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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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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87 pages1 hour

창세기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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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1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밝히신 이름, 엘로힘과 여호와(하쉐임)의 차이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 여호와로 번역된 경위를 포착한다.

2 영의 미스터리

‘영’으로 번역된 \"네페쉬\"와 \"루아흐\" 및 \"느샤마\"의 차이를 성경에서 찾아 분석해본다.

3 노아의 가정을 둘러싼 미스터리

노아는 왜 가나안을 저주했는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분석해보고, 경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의미를 되짚어본다.

4 바벨탑 사건의 진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증이 성경에 있다. 원어와 앞뒤 문맥으로 접근하는 바벨탑 사건의 진실.

5 천사인가, 하나님인가?

인간과 하나님이 만날 때 인간의 논리가 무너지는 대목이 있다. 마므레 상수리 나무에 있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조우를 비롯하여, 마노아 부부와 하나님, 얍복강 나루에서 대면한 야곱과 하나님 및 여호수아를 집중 조명한다.

6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우리만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이를 조목조목 성경에서 짚어본다.

7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삭이 에서에게 내린 저주...(대부분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다분하게 옮겼다) 그러나 KJV에서는 축복으로 번역된다(긍정적인 뉘앙스다). 과연 에서가 받은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8 왜 드라빔을 훔쳤는가?

드라빔은 무엇이며, 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쳤는지 랍비 문헌과 미드라쉬 및 탈무드를 통해 재해석해본다.

9 왜 현장에는 없었는가?

요셉이 팔려가기 직전, 형제들이 식사할 때 르우벤은 없었다. 현장에는 왜 없었는지 성경과 고문서를 참고하며 분석한다.

10 하나님은 왜 시험하시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을 시험하신다. 그렇다면 결과를 빤히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아는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Language한국어
Publisher투나미스
Release dateJul 15, 2016
ISBN9791195835928
창세기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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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미스터리 - 유지훈

    창세기의 미스터리

    유지훈 지음

    투나미스 퍼블리싱

    창세기의 미스터리

    지은이 유지훈

    발행인 유지훈

    영   업 유지영

    초판발행 2016년 7월 15일

    펴낸곳 투나미스 퍼블리싱

    주소 서울시 서초구 명달로 9길 5 정호빌딩 2층

    출판등록 2016년 6월 20일

    전화 02) 522-8480

    팩스 050-8090-8480

    홈피 www.tunamis.xyz

    메일 ouilove2@hanmail.net

    ISBN 979-11-958359-2-8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면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차례

    추천의 글

    프롤로그+감사의 글

    1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깨알 미스터리 - 뱀이 입을 열다

    2 영의 미스터리

    깨알 미스터리 - 눈이 밝아지기까지 

    깨알 미스터리 - 므두셀라의 절묘한 죽음

    3 노아의 가정을 둘러싼 미스터리

    깨알 미스터리: ‘그’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

    4 바벨탑 사건의 진실

    깨알 미스터리: 하나님이 한탄하고 근심하신다? 

    깨알 미스터리: 방주의 출입

    5 천사인가, 하나님인가?

    깨알 미스터리: 아브람은 말씀을 어겼는가?

    6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

    깨알 미스터리: 사라는 왜 아이를 낳지 않았을까? 

    깨알 미스터리: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모르고 갔는가?

    7 축복인가, 저주인가?

    깨알 미스터리: 아브라함이 믿으니 이를 의로 여겼다?

    8 왜 드라빔을 훔쳤는가?

    깨알 미스터리: ‘나’좀 넣어주시오! 

    깨알 미스터리: 종이 신부를 데려온다?

    9 왜 현장에는 없었는가?

    깨알 미스터리: 왜 400명인가? 

    깨알 미스터리: 시력이 나쁘다?

    10 하나님은 왜 시험하시는가?

    깨알 미스터리: 왜 요셉을 죽이지 않았을까?

    참고 저자 및 문헌 소개

    헌정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기독인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일러두기  히브리어의 발음표기는 원문과 방향이 반대임을 알린다.

