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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하나님ㆍ우주ㆍ세계사ㆍ예수ㆍ인간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책.
유란시아서: 하나님ㆍ우주ㆍ세계사ㆍ예수ㆍ인간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책.
유란시아서: 하나님ㆍ우주ㆍ세계사ㆍ예수ㆍ인간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책.
Ebook4,221 pages47 hours

유란시아서: 하나님ㆍ우주ㆍ세계사ㆍ예수ㆍ인간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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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1955년에 유란시아 재단이 처음으로 발행한 유란시아서는 인류의 기원ㆍ역사ㆍ운명을 설명한다. 이 책은 하나님에 관한 질문, 우주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활, 이 세상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며, 또한 사람들의 정신을 고무시키는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이 담겨 있다.

유란시아서는 인간과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준다. 모든 인간은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형제ㆍ자매이다. 이 책은 현대의 남녀에게 새로운 영적 진리,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는가 제시한다.

이 세상의 종교적 유산을 근거로 하여, 유란시아서는 인류에게 끝없이 펼쳐지는 운명을 묘사하며, 생생한 믿음이 개인이 영적으로 진보하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로 인도하는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 개인과 인간 사회와 우주를 하나된 단위로서 점진적으로 진화시키는 것임을 묘사한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유란시아서가 그들이 높은 영적 수준으로 성장하도록 깊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진심을 토로했다. 이 책은 이들에게  인생을 사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인류에게 봉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당신도 같이 이 책을 읽고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말씀을 발견하기를 권합니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Apr 25, 2017
ISBN9780911560381
유란시아서: 하나님ㆍ우주ㆍ세계사ㆍ예수ㆍ인간의 신비를 풀어헤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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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란시아서 - Urantia Foundation

    유란시아서

    머리말

    ⁰:⁰.¹ (1.1) 유란시아―이는 너희 세계의 이름이니―거기에 사는 필사자(必死者)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ㆍ신성(神性)ㆍ신과 같은 용어의 뜻에 관하여 큰 혼란이 존재한다. 수많은 호칭으로 부르는 신성한 성격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인간은 더욱 혼동이 되고 확신이 없다. 아주 많은 관념의 혼란과 관련된 이 개념의 빈곤 때문에 나는 오르본톤의 진리 계시단이 유란시아의 영어로 옮기도록 인가받은 여러 글에서 지금부터 쓰일 수 있는 특정한 여러 낱말 표현에 붙여야 하는 뜻을 설명하는 취지로, 이 서론을 적으라고 지시를 받았다.

    ⁰:⁰.² (1.2) 우주에 대한 의식(意識)을 기르고 영적 통찰력을 키우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이 영역의 한정된 언어를 쓰도록 제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확대된 여러 개념과 상급 진리를 발표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명령은, 영어의 낱말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의 뜻을 전하는 데 어떤 노력도 아끼지 말라고 타이른다. 묘사할 개념에 어울리게 그러한 개념을 부분적으로 전하거나, 얼마큼 뜻을 왜곡하더라도 쓸 수 있는 용어가 영어에 전혀 없을 경우에만 새 용어를 소개하라고 우리는 지시를 받았다.

    ⁰:⁰.³ (1.3) 이 여러 글을 정독할까 싶은 모든 필사자의[1] 편에서 이해하는 것을 돕고 혼란을 방지하고 싶은 희망으로, 신(神), 그리고 우주에 실재하는 사물ㆍ의미ㆍ가치에 관한 어떤 관계된 개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많은 영어 단어에 붙일 뜻의 윤곽을 이 서언에서 제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⁰:⁰.⁴ (1.4) 그러나 여러 용어의 뜻과 한계에 관한 이 머리말을 적기 위해서, 이러한 용어들이 다음에 발표되는 글에서 어떻게 쓰일까 예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머리말은 자체로서 끝난 글이 아니라, 다만 신과 온 우주를 다루는, 뒤잇는 여러 논문을 읽을 사람들을 도우려고 고안된, 낱말 설명 안내서이며, 이 목적으로 유란시아에 파송된 오르본톤 위원회가 이 여러 논문을 작성하였다.

    ⁰:⁰.⁵ (1.5) 너희 세계 유란시아는 네바돈 지역 우주를 구성하는 행성, 사람이 사는 비슷한 많은 행성 중에 하나이다. 이 네바돈 우주는 다른 비슷한 우주들과 함께, 오르본톤 초우주(超宇宙)를 구성하며, 우리 위원회는 그 서울 유버르사 출신이다. 오르본톤은 시간과 공간에서 진화하는 일곱 초우주 중의 하나이다. 이 일곱 초우주는 결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성하게 완전한 창조―하보나 중앙 우주―를 돌고 있다. 이 영원한 중앙 우주의 중심에 움직이지 않는 파라다이스 섬이 있으며, 이는 무한의 지리적 중심이요, 영원한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다.

    ⁰:⁰.⁶ (1.6) 중앙의 신성한 우주와 관련된, 진화하는 일곱 초우주를 우리는 보통 대우주라고 말하며, 이것들은 지금 조직되어 있고, 사람이 사는 우주이다. 이 초우주들은 모두 총우주의 일부이고, 총우주는 또한 사람이 살지 않지만 바깥 공간에서 동원되는 우주들도 포함한다.

    I. 신과 신성

    ⁰:¹.¹ (2.1) 온 우주는 우주 실체, 지성의 의미, 영적 가치의 다양한 수준에서 신이 활동하는 현상을 제시하지만, 이 모든 보살핌은―개인적이거나 다른 방법으로―신성하게 조정된다.

    ⁰:¹.² (2.2) 신은 하나님으로서 성격화할 수 있고,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선(先)인격이며 성격을 초월한다. 신의 특징은 실체의 모든 초물질 수준에서 ―실제로 또는 잠재적으로―통일된 성질을 가졌다. 하나로 만드는 이 성질이 신성(神性)이라고 인간은 가장 쉽게 이해한다.

    ⁰:¹.³ (2.3) 신은 성격, 선(先)인격[2], 초월 성격 수준에서 활동한다. 총체적 신은 다음 일곱 수준에서 활동한다.

    ⁰:¹.⁴ (2.4) 1. 정적(靜的) 수준―독립되고 스스로 존재하는 신.

    ⁰:¹.⁵ (2.5) 2. 잠재 수준―스스로 의지(意志)하고 스스로 의도하는 신.

    ⁰:¹.⁶ (2.6) 3. 연합 수준―스스로 성격을 갖추고 신답게 친교하는 신.

    ⁰:¹.⁷ (2.7) 4. 창조 수준―스스로를 나눠주고 신답게 계시하는 신.

    ⁰:¹.⁸ (2.8) 5. 진화 수준―스스로 확장하고 인간과 일체가 된 신.

    ⁰:¹.⁹ (2.9) 6. 최상 수준―스스로 체험하고 인간과 창조자를 하나로 만드는 신. 대우주에서 전반적 시공 통제자로서 인간과 일체가 되는 첫째 수준에서 활동하는 신, 때때로 이를 최상위 신이라고도 부른다.

    ⁰:¹.¹⁰ (2.10) 7. 궁극 수준―스스로 계획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 전능하고 전지하고 두루 계시는 신.[3] 총우주 전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초한(超限) 방법으로 지원하는 자로서, 신성의 표현을 통일하는 둘째 수준에서 활동하는 신. 신들이 대우주에 베푸는 봉사와 비교하여, 총우주에서 이 초한 활동은 우주의 전반적 통제와 초월적 지원에 해당하며, 때로는 궁극위 신이라고 부른다.

    ⁰:¹.¹¹ (2.11) 실체의 유한 수준의 특징은 인간의 생명과 시공 제한이 있는 것이다. 유한한 실체는 끝이 없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처음이 있다―그들은 지음을 받는다. 최상 신의 수준은 유한한 존재들과 관계된 기능으로 보아도 좋다.

    ⁰:¹.¹² (2.12) 실체의 초한 수준의 특징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사물과 존재들이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초한자는 창조되지 않으며, 궁극에 이른다―그들은 다만 궁극에 이를 뿐이다. 궁극의 신 수준은 초한 실체들과 관계된 활동을 뜻한다. 총우주의 어느 부분에 있거나 상관 없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때는 언제나, 그러한 초한 현상은 궁극위 신의 행위이다.

    ⁰:¹.¹³ (2.13) 절대 수준은 처음이 없고 끝이 없으며, 시간도 공간도 없다. 예를 들면, 파라다이스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라다이스의 시공 지위는 절대적이다. 파라다이스 신들이, 실존적으로 이 수준을 삼위일체로서 성취하였다. 그러나 통일하는 신 표현의 이 셋째 수준은, 체험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았다. 절대 수준의 신이 활동하는 데는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하든지, 파라다이스의 절대 가치와 의미가 분명히 나타난다.

    ⁰:¹.¹⁴ (3.1) 신은, 영원한 아들의 경우처럼 실존적이고 최상 존재와 같이 경험적이며, 칠중 신처럼 연합하고,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서 보다시피 나누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⁰:¹.¹⁵ (3.2) 신은 모든 신다운 것의 근원이다. 신은 신다운 특징이 있고, 또 변함없이 신답지만, 신다운 모든 것이 반드시 신은 아니다. 하지만 신성한 것은 신과 함께 조정되고, 신과 하나가 되는 어떤―영, 지성 또는 성격―단계로 지향할 것이다.

    ⁰:¹.¹⁶ (3.3) 신성(神性)은 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성질, 하나로 만들고 조정하는 성질이다.

    ⁰:¹.¹⁷ (3.4) 인간은 신성을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성격자의 경우에 사랑ㆍ자비ㆍ봉사와 연결되며, 비성격 수준에서는 응보ㆍ권능ㆍ통치권으로 나타난다.

    ⁰:¹.¹⁸ (3.5)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을 갖춘 실존적[4] 수준과 창조자 수준에서 보다시피, 신성은 완전―완벽―할 수 있다. 신성은 시공에서 진화하는 체험적 인간 수준에서 보다시피 불완전할 수도 있고, 또한 실존과 체험이 관련된 어떤 하보나 수준처럼 상대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완전하지도 않고 불완전하지도 않을 수 있다.

    ⁰:¹.¹⁹ (3.6) 모든 상대적 단계와 형태로 완전을 파악하려고 애쓸 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일곱 종류에 부딪치게 된다:

    ⁰:¹.²⁰ (3.7) 1. 모든 면에서 절대로 완전함.

    ⁰:¹.²¹ (3.8) 2. 어떤 단계에서 절대로 완전하고, 모든 다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완전함.

    ⁰:¹.²² (3.9) 3. 다양한 관계에서,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며 불완전한 모습.

    ⁰:¹.²³ (3.10) 4. 어떤 면에서 절대로 완전하고, 기타 모든 면에서 불완전함.

    ⁰:¹.²⁴ (3.11) 5. 어떤 방향에서도 절대로 완전하지 않고, 모든 명시가 상대적으로 완전함.

    ⁰:¹.²⁵ (3.12) 6. 어떤 단계에서도 절대로 완전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완전하고, 다른 면에서 불완전함.

    ⁰:¹.²⁶ (3.13) 7. 어떤 속성도 절대로 완전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불완전함.

    II. 하나님

    ⁰:².¹ (3.14) 진화하는 필사 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유한한 개념을 상징으로 나타내고 싶은 견딜 수 없는 충동을 체험한다. 사람의 도덕적 의무 의식(意識)과 영적 이상(理想)은 어떤 가치 수준―체험적 실체―를 대표하며, 이것은 상징으로 나타내기 어렵다.

    ⁰:².² (3.15) 우주를 의식하는 것은, 하나의 첫째 근원, 곧 원인 없이 생긴 유일한 실체를 인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 곧 우주의 아버지는 무한 이하의 가치와 상대적 신성을 표현하는 세 가지 신 성격 수준에서 활동한다:

    ⁰:².³ (3.16) 1. 선(先)인격―생각 조절자처럼, 아버지의 분신이 베푸는 봉사의 경우.

    ⁰:².⁴ (3.17) 2. 성격―창조되고 출산된 존재가 겪는 진화적 체험의 경우.

    ⁰:².⁵ (3.18) 3. 초월 성격―어떤 초한자 및 그에 관계된 자들이 궁극에 이른 존재의 경우.

