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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미호: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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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미호: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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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미호의 주제
실제역사에 기반하여 쓰여진 이 소설은 한 여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 남아 야마대(왜의 야마토 정권)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 가야시대의 철기가 어떻게 왜에 영향력을 미쳤으며 왜와 백제와의 관계가 칠지도를 통하여 밝혀지는 역사소설. 백제와 왜와 가야,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포상팔국 이야기를 통하여 한반도 남부의 해안의 재해 권을 손에 넣으려는 신라, 백제, 가야의 암투를 그린 이야기.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불행과 그 불행을 개척해 나가는 비미호의 인생

비미호의 줄거리
연 대부는 서라벌의 소국을 다스리는 집안이었다. 서라벌은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국의 독립성을 없애고 모든 권력과 소유를 빼앗아 버린다. 연 대부는 살아남기 위하여 가야로 피신한다. 가야에서 철일을 배워 많은 재산을 쌓고 부를 축적 해가고 있을 즈음에 경쟁자인 김서노의 계략에 하루아침에 집을 떠야 야만 했다. 연대부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연 대부는 겨우 탁순왕에게 몸을 의탁한다.
이세 국의 초빙으로 그곳에서 왕에 오르나 김서노가 연대부의 소식을 알게 되어 결국 김서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비미호는 부모형제의 소식도 모른 체 집사와 함께 왜의 파마 국에서 철일을 시작하여 마침내 왜 제일의 제철소를 갖게 된다. 파마와 주변 소국들의 사이에서 비미호 만큼 많은 명성을 얻은 사람이 없었다. 이런 명성은 자위 왕을(쿠데타) 통해 에 오른 중애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중애 왕의 세 번째 왕비가 된다. 그러나 중애는 백제에 반란을 일으켜 야마대에 올랐지만 백제본국의 허락을 얻지 못해 이름뿐이 왕이었다. 결국 백제 근구수왕자가 이끄는 진압군에 의해 중애는 패하게 되고 결국에는 비미호의 손에 중애는 목숨을 잃는다.
야마대의 국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백제본국은 비미호를 왕에 등극시키고 야마대의 안정을 꾀하나 많은 백제의 담로들과 소국들은 서로의 야심을 키우며 전쟁을 일으켰다. 백제본국의 지원을 받은 비미호는 왜의 본주지역의 담로들을 하나씩 다시 정복하여 복속시키고 야마대를 그 중심에 세운다.
이런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백제의 왕세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또 근구수왕자의 지원으로 왜를 평정하였지만 서라벌 출신이며 가야에서 왔다는 이유로 백제본국의 신임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백제는 북방영토개척에 매달리느라 포상팔국과 왜의 담로들을 관리하는데 부실 할 수 밖에 없었다. 포상팔국을 가야에 빼앗긴 후에야 그 중요성을 알았다. 근초고왕은 본격적인 가야 정벌에 비미호를 참여시키고 남강을 따라 전 가야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
백제는 가야를 정벌하여 다시 왜와의 통로를 확보하게 되고 비미호는 대가로 곡야의 철을 얻게 되고 결국 근초고왕의 신임까지 얻게 된다.
칠지도는 비미호가 남강전투에서 가야를 정벌하는 혁혁한 전과를 세운 보답이었다. 칠지도에 새긴 명문은 비미호의 아들이자 근초고왕의 손자인 화사노왕자를 전 왜의 왕으로 삼아 왜를 다스린 것을 나타낸다.
비미호는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고아였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사람들을 모으고 어려운 환경을 개선해가며 한 걸음씩 자신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자신의 처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자신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 결국에는 최초의 여왕에 올랐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이엘 북스
Release dateJan 12, 2015
ISBN9788967842505
비미호: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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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미호 - 박 영우

    여인

    卑 彌 呼

    Color of the lost kingdom: bimiho

    검은색의 부식된 철처럼 역사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철의 여인, 비미호

    머리글

    이글을 쓰게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우연치 않게 우리민족  고대사의 한부분에서 만난 비미호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식민지라는 암울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자신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슴깊이 가지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게 패배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살아왔다. 우리가 모르는 많은 역사들이 다른 나라의 역사로 둔갑해 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많은 제도권 안에서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이 너무 안타까었다. 이후 많은 뜻있는 젊은이들이 많은 연구를 통하여 제대로된 우리의 역사를 밝혀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만주를 호령하던 선조들의 기상과 백가제해를 바탕으로 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살아가던 개척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도 되살아나 좁고, 작은 세상이 아닌 넓고 큰 세상으로 나가 꿈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넓은 폐허에서 찾은 기와조각 하나, 고대 아시아의 역사서에서 찾은 한 글자 한 글자를 모아 잃어버린 역사의 파편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었다.

