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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너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너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너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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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너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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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을 스치는 것은 3생의 인연이고, 부부의 인연은 80생 인연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진리의 길을 찾아 참된 깨달음을 이루는 지혜의 대화를 나누는 인연은 500생 인연이라 하여 참으로 지대한 인연이 되겠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약 40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최초 출현한 단세포가 진화와 유전을 거쳐 약 6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지구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져간 헤아리기 조차 어려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늘 지면으로나마 우리들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인연은 진정 희유하고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극히 드물고 어려운 길을 닦아온 올바른 인연은 비록 한때나마 부처님의 참 뜻을 이해하고 깨닫는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올바른 인연으로 끝내는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룰 수 있으므로 결코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아니 됩니다.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사천대장경을 설하셨습니다. 장대한 부처님의 팔만사천대장경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마하반야 바라밀다」이고, 팔만사천대장경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 「심」이 됩니다.
「마하」는 하나의 미세먼지를 포함한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크다 작다 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반야」는 공하다 하여 지혜를 말합니다. 사물과 사상이 되는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공하다 하신 것은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없거나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사물과 사물을 나타내고 가리키는 것으로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생겼다 멸했다, 더럽고 깨끗하다, 싫다 좋다 하는 등등으로 표현하는 사상이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는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사상은 곧 이 마음이므로 우주세계는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참되게 공하다 하여 진공이라고 합니다.
「바라밀다」는 이 마음이 곧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있다 없다, 크다 작다, 더럽다 깨끗하다, 선이다 악이다, 취하고 버리는 등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세계의 일체 사물과 사상은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것을 묘하게 있다고 하여 묘유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곧 이 마음이므로 있다 없다, 예쁘다 밉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등의 모든 분별의 생각이 완전히 딱 멈추고 끊어진 것을 진공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분별의 번뇌망상이 완전히 멈추고 끊어질 때 곧 이 마음을 깨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이고 망상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해탈이며 참된 행복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묘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마음을 깨달아 알지 못해서 물질의 우주세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싫어하고 좋아하는 수많은 분별의 망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에 들지 못하고 참된 행복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은 우주세계의 물질을 무엇이라 하는지 살펴봅니다. 과학의 방식대로 나뭇잎 하나를 분해하여 들어가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그리고 최소입자에 해당하는 힉스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힉스의 본질을 더 이상은 밝힐 수 없음을 알고 힉스를 신의 영역으로 넘겨놓고 「힉스는 신의 입자다.」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물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들이 지금 물질이 있다 없다 하고 싫다 좋다 하는 것은 옳고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지구에 있는 우리들의 몸뚱이와 산과 강, 바다 그리고 우리들이 창조한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모든 조형물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물질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질은 무엇인가? 지금의 과학이 알지 못하는 것을 불교가 알려줍니다. 부처님은 물질을 비롯한 일체는 이 마음이 짓고 만들고 세운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이 곧 물질이 아니고 물질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는 이름이 곧 이 마음이고, 물질을 내적으로 구성하는 의미가 곧 이 마음이며, 물질의 모양새와 물질을 나타내는 언어와 문자 곧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예쁘다 밉다고 표현하고 나타내는 뜻이 이 마음입니다. 이름과 의미와 뜻이 맺는 모든 관계에 따라 탐하고 화내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느낌이 곧 이 마음입니다. 물질의 모든 구성원들의 그다운 역할과 모든 작용이 되는 비물질이 바로 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과 우리들은 물질의 우주세계가 바로 이 마음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물질의 우주세계가 이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이 마음을 알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번뇌 망상인 「나」라는 생각에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생각은 오직 나는 똑똑하고 잘났다며 자랑을 하며,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모양으로 꾸미고 조작하여 보고, 내가 좋아하는 소리, 향기, 맛과 말, 감촉, 생각으로 조작하고 꾸미며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번뇌 망상입니다. 이 번뇌 망상에 가로막혀서 물질의 우주세계가 이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물질이 바로 이 마음이고 우주세계가 바로 이 마음임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조주 선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이 없는 본래의 우리들 마음인 참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 만약 내가 깨달음의 한도에 따라 사람들을 각기 대한다면 팔만사천대장경으로 벌어지느니라.”
조주 선사가 본래 번뇌 망상이 없는 참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한다고 한 것은, 티끌 수와 같은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이 마음의 부처이기 때문에 모두 이 마음의 부처인 참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마음을 크게 깨치신 후에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라는 설명의 여러 말씀이 팔만사천대장경입니다. 따라서 일체중생이 바로 이 마음의 부처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본래 부처를 설명하는 방법에 해당하는 대장경을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 이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참마음 모를 때 싫어하는 중생이 있고 좋아하는 부처가 있을 뿐입니다. 본래 부처인 참마음의 자리에 중생이 어느 곳에 있고, 부처가 어디에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깨닫기 전에 빠른 수행과 느린 수행이 있고 또한 기도, 염불, 화두, 명상이라는 수도수행이 있는 것이지 깨달은 후에 무슨 빠른 깨달음과 느린 깨달음이 있고 수도수행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번뇌가 없는 참마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 티끌 수와 같은 고통이 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또한 좋아하는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싫어하고 좋아함이 없는 참마음의 자리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무량, 무수, 무변 량이 없고 수가 없으며 끝이 없는 행복과 공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행복과 공덕을 우리들이 끝이 없는 오랜 세월동안 수도수행을 닦아서 이루어야 한다면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모두 물러나는 마음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량하고 무변한 행복과 공덕을 우리들이 본래 갖추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나」라는 생각 오직 나는 똑똑하고 잘났다며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모양으로 꾸미고 조작하여 보고 내가 좋아하는 소리, 향기, 맛과 말, 감촉, 생각으로 조작하고 꾸미고 있습니다. 또한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무량한 공덕과 장엄이 본래부터 구비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본래 부처이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본래 이 마음의 부처가 아니라면 끝이 없는 수의 백 천배를 수행한다하여도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올바른

