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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Ebook372 pages3 hours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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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 읽기를 좀 더 쉽고 좀 더 친절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한국 명작소설》의 목적이자 목표다. 문학의 참된 즐거움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목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보는 일일 것이다. 애플북스는 이 권유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시대별 대표작품으로 한국문학 단편 모음집을 꾸렸다.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이란 콘셉트로 근대소설의 포문을 연 이인직의 [혈의 누], 계몽소설을 대표하는 이광수의 [소년의 비애], 풍자와 해학, 골계미를 추구한 김유정의 [동백꽃], 모더니즘의 절정을 보여준 이상의 [날개]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큰 기둥이 되었던 대표 작품을 각각 1900~1930년대와 1940년대로 시대별로 모아 나눠, 총 21명의 작가와 작품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문학 독자가 사랑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로맨스, 풍자와 해학, 계몽 등 다양한 장르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며 독자의 독자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던 인기 작품을 문학사의 이해를 돕는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고전 중에 명작을 가려서 읽는 것은 오늘의 세계와 그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 중 하나다. 모쪼록 이 선집을 통해 독자들이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Language한국어
Publisher애플북스
Release dateApr 20, 2017
ISBN9791157712397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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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 이 인직

    1900-1930

    한국 명작소설 1

    _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저자소개

     이인직 李人稙, 1862~1916

    개화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정치가다.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혈의 누》 《귀의 성》 《은세계》 《치악산》 《모란봉》 등의 작품이 있다.

     안국선 安國善, 1878~1926

    도쿄 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수학한 개화기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금수회의록》과 《공진회》 등의 작품이 있다.

     이광수 李光洙, 1892~1950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을 발표하여 우리나라 소설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단종애사》 《흙》 《유정》 《사랑》 등의 작품이 있다.

     김동인 金東仁, 1900~1951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인 작가다.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작품이 있다.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당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우리나라 자연주의문학을 개척한 작가다. <빈처> <운수 좋은 날> <고향> 등의 작품이 있다.

     최서해 崔曙海, 1901~1932

    자신의 비참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처참한 민족 현실을 형상화한 작가다. <토혈> <고국> <탈출기> <기아와 살육> <홍염> <박돌의 죽음> 등의 작품이 있다.

     송영 宋影, 1903~1979

    ‘동양극장’ 문예부장으로 극작 활동을 하였다. 단편소설 <늘어가는 무리> <용광로> <교대시간> <월파선생> 등과 희곡집 《불사조》 등의 작품이 있다.

     나도향 羅稻香, 1902~1926

    비애와 비극을 그린 낭만주의자로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행랑 자식>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지형근> 등의 작품이 있다.

     조명희 趙明熙, 1894~1938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목적의식적 단계로 발전시킨 한국 민중문학의 선구자다. 《그 전날 밤》 《낙동강》 등의 작품이 있다.

     한설야 韓雪野, 1900~?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조직하는 등 북한 공산당 문화예술계의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 《청춘기》 《귀향》 《초향》 《탑》 《이령》 등의 작품이 있다.

    일러두기

    1. 《한국 명작소설》 1권은 1906년 발표한 이인직의 <혈의 누>부터 1929년에 발표한 한설야의 <과도기>까지 근대를 대표하는 소설 11편을 모은 선집이다.

    2. 맞춤법, 띄어쓰기는 가능한 한 현대어 표기로 고쳤으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은 잘못되었더라도 그대로 두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았다.

    3. 한글로 표기된 외래어는 외래어 맞춤법에 맞게 고쳤으나 시대 상황을 드러내 주는 용어는 원문을 그대로 살렸다.

    4.한자는 한글로 표기하고 의미상 필요한 경우에만 한글 옆에 병기하였다.

    5. 생소한 어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주로 설명을 달아두었다.

    6.대화에서의 속어, 방언 등은 최대한 살렸으나 지문은 현대어로 고쳤다.