    지난 세월, 이웃나라들은 없었던 일도 만들어, 자국의 역사적 사실처럼 유포하고, 유물도 조작하고, 유물속의 글자하나도 자국역사에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글자를 써넣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로 현존하는 것도 못 지킨다면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나  한 국가의 영토는 자신이 속해있다고 믿는 나라에 대한 작은 믿음의 표현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되고 한 나라의 영토가 된다고 믿는다.

    이런 작은 외침이나 이런 작은 나라에 대한 애정 표현이 없다면 그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고, 그 나라의 영토는 보전되지 못하리라 믿는다. 지금 우리는 그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卑彌 呼

    수많은 소국이 생겼다 사라지는 시절, 태양이 떠올랐다 지듯이 왕국이 사라져 갔다. 그 시절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

    : 미는 용의 의미를 가진 말로 사용된다. 부산에는 용두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용은 앞에서 미라하였고, 두는 고훈으로 마리였다. 용두>미마립>미마나-> 일본어로 임나를 미마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卑彌呼 : 비미호 삼국사기와 위지 왜인전에 비미호라 나오는 왜의 여왕, 일본서기에는 신공이라함.  이분이 바로 일본 최초의 여왕인 아마테라스(즉 天照大神)로 추정되어 진다. 왜(倭) 여왕 비미호가 삼국사기에 최초로 등장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  8대 아달라 이사금 20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요청해 왔다.

    칠지도

    야마대의 만조 백관이 이 시간 백제본국의 사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비미호에게는 이번 사신이 지난 시절 많이 다녀간 사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요성을 띄고 있었다. 이미 백제본국에서 사신을 보낸다는 기별이 있을 때부터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몇 시각을 기다리면서 발을 동동구르는 것이 여왕의 체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지난 시절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자신만의 문제뿐 아니라 아들인 화사노왕자의 일이기에 더욱 조바심이 났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소?

    배에서 벌써 내린다는게 몇 시각전이데. 이렇게 지체되는 이유가 뮈요?

    본국의 사절이라 구경꾼이 많아 지체되나 봅니다.

    이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누구인가?

    예, 대신 구저와 대장군 목라근자, 대신 기서라 하옵니다.

    근구수왕자가 화사노왕자를 왜왕으로 봉하고 돌아간 지 오래 되었지만 본국에서 확증하는 아무 공식적인 문서가 없어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여왕마마, 이제 막 도착하였습니다.

    여왕마마, 본국의 대신 구저입니다. 근초고황제의 명을 받아 여왕님께 다음 야마대의 왕은 화사노왕자로 인정한다는 교지와 그것을 증명하는 칠지도를 가져왔습니다.

    본국의 성음이신 근초고황제께서는 잘 계시는가? 그리고 세자이신 근구수왕자께서도 아무 일이 없으신가? 본국의 대신인 구저에게 여왕은 그간의 소식을 물었다.

    두 분 다 여왕님의 훌륭한 통치와 백성을 살피는 그 사랑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교지와 칠지도를 앞으로 가져오도록 해보게

    예, 여기 있습니다.

    칠지도라, 모양이 특히하게 생겼네 그려.

    여섯 나라를 상징하는 여섯 가지와 중심에 있는 야마대를 상징하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옵니다. 백제의 대신 구저는 칠지도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비미호에게 오늘은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손님들과 너무 기쁜 소식으로 흥분의 하루였다. 지금까지 항상 걱정 거리였던 왜왕의 봉왕식이 완결되어 한 송이 꽃이 봉우리를 활짝 피운 감격이 비미호에게도 밀려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함과 비난 속에서도 자기자신은 혼자 잘 견디어 왔지만 화사노왕자만큼은 제대로 백제본국의 지지와 왜의 지지를 받게 하고 싶었다.