Language한국어
Publisher마음출판
Release dateAug 25, 2022
ISBN9788967843403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너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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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 진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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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진원 스님 지음

    제1권

    대한민국은 동방의 등불

    ⓒ마음 출판 2022

    발행 2022년 8월 23일

    지은이 진원 스님

    발행인 강제훈

    발행처 마음 출판

    주소 경북 안동시 와룡면 매구네길 84

    전화 054 ) 856 – 7252 010-5366-4905

    팩스 050-4188-4905

    전자우편 samun1202rkd@naver.com

    ISBN 978-89-6784-340-3

    이 책의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차 례

    서 언

    1. 우주세계가 곧 이 마음이고, 이 미음이 곧 우주세계

    2. 일체존재는 오직 이 마음이 짓고 만들고 세운 것 

    3. 육신의 모든 고통이 곧 이 마음이고 부처입니다. 

    4. 기계가 곧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곧 기계입니다. 

    5. 부처님의 깨달음 

    6. 우리들이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은 진실을 모르는 어리석음

    7. 망상이 없는 내가 참된 나입니다. 

    8. 삼선도와 삼악도 가는 길 

    9.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참된 얻음입니다. 

    10. 싫어해서도 아니 되고, 좋아해서도 아니 됩니다. 

    11. 중도는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 아닙니다. 

    12. 있다 없다 하는 우리들의 생각은 잘못된 생각 

    13.우리들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망상의 가죽주머니

    14. 번뇌망상이 곧 우리들의 몸뚱이 

    15. 저승길을 가는 이건희 회장 

    16.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 곧 이 마음 

    17. 우리들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 바로 우리들

    18. 고통 받는 우리들이 바로 예수와 하나님이고 부처 

    19. 나무하고, 물 긷고, 걸어가는 것이 신통이다 

    20. 우리들이 지금 받고 있는 복은 우리들이 지은 복 

    21.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를 벗어나기 

    22. 우리들의 삶은 오직 번뇌망상 

    23.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뜻을 알아보기 

    24. 입자가 곧 파동이고, 파동이 곧 입자 

    25. 물질의 근본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우리들의 고통 

    26. 물질이란 우리들의 번뇌망상이 빅뱅한 것 

    27. 혹한의 추위와 혹서의 무더위에서 벗어나기 

    28.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은 한마음으로 융합합니다 

    29. 번뇌가 없는 조국 장관은 곧 조국이 아닙니다. 

