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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그리스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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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783 pages8 hours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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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미국에서 50년 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위!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벤허』의 모태가 된 원작 소설을 만나다

『벤허』는 1880년 출간되었을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았다. 이 책은 주인공 유다 벤허의 파란만장한 삶에 성서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낸 방대한 역사소설인데, 당시 미국 문학계에서 역사소설은 한물 건너간 장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판매량이 부진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대중이 읽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소설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친구의 음모로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한 벤허의 고난과 복수의 삶이 예수의 삶과 맞물리는 과정,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는 벤허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월리스는 역사적‧종교적 사실에 충실하게 심혈을 기울인 이 작품을 통해 훌륭한 소설은 재미를 주는 동시에 교육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19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소설로 평가받은 이 작품은 성서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으며, 연극으로 각색되어 브로드웨이에서 20년 이상 장기 상연되었다. 1959년 MGM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는 수천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1960년 아카데미 11개 상 이라는 역사상 최다 수상을 이루었다. 또한 소설로서는 교황 레오 13세의 축성을 받는 최초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 『벤허』를 완역본으로 만나 보자.

Language한국어
Publisher현대지성
Release dateAug 2, 2016
ISBN979118714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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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허 - 루 월리스

    저자 루 월리스 (Lew Wallace, 1827.4.10 ~ 1905.2.15)

    루이스 월리스는 1827년 4월 10일 인디애나 주 브룩빌에서 데이빗 월리스와 에스더 월리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법률을 공부하여 법률가가 된 후 지방정계에도 진출한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 해당하던 이 시기에 월리스는 학업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반면에 독서와 글쓰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주의회 의사당 도서관에 틀어박혀 다양한 책들을 읽었고 나중에는 무엇이든 독학으로 깨우칠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재능은 1873년, 20년 전 시작한 미완성 첫 작품 『백색의 신(The Fair God)』을 다시 써서 완성하고부터 꽃피기 시작했다. 월리스의 재능을 알아본 출판사가 곧바로 작품을 출간하였고 2년 동안 15만부가 팔려나갔다. 이러한 성공으로 작가로서 자신감을 얻은 월리스는 곧 다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873년부터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동방박사 이야기의 연작을 구상했는데, 소설의 후반부는 예수의 이야기와 가상의 인물 유다의 모험담을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1878년 뉴멕시코 주지사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행종을 돌보면서, 『벤허』를 탈고하였다.

    『벤허』는 1880년 출간되었는데, 처음에는 비평가들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았다. 당시 미국 문학계는 이미 리얼리즘 시대에 접어들었으므로 역사소설은 한물 건너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판매량이 부진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판매량이 증가했고 많은 대중이 읽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결국에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벤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가 출판될 때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소설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1881년 월리스는 터키 공사로 임명되었다. 월리스는 터키에 주재하는 동안 처음으로 중동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만 의존했던 작품 속 묘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기뻐했다. 1885년 터키 공사 자리에서 물러나 귀국한 월리스는 공직에서 은퇴하고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썼다. 말년에는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던 중 위암에 걸려 1905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자서전은 아내 수전의 손을 빌려 이듬해에 완성된 후 출판되었다.

    옮긴이 서미석

    서울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20년 이상 전문번역가로 활동한 베테랑 번역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디스 해밀턴), 핀란드의 신화적 영웅들 『칼레발라』(엘리아스 뢴로트),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토머스 불핀치), 『러시아 민화집』(알렉산드르 아파나셰프), 『아이반호』(월터 스콧), 『북유럽 신화』, 『호모쿠아에렌스』, 『십자군 전쟁-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성전기사단과 아사신단』,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 『로빈후드의 모험』등 문학, 역사, 신화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번역하였고, 특히 문학 작품의 번역에 있어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았다.

    디자인 디자인집 02-521-1474 www.designzip.co.kr

    일러두기

    1. 히브리어에서 Ben은 ‘~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벤허는 후르 가문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본문에 나오듯 성서 표기대로라면 ‘벤훌’ 또는 ‘벤후르’가 맞으나 영어식 발음에 익숙하므로 벤허로 표기했다.

    2. 본문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헤롯 왕이 죽은 후 유대는 시리아의 속주가 되었으므로 시리아는 총독이, 유대는 그 아래 직급인 프로쿠라토르(지방행정장관)가 통치했다. 따라서 당시 유대의 프로쿠라토르였던 그라투스나 빌라도의 직위도 ‘지방행정장관’으로 번역함이 마땅하나 성경에 따라 관습적으로 쓰이고 있는 ‘총독’으로 번역했다.

    3. 작품에 나오는 성경 인명이나 직접 인용문은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인용했고, 간접 인용문은 문장에 맞게 적절히 옮겼다.

    4. 옮긴이 주는 각주로 처리했다.

    5. 원서는 Wilder Publications에서 출간한 『Ben-Hur: A Tale of the Christ, Complete and Unabridged Paperback』를 선택하여 번역했고, 소제목들은 다른 판본들을 참고하여 본문의 내용을 잘 드러낼 수 있게 일부 수정했다.

    incover

    등장인물

    1. 유다 벤허 : 유대 왕가의 후손인 예루살렘의 귀족. 이타마르의 아들. 로마인들에 의해 갤리선 노예로 전락했다가 나중에 전차경주 선수가 되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다. 벤허라는 이름은 솔로몬 왕 시대에 온 이스라엘 지역의 관리를 지휘하는 열두 장관 가운데 하나인 벤훌에서 유래한 히브리 이름이다. 또한 ‘하얀 린넨의 아들’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작품 속에서 처음 소개될 때 ‘하얀 린넨’ 의복을 걸친 17살 소년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쓰고 발음하기가 쉬워서 벤허라는 성서 속 이름을 선택했다고 한다.

    2. 벤허의 어머니 : 남편과 일찍이 사별했지만 꿋꿋하게 두 자녀를 키운다. 유다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는다.

    3. 티르자 : 유다의 여동생

    4. 시모니데스 : 유다의 생부인 이타마르의 충실한 노예. 안티오크에서 거상이 된다.

    5. 에스더 : 시모니데스의 정숙한 딸. 유다의 아내가 되어 유다의 자식들을 낳는다. 작가의 어머니인 에스더 월리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6. 말루크 : 시모니데스의 하인. 유다의 친구가 된다.

    7. 암라흐 : 이집트 노예. 벤허 가문이 몰락하기 전 유다의 유모이자 하녀였다.

    8. 메살라 : 로마의 귀족이자 로마 세금 징수관의 아들. 유다의 어릴 적 친구이자 적수.

    9. 발레리우스 그라투스 : 유대의 4대 총독. 유다에게 암살 미수의 죄명을 뒤집어씌워 재산을 몰수하고 갤리선의 노예로 보내버린다.