    이제껏 곁에서 자리를 지켜, 어려서부터 같이 지낸 포여동생도 이제는 집에서 자식과 같이 쉴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비미호가 수많은 고통의 고개와 절망의 험산준령을 넘을 때 그때마다 포여가 곁에 있어 이런 일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포여에게 많은 선물과 또 재물을 내려 고향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하라.

    포여라 함은 기장대에 있는 포여를 말하심입니까?

    그렇다, 포여는 내게 친자매와 같으며 평생을 내 곁에서 궂은일을 해왔다. 오늘 같이 기쁜 날, 포여야 말로 쉬어야 할 사람이다.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린시절 집을 나서 군사들을 피해 여기저기를 헤멜 때, 잠잘 곳이 없어, 나무 밑에서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았다.

    포여

    포여는 젊은 시절부터 비미호를 떠날 줄 몰랐다. 젊어서 과부가 된 후 줄곧 비미호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파마의 성채에서도, 야마대의 왕국에서도 포여야 말로 비미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어린과부를 하나하나 가르쳐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비미호는 형제가 없어 더욱 포여에게 가까운 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글도 모르는 포여를 여러 아낙네들과 함께 글을 가르쳐 읽고 쓰고 할 수 있게끔 한 것도 비미호의 덕이었다. 겨울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에는 성채에 모든 어린이와 아낙네들을 불러 책을 읽게 하고 또 글을 가르쳐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였다.

    얼굴이 둥글고 하얀 피부를 지녀 어리게 보였지만 포여는 이미 장성한 아들 둘을 두었다. 항상 비미호와 함께 하느라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특별히 궁에 들어간 이후에는 이 두 아들마저도 일년에 한 두어 번 볼 뿐이었다. 이들 아들들이 어렸을적에는 그래도 자주 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관청에 나아가 일을 배우느라 더욱 시간이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이제 너희들이 여왕님을 잘 보필하길 바란다.

    마지막 가는길 에도 포여는 비미호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포여님을 파마에서 겨울마다 볼 수 있겠지만, 저희도 함께 했던 지난날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장대의 한 여인은 포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기장대도 어떻게 보면 포여가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항상 사람들이 비미호를 기장아씨라 불렀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을 기장대라 불렀다.  그래서 기장대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기장대도 처음에는 단순한 허드렛일을 하였지만 차츰 비미호의 신변에 불상사가 생기기 시작하자, 비미호의 경호문제가 기장대의 주요 일이 되었다. 기장대가 점점 커져 이제는 수많은 곳에 사람을 보내 정탐을 하고 또 각 군장들을 견제하며 독립적인 군사조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은 바로 포여였다. 누구보다도 살가왔던 포여는 성채에서도 여러 언니동생들과 굳건한 신뢰를 가지고 서로를 의지하는 기장대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끔 만들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리 가서 현장을 보고, 적의 배치와 군사의 움직임 또 서로의 이해관계까지 알아서 비미호에게 낱낱이 일러주어 비미호가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는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궁이 집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떠날려니 너무나 섭섭합니다.

    포여는 비미호와 함께 하였던 지난 시절이 너무나 좋았다.

    자네도 이제 좀 쉬어야지? 애들 본지도 오래되었지?

    비미호는 포여의 아름다운 마음을 항상 고마워 하였다.

    겨울에는 멀리 있는 각처에서 온 기장대들이 모여, 파마의 성채에서 훈련도 하고 또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며,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곤 하였다. 이것은 포여를 중심으로 기장대를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특히 어린 여자애들을 새로이 가르쳐 내보내는 일은 이때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정탐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방이나 집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알아야 할 것이라든지, 가구나 사람들의 형태를 두리번거리지 않고서도 파악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훈련을 시켰다. 일단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특징, 말씨, 보이지 않는 작은 버릇조차도 알아 낼 수 있게 하였다. 나아가서는 상인들의 움직임, 곡식 물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어디에서 어떻게 왜 왔는지,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빨리 파악하는 법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각 기장대를 통하여 어떻게 본부와 연락을 할 수 있는지, 비합전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웠다.