    ⁰:².⁶ (3.19) 하나님은 신의 모든 성격화를 가리키는 낱말 표현이다. 이 용어는 신이 활동하는 각 성격 수준에서 다른 정의(定義)를 요구하고, 이러한 각 수준에서도 더 자세히 다시 규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용어가 예를 들면,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 곧 지역 우주의 아버지들에서 보다시피, 신의 다양한 동급 및 종속된 성격화를 가리키는 데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⁰:².⁷ (4.1)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도 좋다:

    ⁰:².⁸ (4.2) 호칭으로―아버지 하나님으로서.

    ⁰:².⁹ (4.3) 문맥에 따라―어느 한 신 수준 또는 관계를 이야기할 때 쓰듯. 하나님이란 낱말의 정확한 해석에 관하여 의심이 들 때, 그 낱말을 바로 우주의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⁰:².¹⁰ (4.4) 하나님이라는 낱말은 언제나 성격을 표시한다. 신이라는 말은 신(神) 성격자를[5] 가리키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⁰:².¹¹ (4.5) 하나님이라는 낱말은 이 여러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⁰:².¹² (4.6) 1. 아버지 하나님―창조자ㆍ통제자ㆍ지원자. 우주의 아버지, 신의 처음 분.

    ⁰:².¹³ (4.7) 2. 아들 하나님―동위 창조자, 영적 통제자, 영적 관리자. 영원한 아들, 신의 둘째 분.

    ⁰:².¹⁴ (4.8) 3. 영 하나님―합동 행위자, 우주 통합자, 지성 수여자. 무한한 영, 신의 셋째 분.

    ⁰:².¹⁵ (4.9) 4. 최상위 하나님―사실화하거나 진화하는, 시공의 하나님. 인간과 창조자가 연합하여 일치됨을 시공(時空)에서 체험으로 이루는, 성격을 가진 신. 최상 존재는 시공의 진화하는 인간에게 진화하고 체험하는 하나님으로서, 신의 통일을 성취하는 체험을 몸소 겪고 있다.

    ⁰:².¹⁶ (4.10) 5. 칠중 신―시공에 어디에나 실제로 활동하는 신 성격자. 성격을 가진 파라다이스 신들과 그 창조 동료들은 중앙 우주의 테두리 안과 바깥에서 활동하며, 시공에서 통일하는 신을 드러내는 첫째이자 생물 수준에서 최상 존재로서 권능을 가지고 성격화된다. 이 수준, 즉 대우주는 진화하는 인간이 시공에서 올라가는 것과 반대 관계로 파라다이스 성격자들이 시공에서 내려오는 분야이다.

    ⁰:².¹⁷ (4.11) 6. 궁극위 하나님―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궁극에 이르는 하나님. 통일하는 신이 나타나는, 둘째의 체험 수준이다. 궁극위 하나님은, 초한(超限)하고 성격을 초월하는 가치, 시공을 초월하는 가치, 궁극에 이른 체험적 가치의 통합을 실현하고, 이것이 신 실체의 마지막 창조 수준에서 조정된 것을 암시한다.

    ⁰:².¹⁸ (4.12) 7. 절대자 하나님―초월 성격의 가치와 신성의 의미를 체험으로 만드는 신은 지금 신 절대자로서 실존적이다. 이것은 통일하는 신을 표현하고 확장하는 셋째 수준이다. 창조를 초월하는 이 수준에서, 신은 성격화할 수 있는 잠재성이 소모됨을 체험하고 완성된 신성에 부딪치며, 연속되어 진보하는 수준, 달리 성격화하는 수준까지 자아를 드러내는 능력이 소모됨을 체험한다. 이제 신 절대자는 무제한 절대자를 만나고, 그에 부딪치고, 그와 동일함을 체험한다.

    III. 첫째 근원 중심

    ⁰:³.¹ (4.13) 무한한 총 실체는 일곱 단계에서, 그리고 동급의 일곱 절대자로서 실존한다:

    ⁰:³.² (5.1) 1. 첫째 근원 중심.

    ⁰:³.³ (5.2) 2. 둘째 근원 중심.

    ⁰:³.⁴ (5.3) 3. 셋째 근원 중심.

    ⁰:³.⁵ (5.4) 4. 파라다이스 섬.

    ⁰:³.⁶ (5.5) 5. 신 절대자.

    ⁰:³.⁷ (5.6) 6. 우주 절대자.

    ⁰:³.⁸ (5.7) 7. 무제한 절대자.

    ⁰:³.⁹ (5.8) 하나님은 첫째 근원 중심으로서, 총 실체와 가지는 관계에서 아무 조건 없이 으뜸이다. 첫째 근원 중심은 영원ㆍ무한하며, 따라서 오직 의지(意志)해야 제한되거나 조건을 받는다.

    ⁰:³.¹⁰ (5.9) 하나님―우주의 아버지―는 첫째 근원 중심의 성격이요, 이것만으로, 모든 동급 및 종속 근원 중심을 무한히 통제하는 성격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한 통제력은 몸소 지닌 것이요 그 잠재성은 무한하다. 하지만 동급 및 종속 근원 중심과 성격자들이 완벽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그런 통제력이 결코 실제로 작용하지 않을지 모른다.

    ⁰:³.¹¹ (5.10) 따라서 첫째 근원 중심은 모든 영토, 신이 되거나 신이 되지 않거나, 성격이거나 비성격이거나, 실재하거나 잠재하거나, 유한하거나 무한한 영토에서 으뜸이다. 첫째 근원 중심의 수위성과 직접ㆍ간접으로 관련 없이, 또 그에 의존하지 않고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도, 어떤 상대성이나 최종의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⁰:³.¹² (5.11) 첫째 근원 중심은 다음과 같이 우주와 관계된다.

    ⁰:³.¹³ (5.12) 1. 물질 우주의 인력(引力)의 힘은 아래 파라다이스의 인력 중심에서 모인다. 이것이 바로 어째서, 그의 몸의 지리적 위치와 파라다이스 아래쪽, 곧 물질 평면의 물력 및 에너지 중심, 이 둘의 절대적 관계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가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의 절대 성격은 파라다이스의 윗면, 곧 영적 평면에 존재한다.

    ⁰:³.¹⁴ (5.13) 2. 지성 세력들은 무한한 영 안에서 모인다. 차별되고 갈라지는 우주 지성은 일곱 으뜸 영 안에서, 그리고 최상위의 현실화되는 지성은 하나의 시공 체험으로서 위엄자(威嚴者) 안에서 모인다.

    ⁰:³.¹⁵ (5.14) 3. 우주의 영(靈) 세력들은 영원한 아들 안에서 모인다.

    ⁰:³.¹⁶ (5.15) 4. 신이 활동하는 무제한 능력은 신 절대자 안에 거한다.

    ⁰:³.¹⁷ (5.16) 5. 무한히 반응하는 무제한 능력은 무제한 절대자 안에 존재한다.

    ⁰:³.¹⁸ (5.17) 6. 두 절대자―제한 절대자와 무제한 절대자―는 우주 절대자 안에서, 또 그로 인하여 조정되고 하나가 된다.

    ⁰:³.¹⁹ (5.18) 7. 진화하는 도덕적 존재나 어떤 다른 도덕적 존재라도, 그 잠재 성격은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에 집중된다.

    ⁰:³.²⁰ (5.19) 유한한 존재들이 이해하는 실체는 부분적ㆍ상대적이고 그림자와 같다. 유한한 진화 인간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 실체는 최상 존재 안에 담겨 있다. 그렇기는 해도, 이에 선행(先行)하는 영원한 실체, 유한을 뛰어넘는 실체도 있으며, 이들은 시공에서 진화된 인간의 이 최상 신의 조상이 된다. 보편적 실체의 기원과 본질을 그리려고 시도하면서, 유한한 지성 수준까지 미치기 위하여, 우리는 시공 논리 기법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시에 생긴 영원의 사건들을 우리는 연속된 거래로서 제시해야 한다.

    ⁰:³.²¹ (6.1) 시공 세계의 인간이 실체의 기원과 분화를 보건대, 영원하고 무한한 스스로 계신 이는 본래의 영원한 자유 의지를 행사함으로 제한 없는 무한의 사슬을 벗어나 신의 해방을 얻었다. 제한 없는 무한으로부터 이렇게 분리된 것은, 처음으로 절대 신성의 긴장을 일으켰다. 우주 절대자가 이러한 무한의 차이로 생긴 긴장을 풀었고, 우주 절대자는 총체 신의 동적(動的) 무한과 무제한 절대자의 정적(靜的) 무한을 통일하고 조정하려고 작용한다.

    ⁰:³.²² (6.2) 이 최초의 거래에서 이론적인 스스로 계신 이는 최초의 아들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어 성격을 실현하였고, 그와 동시에 파라다이스 섬의 영원한 근원이 되었다. 파라다이스가 있는 앞에서, 아들을 아버지와 구별할 때부터 공존하는, 무한한 영의 몸과 하보나 중앙 우주가 나타났다. 공존하며 성격을 가진 신, 즉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이 나타남과 함께, 아버지는 하나의 성격자로서, 총체 신의 잠재성 전역에 걸쳐서,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피한 분산을 피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오로지 대등한 두 신과 삼위일체 관계에서만 모든 신 잠재성을 채우며, 한편 체험적 신은 최상ㆍ궁극ㆍ절대 신성 수준에서 갈수록 더 현실화된다.

    ⁰:³.²³ (6.3) 스스로 계신 이의 개념은, 시간에 묶이고 공간에 매인, 사람의 유한한 지성에게, 그리고 영원에 있는 존재―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실체 및 관계―를 인간이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에 대하여 우리가 철학적으로 양보한 것이다. 시공의 인간이 보기에는, 원인 없이 계신 이―원초적 원인 중의 원인―만 제쳐놓고, 만물은 처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철학적 가치 수준을 스스로 계신 이라는 개념으로 만들고, 아울러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은 스스로 계신 이와 함께, 공동으로 영원하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계신 이가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과 함께 영의 아버지가 아니었던 때가 결코 없었다고 우리는 모든 생물에게 가르친다.

    ⁰:³.²⁴ (6.4) 무한자는 첫째 근원 중심의 수위성의 충만한―최종―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쓰인다. 이론적인 스스로 계신 이는 의지의 무한이 인간의 철학으로 연장된 것이지만, 무한자는 우주의 아버지의 절대적이고 묶이지 않는 자유 의지의 참된 무한의 강도, 영원의 강도를 나타내는 실제 가치 수준이다. 이 개념을 때때로 아버지 무한자라고 부른다.

    ⁰:³.²⁵ (6.5) 높고 낮은 모든 계급의 존재들이 아버지 무한자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생기는 많은 혼동은, 그들의 이해하는 한계에 본래부터 있다. 우주의 아버지의 절대적 수위성은 무한 이하 수준에서 명백하지 않다. 그러니까 아마도 오직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이 아버지가 하나의 무한자인 것을 참으로 이해할 것이다. 모든 다른 성격자에게 그러한 개념은 신앙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IV. 우주의 실체

    ⁰:⁴.¹ (6.6) 실체는 다채로운 우주 수준에서 다르게 현실화된다. 실체는 우주의 아버지 안에서 그의 무한한 의지에 따라서 생겨나며, 우주가 현실화되는 여러 다른 수준에서 세 가지 주요 단계로 실현될 수 있다.

    ⁰:⁴.² (6.7) 1. 신이 되지 않은 실체는 비성격인 것의 에너지 영토에서부터,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성격화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실체 분야까지, 아니 무제한 절대자의 계심에까지도 미친다.

    ⁰:⁴.³ (7.1) 2. 신이 된 실체는 성격의 영역 전체를 통해서, 가장 낮은 유한자로부터 가장 높은 무한자에 이르기까지, 위로 무한한 신 잠재성 전부를 포함하며, 따라서 성격화할 수 있는 것과 그보다 더한 모든 것의 영토를―신 절대자의 계심에 이르기까지도 ―포함한다.