    30. 우주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우리들 어리석음의 업보

    31. 선에도 악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 참된 마음 

    32. 너의 몸뚱이와 나의 몸뚱이는 한 몸, 한 마음 

    33. 이 마음이 중요한 점 

    34. 행복은 고통위에 핀 꽃입니다. 

    35. 이 육신의 모든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방법 

    36. 물질이 곧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곧 물질 

    37. 우리들은 지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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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언 (序 言)

    우리들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을 스치는 것은 3생의 인연이고, 부부의 인연은 80생 인연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진리의 길을 찾아 참된 깨달음을 이루는 지혜의 대화를 나누는 인연은 500생 인연이라 하여 참으로 지대한 인연이 되겠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약 40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최초 출현한 단세포가 진화와 유전을 거쳐 약 6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지구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져간 헤아리기 조차 어려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늘 지면으로나마 우리들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인연은 진정 희유하고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극히 드물고 어려운 길을 닦아온 올바른 인연은 비록 한때나마 부처님의 참 뜻을 이해하고 깨닫는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들의 올바른 인연으로 끝내는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룰 수 있으므로 결코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아니 됩니다.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사천대장경을 설하셨습니다. 장대한 부처님의 팔만사천대장경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마하반야 바라밀다」이고, 팔만사천대장경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 「심」이 됩니다.

    「마하」는 하나의 미세먼지를 포함한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크다 작다 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반야」는 공하다 하여 지혜를 말하는데 사물과 사상이 되는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공하다 하신 것은,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없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과 사물을 나타내고 가리키는 것으로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생겼다 멸했다, 더럽고 깨끗하다, 싫다 좋다 하는 등등으로 표현하는 사상이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는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사상은 곧 이 마음이므로 우주세계는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참되게 공하다 하여 진공(眞空)이라고 합니다. 

    「바라밀다」는 이 마음이 곧 우주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있다 없다, 크다 작다, 더럽다 깨끗하다, 선이다 악이다, 취하고 버리는 등의 사상이므로 우주세계의 일체 사물과 사상은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것을 묘하게 있다고 하여 묘유(妙有)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곧 이 마음이므로 있다 없다, 예쁘다 밉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등의 모든 분별의 생각이 완전히 딱 멈추고 끊어지는 것을 진공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분별의 번뇌 망상이 완전히 멈추고 끊어질 때, 곧 이 마음을 깨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이고, 망상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해탈이며, 참된 행복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묘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마음을 깨달아 알지 못해서 물질의 우주세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싫어하고 좋아하는 수많은 분별의 망상을 일으키는 관계로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에 들지 못하고 참된 행복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은 우주세계의 물질을 무엇이라 하는지 살펴봅니다. 과학의 방식대로 나뭇잎 하나를 분해하여 들어가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그리고 최소입자에 해당하는 힉스인데, 과학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힉스의 본질을 더 이상은 밝힐 수 없음을 알고 힉스를 신(神)의 영역으로 넘겨놓고 「힉스는 신의 입자다.」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물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들이 지금 물질이 있다 없다 하고 싫다 좋다 하는 것은 옳고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 하늘에 있는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지구에 있는 우리들의 몸뚱이와 산과 강, 바다 그리고 우리들이 창조한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모든 조형물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물질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질은 무엇인가? 지금의 과학이 알지 못하는 것을 불교가 알려줍니다. 부처님은 물질을 비롯한 일체는 이 마음이 짓고 만들고 세운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이 곧 물질이 아니고 물질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는 이름이 곧 이 마음이고, 물질을 내적으로 구성(構成)하는 의미가 곧 이 마음이며, 물질의 모양새와 물질을 나타내는 언어와 문자 곧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예쁘다 밉다고 표현하고 나타내는 뜻이 이 마음이고, 이름과 의미와 뜻이 맺는 모든 관계에 따라 탐하고 화내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느낌이 곧 이 마음이며, 물질의 모든 구성원들의 그다운 역할과 모든 작용이 되는 비물질(非物質)이 바로 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과 우리들은 물질의 우주세계가 바로 이 마음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물질의 우주세계가 이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이 마음을 알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번뇌 망상인 「나」라는 생각에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생각은 오직 나는 똑똑하고 잘났다며 자랑을 하며,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모양으로 꾸미고 조작하여 보고, 내가 좋아하는 소리, 향기, 맛과 말, 감촉, 생각으로 조작하고 꾸미며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번뇌 망상입니다. 이 번뇌 망상에 가로막혀서 물질의 우주세계가 이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물질이 바로 이 마음이고 우주세계가 바로 이 마음임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조주 선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이 없는 본래의 우리들 마음인 참된 마음인 본분사(本分事)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 만약 내가 깨달음의 여부가 되는 근기(根機)에 따라 사람들을 각기 대한다면 팔만사천대장경으로 벌어지느니라. 