    성경 번역본 약어

    NAS The New American Standard Bible(NASB) 

    JPS JPS Holy Scriptures 1917(English) 

    TNK JPS TANAKH 1985(English)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NIV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NRS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Bibl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of the Bible 

    ASV American Standard Version 

    KJV King James Version

    추천의 글

    옛 학자들은 야곱의 가정사에 대해 숱한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이삭을 속여 형이 받을 복을 탈취한 야곱도 그렇지만 부친의 첩 빌하과 동침한 르우벤, 여동생의 성폭행을 기화로 세겜성을 쑥대밭으로 만든 시므온과 레위,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 등, 하나님이 선택하신 족장의 가정치고는 본받을 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화에 정통한 학자가 성경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그에는 대개 문외한인 교역자나 평신도는 궁금한 점이 더더욱 많을 것입니다. 다행히 『창세기의 미스터리』는 성경에 기록된 미스터리 가운데 교회가 두루뭉술 넘어갔다거나 딱히 해답이 없었던 ‘영구미제사건’을 과감하게 거론하며 저자 나름의 가설과 논리적인 단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저자가 인용한 탈무드와 미드라쉬(유대인이 쓴 구약성경주석)는 유대 문화와 현인들의 성경관이 녹아있어 우리만의 선입견을 타파하는 데도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저자는 바벨탑과 노아의 가정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두고는 원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비롯된 오류를 지적하는가 하면 성경의 문맥을 통해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창 22장)을 다룰 때는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이삭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심도 있게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신학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신학적인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초지일관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도 성경을 연구할 수 있다는 의식을 도모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성경 연구가 신학자나 전도사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탓에 평신도에게는 그것이 두려움과 부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쥐기가 쉬운 풍토는 아닌 듯합니다.

    아울러 다수의 원서를 번역해 낸 저자는 우리글과 외국어의 차이를 잘 아는 까닭에 히브리 성경을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지는 경위와 역자의 오해를 잘 파악하고 있어 창세기의 미스터리를 논하는 데 손색이 없으리라 자부합니다.

    — 변순복,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토라(상/중/하)』저자

    프롤로그+감사의 글

    성경 과외 초등학교 3학년 때 ‘과외’로 성경을 배운 기억을 되새기며 이야기보따리를 풀까한다(그땐 ‘국민학교’였다). 

    고모가 어린이 전도협회(1) 간사로  일했는데 매주 금요일이 되면 우리 집에 찾아와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과 어린이 찬송을 가르치곤 했다. 

    전도협회에서는 이를 새소식반이라고 부른다. 복음Good News의 ‘뉴스News’를 새소식으로 옮겨서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들 십수 명이 이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같은 반 친구도 더러 있었고 내가 짝사랑했던 아이도 몇 번은 우리 집에서 성경과 찬송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경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고모라며? (우쭐거린다) 으응 …… 그래.

    구약과 신약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몸짓으로 알기 쉽게 가르쳐준 고모가 주일학교 선생님보다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성경과는 그렇게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고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교회에서 배웠지만 딱히 성경을 펼칠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교회 선생님은 공과책 위주로 진도를 나갔는데 대개는 공과책이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을 때만 성경을 폈던 것 같다. 성경의 심원한 의미는 성경과 현실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이나마 벗어졌을 때 깊이 다가왔다. 

    교회에서는 거의 주입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가르쳐준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금기시된 된것은 아닌가 싶다. 남들은 몰라도 필자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되레 기독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몇 년이 채 안 된다. 

    한국 교회는 토론 문화뿐 아니라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교사를 등용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성경은 알고 읽으면 그리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다.

    창세기의 미스터리 다른 책도 마찬가지겠지만 구약성경 또한 미스터리로 가득한 까닭에 따분할 겨를이 없다. 성경을 읽다보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딱 떨어지는 물음도 있지만(이때 느끼는 쾌감은 시쳇말로 정말 ‘장난’이 아니다) 평생을 연구해도 결론에 이르지 못할 그런 ‘몹쓸’ 영구미제사건도 있다. 예컨대, 『창세기』도(2)미스터리 투성이다. 첫 글자, 첫 단어부터 왜 그렇게 썼는지 석연치가 않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맨 처음 오는 단어 ‘버레이쉬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버레이쉬트’는 연계형이라 하여 태초에가 아니라 ~의 시작에로 옮겨야 맞다. 즉, 명사나 그에 준하는 어구가 있어야 의미가 완전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뜻이 ‘~의 아들’인 ‘벤'’도 벤 버냉키(연준위 의장)라든가 벤 구리온이라고 해야 버냉키의 아들이나 구리온의 아들로 뜻이 통할 터인데 버레이쉬트에는 딸린 명사가 없어 무엇의 시작인지 당최 알 길이 없다. 그냥 태초에라고 쓰려면 바리쇼나라고 썼어야 옳지만 기자는 그러질 않았다. 괜히는 아닐 것이다. 