    ⁰:⁴.⁴ (7.2) 3. 서로 연합된 실체. 상상하건대, 우주 실체는 신이 되든지, 또는 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이 되지 못한 존재들에게는, 잠재하고 현실화되는 실체, 확인하기 어려운 서로 연합된 실체의 광대한 영토가 존재한다. 이 나란히 있는 실체의 상당 부분은 우주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간다.

    ⁰:⁴.⁵ (7.3) 다음이 기원이 되는 실체의 근원적 개념이다: 아버지는 실체를 비롯하고 유지한다. 실체의 근원적 분화는 신이 된 자와 신이 되지 않는 자―신 절대자와 무제한 절대자이다. 근원적 관계는 이 둘 사이의 긴장이다. 아버지가 비롯한 이 신성의 긴장은 우주 절대자가 완전히 해결하고 우주 절대자로서 영원하게 된다.

    ⁰:⁴.⁶ (7.4)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볼 때, 실체는 다음과 같이 더 세분될 수 있다:

    ⁰:⁴.⁷ (7.5) 1. 실재하는 것과 잠재하는 것. 완전히 표현되어 존재하는 실체, 이와 반대로 밝혀지지 않은 성장 능력을 지니는 실체. 영원한 아들은 하나의 절대적 영적 사실이며, 필사 인간은 대체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의 영적 잠재성이다.

    ⁰:⁴.⁸ (7.6) 2. 절대적인 것과 절대 이하의 것. 절대 실체들은 영원의 존재이다. 절대 이하의 실체는 두 수준에서 계획된다: 초한자―시간과 영원에 대하여 상대적인 실체. 유한자―공간에서 계획되고 시간 속에서 현실화되는 실체.

    ⁰:⁴.⁹ (7.7) 3. 실존적인 것과 체험적인 것. 파라다이스 신은 실존적이지만, 솟아나는 최상위와 궁극위는 체험적이다.

    ⁰:⁴.¹⁰ (7.8) 4. 성격인 것과 비성격인 것. 신의 확장, 성격의 표현, 우주의 진화는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자유 의지에 따라 조절된다. 아버지의 자유 의지는, 영원한 아들에 집중되는, 실재하고 잠재하는 가치와 의미를 지닌 지성ㆍ영ㆍ성격, 그리고 영원한 파라다이스 섬에서 모이고 본래부터 생기는 것들, 이 두 가지를 영원히 분리하였다.

    ⁰:⁴.¹¹ (7.9) 파라다이스는 우주 실체의 모든 단계에서 성격 및 비성격 초점이 되는 절대자들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파라다이스는 엄밀하게 규명했을 때, 어떤 형태의 실체, 아니 온갖 형태의 실체도, 곧 신ㆍ신성ㆍ성격, 그리고―영이든, 지성이든 물질이든―에너지를 뜻할 수도 있다. 가치와 의미와 사실적 존재에 관계되는, 기원ㆍ활동ㆍ운명의 장소로서 모두가 파라다이스를 공유한다.

    ⁰:⁴.¹² (7.10) 파라다이스 섬―달리 조건을 붙이지 않고서 파라다이스―는 첫째 근원 중심의 물질 인력(引力)을 통제하는 절대물이다. 파라다이스는 가만히 있고,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물체이다. 파라다이스 섬은 우주에서 위치가 있지만, 공간에 자리가 없다. 이 영원한 섬은―과거ㆍ현재ㆍ미래의―물리적 우주의 실제 근원이다. 중심에 있는 빛의 섬은 신으로부터 파생된 물건이지만, 도저히 신이라 할 수 없다. 여러 물질 우주도 신의 일부가 아니요, 하나의 결과이다.

    ⁰:⁴.¹³ (7.11) 파라다이스는 창조자가 아니다. 파라다이스는 여러 우주 활동을 독특하게 통제하며, 반응하기보다는 통제하는 물건에 훨씬 더 가깝다. 물질 우주에 두루, 파라다이스는 물력ㆍ에너지ㆍ동력과 상관 있는 모든 존재의 반응과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주들 가운데 파라다이스 자체는 독특하고, 배타적이고 고립되어 있다. 파라다이스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고, 아무것도 파라다이스를 대표하지 않는다. 물력도 계심도 아니요, 그저 파라다이스일 따름이다.

    V. 성격 실체

    ⁰:⁵.¹ (8.1) 성격은 신이 된 실체의 한 수준이며, 필사자 및 중도자의 예배와 지혜를 촉진하는 상급 지성 수준에서부터 상물질(上物質) 및 영적 수준을 거쳐서, 성격이 최후에 달성하는 지위에까지 미친다. 이것이 필사자 및 친척 생물 성격자가 진화로 승천하는 것이지만, 수많은 다른 계급의 우주 성격자가 있다.

    ⁰:⁵.² (8.2) 실체는 우주의 팽창에 지배되고, 성격은 무한한 분화에 지배된다. 이 두 가지에 거의 한없이 신의 조정과 영원한 안정이 가능하다. 비성격 실체가 변화하는 범위는 뚜렷이 한정되어 있으나, 우리가 알건대, 성격 실체의 점진적 진화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다.

    ⁰:⁵.³ (8.3) 도달한 체험 수준에서, 모든 성격 계급이나 가치는 서로 연합할 수 있고, 공동 창조성도 있다. 그리스도 미가엘―사람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의 현재 지위에서 아주 자세히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의 통일된 성격 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도 함께 있을 수 있다.

    ⁰:⁵.⁴ (8.4) 무한 이하 성격자의 모든 계급과 단계는, 연합하여 달성이 가능한 자이고, 공동 창조 잠재성을 가진다. 선(先)인격인 자, 성격인 자, 초월 성격인 자들은 서로 가진 잠재성, 나란히 달성하고, 점진적으로 성취하고, 공동으로 창조하는 능력 때문에 모두 함께 연결된다. 그러나 비성격자는 결코 성격자로 바로 변화되지 않는다. 성격은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으며,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선물이다. 성격은 에너지 위에 겹쳐 놓으며, 오직 살아 있는 에너지 체계와 연합된다. 신분은 살아 있지 않은 에너지 형태와 결합될 수 있다.

    ⁰:⁵.⁵ (8.5) 우주의 아버지는 성격 실체, 성격 수여, 성격 운명의 비밀이다. 영원한 아들은 절대 성격자요, 영적 에너지, 상물질 영, 완전해진 영들의 비밀이다. 합동 행위자는 영(靈) 지성을 가진 성격자요, 지능과 이치와 보편적 지성의 근원이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섬은 비성격이고 영적 범위를 벗어나며, 파라다이스는 우주 몸의 본질이요, 물리적 물질의 근원이자 중심이요, 우주의 물질 실체의 절대 원본이다.

    ⁰:⁵.⁶ (8.6) 우주 실체의 이러한 성질은 다음 수준에서 유란시아의 인간 체험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⁰:⁵.⁷ (8.7) 1. 몸. 사람의 물질적 또는 육체적 유기체. 동물의 성질과 기원을 가진, 살아 있는 전기 화학 작용.

    ⁰:⁵.⁸ (8.8) 2. 지성. 인간 유기체의 생각하고 파악하고 느끼는 작용. 의식하는 경험과 무의식의 경험 전체. 예배와 지혜를 통해서 위로 영 수준까지 미치는, 감정이 있는 생명과 관계된 지능.

    ⁰:⁵.⁹ (8.9) 3. 영. 사람의 지성 속에 깃드는 신다운 영(靈)―생각 조절자. 이 불멸의 영은 선(先)인격이다―인격이 아니다. 하지만 살아남는 필사 인간 성격의 일부가 될 운명을 가졌다.

    ⁰:⁵.¹⁰ (8.10) 4. 혼. 사람의 혼은 체험으로 얻는다. 필사 인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택함에 따라서 그 깃드는 영은 인간의 체험에서 새로운 실체의 아버지가 된다. 필사자의 물질 지성은 바로 이 태어나는 실체의 어머니가 된다. 이 새 실체의 알맹이는 물질도 영도 아니다―상물질이다. 이것은 생겨나는 불사의 혼이며, 필사자가 죽은 뒤에 살아남아서 파라다이스로 비로소 올라갈 운명을 가졌다.

    ⁰:⁵.¹¹ (9.1) 인격. 필사 인간의 성격은 몸도 지성도 영도 아니며, 혼도 아니다. 인격은 다른 면에서 늘 변하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하나의 변치 않는 실체이고, 개성의 모든 다른 관련된 요소들을 하나로 만든다. 인격이란 우주의 아버지가 물질ㆍ지성ㆍ영의 에너지, 살아 있고 연결된 에너지 위에 주는 특유한 선물이요, 상물질 혼이 살아남을 때 함께 살아남는다.

    ⁰:⁵.¹² (9.2) 상물질은 물질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개재하는, 광대한 수준을 표시하는 용어이다. 이것은 성격 실체나 비성격 실체, 살아 있거나 살아 있지 않은 에너지를 가리킬 수도 있다. 상물질의 날줄은 영이요 씨줄은 물질이다.

    VI. 에너지와 원본

    ⁰:⁶.¹ (9.3) 아버지의 성격 회로(回路)에 반응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우리는 성격이라 부른다. 우리는 아들의 영 회로에 반응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영이라 부른다. 합동 행위자의 지성 회로에 반응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지성이라 부른다. 곧 무한한 영의 한 속성인 지성, 그 모든 단계의 지성을 말한다. 아래 파라다이스에 집중하는 물질 인력 회로에 반응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우리는 물질―온갖 변화된 상태에 있는 에너지와 물질―이라 부른다.

    ⁰:⁶.² (9.4) 우리는 에너지를 영ㆍ지성ㆍ물질의 영역에 적용되는, 모든 것을 담는 용어로서 쓴다. 물력(物力)도 또한 이처럼 넓은 뜻으로 쓰인다. 동력은 대우주 안에서 전자(電子) 수준의 물질, 또는 직진 인력(引力)에 민감한 물질을 표현하는 데 보통 한정된다. 권능은 또한 통치권을 가리키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너희가 두루 쓰는 물력ㆍ에너지ㆍ동력이라는 말의 정의를 우리는 따를 수 없다. 언어가 너무 빈약해서, 우리는 이 용어들에 여러 가지 뜻을 부여해야 한다.

    ⁰:⁶.³ (9.5) 물리적 에너지는 어떤 단계와 형태로 있든, 현상의 움직임ㆍ활동ㆍ잠재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⁰:⁶.⁴ (9.6) 물리적 에너지가 겉으로 명시되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우주 물력, 태동 에너지, 우주 동력, 이 세 가지 용어를 널리 쓴다. 이것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쓰인다:

    ⁰:⁶.⁵ (9.7) 1. 우주 물력은[6] 무제한 절대자로부터 파생되지만 아직까지 파라다이스 인력에 민감하지 않은 모든 에너지를 포함한다.

    ⁰:⁶.⁶ (9.8) 2. 태동 에너지는 파라다이스 인력에 민감하지만 지역 인력, 곧 직선 인력에 아직 민감하지 않은 에너지를 포함한다. 이것은 전자가 생기기 전 수준의 에너지와 물질이다.

    ⁰:⁶.⁷ (9.9) 3. 우주 동력은 파라다이스 인력에 아직도 반응하면서, 직진 인력에 직접 반응하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를 포함한다. 전자 수준의 에너지 물질과 그후에 그로부터 생기는 모든 진화를 포함한다.

    ⁰:⁶.⁸ (9.10) 지성은 다양한 에너지 체계에 덧붙인, 살아 있는 봉사가 존재하거나 작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현상이고, 이것은 모든 수준의 지능의 경우에 참말이다. 성격자의 경우에, 지성은 늘 영과 물질 사이에 개재한다. 따라서 우주는 물질적 빛, 지적 통찰력, 영적 빛, 이 세 종류의 빛으로 밝게 된다.

    ⁰:⁶.⁹ (10.1) 빛―영적 빛―은 다채로운 계급의 영 존재의 특징을 가진 성격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 표현, 비유적 표현이다. 이 빛의 방출은 지적 통찰력이나 물리적 빛이 나타나는 것과 어떤 면에서도 관계가 없다.

    ⁰:⁶.¹⁰ (10.2) 원본은 물질ㆍ영ㆍ지성 에너지, 또는 이 여러 에너지의 어떤 조합으로도 계획될 수 있다. 원본은 성격자ㆍ신분ㆍ개체, 또는 무생물에 스며들 수 있다. 그러나 원본(原本)은 원판이요, 원판으로 남아 있고, 오로지 복사판이 늘어난다.