    조주 선사가 본래 번뇌 망상이 없는 참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한다고 한 것은, 티끌 수와 같은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이 마음의 부처이기 때문에 모두 이 마음의 부처인 참마음 곧 본분사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본분사로 대하지 않고 번뇌 망상을 여읜 정도와 깨달음을 이룬 한도가 되는 근기에 따라서 사람들을 대한다면 팔만사천 근기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마음을 크게 깨치신 후에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라는 설명의 여러 말씀이 팔만사천대장경입니다. 따라서 일체중생이 바로 이 마음의 부처라는 본분사를 알고 실행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근기에 따라 설법한 팔만사천대장경을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 이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참마음 모를 때 싫어하는 중생이 있고 좋아하는 부처가 있을 뿐입니다. 본래 부처인 참마음의 자리에 중생이 어느 곳에 있고, 부처가 어디에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깨닫기 전에 빠른 수행과 느린 수행이 있고 또한 기도, 염불, 화두, 명상이라는 수도수행이 있는 것이지 깨달은 후에 무슨 빠른 깨달음과 느린 깨달음이 있고 수도수행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번뇌가 없는 참마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 티끌 수와 같은 고통이 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또한 좋아하는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싫어하고 좋아함이 없는 참마음의 자리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무량(無量), 무수(無數), 무변(無邊) 량이 없고 수가 없으며 가장자리가 없는 행복과 공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행복과 공덕을 우리들이 끝이 없는 오랜 세월동안 수도수행을 닦아서 이루어야 한다면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모두 물러나는 마음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량하고 무변한 행복과 공덕을 우리들이 본래 갖추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나」라는 생각 오직 나는 똑똑하고 잘났다며 자랑을 하고,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소리, 향기, 맛과 말, 감촉, 생각으로 조작하고 꾸미며, 또한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무량한 공덕과 장엄이 본래부터 구비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본래 부처이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본래 이 마음의 부처가 아니라면 무량수의 백 천배를 수행한다하여도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올바른 인연이 있는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이 때로는 비록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면 필시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굳게 믿고 나가야 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말했습니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든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시성 타고르는 암울한 일제식민지 시절의 조선을 두고 너는 앞으로 동방의 밝은 등불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이 동방의 등불이 될 수 있는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대국이 되고, 가장 강력한 군사국가 되며,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해서 세계의 등불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동방의 등불이 되고, 세계를 비추는 밝은 빛이 되려면 지금 이 나라에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는 여당과 야당을 싫어하고 좋아하지 말아야 하며, 여당의 대통령 후보 이재명과 야당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말아야합니다. 또한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없어서 국민이 양편으로 쪼개지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하고, 국민을 위해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어느 개인이나 단체를 위해서 쓰지 않고 오직 국민을 위해서 사용하여 권력 투쟁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어야합니다.  