    심지어 기장대 출신이 다른 곳에 시집을 가면 그곳에서도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비미호에게 알려 주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고 매년 추운겨울 같이 훈련하는 시간이 서로에게는 행복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기장대 여인네들의 아이들 또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맡아보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나라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충성스런 포여도 궁에서는 많은 적들이 있었다. 특히 대납언의 경우 포여를 어찌나 미워하는지 포여 또한 궁에 있는 것 보다는 다른 곳에 가서 정탐하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대납언의 경우 포여와 기장대만 없었으면 언제든지 비미호를 제거할 수 있었지만 기장대때문에 항상 걸림돌이 되었다.

    한번은 대납언이 궁에서 다른 대신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포여에게 발각되어 비미호의 암살을 막을 수 있었고, 또 한번은 대납언이 큰 이권을 가지려는 것이 적발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궁에서나 외부에서도 기장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장대가 어린시절의 믿음으로 뭉쳐져 있어 사리사욕이나 특정한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는 않았다.

    포여가 집에 한번씩 들리기는 하였으나 이제 가면 아이들과 오랬동안 지내고 싶었다. 뇌호내해의 잔잔한 물결을 가르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마음이 설레는 길이었다. 벌써 자식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인 게 몇 십 년 만이네요?  궁에 가도 잠시 동안 밖에 얼굴을 뵈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고향집에 둘러 앉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궁의 생활은 어떠하셨는지요? 백제본국 에서 대단한 사절이 왔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었습니까? 아들들은 궁에 대한 소식들이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본국의 하사품

    백제본국에서 온 하사품은 여느 때보다 많이 왔다. 많은 선물과 함께 칠자경, 칠지도와 같은 훌륭한 칼을 보내주었는데 크기가 2척 4촌 7푼이나 되고, 일곱가지가 나와 있으며 평소 여왕께서 쓰시던 칠성검과 비슷했다.  본국의 황제께서 비미호를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것이었다.

    대개 본국에서 오는 선물이라면 창, 칼, 방패 등 군사적인 무기와 서적 등을 보내었는데 이번에는 지난번 선물과는 차이가 많았다.  칠지도에는 금으로 상감이 된 글자가 60여자 새겨져 있었다.

    "태화 4년 오월 십육일 병오 정양에 곡야산 백련철로 칠지도를 만들었으니 백병을 막아낸 제왕과 제후들에게 골고루 공여할 수 있도록 백련철로 칠지도와 동류품을 제작하시오. 금세 이래로 비도와 같은 것이 없었으나 백제 왕세자는 성음의 뜻을 받들어 귀하를 왜왕이 되게 하였으니 비도를 만들어 이 뜻을 후세에 전시하도록 하시오."

    무엇보다도 비미호는 화사노왕자가 본국의 인정을 받은 것이 기뻤다. 근구수왕자야 당연히 자신의 소생이니 인정을 하지만 본국의 근초고황제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자제종친들이 받아드린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비미호가 왕에 오른 것은 두고두고 많은 논란거리가 된 것은 비미호가 황실의 종친도 아니고 특히 서라벌출신이라는데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화사노왕자가 왜왕이 됨으로 이런 정통성 시비는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지난번 탁순국에 모여 가야일대를 정벌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 본국 근초고황제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특히 왜에는 야마대에 속한 일곱 국가 외에 여러 담로국 사이에는 철의 수급으로 서로 반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많이 차지 하기위해 서로 싸우기도 하고 또 가야에서 가져오는 것도 가야와 서라벌의 농간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제는 가야에서 철을 가져올 뿐 아니라 곡야의 백련철을 조차하게 되어 장기적인 철의 확보를 하게 되어 야마대로서는 여간 이익이 아니었다.

    대 백제 왕이신 근초고황제께서 이렇게 칠지도를 만들어 주신 것은 우리가 대 백제국의 일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본국에서도 야마대가 왜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곡야의 철을 저희가 확보하게 된 것은 여왕님의 큰 복입니다.