    ⁰:⁶.¹¹ (10.3) 원본은 에너지를 넣어서 지을 수 있지만, 원본이 에너지를 통제하지는 않는다. 인력이 에너지와 물질을 유일하게 통제한다. 공간도 원본도 인력에 민감하지 않지만, 공간과 원본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공간은 원본도, 원본의 가능성도 아니다. 원본은 이미 인력에 대하여 빚을 다 갚은 실체의 배치이다. 어떤 원본의 실체도 그 에너지ㆍ지성ㆍ영, 또는 물질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⁰:⁶.¹² (10.4) 전체의 모습과 반대로, 원본은 에너지 및 성격의 개별 모습을 드러낸다. 성격이나 신분 형태는 (물리적ㆍ영적, 또는 지성) 에너지로부터 생기는 원본이지만, 이러한 에너지에 본래부터 들어 있지는 않다. 원본이 나타나게 만드는 에너지나 성격의 질은 하나님―신―, 파라다이스 물력의 부여, 성격과 권능이 공존하는 탓으로 돌려도 좋다.

    ⁰:⁶.¹³ (10.5) 원본은 설계의 원판이며, 그로부터 복사판이 만들어진다. 영원한 파라다이스는 절대 원본이요, 영원한 아들은 원본 성격자요, 우주의 아버지는 이 둘의 직계 조상이자 근원이다. 그러나 파라다이스는 원본을 수여하지 않고, 아들은 성격을 수여할 수 없다.

    VII. 최상 존재

    ⁰:⁷.¹ (10.6) 총우주에서 신의 작용은 영원의 관계에서 두 가지로 관련된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은 영원하고―실존적 존재이고―한편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은, 총우주가 진화로 확대되는, 시공의 구체와 시공을 초월한 구체(球體)들에서, 하보나 이후 시기에 현실화하는 신 성격자이다. 영원한 파라다이스 신들이 연합하여 창조 잠재성의 체험적 현실화 기법으로, 성장하는 우주에서 이 현실화하는 신 성격자들이 권능을 가지고 성격화할 때부터,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미래 영원자가 된다.

    ⁰:⁷.² (10.7) 따라서 신의 계심은 두 가지이다:

    ⁰:⁷.³ (10.8) 1. 실존적―과거ㆍ현재ㆍ미래에 영원히 있는 존재.

    ⁰:⁷.⁴ (10.9) 2. 경험적―하보나 이후에 현재 현실화하지만 모든 미래 영원을 통해서 내내, 끝없이 있는 존재.

    ⁰:⁷.⁵ (10.10) 아버지ㆍ아들ㆍ영은 실존적이다―사실로 실존적이다. (하지만 모든 잠재성은 경험을 거친다고 생각된다.) 최상위와 궁극위는 전적으로 체험적 존재이다. 신 절대자의 현실화는 체험적이지만, 그의 잠재성은 실존적이다. 신의 요소는 영원하지만, 오직 처음 신 세 분이 조건 없이 영원하다. 모든 다른 신 성격자는 기원이 있지만, 그 운명이 영원하다.

    ⁰:⁷.⁶ (10.11) 실존적 신으로서 자신의 표현을 아들과 영 안에서 이루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제까지 비성격이고 밝혀지지 않은 신 수준에서,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으로서, 이제 체험적 표현을 성취하고 계신다. 그러나 경험을 거치는 이 신들은 지금 온전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현실화하는 과정에 있다.

    ⁰:⁷.⁷ (11.1) 하보나에 계신 최상위 하나님은 삼자일치 파라다이스 신의 영이 성격으로 반영된 것이다. 이 연합하는 신 관계는 이제 칠중 신 안에서 바깥으로 창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대우주에서 전능한 최상위의 체험적 권능으로 통합되고 있다. 따라서 세 분으로서 실존적인 파라다이스 신은 최상위의 두 단계에서 체험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한편 이 두 단계는 하나의 주, 최상 존재로서, 권능과 성격을 통일하고 있다.

    ⁰:⁷.⁸ (11.2) 우주의 아버지는 삼자일체화 기법, 곧 세 신으로 성격화함으로, 무한의 굴레와 영원의 사슬을 벗어나, 자유 의지로 해방을 성취하신다. 대우주의 시공 구역에서, 신의 일곱 가지 명시를 영원 이하의 성격자로 통일한 것으로서 최상위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⁰:⁷.⁹ (11.3) 위엄자의 아버지인 것을 제쳐놓고, 최상 존재는 직접 창조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창조자 사이에 생기는 모든 우주 활동을 통합하는 조정자이다. 최상 존재는 이제 진화하는 여러 우주에서 현실화하고 있고, 시공의 최상 창조자들과 체험적 관계를 가지면서 삼자일치 파라다이스 신의 시공 신성을 상관시키고 통합하는 신이다. 마침내 현실화되었을 때, 이 진화하는 신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영원한 융합―체험적 권능과 영 성격의 영원한 끊을 수 없는 연합―이 될 것이다.

    ⁰:⁷.¹⁰ (11.4) 진화하는 최상 존재의 지도하는 재촉을 받으면서, 모든 유한한 시공 실체는 유한한 실체의 모든 단계와 가치를 항상 더 동원하고 이를 완전히 통일하는 일에 (권능과 성격을 합성하는 데) 종사하고 있다. 이것은 파라다이스 실체의 다양한 단계와 관련하여, 인간을 초월하여 달성하는 초한[7] 수준까지 미치려는 노력을 나중에 개시할 의도와 목적을 위한 것이다.

    VIII. 칠중 신

    ⁰:⁸.¹ (11.5) 지위의 유한성을 보충하고 인간의 개념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주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진화하는 인간이 신에 이르는 일곱 가지 접근법을 마련하셨다:

    ⁰:⁸.² (11.6) 1.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

    ⁰:⁸.³ (11.7) 2. 옛적부터 늘 계신 이.

    ⁰:⁸.⁴ (11.8) 3. 일곱 으뜸 영.

    ⁰:⁸.⁵ (11.9) 4. 최상 존재.

    ⁰:⁸.⁶ (11.10) 5. 영 하나님.

    ⁰:⁸.⁷ (11.11) 6. 아들 하나님.

    ⁰:⁸.⁸ (11.12) 7. 아버지 하나님.

    ⁰:⁸.⁹ (11.13) 시공에서, 그리고 일곱 초우주에 대하여 신이 이렇게 일곱 가지로 성격화한 것은 필사 인간으로 하여금, 영이신 하나님이 계신 앞에 이를 수 있게 한다. 언젠가 최상 존재 안에서 권능을 가지고 성격화하는 유한한 시공 인간에게 이 일곱 신은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생애를 가진 진화하는 필사 인간에게 기능적 신이다. 하나님을 깨닫는 생애, 체험으로 발견하는 생애는 지역 우주 창조 아들의 신성을 인식하는 것을 비롯하여, 초우주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을 통해서 올라가고, 일곱 으뜸 영 가운데 한 분의 몸을 거쳐서,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주의 아버지의 신다운 성격을 찾아내고 인식하기에 이른다.

    ⁰:⁸.¹⁰ (12.1) 대우주는 최상 삼위일체, 칠중 신, 최상 존재에게 세 가지로 신의 영토이다. 최상위 하나님은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서 잠재하며, 삼위일체로부터 그의 성격과 영적 속성을 끌어낸다. 그러나 그는 이제 창조 아들, 옛적부터 늘 계신 이, 으뜸 영들 안에서 현실화하고 있고, 이들로부터 시공의 여러 초우주에 대하여 전능자로서 권능을 얻어낸다. 진화하는 인간이 마주치는, 하나님의 이러한 힘의 명시(明示)는 실제로 인간과 함께 시공에서 진화된다. 비성격 활동의 가치 수준에서 진화하고 있는 전능 최상위와 최상위 하나님의 영적 몸은 하나의 실체이다―최상 존재이다.

    ⁰:⁸.¹¹ (12.2) 칠중 신과 신으로서 관계된 창조 아들들은 필사자가 불사자가 되고 유한자가 무한자의 품에 이르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준다. 최상 존재는 권능과 성격자를 동원하는 기법, 이 모든 다양한 거래를 신성하게 통합하는 기법을 마련해 준다. 이처럼 최상위는 유한자로 하여금 초한자에 이르게 하고, 앞날의 다른 가능한 현실화를 통하여, 궁극위에 이르는 것을 시도하게 만든다. 창조 아들 및 관련된 신성한 봉사자들은 이 최고의 사업에 참여하지만,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과 일곱 으뜸 영은 대우주에서 영구 행정가로서 아마도 영원히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⁰:⁸.¹² (12.3) 칠중 신의 기능은 일곱 초우주가 조직될 때부터 비롯하며, 그 기능은 바깥 공간의 우주들이 앞날에 진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아마 확대될 것이다.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첫째ㆍ둘째ㆍ셋째ㆍ넷째 공간 수준에서 이 미래 우주들이 조직되면, 의심할 여지 없이, 신에 이르는 초월적 초한 접근법이 개시됨을 구경할 것이다.

    IX. 궁극위 하나님

    ⁰:⁹.¹ (12.4) 둘러싼 대우주의 에너지 및 성격 잠재성의 재산, 선행(先行)하는 신(神)의 재산으로부터 최상 존재는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궁극위 하나님은 총우주의 시공 초월 영토에 거하는, 신의 잠재성으로부터 궁극에 이른다. 궁극 신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첫째 체험적 삼자일체가 초한적으로 통일되었음을 가리키며, 창조적 자아 실현이 있는 둘째 수준에서, 통일하는 신이 확대됨을 뜻한다. 이것은 궁극에 시공을 초월한 가치에 이르는 수준에서, 파라다이스의 초한 실체들이 우주에서 체험적 신으로 현실화하는 것과 성격 및 권능 면에서 대등하다. 이러한 체험적 전개가 끝나는 것은 최상 존재가 현실화를 마침으로, 그리고 칠중 신이 베푸는 봉사로 초한 수준에 이른, 시공의 모든 인간에게 궁극에 봉사하는 운명을 주도록 고안되어 있다.

    ⁰:⁹.² (12.5) 궁극위 하나님은 초한자의 신성 수준에서,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 분야에서 활동하는, 성격을 가진 신을 가리킨다. 궁극위는 최상을 초월하여 궁극에 신이 되는 것이다. 최상위는 유한한 존재들이 이해하는, 삼위일체의 통일이요, 궁극위는 초한 존재들이 이해하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통일이다.

    ⁰:⁹.³ (13.1) 진화하는 신의 작용을 통해서, 우주의 아버지는 유한자, 초한자, 아니 절대자의 신성한 실체 가치도, 각자의 우주 의미 수준에서 성격에 집중하고 권능을 동원하는, 엄청나고 놀라운 행위에 실제로 종사한다.

    ⁰:⁹.⁴ (13.2) 영원한 과거를 가진 처음 세 파라다이스 신―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은 영원한 미래에, 진화하는 동료 신들이―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그리고 아마도 절대자 하나님이―체험으로 현실화함으로, 성격자들로 보완될 것이다.

    ⁰:⁹.⁵ (13.3) 최상위 하나님과 궁극위 하나님은 현재 체험적 우주에서 진화하고 있으며, 실존적이 아니다―이들은 과거 영원자가 아니라, 오직 미래 영원자, 시간과 공간에 조건을 받고 초월성이 제한된 영원자이다. 최상, 궁극, 아마도 최상 궁극의 자질을 가진 신이지만, 그들은 우주에서 역사적 기원을 겪었다. 이들은 결코 끝이 없을 터이지만, 성격의 시초가 있다. 정말로 영원 무한한, 신 잠재성이 현실화하는 것이지만, 이들 자체는 조건 없이 영원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X. 절대자 하나님

    ⁰:¹⁰.¹ (13.4) 신 절대자의 영원한 실체에는, 시공의 유한한 지성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절대자 하나님이 현실화하는 것은 둘째 체험적 삼자일체, 절대 삼자일체가 통일되는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절대 신성의 경험적 실현, 즉 절대 수준에서 절대적 의미를 가진 것들의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제한 절대자가 무한자와 대등하다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모든 절대 가치의 범위에 관하여 확실하지 않다. 궁극을 초월하는 운명들은 절대 의미와 무한한 영적 위엄과 관계되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 두 실체가 없이, 우리는 절대 가치를 확정할 수 없다.