    10. 퀸투스 아리우스 : 로마 함선의 사령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유다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준 후 양자로 입양하여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

    11. 발타사르 : 이집트인. 성서 속에 나오는 동방박사 중 한 사람으로 인도인 멜키오르와 그리스인 가스파르와 함께 나사렛 예수의 탄생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온다.

    12. 이라스 : 발타사르의 아름다운 딸. 아리우스의 아들이라는 벤허의 지위와 재산 때문에 그를 유혹하지만 나중에 배신하고 돌아선다.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 메살라의 정부가 되지만 후에는 그를 죽인다.

    13. 일데림 족장 : 유다가 안티오크에서 전차경주에 출전할 수 있게 말들을 빌려주고 환대해 준 아랍인 족장.

    14. 본디오 빌라도 :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후임 총독. 취임조치로 유다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하 감옥에서 풀어준다.

    15. 토르드 : 유다를 죽이도록 메살라가 고용한 북구인. 메살라를 배반하고 유다를 살려준다.

    16. 나사렛 예수 :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 마리아의 아들.

    17. 마리아 : 예수의 어머니. 나사렛 요셉의 아내.

    18. 나사렛 요셉 : 유대인 목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

    역자 서문

    21세기에 읽는 벤허의 의미

    학창시절에 벤허를 보고는 그 방대한 스케일과 서사의 매력에 빠져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감동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여전히 뚜렷이 떠오르지만 주연배우였던 찰턴 헤스턴의 그 푸른 눈빛이 잊히지가 않는다. 메살라를 향한 미칠 듯한 증오의 눈길과, 에스더를 향한 사랑의 눈길, 또 원수를 갚고도 어머니와 여동생의 끔찍한 상황을 알고 절망하는 눈길, 죽을 것 같던 순간 예수님이 건네주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예수님과 조우하는 눈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눈길 등 모든 것들을 그 강렬한 눈빛에 담아내었다. 그래서 그 감동을 잊지 못해 가끔 비디오로 보고는 했었는데, 최근 어느 날 밤에 또 불현듯 보고 싶은 생각에 다시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게도 며칠 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벤허를 완역하려고 하는데 번역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원전의 분량과 내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왠지 이끄심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번역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원작이 소설이었다는 것과, ‘A Tale of Christ’라는 부제가 달린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작품을 쭉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본 영화가 사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원작과는 좀 다르게 각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흐름은 같지만 이라스와 암라흐 등 중요인물이 빠져 있고, 작품 중반부에 몇 쪽 분량으로 등장하는 전차경주 장면이 영화에서는 거의 클라이맥스처럼 상당히 길게 펼쳐져 있어서 스펙터클한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벤허가 시모니데스나 발타사르와 벌이는 논쟁 등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며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이 중요한 모티브임에도 잘 부각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작품은 월리스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며 자신이 이해한 것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내려갔다고 생각된다. 허구 인물인 유대인 귀족 벤허를 내세워 그의 상세한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깔려 있다. 친구 메살라의 음모로 갤리선의 노예 신세로 전락한 벤허는 우여곡절 끝에 로마 사령관의 양자가 되어 높은 신분을 회복하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 오랜 숙적과 전차경주를 벌여 복수를 한 후,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 때문에 마음에서 증오를 몰아내지 못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며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다. 벤허의 이야기는 같은 유대인이며 연령이 비슷한 예수님의 이야기와 나란히 전개된다. 벤허의 삶과 예수님의 삶을 병행하여 보여주면서 지극히 세상에 속한 벤허라는 한 인물이 영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벤허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겪거나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한다. 사랑과 증오, 우정과 배신의 극단적 감정을 오가며 최하층 계층인 노예로 전락했다가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 막대한 부와 힘을 얻게 된다.

    저자 월리스는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과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으로 살다 가신 예수님의 참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부와 명예와 힘이 인간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세상의 방식에 맞서 구원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는 예수님의 방식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계속 질문을 던지며 고뇌하는 벤허의 모습은 어쩌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 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과정일 것이다. 예수님 시대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보여주는 힘과 치유의 기적에 이끌려 그분을 따라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피하고 싶은 모든 고통과 어려움들을 일시에 날려 보내고 행복의 전제조건이라 여겨지는 건강이나 재물, 권세 등을 계속 청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믿음이 깊어져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군중의 태도로 그분을 따를 것인가, 제자의 태도로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서 고통을 몰아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나약하고 삶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상황에 속수무책인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 선물로 주어진 우리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알려주신 분이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길을 삶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주셨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서두 부분과 뒷부분에 강조되어 있다. 앞부분에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는데, 원래 월리스가 처음에 구상했던 것은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출발점이었다. 각기 인도인, 그리스인, 이집트인으로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은 세상의 기존 가치관이 아닌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갖고 사랑으로 인생을 살기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들만 구원의 대상이라고 믿으며 지나친 선민의식에 빠져 있던 유대인을 넘어서 온 세상을 구원할 보편적 신앙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음을 발타사르의 입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지극히 세상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던 벤허는 마지막 장면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하며 내적인 변화를 겪는다. 예수님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유한한 인생도 영원함 안에서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하늘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지금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사랑하려고 애쓰며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당신의 삶을 통해 직접 보여주셨다. 하지만 세상은 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혹하다. 힘과 지배의 논리로 지탱되는 세상에 사랑이라는 새로운 논리는 체제를 뒤엎을 만큼 강력하므로 결국 모든 기득권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회피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 당신의 방식으로 맞선다. 세상이 육신은 죽여도 영혼마저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고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벤허는 여전히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힘으로 드러내지 않을까 고대하며 계속 지켜보다가 상황이 급박해지자 자신이 무력으로 구해 내면 받아들이겠냐고 묻기까지 한다. 그러나 일순간 깨달음을 통해 예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이후에 그의 삶은 달라진다. 마음속 가득한 복수에 대한 집념과 증오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에게 재물과 힘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서 쓰게 된다.

    나 또한 신앙인으로서 때로는 성서 속에 단편적으로 드러난 모습 말고 눈앞에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나 눈빛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 그분을 깊이 알고 이해하고 따르기가 쉬울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냥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저 높은 곳 위에 고고하게 앉아 흠숭과 추앙의 대상으로 외롭게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에서 내게 말을 거시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그분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될 때 사랑하게 되고 그분처럼 살고 싶은 열망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작품은 그것을 펼쳐서 보여준 느낌이 든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신앙인으로서 빠지기 쉬운 유혹, 그분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보여주고자 했던 길을 벤허라는 한 인물을 통해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나는 저자가 성서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모티프로 하여 이렇게 방대한 소설을 엮어냈다는 점이 놀랍다. 그리고 장면마다 등장하는 세부 묘사가 너무도 세밀하여 마치 눈앞에 그려질 듯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택의 모습, 갤리선, 전차경기장, 사막의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 예루살렘 거리의 모습 등 마치 독자가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리스는 예루살렘은커녕 로마나 중동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료에 의거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소설이 발표되고 난 후 터키 공사로 재직하며 작품의 배경이 된 곳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가 묘사한 부분들을 하나도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사실 서양문화의 근간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신화와 성경 속 인물과 이야기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거기에 이집트와 인도의 신화와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방대한 배경지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게다가 130여 년 전에 쓰인 데다 현학적인 표현이 많아서 번역하기가 까다로웠다. 또한 소설이다 보니 우리말로 전달하는 것 못지않게 작가의 문체나 표현을 살리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편의상 만연체 문장을 쪼갠다거나 짧은 단문들을 이어붙이지 않고 가급적 원문의 흐름 그대로 이어가려고 했다. 원문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는 의역의 균형점을 찾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맞춰 주를 달아야 할지가 고민이 되었는데 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잦은 역주가 가독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본문의 흐름상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서만 최소한으로 달았다.