    7.대화 표시는 로 바꾸었고, 대화가 아닌 혼잣말이나 강조의 경우에는 ‘ ’로 바꾸었다. 또한 말줄임표는 모두 ‘……’로 통일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단편 모음집,

    《한국 명작소설》을 펴내며

    교육이나 학문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 문화 아닌 문화가 절정에 달한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문학의 참된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다시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제목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다시 권하고 함께 하는 일일 것이다.

    애플북스에서는 이 권유와 공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시대별 한국문학 대표 선집을 꾸렸다.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이란 콘셉트로 이인직으로부터 시작해 이광수, 현진건, 채만식, 이상, 이효석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문학의 큰 기둥들의 대표 작품을 시대별로 모아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첫째, 작가의 최초 발표본을 기준으로 하되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판본과의 비교・대조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였다. 둘째, 작가와 작품 고유의 표현은 최대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최근의 표기법을 적용함으로써 현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이 더 쉽고 더 자연스럽게 작품과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좀 더 친절한 선집이 되고자 독자들이 작품을 더 쉽고, 더 즐겁고,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작품 자체는 물론 그 작품이 발표된 시대와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핵심적인 소개를 더해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을 통해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오늘의 세계와 그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 중 하나기도 한 위대한 문학 읽기의 참된 즐거움을 좀 더 쉽고 좀 더 친절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한국 명작소설》의 목적이자 목표다. 모쪼록 이 선집을 통해 독자들이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애플북스 편집부

    추천의 글

    시대를 단칼에 잘라보자

    -단편소설 읽기의 즐거움-

    이제부터 어른 책 읽어라.

    이 말과 함께 아버지가 당신의 책장에서 꺼내 준 책은 한국문학 단편집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날은 어려서부터 책벌레였던 내가 비로소 동화책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문학의 숲으로 여행을 시작했던 날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깊고 울창한 숲속에서 한참을 지냈다. 그리고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숙해졌고, 일찌감치 철이 들게 되었다. 밤을 꼴딱 새우며 문학의 숲을 헤매던 시간, 그게 나의 사춘기였고, 청소년기의 삶이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삶은 어떠한가. 새벽부터 밤까지 오로지 공부, 또 공부다. 잠시나마 짬이 생겨도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 게임이나 단톡방에서의 의미 없는 수다가 전부다. 입시와 취업의 고통에 신음하며, 그나마 손에 든 작은 스마트폰에 위로받는 삶을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지금의 삶이 과연 미래에도 유용할지 고민해보지도 못한 채 비슷비슷한 꿈을 꾸고 한 방향을 향해 쥐어짜듯 달려가고 있다. 

    단편소설은 한 시대를 단칼에 잘라내어 삶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르다. 식민지 시대의 방황하는 한 청년은 미스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오늘날의 택시운전사 격인 인력거꾼은 가난 때문에 병든 아내를 죽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말 못하는 삼룡이는 주인의 폭력에 저항 한번 못한 채 순수한 사랑을 지키다 죽어가고, 김 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해 아부와 거짓된 미소를 준비해야 한다.

    단편소설의 매력은 이처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가감 없이 그려낼 수 있다는 거다. 모파상의 <목걸이>를 펼치면 마틸드처럼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허망한 화려함을 들여다볼 수 있듯이 단편소설 속에는 시대의 한 단면이 담겨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삶의 한 단면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부터 이상의 <날개>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문학사적 성장이 곧 우리 삶의 성장이고, 우리가 걸어온 시대의 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작품 속에 담겨 있는 그 선명한 삶의 단면과 시대의 단면을 통해 삶의 추악함과 아름다움, 사상과 의식, 욕망과 좌절, 갈등과 화해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명작소설》은 시대와 삶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며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단편소설 가운데서도 정수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중편도 몇 편 끼어 있긴 하지만 대개가 단편인 만큼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고, 짧은 만큼 더 선명하게 지식인, 노동자, 모던보이들,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존재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으며, 시대의 고민을 엿보고 공감할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대와 삶을 증언하고, 고민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읽는 행위는 독자들의 삶에, 특히 청소년기 독자들의 삶에 더없이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저만치에서 밀려오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금 단편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와 삶의 흐름을 알고, 돌아보고, 상상할 수 있는 자가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욱

