견이었다.

    오고가며 낭비하는 시간을 제일 아까워한 그녀는 CRC 본부 근처 오피스텔을 주거지로 삼았다. 그래서 그녀의 애마인 지프 체로키는 늘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이제야 햇빛을 받으며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늘 시골 얘기만 하더니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아빠는 귀촌이란 걸 했다. 수도권 근교도 아닌 가기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남해로 말이다. 그녀가 한국에 돌아온 지 2년이 되었지만 아빠를 만난 것은 정년퇴직한 모교에서 부탁받은 특강 때문에 귀경하는 경우로, 일 년에 식사 한 두 번 한 것이 전부였을 정도였다.

    어찌 보면 무심한 딸이었다. 한 편으론 여동생 별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어 더욱 안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평소 건강에 자신 있어 하던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쉬지 않고 달린 보람으로 5시간 정도 지났을 때 그녀는 마지막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별에게 전화를 넣었다.

    언니야, 아빠는 어떠셔?

    .............

    병원 이름이 뭐라고 했지?

    ..............

    그래... 3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응.. 좀 있다 보자.

    남해대교를 건너면서 남해 시내에 자리한 <남해참좋은병원>을 검색하여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켰다. 주차장만 덩그러니 넓고 시설은 허술해 보이는 시골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1층 로비를 통과하면서 안내 데스크에 중환자실의 위치를 물었다. 주차장에서의 직감과는 조금 다르게 병원 내부는 현대적이었다. 퉁퉁 부은 눈을 깜박이며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별이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별은 달려와 그녀를 부둥켜안고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결은 다정하게 물었다.

    울지마, 별아... 운다고 쓰러진 아빠 상태가 갑자기 좋아지진 않아...응?

    언...언....니... 어떻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간단하게만 얘기해 줘... 언니도 답답하다...

    아빠가... 오늘... 검사..검사를 받으러...흐흑....왔다가...흐흐흑... 갑자기...

    아빠가 오늘 검사 받으러 병원에 왔다가 쓰러지셨다는 거야, 지금?

    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검사?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얼마 전에.... 아빠에게 한 번 종합 검진을... 받아보시는 게 어떠냐고 권하셨거든..

    별아! 담당 의사라니? 언제부터 아빠한테 담당 의사가 생기셨다는 거야, 응?

    그게... 그러니까... 아빠가...

    한.별!!! 정신차리고... 자, 자... 심호흡하고...

    후~읍, 후~읍!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얘기해봐...

    그니까.. 언니.. 아빠가 시내 이발소에 가셨는데,

    이발소? 언제?

    닷세 전쯤에... 암튼... 이발소에 갔을 때 같이 이발하던 사람이 아빠가 가슴을 자기도 모르게 자꾸 탕탕 치는 걸 보고 어디 아프신 거 아니냐고 묻더래..

    그래서?

    아빠는 아니라고...

    그랬더니..

    가슴을 자꾸 탕탕 치시는 거...자각 못하시냐고... 한 번 검진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다고 그러더래...

    .............

    그러면서 남해참좋은병원 내과로 오시라고 했다는 거지.

    그 남자는 병원 브로커야, 뭐야?

    그래서 아빠가 지난 금요일에 내과로 갔는데... 거기에 이발소에서 만난 남자가 있더래... 의사였던 거야... 아빠를 진찰하고 아무래도 오늘 다시 병원으로 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면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 모시고 왔어...

    그런데???

    그런데 MRI를 촬영하려고 기다리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어...

    허참!! 기가 막히네...

    그 남자.. 의사는 확실해? 돌팔이 아냐?

    언니~~

    이 병원... 괜찮은 병원이긴 해? 큰 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거 아냐?

    어...언니...

    넌 언니라는 말밖엔 몰라? 언니...뭐?

    결로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인내할 수도 없을 만큼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담당 의사라는 사람 좀 만나봐야 겠다.. 어디가면 만날 수 있니?

    조금 전에 아빠 상태를 확인하러 간다고 중환자실로 들어갔어..

    그래?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네?!

    응..언니...

    결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했다.

    [아무래도...이 의사라는 자식이 수상해... 게다가... 이 병원을 믿을 수 있어? 빨리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상책인데...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순 있나? 아빠...정말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그 때 중환자실의 묵직한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이 시골에도 남자 간호사가 다 있네?]

    속으로 결이 생각하는데 별은 일어나 그 남자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엥?