    ⁰:¹⁰.² (13.5) 절대자 하나님은 초한을 뛰어넘는 모든 존재가 실현하고 달성할 목표이다. 그러나 신 절대자의 권능과 성격 잠재성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며, 우리는 체험으로 현실화되는 것과 거리가 먼 그러한 실체들에 대하여 논하기를 꺼린다.

    XI. 세 절대자

    ⁰:¹¹.¹ (13.6)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통합된 생각이 행위의 하나님 안에서 활동하면서 신성한 중앙 우주를 창조했을 때, 아버지는 그의 하보나 계심을 무한한 잠재성과 구별함으로, 아버지의 생각이 표현되는 대로 아들의 말씀과 합동 집행자의 행동을 따라가셨다. 드러나지 않은 이 무한의 잠재성은 무제한 절대자의 공간에 감춰져 있고, 신 절대자 안에 거룩하게 가려져 있다. 한편 이 둘은 우주 절대자가 활동할 때 하나가 되며, 이 우주 절대자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밝혀지지 않은 무한성이 통일된 것이다.

    ⁰:¹¹.² (13.7) 체험적 성장으로, 그리고 우주 절대자가 체험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을 서로 연결지음으로 총 실체가 강화되는 동안에, 우주 물력의 세력과 영 물력의 세력은 모두 점진적으로 계시되고 실현되는 과정에 있다. 균형을 이루는 우주 절대자의 계심 덕분으로 말미암아, 첫째 근원 중심은 체험적 권능을 연장하고, 그의 진화하는 인간과 일체가 됨을 누리며, 최상ㆍ궁극ㆍ절대 수준에서 경험적 신을 확대한다.

    ⁰:¹¹.³ (14.1) 신 절대자를 무제한 절대자와 완전히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이들의 통합된 활동이나 나란한 계심으로 생각되는 것은 우주 절대자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⁰:¹¹.⁴ (14.2) 1. 신 절대자는 전능한 시동자(始動者)인 듯하며, 한편 무제한 절대자는 최상으로 통일되고 궁극에 조화된 온 우주를, 아니 이미 지었거나, 짓는 중이거나, 아직 지을 허다한 우주들까지, 전적으로 유능하게 기계화하는 자로 보인다.

    ⁰:¹¹.⁵ (14.3) 신 절대자는 어떤 우주 상황에 대해서도, 절대 이하의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거나,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 절대자의 모든 반응은 언제나 그 지금 존재 상태 뿐 아니라, 모든 미래 영원의 무한한 가능성에 비추어서, 모든 창조의 사물 및 존재들의 복지를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듯하다.

    ⁰:¹¹.⁶ (14.4) 신 절대자는 우주의 아버지가 자유 의지로 선택함으로 무한한 실체 전부로부터 분리된 그 잠재성이며, 그 안에서 신의 모든 활동―실존적ㆍ경험적 활동―이 일어난다. 이 잠재성은 무제한 절대자와 반대로 제한 절대자이다. 그러나 모든 절대적 잠재성을 포함하는 우주 절대자는 이 둘을 더한 것보다 크다.

    ⁰:¹¹.⁷ (14.5) 2. 무제한 절대자는[8] 성격이 아니요, 신다운 것 바깥에 있고, 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제한 절대자는 성격과 신성, 그리고 창조자의 모든 특권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이나 진실도, 체험이나 계시도, 철학이나 초한성도, 우주의 자격 제한을 받지 않는 이 절대자의 성질과 특성을 꿰뚫어볼 수 없다.

    ⁰:¹¹.⁸ (14.6) 무제한 절대자는 대우주를 채우는 분명한 실체라는 것을 뚜렷이 밝혀두자. 이 실체는 일곱 초우주 바깥에 어지럽게 뻗어 있는 공간 지역에서, 공간에 한결같이 있으면서, 물력의 활동과 물질 이전의 진화가 생기는 쪽으로 확장하는 듯하다. 무제한 절대자는, 조건을 받지 않는 것과 제한 받지 않는 것들이 보편적이고 우세하고 우선한다는 형이상학적 억지 가정(假定)에 근거한 철학 개념을 단순히 부정한 생각이 아니다. 무제한 절대자는 무한하고 분명한 전반적 우주 통제력이다. 이러한 전반적 통제는 공간과 물력에 제한이 없지만, 생명ㆍ지성ㆍ영ㆍ성격의 계심에 따라 분명히 조절되고, 파라다이스 삼위일체가 의지한 반응, 그리고 의도하는 명령에 따라서 더욱 조절된다.

    ⁰:¹¹.⁹ (14.7) 무제한 절대자는 형이상학의 범신(汎神) 개념, 또는 과학에 언젠가 있었던 에테르설과 견줄 수 있는, 차별 없이 만물에 침투하는 영향력은 아니라 우리는 확신한다. 무제한 절대자는 한이 없는 물력, 신의 조절을 받는 물력이다. 그러나 이 절대자와 우주의 영 실체들의 관계를 우리는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다.

    ⁰:¹¹.¹⁰ (14.8) 3. 우리가 논리적으로 추정하건대, 아버지의 절대적 자유 의지 행위로, 우주의 실체들을 신이 된 가치와 신이 되지 않은 가치로―성격화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구별하는 가운데 우주 절대자는 불가피하였다. 우주 절대자는 우주의 실체를 이처럼 구별하는 자유 의지 행위로 생긴 긴장이 해결됨을 가리키는, 신의 현상이며, 이 절대자는 이 실존적 잠재성의 총합을, 연합 방법으로 조정하는 자로서 활동한다.

    ⁰:¹¹.¹¹ (15.1) 우주 절대자가 긴장 상태에 계심은 신(神) 실체와 신이 되지 않은 실체의 차이가 조정됨을 뜻한다. 이러한 차이는 자유 의지를 가진 동태적 신성을, 제약 받지 않는 정태적 무한으로부터 분리할 때 본래부터 생긴다.

    ⁰:¹¹.¹² (15.2) 잠재 무한은 절대적이고 영원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여라. 시간 속에서 실제 무한은 결단코 부분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틀림없이 절대적이 아니다. 무제한 신의 경우를 제외하고, 실재하는 무한한 성격도 절대적일 수 없다. 무제한 절대자와 신 절대자에게 있는 무한한 잠재성의 차이가 바로 우주 절대자를 영원하게 하며, 이렇게 함으로 물질 우주들을 공간에 두는 것을 우주에서 가능하게 하고, 또한 시간 세계에 유한한 성격자들을 두는 것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⁰:¹¹.¹³ (15.3) 유한자가 무한자와 더불어 우주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주 절대자의 연합하는 계심이, 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 실체의 잠재성과 실체의 사실성, 파라다이스와 공간,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긴장을 아주 완전히 평준화하기 때문이다. 연합 방법으로, 우주 절대자는 무한 이하로 신이 나타나는 시공 우주와 시공 초월 우주에 존재하는, 진보하는 진화적 실체의 지대가 있다는 확인이 된다.

    ⁰:¹¹.¹⁴ (15.4) 우주 절대자는 정적(靜的)이고 동적(動的)인 신의 잠재성이다. 이 잠재성은 시간 수준에서 유한하고 영원 수준에서 절대적인 가치로서, 그리고 경험적ㆍ실존적 접근법이 가능한 것으로서, 기능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신은 정적이고 잠재하고 연합하는 모습이 있을지 모르지만, 총우주에서 지금 활동하는 지적 성격자들이 관여하다시피, 체험으로 창조하거나 진화하지 않는다.

    ⁰:¹¹.¹⁵ (15.5) 절대자. 두 절대자―제한된 절대자와 제한되지 않은 절대자―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 지켜보는 바와 같이, 겉보기에 그 기능이 아주 다르지만, 우주 절대자 안에서, 또 그로 인하여 완전히 신성하게 하나가 된다. 모든 것을 고려하고, 끝까지 이해했을 때, 모두 셋이 하나의 절대자이다. 그들의 기능은 무한 이하 수준에서 차이가 있지만, 무한 속에서 하나이다.

    ⁰:¹¹.¹⁶ (15.6) 무엇의 반대로서, 또는 어떤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절대자라는 용어를 결코 쓰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 절대자를 자율성이 있는, 일종의 범신적 비성격 신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우주 성격자에 관한 모든 면에서, 이 절대자를 삼위일체가 엄격히 제한하고 신이 지배한다.

    XII. 여러 삼자일체

    ⁰:¹².¹ (15.7) 최초의 영원한 파라다이스 삼위일체는 실존적이며 불가피했다. 결코 시작이 없는 이 삼위일체는 아버지의 구속받지 않은 의지로 성격인 것과 비성격인 것을 구별하는 사실에 본래부터 있었고, 그가 친히 의지함으로 이 두 가지 실체를 지성으로 조정할 때 사실이 되었다. 하보나가 생긴 뒤의 삼자일체들은 체험을 거친다―이들은 총우주에서 권능과 성격자가 나타나는 절대 이하의 두 가지 진화 수준이 창조됨으로 저절로 생긴다.

    ⁰:¹².² (15.8)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의 영원한 신 연합―은 사실로 실존적이지만, 모든 잠재성은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삼위일체는 무한을 포함하는 유일한 신 실체가 되며, 따라서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이 현실화하는 우주 현상이 일어난다.

    ⁰:¹².³ (15.9) 제1 및 제2 체험적 삼자일체[9], 곧 하보나 이후에 생긴 삼자일체들은 파생된 신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무한할 수 없다. 이 신들은 실존적 파라다이스 삼위일체가 창조하거나 궁극에 얻는 실체들이 체험으로 현실화함으로 진화된다. 인간의 체험이 유한하고 창조자의 체험이 초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신성은 커지지는 않더라도, 늘 강화된다.

    ⁰:¹².⁴ (16.1) 여러 삼자일체는 신이 나란히 나타나는 관계의 진실이자 사실이다. 삼자일체의 기능은 신 실체들을 포함하며, 신 실체들은 언제나 성격화함으로 실현과 표현을 찾는다. 따라서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그리고 절대자 하나님조차 신으로서 불가피한 것이다. 체험하는 이 세 신은 실존적 삼위일체, 곧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 잠재했으나, 이들이 권능을 가진 성격자로서 우주에서 솟아나는 것은, 일부는 권능과 성격자가 있는 우주에서 바로 그들이 체험으로 활동하는 데 달려 있고, 일부는 하보나 이후의 창조자들, 그리고 삼자일체들의 체험적 업적에 달려 있다.

    ⁰:¹².⁵ (16.2) 하보나 이후의 두 삼자일체, 곧 체험적 궁극 삼자일체와 절대 삼자일체는 지금 충분히 뚜렷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이들이 우주에서 실현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 여러 신 결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도 좋다:

    ⁰:¹².⁶ (16.3) 1. 궁극 삼자일체는 지금 진화하고 있고, 궁극에는 최상 존재, 최상 창조 성격자들, 초한 총우주 건축가들로 구성될 것이다. 이 건축가들은 창조자도 지음받은 자도 아닌, 독특한 우주 설계자이다. 궁극위 하나님은 거의 한없는 총우주의 확대되는 영역에서, 이 체험적 궁극 삼자일체가 통일되는 결과, 신이 통일되는 결과로서 궁극에, 또 불가피하게, 권능을 얻고 성격화할 것이다.

    ⁰:¹².⁷ (16.4) 2. 절대 삼자일체―둘째 체험적 삼자일체―는 지금 현실화하는 과정에 있고, 최상위 하나님, 궁극위 하나님,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우주 운명 종결자로 구성될 것이다. 이 삼자일체는 성격 수준과 성격 초월 수준에서, 아니 비성격의 경계에서도 활동하며, 삼자일체의 보편적 통일은 체험으로 절대 신을 만들 것이다.