    차 례

    한국문학을 권하다 단편 모음집, 《한국 명작소설》을 펴내며

    시대를 단칼에 잘라보자 -단편소설 읽기의 즐거움 _고정욱

    혈의 누 _ 이인직

    금수회의록 _안국선

    소년의 비애 _이광수

    배따라기 _김동인

    운수 좋은 날 _현진건

    탈출기 _최서해

    늘어가는 무리 _송영

    벙어리 삼룡이 _나도향

    낙동강 _조명희

    과도기 _한설야

    혈의 누

    1900-1930 근대의 고독한 목소리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한

    이인직

    이인직

    李人稙, 1862~1916

    호는 국초菊初. 개화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정치가다. 1900년 대한제국 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 대학 정치학교 청강생으로 공부하고,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 조선어통역관으로 종군하였다. 1906년 일진회 기관지인 〈국민신보〉와 〈만세보〉 주필을 지냈으며, 이듬해 〈대한신문〉이라는 친일신문을 창간하여 이완용의 비서 역할을 했다. 이후 선릉 참봉·중추원 부찬의 등을 역임했으며, 연극운동에 관심을 갖고 1908년 원각사를 세워 한국 최초의 신극이라 할 수 있는 〈은세계〉를 공연했다. 1910년 이완용의 심복으로서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와 비밀리에 만나 국권침탈의 매개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의 국권침탈 이후 배후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흔한 작위조차 받지 못하고 경학원 사성이라는 말단직에 보임되었다. 1916년 신경통으로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사망했으며, 장례는 당국에서 보내온 공로금으로 치러졌다.

    신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하여 《혈의 누》 《귀의 성》 《은세계》 《치악산》 《모란봉》 등을 남겼다.

    근대소설적 특성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는 상편은 1906년 7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만세보>에 연재됐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은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되다 중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다.

    내용 측면에서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조선의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신문명과 신교육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자주독립과 자유연애사상이라는 근대적 계몽 이념을 강조함으로써 조선말 독자들을 계몽하고자 한 계몽주의적 특성이 있다. 형식에 있어서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사용한 점, 사건의 우연성을 탈피하고 소설적 개연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보인다는 점 등 근대소설적 특징을 갖고 있다. 《혈의 누》의 이러한 특성들은 소설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고대소설에서 탈피하여 근대소설에 접근한 새로운 문학사적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자 고전소설과 근대소설의 다리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대소설의 문체를 탈피하지 못한 부분이 빈번히 나타나고, 구성이나 이야기의 전개 방식 또한 아직 근대소설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숙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에 더해 낡은 정치와 사회상의 타파라는 계몽의식을 담고 있는 반면,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자는 노골적인 일본 찬양의 내용은 친일의식과 반민족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혈血의 누淚

    일청전쟁日淸戰爭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평양성의 모란봉에 떨어지는 저녁볕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저 햇빛을 붙들어 매고 싶은 마음에 붙들어 매지는 못하고 숨이 턱에 닿은 듯이 갈팡질팡하는 한 부인이 나이 삼십이 될락 말락 하고, 얼굴은 분을 따고 넣은 듯이 흰 얼굴이나 인정 없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가을볕에 얼굴이 익어서 선앵둣빛이 되고, 걸음걸이는 허둥지둥하는데 옷은 흘러내려서 젖가슴이 다 드러나고 치맛자락은 땅에 질질 끌려서 걸음을 걷는 대로 치마가 밟히니, 그 부인은 아무리 급한 걸음걸이를 하더라도 멀리 가지도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한다.

    남이 그 모양을 볼 지경이면 저렇게 어여쁜 젊은 여편네가 술 먹고 한길에 나와서 주정한다 할 터이나, 그 부인은 술 먹었다 하는 말은 고사하고 미쳤다, 지랄한다 하더라도 그따위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아니할 만하더라.

