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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제자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영하라
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제자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영하라
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제자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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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제자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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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가면서, 세례를 주면서, 가르치면서

마태복음 28:19-20

 

지상대명령은 삶의 한 방식입니다. 이는 일회성의 복음 전파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제자를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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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Aug 12, 2020
ISBN9781953167095
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제자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환영하라
Author

Sang Sur

Dr. Sang Sur is the founder of Prayer Tents, a Christian mission organization that seeks to enable people to find life by meeting Jesus through relationships with Christians near them. He is called to bi-vocational ministry, being a tentmaker as he works with other business leaders to bring many to Christ, while also giving support to the global Church. Sang is the chief executive officer of Sciturus Real Investment Group, along with its sister companies Hanmaum Realty and Techellence. He is an engineering and business executive who led technology M&A that resulted in $53 million in revenue growth of two major global-reaching companies within the first year. He also directed personnel across all functions of engineering in modernizing aeronautical radar and countermeasure systems that continue to prevent US C-130s and B-52s from being shot down in hostile territories. As an Air Force officer, he was part of the Air Force Special Operations Command, ensuring the best aerial equipment for the US military, particularly the Special Forces. He holds a Ph.D. in Business Administration and Management and two doctorates in fields of ministry (Th.D. and D.Min.). Sang is also an ordained Christian pastor and a Certified Executive Coach, and he works with Christian executives in the marketplace and with pastors to enable them to go beyond their perceived limits and fulfill their great callings from God. Sang is a member of the Christian Business Men's Connection (CBMC) and chairs the NYC group. Sang lives in New Jersey with his wife, son, and daughter. Find out more about him at www.sangs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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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향한 가장 높은 부르심 (Our Highest Calling) - Sang Sur

    사람들을 예수님 곁으로

    이전 저서들에서 지도자들의 역할은 대중을 예수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별히 경제 시장에서 전문가나 사업주로 활약하고 있다면 이 역할은 지역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라 당신이 수행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예수님 곁으로 데려올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과거의 시도들에서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물이 없었기 때문이거나 복음에서 말하는 구원의 은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결과 지역 교회는 그저 개인들이 개인적인 영적 욕구를 충족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이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끊기게 된다. 지역 교회 지도자들은 더 위대한 예배, 설교, 그리고 다른 표면 상의 활동에 집중한 나머지 지상 대명령이란 의무를 져버리고 있다.

    지상 대명령을 다함이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최대 계명의 이행과도 연관된다. 이 책을 통해 본인은 지상 대명령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이행함에 대한 해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왜곡 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돕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성경적 의무들과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배운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지 다루어보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 통찰력을 구하고 우리의 마음과 이성이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뀌어질 수 있도록 간구하자.

    이 책은 크게 일곱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장은 지상 대명령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혹은 제자를 삼는 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두번째 장에선 좋은 소식에 대해 아직 남아있는 오해들을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 풀어낸다.

    세번째 장은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할 성경적 제자도의 예시를 다룬다.

    네번째 장은 역사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진화되어 와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여기서의 의도는, 우리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예배의 모습은 주님 뜻에 맞게 살고 있다는 착각만 가지게 하고, 그저 문화적으로 계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례를 성립고자 함이다.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어떻게 교회를 운영해나가야 하는지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섯번째 장은 역사 곳곳에서 일어났던 기독교가 부흥되고 복음이 전파된 사건들을 설명한다; 이는 세계 선교라고도 알려져있다. 진정하게 세상을 바꾸고 예수님을 널리 알린 요인이 이것이다. 모든 부흥은 적은 수의 믿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하나님을 신뢰 했을때 일어났다. 우리에게 또 다른 위대한 부흥이 찾아올 때가 왔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들에 변화가 필요하다.

    여섯번째 장은 가장 위대하고 존엄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해 설명한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 규율이 아닌, 더 위대하지만 행하기 어려우며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이는 바로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일곱번째 장은 우리가 제자도의 삶을 지역 교회 안에서 (모달리티) 그리고 교회 밖에서 (소달리티)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박사 학위 과정 중, 두가지 형태의 소모임이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소개하는 능력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한 바 있다. 한 형태는 장기적으로 계속된 그리스도인 사업가 모임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단시간안에 결성된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소모임이었다. 연구를 통해 크게 두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에 더 적합했다. 그들은 직원이나 공급처, 판매사, 협력업체, 심지어는 고객들과 같은 세상 속의 사람들과 접함으로 이를 가능하게 했다.