    바로 칠지도복제품을 만들어 각 담로국들에 보내 백제본국 성음이신 근초고황제의 뜻을 알리도록 하시오.

    야마대는 일반적으로 불리는 왜와는 차이가 있었다. 구주는 일찍이 백제본국에서 담로를 개척한 이래로 강력한 연맹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칠지도에는 야마대의 왕이라 하지 않고 왜왕이라 불리는 것은 야마대연맹의 일개왕이 아닌 전 열도의 담로들을 대표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왕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비미호는 백제본국에서 세운 왕이 아니어서 실제로 본국과 관계가 초기에는 좋지 않았다. 본국과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비미호를 인정하였지만 많은 주위의 반발이 있었다. 자제종친을 임명하여 혈연지배를 원칙으로 하던 담로에서 보면 비미호는 탐탁치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백제본국에서는 비미호를 방치하여 야마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일곱개 담로를 통솔하는 연맹왕으로 분가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특히 사국이나 본주의 이세국에는 이번 기회에 분명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도록 하시오. 비미호는 다른 담로들의 우려를 의식해 대신들에게 다시한번 일러두었다.

    칠지도 그 자체가 백제본국의 위엄과 야마대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봅니다.

    이전의 비미호가 아니었다. 이제 왜의 당당한 왕으로서 실제적인 지배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중애왕을 폐하고 왕이 되었다는 세간의 소문과 황실의 종친이 아니라는 본국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비미호는 남강유역 전투에 군사를 파견함과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가함으로 본국과 관계개선도 도모하고, 철의 자원을 확보하게 되고, 야마대의 대표가 되는 등 적극적으로 실리적인 면을 얻어내었다.

    야마대의 여왕으로서 야마대 연맹을 이끌 뿐 아니라 왜의 중심에 서 있음으로 많은 정치적인 잇점과 경제적인 실리를 동시에 누리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경쟁이 아니라 조율자로서의 한층 높은 지위를 본국에서 인정한 셈이 되었다. 왜 지역의 일곱 나라 중에 야마대 만큼 많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없으며 이미 외교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마, 일지, 이도, 노, 불미, 투마, 여섯의 대표가 야마대가 된 것이다.

    일곱 가지의 칠지도는 이 일곱 나라를 의미하며 그 중앙에 야마대가 있어 야마대의 역할을 칠지도에 나타낸 것이며 이것을 만들어 각 나라에 제공함으로 서로가 결속되어 있다는 표식이 될 것이다. 하나의 줄기 야마대에 여섯개의 가지는 형제국으로서 이제 더 이상의 전쟁이 없다는 표시이며 본국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증표였다.

    본국 : 본국이란 고탄자국이었던 말하며 비류백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백제라 부르기에 온조백제와 혼돈하기 쉽다.

    2척 3촌 7푼 : 74.9cm쯤 된다.

    칠성검 : 일반검에 일곱개의 날개가 달려있는 검, 모양이 용의 비늘 같기도 하고 새의 날개 같기도하여 칠익검이라고 불리기도 함, 칼의 중앙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어 칠성검이라 불렀다.

    성음 : 백제황제의 왕호 백제본국의 황제를 말함

    귀하 : 비미호

    근초고황제 : 백제 계왕은 왜국을 정벌하였다. 그러나 경행천황의 일본정벌은 거의 일본무존에 의해 이루어졌다. 경행천황은 작은 아들이라는 소대명(小碓命)을 일본정벌의 선봉 장수로 삼았는데 이는 비류왕의 차자였던 근초고왕으로 고려된다. 그의 다른 이름은 오구나(男具那, 烏具奈)왕자, 일본무존(日本武尊), 왜건명(倭建命)이라고도 하였는데, 오(男)는 역시 백제 왕가 성(姓)인 여(餘)의 변형이다.