    요즘처럼 흥미와 재미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 독자에 따라 이 소설이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벤허가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르는 심리적 과정이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굳이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근원적 질문을 한 번이라도 던져본 사람들이라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게 힘이 곧 모든 것이라고 생각되던 시대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과 사랑이라는 대안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한 사람의 위대한 여정과 그 여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 한 사람이 남긴 향기와 발걸음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이끌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서미석

    1. 사막으로 향하는 길

    주블레 산맥은 길이가 80킬로미터가 넘는데다 폭이 매우 협소하여 지도에서 보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기어가는 애벌레와 비슷해 보인다. 붉은색과 흰색 지층으로 이루어진 벼랑 위에 서서 해가 솟아오르는 길 아래쪽을 굽어보면 아라비아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여리고의 포도재배업자들이 그리도 싫어하는 동풍이 아득한 옛날부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산이 그렇게 바람막이가 되어준 덕분에 서쪽의 모압과 암몬의 목초지는 사막으로 바뀌지 않았고, 산자락에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동풍에 실려 온 모래가 수북이 쌓인다.

    남유대와 동유대의 모든 것은 아라비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역시 아라비아어로 산을 의미하는 예벨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와디의 발원지이다.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수많은 골짜기는 지금은 그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메카로 오가는 시리아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먼지투성이 길에 불과한 로마 가도를 가로지르며 심심산골을 이루고, 우기가 되면 골짜기에 불어난 급류가 요르단 강이나 종착지인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이러한 골짜기 가운데 예벨 끝단에서 솟아올라 북동쪽으로 뻗어나가다 얍복 강바닥이 되는 골짜기가 하나 있었는데 한 나그네가 그곳을 지나 사막의 고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독자들은 이 나그네를 주목하기 바란다.

    나그네는 생김새로 보아 족히 마흔 다섯은 되어보인다. 가슴 위를 더부룩하게 뒤덮은 턱수염은 한때는 짙은 검정색이었겠지만 지금은 백발이 희끗희끗하게 서려 있다. 볶은 커피열매만큼이나 짙은 갈색 얼굴은 붉은 카피에(이 당시 사막의 후예들은 머리두건을 이렇게 불렀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시선을 들 때마다 크고도 검은 눈망울이 드러난다. 동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다란 옷을 걸치고 있지만 커다란 단봉낙타를 타고 작은 차양 아래에 앉아 있었으므로 어떤 모양인지는 더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온갖 장구를 갖추고 짐을 싣고 사막으로 향하는 낙타를 본 서양 사람들은 그 강렬한 첫인상에서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한다. 진기한 것도 자주 보면 느낌이 무디어지기 마련이지만 낙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꽤나 오래 간다. 몇 년 동안 사막의 유목민인 베두인 족과 함께 지내고, 대상과 오랜 여행을 한 뒤에도 어디에서나 이 위풍당당한 동물과 마주치게 되면 멈춰 서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게 될 것이다. 낙타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생김새에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동작이나 조용한 걸음걸이나 널따란 몸통이 매력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낙타가 매력적인 점은 배가 험한 바다를 거칠 것 없이 나아가듯 아무도 쉽사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사막을 자유롭게 활보하는데 있다. 낙타는 사막의 온갖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타를 보며 사막의 신비로움에 이끌리고 감탄하는 것이다. 지금 골짜기에서 나타난 낙타 역시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색깔과 키, 발굽의 넓이,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뒤덮인 커다란 몸집, 백조처럼 굴곡이 진 길고 가느다란 목, 양미간은 넓지만 주둥이는 숙녀의 팔찌도 끼울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머리, 길고도 가볍게 내딛는 탄탄하고도 고요한 발걸음은 흠잡을 데 없었다. 그 모든 것이 키루스(Cyrus)¹) 대왕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몹시 귀한 시리아 혈통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굴레는 평범한 것으로서, 이마는 진홍색 술장식으로 뒤덮여 있고 목에는 댕그랑거리는 은방울이 달린 청동 사슬이 감겨져 있었다. 그러나 굴레에는 낙타를 타는 사람이 잡을 고삐나 몰이꾼이 이끌고 갈 끈도 달려 있지 않았다. 잔등에 올려놓은 가마는 창시자인 동방의 사람들보다도 다른 곳의 사람들이 그것을 더 유명하게 만든 발명품이었다. 그것은 1미터 가량 되는 나무 상자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양쪽에 매달려 있도록 균형이 잡혀 있었다. 안쪽 공간은 보드라운 안감을 대고 카펫을 깔아 낙타 주인이 앉거나 반쯤 기대어 누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가마 위는 초록색 차양으로 뒤덮어 햇빛을 차단했다. 수많은 매듭과 묶음으로 등과 가슴에 단단히 매어놓은 널따란 혁대와 뱃대끈 덕분에 가마는 움직이지 않고 잘 고정되어 있었다. 구스²)의 영리한 후예들은 사막의 이글거리는 길을 그렇게 안락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냈고, 덕분에 여행길에서 의무감 못지않게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1) 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재위 BC 559-BC 529). 성경에는 고레스 왕으로 나온다.

    2) Cush. 노아의 아들 함(Ham)의 자손(창세기 10:6)

    나그네를 태운 낙타는 옛 암몬인 엘 벨카 경계를 지나쳐 골짜기의 마지막 입구를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때는 아침이었다. 앞에는 흐릿한 연무에 반쯤 가린 태양이 떠 있고,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은 아직 한참 더 가야 나타날 것이고, 그 지역에는 키 작은 관목들이 산재해 있다. 지표면은 화강암 바위와 회갈색 돌들로 뒤덮여 있고 시들어가는 아카시아와 낙타 잔디 수풀이 간간이 흩어져 있다. 그 너머로는 참나무와 가시나무와 진달래가 줄지어 있는데,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웅크린 모습이었다.