    앞으로 40일 후에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국민들은 각자 지지하는 후보는 좋아하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는 싫어하며 과연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인가 하여 여론조사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

    앞으로 40일 후에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 우주세계는 우리들이 만든 업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세계는 싫어하고 좋아하는 우리들의 번뇌 망상이 진화하고 유전된 버릇과 습관의 업보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들이 업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를 뿐입니다.  

    때문에 이제 바르게 알고 깨우쳐야 합니다. 우주세계를 만든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와 이를 진화하고 유전시킨 버릇과 습관의 업보는 비물질의 이 마음입니다. 따라서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딱 멈추어서 이 마음을 깨달으면 업보가 곧 이 마음인줄을 알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며, 20대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싫어하고 좋아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싫어하는 모든 고통의 불행은 참되게 벗어나고, 우리들이 좋아하는 즐거움과 평안의 행복은 참되게 얻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때, 동방의 등불이 되며 세계를 비추는 밝은 빛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의 길을 우리들은 잠시도 멈추지 말고 기필코 지금 나아가야합니다. 

    1.

    우주세계가 곧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곧 우주세계입니다.

    우리들이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또한 그 가르침을 공부하는 근본목적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고통에서 참되게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태어나서 젊고 건강했던 몸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과 근래 지구촌을 전염병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다한 탄소를 배출하여 일으킨 이상고온 현상으로 인하여 빈번히 발생하는 태풍과 폭우, 폭설, 혹한, 혹서 등의 자연재해(自然災害)와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등과 같은 수많은 일반재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배고픔과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등 불행으로 일컫는 티끌수와 같은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싫어하는 고통의 불행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우리들이 좋아하는 행복의 즐거움이 되는 먹는 욕망, 잠자는 욕망, 사랑하는 욕망, 재물 욕망 명예 욕망을 뛰어넘어 티끌만큼도 부족함이 없는 참된 행복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든 고통에서 참되게 벗어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이루기 위해서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려 한다면 부처가 무엇이고 불교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합니다. 과연 부처와 불교란 무엇인가? 우리들이 부처와 불교를 알려면 부처를 알려고 하는 우리들 곧 「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나를 알려면 나를 있을 수 있도록 주도한 우주세계가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에는 물질로 이루어진 수많은 별들이 있는데 우리들은 이 모든 별들을 우주세계 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주에는 물질로 이루어진 수많은 별들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에는 이것은 지구다, 저것은 화성이다 태양이다 사람이다 동물이다 하는 이름이 있고, 별과 지구에는 별과 지구를 구성하고 내포하는 산과 바다 사람과 동물과 식물 등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별과 지구의 모양새와 별과 지구가 자신을 외부로 표현하는 수많은 표식이 되는 뜻이 있고, 이에 따라 싫어하고 좋아하며 탐하고 화를 내는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티끌로 인하여 우주가 있고 우주로 인하여 하나의 티끌이 있으며 하나의 티끌이 없으면 우주가 없고 우주가 없으면 하나의 티끌도 없습니다. 하나의 티끌과 우주는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하고, 이름과 의미 뜻과 느낌도 그다운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이 모두를 비물질(非物質)이라고 하며 이를 마음 또는 성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세계는 곧 물질(物質)과 비물질(非物質)이다 하면 우리들은 습관적으로 우주는 물질과 비물질이 둘로 나뉘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중생의 굴레를 벗어내지 못하고 생사 고통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일체를 둘로 나누어 차별하고 분별하는 어리석음의 뿌리를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음으로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과학이 아직까지도 하나의 티끌조차 그 근본을 모르고 분분한 의견만 있을 뿐입니다.

    우주는 물질과 비물질이다 하여 따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과 물질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물질의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이 되는 생각과 마음이 물질과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은 스스로 자신이 물질일 수 없습니다. 물질은 비물질에 의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비물질이 없으면 물질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비물질로 의하여 있으므로 우리들은 물질이 있다고 하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물질은 없는 것인가? 물질로 인하여 비물질이 있으므로 물질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물질은 스스로 없지 못하고 비물질로 인하여 없으므로 우리들은 물질이 때로는 없다고 하지만 물질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비물질도 이와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티끌 수와 같은 우주의 일체존재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서로 융합 융통합니다. 