    남가라

    남가라는 구야국에서 비롯되었다. 왜의  본주, 구주 일부, 서국 등이 옛날에는 구야한국이라 불렸다. 구야국에서 다스리고 있었다. 심지어 일반 백성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구야국에서 구야한국으로 이주를 해왔었다. 모든 복식과 행정체계까지 구야국의 형태가 구야한국 즉 왜의 표준이 되었다. 지금은 남가라에 복속되었지만 이전의 모든 것들이 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백제본국에서 왜에 수많은 담로들을 세우기 이전에는 구주와 본주의 대부분이 남가라의 지경이었다.

    백제제국은 가야와 왜에 담로들을 하나하나 개척해 감으로 제국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멀리는 담모루 지방과 요서 및 산동 등 지나의 동해안이 모두 백제제국의 담로에 속하였다.

    이제는 전쟁이 그치고 평안하지만,  이런 전쟁의 시작이 실지로 후국들의 전쟁이 아니고 백제본국과 구야본국의 전쟁이었다.

    지나 : 지금의 중국

    마산현

    비미호의 조상들은 북부여 사람으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울 때 동부여로 쫓겨나 혁거세거서간이 남쪽으로 이주할 때 같이 내려와 진한 연맹을 세울 때 함께 하였으며 집안 대대로 하늘신을 모시는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연호지옹은 살아있는 선인이었으며 최고의 관직인 대사자를 지내신 분이었다. 진한의 기로국 도기야에 머물 때에도 거서간이 특별히 도기야를 보호해 주었고, 별도의 전답과 종을 주어 관리하게 하며 추수전과 추수후의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하였다. 천제에게 제사하는 것은 부여인의 전통이었고 검은 까마귀와 붉은 해는 부여인의 표시였다.

    종들도 다 데려가고 이제 남은 전답까지 내어놓으라니.

    연대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올랐지만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부님, 차라리 남가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집사는 연대부의 마음을 헤아리며 의견을 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연대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전답도 다 빼앗기고 노예들도 다 빼앗긴 상태에서 이곳에 있어보아도 아무런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라벌은 점점 군사와 행정을 개편해가며 작은 소국들을 하나하나 삼키기 시작하였다. 마산소국도 이제 생명이 다하였다. 이제 이곳에 더 머문다면 노예가 되던지 아니면 노역에 끌려나가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직도 어린나이인 열살짜리 딸을 볼때마다 연대부는 이제 결심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여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가야에 간다면 그래도 여기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바꿜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연대부의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기장의 봉대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제법 산의 풍채를 가지고 평화로운 어촌의 든든한 뒷그림이 되어왔다. 왜인들이나 해적들이 들이 닥치면 피하기 알맞은 산이었다. 사실 미역이나 다시마등 해초를 따서 생업을 이어가고,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거나 산아래에서 밭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달밭이라 불리는 이 동네도 어려움없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동네였다.

    해적들이 나타나거나 왜인들이 들이닥치면 동네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산으로 도망가서 해적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다시 내려와 생업을 할 수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동네에 성을 쌓는다고 언덕을 허물고 전답을 가로질러 길을 내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을 쌓는 일에 동원이 되어 생업을 팽개치고 있었다. 서라벌은 이 어촌이 더 잘살게 되고 또 더 안전해 질거라 말하지만 지금 미역과 다시마가 이미 수확기를 지나 뻣뻣해져 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보게, 이미 미역 수확시기를 지나 어떻게 하나?

    이 사람아 미역수확도 문제지만 밭농사는 시작도 못했어. 불만이 여기저기서 한사람씩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서라벌에서는 가만히 앉아 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린 생업이 중요하지.

    이게 다 아달라 이사금 때문이라네. 감포에도 성을 쌓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야. 지금 가야가 힘이 강해지고 관경이 넓어지니 대비한다고 이러는 게지?

    하여간 아달라 이사금 욕심때문에 우리가 고생하는 게 아냐? 우리야 가야가 이땅을 차지하던, 서라벌이 차지 하던 무슨 상관이야?

    제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다. 일하는 도중에 도망가는 이도 있었다. 이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기도 하고 더 힘든일을 시키기도 하였다.

    성을 쌓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게 되고 또 사고가 났었지만 서라벌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서라벌주위의 작은 나라들은 그 이름조차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전에는 작은 나라 나름대로의 독립적인 운영과 유대감을 가지며 경쟁하였지만 이제 서라벌의 작은 현에 불과하게 되었다.