    ⁰:¹².⁸ (16.5) 궁극 삼자일체는 완성되었을 때 체험적 통일성이 있지만, 절대 삼자일체가 그렇게 완전히 통일될 수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의심이 든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개념은, 달리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신의 삼자일체화가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생각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최상위와 궁극위가 언젠가 출현하고 절대자 하나님이 아마도 삼자일체화로 현실화할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

    ⁰:¹².⁹ (16.6) 여러 우주에 있는 철학자들은 가장 높은 삼자일체, 곧 실존적이고 체험하는 무한 삼자일체를 가정해 보지만, 이것이 성격화되는 일을 상상해 볼 수 없다. 아마도 스스로 계신 이 개념의 수준에서 우주의 아버지의 몸과 대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 상관 없이, 우주의 아버지가 실제로 무한하니까, 처음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잠재성은 무한하다.

    인정하는 말씀

    ⁰:¹².¹¹ (16.8) 완전한 중앙 우주와 그 둘레를 도는 일곱 초우주에 관하여 기술하려는 시도와 함께, 우주의 아버지의 특성 및 그의 파라다이스 동료들의 성품을 묘사하는 것과 상관되는 뒤따르는 발표문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초우주 통치자들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이 지침은 진리, 그리고 이와 나란히 필수 지식을 계시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발표되는 주제와 관련되는 바 사람의 가장 높은 기존 개념에 특혜를 주라고 지시한다. 제시되는 개념을 인간의 지성이 알맞게 표현한 선례가 없을 때에만 우리는 순전한 계시에 의존해도 좋다.

    ⁰:¹².¹² (17.1) 신성한 진리를 행성에 연달아 주는 계시는, 행성의 지식을 새로이 더 낫게 조정하는 방안의 일부로서, 영적 가치를 가진 가장 높은 기존 개념들을 반드시 포함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우주 동료들에 대한 이 발표문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이 여러 논문의 기초로서, 영적 가치와 우주 중요성이 있는, 가장 높고 가장 진보된 행성 지식을 대표하는 개념, 인간이 가진 개념을 1천 가지가 넘게 선택하였다. 지난날과 오늘날,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들로부터 모은 이 인간적 개념들이, 우리가 드러내라고 지시 받은 대로 진리를 묘사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경우에, 이 목적을 위하여, 파라다이스 신들의 실체와 신성(神性), 그리고 그들이 거하는 초월 우주에 대하여 바로 우리가 가진 상급 지식을 이용하여, 서슴지 않고 그러한 개념들을 보충하겠다.

    ⁰:¹².¹³ (17.2) 우리의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충분히 헤아린다. 신성과 영원의 개념들을 담은 말을 필사 지성의 유한 개념을 담는 언어의 기호(記號)로 제대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지성 속에 하나님의 분신이 계시고, 사람의 혼과 함께 진리의 영이 머무르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러한 여러 영적 세력이 물질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 가치가 있는 실체를 움켜잡고, 우주적 의미가 있는 철학을 이해하도록 서로 돕는 것을 안다. 하지만 더욱 확실히, 개인의 종교적 체험―하나님 의식(意識)―의 늘 전진하는 현실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모든 진리를 영적으로 사용하도록, 이 신성한 계심의 영들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⁰:¹².¹⁴ (17.3) [오르본톤의 한 신성한 조언자가 작성하였다. 그는 파라다이스 신들과 온 우주에 관하여 진리를 유란시아에서 묘사하려고 배치된 초우주 성격자 집단의 우두머리이다.]

    유란시아서

    제 1 편

    우주의 아버지

    ¹:⁰.¹ (21.1) 우주의 아버지는 온 우주의 하나님이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먼저 하나님을 창조자로, 다음에 통제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무한한 지원자로 생각하여라. 하나님, 주는 홀로 계시며, 주 외에 아무도 없나이다. 주는 하늘을 짓고, 가장 높은 하늘과 거기에 있는 모든 무리를 지으셨나이다. 주는 저희를 보존하고 통제하나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주들을 만드셨나이다. 창조자는 옷을 입듯 빛으로 스스로를 덮고, 하늘을 장막처럼 펼치나이다. 어느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을 때, 우주의 아버지에 관한 진리의 빛이 인류에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오로지 우주의 아버지―여러 신 대신에, 유일한 하나님―개념이 필사 인간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신성한 창조자요 무한한 통제자인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¹:⁰.² (21.2) 허다한 행성 체계들이 모두 궁극에, 많은 다른 종류의 지적(知的) 인간, 하나님을 알고 신의 사랑을 받으며 그에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살도록 지어졌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의 다채로운 생물이 사는 곳이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들고 땅을 빚으셨도다. 우주를 세우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았고, 사람이 살라고 세상을 지으셨도다.

    ¹:⁰.³ (21.3) 깨우친 모든 세계가 우주의 아버지, 모든 우주의 영원한 창조자, 무한한 지원자를 헤아리고 예배한다. 수많은 우주에, 의지(意志)를 가진 인간은 파라다이스로 기나긴 나그네 길을 떠났으니,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영원히 모험하는 황홀한 투쟁이다. 시간 세계 자녀들의 초월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을 찾아내고, 신의 성품을 이해하고, 우주의 아버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인간은 최고의 포부를 오직 하나, 온 몸을 불태우는 열망을 꼭 하나 가졌으니, 즉 하나님의 성격이 파라다이스처럼, 그리고 최상으로 올바른 그의 우주 구체에서 완전한 것 같이, 그들이 사는 구체에서 그들의 처지에서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는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최고의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사랑으로, 자비롭게 파라다이스의 사자(使者)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리고 우주를 통해서 바깥으로, 아니 유란시아 인류처럼 비천한 동물 기원을 가진 인간에게도 이 신의 가르침을 전해 왔다.

    ¹:⁰.⁴ (22.1) 신의 완전함을 달성하려고 애쓰라고 하는, 이 훌륭한 보편적 명령은 완전한 하나님이 지으신, 투쟁하는 모든 인간의 첫째가는 의무이며, 가장 높은 포부가 되어야 한다. 신의 완전함에 이르는 이 가능성은, 사람의 모든 영원한 영적 진보의 운명, 마지막이자 확실한 운명이다.

    ¹:⁰.⁵ (22.2) 유란시아의 필사자는 무한한 의미에서, 도저히 완전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이 행성에서 한 것처럼 시작하여, 무한한 하나님이 필사(必死) 인간을 위하여 예비한 숭고하고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인간에게 전적으로 가능하다. 바로 하나님이 무한ㆍ영원한 구체에서 충만하신 것 같이, 필사자는 이 운명을 달성할 때, 자아의 실현과 지적(知的) 달성에 관계되는 모든 면에서, 신답게 완전한 자기 영역에서 똑같이 충만하게 된다. 그러한 완전은 물질적 의미로 보편적이거나, 한없는 지적 깨우침이거나 최종의 영적 체험은 아닐지 모르지만, 의지가 신답고, 인격자의 동기가 완전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모든 유한한 면에서 최종이요 완벽하다.

    ¹:⁰.⁶ (22.3) 이것이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신이 내린 명령의 참 뜻이다. 이 말씀은 갈수록 높아지는 수준의 영적 가치와 참된 우주 의미를 달성하기 위한 그 길고도 황홀한 투쟁에서 필사 인간에게 전진하라고 늘 재촉하고, 안으로 손짓하여 부른다. 우주들을 만든 하나님을 이렇게 숭고하게 찾는 것은, 모든 시공의 거주민이 겪는 최상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¹:¹.¹ (22.4) 우주에 두루, 아버지 하나님은 온갖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 하나님을 첫째 근원이요 우주 중심이라고 지칭하는 이름을 가장 많이 마주친다. 처음 아버지는 다른 우주에서, 또 같은 우주의 다른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창조자에게 붙이는 이름은, 그 인간의 창조자 개념에 많이 달려 있다. 첫째 근원 우주 중심은 스스로를 이름으로 나타낸 적이 없고, 오직 성품으로 나타냈다. 우리가 이 창조자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궁극에 우리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로 우리가 고르는 이름이요, 첫째 근원 중심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인식함으로 생겨난다.

    ¹:¹.² (22.5)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에서 의지를 가진 총명한 인간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멋대로의 인식이나 형식적 예배나 노예 같은 수고를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여러 시공 세계에서 진화하는 주민은 저절로―마음 속에서 우러나서―아버지를 알아보고 사랑하고 자원해서 예배해야 한다. 창조자는 물질 인간이 영적 자유 의지를 바치라고 강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인간의 의지를 사랑에 넘쳐 바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실, 인간이 그렇게 의지를 거룩히 바치는 것은 사람이 파라다이스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선물, 참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하나님 안에서, 사람은 살고 움직이고, 제 존재를 가진다.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는 이 선택 외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우주에서 의지를 가진 총명한 인간이 내리는 그러한 결정은 사랑에 지배된 창조자인 아버지 성품에 아주 흐뭇한, 그 참된 예배의 실체가 된다.

    ¹:¹.³ (22.6) 일단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고 나서, 너희가 위엄 있는 창조자를 정말로 발견하고 신다운 통제자의 깃드는 계심을 비로소 깨달은 뒤에, 그때 너희의 깨우침에 따라서, 그리고 신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 절차와 방법에 따라서, 너희의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 개념을 알맞게 표현하는 이름, 우주의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세계와 다양한 우주에서, 창조자는 수많은 명칭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명칭은 관계를 나타내는 정신으로 보면 다 같은 뜻을 가졌지만, 각 이름의 단어와 상징은 어떤 주어진 영역에서 인간의 가슴 속에 그의 보좌가 어느 정도, 얼마나 깊이 자리잡았는가를 나타낸다.

    ¹:¹.⁴ (23.1) 온 우주의 중심 가까운 데서, 우주의 아버지는 대체로, 첫째 근원이라는 뜻으로 여겨도 좋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간 우주에서 바깥으로 더 멀리 나가면, 우주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데 쓰이는 호칭은 우주 중심을 뜻하는 일이 더 흔하다. 너희 지역 우주의 본부 세계와 같이, 별들이 있는 창조에서 더욱 멀리 나가면, 우주의 아버지는 첫째 창조 근원이자 신성한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근처의 한 별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우주들의 아버지라 부른다. 또 다른 별자리에서는 무한한 지지자로, 동쪽에서는 신성한 통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빛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전능자라고도 부른다.

    ¹:¹.⁵ (23.2) 파라다이스 아들이 자신을 수여(授與)한 생애를 산 적이 있는 세계에서, 하나님은 대체로 개인적 관계, 부드러운 사랑, 아버지다운 헌신을 가리키는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너희 별자리 본부에서 하나님은 우주의 아버지로서 언급되고, 사람 사는 행성들로 구성된 너희 지역 체계의 다른 행성들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가장 높은 아버지, 파라다이스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파라다이스 아들이 수여된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인간과 창조자의 친교를 나타내는, 마음에 닿는 관계의 감상적 매력에 결국은 손들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른다.

    ¹:¹.⁶ (23.3) 남녀로 구분되는 인간이 사는 행성, 그 총명한 존재들의 가슴 속에서 부모 감정의 욕구가 본래부터 있는 세계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은 영원한 하나님을 잘 나타내는 적절한 이름이 된다. 너희 행성 유란시아에서, 그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널리 인식된다. 그에게 붙인 이름 자체는 중요성이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그를 알고 그처럼 되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옛 선지자들은 참으로 그를 영원한 하나님이라 불렀고, 영원에 거하는 분이라 언급하였다.

    2. 하나님의 실체

    ¹:².¹ (23.4) 하나님은 영 세계에서 근본적 실체이다. 하나님은 지성 분야에서 진리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물질 영역에 두루, 만물을 능가한다. 지음받은 모든 지적 존재에게 하나님은 성격자요, 온 우주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하나님은 사람 같지도, 기계 같지도 않다. 처음 아버지는 우주의 영, 영원한 진리, 무한한 실체, 아버지 성격자이다.

    ¹:².² (23.5) 영원한 하나님은 이상이 된 실체, 또는 인격화된 우주보다 무한히 크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품는 최고의 소망, 필사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나의 개념, 권능을 가진 정의의 잠재성도 아니다. 우주의 하나님은 자연과 비슷한 말도 아니요, 자연 법칙이 성격화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초월 실체요, 단지 사람의 전통적 최고의 가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적 의미를 심리적으로 집중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만든 가장 고귀한 작품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이 중에 어떤 개념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크다. 땅에서 영적 평안을 누리는 모든 사람에게, 죽고 나서 인격이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제하는 이요 사랑의 아버지이다.