    물질과 비물질이 융합 융통한다는 것은 물질과 비물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물질(非物質)이란, 비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아니다(非)라는 것이므로 물질도 아니고, 비물질도 아닌 것임을 명백하게 알아야합니다.

    하나의 티끌을 포함해서 모든 별들이 있으려면 모든 이름과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이 되는 생각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작용과 생각, 마음이 있으려면 모든 별들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별들은 그 자신만으로는 별일 수 없으며 작용의 생각과 마음에 의하여 별일 수 있습니다. 작용의 생각과 마음도 그 자신만으로는 작용의 생각과 마음일 수 없고, 별들로 의하여 작용의 생각과 마음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별이라는 이름과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의 이 마음이라는 전제조건하에 따라 있고 없기 때문에 별 자신 스스로는 있을 수도 없고 없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이름과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의 이 마음이 있다는 것은 별이라는 전제조건하에 따라 있고 없기 때문에 이름과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의 이 마음은 자신은 스스로 있을 수도 없고 없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상대에 의해서 있고 상대에 의해서 없으므로 수많은 별들과 이름,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의 이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따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융합하여 있습니다. 하나의 미세먼지 또한 이름과 의미, 뜻, 느낌, 역할, 작용의 이 마음과 따로 있지 않고 서로 융합하여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조금은 난해하더라도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지 않다면 일체를 둘로 나누어 차별하고 분별하는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지금 스마트폰을 생각할 때 생각과 스마트폰이 따로 있을 수 없고 그 스마트폰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과 스마트폰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지금 허리나 다리가 쿡쿡 쑤시며 아플 때 쿡쿡 쑤셔서 아프다는 마음과 허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눈이 컴퓨터를 볼 때 컴퓨터를 보는 마음과 저것은 컴퓨터라고 말하는 마음이 없으면 눈과 컴퓨터가 없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와 눈이 없으면 보는 마음과 말하는 마음 역시 없으므로 눈과 컴퓨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의 모양과 기능 그리고 컴퓨터의 모양과 그 성능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허리, 눈, 컴퓨터가 곧 생각이며 마음이고, 생각과 마음이 곧 스마트폰, 허리, 눈, 컴퓨터입니다. 나머지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체가 융통 융합하여 있는 것을 근본이라 하고 근본을 곧 마음, 성품, 생명, 자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와 불교의 근본이 마음이고 일체 존재 일체 학문과 일체의 차별과 분별의 근본이 모두 이 마음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우주세계의 별들이 곧 이 마음이므로 우주세계는 있는 것이 아닌 진공의 마하반야이고, 이 마음이 곧 우주세계이므로 우주세계는 없는 것도 아니므로 묘유의  바라밀다입니다. 

    그러므로 싫어해서 버리려고 하는 고통의 불행이 되는 생 노 병 사와 자연재해, 일반재해, 배고픔과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이 곧 이 마음이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좋아해서 취하려는 즐거움의 행복이 되는 먹는 욕망, 잠자는 욕망, 사랑하는 욕망, 재물 욕망, 명예 욕망과 우리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 마음이므로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행과 행복의 본질이 되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이 마음 또한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인 것을 잊지 말고 항시 염두에 꼭 두고 있어야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태어나서 젊고 건강한 몸은 좋아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몸은 싫어합니다. 우리들이 젊고 건강한 몸을 좋아하고 늙고 병든 몸을 싫어하는 것은 지금 젊고 건강한 몸과 늙고 병든 몸이 먼저 있기 때문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바로 태어나고 젊고 건강한 몸이고, 싫어하는 마음이 바로 늙고 병들어 죽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불행이 되는 자연재해와 일반재해, 배고픔과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이 지금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생각과 생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싫어하는 생각이 저것은 고통의 불행이 되는 자연재해와 일반재해, 배고픔과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이라고 잘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젊고 건강한 몸과 늙고 병든 몸 그리고 고통의 불행인 모든 재해와 즐거움의 행복인 평안이 본래 그 역할과 그 나름의 작용이라는 이 마음을 깨달아 알지 못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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