    길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낙타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머리는 지평선을 향해 곧추 세운 채 넓은 콧구멍으로 몹시도 메마른 바람을 들이마셨다. 가마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덜거덕거렸고 파도에 휩쓸리는 배처럼 느껴졌다. 군데군데 쌓여 있던 바싹 마른 나뭇잎들은 발굽에 밟혀 부스럭거렸다. 때로는 쑥 향기가 온 사방에 향긋이 퍼졌다. 종달새와 딱새와 바위갈색제비가 힘차게 날아올랐고, 흰 자고새들은 지저귀며 길섶에서 달려 나왔다. 아주 가끔은 여우나 하이에나가 달려와 사막의 침입자들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저 멀리 오른쪽으로는 예벨 산맥의 구릉들이 솟아 있고, 진주빛이 감도는 회색 산꼭대기 부분은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가다 잠시 후에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 위로는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큰 원을 그리며 유유히 날고 있다. 그러나 초록색 차양 아래의 낙타 주인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어느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낙타와 마찬가지로 그 사나이 역시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것 같았다.

    두 시간 동안 낙타는 속도를 유지하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나그네는 몸을 움직이거나 주위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 사막에서는 거리를 잴 때 마일이나 리그가 아니라 시간을 의미하는 사트나, 쉼터를 의미하는 만질로 나타낸다. 1사트는 대략 17킬로미터, 1만질은 72킬로미터에서 12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낙타가 가는 속도이고, 시리아 순종 낙타의 경우 15킬로미터쯤은 단숨에 주파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웬만한 바람마저 따라잡는다. 얼마나 빨리 나아가는지 주변의 풍경이 휙휙 바뀔 정도다. 산은 연푸른 리본처럼 서쪽 지평선을 따라 뻗어 있다. 진흙과 굳은 모래가 엉겨 형성된 오래된 언덕이 여기저기에 솟아 있다. 가끔 현무암 바위들이 드넓은 평원에 맞서는 산의 전초기지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온통 모래였다. 때로는 바닷물에 씻긴 해변처럼 완만하다가도 때로는 굽이치는 파도처럼 솟아오른 모습이 일렁이는 잔물결 같기도 하고 길게 굽이치는 너울 같기도 했다. 대기의 상태 역시 그렇게 시시각각 변했다. 이미 중천에 뜬 태양의 열기로 이슬과 안개는 자취를 감추었고, 차양 아래의 나그네를 스치는 산들바람은 어느새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태양의 열기로 달구어진 대지 곳곳에서 유백색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다.

    낙타는 잠시 멈추거나 쉬지도 않은 채 꼬박 두 시간을 갔다. 이제 초목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면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모래는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곱게 부서졌다. 어느덧 산은 보이지 않고 특별히 눈에 띄는 표지라고는 없었다. 뒤로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는 이제 북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그림자 주인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리고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그네의 행동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즐거움을 찾아 사막을 찾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깃발 못지않게 죽은 사람들의 뼈가 수북이 묻혀 있는 길을 따라 사막을 오가는 이유는 생업과 볼일 때문이다. 우물과 우물 사이에, 목초지와 목초지 사이에 난 길도 그러했다. 가장 노련한 족장은 길이 없는 지역에 홀로 있게 될 때 심장이 점점 빨리 뛰며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타난 이 사내 또한 즐거움을 찾아 길을 나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도망자인 것 같지도 않다. 쫓기는 상황에서 제일 흔히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 호기심일 텐데 그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인간은 외로움을 느낄 때 어떤 것과도 친해지고 싶어 한다. 예를 들면 개를 말벗으로 삼거나 말을 친구처럼 대하여 마구 끌어안거나 사랑의 말을 퍼부어도 전혀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사내는 낙타에게 그러한 애정공세를 퍼붓기는커녕 쓰다듬거나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낙타는 정확히 정오가 되자 스스로 걸음을 멈추더니 울음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짐이 너무 무거운데 항의하거나 돌봐 달라고 하거나 쉬게 해 달라고 애원할 때 내는 특유의 소리였다. 그제야 낙타 주인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몸을 움직였다. 가마에 드리운 커튼을 들어올려 해를 바라본 후 그곳이 약속 장소가 맞는지 확인하기라도 하듯 사방을 오래도록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만족했는지 드디어 도착했구나!라고 말하듯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도를 끝내자 낙타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그의 목에서는 틀림없이 욥³)이 가장 총애하던 낙타들이 냈을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크! 이크! 무릎을 꿇으라는 신호였다. 낙타는 킁킁거리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사내는 호리호리한 낙타의 목을 딛고는 모래 위로 내려섰다.

    3) 온갖 가혹한 시련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킨 인물로 잘 알려진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 노아,다니엘과 더불어 의인의 전형으로 꼽힌다.

    2. 동방박사들의 만남

    이제야 모습이 훤히 드러난 사내는 그다지 큰 키는 아니지만 건장해보였다. 머리에 두른 카피에를 고정시킨 비단 띠를 풀고 술장식이 달린 접힌 부분을 뒤로 젖히자 거무스름한 강인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낮고 넓은 이마, 매부리코,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눈 꼬리, 여러 가닥으로 꼬아져 어깨로 떨어지는 윤기 흐르는 풍성한 머리칼로 보아 어느 혈통인지 확연히 알 수 있다. 파라오나 더 후대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나, 이집트 민족의 시조인 미스라임의 후예인 것이 분명했다. 그는 소매통이 좁고 앞이 트였으며 발목까지 내려오는데다 깃 아래로 가슴까지 수가 놓인 흰 면 셔츠인 카미스(kamis)를 입고 있었다. 그 위로는 지금처럼 당시에도 아바(aba)라고 불렸을 갈색 모직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아바는 긴 자락에 짧은 소매가 달린 겉옷으로서 면과 비단 혼방으로 안감을 대었고 가장자리에는 노란색 끝단을 둘렀다. 신발로는 부드러운 가죽 끈이 달린 샌들을 신고 있었고, 허리에는 카미스를 묶는 장식 띠를 두르고 있었다. 표범이나 사자들은 물론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람들이 자주 출몰하는 사막을 홀로 여행하면서도 아무런 무기 없이, 심지어 낙타를 모는데 쓰는 지팡이조차 없이 가는 점이 매우 특이해 보였다. 그런 까닭에 적어도 그가 평화로운 임무를 띠고 왔으며, 유달리 대담하거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피곤하게 낙타를 타고 오느라 사지가 뻣뻣이 굳었으므로 나그네는 손을 비비고 발을 굴러 몸을 풀었다. 낙타는 초롱초롱한 두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듯 조용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낙타 주위를 빙 돌며 자주 멈춰 서서 손등으로 해를 가린 채 눈길이 미치는 끝까지 사막을 살폈다.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자 얼굴에는 약간 실망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약속한 것은 아니어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도대체 안온한 집을 놔두고 그렇게 외딴 곳에서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인지 사뭇 호기심을 자아낸다.