    ¹:².³ (24.1) 신성한 존재의 깃드심이 하나님이 존재하는 사실을 인간의 체험 속에서 입증한다. 이 존재는 사람의 필사 지성 속에 살면서, 거기서 영원히 살아남는 불사(不死)의 혼이 생성되는 것을 도우라고, 파라다이스로부터 파송된 영 훈계자이다. 세 가지 경험적 현상이 이 신다운 조절자가 인간 지성 속에 계심을 드러낸다.

    ¹:².⁴ (24.2) 1.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¹:².⁵ (24.3) 2. 하나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¹:².⁶ (24.4) 3.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인격자의 갈망―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바라는 것.

    ¹:².⁷ (24.5)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이치를 따지는 순수 논리로 결코 증명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이 체험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실체의 참된 개념은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철학적으로 있음직하고, 종교에 기본이며, 인격이 살아남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지는 데 필수이다.

    ¹:².⁸ (24.6)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가 계시는 사실을 체험한 적이 있다.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필사자는 자기 개인의 체험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밀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증거를 지닌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 지성의 하나님 의식(意識), 그리고 하나님으로서 계시는 생각 조절자 사이의 접촉 외에, 도무지 보여줄 가능성이 없다. 생각 조절자는 필사자의 지능에 깃들고, 우주의 아버지가 거저 주는 선물로서 사람에게 수여된다.

    ¹:².⁹ (24.7) 이론적으로 너희는 하나님을 창조자라고 생각해도 좋으며, 하나님은 파라다이스와 완전한 중앙 우주를 친히 지으신 분이다. 그러나 시공(時空)의 우주들은 모두 파라다이스의 창조 아들 집단이 짓고 조직한 것이다. 우주의 아버지는 네바돈 지역 우주를 친히 지으신 분이 아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이 지었다. 아버지는 진화 우주를 손수 짓지 않아도, 진화 우주의 여러 관계와 그 우주의 물질ㆍ지성ㆍ영 에너지의 어떤 표현을 통제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파라다이스 우주를 손수 지으신 분이요, 영원한 아들과 연합하여, 다른 우주들을 몸소 지은 창조자들의 창조자이다.

    ¹:².¹⁰ (24.8) 물질적인 온 우주에서 물리적 통제자로서, 첫째 근원 중심은 영원한 파라다이스 섬의 여러 원본 속에서 작용한다. 이 절대 인력의 중심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은 중앙 우주에서, 그리고 온 우주에 두루, 물리적 수준에서 똑같이 전반적으로 우주를 통제한다. 지성으로서, 하나님은 무한한 영의 신 속에서 일한다. 영으로서 하나님은 영원한 아들의 몸에, 또 영원한 아들의 신성한 자식들의 몸에 나타난다. 이 첫째 근원 중심과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동등한 성격자 및 절대자들의 상호 관계는 모든 창조에 두루, 그리고 창조의 모든 수준에 우주의 아버지가 직접 친히 활동하는 것을 조금도 막지 않는다. 그의 분신이 된 영의 계심을 통해서, 창조자 아버지는 인간 자녀들과, 그리고 그가 지은 우주들과. 직접 연락을 유지한다.

    3. 하나님은 보편적 영

    ¹:³.¹ (25.1) 하나님은 영이라. 하나님은 보편적 영적 계심이다. 우주의 아버지는 무한한 영적 실체이다. 그는 지고(至高)하고 영원ㆍ불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그의 모습을 따라 지어졌다―영원히 계신 그의 중앙 거처에서 파송된 신비의 훈계자가 너희에게 깃든다―는 말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의 형태나 모습이 너희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피와 살이 있지 않더라도, 영 존재들은 실재한다.

    ¹:³.² (25.2) 옛날의 예언자가 말했다: 보라, 그가 내 옆을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며, 또한 그가 떠나도 나는 그를 깨닫지 못하노라.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고 그의 장엄한 행위의 물질적 증거를 상당히 의식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신성(神性)이 눈에 띄게 명시되는 것을 보기 드물고, 사람 속에 깃드는, 그가 맡긴 영의 계심조차 구경할 수 없다.

    ¹:³.³ (25.3) 물질적 장애나 제한된 영적 자질을 가진 비천한 인간을 떠나 숨어 지내기 때문에 우주의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말하자면, 너희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어느 필사자도 나를 보고 나서 살 수 없음이라. 어떤 물질 인간도, 영 하나님을 뵙고 나서, 필사 존재를 버틸 수 없다. 신다운 성격자의 계심이 얼마나 영화롭고 영적으로 눈부신지, 낮은 무리의 영 존재나 어떤 계급의 물질 성격자도 가까이 가기가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몸소 계신 데서 나오는 영적 빛은 어떤 필사 인간도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어떤 물질 인간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빛이라. 그러나 영적으로 변화된 지성의 믿는 시력으로 하나님을 헤아리기 위해서, 육체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는 없다.

    ¹:³.⁴ (25.4) 우주의 아버지의 영 성품은, 공존하는 자아, 곧 파라다이스의 영원한 아들과, 완전히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과 공동으로 동위 성격자인 무한한 영과 더불어,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을 충분히, 아낌없이 공유한다. 하나님의 영은, 그 자체로서 저절로 절대적이다. 아들 안에 계신 그 영은 제한이 없고, 영 안에서 보편적이요, 이들 모두 안에서, 그리고 모두로 인하여, 무한하다.

    ¹:³.⁵ (25.5) 하나님은 보편적 영이요, 하나님은 보편적 성격자이다. 유한한 우주에서 최고의 성격 실체는 영이며, 성격자의 우주에서 궁극의 실체는 초한(超限) 영이다. 오로지 무한 수준이 절대적이고, 오로지 무한 수준에서 최종으로 물질ㆍ지성ㆍ영이 하나가 된다.

    ¹:³.⁶ (25.6) 여러 우주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잠재적으로 물질ㆍ지성ㆍ영을 두루 통제하는 분이다. 오로지 그의 멀리 미치는 성격 회로의 수단으로, 하나님은 의지를 가진 인간이 사는 광대한 우주에서 성격자들을 직접 상대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바깥에서) 오로지 그의 분신이 된 개체의 계심 속에서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들은 바깥 우주에서 하나님의 뜻이다. 시간 세계에서 필사자의 지성 안에 깃들고, 거기서 살아남는 인간의 불멸하는 혼의 진화를 보살피는 이 파라다이스 영은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과 신성(神性)으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 인간의 지성은 지역 우주에서 비롯하고, 영적으로 달성하는 체험적 변화를 겪음으로 신다운 완전함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선택함으로 반드시 생기는 결과이다.

    ¹:³.⁷ (26.1) 사람의 정신적 체험에서, 지성(知性)은 물질에 붙어 있다. 이렇게 물질과 연결된 지성은 사람이 죽은 뒤에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는 기법은 인간 의지의 어떤 조정과 필사자의 지성 속에서 생기는 어떤 변화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지능이 차츰차츰 영의 가르침을 받고, 궁극에 영의 인도를 받는다. 물질과 연결된 상태로부터 영과 결합하기까지 사람의 지성이 이렇게 진화하는 것은, 필사 지성의 잠재적 영 단계를 불멸하는 혼의 상물질(上物質) 실체로 변화시킨다. 물질에 굴종하는 필사자의 지성은 갈수록 더 물질적이 되며, 그 결과로 궁극에 인격이 소멸될 운명을 가진다. 영에게 굴복한 지성은 갈수록 더 영적으로 변화되고, 살아남아서 안내하는 신다운 영과 궁극에 하나가 되고 이 방법으로 인격 존재가 살아남고 영원을 얻을 운명을 가진다.

    ¹:³.⁸ (26.2) 나는 영원자로부터 나왔고,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 거듭하여 돌아갔다. 나는 첫째 근원 중심, 영원한 우주의 아버지가 사실이고 성격인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영원ㆍ무한한 한편, 하나님은 또한 선하고 신성하고 인자함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라,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선언이 진실임을 나는 알고 있고, 이 두 속성은 우주에게, 영원한 아들 안에서 아주 완벽하게 드러난다.

    4. 하나님의 신비

    ¹:⁴.¹ (26.3)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해서 하나님을 영원히 신비로 만든다. 깊이를 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것은 필사자의 지성 속에 신이 깃드는 현상이다. 우주의 아버지가 시간 세계의 인간과 함께 머무르는 그 방식은 모든 우주 신비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이다. 사람의 지성 속에 신이 계시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이다.

    ¹:⁴.² (26.4) 필사자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군주인 창조 아들이 사람 사는 세계의 인간에게 가까이 와서,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데도, 의식(意識)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며, 마음 문을 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가기를 기뻐하고, 창조 아들과 필사 인간 사이에 이 깊은 개인적 교통이 있지만, 그런데도, 필사 인간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무엇인가를 받는데, 이것은 인간 안에 실제로 거하며, 사람의 몸은 그 성전이다.

    ¹:⁴.³ (26.5) 너는 여기 아래에서 인생이 끝나고, 땅에서 임시 모습을 입고 너의 과정을 다 마치고, 육체를 입은 연습 여행이 끝나고, 필사자의 천막을 구성하는 티끌이 온 곳으로 되돌아갈 때, 계시된 바와 같이, 그때 깃드는 영은 그 영을 주신 하나님한테로 돌아갈지니라. 이 행성에서 태어난 도덕적 인간 각자 안에, 하나님의 분신이, 신의 한 부분이자 소포(小包)가, 머무른다. 소유권으로 따지면, 아직 네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분신은 네가 필사 존재를 거치고 살아남으면 너와 하나가 되라고 일부러 의도한 것이다.

    ¹:⁴.⁴ (26.6)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이 신비에 부딪친다. 그의 무한한 선(善),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숭고한 성품이 담긴, 끝없는 진실의 모습 전체가 더욱 펼쳐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어쩔 줄 모른다.

    ¹:⁴.⁵ (26.7) 신의 신비는 유한자와 무한자, 일시적인 자와 영원한 자, 시공의 인간과 우주 창조자, 물질인 자와 영적인 자, 사람의 불완전과 파라다이스 신의 완전 사이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차이에 있다. 어떤 인간에게도, 신이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성질을 영적으로 깨닫는 인간의 능력이 한껏 미치는 데까지, 모두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어김없이 스스로를 나타낸다.

    ¹:⁴.⁶ (27.1) 온 우주의 어느 구체, 어느 세계에 사는 어떤 영 존재나 어떤 필사 인간에게도, 우주의 아버지는 그러한 영 존재와 그러한 필사자가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는, 인자하고 신성한 자아의 전부를 드러낸다. 영적이든 물질이든, 하나님은 성격자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의 어떤 아이가 어떤 주어진 순간에 신의 계심을 누리더라도, 그 계심은 오직 그러한 인간이 물질을 초월하는 세계가 영적 사실임을 받아들이고 헤아리는 능력에 따라서만 한정된다.

    ¹:⁴.⁷ (27.2) 인간의 영적 체험에 있는 실체로서, 하나님은 신비가 아니다. 영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 계급의 물질적 지성에게 쉽게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 신비가 생긴다. 신비가 아주 미묘하고 깊어서, 오직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믿음의 힘으로, 유한자가 무한자를 인식하는 기적(奇蹟), 시공의 물질 세계에서 진화하는 필사자가 영원한 하나님을 헤아리는 철학적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5.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¹:⁵.¹ (27.3) 하나님이 위대한 것, 무한한 것만 보고 그의 성격을 희미하게 보거나 간과하지 말라. 귀를 만들려고 계획한 분이, 못 들으실까? 눈을 만든 분이, 못 보실까? 우주의 아버지는 가장 높은 신다운 성격자이다. 그는 모든 창조 전역에 걸쳐, 성격의 기원이요 운명이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성격을 가졌으며, 무한한 성격자이다. 그의 몸이 무한하여 유한한 물질 존재들이 언제까지나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데도, 아버지는 참으로 성격자이다.