    언니, 의사 선생님이셔..

    아~~ 그러세요? 한결입니다.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 말입니까?

    [허...어.. 얘는... 도시 물 좀 먹었다.. 그 말인가?]

    결의 ‘말씀’은 무시한 채 남자는 말을 이었다.

    걱정이 많았는데 좀 전에 의식은 회복하셨습니다.

    어머....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동생을 쏘아보면서 담당의신가요? 의식이 회복하셨다는 건 무슨 말씀이시죠?

    네... 정신을 잠깐 잃으셨습니다, 한교수님께서... 쓰러지시자마자 응급 조치를 받으시긴 했지만 충격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금방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의식이 돌아오셔서 조금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해봐야 하지만 뇌일혈이나 혹은 뇌졸중 후유증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상이란 말씀이시죠?

    뇌 기능에 한에서!

    그럼, 다른 기능은 정상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그게....

    근데.. 전공과는 있으세요? 뭐 의료 경험은 충분하신가요?

    언니.. 언니 왜 그래, 아빨 도와주시려던 분인데...

    그니까, 왜 도와주려했냐고??

    *

    동생을 향해 소리를 약간 높였다. 결의 목소리엔 짜증이 그대로 새어나왔다.

    언니~~!!!

    별이양... 괜찮습니다. 오해는 있을 수 있으니까..

    [별이양?? 이것들이, 그냥 화악~!!’]

    여전히 눈에서 힘을 빼지 않고 그 남자를 째렸다.

    [먹물 좀 먹었단 말이지? 그렇게 대우해주지!]

    그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눈을 힘을 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 전공은 카디올로지 cardiology. 제가 이발소에서 한교수님을 우연히 뵈었는데 chest pain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퉁퉁 치시는 게.. 그래서 check-up을 한 번 받아보시는 걸 권해드렸습니다. cardio disease 경우 흔히 나타나는 symptom이라서... 지난 주 간단하게 진료를 했는데... blood pressure도 상승하셨고 피검사로는 정확하지가 않아서 오늘 check-up을 오시라고 했는데, MRI촬영 전에 제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겁니다.

    [꼭 영어를 섞어서 얘기해야 의사의 권위가 사냐? 으이그... 이 속물아..]

    우려했던 일이라뇨?

    [한교수님한텐 니가 우려 덩어리겠다...]

    chest pain은 심근경색 등 cardio disease의 early symptom입니다. 그래서 여쭸더니 은퇴 후엔 제대로 검진도 안 받아보셨다고 하시더군요..

    이 의사라는 남자는 딸이라면서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 주제에 까다롭게 구는 결을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 제가 잘못한 거죠, 언니야 서울에서 지내는데요.. 함께 사는 제가 무식하고 잘 몰라서...흐...흐...흑

    별아! 운다고 해결될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지! 울지 마, 제발!

    작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동생을 질책하는 언니에게 질렸다는 얼굴로 그 남자 의사는 결을 대하던 딱딱한 톤을 바꾸어 달래었다.

    별이양...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고비는 넘기셨으니까...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죠? 아빠를 면회할수 있나요?

    "잠시 후면 면회 가능 시간이 될 테니 하실 수 있습니다. 경과를 하루, 이틀 보고 일반 병실로 옮기셔서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원인이 분명해지고 또 확진이 돼서 수술이

    필요한지 아니면 약물로 통원치료를 하실는지 결정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시는지요?

    상태에 따라 다르시겠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별이양... 서명해야할 서류가 몇 가지 더 있는데...

    별은 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언니... 언니가 왔으니까... 언니가 보호자 서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별과 대화하는 사이 흘깃 그 남자 의사 가운에 새겨진 이름을 훔쳐보았다.

    <원장 윤준하>

    [원장? 얘가? 이 병원 원장이라구? 허..참... 큰일 났네.. 이 젊은 애가 뭘 안다고? 나보다도 어리게 생겨가지고. 아빠 생명을 얘 손에 맡겨? 그럴 순 없지...]

    제가 서명하지요. 어디에다...?

    그가 왼 손에 쥐고 있던 태블릿 PC를 내밀며 전자 서명해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칫... 시골에서 첨단 흉내는...]

    그런데.. 여기 병원에 필요한 검사 장비나 최신 의료 장비들은 있는지요?

    슬쩍 지나가는 것처럼 질문을 툭 던졌다.

    그렇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서명을 받고나서 그는

    그럼.. 별이양... 동생에게만 인사를 하고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쳇! 폼 재기는...