    실망한 기색을 보이긴 했어도 나그네는 일행이 나타나리라 굳게 믿고 있기라도 하듯 먼저 가마로 가서 올 때 타고 왔던 상자의 반대편에서 해면과 작은 물병을 꺼내어 낙타의 눈과 얼굴, 콧구멍을 닦아 주었다. 그 일이 끝나자, 이번에는 상자에서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쳐진 둥근 천, 막대 한 다발, 탄탄한 장대를 꺼냈다. 몇 개의 연결부위를 이어 한데 합치자 장대는 머리보다도 높은 중심 기둥이 되었다. 기둥을 바닥에 박고 막대를 기둥 주위에 설치한 후 그 위로 천을 씌웠더니 말 그대로 집과 다름없었다. 왕족이나 족장의 것에 견주어 규모는 훨씬 작지만 다른 점은 흠잡을 데 없었다. 그는 가마에서 다시 네모난 깔개를 꺼내와 햇빛이 드는 쪽 바닥에 깔았다. 그러고 나서는 천막 밖으로 나가 전보다 더 주의 깊게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칼 한 마리가 멀리서 평지를 가로질러 달려가고 독수리 한 마리가 아카바 만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 뿐 드넓은 창공과 그 아래 사막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낙타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사막에서는 잘 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집에서 멀리도 떠나왔구나, 제일 빠른 바람에도 뒤지지 않는 녀석아. 아주 멀리 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좀 더 기다려보자꾸나.

    사내는 이제 안장주머니에서 콩을 좀 꺼내어 낙타 코 아래에 매달린 자루에 넣어주었다. 충실한 낙타가 먹이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자 고개를 돌려 높이 치솟아 이글거리는 태양빛 때문에 흐릿한 사막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는 다시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꼭 올 거야. 나를 이끌어 주신 분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실 테니. 그동안 식사준비나 해야겠다.

    좌대 안쪽에 있던 자루와 버드나무 바구니에서 식재료들을 꺼내놓았다. 종려나무 잎으로 촘촘히 짠 큰 접시, 작은 가죽주머니에 담긴 포도주, 훈제해서 말린 양고기, 씨 없는 시리아산 석류, 중앙 아라비아의 과수원에서 재배한 놀랄 정도로 맛있는 엘 셸레비 대추야자, 다윗의 ‘치즈 열 덩이’⁴)와도 같은 치즈, 도시 빵가게에서 사온 누룩 빵 등 가져온 모든 것을 꺼내어 천막 아래 깔개에 차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로 식사 중에 손님들이 무릎에 놓을 수 있도록 동방의 예법을 아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 장의 명주 천을 펼쳐 놓았다. 세 장의 명주 천은 식사할 사람들의 수를 의미하므로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짐작이 간다.

    4) 사무엘상 17:18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 사막의 동쪽 지평선에 까만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얼어붙은 듯 그대로 멈춰 섰다. 눈은 휘둥그레지고 불가사의한 존재를 느끼기라도 한 듯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까만 점은 점점 커져서 처음에는 주먹만해지더니 마침내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잠시 후에는 자기 낙타와 똑같이 생긴 늘씬하고 하얀 낙타가 등에 인도인이 탄 가마를 싣고 흔들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집트인은 두 손을 가슴 위에 포개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다! 외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고, 영혼은 경외감으로 가득 찼다.

    이방인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멈춰 섰다. 그 역시 막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낙타와 천막과, 천막 입구에서 기도를 올리며 서 있는 사나이를 보았다. 새로 나타난 이방인 역시 손을 모으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낙타의 목을 딛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서로를 향해 다가간 두 사람은 잠시 상대를 바라보다가 껴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각자 오른손은 상대의 어깨에, 왼손은 허리에 두르고는 턱을 왼쪽 가슴에 댔다가 오른쪽 가슴에 대었다.

    참되신 하나님의 종이여, 평화를 빕니다! 이방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참된 믿음의 형제여! 평화를 빕니다! 이집트인은 벅찬 마음으로 대답했다.

    막 도착한 이방인은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야윈 얼굴에 눈은 움푹 들어갔고, 머리와 수염은 백발이 성성했고, 얼굴색은 계피와 청동이 가미된 색조를 띠었다. 역시 무기는 지니지 않았고, 인도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챙 없는 모자 위에 숄을 겹겹이 감은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발목 언저리에서 오므라드는 헐렁한 바지가 밖으로 보일 정도로 아바가 좀 더 짧다는 점을 제외하면 입고 있는 의복은 이집트인의 것과 거의 같았다. 발에는 샌들 대신에 붉은 가죽으로 만든 뾰족한 슬리퍼 비슷한 것을 신고 있었다. 슬리퍼를 제외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의복이 흰색 리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풍채는 어찌나 고귀하고 위풍당당하며 엄격해 보이는지 인도 서사시에 등장하는 가장 위대한 금욕적 영웅 비슈바미트라(Visvamitra)⁵)가 환생한 것 같았다. 그는 아마도 철두철미 브라흐마(Brahma)의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화신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오직 눈길에만 자애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이집트인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을 때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5) 힌두 전설에 나오는 현자. 원래는 크샤트리아 계급의 왕이었으나 현자 바시슈타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무력보다 정신력이 강함을 깨닫고 고행을 통해 브라만이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위대하십니다! 포옹을 끝낸 인도인이 소리쳤다.

    자기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는데 놀란 이집트인이 대답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는 복되도다! 하지만 기다려봅시다. 기다립시다. 보세요, 저기 또 다른 이가 오고 있군요!

    두 사람의 시선은 북쪽으로 향했는데, 이미 세 번째 낙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낙타처럼 하얀 낙타가 배처럼 기우뚱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서서 기다렸다. 마침내 새로 나타난 이가 도착하더니 낙타에서 내려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오 형제들이여, 평화가 함께 하기를! 새로 온 이는 인도인을 끌어안으며 인사했다.

    그 말에 인도인이 대답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이는 앞서 온 이들과 같지 않았다. 체격은 더 호리호리했고, 얼굴색은 희었다. 굽슬굽슬한 밝은 머리칼은 작지만 아름다운 머리를 왕관처럼 완벽하게 뒤덮고 있었다. 짙푸른 눈에 감도는 온기는 섬세한 마음과 따뜻하지만 용감한 천성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또한 아무런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걸쳤어도 우아해 보이는 티레풍 외투 아래로 짧은 소매에 목이 깊이 파이고 허리에서 끈으로 묶고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튜닉이 드러났다. 목과 팔과 다리는 맨살이 드러났고 발에는 샌들을 걸치고 있었다. 몸에 밴 진중한 태도와 사려 깊은 어투로 보아 아마도 쉰 살은 족히 넘어보였다. 몸집과 정신의 총기는 정정했다. 그가 어느 종족 출신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테네 출신이 아니라면, 그곳 출신의 후예임이 틀림없었다.