    기존에 있던 관계의 기간이나 깊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연구에 참석한 50퍼센트의 자칭 비그리스도인들은 6주의 연구 기간이 끝나고도 그리스도인 사업과들과 함께 모임을 이어나갔다. 어떤 한 참가자는 참석하는 조건으로 자신을 모임에 초대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혹시나 네가 초대한 모임에서 기타를 꺼내고 나한테 노래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 자리에서 기타를 부숴버릴거야. 그는 연구가 끝나고도 계속 모임에 나왔으며 심지어 어느 날은 소그룹 모임을 위해 저녁을 사기도 했다. 연구가 끝날 무렵 보고 시간에 그는 만일 교회가 이랬더라면, 계속 참석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속적이며 깊은 관계야 말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만들며,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인이 사용할 단어들에 대해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아직-그리스도인이-아닌-사람들. 본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비그리스도인으로 부르는게 편치 않다. 라는 접두사는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독자나 청취자가 그런 사람들을, 이들이 주님의 사랑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자들로 느낄 수 있다. 반면 아직-그리스도인이-아닌-사람들이란 용어는 그들이 아직은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믿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는 현재의 믿음과는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이 주님이심을 선포할 것이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 (빌립보서 2:9-11)

    교회 지역 교회. 이 책과 다른 저서들에서 저자는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써의 교회는 별도로 굵음체를 사용한다. 교회는 제자도를 따라야 한다는 문장을 예로 들겠다. 여기서 교회란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와 구분지어 굵음체를 사용하지 않은 단어 교회는 지역 교회를 의미한다. 모든 지역 교회들이 모여 교회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지상 대명령의 내용과 의무를 되돌아 보는 것으로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겠다.

    제 1 장

    Prayer Tents Logo Small

    지상 대명령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보아라,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마태복음 28:19–20

    지상 대명령은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적어도 현대 그리스도인이 이해하고 있는 전도의 개념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각 지역 교회들에게 아직 그리스도를 접하지 못한 이웃들을 만나러 나가라고 명하셨다;전도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때론 그리스도의 몸이 계시지 않은 곳에서도 살아가야 한다;이것이 선교의 의미이다. 우리의 사명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며 교회에 초대해 예배동안 앉아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제자로 삼고, 서로와 더 깊은 관계를 만들며, 그리고 하나님이 그러하셨듯이 그들을 돕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이것을 우리는 제자도라고 한다. 이는 삶의 방식이자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한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전도, 선교, 그리고 제자도는 지역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 내려진 사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각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관여하는 지체들 (지역 교회)과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교회)이 여기에 속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알려야 하는 사명을 받았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세개의 요소들에 대한 이해와 이를 향해 의식적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서는 이 사명을 수행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에서 보여지는 줄어드는 출석률과 이웃과 소통할 줄 모르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이 지상 대명령의 세 요소—전도, 선교, 그리고 제자도—모두에서 실패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전도, 선교, 그리고 제자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위대한 부흥을 위해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셨다. 이와 똑같은 위대한 권능이 미국, 한국, 그리고 몇몇 유럽 국가들에 나타났고, 이 나라들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이 권능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예수님이 교회에 남기고 간 지상 대명령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마태복음 28:18-20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으라고 명하고 계신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 하셨을때, 제자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훈련해 곳곳으로 보내셨다. 그 이후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그분의 사명을 다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시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명까지 이루신 후, 예수님은 바로 떠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십일 동안 이땅에 남아 계시며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셨다 (사도행전 1:1-1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상 대명령을 남기시며 제자를 만들라 하셨으며 언제나 함께하실 것을 약속한다.

    제자들이 명령을 받은 이후 가장 처음 한 일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1:8, 14). 기도를 시작한지 열흘이 지난 후, 오늘날 우리가 성령강림절이라 부르는 날에, 성령님이 불과 같은 모습으로 내려오셨다. 제자도의 핵심 요소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열렬한 기도, 그리고 성령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사도행전 2, 사도행전 6:4, 디모데전서 4:5). 열두 제자중 하나인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군중을 이끌며 기적을 보이고 복음을 선포했다. 이 결과 약 3천명의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영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사도행전 2:42).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지상 대명령을 그리스도인들이 (1) 나가서 (2) 전도, 혹은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행위를 권장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고방식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지상 대명령은 우리가 나가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 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며,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수행해야하는 사명이다.

    지상 대명령은 전도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상 대명령에서 복음을 가르친다는 의미를 가진¹ 그리스어 어원 단어 εὐαγγελίζω (euangelizo)는 한번도 쓰이지 않았다. 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라는 단어는 사실 복음 혹은 좋은 소식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전도(evangelize)란 마가복음 16:15에서 말하듯 복음을 전하거나 설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mission)란 단어는 라틴어 missio 에서 유래했는데, 이의 어원은 보낸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단어 apostello 에서 찾을 수 있다. ² 기독교에서 선교란 의도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 다른 지역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안전지대 밖으로 사람을 보내 (혹은 보내지어) 복음을 전하는(설파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열방으로(모든 사람들에게) 가라고 지시하신 지상 대명령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도와 선교만 있으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빠져있다. 만약 가르치는것이 전부라면, 국제적인 경우엔 더욱 그렇겠지만, 왜 꼭 이것을 그리스도인이 직접 가서 해야하는가?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에겐 굳이 물리적으로 있지 않고서도 기술을 이용해 가르치는 방법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말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교회라고 불리우는 그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루어 그분의 인도로 하나되길 계획하셨다. 같은 방법으로, 최신 기술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가르치더라도 그들이 이를 배우게 되거나 지속되는 신앙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배움과 믿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동체속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난다.