    언니.. 왜 그래.. 애쓰신 분한테...

    명찰 보니 이 병원 원장이네! 환자 수 늘리려고 장사한거지... 무슨.. 애를 쓰기는..

    하...아...

    평소의 언니답지 않은 결을 보며 별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중환자실 면회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어디에 사람들이 있다가 모여드는 건지 순식간에 심혈관중환자실 앞에는 사람들로 움직일 틈도 없었다. 소독 마스크와 소독 비닐 가운을 걸치고 들어가 손을 세정제로 닦고 나서야 누워 있는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아빠!

    결의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 한중훈 교수는 오~~ 결이 왔니? 놀랐지?라며 집에서 결을 맞듯이 편안한 투로 말했다.

    아빠~~ 시시하게 쓰러지고 그래..응?

    여기 저기 링거가 매달린 팔과 코의 호흡보조기를 피하면서 어리광피우듯이 아빠의 품에 파고들며 결이 항의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두 딸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하며 결의 옆에 서있는 별의 손도 그러쥐었다.

    흐흐흑... 아빠... 아빠...

    맘 편하게, 몸도 쉬려고 남해로 왔더니.. 나도 좀 그렇네...허허헛

    아이~~ 아빤 웃음이 나와요?

    아빠... 지금은 기분이 어떠세요?

    글쎄... 한 숨 푹 자고 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네... 우리 별이, 결이를 한꺼번에 보니 계속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가야겠어요. 남해 이 작은 병원에서 어디 제대로 진단이나 치료가 가능하겠어요?

    무슨 말이냐?

    아까 병원장이란 의사를 만났는데, 전공이라곤 하지만 젊다 못해 어리던데 어떻게 아빠를 맡길 수 있겠어요... 시일을 조정해서 서울로 이송시켜 달라 하려고요.

    .............

    아빠! 그렇게 하시자구요, 네?

    결아... 허튼 데 돈 쓰지 마라. 여기서도 충분히 치료받고 진료 받을 수 있는데...

    아빠! 허튼 데라뇨. 아빠를 위해 돈 쓰는 게 무슨 허튼 거라구요...

    내가 조용히 생각해보마. 그건 그렇고... 회사는 어떻게 하고 내려왔어? 우리 결이?

    연가 냈어요.

    나 때문에 괜한 신경을 쓰게 했구나..

    아빠.. 아니라니깐! 아빠야말로 괜한 신경 쓰시지 말고, 아빠 몸 걱정이나 하세요..

    다시 안내 방송이 들렸다. 면회 시간이 끝난다는.

    아빠, 오늘 저녁 면회는 끝이라니.. 내일 아침 다시 올게요... 별이나 제 걱정은 일절 마시고 맘 편하게.. 아셨죠?

    크게 고갯짓을 하며 알았다는 시늉을 하는 한교수에게 결은 이마에 살짝 입을 대었다 띄었다.

    동생 별도 아빠를 꼭 한 번 껴안아 드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아빠 얼굴을 실제로 보니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동생의 얼굴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별아! 니가 고생 많았다. 얼마나 놀랬겠냐, 이 시골에서!

    난 괜찮아, 언니.

    어쨌든 이제 아빠는 긴급한 순간은 넘기신 것 같아 안심이다, 그치!?

    응.. 그러게 말이야..

    너 제대로 먹은 것도 없겠다?

    ............

    언니는 무지 배고프다. 뭘 좀 먹을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은데요!

    횟집만 즐비한 남해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찾는다는 게 사치일는지도 몰랐다. 별은 집에 가서 먹자며 결을 설득했지만, 결은 자기보다 더 놀랬을 동생에게 오늘 만큼은 부엌일을 하게하고 싶지는 않았다. 짧은 실랑이는 언니 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오랜만에 두 자매가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어 찾은 밥집은 멸치쌈밥집이었다.