    포옹을 풀자 이집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령께서 저를 이곳으로 제일 먼저 보내셨기에 제가 두 분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뽑힌 것 같습니다. 천막을 쳐놓았고 식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 함께 드시지요.

    양손으로 두 사람을 잡고 천막으로 안내한 이집트인은 신발을 벗기고 발을 씻어준 후 손 위에 물을 부어주고 나서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도 손을 씻은 후 말했다. 형제들이여, 오늘 임무를 마저 끝내려면 기력을 회복해야 하니 먼저 식사부터 하십시다. 먹으면서 각자 이름과 출신지를 밝히고 어떻게 부르심을 받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누기로 하지요.

    그는 두 사람을 식사가 차려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서로 마주 보고 앉게 했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얹은 채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저희를 지켜 주소서.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어 서로 바라보았다. 각자의 언어로 기도한 탓에 처음 듣는 언어인데도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완벽히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영혼은 신성한 감동으로 전율했다.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3. 그리스인 가스파르가 전하는 말 - 믿음

    그 당시 연력으로 표현하면 방금 묘사한 만남은 로마력 747년에 일어났다. 그 달은 12월이었으므로 겨울이 지중해 동쪽 전 지역에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런 계절에 사막을 여행하다보면 얼마 못가 몹시 허기지기 마련이다. 지금 천막 안에 있는 일행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들은 몹시 시장했으므로 양껏 먹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포도주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를 마련한 이집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친구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큼 흐뭇한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될 테니 서로 통성명이나 하십시다. 괜찮으시다면, 제일 나중에 오신 분이 먼저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자 그리스인이 생각에 잠긴 듯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너무 이상해서 어디서부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니까요. 그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점과 그 일에 늘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는 거죠. 저를 보내신 목적을 생각할 때마다 제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올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그리스인은 가슴이 벅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마음에 시선을 떨구었다.

    이곳에서 먼 서쪽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에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주었고,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예술, 철학, 웅변, 시,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 여러분, 그 나라의 영예는 완전해진 글자로 길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찾아내어 선포하게 될 그분께서 바로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⁶) 제가 말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그리스입니다. 저는 아테네 사람 클레안테스의 아들 가스파르입니다.

    6)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약성서는 처음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그는 계속 말했다. 우리 민족은 학업에 전념하였고 저 역시 같은 열정을 물려받았습니다.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대한 두 철학자가 있는데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깃들어있는 영혼과 그 불멸성에 대해 알려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한없이 정의로우신 유일한 신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많은 학파들이 논쟁한 많은 주제들이 있었지만 저는 그것들만이 해답을 얻기 위해 애쓸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님과 영혼 사이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 주제에 대해서 이성은 어느 점까지는, 넘을 수 없는 죽음의 벽까지는 사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죽음의 벽에 도달하면 이성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쳐 모든 이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도 그랬었지요. 그러나 그 장벽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도시와 학파를 떠났습니다.

    이 말에 공감이 된다는 듯 인도인의 야윈 얼굴에 진지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스인은 말을 이었다. 저의 조국 북쪽 지방 테살리아(Thessaly)에는 신들의 거처로 유명해진 산이 있습니다. 저희 고장 사람들이 최고의 신이라 믿는 제우스 신이 사는 곳인데 일명 올림포스(Olympus)라 하지요. 저는 그곳으로 갔는데, 산이 서쪽에서 뻗어 나오다 남동쪽으로 굽은 곳에 있는 언덕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살면서 명상에 매진했습니다. 아니요, 매순간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던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계시였지요.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제 영혼을 다해 간구한다면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응답해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해주시었지요, 그렇고말고요! 무릎에 깐 명주 천에서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인도인이 소리쳤다.

    좀 더 들어주십시오. 그리스인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계속 말했다. 제가 은거하고 있던 동굴의 입구에서는 테르마이코스 만 하구가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지나가던 배에서 떨어진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그는 해안으로 헤엄쳐 왔고 저는 그 사람을 맞아들여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의 역사와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었는데, 제가 그렇게 기도를 드렸던 하나님께서 정말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대손손 그들에게 계명을 주시고, 통치하시고, 왕이 되어 주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던 계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굳은 믿음으로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응답해 주시지요. 인도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언제 응답해 주실지 알 만큼 현명한 이는 별로 없죠! 이집트인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더 많은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최초의 계시 이후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예언자들이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선포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예언자들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곧 예루살렘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끊은 그리스인의 얼굴에서 밝은 표정이 점차 사라졌다.

    "정말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말한 계시와 하나님은 오로지 유대인들만을 위한 분이므로 다시 오실 그분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차 오실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그분은 나머지 세상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시단 말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자랑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렇소,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오.’ 그러나 그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위대하신 분께서 그 크신 사랑과 자비를 한 나라, 말하자면 한 민족에만 한정하실 까닭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는 이 문제에 온 마음을 쏟은 끝에 마침내 그 사내의 자만심을 꺾고 그의 조상들은 온 세상이 알게 되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진리가 살아있게 지키도록 선택받은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유대인이 가버리자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도로 영혼을 정화했습니다. 왕께서 오실 때 그분을 뵙고 경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죠. 어느 날 밤 저는 동굴 입구에 앉아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깨닫고, 제 존재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하려고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 아래 바다에서, 아니 수면을 뒤덮고 있는 어둠 속에서 별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별은 천천히 떠올라 가까이 다가오더니 언덕과 동굴 위에 멈춰 섰고 그 빛이 저를 가득 비추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 가스파르! 네 믿음이 이겼노라! 기뻐하여라. 구원이 다가왔다. 세상 끝에서 온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너는 구세주를 보게 될 것이고 그 분이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을 만나러 나서라. 그리고 그대를 인도하는 성령을 믿으라.’

    그리고 아침이 되자 제 안에 태양보다도 강렬한 성령의 빛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입고 있던 은자의 옷을 벗어 버리고 예전의 옷을 입었습니다. 도시에서 가져와 숨겨두었던 보물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배를 불러 세워 얻어 타고 안티오크(Antioch)에서 내린 후 그곳에서 낙타와 필요한 장구를 샀습니다. 오론테스(Orontes) 강둑을 아름답게 수놓은 정원과 과수원을 지나 에메사, 다마스쿠스, 보스라, 빌라델비아를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자, 형제들이여. 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4. 인도인 멜키오르가 전하는 말 - 사랑