    연대부도 제사일이 아니면 노역에 벌써 끌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를 핑계로 그나마 집에 있었다. 일이 늘어가는 마당에 자식들이 끌려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집사, 가야에 가서 우리 친족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게.

    예, 알겠습니다.

    연대부는 가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하였지만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 할지는 몰랐다. 이번 집사가 돌아오면 어디엔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부님, 남가라에 있는 분들이 그쪽으로 오실 수 있게 전답과 임야를 준비해 주겠답니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연대부는 안심이 되어 어떻게 야밤에 가족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었다. 배에만 짐을 실을 수 있다면 남가라로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집사에게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옮겨놓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마산현 : 지금의 경남 기장 지역 일대

    연호지옹 : 부여의 신선, 비미호의 증조할아버지

    기로국 : 서라벌의 진한 시절 명칭

    도기야 : 제사를 지내는 곳

    김서노

    어렵게 어렵게 서라벌을 빠져나와 가야에 둥지를 틀어 철일과 무역으로 가업을 일으켜 갔다. 친지들이 내어준 땅에 가마와 공장을 지어 본격적인 철을 생산하게 되어 가야내에서도 이제 철일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수요와 가야의 풍부한 철광석으로 손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런 평화도 잠시 서라벌사람들이 철을 빼앗기 위해 쳐들어와 할 수 없이 가솔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야만 했다.

    김서노는 본래 가야 사람이나 부모가 부유하여 많은 재산을 젊어서 물려 받았다. 그러나 원래는 형의 재산이었으나 형의 재산을 탐내 형이 진나라에 갔을 때 사람을 시켜 죽이고 그 부모의 재산을 물려 받았다. 그 후 형수를 아내로 취하고 집안의 모든 부를 한손에 쥐었다. 형제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그는 형제들을 하나는 서라벌로 보내었고, 하나는 고구려로 보내 그의 장사를 돕게 하였다.

    김서노가 젊었을 때 아버지의 하인들과 많은 장사를 같이하여 장사길을 알았고, 또 이미 개척해 놓은 많은 백제방과 가야의 후국과 고구려, 진나라까지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장사 수완이 뛰어나고 항상 무엇이든지 이익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부를 이용하여 미리미리 매점 매석을 통하여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한번은 서라벌의 경매장에서 칼 한 자루를 샀는데 이는 한고조가 쓰던 칼이라 비싸기 그지 없었다. 서라벌의 경매장은 많은 외국상인들과 서라벌의 상인들이 모여 물건을 놓고 서로 사고 파는곳이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칼  한 자루를 내어 놓았는데 천금을 달라하는 아주 귀한 칼이었다. 이는 한나라 고조가 한나라를 세울 때 쓰던 칼로 한나라 종친으로부터 구입한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칼을 사려고 모여들었다. 특히 서라벌의 귀족들은 그 칼을 가지면 일국의 왕이 될 수 있다는 소문에 더욱 호기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미심쩍어 칼을 사려하지 않았지만 일단 경매에 들어간 후 칼의 값은 상상을 초월하여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김서노 또한 이 칼에 관심을 가지고 경매에 참여하였는데 결국에는 서라벌의 귀족들을 물리치고 천금을 내고 구입하였다.

    서라벌 사람들은 이 가야의 거상을 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여겼으며 귀족들도 앞을 다투어 김서노와 사귀길 원하였다. 특히 각간은 김서노라는 거상을 궁금해 하였다. 서라벌의 귀족들의 소개로 김서노는 각간을 만나게 되었다.

    각간어른을 뵈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대단한 영광입니다.

    나야말로 거상인 자네를 보게 되어 기쁘네. 우리집 식객인 진궁은 자네에 대한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아 한번 보고 싶었네.

    저도 진궁이 말하길 각간이야 말로 이 나라를 다스리며 이 나라 백성을 사랑한다 들었습니다.

    과찬이네.

    지난번 경매에서 귀한 칼을 얻었다 하던데 어떤 칼이던가?

    "각간께서도 그 칼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그 칼은 한고조가 한나라를 창업할 때 사용하던 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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