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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미: 과묵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동거기
너의 의미: 과묵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동거기
너의 의미: 과묵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동거기
Ebook116 pages40 minutes

너의 의미: 과묵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동거기

By 상자 and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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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책소개
난생 처음 고양이를 키우는 남자와 과묵한 고양이의 특별한 동거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이해하기 힘든 미지의 생명으로 대한다.
탐색과 매혹, 갈등과 반목의 시간을 지나 서로에게 길들어 가는 과정을 담백한 어조로 기록했다.
서른 두 점의 삽화가 이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출판사 서평
모든 생명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에세이 . 고양이를 통해 작은 보따리만한 존재에도 생명의 무게가 있음을 실감한 저자가 반려동물과 생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에세이이다.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그리는 이 둘의 관계를 보다보면 비단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도 비슷한 시선과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우주상자
Release dateJun 13, 2022
ISBN9791197863783
너의 의미: 과묵한 고양이와의 특별한 동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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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의미 - 상자

    Chapter 00

    :프롤로그

    너보다 조금 더 큰 주머니에 담긴 생명이

    나보다 조금 작은 주머니에 담긴 생명에게

    만나다

    쿠우 걷는 모습

    '조약돌'을 발음하면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약돌 두 개를 살살 비빌 때 나는 소리가 먼 은하에서 오는 외계 신호 같기도 하고, 쥐면 빈 손바닥을 빼곡히 채워주는 안정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견뎌낸 수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동그란 모서리에 새겨둔 것만 같고, 들여다보기만 해도 어딘가에서 졸졸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릴 적 나는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고 자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눈을 감고 내가 커다란 조약돌로 변한 상상을 했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느낌. 돌이켜 보면 그것은 수줍은 나를 드러내는 일종의 은유였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만지작거릴 때만 해도 아직 세상의 신비와 자신의 변신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조약돌'을 잊고 살았다. 유년기를 지난 나는 세상에 무심해지고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그러다가 툭 누군가의 발에 채고 마는 하찮은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신비롭지 않았고, 세상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자갈밭에 떨어진 기분. 너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회사 동료인 J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6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혹시 고양이 좋아하세요?

    네….

    나는 '네'하고 질문인지 대답인지 모를 어조로 말해 버렸다. J는 애매한 어조를 긍정의 대답으로 받아들였는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더는 너를 키우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 기관지가 나쁘다고. 덧붙여 너를 대신 키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또 애매한 어조로 '네'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네'라는 말을 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앉아 있는 네 종족의 자태가 매혹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때 내 머릿속을 지나간 이미지는 어느 담뱃갑에 붙어 있던 로고였고 그래서 네 존재감이 많이 희석된 상태임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걱정했는데.

    J는 진심으로 안도한 표정이었다. 나는 J가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고양이'라는 말을 몇 번 입속으로 되뇌다가 다시 모니터에 빠져들었다.

    며칠 뒤 나는 메모지에 적힌 약도를 들고 J의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과 벚꽃의 색이 비슷한 계열로 보이는 어스름 녘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일어날 일과 마음의 동요를 예상하지 못했다. '뭐 그깟 고양이 한 마리가 대수겠어?' 정도의 마음가짐이었으니까. 그저 쓰지 않는 교자상 하나 물려받으러 가는 것처럼 미약한 떨림이 있을 뿐이었다. J의 집으로 가는 길에 함께 살게 될 네 존재를 떠올려보기도 했는데, 무성영화를 보듯 감각 몇 개가 빠진 느낌이었다. 애써 무심한척하려는 내가 자꾸만 내게 들켰다. 마음이 너무 경직된 것 같길래 오르막을 오르며 '생명'이란 말을 가만히 떠올렸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어떤 이미지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어릴 적 키웠던 병아리 '깨비'였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이미지가 여섯 살 때 키우던 깨비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는데 그러다가 '깨비'를 물어 죽인 길고양이와 마당에 떨어진 몇 방울의 피가 생각나 멍한 상태에 휩싸였다.

    오셨어요?

    가로등 아래 J는 빨간 가방과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J를 보자마자 모호한 두려움과 흥분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때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안부 인사와 몇 가지 당부를 J가 한 것 같은데 기억나질 않았다. J가 입만 벙긋거리는 유치한 장난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가방은 이미 내 손에 건네진 상태였다. J는 어느새 손을 모으고 두 발짝 떨어져 있었다. 두 발짝의 의미가 무섭도록 명확해졌다. 계약서도 어떤 사례도 없이 순식간에 성사된 너의 양도. J가 작별의 손을 흔들자 길가의 차 소리를 시작으로 소리가 돌아왔다. 가방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가방은 어깨에 멜 수 있는 형태였다. 옆쪽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게 구멍도 하나 나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너는 J와의 이별에도 가방 안에서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다. 가방 옆면에 난 구멍으로 슬쩍 쳐다본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진회색의 네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털 색깔 때문인지 실루엣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어둠 속에 도사린 네 눈이 옥빛으로 빛났다. 살아있는 눈을 보고 나서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쩌지. 그런 나를 안심시키듯 J는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처음엔 봐도 못 본 척해주세요. 있어도 없는 척해주세요. 쿠우는 겁이 많으니까.

    J와 헤어진 너는 택시 안에서도 오랫동안 기척을 숨겼다. 문 앞에 놓여 있는 갓난아이를 발견한 총각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노을에 도로가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고양이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당연하지. 짐승이니까. 내가 비염이라 그런가? 냄새가 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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