    ¹:⁵.² (27.4)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성격자보다 훨씬 크다. 어떤 가능한 초월 성격자 개념보다도 훨씬 더 크다. 그러나 물질 인간의 지성과 함께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신다운 성격자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무지 헛일이니, 이는 존재의 현실에 대한 사람의 가능한 최고 개념이, 성격 개념 및 이상(理想)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질 인간의 가능한 최고의 우주 창조자 개념은, 신다운 성격자개념, 이 높은 개념의 영적 이상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성격자 개념보다 훨씬 높은 것이 틀림없음을 너희가 알지도 모르지만,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ㆍ무한하며,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성격자보다 못한 어떤 것도 도저히 될 수 없다는 것을 너희는 똑같이 잘 안다.

    ¹:⁵.³ (27.5)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피하여 숨어 계시지 않는다. 수많은 계급의 존재들이 그를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물질 인간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필사자의 완전해지지 않은 지성은 신성한 성격자의 엄청나고 장엄함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은 손바닥으로 바다를 재고, 손뼘으로 우주를 재시나이다. 그는 지구의 둥근 천장{n{n{X[1] 위에 앉으시고, 하늘을 커튼처럼 늘이고 거할 우주로서 하늘을 펼치는 분이로다. 하늘 높이 네 눈을 들라. 누가 이 모두를 지었고, 누가 저희의 세계를 번호로 드러내며, 저희 모두를 이름으로 부르는가 볼지어다. 그래서 지음받은 사물은 하나님의 불가시(不可視)한 것들을 부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참말이다. 오늘날, 너희 처지 그대로, 하나님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창조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여러 아들 및 그 수많은 하위 존재들의 계시와 봉사를 통해서, 너희는 볼 수 없는 조물주를 깨달아야 한다.

    ¹:⁵.⁴ (28.1) 물질인 필사자는 비록 하나님의 몸을 볼 수 없더라도, 그가 성격자인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뻐해야 하며, 우주의 아버지가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그 비천한 거민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의 길을 마련하였고, 그의 자녀들을 매우 기뻐하신다는 진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하고 영원하며, 사랑이 깊고 무한한 창조자 성격을 구성하는 속성, 인간을 초월하는 신다운 속성 중에 하나도, 하나님은 모자라지 않는다.

    ¹:⁵.⁵ (28.2) (초우주 직원을 제외하고) 사람이 사는 세계의 아버지이자 지역 우주의 군주인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은 별도로 하고, 여러 지역 우주에서 하나님은 몸소, 즉 거주함으로 나타나는 적이 없다. 인간의 믿음이 완전하다면, 창조 아들을 보았을 때 그가 우주의 아버지를 보았음을 확실히 알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면서, 아들 외에 다른 이를 보려고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필사 인간은 단지 그가 완전히 영으로 변화되고 실제로 파라다이스에 다다를 때까지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따름이다.

    ¹:⁵.⁶ (28.3)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의 성품은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한 성품이 가진, 보편적으로 절대적 무제한 잠재성을 다 포함하지 않지만,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창조 아들들 안에 신성하게 계신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이다. 미가엘 계급의 이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완전한 성격자요, 밝은 아침별을 비롯하여 진보하는 동물의 진화를 거치는 가장 비천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 우주 성격자의 원본이 되기도 한다.

    ¹:⁵.⁷ (28.4) 하나님이 안 계시고 그의 큰 중심 성격이 없다면, 광대한 온 우주 전역에 걸쳐서 성격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격자이다.

    ¹:⁵.⁸ (28.5) 하나님이 영원한 힘이요, 위엄 있는 계심, 초월적 이상(理想), 영화로운 영인데도, 이 모든 것이요, 모두를 무한히 넘는데도, 그는 참으로 영원히, 창조자인 완전한 성격자이다. 곧 하나님은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자가 그를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이다. 한편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친구인 것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너희도 친구인 것을 남들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참 영이요 영적 실체이다.

    ¹:⁵.⁹ (28.6) 우주의 아버지가 그의 우주에 두루 드러나는 것을 볼 때, 그가 무수한 인간 안에 깃드심을 우리가 헤아릴 때, 그의 군주 아들들의 몸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볼 때, 여기저기, 가까이, 멀리, 그의 신성한 계심을 우리가 계속 느낄 때, 하나님이 첫째 성격자임을 의심하거나 의문을 가지지 말자. 이렇게 널리 온통 분산되었는데도, 하나님은 참 성격자로 남아 있고, 온 우주에 두루 흩어진 수없이 많은 인간 무리와 언제까지나 친히 연락을 유지한다.

    ¹:⁵.¹⁰ (28.7) 우주의 아버지가 성격자라는 관념은 확대된 좀더 참다운 하나님 개념이며, 주로 계시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 내려왔다. 논리, 지혜, 종교적 체험은 모두 하나님이 성격자임을 가리키고 암시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정당화하지 못한다. 안에 깃드는 생각 조절자조차 선(先)인격이다. 어느 종교라도 그 진실성과 성숙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성격에 대한 그 종교의 개념, 그리고 신이 절대로 하나임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높아진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라는 개념을 종교가 처음으로 형성한 뒤에, 성격자인 신 개념은 종교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재는 자가 된다.

    ¹:⁵.¹¹ (29.1) 원시 종교는 인격을 가진 신이 많이 있었고, 이 신들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계시(啓示)는 하나님이 성격자라는 개념이 타당함을 확인한다. 이 개념은 오직 첫째 근원이 있다고 과학적으로 가정해야 가능하며, 우주의 하나라는 철학 관념 속에 임시로 암시되었을 뿐이다. 오로지 성격자로서 접근함으로 누구나 하나님이 하나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근원 중심이 성격자임을 부인하는 것은, 사람에게 유물론(唯物論)과 범신론, 이 두 가지 철학적 궁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¹:⁵.¹² (29.2) 신을 깊이 생각할 때, 성격자 개념은 형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물질인 몸은, 사람이나 하나님의 성격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형태가 있다는 잘못은 인간 철학의 두 극단에서 나타난다. 유물론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몸을 잃어버리니까 사람이 성격자로서 존재하기를 그친다. 범신론에서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니까, 따라서 성격자가 아니다. 초인간 종류의 진보하는 성격자는 지성과 영이 연합된 가운데 활동한다.

    ¹:⁵.¹³ (29.3) 성격은 단순히 하나님의 한 속성이 아니다. 성격은 조정된 무한한 성품과 통일된 신의 뜻 전부를 대표하며, 이의 완전한 표현은 영원 속에, 그리고 보편적으로 드러난다. 최상의 의미에서, 성격은 하나님이 온 우주에게 주는 계시이다.

    ¹:⁵.¹⁴ (29.4) 하나님이 영원ㆍ무한하고 보편ㆍ절대적이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자라거나 지혜가 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경험을 얻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영원한 성격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은 자아 실현을 계속 확대하며, 이것은 어떤 면에서, 진화 세계에서 유한한 인간이 새로운 경험을 겪는 것과 견줄 만하고 그와 비슷하다.

    ¹:⁵.¹⁵ (29.5) 넓은 우주에 신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 영적으로 완전한 세계들로 올라가기를 추구하는, 모든 불완전한 혼이 겪는 인격 투쟁에 우주의 아버지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은 그로 하여금 조건 없는 최종의 완전에 끔찍한 제약을 받게 만들 것이다. 온 우주에 두루, 어떤 영 존재와 어떤 필사 인간이 겪는 이 진보하는 체험도, 끊임없는 자아 실현 수준, 결코 그치지 않는 신의 영역에서, 아버지의 늘 확대되는 신 의식(意識)의 일부가 된다.

    ¹:⁵.¹⁶ (29.6)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너희가 어떤 고통을 받아도 그가 고통을 받으며, 너희가 어떤 승리를 얻어도, 그도 너희 안에서 너희와 함께 승리를 거두느니라. 하나님의 선(先)인격인 신성한 영은 너의 실제 일부이다. 파라다이스 섬은 온 우주에서 생기는 모든 물리적 변화에 반응한다. 영원한 아들은 모든 창조의 영적 충동을 담고, 합동 행위자는 팽창하는 우주의 모든 지성 표현을 포함한다. 우주의 아버지는 진화하는 시공 우주 전체에서 모든 개체ㆍ존재ㆍ성격자의 확대되는 지성과 하늘 가는 영들의 진보하는 투쟁에서, 모든 개인적 경험을 신으로서 충만히 의식함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그 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우리의 존재를 가지기 때문에 이 모두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6. 우주의 성격자

    ¹:⁶.¹ (29.7) 인간의 성격은, 신성한 창조 성격자가 시간과 공간에 던지는 모습의 그림자이다. 어떠한 사실이라도 그 그림자를 검사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참 알맹이에 따라서 그림자를 풀이해야 한다.

    ¹:⁶.² (30.1) 하나님은 과학에 대하여 원인이요, 철학에 대하여 개념이요, 종교에 대하여 성격자요, 아니 사랑의 하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과학자에게 시초의 물력이요, 철학자에게 통일의 가정(假定)이요, 종교가에게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이다.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에 대한 사람의 부적당한 개념은 오직 우주에서 사람이 영적으로 전진해야 개선될 수 있고, 오로지 시공의 순례자가 파라다이스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성한 품에 마침내 이를 때에야 참으로 적절하게 될 것이다.

    ¹:⁶.³ (30.2) 하나님과 사람이 파악하는 정반대의 성격자 관점들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 인간은 유한한 자리에서 무한한 것을 바라보면서 성격자를 보고 이해하며, 하나님은 무한한 자리에서 유한을 바라본다. 사람은 가장 낮은 종류의 성격을 소유하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성격, 아니 최상ㆍ궁극ㆍ절대 성격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신다운 성격에 대한 상급 개념은, 인격에 대한 개선된 관념이, 특히 창조 아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 자신을 수여한 생애에서 인간답고 신다운 성격이 더욱 잘 드러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

    ¹:⁶.⁴ (30.3) 필사자의 지성에 깃드는 신의 선(先)인격 영은, 바로 그 계심 속에 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타당한 증명을 지니고 있지만, 신 성격자 개념은 오직 개인의 진정한 종교적 체험으로 얻는 영적 통찰력으로만 겨우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든 신이든, 어떤 성격자라도, 그의 대외 반응이나 물질적 계심과 아주 별도로, 다른 자가 그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¹:⁶.⁵ (30.4) 어느 정도 비슷한 도덕과 영적 조화는 두 사람의 친구 관계에 필수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인격자는 사랑이 없는 자에게 도저히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다. 신다운 성격자를 알려고 접근하는 것조차 사람의 모든 인격 재산을 그 노력에 온통 거룩하게 바쳐야 한다. 마음 내키지 않는 부분적 헌신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¹:⁶.⁶ (30.5) 사람이 철저히 자신을 이해하고 동료들의 인격 가치를 헤아리게 될수록 사람은 더욱 최초의 성격자를 몹시 알고 싶어 하며, 하나님을 이해하는 그러한 인간은 갈수록 더 진지하게 최초의 성격자처럼 되려고 애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논의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가지는 체험, 하나님 안에 있는 체험은, 인간의 모든 논쟁과 단순한 지적 논리를 뛰어넘고, 지적 논리로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불신자에게 확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를 교화시키고 서로 만족을 얻으려고 자기의 영적 체험을 묘사한다.

    ¹:⁶.⁷ (30.6)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곧 지성이 우주를 만들고 성격자가 우주를 관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성은 오로지, 인간이든 초인간이든, 다른 지성의 지성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이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우주에 어딘가, 신의 지성과 실제 성격자가 감추어져 있다.

    ¹:⁶.⁸ (30.7) 하나님은 영이요, 영 성격자이다. 사람도 영이다―잠재 영 성격자이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이 영 성격자의 잠재성을 충분히 실현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의 일생은, 사람에게 하나님 성격을 가장 생생하게 이상적으로 계시한 것이 된다.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은 오로지 실제로 종교적 체험을 겪어야 이해할 수 있어도, 예수가 땅에서 사는 동안 참으로 인간다운 체험을 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성격을 그렇게 실현하고 계시하는 완전한 시범을 보인 것에 우리는 감화를 받는다.

    7. 성격 개념의 영적 가치

    ¹:⁷.¹ (31.1) 예수가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했을 때,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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