    이 밖에도 머리를 쓰게 하는 ‘유익한’ 미스터리가 많으니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연구하고픈 열망이 솟구치기를 바란다(필자가 미스터리를 다 해소해주리라는 기대는 과욕이니 삼가시라).

    고마운 분들

    기독교 관련 처녀작을 낸 뒤로 머릿속 지식은 이미 다 쏟아냈다고 단정하여 차기 원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창세기를 배우고 읽으며 발견한 미스터리를 지면에 실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지식이 어쭙잖은지라 19, 20세기 랍비의 문헌과 미드라쉬, 탈무드 및 현존하는 전문가의 조언도 함께 실었으니 원고가 ‘맹물’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서울 동부교회에 오신 김정환 선교사님(탄자니아 무지개학교)도 원고의 컨셉concept을 들으시더니 집필을 종용하셨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데 목적이 있으니 그런 책을 많이 쓰라며 격려하신 것이다. 끝으로, 감사하고픈 분들을 열거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우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동생 뒷바라지로 고생한 유지성 누님과 유지영 형님을 비롯하여, 필자를 위해 늘 기도해주시는 (현)새소망교회 인상식 목사님, 조선희 사모님, 황현숙 전도사님, 서울 동부교회 박영수 목사님과 김현숙 사모님, 수원교회 안태근 목사님, (전)새소망교회 지창덕 목사님, 백석대학교(탈무드에듀아카데미) 변순복 교수님, 모창조 목사님, 행복한 교회 서순형 목사님, 한경희 목사님, 고척중앙교회 이좌신 목사님, 이은희, 이성민, 홍신준, 장진성 전도사님과 동부교회, 수원교회 및 새소망교회 식구들, 비록 장애와 어려운 가정사로 힘겹지만 믿음 잃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섬기는 친구 임갑철 형제, 삼촌에게 웃음과 힘을 주는 조카 성민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모쪼록 말씀의 미스터리가 연구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6년 2월 유지훈

    1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할렐루야! 아멘!

    교회에서는 관용어가 되었을 법하다. 그러니 인도자가 할렐루야! 했는데 회중이 묵묵부답이면 족히 당황할만한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할렐루야할렐루(찬양하라)야(하나님)를 합친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이다. 

    첫 화두는 하나님의 이름을 꼽았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어떤 뜻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 이를 첫 단추로 삼은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일관성 있게 반복되는 이름은 크게 둘이며 아래처럼 둘이 같이 나올 때도 있다. 하나님은 한분이지만 호칭은 여럿이다. 묘하지만 그렇다.

    * 엘로힘(하나님)

    * 하쉐임(여호와)

    * 하쉐임 엘로힘(여호와 하나님)(1)

    하쉐임은 무엇인가?

    하쉐임השׁם이라고 쓴 이유가 있다. 는 정관사the이고 쉐임은 이름name, 즉 하쉐임은 그 이름이나 구별된 이름을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경 번역가는 이를 ‘여호와’라고 옮겼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를 밝혀두어야겠다. 

    사실 יהוה은 여호와라고 읽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 이름이다.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기 때문에 성경을 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유대인 학자들이 활자에 모음부호를 붙어놓은 데서 오해가 시작되지 않았나싶다(2).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쉐임은 ‘여호와’를 유대식으로 일컫는 어구인데, 먼 옛날 유대인들은 하쉐임(여호와)을 아도나이(나의 주)라고 읽었다. 

    예컨대, 신명기 6장 4절은 슈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들으라, 이스라엘아! 나의 주יהוה 는 우리 하나님이고, 나의 주는 한 분이시다)라고 낭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읽고 불러왔다. 혹시라도 יהוה을 읽을라치면 네 문자를 각각 구분했다. 이를테면, 요드י, 헤이ה, 바브ו, 헤이ה 거룩한 네 문자이십니다(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라고 말이다. 

    학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모음부호를 붙인 경위를 안다면 왜 여호와가 나왔으며, 왜 그것이 잘못된 발음인지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모음이 없었다가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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