    무슨 소회가 그리 대단한지 그 부인더러 물을 지경이면 대답할 여가도 없이 옥련이를 부르면서 돌아다니더라.

    옥련아, 옥련아, 옥련아, 옥련아, 죽었느냐 살았느냐. 죽었거든 죽은 얼굴이라도 한번 다시 만나보자. 옥련아 옥련아, 살았거든 어미 애를 그만 쓰이고 어서 바삐 내 눈에 보이게 하여라. 옥련아, 총에 맞아 죽었느냐, 창에 찔려 죽었느냐, 사람에게 밟혀 죽었느냐. 어리고 고운 살에 가시가 박힌 것을 보아도 어미 된 이내 마음에 내 살이 지겹게 아프던 내 마음이라. 오늘 아침에 집에서 떠나올 때에 옥련이가 내 앞에 서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어머니 어서 갑시다’ 하던 옥련이가 어디로 갔느냐.

    하면서 옥련이를 찾으려고 골몰한 정신에, 옥련이보다 열 갑절 스무 갑절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잃고도 모르고 옥련이만 부르며 다니다가 목이 쉬고 기운이 탈진하여 산비탈 잔디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혼잣말로 옥련 아버지는 옥련이 찾으려고 저 건너 산 밑으로 가더니 어디까지 갔누 하며 옥련이를 찾던 마음이 홀지¹에 변하여 옥련 아버지를 기다린다.

    1  忽地, 갑작스럽게 되거나 변하는 판.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 오고, 인간 사정은 조금도 모르는 석양은 제빛 다 가지고 저 갈 데로 가니 산빛은 점점 먹장을 갈아 붓는 듯이 검어지고 대동강 물소리는 그윽한데, 전쟁에 죽은 더운 송장 새 귀신들이 어두운 빛을 타서 낱낱이 일어나는 듯 내 앞에 모여드는 듯하니, 규중에서 생장한 부인의 마음이라. 무서운 마음에 간이 녹는 듯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았는데, 홀연히 언덕 밑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리거늘, 그 부인이 가만히 들은즉 길 잃고 사람 잃고 애쓰는 소리라.

    에그, 깜깜하여라. 이리 가도 길이 없고 저리 가도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면 길을 찾을까. 나는 사나이라 다리 힘도 좋고 겁도 없는 사람이건마는 이러한 산비탈에서 이 밤을 새우고 사람을 찾아다니려 하면 이 고생이 이렇게 대단하거든, 겁도 많고 다녀보지 못하던 여편네가 이 밤에 나를 찾아다니느라고 오죽 고생이 될까.

    하는 소리를 듣고 부인의 마음에 난리 중에 피란 가다가 부부가 서로 잃고 서로 종적을 모르니 살아 생이별을 한 듯하더니 하늘이 도와서 다시 만나 본다 하여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더라.

    여보, 나 여기 있소. 날 찾아다니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소.

    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언덕 밑으로 향하여 내려가다가 비탈에 넘어져 구르니, 언덕 밑에서 올라오던 남자가 달려들어서 그 부인을 붙들어 일으키니, 그 부인이 정신을 차려본즉 북두갈고리 같은 농군의 험한 손이 내 손에 닿으니 별안간에 선뜩한 마음에 소름이 끼치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겁결에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다.

    그 남자도 또한 난리 중에 제 계집 찾아다니는 사람인데, 그 계집인즉 피란 갈 때에 팔승 무명을 강풀 한 됫박이나 먹였던지 장작같이 풀 센 치마를 입고 나간 터이오, 또 그 계집은 호미자루, 절굿공이, 다듬잇방망이, 그러한 세 궂은 일로 자라난 농군의 계집이라. 그 남자가 언덕에서 소리하고 내려오는 계집이 제 계집으로 알고 붙들었는데, 그 언덕에서 부르던 부인의 손은 명주같이 부드럽고 옷은 십이 승 아랫질 세모시 치마가 이슬에 눅었는데, 그 농군은 제 평생에 그 옷 입은 그런 손길을 만져보기는 고사하고 쳐다보지도 못하던 위인이러라.