    결은 딸이라기 보단 아들 같은 존재였다, 한교수집에서는. 평생 골골 앓았던 엄마대신에 동생 별이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다면 결은 한교수에게 말벗이자, 중대결정의 의논상대였고,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린 나이에 외지 생활을 했어도 결은 한교수가 심적으로 기대왔고, 의지했던 큰 딸이었다. 지 어미가 어이없이 세상을 뜨고 장례를 치루기까지 정신줄을 놓은 한교수를 대신해 미국에서부터 한국으로 일시 귀국해서 모든 절차를 굳굳하게 감당해냈다. 나이에 관계없이 성숙한 생각과 현명한 판단력이 장점인 결에 비해 6살 아래인 별은 여리고 숫기라고는 없는 심성이 착한 딸이었다. 그렇다고 결의 심성이 뻣뻣하거나 못됐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매사에 똑 부러지고 완벽에 대한 결벽증이 있다시피 한 결의 성격이 모르는 남들에게는 괴팍하거나 이기적으로, 혹은 매몰차게 보일 수도 있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헤쳐 나왔다고 생각하는 별은 언니에 대해 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주문한 쌈밥을 기다리면서 결은 물끄러미 별을 쳐다보았다.

    [아.. 별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맘 편히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으며, 혼자 된 아빠를 두고 떠나 생활할 수 있었을까?]

    유약해 보이는 동생 모습을 보며 동생 별은 결의 뚜렷한 행보로 인한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동시에 휴대폰 문자와 전화에 시달리던 일상을 까맣게 잊은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커다란 검정 토드백을 열어 휴대폰을 찾았다.

    <상무님. 조정된 일정과 보고서 새로 제출한 직원들의 서류를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전은미 드림>

    <한상무. 정말 별일 없는 거죠? 걱정이 자꾸 됩니다. 송이안>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결은 송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부회장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한상무 없는 본부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 같아요~

    무슨 말씀을요...

    뭐 아주 큰일은 아닌 거지요?

    .......

    결은 머뭇거렸지만 결심을 한 듯 앞 뒤 자르고 부탁을 해보기로 했다.

    부회장님. 신성병원장님과 친분이 계신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잘 아는 사이죠.... 혹시 한상무.. 진짜.. 심각한 병...

    아닙니다. 제가 아니고, 제 부친입니다.

    오~ 한상무 아버님이 아프십니까?

    네. 쓰러지셨다가 의식을 회복하셨는데 신성병원에서 치료받게 해드리고 싶은데 신성병원에 제가 연락을 취할 만한 분이 안 계셔서 말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랬군요.. 그랬어. 한상무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나 정말 깜짝 놀랐었다고, 한상무!

    어디가 아프신지 얘기해주면 신성이랑 연락해서 훌륭한 의사를 수소문 해볼게요."

    심장내과입니다, 부회장님.

    알겠습니다. 내 곧 다시 전화하지요.

    네, 부회장님. 거듭 죄송합니다.

    상무로 CRC본부에 끌어들여 함께 일한지 2년 동안 오늘처럼 한결 상무가 불안정해보인 적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깍듯한 예의와 절제 있는 행동, 한 치에 실수도 없는 완벽함을 보여줬던 그녀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한 오늘만큼은 그녀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 부회장, 송이안에겐 나름 소득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신성병원장인 신순길에게 비서실을 통하지 않고 직접 통화를 시도했다.

    신원장? 나 이안이야.

    송부회장, 어쩐 일이야?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래? 나한테 부탁할 일이라면.. 송회장님이나 김여사님이 아프신가?

    그렇진 않고...

    그럼... 누가 우리 송부회장의 관심을 끄는 환자인가?

    송이안부회장의 여자에 대한 결벽증은 재, 정계를 비롯한 한국사교계에서 제법 알려진 사실이었다. 사랑했던 여자에게 올인 했던 송이안의 연애는 소문이 파다했고, 그 여자를 잃은 후로 사랑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만 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 우리 본부의 한상무의 부친 때문에 말야..

    오? 한상무란 사람이 대단히 중요한 인재인 모양이군, CRC에서? 그렇지 않고서야 송부회장이 직접 내게 전화를 해서 부탁하진 않을 테니, 안 그래?

    그렇게 볼 수 있지. 지난 10년간 한 번도 휴가 없이 일만 하던 여자가 일주일간 연가를 내겠다며 오늘 오전에 업무실을 나갔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니까..

    한상무란 사람이 여자야? 이거.. 송부회장...

    신원장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야...

    어련하시겠어.. 그건 그렇고 어디가 아픈 환잔데?

    심장내과의 명의가 필요하다네?

    심장내과? 알았어. 입원이 필요한가? 아님 진료?

    아.. 그건 모르겠는걸? 내가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하지.

    송부회장, 아니.. 이안아. 우리 비서끼리 연락하라고 하는 게 어때? 이렇게 전화할 시간 있음 만나서 술이나 한 잔하면서 이야기하던지..