    이집트인과 인도인은 서로 바라보다가 먼저 하라는 이집트인의 손짓에 인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말씀을 잘하시는군요. 저도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했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멜키오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가장 먼저 문자를 가진 언어, 즉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도인입니다. 저희 민족은 지식을 탐구하고, 그것을 세분화하여 발전시킨 최초의 민족이지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종교와 유용한 지혜의 원천으로서 4베다⁷)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베다로부터 브라흐마가 전수해 준 의학, 궁술, 건축, 음악, 예순네 개의 기술을 다루는 우파베다(Upa-Veda)가 생겨났습니다. 신의 계시를 받은 성자들이 알려 주는 베당가(Ved-Anga)는 점성술, 문법, 작시법, 발음, 주문과 주술, 종교의식과 의례를 다룹니다. 현자 브야사(Vyasa)가 쓴 우팡가(Up-Anga)는 창조, 연대기, 지리를 다룹니다. 또한 그 안에는 신들과 반신(半神)들을 영원히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 영웅시도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성스러운 경전인 샤스트라(Shastra)⁸)입니다. 이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저희 민족이 지혜를 꽃피우는데 도움이 될 테지만 저에게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경전들은 인간이 빨리 완벽해지게 할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약속대로 되지 않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경전들은 그 자체로 모든 발전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경전을 쓴 사람들은 인간을 염려한다는 구실을 들어 하늘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은 발견이나 발명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는 치명적인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7) 고대 인도의 종교 지식과 제례규정을 담고 있는 문헌. 브라만교의 성전(聖典)을 총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구전되어 오던 내용을 기원전 1500~1200년에 산스크리트어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인도의 종교, 철학, 우주관, 사회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 · 문학적 가치가 높다 ‘안다’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비드(vid-)에서 파생한 베다(Veda)는 ‘지식’이나 ‘지혜’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기록될 가치가 있는 지식 전체’를, 좁은 의미로는 ‘성스러운 지식이나 종교적 지식’을 의미한다. 《리그베다》,《사마베다》,《야주르베다》,《아타르바베다》를 4베다라고 하는데, 리그베다는 찬가, 사마베다는 노래, 야주르베다는 공물 제의, 아타르바베다는 마법과 주술에 관한 지식을 주로 담고 있다.

    8)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경전 · 지식 · 규범’을 의미한다. 주로 4~5세기 기술 · 전문 서적의 제목에 주로 붙여 사용하는 단어이며, 종교적으로 불교 또는 힌두교에서 논서(論書)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 조건이 신성한 율법이 되자 힌두교 지혜의 등불은 좁은 우물에 갇혀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런 비유를 든 것은 결코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샤스트라에 의하면 최고신은 브라흐마입니다. 우팡가에 나오는 성스러운 시들인 푸라나(Purana)는 덕과 선행, 영혼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만일 형제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그는 공손하게 그리스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신의 민족들이 알려지기 훨씬 전에 하나님과 신성이라는 위대한 두 사상이 힌두 정신의 모든 힘을 빨아들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은 브라흐마, 비슈누(Vishnu), 시바(Shiva) 삼주신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브라흐마가 저희 민족을 창조했는데, 창조 과정에서 네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하계와 하늘에 사람들이 생겨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지상에도 천상의 영혼들이 살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브라흐마 신의 입에서는 신과 가장 닮은 브라만이 튀어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완벽한 상태의 베다가 흘러나왔습니다. 가장 높고 고귀한 브라만 계급만이 그 베다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팔에서는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야(Kshatriya)가 나왔고, 생명이 자리 잡은 가슴에서는 목동, 농부, 상인과 같은 생산계급인 바이샤(Vaisya)가, 비천의 상징인 발에서는 다른 이들을 위해 비천한 일들을 하도록 타고난 농노, 하인, 일꾼, 장인과 같은 농노계급인 수드라(Sudra)가 생겨났습니다. 중요한 점은 태초에 인간이 창조될 때 함께 생겨난 법에 따라 인간은 타고난 계급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브라만으로 태어났더라도 더 낮은 계급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자기 계급의 율법을 어겼을 경우에는 쫓겨나게 되며 같은 처지의 추방자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이 순간, 그와 같이 몰락한 사람의 처지가 어떨지 재빨리 머릿속에 그려본 그리스인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오, 그런 상황에서는 자애로운 하나님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집트인도 동조했다. 그렇죠, 우리의 자애로운 하나님이 절실하죠.

    인도인은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지나가자 그는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극도로 제약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먹을 음식, 복잡한 이름 짓기, 태양을 보도록 처음으로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재생족⁹) 가운데 하나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줄 세 겹의 실을 감기, 제1계급으로의 입문식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성스러운 경문과 엄격한 예식에 따라 거행되었답니다. 저는 계율을 어길까 두려워 걷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잠을 자는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계율을 어길 경우에는 영혼이 벌을 받게 되니까요! 계율을 어기는 정도에 따라 영혼은 낮은 인드라(Indra)에서 가장 높은 브라흐마가 있는 천상의 어느 한 곳으로 가거나 벌레, 새, 물고기, 짐승의 삶으로 환생하기도 합니다. 계율을 완벽하게 잘 지킨데 대한 보상은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에 흡수되어 사실상 완전한 해탈, 즉 무(無)의 상태인 열반에 드는 것입니다.

    9) 드비자(dvija). 인도 카스트 중에서 종교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고 여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이 세 계급에 속한 사람은 성인이 되면 입문식을 하고 비로소 《베다》를 학습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새로운 종교생활에 들어가 재생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인도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계속 이야기했다. 브라만의 4주기¹⁰) 삶 가운데 1주기는 학문에 힘쓰는 시기입니다. 2주기로 들어갈 시기, 즉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었을 때 저는 모든 것, 심지어 우주의 최고원리인 브라만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단자가 되었습니다. 갇혀 있던 우물 깊은 곳에서 저는 위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하였고 도대체 그 빛이 무엇인지 올라가서 알아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년 동안 애쓰며 정진한 결과 그 빛 속에 서게 되었습니다. 삶의 원리이자 종교의 본질이며, 영혼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10) 힌두교에서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범행기, 가주기, 임주기, 유행기의 4단계로 나누었다. 일곱 살이 되면 집을 떠나 스승을 찾아 학문을 익힌 후, 집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돈을 벌며 대를 이을 자식을 낳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어지면 숲으로 들어가 나무 아래에서 살며 수행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탁발걸식하며 현세의 모든 집착을 끊고 해탈을 추구하는 단계에 이른다.