    부인은 자기 남편이 아닌 줄 깨닫고 사나이도 제 계집 아닌 줄 알았더라. 부인은 겁이 나서 간이 서늘하고 남자는 선녀를 만난 듯하여 흥김, 겁김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숨소리는 크고 목소리는 아니 나온다. 그 부인의 마음에, 아까는 호랑이도 무섭고 귀신도 무섭더니, 지금은 호랑이나 와서 나를 잡아먹든지 귀신이나 와서 저놈을 잡아가든지 그런 뜻밖의 일을 기다리나, 호랑이도 아니 오고 귀신도 아니 오고, 눈에 보이는 것은 말 못하는 하늘의 별뿐이요, 이 산중에는 죄 없고 힘없는 이내 몸과 저 몹쓸 놈과 단 두 사람뿐이라.

    사람이 겁이 나다가 오래되면 악이 나는 법이라. 겁이 날 때는 숨도 크게 못 쉬다가 악이 나면 반벙어리 같은 사람도 말이 물 퍼붓듯 나오는 일도 있는지라.

    여보, 웬 사람이오. 여보, 대답 좀 하오. 여보 남을 붙들고 떨기는 왜 그리 떠오. 여보, 벙어리요 도둑놈이오? 도둑놈이거든 내 몸의 옷이나 벗어줄 터이니 다 가져가오.

    그 남자가 못생긴 마음에 어기뚱한 생각이 나서 말 한마디 엄두가 아니 나던 위인이 불같은 욕심에 말문이 함부로 열렸더라.

    여보, 웬 여편네가 이 밤중에 여기 와서 있소? 아마 시집살이 마다고 도망하는 여편네지. 도망꾼이라도 붙들어다가 데리고 살면 계집 없느니보다 날 터이니 데리고 갈 일이로구. 데리고 가기는 나중 일이어니와…… 내가 어젯밤 꿈에 이 산중에서 장가를 들었더니 꿈도 신통히 맞힌다.

    하면서 무지막지한 놈의 행위라 불측한 소리가 점점 심하니, 그 부인이 죽어서 이 욕을 아니 보리라 하는 마음뿐이나, 어느 틈에 죽을 겨를도 없는지라.

    사람이 생목숨을 버리는 것은 사람이 제일 설워하는 일인데, 죽으려 하여도 죽지도 못하는 그 부인 생각은 어떻다 형용할 수 없는 터이라.

    빌어보면 좋을까 생각하여 이리 빌고 저리 빌고 각색으로 빌어보니 그놈의 귀에 비는 소리가 쓸데없고 하릴없는 지경이라. 언덕 위에서 웬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나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죽었던 부모가 살아온 듯이 기쁜 마음에 마주 소리를 질렀더라.

    사람 좀 살려주오…….

    하는 소리가 아무리 부인의 목소리라도 죽을힘을 다 들여서 지르는 밤 소리라 산골이 울리니, 언덕 위의 사람이 또 소리를 지른다. 언덕 위와 언덕 밑이 두 간 길이쯤 되나 지척을 불변하는 칠야에 서로 모양도 못 보고 또 서로 말도 못 알아듣는 터이라, 언덕 위의 사람이 총 한 방을 놓으니 밤중의 총소리라. 산이 울리면서 사람이 모여드는데 일본 보초병들이러라. 누구는 겁이 많고 누구는 겁이 없다 하는 말도 알 수 없는 말이라. 세상에 죄 있는 사람같이 겁 많은 사람은 없고, 죄 없는 사람같이 다기² 있는 것은 없다. 부인은 총소리에도 겁이 없고 도리어 욕을 면한 것만 천행으로 여기는데, 그 남자는 제가 불측한 마음으로 불측한 일을 바라던 차라 총소리를 듣고 저를 죽이러 온 사람으로 알고 달아난다. 밝은 날 같으면 달아날 생각도 못 하였을 터나, 깜깜한 밤이라 옆으로 비켜서기만 하여도 알 수 없는 고로 종적 없이 달아났더라. 보초병이 부인을 잡아서 앞세우고 가는데 서로 말은 못 하고 벙어리가 소를 몰고 가는 듯하다. 계엄중戒嚴中 총소리라 평양성 근처에 있던 헌병이 낱낱이 모여들어서 총 놓은 군사와 부인을 데리고 헌병부로 향하여 가니, 그 부인은 어딘지 모르고 가나 성도 보이고 문도 보이는데, 정신을 차려본즉 평양성 북문이라.