    더욱이, 믿음은 시간이 지나야 자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며 예수님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 혹은 하나님은 이슬람교의 하나님이며, 예수님은 예언자에 불과하다와 같은 특정 믿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사람일수록 이는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해선 안되지만, 그러나 누군가 온전히 믿음을 가지는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이는 그분의 원칙과도 같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그리고 믿음을 가졌던 다른 성경 속의 위대한 영웅들 또한 실제로 그러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이 안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식 있고 존경하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내포하는 용어는 무엇인가? 이는 바로 제자도이다. 제자도는 삶을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효과적인 선교는 매년 한 주 동안만 어느 외지에 가서 복음을 설파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물론 동영상을 보내거나 몇 시간만 거기에 있는 것 보다는 낫지만). 진정한 선교는 제자도를 통한 효과적인 전도이며, 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를 삼으라는 마지막 계명을 주신 이유이다. 예수님이 덧붙여 하신 말을 통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제자를 만드는 데엔 가면서, 세례를 주며 가르치는 것을 포함하지만, 이는 제자도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의 맥락상에 존재할 뿐이다. 예수님께서 따르고 가르치신 제자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삶과 삶간(life-on-life)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는 물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모습과도 다르다.

    제자로 만들라는 부르심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분을 모르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만들라는 명령을 주셨다. 바쁜 것도 자랑거리가 되버린 세상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여유를 만들어 누구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제자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전도와 선교에 필요한 제자도와 같은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가는데에 중요한 요소가 바로 여유이다.

    마태복음 28:19-20에 기록되어있는 지상 대명령에는 길 잃은 자들에게 다다르기 위해 교회가 협력하여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자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의무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가면서 세례를 주며 가르쳐야 한다. 이 모든 과정 동안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하나님이 희생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세상에 오셨을때, 그분의 목표는 항상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하다.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없에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부서진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이제 임마누엘의 하나님,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이제 우리는 그분의 제자로 그분과 함께 동행할 수 있다는 복된 좋은 소식이다. 죄의 용서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그분의 더 크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요건이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지내시던 동안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를 만드는지 앞으로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분의 제자도가 가져온 영향은 신약 성경에 걸쳐 나타난다. 더 나아가, 후세에 사도들이라 불리게 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소모임들로 구성된 적은 수의 모임들을 이끌었음을 볼 수 있으며, 이 작은 모임들이 모여 지역 교회들을 형성하게 된다.

    예수님은 본인을 따르는 자들에게 가면서 세례를 주며 가르치면서 제자를 만들라 명하신다. 이는 서로 손잡고 나아갈수 있는 가까운 관계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유를 만들어야만 하고, 교회는 이 행위를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자들에게 내린 사명을 수행하는 일환으로 삼아야 한다. 몇몇 사람에게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을때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신다.

    마태복음 28:19-20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다시말해 교회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그리스도 곁으로 데려오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의 기반이 된다—이는 바로 제자를 만듦이다. 그리스도인의 관계들여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열쇠라 할 수 있겠다.

    제자도의 의미

    마태복음 28:19-20는 마태복음을 마무리 짓는 단락으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핵심적인 제자들을 모아 놓고 지상 대명령을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복음서를 쓴 마태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 대비 지상 대명령을 더 많이 강조함으로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목표와 목적을 제자를 만드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 약속과 지상 대명령에 대한 실천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경험한 성령강림절 부터 시작된다 (사도행전 2:1-4). 이날 부터 전 세계적인 제자도의 활약이 시작된다. 제자(discipl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mathates (μάθετης)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마음을 알게 되다 혹은 마음 안에 모시다 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예는 사도행전 23:27에서 찾을 수 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경험으로 부터 배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서 5:8를 참고하라). 이 그리스어 단어에서 시제가 변형 된 것이 manthano (μανθάνω)다. 이 단어는 제자는 제자 삼는 스승으로 부터 배워, 그와 같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따른 열두 명의 인물을 제자들이라 부르고 있다. 추가로, 예수님을 묻은 아리마대 출신 요셉 또한 제자로 간주한다 (마태복음 27:57–60). 핵심적인 제자들은 훗날 사도들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다른 믿는 자들은 형제들, 혹은 성인들, 그리고 새롭게 개종한 신자들을 제자라 부르게 되었다³ (사도행전 9:1; 사도행전 13:52; 사도행전 14:20를 참고하길 바란다). 바울 (사도행전 9:26)과 디모데 (사도행전 16:1) 또한 제자들로 불린다. 안디옥 교회가 설립된 이후 부터에야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사도행전 11:26). ⁴

    19-20절을 아주 유심히 분석해보자:

    πορευθέντες οὖν μαθητεύσατε πάντα τὰ ἔθνη, βαπτίζοντες αὐτοὺς εἰς τὸ ὄνομα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τοῦ υἱοῦ καὶ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διδάσκοντες αὐτοὺς τηρεῖν πάντα ὅσα ἐνετειλάμην ὑμῖν· καὶ ἰδοὺ ἐγὼ μεθ᾽ ὑμῶν εἰμι πάσας τὰς ἡμέρας ἕως τῆς συντελείας τοῦ αἰῶνος.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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