    주름진 그의 얼굴은 선명히 빛났고 그는 두 손을 꼭 잡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두 사람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리스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잠시 후 인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의 기쁨은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것으로 드러나지요.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브라만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온갖 비참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고, 수많은 신자들과 희생자들도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강가 라고르 섬은 성스러운 갠지스 강물이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갔고 현자 카필라¹¹)에게 바쳐진 사원 그늘에서 그 성인에 대한 거룩한 기억 때문에 그곳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안식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2년마다 힌두교 순례자들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강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입을 악물고 참아야 했습니다. 브라만이나 삼주신이나 샤스트라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한 마디만 했다가는 그걸로 끝장입니다. 추방되어 이글거리는 사막을 전전하다 죽어가는 브라만 계급 사람에게 위로의 말이나 물 한 모금 건네는 조그만 친절이라도 베풀었다가는 똑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지요. 가족, 고향, 특권, 브라만 계급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말지만 저는 결국 그 길을 택했습니다. 사랑에 무릎 꿇었던 것이죠! 저는 사원에 있던 현자의 제자들에게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쫓아냈습니다. 순례자들에게도 설교했지만 그들은 돌을 던져 저를 섬에서 쫓아냈습니다. 대로에서도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피하거나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마침내 인도 어디에도 안전하거나 쉴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추방자들에게도 배척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았어도 그들 역시 여전히 브라만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죠. 최후의 수단으로 저는 하나님 외에 모든 것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갠지스 강을 거슬러 히말라야 산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말할 수 없이 맑은 강물이 진흙투성이 저지대 사이로 흘러들기 시작하는 하르드와르¹²) 산길로 접어든 저는 저희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이제 그들과는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골짜기를 지나고 절벽을 오르고 빙하를 건너고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봉우리들을 넘어 랑초 호수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만년설로 뒤덮인 거봉들인 티세 강그리, 구를라, 카일라스 파르밧 자락에 잠들어 있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곳이죠. 지구의 중심인 그 호수는 인더스, 갠지스, 브라마푸트라 강이 각기 갈라져 발원하는 곳이요, 인류가 최초로 살게 된 곳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태초의 도시인 발흐(Balkh)를 떠나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자연이 원시 상태 그대로 광대함을 잃지 않고 있으므로 안전한 동시에 은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많은 현자와 추방자들이 찾아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죽는 그날까지 기도하고 단식하며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간 것입니다.

    11) 고대 인도의 철학자 · 선인(仙人). 기원전 5세기경 상키아학파를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12) 힌두교에서 ‘신의 문(Gateway to God)’으로 통하며 힌두교 7대 성지에 속한다. 강고트리 빙하(Gangotri Glacier) 가장자리, 갠지스강 상류 연안에 자리잡고 있어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갠지스강이 처음으로 힌두스탄 평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어느새 음성이 잦아지더니 그는 앙상한 두 손을 단단히 마주 잡았다.

    "어느 날 밤 저는 호숫가를 거닐다 침묵 가운데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 외쳤지요. ‘하나님, 도대체 언제 오셔서 당신을 드러내실 것인가요? 정녕 구원은 없단 말인가요?’ 그때 갑자기 물 위로 한줄기 빛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별 하나가 떠올라 저를 향해 다가오더니 제 머리 위에 멈춰 섰습니다. 그 밝은 빛에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누워 있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의 사랑이 이겼노라. 기뻐하라 인도의 아들아! 구원이 다가왔다. 세상 끝에서 온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너는 구세주를 보게 될 것이고 그분이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을 만나러 나서라. 그리고 그대를 인도하는 성령을 믿으라.’

    그 시간 이후로 그 빛은 늘 저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저는 산속으로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골짜기에서 발견한 값비싼 보석 원석을 들고 나와 하르드와르에서 팔았습니다. 그리고 라호르, 카불, 야즈드를 거쳐 이스파한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낙타를 한 마리 사서 대상들을 기다릴 틈도 없이 곧장 바그다드로 향했습니다. 아무 두려움 없이 홀로 길을 나섰지요. 성령께서 함께 해주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 형제들이여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구원자를 만날 테니까요, 그분께 말을 걸고 경배하게 될 테니까요! 제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5. 이집트인 발타사르가 전하는 말 - 선행

    쾌활한 그리스인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마지막 차례가 된 이집트인이 특유의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도 이겨내셨다니 축하드립니다. 두 분께서 기꺼이 제 말을 들어주신다면 제가 누군지, 어떻게 부르심을 받고 왔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낙타를 잠시 살핀 후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두 분은 성령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저 역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두 분의 나라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셨지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데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저와 저희 민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집트 사람 발타사르라고 합니다.

    마지막 말은 나지막이 말했지만 무척이나 위엄이 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저희 민족은 자랑할 것이 많지만 한 가지만 소개하지요. 역사는 저희 민족과 더불어 시작되었지요. 저희가 최초로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구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전하는 시 대신에 확실한 사실을 전하죠. 왕궁과 신전 정면, 오벨리스크, 무덤 내벽에, 왕들의 이름과 업적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교한 파피루스에 철학자의 지혜와 종교의 비의를 적어놓았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려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어놓았지요. 오 멜키오르 형제, 바라-브라만의 베다나 브야사의 우팡가보다도 오래되었고, 오 가스파르 형제, 호메로스의 시가나 플라톤의 형이상학보다도 오래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전이나 역대왕조와 마야 부인의 아들 부처의 경전보다도 오래되었고 히브리인 모세가 등장하는 창세기보다도 오래되었지요. 인간의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저희 민족 최초의 왕 메네스의 기록이랍니다. 이집트인은 잠시 쉬었다가 그 큰 눈으로 그리스인을 다정히 바라보며 말했다. 오 가스파르 형제여, 그리스 태동기에 그리스의 스승들이 어디에게 가르침을 얻었겠습니까?

    그리스인이 웃으며 끄덕였다.

    발타사르는 말을 이었다. 이 기록을 보면 저희 조상은 저 먼 동방, 멜키오르 당신이 말씀하신 성스러운 세 강의 발원지요 세상의 중심인 페르시아로부터 오면서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와 그 이전의 역사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역사서는 노아의 자손들이 아리안 족에게 전해준 것인데 창조주요, 만물의 시작이요, 영이시요, 불멸이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저희를 부르신 이 임무가 무사히 끝나는 날, 괜찮으시다면 저희 제사장들의 성스러운 도서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사자의 서(the Book of the Dead)』¹³)인데, 이 책에는 죽은 후 심판을 받으러가기까지 영혼이 지켜야 할 의식이 들어 있답니다. 하나님과 불멸의 영혼에 대한 그 가르침은 사막을 건너 이집트의 시조 미스라임에게 전해졌고, 다시 미스라임에 의해 나일강 유역까지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기 때문에 당시 그 가르침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또한 기쁨과 희망과 조물주를 사랑하는 영혼이 자연스레 바치는 찬가이자 기도인 최초의 예식도 그렇게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웠지요.

    13)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두루마리.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육체와 영혼의 분리 현상으로 보았으므로, 죽음이란 분리된 영혼이 잠시 저승으로 가서 심판을 받는 기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심판의 결과가 부활이 아닌 ‘영원한 지옥’으로 판정되면 영혼은 육체가 남아있는 현세로 돌아오지 못해, 부활할 수 없는 진정한 죽음을 맞게 된다. 따라서 ‘사자의 서’는 지상에 남은 미라의 온전한 보존과 심판을 받으러 사후세계로 가는 영혼을 위한 주의, 주술 등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사자의 영혼이 만나게 될 신들을 달래고, 영혼이 올바른 행로를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쯤에서 그리스인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오, 성령의 빛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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