    그럴까? 오랜만에 우리 순길이랑 한 잔 할까?

    그럼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어때?

    어딘데?

    여기... 클레오파트라 클럽!

    .........됐어! 문자로 네 비서 휴대폰번호나 알려줘. 그럼 내 비서하구 연락하라 할 테니. 끊는다, 신원장!

    이안은 결혼해서 아이가 둘인 친구 신순길원장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과 필요에 의해 이해해야 하는 건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도대체 순길의 아내는 어떻게 살아갈까? 잡스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는 한상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부친은 심장내과의 진료 혹은 입원, 둘 중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금방 답이 왔다.

    <현재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서울 신성병원으로 이송해서 심장내과의 정밀검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부회장님.>

    ‘마지막에 부회장님 소리는 안하면 안 될까... 한..결...?’

    문자 끝의 부회장님 단어만 빼고 복사하여 김비서에게 전달하면서 언제 신성병원 이동이 가능한지, 심장내과의 유능한 의사가 누구인지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쌈밥을 맛있게 먹고 두 자매는 아빠가 귀촌을 위해 남해 바닷가에 지은 작은 2층집으로 돌아왔다. 결은 샤워를 하고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타올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2층 아빠 서재에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검푸른 바다가 결의 눈에 들어왔다.

    [아빠는 이곳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 생각?]

    부둣가 끝에 조로록 달려있는 가로등 덕분에 더욱 하얀 빛을 내며 부서지는 파도를 지켜보고 있자니...괜히 마음이 싸~~아해졌다.

    언니~~ 샤워 다했음 내려와서 수박 먹어~~

    알았어~~

    계단을 통통거리며 거실 소파에 별이와 둘이 앉았다. 엄마 50세 생일을 축하한다며 아빠가 손수 직접 제작한 수제 소파... 엄마에 이어 아빠를 잃어버릴 뻔 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기색을 털어내며 손을 뻗어 수박을 집으려는 순간, 집 밖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인기척을 느꼈다. 결은 조용히 일어나 아빠가 거실 한 귀퉁이에 세워놓은 아이언 7번 골프채를 단단히 쥐었다. 그런 언니를 지켜보다가 급한 김에 별도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작은 소리로 결이 묻는다.

    현관문은 잠갔겠지?

    겁에 잔뜩 질려 눈이 보름달마냥 커진 별은 가로로 고개를 저었다.

    허억!

    그 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

    푸하하하핫!

    그 남자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시끼가 어디라고 웃어, 미친 새끼!하며 머리를 내려칠 요량으로 한 발 다가서는 결에게

    언니! 윤원장님이셔! 숨넘어가는 소리로 별이 외쳤다.

    내가...참... 오늘 돌팔이의사도 됐다가 미친 놈도 됐다가...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느물느물대는 이 남자가 절대로 맘에 들지 않는 결은 노크는 뒀다가 국 끓여먹습니까, 현관벨은 뒀다가 소여물로 쓴답디까? 적반하장도 유분수야 정말!

    [아~씨! 재수없어!] 뒤 문장은 속으로 말했다고 결은 생각했다.

    뭐 재수 없기는 업어 치나 뒤치나 매일반입니다~~ 그리고 두 여자가 골프채랑 빗자루를 들고 설치는 모습에 안 웃을 사람이 어디 있냐구요, 네?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이 남자를 그냥 확! 쥐어 차버리고 싶었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우스운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별도 빗자루를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며 물었다.

    원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신지요?

    아~~ 별이양...

    [아이고.. 웬 코맹맹이 소리... 별이양...]

    뒤편 이장님 댁 할머니 링거 놔드리고 오는 길에 잠깐 들렸어요. 한교수님은 지금 병원에 계시니까 지난번 처방해드린 석 달 치 수면제는 필요 없으실 테고.. 괜히 댁에 둘 필요도 없단 생각이 들어서요..

    아니, 고깟 수면제 몇 알 회수하려고 이 오밤중에 여자만 있는 집에 쳐들어오셨다? 핫!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아무리 시골이래도?

    [하...아.. 요거 어린 게 정말... 쥐어박을 수도 없고... 이걸 그냥 확~~]

    결의 도전적인 말투에 열이 받았는지 숨고르기만 할 뿐 윤원장이란 이 남자는 어깨만 들먹였다.

    그러셨군요... 제가 찾아올게요.

    별은 부엌 찬장 선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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