    2  多氣, 웬만한 일에는 두려움 없이 마음이 단단함.

    밤은 깊어 사람의 자취도 없고 사면에서 닭은 홰를 치며 울고 개는 여염집 평대문 개구멍으로 주둥이만 내어놓고 짖는다. 닭소리, 개소리에 부인의 발이 땅에 떨어지지 못하여 걸음을 멈추고 섰는데, 오장이 녹는 듯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개는 명물이라 밤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 뛰어나오다가 헌병이 칼을 빼어 개를 차려 하니 개가 쫓겨 들어가며 짖으나 사람도 말을 통치 못하거든 더구나 짐승이야…….

    개야, 너 혼자 집을 지키고 있구나. 우리가 피란 갈 때에 너를 부엌에 가두고 나왔더니 어디로 나왔느냐. 너와 같이 집에 있었더면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아니하였을 것을 살 곳 찾아가느라고 죽을 길 고생길로 들어갔다. 나는 살아와서 너를 다시 본다마는 서방님도 아니 계시다, 너를 귀애하던 옥련이도 없다. 내가 너와 같이 다리 힘이 좋으면 방방곡곡이 찾아다닐 터이나, 다리 힘도 없고 세상에 만만하고 불쌍한 것은 여편네라 겁나는 것 많아서 못 다니겠다. 닭도 주인 없는 집에서 혼자 울고, 개도 주인 없는 집에서 혼자 짖는구나. 개야, 이리 나오거라. 나는 어디로 잡혀가는지 내 발로 걸어가나 내 마음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헌병이 소리를 질러 가기를 재촉하니 부인이 하릴없이 헌병부로 잡혀가는데 개는 멍멍 짖으며 따라오니 그 개 짖고 나오던 집은 부인의 집이러라.

    그날은 평양성에서 싸움 결말나던 날이요, 성중의 사람이 진저리 내던 청인이 그림자도 없이 다 쫓겨나가던 날이요, 철환은 공중에서 우박 쏟아지듯 하고 총소리는 평양성 근처가 다 두려빠지고³ 사람 하나도 아니 남을 듯하던 날이요, 평양 사람이 일병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일병은 어떠한지, 임진 난리에 평양 싸움 이야기하며 별 공론이 다 나고 별 염려 다 하던 그 일병이 장마통에 검은 구름 떠들어오듯 성내・성외에 빈틈없이 들어와 박히던 날이라.

    3  한곳을 중심으로 그 주변이 도려낸 것처럼 뭉떵 빠져나가다.

    본래 평양성 중 사는 사람들이 청인의 작폐에 견디지 못하여 산골로 피란 간 사람이 많더니, 산중에서는 청인 군사를 만나면 호랑이 본 것 같고 원수 만난 것 같다. 어찌하여 그렇게 감정이 사나우냐 할 지경이면, 청인의 군사가 산에 가서 젊은 부녀를 보면 겁탈하고, 돈이 있으면 빼앗아가고, 제게 쓸데없는 물건이라도 놀부의 심사같이 장난하니, 산에 피란 간 사람은 난리를 한층 더 겪는다. 그러므로 산에 피란 갔던 사람이 평양성으로 도로 피란 온 사람도 많이 있었더라.

    그 부인은 평양성 북문 안에 사는데 며칠 전에 산에 피란갔다가 산에도 있을 수 없고, 촌에 사는 일갓집으로 피란 갔다가 단칸방에서 주인과 손과 여덟 식구가 이틀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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